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7

개화파의 대안으로 개벽파 - 함재봉의 계보에서는 왜 개벽파가 잘 안 보이는가

개화파의 대안으로 개벽파 - Google Search

AI Overview

개화파의 대안으로 대두된 개벽파는 조선 말기 서구 중심의 일방적 근대화(개화파)나 전통 수호(위정척사파)를 넘어, 동서양의 사상을 융합하고 주체적인 변혁을 추구한 제3의 근대 사상 및 운동입니다.
KCI +1


개화파와 개벽파의 차이
개화파: 서구 문명을 우위에 두고 기술·제도를 이식하려 함
위정척사파: 외세와 서구 문물을 배척하고 전통 질서 유지 고수
개벽파: 동학(천도교) 등 민족 종교와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전면적 대전환(개벽)을 모색
KCI +4


개벽파의 핵심 특징
주체적 변혁: 위로부터의 제도 개정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의식·삶의 대개벽 주장
회통적 사상: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융합해 새로운 시대 정신 창출
민중 중심: 외세 의존적 개화가 아닌 민중 주도의 자주적 근대화 지향
Explore an analytical perspective via the Professor Journal.
Read academic insights on religious recognition in KCI.
Review alternative modern paradigms discussed in Pres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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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개화·위정척사파 아닌 '개벽파'를 찾아서 - 교수신문
17 June 2022 — 의암은 “각자의 성령과 육신을 개벽하라”라고 말하여 '개벽'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고, 열린 리더...




KCI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의 사이에서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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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파, 한국적인 것의 운동!!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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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Dec 2025 — 척사파가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면, 개화파는 깜빡 눈이 멀어 버린 것입니다. 반면 개벽파는 반짝반짝 눈을 부릅떴습니다. 서늘한 눈으로 천하대세를 직시 ...Read more


개화·위정척사파 아닌 '개벽파'를 찾아서



교수신문
http://www.kyosu.net › articl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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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June 2022 — 개방을 주장하는 '개화파'와 쇄국을 주장하는 '위정척사파'로 대응했다는 것이 교과서의 일반적인 가르침이었다.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K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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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의 사이에서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고 물질과 정신, 동서의 사상 등 동서 ...Read more


인문과 천문을 다시보는 틀, 개벽파선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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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May 2023 —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개벽파선언'은 시중(時中)을 꿰뚫고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뭇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선언이 실언과 ...Read more


원불교사상연구원 허남진, 개화·개벽파 중심 종교인식 고찰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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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June 2019 — 개화파의 개화문명과 개벽파의 문명과 개벽을 설명한 그는 "개화파와 개벽파는 종교를 문명의 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 - 논문



DB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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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의 사이에서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고 물질과 정신, 동서의 사상 등 동서 ...Read more


개화운동과 근대적 개혁 - 네이버 블로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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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Oct 2009 — 개화는 원래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유교적 의미를 갖는 말이나 개항을 전후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모시는책방] 1. 며칠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개벽파선언 ...



Facebook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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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파화 을 모색했던 '개벽파'의 문제의식이 비로소 오늘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읽힐 수


[신간] 개벽파선언



천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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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Sept 2019 — ... 개화파/척사파로 구분해온 한국 근대사상에 '개벽파'라고 하는 제 3의 길과 사상과 운동이 있었음을 주목한다.근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기반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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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위정척사파 아닌 ‘개벽파’를 찾아서
화제의 책_『개벽의 사상사』 강경석 외 10인 지음 | 창비 | 304쪽
유무수
업데이트 2022.06.17

개벽은 주체적 실천 강조하는 한국적 근대를 의미
의암의 개벽은 종교적 각성과 사회적 실천이 연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문명사적 충격에 직면하여 당시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개방을 주장하는 ‘개화파’와 쇄국을 주장하는 ‘위정척사파’로 대응했다는 것이 교과서의 일반적인 가르침이었다. 이 책에서는 11명의 연구자들이 제3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는 ‘개벽파’의 계보(최성환, 최병헌, 최제우, 안창호, 한용운, 함석헌, 김수영 등)에 주목한다.





박소정 성균관대 교수(한국철학과)는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의암 손병회’의 시대로 나누어 ‘개벽’ 개념의 성립·계승·변용을 탐구했다.

수운은 「몽중노소문답가」(1861)에서 미래의 개벽을 의미하는 ‘다시 개벽’을 언급했다. “수운은 ‘천지개벽’을 ‘다시 개벽’이라는 말로 전환함으로써 개벽을 중국에서 유래한 전통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했다.” 주자학에서 발전시킨 순환론적 개벽은 이 세상의 소멸을 전제로 하며 미래의 개벽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보여주지만 ‘다시 개벽’은 다시 찾아올 태평성세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내포하며 우리가 만들어나갈 미래이다.

해월은 ‘다시 개벽’을 동학이 창도되기 전의 ‘선천개벽(先天開闢)’과 동학이 창조된 후의 세상을 의미하는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나눔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내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미래에 대한 전망과 실천 방향을 더욱 명확하게 수립했다. “선천과 구별되는 후천의 개벽이란 불가역적인 개벽으로서 선천의 도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 상황을 새로운 해법으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수운과 해월에 의해 사유된 ‘개벽’을 계승한 의암의 ‘개벽’은 종교적 각성과 사회적 실천이 긴밀한 관계로 얽혀 있는 개념화로 나아갔다. 의암은 “각자의 성령과 육신을 개벽하라”라고 말하여 ‘개벽’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고, 열린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개벽’이 ‘우리가 바뀌어야’ 하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문화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게 했다.

동학공동체의 개벽 개념은 미래에 전개될 개벽을 희망적으로 그려내고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 실천을 강조한다. 박소정 교수에 의하면 “‘근대’라는 말이 아직 정착하기 전이었던 이 시절에 ‘개벽’은 ‘한국적 근대’를 의미”하였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관련기사개벽의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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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Religous Cognition in modern Korea: Focusing on GaeHwa-Pa and GaeByeok-Pa

종교문화연구
약어 : 종문연구

2019, vol., no.32, pp. 155-183 (29 pages)


발행기관 : 한신대학교 종교와문화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종교학 > 기타종교학
허남진 /Namjin HEO 1


