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첨부하신 <[백낙청 인터뷰 37] “하버드에 아무개가 있다는데, 그런 사람 좀 데려와라!”>에 대한 요약·평론이다. 이 인터뷰는 2026년 4월 23일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구술사 인터뷰로, 백낙청이 자신의 종교적 배경, 하버드 유학, 서울대 영문과 교수 임용, 해직과 복직, 그리고 영문학 교육관과 번역 경험을 회고한다.
백낙청 인터뷰 37 요약·평론
1. 원불교와의 만남: 종교라기보다 사상으로
인터뷰의 첫 부분은 백낙청과 원불교의 인연을 다룬다. 그의 집안은 본래 특정 종교에 깊이 속한 가문은 아니었다. 대구 피란 시절 친구를 따라 영락교회에 다녀본 적이 있었고, 친척 가운데 유교적 전통이나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도 있었지만 가정 전체가 하나의 종교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가 원불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혼과 관련이 있었다. 처가가 원불교 집안이었고, 결혼 후 원불교 경전을 접하게 되면서 소태산 박중빈의 <대종경>을 읽었다. 처음에는 종교적 귀의라기보다 지적 관심에 가까웠다.
특히 백낙청이 강조하는 것은 원불교 교전에서 느낀 <사상적 보편성>이다. 그는 소태산을 단순히 특정 종교의 교조로 보지 않고 “위대한 사상가”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불교 사상을 민족종교 내부의 교리로 제한하지 않고, 근대 한국에서 형성된 독창적인 사상적 자산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백낙청의 이후 사상적 특징과 연결된다. 그는 원불교를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사회적·역사적 실천과 연결되는 사상으로 읽었다. 훗날 그가 말한 <변혁적 중도주의> 역시 이러한 태도와 일정한 연속성을 갖는다.
즉 백낙청에게 종교란 절대적 교리 체계라기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의 자원에 가깝다.
2. 하버드 유학과 영문학 박사
백낙청은 196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학교로 유학한다. 당시 하버드 영문학과는 미국에서도 매우 큰 규모와 권위를 가진 곳이었다.
그가 회고하는 당시 하버드 영문학 교육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전통적이었다.
학생들은 영문학의 주요 시대와 작가를 폭넓게 공부해야 했고, 박사학위 과정에서도 특정한 작은 분야만 연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이런 교육이 힘들면서도 지적 훈련으로서는 매우 중요했다고 평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1968년 전후 하버드의 분위기다.
당시는 미국 대학가에서 베트남전쟁 반대와 학생운동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하버드에서도 학생들이 행정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이 투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백낙청은 자신이 그러한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회고한다. 학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 점은 그의 이후 지적 경력과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창작과비평>을 중심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이 되었지만, 미국 유학 당시부터 급진적 정치운동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한국 사회에 돌아온 뒤 형성된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3. “하버드에 아무개가 있다는데 그런 사람 좀 데려와라”
인터뷰 제목이 된 이야기는 백낙청의 서울대 영문과 임용 과정에서 나온다.
1963년 하버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약 1년 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다.
그런데 당시 그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 대학 사회에서는 자교 출신자를 교수로 임용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했다. 서울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영문과의 이양하 교수가
<“하버드에 아무개가 있다는데, 그런 사람 좀 데려와라.”>
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당시 한국 대학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50~60년대까지 한국 대학은 학문적 제도와 인력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해외에서 교육받은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백낙청 자신도 이런 흐름 속에서 서울대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내에서 완전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즉 그의 임용은 <한국 대학의 학벌 구조>와 <새로운 국제적 학문 기준>이 충돌하던 시기의 사건이었다.
4. 박사논문과 D. H. 로렌스
백낙청은 하버드에서 D. H. 로렌스를 연구했다.
그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박사논문을 완성한다. 당시 하버드 교수 중에는 로렌스 전문가가 많지 않았지만 백낙청은 처음부터 로렌스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로렌스에 끌린 이유는 단순히 문학적 스타일 때문이 아니었다.
로렌스는 산업문명과 근대적 인간관계를 비판하면서 생명, 인간관계, 성, 자연 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 작가였다.
이 점은 훗날 백낙청이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발전시키는 데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로렌스 연구서를 2020년에 다시 출간하면서 <D. H. 로렌스의 개벽사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은 매우 상징적이다.
서구 작가 로렌스를 동학이나 원불교에서 사용되는 <개벽>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백낙청의 지적 방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서구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한국 전통만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서구 문학과 한국 사상의 언어를 서로 만나게 하는 방식이다.
5. 서울대 영문과와 새로운 교수 세대
백낙청이 처음 서울대에 들어갔을 때 영문과는 매우 작은 학과였다.
학생은 한 학년에 약 20명 정도였고 교수 수도 많지 않았다.
그가 언급하는 교수들 가운데에는 이양하, 이종수, 김효창, 이경식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이양하는 특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백낙청은 이양하가 일본 식민지기 교육을 받은 세대이면서도 해방 이후 서울대 영문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이후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백낙청 역시 이 세대의 한 사람이다.
