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전향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있는데, 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일반 논리가 있을까요?

cf  https://srhphd.blogspot.com/2026/08/david-horowitz.html

전향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있는데, 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일반 논리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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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그리고 서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좌파에서 우파로의 전향(오른쪽으로의 이동)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변절이나 우연이 아니라, 사회학·심리학·경제학적으로 뚜렷한 일반 논리와 패턴을 지니고 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1. 생애주기 효과: 지분과 책임의 증가

가장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설명은 생애주기 효과(Life-cycle Effect)이다.

  • 기득권의 형성: 젊은 시절에는 가진 자산이 적고 노동 시장의 진입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재분배, 개혁, 시스템에 대한 비판(좌파적 가치)에 끌리기 쉽다.

  • 보호할 가치의 증대: 나이가 들면서 취업을 하고, 세금을 내며,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 사회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지분 소유자'가 된다. 이때부터는 제도의 안정, 자산 가치의 보존, 세금 인하, 치안과 질서(우파적 가치)를 선호하게 된다.

  •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사회주의자이면 뇌가 없는 것이다"*라는 고전적 격언이 이 생애주기적 변동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2. 이상주의와 현실 간의 충돌: 실망과 환멸

좌파 사상은 대개 이상적인 도덕성과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한다. 그러나 현실 정치와 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제적 한계를 목도하며 전향이 일어난다.

  • 내부 폭력과 위선의 목도: 한국의 운동권(NL/PD 계열)이나 일본의 신좌익(전학련, 적군파) 출신 전향자들의 상당수는 내부 권력투쟁, 파벌 간의 폭력성, 혹은 개인적 비리 및 위선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았다.

  • 이론과 현실의 격차: 경제 현장이나 행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강력한 노동 규제나 과도한 재분배 정책이 오히려 시장과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현실을 보며 시장경제(우파적 논리)의 필요성을 수용하게 된다.

3. 심리학적 기제: '인지적 구두쇠'와 극단성의 전환

정치심리학에서는 사상의 내용보다 '심리적 성향(Cognitive Style)'에 주목한다.

  • 동일한 심리 구조의 재배치: 극좌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극우로 이동하는 경우, 신념의 내용은 반대가 되었을지언정 이분법적 세계관, 강한 교조주의, 흑백논리라는 심리적 틀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 진영 논리의 재활용: 세상의 문제를 '선과 악'의 투쟁으로 보는 극단적 사유 방식을 가진 인물은, 기존 진영(좌파)에 환멸을 느꼈을 때 중도로 가기보다 반대편의 가장 극단적인 진영(우파)으로 넘어가 새로운 투사가 되기 쉽다.

4. 한·일 양국의 특수성: 민족주의와 국가관의 접점

한국과 일본의 전향자들에게는 두 나라가 공유하는 역사적 특수성도 작용한다.

  • 한·일 좌파의 민족주의적 요소: 서구의 좌파가 주로 '인권·세계주의·노동'에 집중한 반면, 한국(NL 계열)과 일본(신좌익 일부)의 급진 좌파는 강렬한 민족주의나 반미/반서구 정서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았다.

  • '부국강병'으로의 환승: "강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만든다"는 열망으로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북한 체제의 실상을 깨닫고 현실적인 힘을 가진 대한민국(또는 일본)이라는 국가 체제를 선택하면서 '자주적 좌파'에서 '강경 우파(뉴라이트 등)'로 아주 쉽게 이행했다. 지향하는 가치가 사실상 '부국강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동이다.

요약

좌파에서 우파로의 전향은 단순한 변절이라기보다 ① 개인의 자산·책임 증가에 따른 합리적 선택, ② 이상주의의 한계와 위선에 대한 환멸, ③ 극단적 이분법을 선호하는 심리적 기제, ④ 국가주의적 열망의 재배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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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향은 실제로 관찰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좌파에서 우파로 간다>는 식의 단일한 법칙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일본·미국의 20세기 지식인들을 비교해 보면, 좌→우 전향에는 상당히 반복되는 몇 가지 사회학적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David Horowitz가 흥미로운 것도 바로 이 비교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Black Panther와의 경험을 거치면서 신좌파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Reagan과 Trump를 지지하는 강경 보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반 논리>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유용합니다.

1. 좌파 이념은 대개 기존 사회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젊은 급진주의자는 흔히 현재 사회와 이상사회의 거리를 크게 봅니다.

자본주의, 식민주의, 계급사회, 권위주의를 비판하면서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이나 사회주의 체제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거나 알게 되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현재 체제가 얼마나 나쁜가?>에서 <대안은 정말 더 나은가?>로 바뀝니다.

이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내린 사람이 전향하기 쉽습니다.

Horowitz에게는 Black Panther의 폭력 경험이 그 계기였고, 많은 유럽·일본 좌파에게는 스탈린주의, 헝가리 1956, 프라하 1968, 문화대혁명, 캄보디아 등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즉 첫 번째 공식은

<이상에 대한 믿음 → 운동의 현실 경험 → 환멸 → 기존 질서의 재평가>

입니다.

