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0

조상의 눈 아래에서 | 마르티나 도이힐러 2015

[전자책] 조상의 눈 아래에서 | 마르티나 도이힐러 | 알라딘

[eBook] 조상의 눈 아래에서 -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은이),문옥표,김우영 (옮긴이)너머북스2023-
원제 :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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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난 50년 동안의 열정을 다한 한국사 공부를 집대성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 신라시대 초기에 생겨나 가장 대표적인 사회 단위로 뿌리내린 한국 고유의 출계집단(씨족 또는 족, 겨레라 불리는)에 초점을 두고,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한국 출계집단의 역사를 다룬다.

도이힐러 교수는 신유학의 변혁능력을 강조한 기존 한국사의 관점은 토착적인 친족 이데올로기의 지속성을 간과했다고 한다.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선택하여 그들이 만들고 다진 촘촘하게 짜인 사회구성을 들여다보고,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목차


지도와 그림 목록
머리말

서론: 친족, 신분, 지역성

1부| 한국사회의 토대
서언

1장 신라와 고려의 토착적 출계집단
신라의 토착적 출계집단 |고려 초 건국 엘리트층의 형성 |과거제도: 중앙집권화의 도구 |고려 전기의 저명한 출계집단들 |고려 전기 귀족층의 성격 |고려 후기의 엘리트 출계집단: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기 |고려 후기 엘리트의 면면

2장 정체성의 위기: 새 왕조의 모험
실패한 개혁 노력: 변화의 적 |권문: 고려 후기의 악당 |신유학자: 국가 부흥의 이론적 선도자 |조선 초기의 출계집단 |세족 엘리트층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새로운 관료적 질서 |권력경쟁: 귀족의 과두정치 대 왕의 독재

3장 신유학의 도전
신유학에 대한 양면적 접근 |과거제 개혁과 경연 |도학 이상주의의 발전 |사림의 부상 |한국 ‘도통’의 구성

2부| 지방의 재구성
서언

4장 지방의 재점령: 재지 엘리트 출계집단의 형성
지역적 배경 |초기 엘리트의 형성: 안동과 남원의 토착 출계집단 |이주와 초창기의 선구적 정착자들 |공동체의 강화를 통한 지역의 안정화

5장 조선 중기 재지 엘리트 세력의 공고화: 사회적 차원
안동의 재지 엘리트 |남원의 재지 엘리트 |적절한 혼인망의 구축 |엘리트와 서자

6장 조선 중기 재지 엘리트 세력의 공고화: 경제적 차원
경제적 기반의 확립 |노비: 도처에 편재한 사족 엘리트의 ‘수족’ |공동체적 노력을 통한 안동의 지역적 발전 |시대별 경제적 전략: 유산의 관리 |안동과 남원의 토지와 노비: 비교

3부| 유학: 학문과 실천
서언

7장 유학자로서의 사족 엘리트
안동의 초창기 사림 |전라도의 초창기 유학 |안동의 관학과 사학 |퇴계의 제자가 된 사족의 자손 |학문과 과거: 유생들의 딜레마 |처사: 초야의 유학자 |경상도 남부의 처사: 남명 조식 |안동 최초의 서원 설립 |퇴계의 지적 유산 전승을 둘러싼 갈등

8장 의례적 실천과 재지 종족의 초기 형성
관습적인 상례와 제례 |주희의 의례 개념에 대한 한국적 이해 |종법의 초기 신봉자들 |오래된 종교적 관행과의 경합 |개혁된 의례: 엘리트 문화의 발현 |묘제집단의 개혁 |조상묘의 재발견과 묘지의 재배열 |정체성과 초기의 족보 기록 방식 |의례의 혁신과 사회적 변화

9장 공동체의 계층화와 지역사회의 지도력
공동체적 관계의 실천: 동계 |엘리트 신분의 각인: 향안 |안동의 향안 |지배의 규범: 향규 |유향소 |유향소 대 국가 |공동체의 방위: 임진왜란 |안동의 전후 복구 |전후의 개조: 새로운 향안과 향규 |도덕의 회복: 향약의 개정 |남원의 전쟁피해 |17세기의 문턱에 선 재지 사족

4부| 분열과 결속
서언

10장 중앙과 지방: 이해의 상충
중앙과 지방 사이의 점증하는 격차 |안동의 사례 |남원의 사례 |지방에서의 정치적 대결 |안동의 사례 |남원의 사례 |국가의 향촌 침투

11장 종족제도의 성숙: 정체성과 지역성
승중자의 입지 강화 |조상을 모시는 삶 |특이한 의례적 관행 |유교적 원리에 도전한 서자 |부계제의 안전장치: 친족 결사체로서의 문중 |성숙한 재지 종족조직 |지방화와 동성마을의 발달 |정체성과 출계의 역사 |정체성의 상실과 회복: 드문 이야기 |존경의 표지: 친족의 통합요인

12장 학문과 정치: 정통성을 둘러싼 경쟁
퇴계 사후의 지적 재편 |사족의 보루: 안동의 서원들 |붕당의 이해에 매몰된 유교의 도 |붕당의 갈등과 딜레마 |전라도의 사례 |영남 내부의 불화와 세력경쟁 |안동과 1728년 이인좌의 난 |영조 치하의 영남: 깨어진 화해의 희망 |노론 침투 압력하의 영남 남인 |18세기 후반의 영남

5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서언

13장 안정 속의 변화: 사족 신분의 유지
신분 유지를 위한 농업책 |농촌공동체 생활의 에토스 |선비의 ‘경제적 형편’ |분쟁의 대상이 된 위토와 묘소 |엘리트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모임 |조상에게 바치는 기념물: 사우 건립과 문집 편찬 |신분의 배타성: 족보의 차원 |사족의 계층분화와 경쟁

14장 사족 우위의 종말?
안팎으로부터의 도전 |구세력 대 신세력: 당파적 동기로 인한 갈등 |압력집단으로 부상한 서얼 |사족의 보루에 침투한 서자 |전국적인 서자운동 |안동과 남원에서 재부상한 향리 |“통제 불능의 하급자들” |전통적 사회신분제의 종말