그 결과 서울대 영문과에는 점차 미국식 대학 교육과 연구 방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백낙청은 단순히 미국식 영문학을 수입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미국에서 배운 영문학 연구 방법을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다시 해석하려 했다.
6. 해직과 복직
1974년 백낙청은 서울대에서 해직된다.
그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과 대학 지식인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있었다.
당시 대학 교수와 학생 가운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권은 이들을 강하게 통제했다.
백낙청 역시 이런 상황에서 교수직을 잃는다.
그는 이 시기를 단순한 개인적 피해로 서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과 지적 활동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해직 기간 동안 그는 <창작과비평> 활동과 사회적 글쓰기에 더 깊이 참여하게 된다.
1980년 3월 그는 서울대에 복직한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복직 이후에도
<“정년까지 무사히 교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 말하는 부분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교수직은 안정된 직업이라기보다 언제든 정치적 이유로 박탈될 수 있는 자리였다.
7. “주체적 시각으로 영문학 읽기”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백낙청의 영문학 교육론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주체적 시각으로 영문학을 읽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여기서 주체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민족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한국 학생들이 서양의 문학평론과 연구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나 로렌스를 연구할 때 영국이나 미국 학자의 해석을 정답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낙청은 이에 반대했다.
서양 학자의 연구는 참고해야 하지만 한국의 독자는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위치에서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주체적 독서>라고 부른다.
이러한 태도는 1970~80년대 한국 인문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당시 한국 대학의 학문은 서구 학문을 수입하고 소개하는 데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백낙청은 이런 지적 종속성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서양 문학을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셰익스피어, 로렌스 같은 서양 고전을 매우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의 입장은
<서구 학문 거부>
가 아니라
<서구 학문을 철저히 배우되 그것을 자기 시각으로 다시 읽기>
였다.
8. 문학을 “작품 자체”로 읽어야 한다
백낙청의 문학교육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작품을 제대로 읽는 것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을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학적 자료로만 읽는 것을 경계했다.
작가의 작품을 충분히 읽고 작품의 언어, 구조, 미학을 이해해야 비평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점은 때때로 백낙청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 다르다.
그는 흔히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등 정치적·사회적 담론을 제시한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상당히 정통적인 문학 연구였다.
하버드에서 받은 교육 역시 작품에 대한 치밀한 독해를 강조하는 전통이었다.
따라서 백낙청의 문학론은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첫째는 <텍스트에 대한 엄격한 독해>이고,
둘째는 <독자의 역사적·사회적 위치에 대한 자각>이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이 그의 비평 방법의 핵심이다.
9. 번역과 한국 독자
인터뷰 후반부에서는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낙청은 D. H. 로렌스의 <목사의 딸>을 비롯한 작품들을 번역했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번역에도 참여했다.
그가 번역을 말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번역 자체보다 <한국 독자>의 존재다.
영어로 된 원전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든 한국 독자가 원어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좋은 번역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세계문학을 공유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이다.
이 점에서 그의 번역론은 앞서 말한 <주체적 독서>와 연결된다.
번역은 외국 문화를 단순히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외국 작품을 한국의 문화적 공간 속으로 들여오는 작업이다.
그는 좋은 번역이 충분히 많지 않다는 점을 아쉬워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양질의 번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평론
이 인터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백낙청의 사상적 궤적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연속적이라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면 그의 삶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연구한 엘리트 학자,
서울대 교수,
박정희 정권에서 해직된 지식인,
<창작과비평>의 대표적 비평가,
민족문학론과 분단체제론의 이론가,
원불교와 개벽사상을 재해석한 사상가.
그러나 인터뷰를 따라가면 이 단계들이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보인다.
공통된 질문은 하나다.
<서양에서 나온 사상과 문학을 한국인은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인가?>
그의 하버드 유학도 이 질문과 연결되고, 로렌스 연구도 연결되며, 민족문학론과 원불교 해석 역시 같은 문제의 연장선에 놓인다.
이 점에서 백낙청의 지적 생애를 단순히 <진보적 민족주의 지식인의 생애>라고 규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한국 근대 지식인의 오래된 문제, 즉
<서구 보편주의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평생 붙잡은 인물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특히 <주체적 영문학 읽기>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긴장이 존재한다.
주체적 시각을 강조하면 쉽게 민족적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반대로 서구 학문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적 종속에 빠질 수 있다.
백낙청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다.
그가 훗날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의 영문학 교육이 의외로 매우 고전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이론을 먼저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제대로 읽으라고 했다.
작품을 충분히 읽고,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문학 연구에도 중요한 경고가 된다.
문학을 젠더, 계급, 식민주의, 인종 등의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작품 자체의 언어와 형식에 대한 독해가 사라지면 문학비평은 쉽게 사회과학의 사례연구가 되어버릴 수 있다.
백낙청의 문학관은 이 점에서 <텍스트 중심주의와 사회적 비평을 연결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인터뷰 자체에는 한계도 있다.
구술사라는 성격 때문에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비교적 간략하게 지나간다. 특히 1974년 해직의 구체적 배경, <창작과비평>과 박정희 정권의 관계, 1980년 복직 전후의 정치적 상황 등은 깊이 다뤄지지 않는다.
