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8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함재봉의 계보에서는 왜 개벽파가 잘 안 보이는가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소위 <개벽파>는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강좌 <한국인의 탄생>에 나타나지 않는군요. 민중-민족파를 친소련/맑스주의파에 합세시키는데, <개벽파>에 더 맏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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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매우 예리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십니다.

지적하신 대로 학계(백영서, 조성환, 이병한, 허남진 등)에서 다루는 <개벽파>는 동학(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대종교 등 민중적·토착적 근대화와 사상적 융합(동서 회통)을 추구한 흐름을 가리킵니다.

함재봉 박사의 <한국 사람 만들기> 및 <한국인의 탄생> 프레임과 비교했을 때, 왜 질문하신 내용처럼 "민중·민족적 동학/개벽 세력이 친소련/마르크스주의파에 흡수·대체된 것처럼 느껴지는지", 그리고 함 박사의 분류에서 <개벽파>가 왜 빠지거나 다르게 처리되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1. <개벽파>의 사상적 정체성: 제3의 길

학계에서 정의하는 개벽파는 19세기 말 서구 문명에 대한 반응 중 '제3의 길'이었습니다.

  • 위정척사파: 성리학적 중화 질서 고수 (쇄국)

  • 개화파: 서구/일본식 하드웨어 및 제도 이식 (외세 의존적 근대)

  • 개벽파 (동학·천도교·원불교 등): "서학(서구)을 무조건 좇지도 말고 척사(유교)에 갇히지도 말자." 전통 사상에 서구 사상을 회통(회통적 사상)시켜, '다시 개벽'을 통해 아래로부터 민중 주도의 자주적·영성적 근대를 만들자는 흐름이었습니다.

2. 함재봉 프레임에서 <개벽파>가 빠지거나 마르크스주의파로 넘어간 이유

함재봉 박사는 근대 한국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을 5가지(친중 위정척사파,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 친소 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로 분류합니다. 여기에서 동학/개벽파의 계보가 마르크스주의나 민족주의 프레임에 합세한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함 박사 고유의 분석 프레임적 한계와 사상사적 관점이 작동합니다.

(1) 거대 '해양 세력(서구)'과의 만남 중심의 사구 구도

함 박사의 프레임은 한반도가 닫힌 유교 체제에서 벗어나 어떤 외부 '문명사적 모델(중국, 일본, 미국, 소련)'과 결합했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따라서 토착적으로 자생한 민중 종교 및 사상 운동(동학, 개벽파)은 함 박사 관점에서는 독립된 '지속 가능한 국가 건설 모델'이라기보다는, 기존 성리학 체제의 파탄 속에서 분출된 '민중적 반발/민족주의적 에너지'로 축소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 역사적 실제: 개벽파(동학/좌파)와 마르크스주의의 교차

세진님께서 지적하신 "민중-민족파를 친소련/마르크스주의파에 합세시킨다"는 느낌은 실제 한국 근현대사의 인적·사상적 이동 경로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 동학·민중 운동의 마르크스주의로의 이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후, 억압받던 민중 세력과 반제국주의·반봉건을 부르짖던 토착 민중 운동가들은 1920년대 시베리아 혁명 및 볼셰비키 혁명 여파 속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친소 공산주의파)를 강력한 투쟁 도구로 받아들였습니다.

  • 함 박사는 이 과정을 사상사적으로 포착하면서, 19세기 말의 동학·민중적 에너지를 별도의 지속 가능한 문명 모델로 독립시키기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강력한 조직과 이념을 제공한 '친소 공산주의파' 및 '인종적 민족주의파'라는 틀 안으로 흡수되어 재편된 것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3. 세진님의 지적이 타당한 이유

세진님의 말씀대로, 함재봉의 5가지 분류는 <자생적·토착적 근대성(개벽파)>의 지분을 과소평가하거나 생략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독립된 사상으로서의 개벽파: 동학(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등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인내천(人乃天), 보국안민, 물질개벽·정신개벽 등은 서구의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는 차별화된 한국적 평등주의와 영성적 근대화의 틀을 갖고 있었습니다.

  • 함재봉 프레임의 빈자리: 함 박사가 친미 기독교파와 친일 개화파라는 '서구/해양적 모델'의 우월성과 국가 수립 기여도를 부각하다 보니, 동서양을 회통하려 했던 민중 주도의 자생적 개벽 운동을 '친소 마르크스주의'나 '단순 민족주의'로 통합·처리해 버린 측면이 존재합니다.