1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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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근대한국 종교인식을 통해 문명담론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개화파와 개벽파 모두 종교를 인민교화, 문명의 힘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인식의 기층에는 문명론이 얽혀 있다. 척사파는 유교중심의 중화주의적 문명을 주장했고, 개화파는 문명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며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등 서구적 근대를 지향했다. 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의 사이에서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고 물질과 정신, 동서의 사상 등 동서의 조화를 통한 새문명 창조를 지향했다. 개벽파는 전통의 시선으로 서구 근대를 응시했고, 다시 서구 근대의 시선으로 전통을 조명했다. 이를 통해 서구문명의 한계를 직시하고 나아가 그 극복과 대안을 마련하여 새로운 문명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This paper is an analysis of the theory of civilization through the religious cognition in modern Korea, focusing on the GaeHwa-Pa(開化派) and GaeByeok-Pa(開闢派). In other words, I want to analyze the discussion on new civilizational transition of modern Korea, focusing on religious cognition and civilization discourse. Both GaeHwa-Pa and GaeByeok-Pa recognized religion as the power of people’s enlightenment and civilization. But this base of religious cognition is intertwined with theory of civilization. The Chuksa-pa(斥邪派) advocated a Confucianism-centered Junghwa(中華) civilization, while the GaeHwa-Pa equated civilization with Christianity and actively aimed at Western modern. Unlike the Chuksa-Pa and the Gaehwa Pa, GaeByeok-Pa that emphasized Gaebyeok also responded to Western civilization and suggested a new view of civilization. The GaeByeok-Pa sought a new modern path by mutual penetrating Western ideas as well as traditional ideas between Chuksa-Pa and GaeHwa-Pa, and sought to creation a new civilization through harmony between East and West, including material, spiritual and East-West ideas. It can be summarized as a ‘Civilization of Harmonious Union’ that integrates religious thought and civilizational models of both East and West. At that time, the GaeByeok-Pa’s movement was a religious movement and social reform movement to build a world of human dignity and equality by Min(民) who took the responsibility. In this regard, the GaeByeok-Pa provided the ideological(思想的) assets that could lead to the Min’s subjectivity, Public-common(公共) and historical partici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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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파선언  천지북스
입력 2019.09.23 15:32
기자명장수경 기자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개화파/척사파로 구분해온 한국 근대사상에 ‘개벽파’라고 하는 제 3의 길과 사상과 운동이 있었음을 주목한다.



근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기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를 전망하는 두 젊은 ‘새벽세대’사상가는 개벽가의 사상이 근대 100년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낸 21세기 한국의 첫 번째 사상이며,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한 사상독립 선언임을 설파한다.



개벽파의 사상은 동서고금의 대합장을 위해, 자유 너무 자연을, 민주주의 너무 삼경 주의를, 공화정 너머 하늘정(天政)을 전망한다. 이로써 오늘 지구촌 인류가 직면한 기후붕괴, 생물 대멸종, 양극화의 위기 너무 지금 여기에서 미래의 생명평화 세계를 기약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



조성환, 이병한 지음 / 모시는 사람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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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개벽파'를 재건하자"

[유라시아 견문] 다른 백년, 다시 개벽 :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

이병한 역사학자 | 기사입력 2018.12.25. 

1. 천지개벽

설국열차는 느릿했다. 두 칸짜리 완행열차이다. 뜨문뜨문 간이역마다 한참이나 뜸을 들인다. 삿포로에서 꼬박 5시간을 걸려 이른 곳이 왓카나이(稚內), 일본의 땅 끝 마을이다. 북쪽 섬 홋카이도(北海道)하고도 최북단, 작은 마을에서 큰 바다가 펼쳐진다. 고즈넉하기 보다는 적막한 시골이었다. 하룻밤 새 통 눈이 그치질 않는다. 북쪽 섬과 북쪽 바다의 경계가 흐릿하다. 굳이 변경까지 찾은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일본 간 회심의 빅딜이 성사되었다. 사할린과 홋카이도를 다리로 잇겠단다. 그 국경다리가 닿는 첫 마을이 왓카나이였다. 2030년, 이 땅 끝 마을이 국경 도시로 변신한다.


사할린 북쪽으로는 오오츠크해가 열린다. 더 북쪽으로는 캄차카(Камчатка) 반도가 자리한다. 캄차카도 홋카이도도 화산폭발이 만들어낸 섬이다. 실은 일본 본토까지 그러하다. 자연지리로는 하나로되, 인문지리로써 딴 나라가 되었다. 나라를 막론하고 온천에 제격이다. 캄차카의 간헐천에서는 혹한의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솟아난다.

내가 이른 때는 7월 한여름이었다. 바닷바람이 유독 산뜻하다. 끈적거림이라곤 하나도 없다. 특유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공기는 상쾌하고 풍경은 장쾌하다. 기나긴 겨울을 버텨낸 뭇 생명이 폭발적으로 솟구친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판 너머로는 만년설을 인 화산의 자태가 눈이 시리다. 그 깨끗한 눈물이 녹아 더욱 투명해진 강물이 철철철 넘쳐흐른다. 강가에는 불곰들이 어슬렁거린다. 싱싱하고 신선한 킹연어를 맨손으로 잡아 잡순다. 도구를 쓰는 사피엔스 무리도 보인다. 킹연어와 킹크랩을 사다 나르는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수산업 무역회사들이 이미 즐비하다. 동시베리아와 동아시아가 합류하여 동유라시아가 되어간다.


방향을 틀어 삿포로에서 남하하면 하코다테(函館)에 이른다. 홋카이도의 남쪽 끝이다. 메이지유신 150주년, 북해도 개척의 첫 삽을 뜬 곳이다. 혼슈를 마주하는 해양 도시로 화려하다. 본토와 연결되는 신칸센 역도 자리한다. 2030년이면 삿포로까지 노선이 확장된다. 도쿄부터 삿포로까지, 태평양의 절경을 감상하며 고속열차 여행을 할 수 있다. 삿포로는 왓카나이와 하코다테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허브 도시가 될 것이다. 고로 홋카이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된다. 일본 또한 섬나라가 아니다. 사할린-홋카이도와 동시에 연해주-사할린 다리도 건설되기 때문이다. 북해도와 연해주가 직통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사할린을 통하여 일본 열도를 내달린다. 모스크바는 극서 런던과 극동 도쿄를 잇는 중간역이 된다. 1945년 패망 이래 일본은 태평양 국가로 맹성했다. 2045년 일본은 유라시아의 일원으로 반전하게 될 것이다. 대양과 대륙을 잇는 해륙국가로 변모한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가교가 될 것이다. 20세기 초반 유럽과 아시아 사이, 20세기 후반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 더는 좌고우면 할 것 없다. 21세기 신대륙과 구대륙을 아우르는 일본의 신시대이다.