또 그의 민족문학론이나 분단체제론이 어떤 지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도 이번 인터뷰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자료는 백낙청 사상의 전체상을 보여주는 인터뷰라기보다 <학자 백낙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는 구술자료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의 “하버드에 아무개가 있다는데, 그런 사람 좀 데려와라”라는 일화는 단순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 문장에는 1960년대 한국 대학의 상황이 압축되어 있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뒤 새로운 대학 체제를 만들던 한국이 해외에서 새로운 세대의 학자를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백낙청은 바로 그 세대에 속했다.
그러나 그는 서구에서 배운 학문을 그대로 한국으로 가져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에 걸쳐
<서구의 지적 전통을 한국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다시 읽는 방법>
을 찾으려 했다.
이번 인터뷰의 가장 중요한 의미도 바로 그 점에 있다.
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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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3 seconds오늘은 2026년 4월 23일이고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 정도입니다. 장소는 석교동 창비 사호입니다.
0:1212 seconds서울대 영어 영문학과 교수를 지내신 백락청 선생님을 모시고 구술 제 2차분을 진행하겠습니다. 면담자는
0:1919 seconds서울대 입문학 연구원 홍종욱,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장문석 그리고 연구 보조원으로 강수현님께서 같이
0:2626 seconds오셨습니다. 기존에 선생님 인터뷰는 말씀들 보면은 70년대부터 사모님께서 원불교 교당 나가셨다라는 말씀을 좀
0:3434 seconds하셨던 60년대요.
0:3636 seconds60년대부터입니까? 예. 60년부터 있으시더라고요. 그 예. 선생님께서 언제부터 하셨는지 좀 궁금합니다.
0:4242 seconds그 사람이 종로교당인데 나가면서 어 나도 이제 자연히 교당의
0:5050 seconds교훈님들도 알게 되고 그러다가 교전을 한번 읽어 보라 그래서 그때 읽었는데 굉장히 감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0:5858 seconds그때만 해도 정전은 교리를 쭉 나열한 거 같이 돼 가지고 처음 보면 조금
1:051 minute, 5 seconds재미가 덜해요. 데 그것도 또 뜯어 보면 그냥 나열이 아니고 그 구조가 굉장히 독특한 구조고 재민적 구조인데
1:131 minute, 13 seconds그때 나는 이제 문학 민정문학 얘기를 많이 할 때니까 그 정전보다도 대종경 대종경 소태산 대종사의 언행록이죠.
1:241 minute, 24 seconds그 대경은 뭐 읽어도 처음 읽어도 누가 읽어도 재밌고요. 그래서 이건 이제 우리 민정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다.
1:341 minute, 34 seconds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1:361 minute, 36 seconds그러다가 원불교에 원래 영역번이 있었는데 음 그 당시에 종목사님께서이
1:441 minute, 44 seconds새로 해야겠다 해서 내가 참여를 하게테니까 아무래도 번역하려 그러면 뭐 어떤 대목 몇 번씩 읽고 그리고
1:511 minute, 51 seconds그 후로는 여러 나옵니다만은 보면 벌수록 참 미대한 사상과
1:591 minute, 59 seconds그냥 특정 종교의 교정관이 아니고 위대한 사상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이게 변역적 중도주의 얘기를
2:072 minutes, 7 seconds하면은 변역적 중도주의라는 원래는 남안에서의 정치적인 실천 노선을 그렇게 이름을 지어 본 건데
2:162 minutes, 16 seconds가령 소태산의 개벽사상이 그때는 이제 분단 이전이니까 분단 체제 변역을 위한 중도 세력은 아니지만 일제
2:252 minutes, 25 seconds식민지 체제를 변역하기 위해서 좀 극단적인 논리를 배제하고 흑넓은 연대를 만들겠다는
2:332 minutes, 33 seconds그런 그 선구적인 노력이라고 봐서 더 관심을 많이 갖게 되죠.
2:382 minutes, 38 seconds지금 그러면 이렇게 사모님과 같이 원불교회를 이렇게 접하시기 전에는 좀 다른 종교나 그런 종교 좀 관심이 있으시거나 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2:492 minutes, 49 seconds예. 저 대구 피량 있을 때 친구들을 따라서 대구의 영락 교회가 있었어요.
2:552 minutes, 55 seconds이북에서 내려온 건가요? 영락교회가 서울에 큰 그 영락교회 그 영락교회가
3:023 minutes, 2 seconds전쟁이어서 내려가서 대구에 내려가 대구로 내려가서 대구 영락교회라는 걸 만들었는데 거기 친구들하고 같이 좀
3:113 minutes, 11 seconds나간 적이 있어요. 세례 받거나 그런 건 아니고 집안 분위기나 집안 어른들은 사실 좀 서북에서 내려오시고 어제 오산학교
3:193 minutes, 19 seconds말씀도 해 주시고 그래서 집안에서 이렇게 얘기했죠. 우리 집안은 원래가
3:283 minutes, 28 seconds집안인데 유생인데 우리 5대조에 종선이 되는 주선이 되는 분이 나중에
3:363 minutes, 36 seconds오산학교 오산주학교 교장도 하신 그분이 나 그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기독교로 개정을 하셨어요. 일찍이.
