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 한명기 1999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4 | 한명기 | 알라딘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4
한명기 (지은이)역사비평사1999







책소개

한반도는 대륙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해양세력이 건너오는 '다리'이고, 해양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대륙 세력이 자신들을 겨누는 '칼끝'이라고 한다. 21세기를 앞둔 동북아 국제질서 속에서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변함이 없고, 주변 열강과의 관계 속에서 제대로 대응하려면 외교적 능력을 키워야만 할 것이며 내부가 건실하지 않으면 외교능력이 성숙하길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역시나 숨가쁘고도 엄혹했던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한 선조말-광해군-인조대를 주 대상 시기로 삼아 경제적.문화적.외교적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재조지은(再造之恩, 나라를 다시 일으켜준 은혜)'라는 키워드를 갖고 구체적으로 살핀 연구 성과물이다.

이 책에서는 명나라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가장 집약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던 임진왜란 시기부터 17세기 초반 명이 망할 무렵까지를 대상으로 삼아 17세기의 중국, 특히 명의 한반도 정책과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고찰해보고자 했다.

이 시기 조선과 명의 관계에서는 양국관계를 규정지어온 전통적인 기제, 즉 '책봉-조공 체제' 이외에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참전을 계기로 형성된 '재조지은'이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 '재조지은'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형성되어, 전쟁 이후 선조말-광해군-인조대에는 후금의 도전으로 곤경에 처한 명이 조선에 대해 군사적.사회경제적 원조를 요구하는 배경이 되었다.

'재조지은에 보답해야 한다'는 명분을 걸고 명이 내세운 각종 요구에 대한 조선의 반응은, 선조-광해군-인조대 조선의 내부 사정과 맞물려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바로 '재조지은'에 주목하면서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까지의 대명관계의 실상과 추이를 탐색한다.


목차


제1부 선조대 후반 임진왜란과 대명관계

제1장 명군 참전과 정치적 영향

1. 명군 참전의 배경과 그를 둘러싼 조선과의 갈등
2. 조선 주권의 침해
3. '재조지은'의 형성과 전개

제2장 명군 참전과 경제적 영향

1. 조선의 은(銀) 수요 증대와 명나라 은의 유입
2. 명나라 상인들의 유입과 활동
3. 은광개발과 중상론의 강조

제3장 명군 참전과 사회.문화적 영향

1. 명군 주둔에 따른 민폐와 사회상
2. 명 문물의 유입과 조선의 대응


제2부 광해군대의 대명관계

제1장 광해군 초.중반 조명 사이의 쟁점

1. 광해군 책봉문제와 정치적 갈등
2. 은(銀) 문제와 관련된 경제적 갈등

제2장 대후금 출병 문제와 대명관계

1. 광해군대의 대후금 정책
2. 원병 파견을 둘러싼 명과의 갈등
3. '심하전투' 패전의 문제들

제3장 '심하전투' 패전 이후의 대명관계

1. 명의 조선 평가와 재징병 요구
2. 조선의 외교적 대응
3. 출병과 출병 논의가 조선에 미친 영향


제3부 인조반정과 대명관계의 추이

제1장 외교정책의 측면에서 본 인조반정 발생의 배경

1. 광해군대 대외정책에 대한 기존 평가의 문제점
2. 광해군대 대외정책에 대한 재평가 : 대외정책의 명암

제2장 인조반정 승인을 둘러싼 명과의 갈등

1. 명의 인조반정 인식과 조선의 대응
2. 인조책봉 논의와 명의 의도

제3장 인조반정 이후 병자호란 이전의 대명관계

1. 인조반정 직후 대명.대후금 관계의 실상
2. '모문룡 문제'와 대명관계

결 론

참고문헌
Abstract
=======================
저자 및 역자소개
한명기 (지은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 첫 책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로 2014년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접기

최근작 : <원치 않은 오랑캐와의 만남과 전쟁>,<최명길 평전>,<광해군 (리커버 특별판.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총 40종 (모두보기)
한명기(지은이)의 말
17세기 이후 명이 망할 때까지 한중관계의 분수령이 된 것은 임진왜란과 그 전쟁에 명이 참전했던 사실이었다. 명은, 명군의 참전과 장기 주둔을 통해 조선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거니와 이후 조선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미국과 주한미군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연상시킬 만큼 큰 것이었다. 왜란 이후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명군이 참전하여 원조한 것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은혜(再造之恩)'로 여겨 숭앙해왔거니와 당시 한반도에서 명군의 활동이 과연 '재조지은'이라 부를 만한 것인지를 살폈다. 명군 참전이 조선에 남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구매자 (9)