결론

부록 A: 문서자료
부록 B: 안동과 남원의 주요 출계집단의 세계도

참고자료
감사의 말
찾아보기: 본관별로 나열된 인명 | 기타 출계집단 | 인명, 지명, 용어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출계집단이 한국사의 주요 동인이었다는 명제는 저명한 사대부 양성지梁誠之(1415~1482)가 15세기 중엽에 올린 상소문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P. 77~78 ‘권’은 주로 ‘강력한’으로 번역 되지만, ‘상황을 저울질’하거나 ‘사태의 긴박성을 판단’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기회주의적’이라는 의미를 띨 수도 있다. 이 해석이 옳다면, 권문은 ‘강력한 가문’보다는 ‘기회주의적 가문’을 나타낸다. 물론 권문이라는 용어에는 ‘권력’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권문은 과거제의 틀 밖에서 왕의 은총을 입어 권세를 잡은 다음 협잡과 뇌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평민을 괴롭힌 사람들, 요컨대 부도덕한 행위로 전통적인 사회정치적·경제적 질서를 위협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통상적인 역사서는 대개 권문과 세족을 하나의 단어, 즉 권문세족으로 뭉뚱그려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면서 타락한 고려 후기의 기성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지만, 최근에 박용운은 그 두 용어가 당대의 문헌에서 합성어로 쓰인 적이 없고, 사실은 상이하게 구성된 두 집단, 즉 ‘기회주의적 가문’(권문)과 지체 높은 세습 엘리트층(세족)에 별도로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바 있다. 이 통찰은 고려 후기의 권력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족과 권문 사이의 경계선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두 용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1300년대 초반에 두 집단의 권력관계가 사상 최초로 역전되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접기
P. 256~257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종종 군신관계에 비유되었다. 이는 상호의존성을 암시함으로써 지배와 종속의 가혹한 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노비의 본분이고, 그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주인의 권한이다.” 그럼에도 주인이 노비의 신체, 노동, 재산, 자손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사실은 그 관계의 극심한 불평등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긴장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유학자의 인도적 양심에 위배되는 상황에 날마다 직면했던 일부 엘리트 노비주는 엄격함과 인자함을 적절히 안배하여 노비들을 다루는 방침을 마련했다.
노비의 관리는 당대의 수많은 ‘가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예컨대 본인이 노비주였던 이퇴계는 아들 준에게 권위만 내세우지 말고 자애심을 갖고 노비를 다루라고 충고했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노비들이 원한을 품지 않게 하라고, 또 “무지한 여자노비를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배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규율에 따르게 하라고 준에게 타일렀다. 하지만 “비협조적이고 방자한” 노비들이 가문을 망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불복종을 부추기지 말라고 훈계했다. 그는 노비란 천성적으로 완고하고 태만하므로 엄격하게 감독하지 않으면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비료를 주는 적기를 놓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게으른 노비 한 명을 골라 매질하면 다른 노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또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노비들이 수령의 관아에 자주 출입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서로 싸움질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분명히 퇴계는 노비들을 단호하면서도 관대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접기
P. 72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유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분의 위계와 신분의 배타성을 찬미하면서 운명의 붉은 실처럼 신라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를 관통했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이 이데올로기는 출생과 출계를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를 창출했고, 엘리트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엄청난 내구력을 부여했다. 접기 - 겨울호랑이



저자 및 역자소개
마르티나 도이힐러 (Martina Deuchler) (지은이)

1935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라이덴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 규장각에서 연구했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 대학(SOAS)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런던대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한국의 유교화과정: 신유학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서울: 너머북스, 2013), 《조상의 눈 아래에서: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서울: 너머북스, 2018) 등이 있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으로 1993년 위암 장지연상을, 2001년에는 용재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영국학술원 회원이며 2008년 1회 한국국제교류재단상과 2009년 미국동양학회 아시아연구공로상을 수상하였다.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The Opening of Korea, 1875~1885』, 『Culture and the State in Late Chos? Korea』(공 편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한국사 관련 논문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추억의 기록>,<조상의 눈 아래에서>,<한국의 유교화 과정> … 총 13종 (모두보기)

문옥표 (옮긴이)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 인류학과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From Paddy Field to Ski Slope: The Revitalisation of Tradition in Japanese Village Life』,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한국사회』(공저), 『조선양반의 생활세계』(공저), 『교토 니시진오리의 문화사』 등이, 역서로 『문화의 해석』 등이 있다.

최근작 : <종가문화, 대중과 만나다>,<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동아시아 관광의 상호시선> … 총 24종 (모두보기)

김우영 (옮긴이)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코넬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역사학과 인류학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조상의 눈 아래에서』,『전염병의 세계사』, 『세계의 역사 1, 2』, 『중세의 사람들』, 『멩켄의 편견집』, 『문화의 숙명』,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을 향한 노대가의 열정,
한국 사회사 연구의 획기적인 이정표

세계적인 석학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의
50년 한국사 연구를 집대성한 역작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난 50년 동안의 열정을 다한 한국사 공부를 집대성한 신작『조상의 눈 아래에서』를 내놓았다. 이 책은 신라시대 초기에 생겨나 가장 대표적인 사회 단위로 뿌리내린 한국 고유의 출계집단(씨족 또는 족, 겨레라 불리는)에 초점을 두고,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한국 출계집단의 역사를 다룬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이 친족 이데올로기는 출생과 출계를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를 창출했고, 엘리트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내구력을 부여했다. 중국에서 차용한 과거제와 신유학은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 실패했다. 엘리트의 월권에 제약을 가하기는커녕 괄목할 만한 방식으로 엘리트의 지배를 강화했던 것이다. 도이힐러 교수는 신유학의 변혁능력을 강조한 기존 한국사의 관점은 이 토착적인 친족 이데올로기의 지속성을 간과했다고 한다. 엘리트에게 유교식 사회의 윤곽을 제시한 신유학은 종종 후기 조선사회의 경직성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엘리트 제도’를 존속시킨 것은 신유학이 아니라 내구성 있는 친족 이데올로기였다.
저자는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선택하여 그들이 만들고 다진 촘촘하게 짜인 사회구성을 들여다본다. 예컨대 내앞의 의성 김씨, 유곡의 안동 권씨, 주천의 진성 이씨, 둔덕의 전주 이씨, 안터의 순흥 안씨 같은 집단과 행동했던 개인들에 대한 내러티브에 지성사,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를 엮어 넣는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경제적·지적 문제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 저자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신흥사대부 조선 건국론’에 대해 신흥사대부의 출현은 애초에 없었다며 고려의 세족(世族)이 조선의 사족(士族)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점, 고려 말의 권문(權門)과 세족은 엄연히 다른 집단이기 때문에 권문세족이란 용어는 폐기하자는 점, 당쟁은 정치적 현상이었을 뿐 아니라 엘리트층의 신분과 신분 유지에 직결된 사회적 현상이었다면서 붕당의 끈질긴 생명력은 친족 집단과의 관련성이 기인한다는 점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고 왕조의 경계를 뛰어넘은 친족 이데올로기의 검토에서 얻어지는 저자의 통찰이,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나아가 그 유구한 역사의 성격과 작동방식을 다시 평가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사회사 연구의 획기적인 이정표라 할 만하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는 1960년대에 한국에서 조사 및 연구를 수행한 최초의 서양인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해외 한국학을 선도하는 학자로, 중요한 저서 몇 편을 쓴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로운 상을 다수 수상했다. 저자는 역사와 사회인류학의 방법론을 결합하여 한국의 역동적인 역사와 사회를 관통해온 메커니즘을 재평가하는 참신한 틀을 만들어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 인터뷰