캄차카 반도의 북쪽으로는 얄류산 열도가 길게 펼쳐진다. 끝내 끝에 달한 곳이 베링해협이다. 동유라시아, 동시베리아 하고도 최동단이다. 지구 꼭대기 북극이 지척이다. 전례 없던 바닷길이 열리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이 활발하다. 베링해협에서 좌회전하면 바렌츠 해의 무르만스크까지 한 걸음에 닿는다. '북극의 수도' 딕손은 이미 분주하다. 야말 LNG 프로젝트가 한창인 사베트 항구도 활기가 넘친다. 북러시아의 항만도시들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러시아의 서쪽, 발트해 국가들도 요동친다. 노르웨이에서는 키르케네스 항구가 앞서간다. 핀란드에서는 로바니레미 항만이 으뜸이다. 라트비아에서는 리가 항이 첫 손에 꼽힌다. 가장 주목할 나라는 핀란드이다. 현재 북극위원회 의장국이다. 2017년 시진핑 주석이 몸소 방문했다. 북유럽 항구를 유럽의 중원과 연결시키는 북극회랑 고속철도를 건설키로 했다. 핀란드의 코우볼라(Kouvola) 철도 포럼을 이어받은 곳은 요동반도의 다롄이다. 한겨울에 서유라시아에서 다보스 포럼이 열린다면, 한여름 동유라시아에서는 다롄 포럼이 열린다. 발트해부터 발해만까지, 스칸디나비아 반도부터 홋카이도까지 북유라시아 도시들 간 연결망 사업에 의기투합했다.



▲ 베링해협. ⓒ이병한






북극회랑 고속철도는 남진하여 남/북 유럽을 더욱 촘촘히 묶는다. 북해와 지중해를 뒤섞는다. 남유럽은 지중해를 사이로 북아프리카를 마주본다. 가장 가까운 곳이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 지브롤터 해협이다. 볕이 좋은 날이면 서로의 국경이 바라보일 만큼 도탑다.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해저 터널을 놓기로 했다. 서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가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북아프리카의 서쪽 끝이 모로코라면, 동쪽 끝에는 이집트가 자리한다. 동아프리카와 서아라비아 반도에도 다리가 생긴다. 홍해를 가로지르는 이집트-사우디 대교이다. 아랍의 패권을 다투었던 백년의 앙숙이 이웃지간이 된다. 아라비아 해를 지나 벵골 만에 이르면 남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에도 해양다리 건설이 논의 중이다. 인도양의 동/서로도 신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지중해, 유장했던 인도양 세계가 유려하게 부활한다.



▲ 다롄 국제회의장. ⓒ이병한




구세계의 귀환, 앞서가는 곳은 역시 '지속의 제국' 중국이다. 이미 홍콩과 마카오를 광동성과 잇는 다리를 완성시켰다. 복건성과 대만을 엮는 남중국해 다리 또한 시간문제이다. 신시대의 물결은 황해까지도 이른다. 요동반도의 다롄에서부터 산동반도의 옌타이를 잇는 해저터널을 건설한다. 더 나아가 산동반도를 한반도와 연결시키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유력한 후보지로는 인천과 군산, 평택이 꼽힌다. 황해는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를 잇는 동북아의 지중해가 될 것이다. 서해만도 아니다. 남해도 출렁인다. 큐슈의 후쿠오카와 부산, 거제를 잇는 해저터널도 재차 거론되고 있다. 동해와 서해와 남해, 한반도의 3면이 모두 꿈틀거린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구대륙만 직통하는 것도 아니다. 베링해협에서 우회전하면 알래스카가 곧장이다. 빙하기, 시베리아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생활공동체였다. 아이스로드, 얼음길을 따라서 사람들이 오고갔다. 동시베리아와 서알래스카 사이에도 바닷길을 닦는다. 절반은 해저 터널로, 절반은 해양다리로 만드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구대륙과 신대륙을 잇는 글로벌 신시대가 코앞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서부를 질주하는 캘리포니아 종단 고속열차가 달릴 것이다. 멕시코를 지나 칠레와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가닿는다. 20세기에는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가 시베리아와 아메리카에 각기 생겼다. 21세기는 동반구와 서반구를 주파하는 지구 횡단열차 시대가 열린다. 5대양 6대주라는 말도 과거지사가 된다. 지구를 육로로 일주하는 신세기가 도래한다. 지구는 둥글다.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친구를 다 만나고 돌아온다. 멀지않은 미래이다, 2050년, 불과 한 세대 이후이다.



천하의 지붕, 북극의 빙하는 계속 녹아내린다. 북극곰은 눈물을 흘린다. 사피엔스는 눈빛을 반짝거린다. 얼음물 사이로 파랑이 일렁인다. 환호성을 내지르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마저 있다. 신대륙 개척하듯 북극항로 건설에 사활이다. 그 새로이 열리는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판단이 명료하게 서지 않는다. 천재지변이 될지, 천재일우일지 가늠하기 힘들다. 멈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돌이키기 힘들다. 앞으로 20년 아무리 애쓴다한들, 지난 200년 화석연료 남용의 후과를 막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운명이라 하겠다. 업보라고도 하겠다. 인간의 활동이 지질학적으로, 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인류세로 진입한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가운데서도 말석을 차지했던 인간이 천지개벽의 주체로 등극한 것이다.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지리를 재창조하고 지구를 재구성한다. 해안선을 다시 그리고 지표면의 고저를 변동시킨다. 하늘의 진노보다 땅의 분노보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한 지구사의 신시대가 개막한다.

2. 물질개벽

21세기, 더 이상 독립국가는 없다.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 독립(In-dependent)은 적폐이다. 20세기형 민족해방운동도 앙시앙레짐이다. 땅따먹기를 일삼는 제국주의 시대의 방편이었을 뿐이다. 경쟁의 논리가 바뀐다. 연결력 경쟁을 한다. 영토의 정복(conquer)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인물과 사물을 연결(connect)시키는 경합이 성/쇠를 가른다. 담을 치고 성을 쌓는 자는 고립된다. 길을 내는 자가 주도한다. 더 많은 길을 닦고 더 많은 길을 여는 나라가 지도국이 된다. 길 내기와 길들이기는 불가분이다. 길을 깔면 깔수록 길을 들일 수가 있다. 영토를 더욱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장소를 연결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한층 중요해진다. 자연스러움(자유무역)과 억지스러움(보호무역)이 충돌한다. 가릴 것 없고 꺼리지 않는 원활한 흐름과 덜컥거리는 마찰이 경쟁한다. 한쪽은 국경을 봉쇄하고 규제를 강화하고 제재를 가한다. 다른 쪽은 자원과 상품과 자본과 기술과 사상과 데이터의 교환과 거래를 촉진한다. 뚫리면 강해질 것이요, 막히면 약해질 것이다. 세계 최대의 연결망을 보유한 국가가 21세기를 선도하게 된다.