임진왜란의 전쟁진행 그 상황자체보다는 임진왜란이 조선과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동네오빠 2011-12-17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외교에 안목은 있었으나, 군주로서 책임감은 없던 선조. ‘지는 해‘ 명 제국과 ‘떠오르는 해‘ 후금(청 제국) 사이에서 고군분투했지만, 내치를 뒷받침하지 않는 외교란 허깨비임을 보여 준 광해군. 요란스럽게 대의명분을 내세웠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외교 정책으로 전쟁을 막지 못한 인조.
解明 2019-01-19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현재 미완독 상황이지만, 임진왜란과 관련해서 이만한 책을 찾기 힘들다고 봅니다. 일독을 강력 추천합니다.
windwave21 2012-03-24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임진왜란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권하고 싶다. 전쟁이 조선에 남긴 후유증과 함께 당시 조명관계의 실상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 전문서인데도 대단히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다솔 2013-01-18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과거를 통하여 교훈을 얻는다는 관점에서본다면 이글을 통하여 위기의 동아시아를 진단할수있을것이다
whpark35 2013-11-19 공감 (0) 댓글 (0)

========================
마이리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을 중심으로 보는 조선이란 왜란과 호란에 따른 전쟁의 역사다. 조선 군주 중에서 전쟁의 핵심 가운데 있었던 자로써 광해군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에 읽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에서 다소 여러 가지 생각이 변화되기도 했다. 우선 선조가 참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군주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외교 전략이 있었다는 점이다. 광해군이 가진 독특한 외교능력은 선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고 광해군은 그것을 조금 더 발전시켜 상당히 교묘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이란 서적을 보았다. 그가 폭군인지 혹은 명군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그러하나, 적어도 그를 한 가지로 본다는 것은 엄청난 무리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번에 한명기 교수는 나름 광해군을 평가했다. 외치적인 부분에서 완벽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전략은 현실적 상황을 제대로 간파한 점이고, 내치적으로 명에 대한 군사원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원인이 조선의 궁핍한 사정이라 한다. 그렇다면 굳이 왜란으로 소실된 궁을 복원해야할 이유는 없고, 궁궐 내 수많은 은을 몰래 매장할 필요도 없다.

결국 그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를 세우기 위해 혹은 자신의 왕권을 위해 매우 논리정연하고 날카로운 임금이 되었다. 그런다고 하여 광해군만 욕만 할 수 없다. 광해군의 의외의 모습은 그가 대북의 권력자들을 손을 잡고 있었지만, 대북의 영수 이이첨과 마지막에 갈등이 있었던 점, 남인과 서인 등 다른 파벌과 같이 정국을 운영하려 했던 점이다. 조선시대 남인과 서인의 갈등은 역시 정여립 옥사부터 시작된다. 정여립 옥사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때 남인의 영수로 있었던 이발은 정여립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발의 80세 노모와 10세의 어린 아이까지 모진 고문으로 옥사했다(그래서 아버지가 왜 송강 정철을 나쁘다고 말하는지 이해간다).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선조는 정철을 속아 넘어가주었는지 아니면 선조가 그런 찬스를 노린 것인지를 생각하면, 기축옥사는 매우 무서운 일이다. 선조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당파전쟁의 피 냄새가 진동했고, 조광조를 비롯한 선비를 죽임과 낙향을 만든 기묘사화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부분은 임진왜란을 시작하여 정묘호란의 열쇠로 이어진다. 역사란 항상 한 가지로 볼 수 없고, 다변적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적인 연구도서를 보면 이른바 변증법적인 관계성이 보인다. 어느 누군가 반응을 보이면 다른 누군가의 반응에 이르고, 그것이 하나의 갈등으로 누적되면, 피할 수 없는 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학봉 김성일이 남인으로 일본에 갈 때, 그와 같이 간 인물 간의 갈등이 조정의 보고에서 희비가 엇갈리며, 율곡 이이의 있지도 않은 10만 양병설이 김장생에 의해 만들어진다. 서애 유성룡은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막상 임진왜란 시 명나라 장군이 와서 양명학을 조정에 이야기하자 선조는 주자 성리학에만 치우쳐 이야기한다. 갈등과 아이러니는 결국 또 다른 갈등과 폭발로 이어지고, 결국에 참극을 일으키는 열쇠가 된다. 이런 내정의 문제는 외교적인 문제로 확장되고, 전쟁 중에는 서로 손발이 맞지 않을 수가 있다. 동인(남인과 북인)과 서인 계열 장수가 서로 갈리고, 동인(남인) 계열의 지지를 받던 이순신은 서인의 지지를 받던 원균에 비해 혹독한 대우를 받는다.