3:443 minutes, 44 seconds근데 이제 우리 할아버지는 그분하고 사촌관인데 괜히 못 맞다 해 가지고 청선이 제사도 안지내고 예
3:523 minutes, 52 seconds그래서 대판 싸우고 그 절교하다시피 하고 그 집에 있는 신주 다 가지고 오셨어요. 그래서 우리 집안은 보통
4:014 minutes, 1 second한국 집안이 그렇듯이 6교 집안이었고 나중에 우리 이제 형님이 우리 가형이
4:074 minutes, 7 seconds결혼했을 때 형수님이 아주 독실한 기독교 평안도인데 서법 출신의 기독교 집안이었고 형님은 처음에는 뭐 좀
4:174 minutes, 17 seconds냉소적이고 교회도 잘 안 나가고 어제다가 이제 무슨 특별한 날이면 나가고 아마 그러셨던 분인데이 장기전으로 가면 다
4:264 minutes, 26 seconds여자가 이기더군만
4:274 minutes, 27 seconds[웃음]
4:294 minutes, 29 seconds그 나중에 상당히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어요. 그러고는 동생 중에는 천지교도 있고 다정교
4:394 minutes, 39 seconds집안이죠. 아음 선생님 아까 원불교 말씀해 주시면서이 선생님께서 또 계속 주장하시고 또
4:474 minutes, 47 seconds관심 민족학 맥락 안에서 또 원불교의 경전을 이제 다시 볼 가능성도 있다. 이런 말씀 좀 해 주셨었는데요.
4:554 minutes, 55 seconds그럼 이렇게 원불교를 접하시고 공부하신 것들이 선생님의 그 평론이나 글 쓰기에 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5:035 minutes, 3 seconds되는 거 역시도 90년대 이후라고 생각을 하면 될까요?
5:075 minutes, 7 seconds[목을 가다듬음]
5:075 minutes, 7 seconds로렌스 연구서를 2020년에 내면서 서양의 개벽사가 D 로렌스라 이름을 지었죠.
5:165 minutes, 16 seconds그걸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놀랬어요. 개 뜬급없이 개벽 사상이냐?
5:245 minutes, 24 seconds근데 사실은 80년대 말렵부터 내가 개백이란 말을 써 봤어요. 그렇게 된 가장 큰 계기는
5:325 minutes, 32 seconds역시 내가 원불교를 알게 되면서 음 원불교의 후천개벽 사상에 공감을 해서 그랬던 거죠.
5:405 minutes, 40 seconds하버드 대학원 유학 시절 먼저 여쭤보고 서울대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니까 하바드 대학원은 내가
5:495 minutes, 49 seconds불라운 대학 졸업하고 바로 갔는데 하바드는 석사 과정을 그렇게 중시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 뽑아 가지고
5:575 minutes, 57 seconds논문도 안 씌우고 아 그니까 과마다 다르겠지 영문관 그랬어요. 그래서 이제 박사 과정을 석사시켜 보고
6:056 minutes, 5 seconds네 그중에서 괜찮은 사람을 박사로 뽑아 가지고 그때부터 제대로 훈련시켜서 내보낸다 하는 그런 방침이었는데 박사
6:146 minutes, 14 seconds과정을 진입을 앞두고 내가 생각이 바뀌어 가지고 기고했잖아요. 그러다가 이제 군대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6:226 minutes, 22 seconds다시 여학 시험을 쳐 가지고 음 돌아가서 1년을 이제 코스워크 했죠.
6:276 minutes, 27 seconds박사 그를 하고 있는데 서울대학에서 오퍼가 왔어요. 아이고 나는 서울대학
6:346 minutes, 34 seconds인연이 없는 사람인데 그래서 가게노라 그래 가지고 왔던 거죠. 와서 유급 조교로 6개월을 채우고 전임 강사가 됐죠.
6:446 minutes, 44 seconds그렇게 63년에 서울대에 부임하시고 그리고 69년에 다시 미국 하버드 대학원에 가신 걸로 나옵니다.
6:526 minutes, 52 seconds예예. 썩을 중단했다가 그때 다시 맞아겠다. 그 같죠. 그때 69년에 다시 하버드에 가시게 됐었던
7:017 minutes, 1 second이유 같은게 있으신가요? 박사를 시작했는데 제대로 좀 마무리를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학문적으로 그
7:107 minutes, 10 seconds특히 내가 교수를 하면서 장미를 하고 있 있었으니까 교수나 학자로서 더 좀
7:177 minutes, 17 seconds성장하지 않고 잡지만 하다면 이게 자칫 건달 비슷하게 돼요. 그래서 그런 개선도 있었고 또 그때 박정희
7:267 minutes, 26 seconds정권이 이제 삼선 개헌해 가지고 유신까지 가는 그 도중이었는데 점점 시국이 서박혀지는데 그 이럴 때 잠깐
7:357 minutes, 35 seconds좀 숨거르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 해서 같은 거죠.
7:397 minutes, 39 seconds선생님 그러면 69년에 다시 하버드로 가셔서 연보를 맡은 72년에 학위를 취득하신 걸로 나오던데요. 그러면
7:477 minutes, 47 seconds70년 정도 커서 그를 맞이했고요.