국민국가(Nation-State) 또한 유들유들해진다.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연결자(Node-State)가 된다. 노마디즘(Nomadism)이 내셔널리즘을 잠식한다. 그 연결(Inter-dependent) 국가들의 집합도를 19세기형 세계지도, 만국전도로는 재현할 수가 없다. 국가 간 체제로 쪼개져 있는 현재의 세계지도가 미래의 청사진, 천하도를 왜곡시킨다. 글로벌 허브 도시들 간의 횡단적 네트워크(connectivity atlas)를 그려야 한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송유관과 인터넷과 케이블 연결망을 입체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흡사 인체도에 방불할 것이다. 지구를 몸통으로 삼아 사람과 자본과 정보와 에너지가 피처럼 흐르고 기처럼 통하고 숨처럼 드나든다. 터닝 포인트, 물류와 문류와 인류의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 티핑 포인트, 더더욱 많은 연결망이 누적되어 전혀 격이 다른 세계로 도약한다. 나라님에 충성하는 난세가 저물고, 하나님/하늘님/한울님을 모시고 섬기고 받드는 치세의 논리가 재귀한다. 포스트-웨스트(Post-West), 만인이 만국에 가로막히지 않았던 천하가 환생하고 움마가 재생한다.


하여 유라시아는 더 이상 '거대한 체스판'도 아니다. 인과 연의 인드라, 그물망이다. 접속하고 접촉하고 접대한다. 외계에서 관찰한 지구별의 상징 또한 만리장성이 아니게 된다. 억리와 조리에 달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될 것이다. 지상의 길이 달라지면 땅의 논리, 지리 또한 전변한다. 19세기 주조된 '유럽'이라는 개념도 물렁해진다. 타자로 강요되었던 '아시아'라는 발상 또한 물컹해진다. 유럽과 아시아를 따로 분리하기가 힘들어진다. 고로 유라시아는 하나이다. 또 유라시아는 여럿이다. 내 안에 네가 있고, 너 안에 나도 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는 자타불이의 지평으로 올라선다. 남과 나를 가르지 않는 자리이타의 경지에 도달한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이요, 온 마음이 한 마음이다.


앞으로 30년, 지난 300년보다 더 많은 연결망이 만들어진다. 2050년이면 유라시아 전체가 일심동체로 엮이고 묶이게 된다. 남으로는 인도양, 북으로는 북극해, 서로는 대서양, 동으로는 태평양. 네 개의 대양을 아우르는 하나의 대륙이다. 사해동포 감각이 실감으로 승한다. 유라시아를 중원으로 구대륙 아프리카와 신대륙 아메리카를 좌/우로 겸장하게 될 것이다. 고로 유라시아는 다시 지구의 중원이다. 고인류의 시원인 아프리카와 신인류의 고향인 아메리카를 잇는 개신(改新)인류의 요람이 된다. 구대륙의 쇠락과 신대륙의 득세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글로벌 균형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언 30년 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념과 체제 대결이 저물었다. 한쪽의 승리, 역사의 종언이 아니었다. 일방의 굴욕을 강요하는 서구적 근대의 마침표였다. 서세동점의 끝물이었다. 바로 그해 World Wide Web이 탄생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상의 길과는 또 다른 천상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오프라인과는 또 다른 온라인 신천지의 개막, 디지털 창세기였다. 축의 시대, 천주일가와 천하일가는 소원했다. 천주와 천하와 움마가 공진화하여 지구일가(Global First)를 이루지 못했다. 이제 축의 시대에 망의 시대가 접속한다. 망과 망으로써 축과 축을 소통시키고 융통시킨다. 축과 축을 잇고 땋는 망과 망이 겹겹으로 포개진다. 축과 망이 상호진화 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공진화한다. 상전벽해, 물질이 개벽한다.

3. 정신개벽

더는 개인(In-dividual)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사문화될 개념이다. 디지털 신세계가 각별한 것은 만인과 만국만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 인터넷 시대가 열린다. 인공지능 시대가 개창한다. 자가용도 냉장고도 유사-의식을 탑재한다. 스스로 도로를 주행하고, 알아서 식품을 주문한다. 자동에 자각을 보태어 자율에 도달한다. 생산 활동의 도구에서 생명 운동의 주체로 진화하는 것이다. 인물과 동물과 식물은 물론이요 광물까지 접속한다. 만인과 만물이 활물(活物)로써 소통한다. 만물의 영물(靈物)화, 물질개벽의 특이점을 돌파한다.


장차 생물과 미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마저 희미해 질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분단체제가 허물어진다. 존재론과 인식론의 기반이 통으로 허물어진다. 만민평등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만물평등, 제물평등만이 오롯하다. 나의 마음 됨됨이와 남의 마음 씀씀이가 일파만파, 실시간으로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죄와 벌의 시간차가 초 단위로 축소된다. 인과응보의 순환 또한 전생과 후생으로 갈리지 않게 된다. 신속하고도 광범위한 업보의 네트워크가 여여하게 펼쳐진다. 양심과 욕심이 전천후로 전방위로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고로 천상에도 천하에도 유아독존 할 수가 없다. 근대적 주체의 죽음, 포스트휴먼이고 트랜스휴먼이다. 에고를 다스려 슈퍼에고로 거듭나야 한다. 헛나에 휘둘리지 말고 참나를 갈고 닦아야 한다. 소아에서 대아로 거듭나야 한다. 몰아를 연마하고 무아를 단련하야 진아에 도달해야 한다. 자아와 자유와 자연을 합일시켜야 한다. 일천년 전 가라사대, 천인합일이라 하셨다. 일백년 전 가로되,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였다.


더 이상 이성만으로는 인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인공이 인간을 월등하게 앞지른다. 인간지능은 인공지능에 백전백패, 단 일승도 거두기 힘들어진다. 격차는 나날이 벌어질 것이다. 족탈불급, 비교불가하다. 이성과 이성의 네트워크, 집합지성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성적 인간은 백세 인생의 잉여로 전락할 것이다. 서둘러 사람의 근간을 재정립해야 한다. 논리와 합리보다 성리와 도리가 더 중요해진다. 무릇 천리를 배우고 익혀서 성리를 밝히고 도리를 다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었다. 사람은 나면서 이미 사람으로 존재하되, 돌아가는 순간까지 영원히 사람이 되어가야 할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사람 되기가 인류의 숙제가 된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넘어서는 존재, 참사람 되기가 영구혁명=천명이 된다.