요약

세진님의 관점은 매우 정확한 사상사적 비판입니다.

함재봉 박사는 "강대국/서구 문명 모델과의 결합"을 기준으로 5대 정체성을 나눴기 때문에, 토착적이고 민중적인 <개벽파>를 독립된 문명 모델로 두기보다 일제강점기 친소 공산주의파나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물적·정신적 기반으로 흡수시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듯, 척사파(위정척사)와 개화파 사이에서 동서양을 회통하며 민중의 주체성을 부르짖은 <개벽파>는 함 박사의 5대 분류에서 빠져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 '한국 근대 사상의 결정적 제3의 축'으로 평가하는 것이 사상사적으로 훨씬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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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그 지점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한국인의 탄생>을 이해할 때 상당히 중요한 빈자리라고 봅니다. 올려주신 검색자료를 보면 그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자료에는 아예 개화파·척사파와 구별되는 <제3의 길>로 개벽파를 설명하는 연구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구별해야 합니다. <개벽파>라는 범주 자체가 함재봉이 사용하는 역사적 분류와 동일한 수준에서 학계 전체가 합의한 고정 범주는 아닙니다. 최근의 사상사 연구자들이 동학·천도교·증산교·원불교 등의 흐름을 하나의 근대적 사상계보로 재구성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해석적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을 전제하면, 말씀하신 문제 제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1. 함재봉의 계보에서는 왜 개벽파가 잘 안 보이는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를 크게 단순화하면 근대 한국인의 형성을 몇 개의 경쟁적 계보로 설명합니다.

<위정척사파>
유교적 조선의 정통을 지키려는 흐름

<친일개화파>
서구 근대를 받아들여 국가와 사회를 근대화하려는 흐름

<친미개화파·기독교 계열>
개신교와 미국식 근대성을 받아들이는 흐름

<친소·공산주의 계열>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를 통해 민족해방과 사회혁명을 추구하는 흐름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이 계보들이 남북한의 서로 다른 국가건설로 이어집니다.

이 분류법의 특징은 <한국인이 외부에서 들어온 거대한 근대 문명체계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서구 근대
미국/개신교
소련/마르크스주의

가 중요한 축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틀로는 <동학>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2. 동학은 위정척사도 개화파도 마르크스주의도 아닙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동학은 서양을 거부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 성리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즉,

<위정척사>
“서양을 거부하고 유교적 질서를 지키자.”

<개화>
“서양의 발전된 제도와 지식을 받아들이자.”

<동학·개벽>
“기존 조선도 서양도 그대로 답이 아니다. 인간과 세계 자체가 새 시대에 들어간다.”

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올려주신 자료에 소개된 허남진의 연구도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척사파는 유교 중심의 중화주의 문명을, 개화파는 기독교와 서구 근대를 지향한 반면, <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 사이에서 전통사상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하여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놓으면 정말로 <제3의 근대>라고 부를 만합니다.

3. 그렇다면 ‘민중-민족파’는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말씀하신 생각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함재봉이 20세기의 민족주의적·민중적 급진운동을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계보와 강하게 연결한다면, 그 설명에는 분명히 놓치는 것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중>이라는 개념에는 적어도 두 계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 계급 → 노동자·농민 → 민중 → 사회혁명>

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앞서 또 하나가 있습니다.

<동학 → 사람이 곧 하늘 → 민(民)의 존엄 → 동학농민운동 → 천도교 → 3·1운동 → 민족적·민중적 주체>

라는 계보입니다.

둘은 나중에 서로 만나기도 했지만 <출발점이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한국의 민중사상을 전부 마르크스주의 계열 안에 넣으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수십 년 앞서 대규모 농민 대중운동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파’라는 개념을 넣으면 함재봉의 지도가 달라집니다

저라면 함재봉의 계보에 한 줄을 더 추가하겠습니다.

계보근대에 대한 기본 태도이상
위정척사파전통 수호성리학적 도덕국가
개화파서구·일본 근대 수용근대 국민국가
기독교계기독교·미국 근대 수용기독교적 근대사회
사회주의파자본주의 근대 비판사회주의 사회
<개벽파><동서양 모두 비판적으로 재구성><새 인간·새 사회·새 문명>

마지막 줄이 들어가면 한국 근현대사가 상당히 다르게 보입니다.