도이힐러: 이 책은 출계집단(族, descent group)에 대한 논의이다. 나는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핵심을 파고들고자 했고, 엘리트 사회의 기본단위는 출계집단이라고 판단했다. 출계집단은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본인들의 혈통을 추적하는 친척의 집합체이다. 따라서 매우 명확하게 정의되는 집단이다.
이 출계집단은 5세기 무렵에 나타났는데, 초기 출계집단 시스템, 다시 말해서 전통 한국사회의 기본 특징은 그것이 여러 신분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 출계집단은 정치권력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집단의 존재감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의 결론은 사회적인 것이 한 개인의 정치 참여 수준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분류한 것은 정치체제(political system)가 아니라 사회체제(social system)였고, 따라서 사회체제, 곧 개인의 사회적 신분이 그가 정치체제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출계집단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귀족가문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거주하면 엘리트층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라의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이 귀족들이 지방으로 이주했고, 이 무렵에 그들은 ‘김’이나 ‘이’나 ‘왕’ 같은 중국식 성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 가운데 예컨대 동해안의 강릉으로 이주한 김씨들은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강릉 김씨와 같은 성과 본관의 결합은 엘리트층의 이름표 구실을 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흥미로운 주제는 이 출계집단은 워낙 중요한 존재였기에 온갖 역사적 변화를 겪어내고 심지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질문: 그 집단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도이힐러: 조상숭배, 즉 제사이다.

질문: 사회체제가 사회와 가문에서 한 사람의 지위를 결정했던 것인가?

도이힐러: 그렇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각자의 신분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에 도열하는 순서도 달라졌다.

질문: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계층구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도이힐러: 정확한 통계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엘리트 집단은 인구의 10~12%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과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었다. 다른 두 집단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양인으로, 대부분 논밭을 가는 농민들이었다. 나머지는 거대한 노비 집단이었다. 조선 초, 즉 15세기 초엽에 노비는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노비들은 특히 엘리트의 경제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엘리트는 그들을 위해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들의 무리 없이는 엘리트로 존재할 수도, 엘리트 노릇을 할 수도 없었다. 노비 신분은 세습되었으므로, 노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날 때부터 노비였고 평생 노비로 살아야 했다.

질문: 그런데 노비제를 비롯한 신분제는 19세기에 한국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나?

도이힐러: 아니다.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한국의 근대화가 더디게 진행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매우 엄격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질문: 그렇다면 이런 구제도는 지금은 영향력을 상실했는가?

도이힐러: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자식의 결혼을 앞둔 부모는 결혼상대가 유서 깊은 엘리트 가문의 후손인지에 대해 대단히 신경을 쓴다. 물론 노비 집안 출신을 자녀의 배우자로 맞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분의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질문: 그러면 옛 신분제는 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이힐러: 아니다. 사회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 기능도 수행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역구 의원들은 사회적 기반이 견고하기 때문에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뿌리 없이는 당선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신분의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른바 엘리트가 사회적 엘리트에서 경제적 엘리트로 바뀌고 있지만, 상당히 부유한 경제적 엘리트도 오래된 사회적 엘리트와 관계를 맺고자 애쓴다. 후자는 아무리 빈곤해졌다 하더라도 유서 깊은 가계(家系)를 자랑하기에, 경제 엘리트는 그 후광을 입으려고, 나아가 그들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 편찬 붐을 일으켰던 족보는 개인의 출신을 보여주는 보증서로, 누군가의 이름이 그것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그가 엘리트층의 일원임을 증명해준다.

질문: 책 세 권을 내셨는데, 만약에 네 번째 저서를 쓰신다면 그 책의 주제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도이힐러: 네 번째 책을 쓸 여력은 없을 듯하지만, 나는 이미 일종의 소규모 연구에 착수했다.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한국사회가 출계집단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개인은 이 출계집단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출계집단에 기초한 사회가 어떻게 개인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근대화된 민주사회로 전환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식민지 시대나 현대에 한국인이 겪은 변화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아무도 “개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이 인터뷰는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스위스 취리히대 명예박사 학위수여를 기념하여, 2018년 같은 대학 민족학 박물관에서 처음 상영관 <한국을 향한 열정> 4부작 필름 중 네 번째인 Passion for Korea-Under the Ancestors’ Eyes(2015) (Producer Rolf Probala. Z?rich 2017)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사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우선했다”

한국사회 고유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분의 위계와 신분의 배타성을 찬미하면서 운명의 붉은 실처럼 신라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를 관통했다. 귀족, 세족, 사족, 양반 등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엘리트층은 스스로를 출계집단(族, descent group)에 의거하여 정의했는데, 이 집단은 양계적으로, 다시 말해 부계와 모계 모두를 통해 출생과 출계의 기원을 찾았다. 성취적 속성보다는 귀속적 속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엘리트는 출계집단 모델에 뿌리를 둔 사회적 기준을 이용하여 국가와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조상의 후광이 엘리트의 사회정치적 토대였으므로 실력에 기반을 둔 중국의 엘리트층과는 달리 신분에 대한 법적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도이힐러 교수는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합법화된 위계와 지배의 패턴은 신라의 골품제에서 발단한 이후 전통시대 한국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제도들의 성격과 작동방식을 규정했다고 간주한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정치의 세계를 규정했으며 왕조 교체를 뛰어넘은 동인이었고, 나아가 한국 사회가 그토록 오랫동안 연속성이 보장된 까닭이기도 했다. 때문에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토착적인 출계집단의 출현과 발달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한국의 출계집단의 역사를 추적하는 한편 공간적으로는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가로지른다. 두 곳이 지리, 인구, 경제의 측면에서 대조적일 뿐 아니라, 공적인 역사자료는 물론 고문서, 문집, 족보, 읍지 등 풍부한 역사 기록을 보존하고 있으며 주요하게는 한국에서 가장 저명한 몇몇 재지 출계집단의 기원과 발달을 연구하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의성 김씨, 안동 권씨, 광산 김씨, 진성 이씨, 풍산 유씨, 고성 이씨, 남원의 전주 이씨, 삭녕 최씨, 광주 이씨, 순흥 안씨 들이 그 예이다. 연구의 초점은 출계집단이지만, 여러 대에 걸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린 것은 각 출계집단을 대표하여 행동한 개인들이었다. 저자는 안동과 남원에 정착하여 공동체를 다져나간 그 주역들의 공적인 삶을 들추어내는 가운데 사회적인 것이 한국인의 삶 구석구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1부 ‘한국사회의 토대’에 포함된 세 장은 유교 도입 이전의 한국사회에 대한 새롭고 폭넓은 관점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이 관점은 나중에 조선왕조에서 이룩되는 사회적·지적·정치적 발전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하다. 첫 두 장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출현한 토착적 출계집단의 기원과 초창기의 발달을 추적하고, 중국식 과거제도가 맹아기의 정치제도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탐구한다. 세 번째 장은 고려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루어진 신유학의 도입을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이라는 넓은 맥락 속에서 논의한다. 2~5부는 조선시대 엘리트층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본다. 2부 ‘지방의 재구성’은 엘리트 출계집단이 ‘지방화’를 체험한 두 군데의 주요 지역인 안동과 남원을 소개한다. 3부 ‘유학:학문과 실천’의 주제는 지방에 정착한 엘리트들이 젊은 시절에 유학을 공부하던 방법과, 이런 학습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유교의 예법을 자신들의 친족집단에 적용하던 방식이다. 3부는 지방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연고지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어떻게 주장하고 확대했으며, 16세기 말의 임진왜란과 1620년대와 1630년대의 만주족의 침략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된다. 4부 ‘분리와 결속’은 17세기에 접어들어 점차 벌어진 중앙과 지방의 간극과, 그것이 엘리트의 사고와 행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또한 그로 인한 학문적 분열과 붕당을 해명하고, 종족의 제도적 성숙을 조명한다. 5부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는 마지막으로 18세기의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재지 엘리트층의 전략, 그리고 사회적 경계의 타파를 시도하던 경합세력의 등장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각 부는 당대의 특수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조건들을 개관하는 간략한 ‘서언’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개별 장들의 내용을 한국사라는 더 큰 틀 속에 놓고 바라보기 위함이다.

