서유견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유견문》(西遊見聞)은 1895년에 유길준이 미국 유학 중에 보고 배운 것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책이다.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구 문화 전 영역을 포괄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백과사전적 저술이다.[1]
내용
구당 유길준은 조선 근대 계몽 운동의 선구자로, 대표적 저술인 《서유견문》은 근대 한국의 첫 번째 서양 소개서이며 일본과 미국에 유학하고 유럽을 경유하여 여행한 바 다양한 서양 체험과 개화 사상을 담은 책이다. 이 글에서는 이 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야기되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과 수년 앞서 일본 수신사가 되었던 김기수의 《일동기유》를 비교하면서 이 책을 기록한 문자 의식을 함께 살펴 문화사적 자리매김을 시도했다. 《서유견문》은「서문」과「비고」에 이은 모두 20권 71항목으로 된 556쪽 가운데서, 제1, 2편과 제19, 20편을 지구 세계의 개론과 나라들의 구별, 세계의 하천과 인종·물산, 또는 세계의 중요 도시 등, 세계의 인문지리를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제3편부터 제18편까지는 서양의 정치 제도와 문명의 실태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편, 이 《서유견문》이 단순한 견문기에 그치지 않고 "남의 저서를 번역해서 편집하는" 근대 번역의 모범과, 또 "문필가의 궤도"를 벗어나면서까지 국·한문 혼용의 문체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문법 연구가의 모습까지를 확인시켜 준다. 이런 언어관이《서유견문》의 표기법에서 그의 문법 연구로 이어진 근대 국어 연구의 선구가 되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개화 정권이 실패하고 유길준이 망명하면서 이 책은 금서가 되었으나,
새 시대의 소학교에서부터 정치가에까지 이르는 시대의 교과서로 근대 계몽기의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개화기의 국민 교과서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의 근대문명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한국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개화, 즉 실상개화를 주장하였다. 그의 개화사상은 실학의 통상개국론, 중국의 양무 및 변법론, 일본의 문명개화론, 서구의 천부인권론 및 사회계약론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입헌군주제도의 도입, 상공업 및 무역의 진흥, 근대적인 화폐 및 조세제도의 수립, 근대적인 교육제도의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론은 갑오개혁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목차
- 서문
- 제1편
- 지구 세계의 개론
- 6대주의 구역
- 나라의 구별
- 세계의 산
- 제2편
- 세계의 바다
- 세계의 강
- 세계의 호수
- 세계의 인종
- 세계의 물산
- 제3편
- 제4편
- 제5편
- 제6편
- 제7편
- 제8편
- 세금이 쓰는 일들
- 정부에서 국채를 모집하여 사용하는 까닭
- 제9편
- 제10편
- 제11편
- 당파를 만드는 버릇
- 생계를 구하는 방법
- 건강을 돌보는 방법
- 제12편
- 제13편
- 서양 학문의 내력
- 서양 군제의 내력
- 유럽 종교의 내력
- 학문의 갈래
- 제14편
- 제15편
- 결혼하는 절차
- 장사 지내는 예절
- 친구를 사귀는 법
- 여자를 대접하는 예절
- 제16편
- 옷.음식.집의 제도
- 농작과 목축의 현황
- 놀고 즐기는 모습
- 제17편
- 빈민 수용소
- 병원
- 정신박약아 학교
- 정신 병원
- 맹아원
- 농아원
- 교도소
- 박람회
- 박물관과 동.식물원
- 도서관
- 강연회
- 신문
- 제18편
- 증기기관
- 와트의 약전
- 기차
- 기선
- 전신기
- 전화기
- 회사
- 도시의 배치
- 제19편
- 각국 대도시의 모습
- 미국의 여러 대도시
- 영국의 여러 대도시
- 제20편
- 프랑스의 여러 대도시
- 독일의 여러 대도시
- 네덜란드의 여러 대도시
- 포르투갈의 여러 대도시
- 스페인의 여러 대도시
- 벨기에의 여러 대도시
영향
이 책이 나옴에 따라 이 당시의 책과 잡지가,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갑오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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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속국은 복종하거나 섬겨야 하는 나라의 정령과 제도를 따라야 하고, 국내외의 여러 가지 사무를 자주적으로 처리할 권리가 전혀 없다. 증공국은 강대국의 침략을 면하기 위하여, 자기 나라가 대적하기 어려운 형세인 것을 스스로 헤아려 알고 비록 본심에는 맞지 않더라도 (강대국이 내세운) 조약을 준수하여 공물을 보내고, 그들이 누리는 권리의 한도에 따라 독립 주권을 얻는다. 그러므로 증공국이 다른 여러 독립국과 같은 여러 가지 권리를 행사한다면, 세계 가운데 당당한 하나의 독립 주권국이다. 속국은 조약을 체결할 권리가 없지만, 증공국은 다른 독립 주권국과 동등하게 수호조약, 항해조약 및 통상조약을 상의하거나 약정한다. 속국은 영사 및 무역사무관 외에 총영사도 파견할 권리가 없지만, 증공국은 그들이 체결한 조약에 따라 조약을 체결한 여러 나라에 각급 사절단을 파견하거나 초빙하고, 교전(交戰)이나 강화를 선언할 권리가 있다. 속국은 이러한 권리가 없다. 증공국은 이웃 나라끼리 군사 행동을 취할 때에 중립을 지킬 권리가 있지만, 속국은 자기 나라가 섬기는 나라에 대하여 이 권리를 행사할 수가 없다. 증공국은 공물을 받는 나라, 즉 수공국과 사절단이나 영사를 서로 파견할 권리가 있지만, 속국은 자기 나라가 섬기는 나라에 대하여 이 권리를 행사할 수가 없다.