7:507 minutes, 50 seconds예예. 그다음에 논문 자격 시험 통과하고 71년에 통과했을까요?
7:567 minutes, 56 seconds그때부터 쓰기 시작해 가지고 박사무는 비교적 빨리 썼어요. 왜냐면 내가 로렌스는
8:068 minutes, 6 seconds물리대 영국과에서 강의도 하고 그랬던 사람이고 내 생 처음부터 로렌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72년 여름에 제출해서 그 겨울에 받았어요.
8:188 minutes, 18 seconds제가 교육한 후에 당시 하버드에서는 좀 어떤 강의들이 좀 열리거나 어떤 분위기였었는지 하버드 내 영국과는 굉장히 큰 학과예요.
8:298 minutes, 29 seconds그래서 뭐 과목은 여러 가지 과목이 다 했는데 미국 대학에서 예를 들면 좀
8:378 minutes, 37 seconds뭐랄까 보수적인 학풍이랄까 전통적인 영문학을 좀 철저히 하하는 음 그런 유형에 속겠죠. 그러니까
8:468 minutes, 46 seconds그러니까 그게 나한테는 더 어렵기도 하고 좀 어떤한테 따분하기도 하고 그래서 쉬었던 건데 이제 돌아가서는
8:558 minutes, 55 seconds그때 서울대학에서 처음에는 파견 근무하다가 나중에 1년을 휴직을 했는데 그때는 뭐 빨리빨리 끝내야지
9:039 minutes, 3 seconds다른 초이스가 없으니까 논문 자격 시험 준비 하면서 전에 서울이 했던 그런 핵심 과목이랄까 이런 거를
9:129 minutes, 12 seconds수강도 하고 학부 과목을 청강해 공을 하고 그 그때가 어 68명 직후기도
9:219 minutes, 21 seconds했었는데요. 하버드에서는 그런 분위기는 그렇게 느껴지.
9:259 minutes, 25 seconds아니요. 하버드도 상당히 홍경을 치렀죠. 대학 중에서 제일 먼저 이제 그런 분위기가 제일 강했던 거는
9:339 minutes, 33 seconds버클리 대학 유클리고 동부의 명문대학 중에서는 콜롬비아가 아주 학생들 대대적인 점거 농성도 하고 그리고
9:419 minutes, 41 seconds나중에 경찰 불러들여서 탄압하고 했어요. 하바드는 야 저 저런 거는 저런 일은 하바대선
9:509 minutes, 50 seconds일을 할할 수가 없지 그러고 있었던 모양인데 당한게 하받았어요.
9:579 minutes, 57 seconds그래서 대학 자체로도 그런게 있지만은 내가 68년에 2학기부터 해 가지고 69년 70년은 소년대
10:0510 minutes, 5 seconds운동의 끝물인데 그래도 분위기가 내가 저 처음 갔을 때 완전히 달렸어요. 당시엔 이렇게 서울대에서 이렇게 전인 강사로 이렇게
10:1410 minutes, 14 seconds부임하신 하실 때 어 선생님께서 좀 특별히 맡으시기로 하셨던 분야가 있거나 그니까 뭐 이분은 뭐 영국문학
10:2110 minutes, 21 seconds전공이다 뭐 요런 거 그런게 혹시 있거나 그런 서울대 영국과는 그니까 물리대
10:2810 minutes, 28 seconds과목들이 다 작은 거였어요. 음 학생수가 20명 이내했을 거고 나중에
10:3510 minutes, 35 seconds내가 74년에 파면이 되고 75년에 관학으로 종합하면서 영국과 같으면은
10:4310 minutes, 43 seconds사대 영어 교육과의 문학 전공자들 뭐 문학분이라 어학생공자들도 많이 오시고
10:5110 minutes, 51 seconds또 교양학부에 계신 선생님들도 오시고 그래 가지고 과가 커졌는데 그때는 교수가 그냥 한 7 8명 그러니까
10:5810 minutes, 58 seconds교수는 적은 수는 아니었어요. 학생이 20명 이랬는데 뭐 어느 분야를 전담하라이 정해 가지고 뽑지 않았던 거 같아요.
11:0811 minutes, 8 seconds서울대 영문가에 부임하셨을 당시에는 어떤 선생님들이 좀 계셨었었는지 제일 연장자로는 박충식 교수님이라고
11:1611 minutes, 16 seconds계셨고요. 그다음에 전재옥 교수 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은 일본서
11:2311 minutes, 23 seconds대학을 나 나오신 분이고 서울대 출신으로 서울대 1회 졸업하신 선생님이 고석구 선생님 계셨고
11:3211 minutes, 32 seconds그다음에 저 유명한 분은 송욱 교수라고 시도 쓰시고 그런 분들이 계시죠. 그 말고도 뭐 그때 문상덕
11:4011 minutes, 40 seconds교수 김호창 교수 나가 들어가고 그다행가 이경식 교수 오시고 선생님 선배들 중에서 미국에서
11:4811 minutes, 48 seconds공부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나요? 그때는 안 계셨어요.