과거제와 신유학은 한국사회의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 실패했다

중국식 과거제도의 도입(958년)과 신유학의 도입(14세기 후반)은 한국사회와 출계집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경쟁에 기초한 인재 등용인 과거제의 도입은 귀속적 자격과 정치적 성취의 관계에 대한 엘리트층의 생각을 바꿔놓았고, 신유학에 의한 부계출계율의 보급 및 확대는 토착적 출계집단의 구조를 혁신했다. 그러나 이 책이 밝히는 것처럼 종국적으로 과거제와 신유학이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는 실패했다.
실력을 중시하는 중국식 과거제는 정치 참여가 생득권이었던 한국의 전통에 반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사조(四祖)를 입증할 수 있는 자에게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출계가 우선이고 실력은 그 다음으로, 한국의 과거제는 중국의 모델과 확연하게 달랐다. 조정은 여전히 귀족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처럼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을 보완하는 것쯤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사회 안에 포섭된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왕의 권한에 영향을 미쳤다. 귀족적 관료제는 왕의 지배력을 약화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역사에서는 왕의 독재가 애당초 불가능했다.
도이힐러 교수는 고려-조선 왕조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평가하려면 여말선초의 과도기에 대한 통념, 즉 사회정치적 균열을 틈타 '새로운' 세력이 '구체제 옹호세력'을 대체했다고 가정하는 이른바 '신진사대부' 설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고려의 세족이 조선의 사족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므로 친족 이데올로기의 연속성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권력은 여전히 신분에 내재되어 있었고 누대에 걸쳐 한정된 범위의 동일 출계집단들 내에서 순환되었다. 그 결과 고도로 사유화된 정치가 생겨나 왕권에 제약을 가했다.

한편 신유학은 부계 출계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한국사회 고유의 양계와 중국식 부계 사이의 갈등을 야기했다. 하지만 부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엘리트의 지위는 계속해서 양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엘리트들은 신분의 양계적 귀속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통을 지켜내면서도 유교식 부계제라는 이데올로기적이고 구조적인 요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조선 후기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유서 깊은 지배권을 계속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붕당의 토대는 친족이었고, 붕당의 끈질긴 생명력 또한 출계집단과의 관련성에 기인했다

도이힐러 교수의 유명한 전작『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1992)이 고려-조선 교체기의 엘리트 사회가 고유의 양계제에서 유교적 부계제로 이행하는 역사적 과정이 주제였다면, 신작 『조상의 눈 아래에서』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는 16세기 중반 이후 출계집단 구조의 획기적인 변화였던 '종족제도'의 출현이다. 그녀는 한국사회에서 종족의 출현이란 지방화된 엘리트가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차별화 전략'으로, 국가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향촌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고 정의한다.
15~16세기 초반 한국사회에는 사회 엘리트들의 지방의 각처로 대거 이주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다양했다. 녹봉체계의 붕괴로 토지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이른바 ‘사화’와 같은 끔찍한 사건들을 피하기 위한 은신처의 필요 때문이기도 했다. 고래로부터 이어온 ‘처가거주혼’에 따라 지방에 눌러 앉은 엘리트들은 신유학을 공부하여 지역 공동체를 촘촘하게 짜인 사회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자신의 터전인 농촌공동체를 수호하라는 요구에 직면했을 때 지방화된 엘리트들은 축적된 부와 사회적 연결망을 동원하여 외적에 맞서 싸웠고, 이들이 전쟁의 패자가 아닌 승자로 부상한 것은 이후 국가에 맞서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조선이 건국되고 150여년이 지난 시점에 종족이 지방에서 처음 생겨나 자리를 잡게 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교식 부계제가 농촌이라는 환경에서 엘리트를 조직하는 매력적인 모델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한국의 종족제도는 지적·의례적·경제적·정치적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로 그 요인들이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하나의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를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한다.
신유학의 역할을 살펴보자. 첫 번째 유교화가 여말선초 '치국'의 실학이었다면 두 번째 유교화는 사화를 거치며 사림이 주도권을 행사한 '수신'에 기초한 도학의 정치화였다.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에서 국가 정학이라 불릴 만한 것이 출현할 수 없었던 주된 이유로 16~17세기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추종하는 양대 신유학파 사이에서 벌어진 경쟁과 갈등 때문으로 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올바른' 학문임을 주장하던 두 학파 사이에 투쟁은 오직 승자와 패자만을 낳았으며, 그 균열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를 벌려놓았다. 끝없이 지속된 당파적 논쟁 속에 지방화된 엘리트들은 그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저자는 붕당의 토대는 친족에 기초하였으며 붕당의 끈질긴 생명력 또한 출계집단과의 관련성에 기인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당쟁은 정치적 현상이었을 뿐 아니라, 엘리트의 신분과 신분의 유지에 직결된 사회적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서인이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앙에서 주도권을 잡음에 따라 퇴계의 후계자인 남인은 정계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17세기 이후 과거 급제나 관직 제수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경상도와 전라도의 재지 엘리트들의 급선무는 자신들의 신분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교식 종족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상황에 대처했다.