《서유견문》(西遊見聞) 유길준
3편부터 14편까지는 국정 전반에 관해서 논했고 증공국, 공물을 바치는 나라에 대해 서술되어 있는 건 중국과의 사대관계 때문인 듯하다. 이처럼 유길준은 증공국과
속국과의 차이점을 역설했는데 증공국은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이 결정 할 수 있지만 속국은 그럴수 없으며 증공국이 옛 법규를 잘 따르고 있는데도 침공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는 여러 이목이 있기 때문이며 공법도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 유길준의 논지였다. 실제로
유길준은
1889년에 완성한 이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당시의
조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증공국(贈貢國)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면서도 조선이 (속국이 아닌) 자주독립국이라고 주장하였다.
[2]그 뒤로는 국민의
권리,
정부의 시초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정부에 시초에서 정부의 종류를 <왕의 마음대로 하는 체제>, <왕이 명령하는 체제>, <왕과 국민이 함께 다스리는 체제>, <귀족이 다스리는 체제>, <국민이 다스리는 체제>로 말하고 있는데 각각
전제군주제,
입헌군주제,
귀족공화제,
민주공화제을 말한다. 그럼 <왕이 명령하는 체제>는 무엇이냐고 할텐데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관습적으로 신하들과 공론에 따라서 결정하는 체제라고 말했으며
귀족정과도 결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왕이 명령하는 체제>, <귀족정>이 섞이는 이유는 좋은 왕이 나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군이 나올 수도
폭군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헌제가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공화정에 관해서 사람들의 풍속이 다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제도에 관해서 소개했다기보다 그 제도의 운영에 대해 논하고 있다.이는 조선 정치 제체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육조,
의정부,
사헌부,
사간원, 경연 등이 자리잡고 있던 조선에서 서양의 정치 체제를 그대로 소개한다 해도 공화제 외에 관심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임금이 명령하는 체제>는 조선이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하기 위해서 왕이 명령하는 체제를 추가한 것이며 귀족정과의 결합도 마찬가지다.
[1] 당시에는 국한문 혼용체의 사용이 드물었다.[2] 전종익, 근대주권개념의 수용과 전개,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6, 20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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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견문(西遊見聞)/유길준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한 겨레의 국민들이 일정한 토치를 차지하여 살면서 언어, 법률, 정치, 습속과 역사를 같이 하며, 또 같은 임금과 정부를 섬김으로써 이해 관계와 세상을 잘 다스림과 세상이 어지러움을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토지가 넓은 지 좁은지, 그리고 국민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서 산천을 차지하면서 작은 나라나 큰 나라나 별이나 바둑알처럼 흩어지 있다.