사실 임진왜란 의병장 중에 곽재우 같은 경우 북인 계열이고, 충무공 이순신은 남인이었으나 사실 공훈과 비교하여 높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유성룡이 조정에서 내려올 때 이순신의 서거라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왜국과의 전쟁이기도 하나, 사실 내부적으로 정치권력의 다툼도 보였다. 그것의 시발점이 기축옥사이고, 광해군 시대에도 은근 잠재하였으며, 효종의 죽음에 이르러 크게 폭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적 관계, 특히 중국과의 관계성은 매우 재미있다. 이미 한명기 교수의 책에서 명나라가 원군을 보낼 때 우리나라의 실정에 무척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눈에 확 온다.

한국은 당시 베나 포 같은 옷을 만드는 원자재로 화폐가치를 했다면, 중국은 은을 이용하여 무역을 하였다. 은은 중국만 아니라 일본, 포르투갈, 세계 다른 국가하고 무역하기가 편했으며, 은 자체가 녹이 슬지 않는 특성에서 은화로 결재하기가 편했다. 중국의 병사월급은 은으로 주고, 군량의 구매와 죽은 병사의 장례조차 은으로 처리한다. 자본주의시대 이전이긴 해도 자본주의 경제구조 이전의 중상주의적 가치는 이미 실현된 셈이다. 은의 이용은 조선에서 용이하지 않고, 은을 받기를 원하는 중국사신에게는 조선은 어떻게든 흔들어야 했던 존재다. 선조가 급사하고 광해군을 왕위를 올리는데, 많은 은을 뇌물로 받쳐야 했고, 인조반정 후에도 인조의 책봉을 위해 또 다시 은을 바쳐야 했다.

은을 두고 뇌물로 활용하는 점에서 지나친 은의 징발은 국가의 존속을 어렵게 했고, 명나라 사신은 은을 찾기 위해 민가를 약탈까지 했다. 일본군이 지나면 큰 빗이 지나가도, 명군이 지나가면 참빗이 지나간다는 말처럼 은의 약탈은 조선으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만들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관계성에서 조선에 놓인 상황은 참으로 기묘했다. 물론 광해군은 양쪽으로 외교를 보내는 것으로 유혈사태를 막으려 했지만, 막상 그것이 불만인 세력이 광해군을 뒤집자 자신들조차 그것에 얽매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명이 임진왜란을 구해준 재조지은, 8년의 전쟁을 8년 후부터 명나라가 망하는 그날까지 도리를 조선에게 말했다. 모문룡이 와서 행패부리고, 하다못해 명나라에서 도망친 유민까지 설쳐대며, 심지어 그들의 위세를 믿고 약탈을 일삼은 조선인들이 있다고 하니 정말 한숨만이 나온다. 역사의 기로에서 400년이 지난 일들이 현실에 무슨 일이라고 하나, 모문룡의 행동과 거기에 대한 모택동의 발언이 의구심이 든다. 모택동이 모(毛)를 가진 이유로 한국전쟁 시 중공군을 내보낸 이유가 임진왜란까지 이어지니 말이다.