2. 특히 <폭력>이 중요한 전향의 촉매가 된다

흥미롭게도 전향자들의 회고록을 보면 경제이론보다 <폭력 경험>이 훨씬 강하게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억압적인 체제를 바꾸기 위해 어느 정도의 강제는 필요하다>

고 생각하다가, 자신이 지지한 운동 내부에서

숙청, 테러, 집단폭력, 내부 고발, 동지 비판

등을 경험하면 생각이 바뀝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심리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과거에는

<국가가 위험하다>

고 생각했다면,

나중에는

<혁명가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고 생각하게 됩니다.

Horowitz가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3. 전향자는 종종 기존 보수주의자보다 더 강한 보수주의자가 된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좌파에서 우파로 옮긴 사람이 온건한 중도우파에 머무르지 않고 <강경 우파>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이전에 속했던 세계를 내부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향자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는 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나도 그중 하나였으니까.>

따라서 이전 동료들의 행동을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위험한 전략>으로 해석합니다.

Horowitz가 미국 대학의 진보적 교수들을 단순한 정치적 반대자가 아니라 미국 사회를 내부에서 파괴하려는 세력처럼 묘사하게 된 것도 이런 구조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향자는 때때로 <개종한 종교인>과 비슷합니다.

자신이 버린 신앙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실제로는 <이념이 바뀐 것보다 적이 바뀐 경우>도 많다

이 부분이 저는 가장 흥미롭다고 봅니다.

앞서 Horowitz를 평하면서 언급했듯이, 그의 세계관의 형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68년경에는

<미국 제국주의 vs 혁명세력>

이라는 선악 구도였는데,

50년 뒤에는

<미국 문명 vs 급진좌파>

라는 선악 구도가 됩니다.

적만 바뀌었습니다.

정치사회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내용의 전향과 사고방식의 연속성>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일부 전향 지식인에게서도 상당히 발견됩니다.

강한 민족주의자였던 사람이 강한 사회주의자가 되고, 다시 강한 반공주의자가 되는 경우에도 겉으로는 세 번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 <역사에는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
  • <사회에는 근본적인 적이 있다>
  • <지식인은 그 싸움에서 편을 들어야 한다>

라는 사고방식 자체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향을 연구할 때는

  • <무엇을 믿게 되었는가?>뿐 아니라
  • <믿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는가?>를 봐야 합니다.

5. 일본의 <전향(転向)>은 특히 중요한 사례다

일본에서는 아예 <転向, tenkō>가 하나의 역사적 개념이 되었습니다.

1930년대 일본 공산주의자들이 경찰의 탄압과 사상통제 아래 공산주의를 버리고 천황제·국가주의를 받아들인 현상을 흔히 <전향>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섞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실제 신념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감옥, 고문, 취업 제한, 가족 압박 등을 견디지 못해 이루어진 강제적 전향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전전 전향을 Horowitz와 그대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일부 전향자는

<공산주의가 틀렸으니 자유주의자가 되겠다>

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대신 일본 민족과 국가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겠다>

는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즉 <절대적 역사철학의 대상>만 바뀐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역사적 사명을 믿다가 일본의 역사적 사명을 믿게 되는 식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깊은 연속성입니다.

6. 한국에서는 <반공주의>가 특별히 중요한 중간 고리였다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또 다릅니다.

식민지, 해방,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경험 때문에 좌→우 전향이 단순한 철학적 변화가 아니라 <생존과 국가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북한 체제와 한국전쟁의 경험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회주의나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

  • 소련·북한 공산주의의 현실,
  • 숙청,
  • 한국전쟁,
  • 월남 경험

등을 겪으면서 강한 반공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사회주의를 버림 → 자유민주주의를 선택>

이라는 온건한 이동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회주의를 버림 → 강력한 국가주의적 반공주의>

로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전향사를 연구할 때는 <우파화>를 하나로 묶으면 안 됩니다.

자유주의적 우파화와 권위주의적 반공주의화는 상당히 다른 현상입니다.

7. 왜 우→좌 전향보다 좌→우 전향이 더 눈에 띄는가?

여기에는 실제 현상뿐 아니라 <기억과 서사의 효과>도 있습니다.

우→좌 이동도 매우 많습니다.

특히 노동현장을 경험한 사람, 전쟁을 경험한 사람, 식민주의나 인종차별을 경험한 사람 가운데 보수적 환경에서 출발해 사회주의·진보주의로 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좌→우 전향에는 훨씬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나는 젊어서 순진했다 → 현실을 경험했다 → 진실을 깨달았다>

라는 일종의 성장담입니다.

전향한 사람 자신도 이 이야기를 즐겨 사용합니다.

그리고 보수진영도 이런 사람을 특별히 환영합니다.