새로운, 색다른 견해도 아니다. 150년 전 이르되 "인내천"(人乃天), 사람 안의 하늘을 발굴하고 한울을 발현하는 것이 평생의 학습이라 했다. 공자는 일흔이 되어서야 천성을 닮은 인성,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는 범인들에게도 30년이나 더 긴 세월이 덤으로 주어진다. 미숙한 사람에서 완숙한 사람으로, 설익은 인간에서 무르익은 인간으로, 홍익인간에 육박해 가야 한다. 인권을 앞세우기보다 인륜을 다해야 한다. 누리기보다는 모시고 섬겨야 한다. 하늘 아래, 땅 위에, 공손하고 겸허해야 한다. 장차 지구의 운명은 오롯이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세상만사 사람 책임이다. 그러한 정신개벽, 의식의 빅뱅이 수반되지 못하면 사피엔스는 정보사회의 숙주로 전락한다. 임포메이션과 데이터로 강등된다.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의 소외를 고민했다. 정보화 시대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소외되는 백척간두에 처하게 된다. 노동의 해방보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탈노동 속도가 더욱 빠르다. 깨어나야 한다. 깨우쳐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생생하게 생각하고, 생생으로 생활해야 한다. 선업은 더하고 악업은 덜어내는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




▲ <유라시아 견문> 3권.ⓒ이병한공부부터 바뀌어야 한다. 골방에서 골만 쓰는 과학은 거두어야 한다. 지나치게 뇌에 집중한다. 이성 중심주의의 폐단이 뇌 과학 일방으로 치달았다.



부디 몸을 써야 한다. 온 몸을 통째로 다 써야 한다. 혼신을 다해야 한다. 심신을 변혁시켜야 한다. 유적 존재로서 인간의 근간은 노동에 있음이 아니다. 기도와 수도야말로 사람됨의 기본이었다. 명상하고 수련하고 수양함이 사피엔스의 남다름이다. 태초의 빅뱅, 우주가 발생했다. 지구가 발생하고 생명이 생겨났다. 그 우주적 진화 과정을 자각적으로 의식하는 생각도 발생했다. 생명에서 생각으로의 도약에 사람이 등장했던 것이다.

노동은 부차적이다. 생명을 묵상하는 생각이야말로 근본적이고 근원적이다. 생명을 생각하는 되먹임과 되새김이야말로 인간의 생활이자 생업인 것이다. 물질세계는 더더욱 복잡해 질 것이다. 복합계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 의식은 더더욱 집중도가 높아져야 한다. 얼의 완성도를 고취시켜야 한다.



앎의 대상 또한 외부에서 내면으로 반전시켜야 한다. 최첨단 과학은 사람과학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뜻하지 않는다. 수심정기(守心正氣), 수련학을 말한다. 문헌학과 서재학에서 수양학과 수도학로 진화한다.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 만인이 주인 되는 초기 민주화 시대를 지나서 지상과 천상의 변증법, 만민이 주님 되는 후기 민주화 시대로 진화한다. 만인이 주인이자 주님으로 주권자가 된다함은 공소한 레토릭이 아니다. 만인이 만물과 접속함으로써 모두가 왕년의 황제와 천자의 권능만큼 파급력을 미치게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함도 옛말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이제는 독배가 될 수도 있다. 일인이 욕심을 내고 흑심을 부리면 일사천리 지구적 영향을 미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발상 또한 철지난 격언이다. 아랫물과 윗물을 나눌 수가 없다. 모두가 맑아지고 전부가 밝아져야 한다. 고로 선천시대, 지배층을 도덕적으로 훈육시켰던 원리 또한 만인들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 만인이 성인(聖人)이 되고, 만민이 천민(天民)이 되어야 한다. 만인이 갈고 닦지 않으면 후기 민주, 후천개벽의 때가 오더라도 만개하지 못한다. 후천세계의 촛불을 밝히고 기운만 지피다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후기민주 시대가 오고 있음에도, 혹은 이미 왔음에도 초기민주에 길들여지고 선천세계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후천개벽의 사명을 받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문법도 달라져야 하겠다. 지리가 동/서로 나뉘지 않듯이 천리 또한 성/속으로 가름할 수 없게 된다. 세속화에서 탈세속화로 재영성화로, 성과 속이 하나로 융합된다. 이성과 영성이 합류한다. 혼/백과 영/육이 공진화한다. 원시반본 천지회복(原始反本 天地回復), 천상의 신학과 지상의 법학을 회통시키는 천지의 동학(東學)도 되살아난다. 지난 백년, 법가의 득세가 저물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규율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를 규정했던 법학은 사후적 대처이다. 만인과 만물이 전면적이고 즉각적으로 소통하는 신시대에는 사후 약방문, 뒷북이 되기 십상이다. 영토에 고정되고 국가에 귀속되는 법학으로부터, 하늘과 땅과 사람을 모시고 살리는 동학으로 반전시켜야 한다. 정과 성으로 남을 모시고 님을 섬겨야 한다. 제물평등과 경천애인, '정치적 영성'을 일깨워야 한다. 깨뜨림과 깨우침과 깨달음의 공진화, 정신의 개벽이다.


▲ 경주 용담정. ⓒ이병한
4. 다시 개벽파

개벽파가 일어나야 한다. 개벽파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개화파만 있던 것이 아니다. 마주 편에 척사파만 있던 것도 아니다. 개화 대 척사,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지난 백년의 적폐이다. 승자가 쓴 역사이다. 승리한 개화파가 힘으로 쓴 역사이다. 척사파를 나무람으로써 정당성을 구하고 정체성을 취했다. 뜻으로 본 역사를 써야 한다. 개벽파야말로 역사의 주체였다. 줄기차게 옹골차게 변화와 변혁을 추동했다. 1860년 동학의 창도야말로 새 시대의 개막, 개벽의 태동이었다. 낡고 묵은 조선의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새 나라'를 표방했다.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의 환골탈태, 신시대의 신문명 개벽천하(開闢天下)를 창안한 것이다.