종족은 과거 급제 없이도 재지 사족의 신분을 유지해준 대안이었다

종족이란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일정한 수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긴밀하게 조직된 부계집단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뒤따랐다. 장자의 지위가 상속에서는 물론 제사의 주제자로 격상됨에 따라 남동생들의 의례적·경제적 입지가 축소되었는데, 이는 평등한 형제관계를 강조하던 고래의 전통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형제들 사이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좀 더 폭넓게 구성되는 조직인 '문중'이 만들어졌다. 문중은 평등한 형제관계의 이상을 되살린다는 취지에서 출계집단의 모든 성인 남계친을 포함시키는 사회단위로 - 장자가 제사를 지냈다면 - 이들은 시조나 현조를 기리는 묘제를 봉행했다. 이처럼 한국의 부계제가 문중에 의해 균형이 맞추어지지 않았다면, 엄격하게 조직된 중국식 부계제는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 저자는 해석한다. 이 또한 한국의 사회적 전통이 중국식 모델을 변용시킨 예이다. 종족은 재지 엘리트가 중앙으로부터의 소외, 국가의 지방에 대한 통제와 압력이 가중되는 17세기 상황에서 과거 급제 없이도 사회적 우위를 인정받는 대안이자 사회정치적 도구였으며 재지 엘리트의 신분을 정당화하고 유지시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또한 붕당과의 결연을 통해 정치적 성격을 띠며 국가와 사회 사이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도이힐러 교수는 서울에서 벼슬을 하던 소수 엘리트 출계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반면, 재지 엘리트의 출계집단의 손에 ‘토지’가 집중된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라 기술한다. 또한 중앙과 지방의 분리에서 지역 차별은 결코 서북 지방에 국한되었던 현상이 아니라 영남(남인)과 전라(남인과 서인) 또한 소외당했다 한다. 한국사회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교화된 국가로 일컬어지지만, 토착적 친족 이데올로기의 힘과 내구성은 중국식 과거제와 부계화 같은 외래의 영향을 무력화하거나 변용시켰다. 출계집단 모델은 외국의 영향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그 자체의 필요에 따라 패턴을 수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역동적 모델이었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전통적인 신분제가 붕괴되었다

한국식으로 해석된 유교는 사회적 차별을 완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켰다. 향리와 서얼은 엘리트층에 가깝다는 이유로 주변화되었고, 특히 평민과 노비를 소외시켰다. 향리가 조선 초기에 정권을 장악한 엘리트층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대하려 할 때 '문제'가 된 집단이었다면, 서얼 문제는 고려시대에서 선례를 찾을 수 없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었다. 고유의 양계에 부계라는 독특한 조합이 서자 문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재지 양반층이 책의 주연이라면 향리와 서얼은 조선 후기 양반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독립적으로 제각기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던 조연들이다. 일부 양인과 노비는 자신의 생활여건을 개선하여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사족의 체면은 손상시켰다. 조선후기 재지 엘리트들은 갈수록 다양한 대항세력에 시달리며 운신했다. 실제로 지방이라는 무대는 '향전鄕戰'이라는 신조어가 시사하듯이 유동적이었고 때로는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지 사족은 자신들의 물질적, 상징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자신들의 신분상 우위를 방어하고 유지하려 했다.
무엇이 이 불평등한 사회를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로 묶어왔을까? 사족은 단순한 억압과 착취로 대부분이 문맹인 인구를 통제했을까? 아니면 사족이 전파한 사회계약의 도덕률이 수직적으로 분배된 권한과 수평적으로 작동되던 공동체성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신분집단들 사이의 관계를 중재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지배 엘리트들이 그런 가치와 관행을 보급한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하급자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했던 현실을 감추기 위함이었을까? 그토록 오랫동안 양반 엘리트에게 특권을 부여했던 사회신분제는 조선 후기에 비엘리트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신분상승'을 꾀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개혁될 수 없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직함을 팔아서 그런 추세를 부추긴, 다시 말해서 그것을 산 자들에게 군역을 면제시켜줌으로써 적어도 사회적 입신의 환상을 심어준 것은 바로 정부였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된 '귀'와 '천'의 제도는 엘리트층이 변화하는 사회적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막았고, 비엘리트층이 부나 직함을 앞세워 양반 계층에 침투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엘리트층의 몰락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것이라 한다. '제도'로 법제화된 적은 없었지만, 신분제는 한 사회집단이 사회의 나머지 집단들을 지배하는 것은 급변하는 근대세계에 설 자리를 찾고 있던 국가에서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간주됨에 따라 1894년에 돌연 철폐되었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전통적인 신분제도가 붕괴된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인 것’은 근대세계에서 그 규범적 힘을 상실했지만 감정적인 신비감을 간직하고 있었고, 한국사회의 ‘양반화’라고 적절하게 명명된 현상을 낳았다. ‘역사적인 실체로서의’ 양반은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는 비난에 자주 휩싸이지만, 양반의 신분을 내세우는 것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개인의,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할 때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접기









한무제가 어머니의 가문 덕분에 황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승주나무 2018-11-25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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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다시 읽는 기분입니다.
안목과 통찰력이 대단합니다.
지적 훈련을 위해서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한 인간을 보기전에 그의 가계를 보라.
stefanet 2018-11-30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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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이런 분량의 한국사라니.
cxz 2019-06-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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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어는 신분주의와, 친족, 가문 등으로 표현되는 가족주의일 것이다. 한 정부가 이토록 오래된 한국 사회의 근원을 혁신할 수 있다면 신화나 혁명으로 기록될 만하다. 한 시대에 다시 새 정부가 들어서겠지만 결국 이 늙은 메커니즘의 반복이라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청아한아이다 2021-08-1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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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조상의 눈 아래에서 : 피는 권력에 앞선다.

친족과 권력이 조르주 발랑디에의 말처럼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신라사회를 신분집단들로 계층화하여 최상위층만이 국가와 사회에서 가장 유력한 자리를 세습적으로 차지할 수 있게 만든 골품제에 의해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p51)... 골품제가 무너진 뒤에도, 그 바탕에 깔린 철학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귀족적 출계집단 모델에 기초한 사회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에 우선했다. 이 두 가지 힘, 즉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중대한 상호작용은 고려의 역사를 계속해서 귀족적 출계집단의 성쇠와 뒤얽히게 만든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52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1935 ~ )가 전작 <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에서 여말선초(麗末鮮初)를 배경으로 신유학(新儒學)의 도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면, <조상의 눈 아래에서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는 신라(新羅)와 조선(朝鮮) 후기까지 분석을 확장해 간다.