모름지기 실리적인 이익도 중요하나, 실리에 대한 명분은 훨씬 중요하다. 실리만 추구할 경우 국가가 망하는 경우도 많고, 명분만 추구하도 망하는 경우도 많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정말 그렇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천민을 양인으로 만들고, 우수한 무예가를 장수로 기용하는데, 많은 세력들이 반대했다. 중국은 재상만 가정을 거느리는데, 왜 조선은 너나 나나 모두 종을 부리는 것에 비판했다. 하인으로 메여 있으면 군적에 올릴 수 없고, 필요한 군사력을 보충이 불가능하다. 사대부들은 무관에 응해도 병역군무를 기피했다. 오늘날 고위 관료들이 하는 행동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반정 이전과 반정이후에 대한 모습을 보면 그 구조가 특이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조광조의 죽음이 중종반정 공신들(진짜가 아닌 자까지)의 비리와 부패를 지적한 점, 서애 유성룡 역시 양반의 특권을 축소하려 했던 점도 눈에 보인다. 연산군 시절 폭군 옆에서 권력을 누리는 자는 없어져도, 그가 누린 권력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이양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백성의 삶이 나아진 것도 아니고, 광해군이 물러나도 나아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못할 경우도 있었다. 외교적 관계성에서 전쟁으로 인한 여파와 그에 대한 대책과 정책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건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득권을 지닌 자와 거기에 동조하는 자들의 문제다. 겉으로 명에 대한 재조지은 말하던 이들이 막상 인조정권에선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명나라 멸망 후 청나라가 들어서자 겉으로 청나라를 몰아내자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오히려 그런 분노의 감정을 이용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적개심을 심어두어 자신들의 이권에 방해되지 않으려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바보 같은 한 사람의 말만 듣는다는 비판은 아마 이런 기류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성리학의 주자가 내세운 말 한 자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시기를 계속 놓치게 만든 셈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그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필요가 있고, 거기에 강홍립 도원수가 있었다. 강홍립의 항복은 대부분 광해군의 밀약에 의한 것이라 해도, 막상 그가 출천 당시 만 명이 넘은 병사 중에 9천 명이 사망한 점에서 그게 과연 약속된 항복이란 점은 잘못되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잘 집어주었다. 자기 혼자 살고자 해서 수하를 몰살시키는 것은 몰상식하고, 그런 몰상식한 자가 책임감을 느꼈다면 계속 광해군에게 서신을 보낼 이유도 없다. 강홍립 장군 진영에 양반 출신 무관들은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같은 양반으로서 자신의 수하무관을 죽는 것을 원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못한다.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전해온다. 이기지 못한 자들이 기록을 남길 수 없거나 혹은 이길 수 없었기에 변방에서 원한에 사무친 기록을 남긴다. 그래서 후대의 역사에서 다시 재조명되어 그 당시의 사료와 주변 국가의 사료까지 찾아 다시 재조립한다. 임진왜란이 대부분 많은 한국인들은 이순신의 활약만 있다고 보겠지만, 그 뒤로는 중국과의 외교문제가 엄청나게 많이 작용한 것을 잘 몰랐을 것이다. 중국이 임진왜란 때 도와준 것은 맞으나, 실제 그것이 제대로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조금 어렵다.

선조는 의병장의 활약과 이순신의 승전을 좋은 표정을 받아들이면서 악의적인 감정을 품었다. 주상은 도망쳤으나 남은 재야신료와 자신에 의해 반죽음에 놓인 명장의 위세에 많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명군에 의지하던 선조는 결국 재조지은을 강조함으로써 변방에서 목숨을 버린 의사자를 버린 채 자신의 안위를 챙기고, 위엄을 보이려 한 셈이다. 임진왜란 공신에서 사실 그보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잃었다. 그들의 죽음이 인정되지 못하고, 단지 정치적 이익에서 중국의 명군에 의지하려던 그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 현실은 무엇인가? 광해군은 자신의 궁궐을 짓는데 예산이 부족한 것을 걱정했으나, 그가 명분으로 내세운 전쟁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전쟁이 나면 많은 인명이 손상당하고, 거기에 부족한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전쟁 후로 부족한 인구를 어떻게 메울지, 그리고 사람들의 식량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생각하면 골치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군사 병력의 부족사태로 방위산업체 요원이나 혹은 해외 이중국적을 가진 남성을 현역으로 복무하고자 한다. 그런데 계속 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공익을 고려하여 삶을 살아야 하나 오히려 개인의 이기심을 추구하며,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다.

부조리에 대한 정리에서 분명 모순을 들추어 내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내세우나, 현실에서 반응을 엄청난 반발이 쏟아진다.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 하지만 일반의지를 대신한 사사로운 이기심은 하나의 공공성을 이루어 전체의지로 대변된다. 역사의 교훈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한다. 주변에 강대국과 38선을 경계로 군사가 대적하고 있는 상황에 외교 전략은 한국의 연속적 유지를 위한 방편이다.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되나, 한편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것은 한명기 교수의 서적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21세기가 도래하여 우리는 과연 선진국인가? 경제적 규모로 그 거품의 화려함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거품이 터지면 병속에 음료수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혹은 상해서 버려야 하는지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 접기
만화애니비평 2016-05-30 공감(6) 댓글(0)
Thanks to
공감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꿰뚫어 보기