고로 1876년 강화도조약이 근대의 출발점이 아니었다. 개항기니 개화기니 시대인식 또한 진부한 개념이다. 서구적 근대를 표준으로 삼아 외부의 충격을 도드라지게 강조하는 편향되고 편벽된 사관이다. 1860년 이후 '개벽기'야말로 19세기의 올바른 이름, 정명(正名)일 것이다. 유학국가를 고집하는 척사파도 서학국가를 맹종하는 개화파도 지배계층의 보/혁 갈등에 그쳤을 따름이다. 동학국가를 표방하는 개벽파야말로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민주주의의 첫 깃발을 휘날린 것이다. 동방적 민주화의 원형이자 영성적 근대화의 원조였다. '새 정치'의 마르지 않는 샘, 원천이었다. 1987년 민주화 전후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고민했다면, 2017년 촛불혁명 이후로는 <개벽 전후사의 인식>을 궁리해야 하겠다. 지난 150년의 역사를 '개벽사'(開闢史)로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다시 개벽의 환생을 재촉하고 촉발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학술로만 그칠 일도 아니다. 사회운동가로서 개벽파의 불씨를 되살리고 재점화하는 실천 활동에 매진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서구적 근대를 반복하고 변주하는 양대 세력, 개화좌파(진보)와 개화우파(보수)가 '더불어한국당'으로써 지루하게 경합하는 구시대와 구체제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토착적 근대의 회생과 창생을 꾀하는 신시대와 신문명의 새 물결, 개벽의 파도를 일으키고 싶다. 그것이 내 나름의 '적폐 청산' 과업이다.




▲ 천도교 중앙대교당. ⓒ이병한개벽파 재건의 적기는 2019년 3월 1일로 보인다. 동학의 후예 천도교가 이끌고 서학의 후신 기독교가 보조를 맞추어 3.1운동이 일어났다. 서학은 가까스로 토착화되었고, 동학은 마침내 세계화됨으로써 3.1운동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동학과 서학의 연합이자 개벽파와 개화파의 협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국의 독립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태평천하, 지상천국을 소망했다. 천국(서학)과 천하(유학)와 천도(동학)의 공진화, 지구일가(地球一家, Global First)를 염원한 것이다.





20세기 전반기 탈식민운동은 동학/개벽파가 전위에 섰다. 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대종교 등이 독립운동의 중추가 되었다. 1948년 분단정부 수립과 1950년 한국전쟁은 개벽파에 찬물을 끼얹는다. 미/소가 주도하는 냉전체제에 깊숙이 말려듦으로써 남/북 분단, 좌/우 갈등이 전면에 도드라졌다. 고로 20세기 후반 탈분단, 탈냉전 운동에는 개화파가 맹위를 떨쳤다.

개화우파(자유주의)와 개화좌파(사회주의)가 민주화를 주도하는 사이, 개벽파는 수줍게 후방 지원에 머물렀다. 2019년 3.1 100주년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을 도모할 만하다.



조급할 것도 없다. 100년 전과는 시세가 달라졌다. 개벽파를 좌초시켰던 지난 120년, 서세동점 또한 끝물이다. 최후의 서세 미국도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동/서가 재균형을 찾아간다. 구대륙과 신대륙도 균형을 맞추어간다. 앞으로 30년, 한 세대를 내다보면서 착실하게 진지전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개벽파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매체부터 필요하다. 다음은 학당을 세워야 한다. 대안적 학술과 교육으로 새 학파를 일구어야 한다. 그래야 새 사상에 기초한 새 정파, 새 정당도 출범시킬 수 있다. 2045년, 해방 100주년 언저리에는 개벽파가 여당이 되고 주류가 되는 후천세계의 원을 크게 그려보는 것이다. 통일헌법 또한 응당 동서고금을 회통한 신동학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서구파와 동구파에 주눅 들지 않는 토착파의 기개로써 나라다운 나라를 이룩하는 것이다.



일국적 성/속 합작에 그칠 것도 아니다. 2045년은 UN 창설 100주년이기도 하다. 개화의 총본산인 UN에 버금가는 개벽의 총아로서 UR(United Religions)을 출범시킬 적기이기도 하다. UR을 통하여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을 지구적 수준에서 전개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구적 근대에 걸맞는 후천 개벽의 대해(大海)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신동학을 '동'(東)에만 가두지 말아야 한다. 동아시아 또한 이미 좁다. 동유라시아, 동반구 넘어, 전 세계로 방류하고 환류시켜야 한다. '동학의 세계화', '개벽의 지구화'이다. 그 사업을 감당하라고 익산에 온 것 같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만인이 은인이고, 모두가 은혜이다.




▲ 원불교 익산 성지.ⓒ이병한
(개벽의 성소, 미륵 마을 익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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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사상연구원 허남진, 개화·개벽파 중심 종교인식 고찰
기자명 유원경 기자
입력 2019.06.07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2019 춘계학술대회에 참여해 개벽과 개화를 주제로 연구 발표한 허남진 연구원. 그는 근대 한국 종교 인식에 있어 개화파와 개벽파의 비교분석을 이끌어 근대 한국 종교인식을 고찰했다.

그는 "지금까지 서구 종교의 새로운 개념이 어떻게 인식되고 수용됐는지의 논의는 상당한 연구 성과가 있었다. 또한 개화파와 개벽파의 종교인식에 대한 논의는 상당한 연구의 진척을 보여 왔지만, 이 둘의 논의를 비교 검토해 어떠한 유의미한 특징이 있는지의 논의는 미진하다"며 "개화파와 개벽파의 '종교'인식에 관한 비교분석은 근대 한국 종교 개념의 계보로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근대한국 종교의 공공성을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사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화파의 개화문명과 개벽파의 문명과 개벽을 설명한 그는 "개화파와 개벽파는 종교를 문명의 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개화파가 서구적 근대화를 표방했다면, 개벽파는 전통사상을 자산으로 세상을 열어가기를 목적하며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며 "현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은 문명전환의 시기에 어떤 문명을 창조해 가야하는 것인가이다. 지나간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지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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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Religous Cognition in modern Korea: Focusing on GaeHwa-Pa and GaeByeok-Pa

논문 기본 정보저자정보
허남진(원광대)저널정보한신대학교 종교와문화연구소(구 한신인문학연구소)종교문화연구종교문화연구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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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근대한국 종교인식을 통해 문명담론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개화파와 개벽파 모두 종교를 인민교화, 문명의 힘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인식의 기층에는 문명론이 얽혀 있다. 척사파는 유교중심의 중화주의적 문명을 주장했고, 개화파는 문명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며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등 서구적 근대를 지향했다. 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의 사이에서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고 물질과 정신, 동서의 사상 등 동서의 조화를 통한 새문명 창조를 지향했다. 개벽파는 전통의 시선으로 서구 근대를 응시했고, 다시 서구 근대의 시선으로 전통을 조명했다. 이를 통해 서구문명의 한계를 직시하고 나아가 그 극복과 대안을 마련하여 새로운 문명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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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개벽파>는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강좌 <한국인의 탄생>에 나타나지 않는군요. 민중-민족파를 친소련/맑스주의파에 합세시키는데, <개벽파>에 더 맏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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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매우 예리하고 깊이 있는 통찰이십니다.