11:5211 minutes, 52 seconds그때는 안 계시고 어 이경식 교수는 쉐스피아 연거했는데 영국도 하셨 하셨고
12:0012 minutes나보다 이제 훨씬 선배고 경기 선배기도 하고 서울대 총장까지
12:0712 minutes, 7 seconds지내신 김종훈 교수 그분이 미국에서 학불를 나오셨어요. 학부 나오시고 석사까지 하셨는가? 그 부임한 건
12:1512 minutes, 15 seconds나보다 훨씬 늦었습니다. 이경식 교수 다음으로 오셨으니까.
12:2012 minutes, 20 seconds근데 그때는 박사하게 가진 분은 아무도 없었어요.
12:2412 minutes, 24 seconds소위 구제 박사라는 거를 성우수 선생이 먼저 하셨는데 음 그 말고는 하기서 소재가 없었죠.
12:3512 minutes, 35 seconds그것도 조금 화제가 되셨나요?
12:3712 minutes, 37 seconds미국에서 나오시고 속사하시고 어 그렇죠. 아마 영어도 없는 사람이 이양아 선생이라고 계시는데 권중의
12:4612 minutes, 46 seconds이양아 두 분이 사전도 만들고 두 분이 다 동경제대 출신으로서 유명한 분이었는데
12:5412 minutes, 54 seconds이양호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하버드의 암흑개가라고 있는 모인데 그런 사람 좀 데려와라. 이양아
13:0313 minutes, 3 seconds선생은 동경대학 나오고 서울대학에서 선비 교수를 군림을 하시다가 미국을 가셔 가지고 예대학에서 좀 계시다
13:1113 minutes, 11 seconds오셨는데 일제 시대 교육받은 분들이 회화도 잘 안 되고 그래 가지고 무척 고생을 하셨던 거예요. 음.
13:1913 minutes, 19 seconds그래서 아니 우리과에도 좀 이런 사람 데려와라.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13:2613 minutes, 26 seconds이제 그분 일정 유원을 하고 가셨는데 그래서 내가 어 게되기 했죠. 그런데
13:3413 minutes, 34 seconds그게 뭐 관에서는 상당히 논쟁은 있었던 모양이에요. 뭐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음
13:4313 minutes, 43 seconds우리과 출신도 하기를 할 텐데 왜 미리 이런 사람부터 데려오냐
13:5113 minutes, 51 seconds그 그런데 어쨌든 나는 그 덕에 정말 굉장히 그 이례적인 사건이었죠.
14:0014 minutes네. 좀 전에 말씀하셨었던 그 권중이 선생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14:0514 minutes, 5 seconds안가 1호에 실려 있었었던 인터뷰였었는데요.
14:1014 minutes, 10 seconds거기를 봤더니 특히 좀 초기 서울대 영문가의 그런 분위기나 커리큘럼 같은 것들은 선생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14:1714 minutes, 17 seconds제국대학의 어떤 분위기와 굉장히 유사했었다. 요렇게 좀 말씀하신 그런게 좀 있었는데요. 스님께서
14:2514 minutes, 25 seconds이렇게 서울대 부임하셨을 때도 그런 좀 그니까 제국 대학의 어떤 분위기나 커리큘럼 요런 것들이 좀 여전히
14:3314 minutes, 33 seconds유지가 되고 있으셨었던 상황이었는지 그런게 좀 궁금합니다.
14:3814 minutes, 38 seconds네. 모르겠어요. 일본 제국 대학의
14:4014 minutes, 40 seconds[웃음]
14:4314 minutes, 43 seconds계획이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제국 대학의 분위기라 그러면은 굉장히 엘리트 주의적이죠. 그까 말 학생수가
14:4914 minutes, 49 seconds수명이 제 안 되는데 수명이나 교수가 그래도 7, 8명씩 갖춰져 있었다는 것만해도 그
14:5814 minutes, 58 seconds아주 특권적인 거래대나 연세대는 처음부터 학생 많이 뽑았거든요. 사립대이 그럴 수밖에
15:0615 minutes, 6 seconds없고 그 스님께서는 그래서 63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하셨어요.
15:1415 minutes, 14 seconds스님께서는 이렇게 좀 서울대 제직 시절을 그때 뭐 구분을 해 본다고 하시면은 어떻게 좀 구분하시거나
15:2215 minutes, 22 seconds그런 식으로 구분 안 했지만은 내 교수 생활은 그렇게 순탄치만 않았잖아요. 근데 그런 그
15:3015 minutes, 30 seconds시련을 닥치기 이전에 가르치다가 미국이 떠난 거 그게 아무래도 하나의 변곡점 될
15:3815 minutes, 38 seconds거고 3년 만에 돌아와 가지고는 얼마 안 가서이 시국 그게
15:4515 minutes, 45 seconds휘발리다가 72년에 기국했는데 74년 파면 당했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15:5215 minutes, 52 seconds그것도 하나의 시대구분이 드는 거고 그리고 5년 약간 넘어 해 교수 생활 하다가 80년 3월에 복귀를 했고
16:0116 minutes, 1 second그때도 복귀하고도 나는 정년까지 내가 마칠지 안 맞출지 음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80년에 복귀하고
16:1016 minutes, 10 seconds사리에 복귀하고 바로 5일7 예게 그게 뭐 두 달 안 돼 가지고 나도
16:1816 minutes, 18 seconds연행이 됐었고 학교는 휴교를 뭐 뭐 그런게 있었는데 뭐 다른 데서이 한
16:2516 minutes, 25 seconds얘기니까 길게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만 나는 그때 해적을 면했습니다. 해직을 면해 가지고 그리고는 창비를
16:3416 minutes, 34 seconds하면서 뭐 연향되는 일도 있었고 그렇지만은 다시 쫓겨난다든가 그런 일
16:4016 minutes, 40 seconds없이 2003년까지 좀 잘 지내고 나왔습니다. 선생님께서
16:5016 minutes, 50 seconds재직하시면서 제자분들도 많이 양성을 하셨는데요.