국가의 개념과 성립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되는 원리에 따라서 생각해 보면 피차의 구별이 없지만 나라가 나라되는 큰 도리로 따져 보면 지나 라와 우리 나라의 구별이 있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들의 회합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나라가 세워 잠에 따라서 터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나라가 비록 사람을 따라서 그 이름을 얻는다고 하지만, 사람도 나라가 없으면 터전 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름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이치를 밝히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자. 사람이 비 욱 가족의 성씨와 항렬자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자기 한 몸의 사사로운 이름에 지나지 않고 어디서나 두루 통하는 공적인 이름은 아니다. 가령, 우리 조선 사람으로 말한다면 '조선인'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중대하고 공적인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
살고
그러므로 우리 조선 사람이 된 자들은 그 이름이 아무개든지, 또 그 자신의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이처럼 중대한 조선 인이라고 불리는 공적인 이름을 다같이 지니고, 강약의 구분이 없게 된다. 그 목숨은 빼앗을 수 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름은 빼앗을 수 없고, 그 생업은 못 하게 할 수 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조선인'이라는 공명의 중요성
외국인을 대할 때에는 청심을 단장히 하고 몸가짐을 의젓하게 하여 조선인이라는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만약, 조그 만 수치를 남기거나 모욕을 당하여 조선인이라는 이름을 훼손시키면, 그 한 사람의 부끄러움에 그치지 않고 온 나라의 최
인 이 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선민의 도리
(하락)
작자: 유길준
형식 : 중수필, 기행 수원(해외 견문록)
문체: 국한문 혼용체, 한주국종체, 강건체
성격: 계몽적, 설명적, 논리적
특징: 기행문 형식을 통해 국민 의식의 각성을 위한 계몽적 내용을 서술하고, 단순 견문기가 아닌 서적을 상세히 살피고
검토하여 증거로 삼은 이론 서적의 성격이 짙음.
제재 : 국가, 국민
주제: 국가에 대한 국민적 책임조선인이라는 공적인 이름의 직책을 지키자.
출전: 서유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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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해외 견문록이고, 언문 일치의 새로운 문체 형성에 기여하였고, 갑오개혁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하고 근대화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구성 : 기서 결의 3단 구성
기: 국가와 국민의 관계
서: 국민의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
결: 조선의 명예를 지키자는 결의 도서 및 문학
부: 무
거유: 점거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복사: 좇아서 섬김
치란 혼란에 빠진 세상을 잘 다스림
인의 안되 피차의 구별이 부(하나: 만민평등 사상
공수: 함께 받음. 함께 당항
할거 : 토지 등을 분할하여 점거함
기: 바둑
사구(히)면 생각하면
추구: 이치를 미루어 생각하여 끝까지 규명해 냄.
거아: 저와 나.
우 동일(한) 제왕과 공수 하는) 자니 : 또 같은 임금과 정부를 섬겨 이해와 세상을 잘 다스림을 함께하는 것이니
국은 인의 취합홈을 성훈이라 나라는 백성들이 모인 것을 인연으로 그 이름이 성립되고, 백성은 나라가 건설된 것에 의존하여 그 바탕이 이루어진다.
석명: 분석하여 밝힘.
논병 논의의 거리
자용 : 마음대로 씀,
보동 누구나 다 같이
가찰: 빼앗을 수 있음
난달 빼앗기 어려움
가 훼손할 수 있음
난: 훼손키 어려움
휴손: 이지러지고 상하게 함.
육수 지키고자 함.
수욕: 수치와 육
==
이: 끼침
시이로 아배의 조선인 차명은 난탈이요 : 조선인이라는 공제 칭호의 절대성을 말한 것, 즉, 생명은 빼앗을 수 있어도 조선인이라는 칭호는 빼앗기 어렵다.
만모 : 교만한 태도로 남을 업신 여김.
역개여차 역시 모두 이와 같음
영길이인: 영국인
시기: 여기에 기록함
대개 차도가 아 하국인이든지 역개여차: 대체로 이 도가 우리 조선인만이 홀로 그러한 것이 아니요, 천하의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또한 이와 같아.
여러번 시원 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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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나라가 외국에 문호(門戶)를 개방하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화기에 쓰여진 수필이다. 이 시 기는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열강들이 조선을 침탈하려던 시기였다. 이러한 격동과 위기의 상황에서 진정한 애국의 길 이 무엇인가를 이 글은 보여 주고 있다.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면서, 유길준은 전권 대신들을 수행하여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이곳 저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유럽 각국을 거쳐 귀국하게 된다. '서유 견문'은 이때의 견문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유길준은 개화파의 한 사람으로, '서유견문'에서 애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한편, 개화 의식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처해 가는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 운 국가관과 국민관을 제시한 이 글은, 서구의 문물을 접하면서 새롭게 눈을 뜬 개화기 지식인의 생각과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유견문'은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바를 섬세하고 진솔하게 드러낸 수필로서, 문학사적으로는 최초로 국한문 혼용체 (國漢文混用體)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글은 국한문 훈용체가 개화기 이후 주도적인 문체 로 자리잡는 데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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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견문(西遊見聞)
조선 말의 선각자 유길준(兪吉濬)이 1889년 탈고, 1895년 출판한 근대국정개혁서, 국한문혼용체로 556면, 갑오경장 기간 중인 1895년 일본의 교순사(交詢社)에서 간행, 현재 유길준전서편찬위원회에서 펴낸 ≪ 유길준전서≫ (일조각, 1971)전5권 중 제1권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단순한 서구기행문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 '모습을 보고 우리의 근대를 어떻게 건 설할 것인가를 정치 경제 법률 교육 문화 등 각 부문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근대화 방락서' 이라고 할 수 있다.