지적하신 대로 학계(백영서, 조성환, 이병한, 허남진 등)에서 다루는 <개벽파>는 동학(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대종교 등 민중적·토착적 근대화와 사상적 융합(동서 회통)을 추구한 흐름을 가리킵니다.

함재봉 박사의 <한국 사람 만들기> 및 <한국인의 탄생> 프레임과 비교했을 때, 왜 질문하신 내용처럼 "민중·민족적 동학/개벽 세력이 친소련/마르크스주의파에 흡수·대체된 것처럼 느껴지는지", 그리고 함 박사의 분류에서 <개벽파>가 왜 빠지거나 다르게 처리되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1. <개벽파>의 사상적 정체성: 제3의 길

학계에서 정의하는 개벽파는 19세기 말 서구 문명에 대한 반응 중 '제3의 길'이었습니다.

  • 위정척사파: 성리학적 중화 질서 고수 (쇄국)

  • 개화파: 서구/일본식 하드웨어 및 제도 이식 (외세 의존적 근대)

  • 개벽파 (동학·천도교·원불교 등): "서학(서구)을 무조건 좇지도 말고 척사(유교)에 갇히지도 말자." 전통 사상에 서구 사상을 회통(회통적 사상)시켜, '다시 개벽'을 통해 아래로부터 민중 주도의 자주적·영성적 근대를 만들자는 흐름이었습니다.

2. 함재봉 프레임에서 <개벽파>가 빠지거나 마르크스주의파로 넘어간 이유

함재봉 박사는 근대 한국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을 5가지(친중 위정척사파,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 친소 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로 분류합니다. 여기에서 동학/개벽파의 계보가 마르크스주의나 민족주의 프레임에 합세한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함 박사 고유의 분석 프레임적 한계와 사상사적 관점이 작동합니다.

(1) 거대 '해양 세력(서구)'과의 만남 중심의 사구 구도

함 박사의 프레임은 한반도가 닫힌 유교 체제에서 벗어나 어떤 외부 '문명사적 모델(중국, 일본, 미국, 소련)'과 결합했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따라서 토착적으로 자생한 민중 종교 및 사상 운동(동학, 개벽파)은 함 박사 관점에서는 독립된 '지속 가능한 국가 건설 모델'이라기보다는, 기존 성리학 체제의 파탄 속에서 분출된 '민중적 반발/민족주의적 에너지'로 축소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 역사적 실제: 개벽파(동학/좌파)와 마르크스주의의 교차

세진님께서 지적하신 "민중-민족파를 친소련/마르크스주의파에 합세시킨다"는 느낌은 실제 한국 근현대사의 인적·사상적 이동 경로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 동학·민중 운동의 마르크스주의로의 이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후, 억압받던 민중 세력과 반제국주의·반봉건을 부르짖던 토착 민중 운동가들은 1920년대 시베리아 혁명 및 볼셰비키 혁명 여파 속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친소 공산주의파)를 강력한 투쟁 도구로 받아들였습니다.

  • 함 박사는 이 과정을 사상사적으로 포착하면서, 19세기 말의 동학·민중적 에너지를 별도의 지속 가능한 문명 모델로 독립시키기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강력한 조직과 이념을 제공한 '친소 공산주의파' 및 '인종적 민족주의파'라는 틀 안으로 흡수되어 재편된 것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3. 세진님의 지적이 타당한 이유

세진님의 말씀대로, 함재봉의 5가지 분류는 <자생적·토착적 근대성(개벽파)>의 지분을 과소평가하거나 생략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독립된 사상으로서의 개벽파: 동학(천도교), 원불교, 증산교 등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인내천(人乃天), 보국안민, 물질개벽·정신개벽 등은 서구의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는 차별화된 한국적 평등주의와 영성적 근대화의 틀을 갖고 있었습니다.

  • 함재봉 프레임의 빈자리: 함 박사가 친미 기독교파와 친일 개화파라는 '서구/해양적 모델'의 우월성과 국가 수립 기여도를 부각하다 보니, 동서양을 회통하려 했던 민중 주도의 자생적 개벽 운동을 '친소 마르크스주의'나 '단순 민족주의'로 통합·처리해 버린 측면이 존재합니다.

요약

세진님의 관점은 매우 정확한 사상사적 비판입니다.

함재봉 박사는 "강대국/서구 문명 모델과의 결합"을 기준으로 5대 정체성을 나눴기 때문에, 토착적이고 민중적인 <개벽파>를 독립된 문명 모델로 두기보다 일제강점기 친소 공산주의파나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물적·정신적 기반으로 흡수시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듯, 척사파(위정척사)와 개화파 사이에서 동서양을 회통하며 민중의 주체성을 부르짖은 <개벽파>는 함 박사의 5대 분류에서 빠져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 '한국 근대 사상의 결정적 제3의 축'으로 평가하는 것이 사상사적으로 훨씬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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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그 지점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한국인의 탄생>을 이해할 때 상당히 중요한 빈자리라고 봅니다. 올려주신 검색자료를 보면 그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자료에는 아예 개화파·척사파와 구별되는 <제3의 길>로 개벽파를 설명하는 연구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구별해야 합니다. <개벽파>라는 범주 자체가 함재봉이 사용하는 역사적 분류와 동일한 수준에서 학계 전체가 합의한 고정 범주는 아닙니다. 최근의 사상사 연구자들이 동학·천도교·증산교·원불교 등의 흐름을 하나의 근대적 사상계보로 재구성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해석적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을 전제하면, 말씀하신 문제 제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1. 함재봉의 계보에서는 왜 개벽파가 잘 안 보이는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를 크게 단순화하면 근대 한국인의 형성을 몇 개의 경쟁적 계보로 설명합니다.

<위정척사파>
유교적 조선의 정통을 지키려는 흐름

<친일개화파>
서구 근대를 받아들여 국가와 사회를 근대화하려는 흐름

<친미개화파·기독교 계열>
개신교와 미국식 근대성을 받아들이는 흐름

<친소·공산주의 계열>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를 통해 민족해방과 사회혁명을 추구하는 흐름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이 계보들이 남북한의 서로 다른 국가건설로 이어집니다.