본문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앞선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 있었다면,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血緣)에 근거한 엘리트 집단과 이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권력과의 다툼이 있었다고 본다. 다른 계층에게는 배타적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지방에 근거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세력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향(鄕)족과 수도에 위치하며 중앙권력과 관계를 공고히 하는 사(士)족. 이들간의 오랜 다툼의 기원을 저자는 신라에서부터 찾는다. 그 사이 왕조 교체와 같은 정치 격변기에 선종(禪宗), 성리학(性理學)과 같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시대 정신으로 제시되었지만, 사회적인 관계에 기반한 지배층의 교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음을 저자는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고려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이 말해주듯이, 출계집단들의 역사에는 언제나 운명의 변전이 있었고, 왕조 교체기에는 으레 그들의 부침이 더욱 심했다.(p105)... 놀랍게도 고려시대의 주요 출계집단들 가운데 소수만이 조선 초기에 쇠잔했다.... 규모가 작고 뿌리가 깊지 않은 출계집단들이 잠시 흥했다가 사라진 것에 비해, 규모가 크고 방계가 많은 출계집단들은 다른 분파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면서 ‘족망‘을 보전할 수 있었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107

한국에도 상인과 무역업자, 여러 부류의 장인이 존재했지만, 엘리트층이 과거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비엘리트 출신의 경쟁자들은 아무리 부유하고 박식해도 과거제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었다. 더욱이 재산은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단 한번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아가 한국인의 친족 중심 성향으로 인해, 엘리트층과 관료사회가 완전히 일치한 적은 없었다. 사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우선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조선 후기의 재지 엘리트층에 힘을 실어주었고, 덕분에 그들은 중앙의 정치과정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된 뒤에도 높은 사회적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족의 경쟁자들은 비엘리트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엘리트의 사회적 배타성에 의해 생겨난 두 이례적인 사회집단인 향리와 서얼 중에서 나왔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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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8-20 공감(4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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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교수의 2015년 저작 <Under Ancestors' Eyes: Kinship, Korea Locality Premodern Status, and in the> (국역명: <조상의 눈 아래에서: 전근대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향촌>)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1. 서론: 평생 연구의 집대성과 <한국적 전통>의 심층 해부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2015년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 출판부에서 출간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그의 평생에 걸친 한국사 연구가 집대성된 학술적 거작이다. 전작인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환>(1992)이 고려 말에서 조선 후기로 이어지는 성리학적 종법제의 이식과 사회적 재편 과정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시야를 훨씬 넓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장기적 역사(Longue Durée)의 관점에서 한국 지배 엘리트층의 세습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도이힐러는 이 책에서 "조선이 유교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집단적 무의식과 구조를 지배한 것은 유교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신분 의식과 친족 중심주의였다"는 통렬한 명제를 제시한다. 책의 제목인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사대부 계층이 조상의 권위와 혈통을 매개로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기득권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유지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요약: 신분, 친족, 그리고 향촌의 3중 구조

세족(世族)의 영속성: 변하지 않는 지배 엘리트

도이힐러 분석의 출발점은 한국 역사에서 지배층의 구성이 놀라울 정도로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려의 권문세족과 조선의 사족(士族)은 왕조의 교체나 외세의 침략, 유교화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동 속에서도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단순한 <성리학적 관료>가 아니라,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세족(Hereditary Elite)>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들은 과거 제도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관직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의 기반은 바로 자신들이 속한 가문의 <혈통적 정통성>이었다.

친족과 조상 숭배: 신분 유지의 핵심 메커니즘

책은 조상 숭배가 단순히 유교적 효(孝)의 실천에 그치지 않고, 지배층의 신분을 판별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배제와 포섭의 기술>이었음을 입증한다.

  • 조상의 권위화: 사대부들은 조상의 음덕과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족보(族譜)와 봉사(奉祀)를 통해 자신들이 범인(凡人)과 다른 고귀한 혈통임을 증명했다.

  • 통혼망(Intermarriage): 양반 지배층은 자신들과 대등한 신분과 가문의 격을 가진 집단하고만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맺음으로써 신분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 음서와 신분세습: 과거 시험이 겉으로는 능력주의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상층 세족들이 음서제와 혈연 네트워크를 활용해 관직과 특권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향촌(Locality)과 세력 기반: 토착성과 자율성

도이힐러는 지배층의 권력이 중앙의 관직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향촌 사회의 지배력>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사족들은 향안(鄕案)을 작성하여 향촌 내 입지를 독점하고, 향약(鄕約)과 문중 재산을 통해 농민과 노비를 통제했다.

중앙 조정이 바뀌고 왕권이 흔들릴 때조차도 향촌 사회에 정착한 세족들의 오랫동안 누려온 지방 지배력은 손상되지 않았다. 즉, 조선의 사회 구조는 중앙집권적 관료제라는 외피 아래 강력한 <향촌 세족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3. 평론: 사회사학의 신지평과 논쟁적 지점

성과: 전통 사회를 바라보는 차원 높은 입체감

이 책의 가장 뛰어난 공헌은 유교화 연구에 파묻혀 자칫 놓치기 쉬웠던 한국 사회의 내재적 귀족성(Aristocracy)과 세습 구조를 정밀하게 파헤쳤다는 점이다.

도이힐러는 유교 이데올로기라는 화려한 겉옷을 한 껍질 벗겨내고, 그 안에 요지부동으로 자리 잡고 있던 <신분 세습성>을 직시하게 만든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행이 단절이 아닌 연속이었음을, 그리고 조선 후기의 유교화조차도 사족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유교적 예법을 도구화한 과정이었음을 500년 이상의 장기 사료 분석을 통해 입증해 낸 점은 역사학계에 거대한 학술적 유산을 남겼다.

비판 및 논쟁: 정체성(Stagnation)과 역사적 역동성의 문제

그러나 이 대작 역시 학계로부터 몇 가지 비판적 반론에 직면한다.

첫째,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에 대한 과소평가다. 도이힐러의 모델은 지배층의 견고함과 세습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조선 후기에 일어난 신분제의 해체, 수많은 평민의 양반 승격, 잔반(殘班)의 몰락 등 아래로부터의 역동적인 사회 변동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조선 사회를 지나치게 고정되고 변화 불가능한 세족 사회로 묘사했다는 지적이다.