특히 개벽파에서는 <국가>보다 <인간의 변화>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됩니다.

수운 최제우의 동학에서 시작하여 해월 최시형, 의암 손병희, 천도교, 증산계 종교, 원불교 등으로 확대해서 보면,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
<후천개벽>

같은 개념들이 중심에 옵니다.

즉 <누가 국가를 장악할 것인가> 이전에

<인간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인가?>
<새로운 세상은 어떤 인간관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는가?>

를 묻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해방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5. 올려주신 자료에서 특히 중요한 문장이 있습니다

검색자료에 소개된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의 초록에서는 개벽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고 물질과 정신, 동서의 사상 등 동서의 조화를 통한 새문명 창조를 지향했다.>

이 문장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함재봉의 분류는 대체로

<어느 외래 문명 모델을 선택했는가?>

라는 질문인데,

개벽파는

<우리 스스로 어떤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낼 것인가?>

라고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6. 그래서 ‘민족-민중파 = 친소/마르크스주의’는 지나치게 좁을 수 있습니다

특히 1970~80년대 한국의 민중사상까지 생각하면 더 복잡합니다.

당시 민중담론에는 마르크스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학,
민족주의,
기독교 민중신학,
함석헌의 씨알사상,
장일순의 생명사상,
가톨릭 사회운동,
농민운동

등이 서로 만났습니다.

이것을 전부 <친소련/마르크스주의>라는 하나의 계보로 설명하면 한국적 사상형성의 독자성이 상당 부분 사라집니다.

특히 <민중>과 <계급>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주체가 계급관계 속의 프롤레타리아라면, 한국 민중담론의 ‘민중’에는 농민·도시빈민·억압받는 사람뿐 아니라 민족적·도덕적·종교적 의미까지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부분은 <개벽> 계보와 연결해서 보는 것이 오히려 설명력이 높습니다.

7. 다만 ‘민중-민족파를 개벽파로 옮기자’고까지 하면 너무 멀리 갑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 유보가 필요합니다.

1970~80년대 민중운동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 민족해방론, 북한의 주체사상 등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민중-민족파는 사실 개벽파였다>

라고 바꾸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모델은 <두 계보가 합류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동학·개벽 ─────────┐
           ↓
        한국적 민중사상
           ↑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

여기에 다시

기독교 민중신학 ──────┐
함석헌·씨알 ─────────┤
민족주의 ───────────┤
농민·노동운동 ─────────┘

등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한국의 ‘민중’이라는 독특한 정치적·도덕적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훨씬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8. 이것은 함재봉의 전체 작업에 대한 꽤 근본적인 비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개신교 문제를 검토하면서 <함재봉은 하나의 계보를 선명하게 만드는 대신 복잡한 혼종성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그의 근대한국 계보는 기본적으로 <세계의 거대한 문명·이념들이 조선에 들어와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 서로 다른 한국인이 만들어졌다>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개벽파를 집어넣으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해집니다.

<한국인은 외부의 근대들을 선택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선 내부의 종교·철학적 자원을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근대를 만들려고도 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차이입니다.

올려주신 자료에서도 개벽파를 단순한 전통주의로 보지 않고 <척사파와 개화파 사이에서 전통과 서구를 융합·회통하면서 새로운 근대를 모색한 흐름>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사람 만들기>의 지도를 보완한다면 적어도 다음 <다섯 번째 계보>를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학 → 동학농민혁명 → 천도교·3·1운동 → 개벽사상 → 민족·민중사상의 한 흐름 → 생명사상·민중종교·시민사회운동>

이 계보를 넣고 나면 함재봉이 제시하는 <친일개화파 / 친미기독교파 / 친소사회주의파>라는 20세기 한국인의 삼분법 자체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개벽파 계보>가 21세기까지 이어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올려주신 자료에는 개벽을 <물질개벽·정신개벽>, 동서 문명의 회통, 생명과 새로운 문명의 문제로까지 확장하려는 현대적 시도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함재봉의 네 계보 + 개벽파라는 제5의 계보>를 만들어, 최제우 → 최시형 → 손병희 → 3·1운동 → 함석헌 → 장일순 → 생명운동까지 어디까지 역사적으로 연결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무리한 계보 만들기가 되는지를 검증해 보는 것이 다음 단계로 매우 흥미롭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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