이 분류법의 특징은 <한국인이 외부에서 들어온 거대한 근대 문명체계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서구 근대
미국/개신교
소련/마르크스주의

가 중요한 축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틀로는 <동학>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2. 동학은 위정척사도 개화파도 마르크스주의도 아닙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동학은 서양을 거부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 성리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즉,

<위정척사>
“서양을 거부하고 유교적 질서를 지키자.”

<개화>
“서양의 발전된 제도와 지식을 받아들이자.”

<동학·개벽>
“기존 조선도 서양도 그대로 답이 아니다. 인간과 세계 자체가 새 시대에 들어간다.”

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올려주신 자료에 소개된 허남진의 연구도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척사파는 유교 중심의 중화주의 문명을, 개화파는 기독교와 서구 근대를 지향한 반면, <개벽파는 척사파와 개화파 사이에서 전통사상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하여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놓으면 정말로 <제3의 근대>라고 부를 만합니다.

3. 그렇다면 ‘민중-민족파’는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말씀하신 생각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함재봉이 20세기의 민족주의적·민중적 급진운동을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계보와 강하게 연결한다면, 그 설명에는 분명히 놓치는 것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중>이라는 개념에는 적어도 두 계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 계급 → 노동자·농민 → 민중 → 사회혁명>

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앞서 또 하나가 있습니다.

<동학 → 사람이 곧 하늘 → 민(民)의 존엄 → 동학농민운동 → 천도교 → 3·1운동 → 민족적·민중적 주체>

라는 계보입니다.

둘은 나중에 서로 만나기도 했지만 <출발점이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한국의 민중사상을 전부 마르크스주의 계열 안에 넣으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수십 년 앞서 대규모 농민 대중운동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파’라는 개념을 넣으면 함재봉의 지도가 달라집니다

저라면 함재봉의 계보에 한 줄을 더 추가하겠습니다.

계보근대에 대한 기본 태도이상
위정척사파전통 수호성리학적 도덕국가
개화파서구·일본 근대 수용근대 국민국가
기독교계기독교·미국 근대 수용기독교적 근대사회
사회주의파자본주의 근대 비판사회주의 사회
<개벽파><동서양 모두 비판적으로 재구성><새 인간·새 사회·새 문명>

마지막 줄이 들어가면 한국 근현대사가 상당히 다르게 보입니다.

특히 개벽파에서는 <국가>보다 <인간의 변화>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됩니다.

수운 최제우의 동학에서 시작하여 해월 최시형, 의암 손병희, 천도교, 증산계 종교, 원불교 등으로 확대해서 보면,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
<후천개벽>

같은 개념들이 중심에 옵니다.

즉 <누가 국가를 장악할 것인가> 이전에

<인간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인가?>
<새로운 세상은 어떤 인간관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는가?>

를 묻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해방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5. 올려주신 자료에서 특히 중요한 문장이 있습니다

검색자료에 소개된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 — 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의 초록에서는 개벽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통사상뿐만 아니라 서구 종교사상을 융합·회통시켜 시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의 길을 모색했고 물질과 정신, 동서의 사상 등 동서의 조화를 통한 새문명 창조를 지향했다.>

이 문장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함재봉의 분류는 대체로

<어느 외래 문명 모델을 선택했는가?>

라는 질문인데,

개벽파는

<우리 스스로 어떤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낼 것인가?>

라고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6. 그래서 ‘민족-민중파 = 친소/마르크스주의’는 지나치게 좁을 수 있습니다

특히 1970~80년대 한국의 민중사상까지 생각하면 더 복잡합니다.

당시 민중담론에는 마르크스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학,
민족주의,
기독교 민중신학,
함석헌의 씨알사상,
장일순의 생명사상,
가톨릭 사회운동,
농민운동

등이 서로 만났습니다.

이것을 전부 <친소련/마르크스주의>라는 하나의 계보로 설명하면 한국적 사상형성의 독자성이 상당 부분 사라집니다.

특히 <민중>과 <계급>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주체가 계급관계 속의 프롤레타리아라면, 한국 민중담론의 ‘민중’에는 농민·도시빈민·억압받는 사람뿐 아니라 민족적·도덕적·종교적 의미까지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부분은 <개벽> 계보와 연결해서 보는 것이 오히려 설명력이 높습니다.

7. 다만 ‘민중-민족파를 개벽파로 옮기자’고까지 하면 너무 멀리 갑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 유보가 필요합니다.

1970~80년대 민중운동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 민족해방론, 북한의 주체사상 등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민중-민족파는 사실 개벽파였다>

라고 바꾸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모델은 <두 계보가 합류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동학·개벽 ─────────┐
           ↓
        한국적 민중사상
           ↑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

여기에 다시

기독교 민중신학 ──────┐
함석헌·씨알 ─────────┤
민족주의 ───────────┤
농민·노동운동 ─────────┘

등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한국의 ‘민중’이라는 독특한 정치적·도덕적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훨씬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8. 이것은 함재봉의 전체 작업에 대한 꽤 근본적인 비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개신교 문제를 검토하면서 <함재봉은 하나의 계보를 선명하게 만드는 대신 복잡한 혼종성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그의 근대한국 계보는 기본적으로 <세계의 거대한 문명·이념들이 조선에 들어와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 서로 다른 한국인이 만들어졌다>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개벽파를 집어넣으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해집니다.

<한국인은 외부의 근대들을 선택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선 내부의 종교·철학적 자원을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근대를 만들려고도 했다.>

이것은 상당히 큰 차이입니다.

올려주신 자료에서도 개벽파를 단순한 전통주의로 보지 않고 <척사파와 개화파 사이에서 전통과 서구를 융합·회통하면서 새로운 근대를 모색한 흐름>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사람 만들기>의 지도를 보완한다면 적어도 다음 <다섯 번째 계보>를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학 → 동학농민혁명 → 천도교·3·1운동 → 개벽사상 → 민족·민중사상의 한 흐름 → 생명사상·민중종교·시민사회운동>

이 계보를 넣고 나면 함재봉이 제시하는 <친일개화파 / 친미기독교파 / 친소사회주의파>라는 20세기 한국인의 삼분법 자체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개벽파 계보>가 21세기까지 이어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올려주신 자료에는 개벽을 <물질개벽·정신개벽>, 동서 문명의 회통, 생명과 새로운 문명의 문제로까지 확장하려는 현대적 시도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함재봉의 네 계보 + 개벽파라는 제5의 계보>를 만들어, 최제우 → 최시형 → 손병희 → 3·1운동 → 함석헌 → 장일순 → 생명운동까지 어디까지 역사적으로 연결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무리한 계보 만들기가 되는지를 검증해 보는 것이 다음 단계로 매우 흥미롭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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