저자의 전작인 <광해군>을 퍽 재밌게 읽은지라 도서관에서 또다른 저작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집어 들었다.
일단 이 책은 자신의 전공인 만큼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인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당시의 조선 사정, 명과 청의 관계 등을 여러 저작들을 참조하여 상당히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친다.
꽤 수준이 높은 책인데도 내용 자체는 쉽고 쉽게 읽힌다.
가끔 잘 안 쓰는 한자어들이 등장해 사전을 찾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이런 부분들은 저자가 따로 각주를 달아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내용 자체가 익히 알려진 흥미진진한 사건이라 그런지 마치 소설책 읽듯 막힘없이 한 번에 쭉 읽었다.
무엇보다 명나라 쪽 시선에서 조선을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명에도 임진왜란은 큰 영향을 끼쳤던 탓에 꽤나 많은 저작들이 있었다.
명측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적어도 임진왜란이 이긴 전쟁이었네, 하는 소리는 못할 것 같다.
전작인 <광해군>에서도 저자는 근래에 높히 평가받고 있는 중립외교가 실상 내치로 이어지지 않아 인조반정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광해군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이덕일이 책을 보면 당시 신민들은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반정이 일어나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인조반정을 일방적으로 매도한다.
(이런 몰아가기 논법이 이덕일의 특징이다. 혜경궁 홍씨를 마치 남편을 죽인 권모술수가 식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광해군이 중립외교에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후금의 상황이 조선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관망하는 자세로 두고 봤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조선 역시 비록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우긴 했으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기까지 집권자들의 기본적인 외교 방침은 적당한 화친 유지였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묘호란 당시 침입 다음날 벌써 화친 얘기가 나왔고, 병자호란으로 아예 조선에게 신복을 요구하게 됐을 때 과연 광해군 조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저자는 광해군이 실리 외교를 취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후금을 오랑캐로 인식했고 명 조정의 파병 요구에 응해 군사 만 오천명을 동원했음을 지적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인조의 서인 정권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선조가 직접 전란을 체험하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군사적 식견을 쌓았다고 말한다.
선조나 조선 조정이 명군을 재조지은의 천군으로 인식한 것은, 민심의 이반이나 의병 활동으로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어쩌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만약 명군이 파견이 없었을 경우 적어도 선조의 왕권 유지나 조선 왕조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득권층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명군의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선조는 명군의 오만방자함과 기만술을 끝까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또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도 국난을 맞아 국가를 여전히 유지할 만큼 기반이 단단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조 때부터 여진족에 대한 간첩 활동은 중시됐고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평가한다.
결국 명에 대한 사대나 재조지은, 친명배금 정책은 명분이란 것을 조선 조정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실제적인 관리들이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재야 유림들의 명분론이 국가의 발목을 잡은 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명분론의 승기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국가의 정책에 딴지를 거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조선이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주자학을 교조화 시킨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명은 양명학이 위세를 떨치고 포르투칼의 은이 유입되어 상품의 유통이 활발했다.
조선에 파병을 왔으나 상점이 없고 화폐가 유통되지 않아 명의 상인들이 군대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명의 관리들은 주자학이 이미 한물 간 학문이고, 조선은 문약하여 국방에 힘쓰지 않는다고 질책했으며 상거래가 전무하다고 조선의 후진성에 대해 여러 차례 충고한다.
아마도 명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분위기나 관리들의 태도가 무척 답답했을 것 같다.
제일 인상깊던 대목은, 조선이 고구려 때 수당을 위협할 만큼 강국이었는데 오늘날 어찌 이리 몰락했냐고 놀랐다는 부분이었다.
적어도 고구려는 중국 문화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성을 가지고 국방력도 뛰어난 독립된 나라였음을 중국인들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회가 정체되고 하나의 학문이 교조화 되어 나머지는 모두 이단시 되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국가를 퇴보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모문룡이라는 명의 장수에게 조선 조정이 휘둘린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과연 책봉이라는 문제가 혹은 명의 승인을 받는 문제가 국가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일개 장수에게 기만을 당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을까?
결국은 광해군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펴다가 쫓겨난 것이고 선조나 인조 역시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권위 확보를 위해 명에서 목을 맸다.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유폐시키면서 왕위에 오른 태종 같은 사람도 있는데 광해군이나 인조가 왜 그렇게 명의 승인에 전전긍긍 했는지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태종처럼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그들의 정치력이 아쉬울 뿐이고 무엇보다 명분론에 함몰되어 명군의 끔찍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자의 나라, 재조지은의 천군이라고 그들의 승인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았던 양반들의 좁은 식견이 안타깝다.
어쩌면 현재 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종속성도 후손들에게 한심하다고 비판받을지 모르겠다.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까지 동아시아의 격동기를 밀도있게 분석한 꽤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서술 솜씨가 뛰어나 전문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읽기 쉽게 문장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 접기
marine 2008-12-16 공감(3) 댓글(0)
Thanks to
공감



˝재조지은˝을 통해 바라본 오늘의 현실



최근 미국 트럼프정부의 무리한 방위비인상협상소식과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시위벌이는 "태극기부대"를 보며 이책이 다시 읽고싶어졌다.책표지를 보니 2010년 2월에 읽었었다.