둘째, 역사의 내재적 발전론과의 충돌이다. 도이힐러의 시각은 조선 사회가 내부적 모순을 통해 스스로 근대로 이행할 수 있는 동력을 가졌다는 <내재적 발전론>을 대단히 회의적으로 보게 만든다. 지배 엘리트가 혈통과 신분에 집착하며 향촌을 지배한 구조가 전근대 전체를 관통했다는 그의 논리는, 자칫 한국 전통 사회를 정체되고 닫힌 사회로 바라보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4. 결론: 한국인의 집단적 정체성에 던지는 질문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한국 전근대 사회의 지배 구조와 신분 의식을 해부한 결정판이다. 도이힐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의 가장 깊은 바닥에는 유교적 도덕관념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혈통주의, 가문 중심주의, 그리고 신분적 선별 의식이 흐르고 있었음을 냉철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학벌 네트워크, 혈연·지연 중심의 파벌 의식, 그리고 가문의 명예와 혈통에 대한 집착의 뿌리를 이해하고자 할 때, 도이힐러가 <조상의 눈>을 통해 분석해 낸 전근대의 유산은 지극히 유효하고 서늘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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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
원제: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 (2015)

이 책은 도이힐러가 반세기 가까이 연구한 한국 사회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이 고려 말에서 조선 중기까지 가족과 친족제도가 어떻게 유교화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훨씬 더 긴 시간축을 사용한다. 신라부터 조선 말기까지 약 1,500년 동안 한국의 지배 엘리트가 어떻게 혈통·혼인·신분·지역·유교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했는지를 추적한다. 도이힐러의 가장 파격적인 주장은 왕조가 바뀌어도 한국의 지배 엘리트가 생각만큼 크게 교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엘리트 사회의 지속성을 설명하는 핵심 장치로 <출계집단(descent group)>을 제시한다.

1. 핵심 질문: 왕조가 바뀌면 지배층도 바뀌었는가

전통적인 한국사 서술에서는 신라·고려·조선이라는 왕조의 교체와 함께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려 말에는 권문세족이 몰락하고 신진사대부가 성장하여 조선을 건국했다는 구도가 익숙하다.

도이힐러는 여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왕이 바뀌었다고 지배 엘리트도 정말 바뀌었는가?>

그의 답은 상당 부분 “아니다”이다.

한국의 지배층은 정치적 관직 그 자체보다 <누구의 후손인가>에 의해 자신의 신분을 규정했다. 신라의 골품 귀족, 고려의 세족, 조선의 사족·양반은 제도와 명칭은 달랐지만 모두 혈통과 출생을 통해 엘리트 정체성을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도이힐러는 바로 이 지속성을 한국 사회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본다.

이것은 상당히 대담한 주장이다.

한국사의 중심축을

왕조 교체와 정치세력의 변화

에서

<친족집단과 엘리트 재생산의 지속성>

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2. 출계집단이란 무엇인가

이 책 전체를 이해하려면 ‘출계집단’이라는 개념이 핵심이다.

출계집단은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자신의 계보를 추적하는 친족집단이다. 도이힐러에게 중요한 것은 혈통이 단지 가족관계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자원>이었다는 점이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면

혼인 상대가 달라지고,
교육 기회가 달라지고,
관직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토지와 노비를 물려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친족은 사적 영역이 아니라 권력의 핵심 제도였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선의 양반을 단순히 ‘과거시험에 합격한 관료계층’으로 보지 않는다. 양반이 되기 위해서는 시험 성적보다 먼저 출신가문과 친족관계가 중요했다고 본다.

3. 고려에서 조선으로: 혁명인가 연속인가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다.

일반적인 설명은

권문세족
→ 신진사대부
→ 조선 건국

이라는 비교적 선명한 사회세력 교체를 강조한다.

도이힐러는 이것을 너무 단순한 설명으로 본다.

고려 말의 세족과 조선 초기의 사족 사이에는 상당한 인적·혈연적 연속성이 있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 엘리트가 새로운 정치·이념적 환경에 적응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방문 인터뷰에서도 “고려의 세족이 조선의 사족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취지로 기존 정설과 다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관점에서 조선 건국은 ‘사회혁명’이라기보다

<기존 엘리트의 재편>

에 더 가깝다.

다만 이 주장은 한국 학계에서 충분히 논쟁적인 부분이다.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사회적 성격을 연구해온 기존 연구를 상당히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성리학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계속되었다면 성리학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연결된다.

도이힐러는 성리학이 기존 엘리트 체제를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를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고려의 친족관계는 부계와 모계를 모두 중요하게 보는 양계적 성격이 강했다.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성리학적 종법질서가 확산되고 친족체계가 점차 부계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장자 중심 제사,
부계 계승,
족보,
문중,
동성마을

이 더욱 중요해졌다.

도이힐러의 역설적인 주장은 이것이다.

<유교는 사회적 평등을 확대하기보다 엘리트의 배타성을 강화했다.>

그는 조선의 엘리트가 성리학의 특정 요소, 특히 남계 중심의 의례와 계승 원리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귀족적 특권을 강화했다고 본다.

5. 안동과 남원: 거대한 이론을 지역에서 검증하다

이 책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거대한 한국사 이론을 단순히 중앙 정치자료만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이힐러는 안동과 남원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이 두 지역의

족보,
혼인관계,
토지,
노비,
향안,
향규,
서원,
묘지,
문집

등을 추적한다. 실제로 현지 문중을 방문하고 양반 후손들을 만나 자료와 구전 전통을 조사하기도 했다.

책의 2부는 안동과 남원에서 재지 엘리트 집단이 어떻게 형성되고 혼인망과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어판 목차만 보아도 ‘적절한 혼인망의 구축’, ‘노비’, ‘유산의 관리’, ‘안동과 남원의 토지와 노비’ 등이 독립적인 분석주제로 자리한다.

즉 양반이 양반으로 살아남으려면 철학만 공부해서는 안 됐다.

좋은 집안과 혼인하고,
재산을 유지하고,
노비를 확보하고,
지역사회의 다른 엘리트 집단과 관계를 맺어야 했다.

6. ‘선비’도 하나의 사회적 전략이었다

책의 3부에서는 유교적 학문과 지역사회가 결합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안동에서는 퇴계 이황과 그의 제자들, 서원, 사림문화가 지역 엘리트 정체성의 중심이 된다. 남원에서도 지역 사족들이 유학적 권위를 확보하려 한다. 한국어판 목차에는 ‘유학자로서의 사족 엘리트’, ‘학문과 과거’, ‘처사’, ‘서원’, ‘퇴계의 지적 유산’ 등이 주요 항목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도이힐러는 유교 학문을 순수한 지적 활동으로만 보지 않는다.

<유학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신분의 자원이 될 수 있었다.>

관직에 나가지 않더라도 ‘처사’, 즉 도덕적 학자로 인정받는 것은 가문의 사회적 위신을 높였다.

따라서

학문,
도덕,
친족,
신분

은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이 점은 앞서 이야기한 유교사상사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유교는 철학일 뿐 아니라 엘리트가 자신들의 사회적 정당성을 표현하는 언어였다.