1888년 박영효가 지은 <조선국 내정에 관한 건백서> (≪일본외교문서 21권, 292-311면)에서 국정개혁 구상 을 밝히고 있지만 그 분량과 내용의 심도에서 ≪ 서유견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 서유견문≫은 한국 최 초의 체계적인 근대화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1882년 여름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으로 일본에 체류하던 중 구상되기 시작하였다. 당 시 그는 일본이 30년만에 부강을 이룬 원인이 서구의 제도와 법규를 모방한 것이 십중팔구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에 서구의 진상을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조선정부가 구미제국과 조약을 맺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미 각국등 바깥 세상에 대한 견식을 넓힌 목적으로 책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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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그는 틈틈이 써둔 원고 외에 각종 외국서적을 번역해 인용 또는 참고하였다. 특히 ≪ 서양사정과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거나 비슷한 점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이를 가장 많이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포셋(Henry Fawcett)의 ≪ 부국책≫과 휘튼(Henry Wheaton)의 ≪ 만국공법≫ 등도 인용한 흔적이 보인다.
≪서유견문≫의 원고는 1889년 늦봄에 완성되었으나 여전히 연금 상태라 출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1894년 갑오경 장 기간 중 일본에 보병사의 일원으로 가면서 원고를 가져가 후쿠자와가 설립한 교순사에서 발간하였다(1895년 4월25 일).
그는 1000부의 책을 찍어 판매하지 않고 정부고관을 비롯한 당시의 유력자들에게 기증함으로써 자신이 주도하던 갑오개 혁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홍보하는데 주력하였다.
전 20편으로 이루어진 서유견문>은 크게 서론, 본론, 결론, 그리고 보론의 네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서론은 제1 - 2편으로 세계의 지리를 기술하고 있다.
세계의 산강·바다의 높이나 깊이 등을 포함해 지나치게 상세하리만큼 세계의 지리를 다루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 세계는 넓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웅변으로 읽혀진다. 개화 또는 근대화의 출발은 전통의 중국 중심 세계 관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본론은 제3편 <방국의 권리> 부터 14편 <상고의 대도> 까지 이다. 여기에서는 국제관계·정치체제인민의 권 리법률·교육·상업·조세화폐·군대 종교학술 등 각 분야의 근대적 개혁의 내용을 상술하고 있다.
결론은 제14편 뒷부분 <개화의 등급> 이다. 여기에서는 개화의 개념과 그 방법론을 논하고 있다. 이 글은 당초에는 없 었는데, 출판 직전, 갑오경장을 주도하는 시점에서 개혁의 구체적인 방법과 의지를 담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제15편부터 제20편까지는 보론으로, 서양의 풍물을 소개하는 기행문이다. 혼례 장례 의복과 음식 오락 병원·교 도소·박람회·증기차 등과 서양 대도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은 거의 전부 후쿠자와의 서양사정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서유견문에 나타난 유길준의 '근대화론'의 특징은 전통의 장점을 살리고 전통의 단점을 서구의 장점의 도입으로 보완하는 '취장보단(取長補短)'과 전통과 근대의 중용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교의 오론에 바탕한 윤리 외 에는 모두 변혁의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동도서기론'과 구분된다.
1896년 국왕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유길준이 일본에 망명함에 따라 ≪ 서유견문 역시 출간된 지 10개월도 채 안되어 자유롭게 유포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서유견문≫은 시의에 합당해 쓰일만한 서적으로 인 식되어 공립소학교 혹은 사립학교의 교과서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독립신문≫≪황성신문> 등에 원문 그대로 인용되거나 그 논지가 실리기도 했으며, 이승만, 안창호를 비롯 한 지식인 정치가 계몽운동가들에게도 탐독됨으로써 개화사상을 보급하고 개화운동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크게 기여하였 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해 한국의 문자생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기존의 한문 위 주의 문자생활이 일반인들에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 중심의 종속관계를 유지시키는 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 글인 한글 사용을 장려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의 자주자립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서유견문에는 중국의 연호가 아닌 조선의 개국연호를 쓰고 있다. 한글 보급을 확대하려는 그의 외 지는 나중에 최초의 국어문법책인 ≪ 조선문전 朝鮮文典≫·≪대한문전 大韓文典≫ (1909)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서유견문론(유영익, 한국사시민강좌 7, 일조각, 1990), 다시 읽는 서유견문(정용화, 동아시아비평 제3호, 1999), 서유견문의 종합적 검토(진단학보 89, 2000).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서 및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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