16:5416 minutes, 54 seconds특히 뭐 학부나 혹은 대학원에서 제자분들을 지도하시거나 혹하실 때 좀 유의하셨었던 점이나 이런 점들을 좀
17:0217 minutes, 2 seconds강조하셨었거나 그런 것들이 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나는 구실의 학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중요한
17:0917 minutes, 9 seconds작품들 정전이란 말은 잘 안습니다마는 고전으로 어느 정도 정이 나 있는
17:1717 minutes, 17 seconds작가의 작품들을 좀 제대로 읽고 장나의 비평적인 안목을
17:2517 minutes, 25 seconds갖는 건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걸 중심으로 거기에 주한점을 두고 가르쳤다고 볼 수 있죠. 지금은
17:3417 minutes, 34 seconds나처럼 어느 특정 작가 한 사람이라든가 또는 그중에서도 특정 작가의 작품 한두 개를 가지고 박사넘을 쓰는 일이 많지 않죠.
17:4417 minutes, 44 seconds주제나 이론적인 그 토픽을 많이 다루는 모였는데 스님께서는 그 주체적인 시각에서 영문학을 읽어야 된다.
17:5417 minutes, 54 seconds네. 이런 입장으로 좀 글을 좀 많이 발표도 하시고 그러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문학 작품을
18:0218 minutes, 2 seconds좀 접하실 때 좀 유의하셨었던 점이나 좀 염두해 주셨던 점이 어떤 점들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18:1118 minutes, 11 seconds그게 주체적이란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 할 때 딱 맞는 말이 없죠.
18:1918 minutes, 19 seconds어 그러나 그 추위지는 우리나라 어 학계가 전반적으로 그런
18:2518 minutes, 25 seconds면도 있지만 특히 서양문학계는 서양
18:3218 minutes, 32 seconds사람들이 자기문학이 얘기해 놓은 거를 이제 모델로 삼아 가지고 모델로 삼을 정도가 아니고 그 사람
18:4018 minutes, 40 seconds그들의 그 연구 실적을 열심히 읽어서 한국에 소개하고 하고
18:4818 minutes, 48 seconds그러면 그게 이제 연구 성과로 인정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그 추정적인 그말로 한국 사람으로서의 자기 나름의
18:5718 minutes, 57 seconds독립적인 관점이 결려된 그런 걸 하지 말자는 뜻으로 주실적이라는 표현을 했었죠.
19:0519 minutes, 5 seconds주체적으로 영문화 읽어야 된다 쓰셨라고 말씀하셨던 글들이 주로 80년대에 좀 많이 발견이 되는 거
19:1219 minutes, 12 seconds같습니다. 그게 그 전부터 그런 생각을 좀 가지고 계셨을 좀 가지고 있었는데 학교 있는
19:1919 minutes, 19 seconds동안에는 어 그런 글을 쓰기보다는 그야말로 주세적으로 읽고 가르치는게 더
19:2719 minutes, 27 seconds중요했고 학교에서 쫓겨나 다음에는 내 사람들은 좀 정리를 해 봐야겠다 그래 가지고 음
19:3419 minutes, 34 seconds해직 해직 교술 있으면서 그런 글들도 쓰고 아 또 강연도 하고 네.
19:4319 minutes, 43 seconds그랬어요.
19:4419 minutes, 44 seconds수업 시간에도 이런 주체적으로 영문학 읽기 요런 것들 좀 말씀하신 거 같은데 거기서 학생들 반응이나 무슨 학생 그 반응 같은 것들 어땠었나요?
19:5519 minutes, 55 seconds예. 그때는요 학생들 간의 그런 분위기는 강했어요. 음.
20:0320 minutes, 3 seconds뭐 이래? 교수들이 안 그랬지.
20:0520 minutes, 5 seconds음. 아, 학생들은 학생들은 70년대, 80년대 이제예.