임진왜란으로 존망의 지경에 이르렀던 조선의 처지와 "순망치한"의 처지가 일치하여 조선으로의 파병이 결정되었고,이후 평양성전투의 승리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의 끝나면서 조선의 정권지배층과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재조지은"의 마음이 싹튼것과 한국전쟁시 미군의 참전으로 공산화를 막았다는 논리로 해방후 70년가까이를 조선과 명의"책봉-조공"의 사대외교로 살아가는 현실이 비슷하고,당시 명나라를 지금으로 미국으로,당시 청나라를 지금의 중국으로 치환하면 4백년가까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그때와 많이 닮았다.

이책은 선조-광해군-인조대까지의 대중국관계를 중심으로 다루는데 기본적인 조선의 외교전략은 명에 대한 사대와 후금(청)에 대한 기미책이 일관된다.물론 광해군때 기미책이 더욱활발했고,인조반정이후 사대에 비중이 높아졌지만 기본 외교전략은 동일했다.

외국군대의 힘을 빌어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다 보면 그이후 종속관계는 깊어질수 밖에 없다.당시 명나라는 말기적증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나라를 구해주었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오가는 사신들의 막대한 은징색,후금을 치기위한 병력동원요구,군량요구등은 전쟁을 겪고난지 얼마안되어 피폐해진 조선의 현실에서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나마 광해군때에는 후대에 "중립외교"라 칭하는 전략을 사용하여 교묘한 줄타기외교로 지탱하였으나 인조반정이후 명에 기운 사대외교는 결국 정묘,병자호란을 불러왔고,정권지배층은 굴욕을 겪어야했고,백성은 참화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과거을 반추하여 현실에 적용하여 본다면 우리는 광해군대의 "중립외교"정책이 필요하다.한국전쟁당시의 "은혜"에 얽매이지 말고 강대국사이에 끼인 현실과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성까지 고려한다면 더더구나 현실적인 외교정책이 필요하다.그나마 현정권은 이에 부응하는 편이다,

외교정책에서 뛰어났던 광해군이 반정으로 몰락한것은 내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취약한 왕권을 강화하는데 집착하여 무리한 궁궐공사와 반대파 숙청에 몰두한 나머지 지지기반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정권을 잃은것이다.

저자 한명기 선생의 새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최명길평전".임진/병자 시기의 믿고볼수있는 저자이기에 읽어볼 생각이다.




- 접기
유토피아 2019-12-14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재미있는 학술 논문.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읽게 된 책. 학교 국사선생님께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다.' 란 표현을 써 놀라셨던 기억이 난다. 한명기씨는 책 뿐만 아니라 KBS TV특강, 라디오 한국사등 여러강의를 통해 그의 연구분야에 대해 알렸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있고 대중매체를 많이 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그의 강의를 들어보았을것이다.

이책은 선조대부터의 광해군을 거친 한반도의 정치,경제를 심도있게 써 내렸다. 학술논문 답게 탄탄한 내용과 저자의 해석. 또한 청산유수한 같은 글의 흐름에 논문이라곤 생각되어지지 않을 만큼 쉽고 유익하다.

이책이 너무 두껍다고 생각하거나, 어렵다고 생각되어 지는 사람들은 그의 저서 중 하나인 <광해군>을 읽어 보아도 괜찮을 듯 싶다. 조선시대 폭군으로 알려진 광해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것이다. 그의 뛰어났던 외교정책이라든지... 이긴자들이 소유한 역사의 단면이라든지...


- 접기
아마데우스 2003-08-10 공감(2) 댓글(0)




현재와 과거

흔히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들 한다. 그럼 과거의 역사는 미래일까 아니면 단순한 과거일 뿐인가? 작가는 과거의 일어난일에 대하여 심층적인 고증과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여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에 대하여 다각적인 분석이 훌륭하고 새로운 시각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임진왜란으로 인한 당시 상황과 사회 전반으로 끼치게된 영향을 자세히 나옵니다. 부족한 점이라면 약간 산만하고 정리가 약간 부족한명이 있으며, 유사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읍니다.
부탄가스 2005-06-28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