7. 문중은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 ‘발명된 제도’였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이 문중에 대한 설명이다.

오늘날에는 문중을 매우 오래된 한국 전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도이힐러에게 문중은 오히려 조선의 유교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친족제도이다.

부계 혈통이 강화되고 장자 중심 제사가 정착하면 집안 내부에서 위계가 생긴다. 그런데 한국에는 고려시대부터 형제 사이의 상대적 평등을 중시하는 친족관행도 강했다.

도이힐러는 바로 이 두 원리가 결합하면서 모든 성인 남계친족을 포함하는 한국적 문중이 발전했다고 해석한다.

즉 문중은 중국의 종족제도를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다.

<유교적 부계원리 + 한국의 기존 친족관습>

의 결합물이다.

8. 지역사회는 어떻게 양반에게 지배되었나

도이힐러가 보여주는 조선은 중앙정부만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지역마다 사족 엘리트가

향안,
향약,
유향소,
서원,
동계

같은 제도를 통해 지역사회를 조직했다. 책 9장은 이런 공동체 조직과 지역 지도력의 형성을 상세히 다룬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였지만 실제 지방사회에서는 사족들이 상당한 자율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양반의 권력은

<국가가 준 관직>

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혈통과 도덕적 권위>

에 의해 유지되었다.

9. 17~18세기: 문중사회가 완성되다

17세기 이후 출계집단은 더욱 조직화된다.

제사,
묘지,
족보,
위토,
문중재산,
동성마을

등이 결합한다.

이 시기의 사람은 혼자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다.

자신보다 먼저 살았던 조상들의 명예를 물려받고 그것을 후손에게 전달해야 하는 존재다.

바로 그래서 제목이 <조상의 눈 아래에서>이다.

사람은 실제 살아 있는 가족만 의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조상들의 끊임없는 평가 아래>

살아간다.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상과 후손 전체의 문제가 된다.

이것은 조선 엘리트의 강력한 사회적 규율이었다.

10. 19세기: 양반질서는 붕괴했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19세기의 변화를 다룬다.

경제적 변화,
서얼의 신분상승 요구,
향리의 성장,
하층민의 도전

때문에 기존 신분질서가 흔들린다. 한국어판 마지막 장의 제목도 <사족 우위의 종말?>이다.

그러나 도이힐러는 엘리트 문화가 쉽게 사라졌다고 보지 않는다.

족보,
조상,
문중,
교육,
혼인

등을 통해 신분적 정체성이 매우 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출계집단이라는 모델이 신라에서 19세기까지 지배층에게 놀라운 응집성과 지속성을 제공했다고 도이힐러는 주장한다.

11.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첫째, 한국사를 <왕조사>에서 <사회구조사>로 바꿔 읽게 한다.

왕이 누구였는가보다

<누가 계속 엘리트였는가?>

를 묻는다.

둘째, 정치·경제·사상·가족을 하나의 틀 안에서 결합한다.

유교와 족보,
토지와 혼인,
서원과 정치,
제사와 신분

이 모두 같은 사회체제의 일부가 된다.

셋째, 1,500년에 가까운 장기지속(longue durée)을 본다.

이 책의 스케일이 대단한 이유다.

한국어 번역판은 무려 984쪽이고, 안동과 남원 주요 출계집단의 계보와 문서자료까지 부록으로 수록한다.

12. 그러나 가장 큰 약점도 바로 그 거대한 설명에 있다

이 책에 대한 전문 서평에서도 그 야심찬 규모 자체가 장점이면서 동시에 문제로 지적된다. 한 출계집단 모델을 신라부터 조선 말까지 장기간 적용하다 보면 각 시대의 실질적인 사회적 단절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특히

신라 귀족,
고려 세족,
조선 양반

을 지나치게 하나의 연속된 엘리트층으로 묶는 것은 논쟁적이다.

왕조 교체,
과거제 확대,
토지제도 변화,
사림의 성장,
중앙과 지방의 권력관계 변화

등이 실제로는 사회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책이 기본적으로 <엘리트의 역사>라는 점이다.

농민,
노비,
여성,
상민

은 주로 엘리트 사회를 설명하는 관계 속에서 등장한다.

따라서 제목을 정확히 말하면

<전근대 한국사회 전체의 역사>

라기보다는

<전근대 한국 지배 엘리트의 장기 사회사>

에 가깝다.

13.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비교하면

두 책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의 핵심은

<한국 친족사회가 어떻게 유교적으로 바뀌었는가?>

였다.

<조상의 눈 아래에서>의 질문은 더 크다.

<그 친족체계를 이용하여 한국의 지배 엘리트는 어떻게 수백 년, 아니 천 년 이상 자신을 재생산했는가?>

이다.

즉 전작에서

유교 → 가족제도의 변화

를 연구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혈통 + 유교 + 재산 + 지역사회 + 정치>

가 결합해 지배층을 재생산하는 전체 시스템을 설명한다.

그래서 <조상의 눈 아래에서>가 사실상 도이힐러 연구의 최종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영문판은 2015년 하버드대 아시아센터에서 출간되었고, 한국어판은 김우영·문옥표 번역으로 2018년에 나왔다.

종합평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다.

<전근대 한국사회에서 지배층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관직보다 조상이었다.>

관직을 잃을 수는 있다.

재산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었다.

좋은 조상
→ 좋은 혼인
→ 교육
→ 토지와 노비
→ 지역적 권위
→ 다시 좋은 혼인

이라는 순환구조가 엘리트층을 재생산했다.

성리학은 이 체제를 파괴한 평등주의적 이념이 아니라 오히려 조상·부계혈통·의례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엘리트의 배타성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것이 도이힐러의 매우 도발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앞서 읽은 세 권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으면 도이힐러의 한국사관이 상당히 선명해진다.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 유교적 세계질서가 19세기 국제질서와 어떻게 충돌했는가.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 그 유교적 사회질서는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조상의 눈 아래에서>
→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유교 이전부터 존재한 혈통 중심 엘리트 구조가 유교를 흡수하면서 어떻게 장기간 존속했는가.

이 세 번째 책에서 도이힐러는 따라서 자신의 초기 명제를 상당히 수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유교가 한국사회를 만들었다>는 설명을 넘어, <한국의 오래된 친족·신분구조가 유교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쪽으로 이동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조상의 눈 아래에서>를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보다 더 대담한 책이라고 평가한다. 전자는 조선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었다면, 후자는 아예 <한국 전근대사의 시대구분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왕조가 세 번 바뀌었음에도 지배 엘리트의 사회적 재생산 원리는 놀라울 만큼 지속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치사의 왕조 구분보다 <친족·신분·지역사회의 장기지속>이 한국 사회사를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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