20:1020 minutes, 10 seconds우리 어. 민정운동 활발할 때고 그래서
20:1720 minutes, 17 seconds어떤 친구들은 영문학 영국가를 갈까 말까 음
20:2420 minutes, 24 seconds제국주의 학문 하는데 갈까 말까 고민도 하고 그리고 훌륭한 학생들이 유학을 안
20:3120 minutes, 31 seconds갔어요. 그래서 대학원이 참 재밌었는데 근데 이제 교수들은 학생들이 그러는 거를 대게 못마땅하게
20:4020 minutes, 40 seconds여기셨죠. 그래 가지고 무슨 영문학까지도 정치 하려 그러느냐 음 하는 그런 저
20:4920 minutes, 49 seconds비판도 없지 않았어요. 80년대 선생님께서 쓰셨던 글을 봤더니 내가 영어를 읽고 연구하고 논물 쓰는 일이
20:5620 minutes, 56 seconds진실로 우리의 민족 문화를 살지우고 더욱더 나아가서 보안 있게 만드는 그런 작업이다.뭐 이런 말씀하셨었던
21:0321 minutes, 3 seconds문장도 있었는데요. 그 문장이 선생님 말씀드렸다 보니까 좀 기억이 납니다, 선 그리고 번역에 대해서도 몇 군데서
21:1121 minutes, 11 seconds또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 특히 글을 쓸 때는 가급적 번역된 작품들을 가지고 또 글을 쓰시고
21:2021 minutes, 20 seconds그래서 또 이것이 좀 더 독자들이 좀 더 토론하는 문학까지 좀 이어졌으면 좋겠다 뭐 요런 말씀하신 문학
21:2921 minutes, 29 seconds평론으로서의 활동을이 얘기한 거고 영문학계에서 당연히
21:3721 minutes, 37 seconds영어로 된 원전을 읽고 얘기하는게 좋은데 그런 경우에도 그 해당 작품 품이 우리말로 읽으면한 번역게 있어
21:4621 minutes, 46 seconds가지고 그걸 읽은 독자들이 많은 경우하고 안 많은 경우하고 그게 상당히 다르다고 보거든요. 세용사들이
21:5321 minutes, 53 seconds쓴 논문을 열심히 읽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전혀 필요 없는 이야기지만은 전공자는 아니더라도 비전공까지도
22:0122 minutes, 1 second포함하는 우리 국내 독자를 상대로 예 내 영문학 연구 성과를
22:0822 minutes, 8 seconds얘기하고 싶다. 그러면은 꼭 원서를 안 읽었더라도 우리말을도 읽고
22:1622 minutes, 16 seconds문학 독자로서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이 있고 없고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였어요.
22:2422 minutes, 24 seconds스님께서 번역하신 작품은 디로런스의 목사의 딸들 번역하신게 있으시고요. 그리고 또
22:3322 minutes, 33 seconds뭐 작품은 아니지만 문학가 일술의 사회사도 일부 또 선생님 번역을 하셨습니다.
22:3922 minutes, 39 seconds지금 그이 두 책을 좀 번역하신 이유가 좀 궁금합니다. 사실은 내가 편집자로서
22:4622 minutes, 46 seconds남의 번역을 굉장히 많이 읽고 평해 주고 고쳐 주이다고 그랬는데 정당 내 그러다 보니까 내가 번역한 할 일은 별로 없었어요.
22:5822 minutes, 58 seconds그래서 그 목사의 딸들이 나중에 이제 그걸 좀 더 보원해 가지고 애니 앤 팬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냈는데 역자
23:0723 minutes, 7 seconds후기를 보시면은 그 번역하게 된 경우가 자세히 나와요. 내가 처음부터 번역하려 그런게 아니고 어쨌든이 돌고 돌아서 내가 손을 많이 보다 보니까
23:1623 minutes, 16 seconds아예 공역자로 나선 건데 그 로렌스 중단팬들은 참 좋은 번역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23:2423 minutes, 24 seconds문학과 예술 사회사도 원래는 동문학하는 분한테 맡혔는데 이게 잘 안 돼 가지고
23:3123 minutes, 31 seconds내가 이제 동의를 조금하니까 영업원하고 동독어을 둘을 놓고 시작을 했다가
23:3923 minutes, 39 seconds동물학 전공자인 영몽 선생 끌어들려들려서 한토막 창통을 추분가라면서 번역을 해서 19세기
23:4623 minutes, 46 seconds20세기에 관한 부분이 제일 먼저 나오고 청량으로 하면 내가 한 절반 했을 거예요. 문학가 예술회사 사에서는 그만하면 굉장한 베스트 셀러가 된 거죠.
23:5523 minutes, 55 seconds스테디 셀러 지금도 나가니까. 그리고 로렌스 얘기는 뭐 앞에 했듯이 그때는 장편도 제대로 된 번역이 별로
24:0424 minutes, 4 seconds없었는데 최근에 강미숙 교수라는 분이 무지게 세 번역을 내서 그 역자하고 유튜브에서 대담한게 있습니다. 근데
24:1324 minutes, 13 seconds그 무지개도 그전에도 번역번이 있었지만은 우리 말을 그냥 술읽 읽기면서
24:2124 minutes, 21 seconds감동하고 논평가고 할 만한 이해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다른 중요한 작품도
24:2824 minutes, 28 seconds의외로 지금 좋은 번역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중단편은 번역이 좀 더 있을 텐데다가 알아보지
24:3524 minutes, 35 seconds못했고 그 페니와 애니의 실린 중편이나 단편들은 정말 뛰어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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