<저 사람은 좌파 내부를 직접 경험하고 나왔다>

는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주의자로 성장했다가 좌파가 된 사람도 자신의 과거를 증언 자원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좌→우가 훨씬 많다>는 인상에는 일종의 <가시성 편향>도 섞여 있습니다.

8. 나이도 작용하지만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흔히 Churchill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젊어서 좌파가 아니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 우파가 아니면 머리가 없다>는 식의 말이 있습니다.

사회과학적으로는 너무 단순합니다.

  •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 재산을 갖고,
  • 직업적 지위를 얻고,
  • 가족책임이 커지고,
  • 급격한 사회변화를 위험하게 느끼게 되는 효과는 분명 존재합니다.
  • 그래서 일부에서는 보수화가 나타납니다.
  • 하지만 세대효과도 큽니다.

젊어서 형성된 정치적 가치가 평생 상당히 지속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어떤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이전 세대보다 계속 진보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노화 → 보수화>

라기보다는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이 증가하면서 급진적 변화의 비용을 다르게 평가하게 된다>

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9. 결국 전향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가 비교사적으로 분류한다면 이렇게 나누겠습니다.

  • <첫째, 경험적 전향>현실을 보고 기존 이론이 틀렸다고 판단한다.
  • <둘째, 상황적 전향>전쟁, 탄압, 직업, 가족, 국가적 위기 때문에 입장을 바꾼다.
  • <셋째, 구조적 전향>정치적 내용은 바뀌지만 사고방식은 그대로 남는다.

특히 세 번째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중도주의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급진성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Sejin님이 처음 제기한 질문에 대한 제 답은 이렇습니다.

<좌에서 우로의 전향에는 어느 정도 일반적 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나이를 먹으면 보수화한다’는 법칙이 아니다.>

더 중요한 과정은

<이상주의 → 운동 참여 → 현실과의 충돌 → 환멸 → 과거 신념에 대한 도덕적 반전 → 새로운 질서의 적극적 옹호>

입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경우에는 마지막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합니다.

<이념은 바뀌었으나 정치적 사고의 형식은 그대로 남는다.>

Horowitz는 바로 이 마지막 유형의 매우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다음 단계로 <일본의 전향(転向) 지식인 5–6명, 한국의 전향 지식인 5–6명, Horowitz 같은 서구 인물 5–6명>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패턴이 나옵니다. 특히 일본은 고바야시 히데오, 하야시 후사오 같은 사례, 한국은 해방 전후와 1980년대 이후의 전향을 분리해서 보면 차이가 매우 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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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그러면 <좌파에서 우파로의 전향>을 미국·일본·한국을 함께 놓고 비교해 보겠습니다. 핵심은 “왜 좌→우가 눈에 띄며, 무엇이 실제로 바뀌고 무엇은 그대로 남는가”입니다.

좌에서 우로의 전향은 왜 반복되는가

미국·일본·한국의 비교사회학적 분석

전향을 단순히 “젊어서 좌파였다가 현실을 알고 우파가 되었다”라고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실제 전향은 개인의 지적 깨달음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충격, 운동 내부의 경험, 국가체제, 세대 변화, 지위 상승, 그리고 이전 신념에 대한 심리적 재해석>이 결합되어 일어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전향한 사람이 반드시 중도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당수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이동한다. 바로 이 현상이 David Horowitz 같은 인물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근본악으로 보았지만, 말년에는 급진좌파와 이슬람주의를 미국 문명을 파괴하는 근본적 적으로 바라보았다. 정치적 대상은 바뀌었지만 <정치를 적과 동지의 투쟁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상당 부분 지속되었다.

1. 가장 중요한 구별: ‘사상의 전향’과 ‘정치적 전향’

먼저 모든 전향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한 사람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옮겼다면 이것은 상당히 깊은 철학적 전향일 수 있다.

반면 공산주의를 버리고 극단적 민족주의로 이동했다면 경제·정치적 이념은 크게 바뀌었지만 사고의 기본구조는 오히려 그대로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전향 전:

<역사는 계급투쟁이며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의 주체다.>

전향 후:

<역사는 민족 간 투쟁이며 우리 민족이 역사의 주체다.>

표면적으로는 공산주의에서 민족주의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는

<역사에는 하나의 방향이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선택된 집단이 있다>
<적과 동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는 사고구조가 유지된다.

따라서 전향을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믿게 되었는가?>

보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변했는가?>

이다.


2. 세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첫 번째 단계: 이상주의

좌파 운동은 역사적으로 젊은 지식인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특징이 있었다.

왜냐하면 좌파는 대개 현실 설명과 동시에 <도덕적 약속>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잘못되어 있다.”

“잘못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그 구조를 바꾸면 더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하다.”

이 세 문장은 젊은 지식인에게 매우 강한 매력을 갖는다.

특히 불평등, 식민주의, 전쟁, 빈곤을 목격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일본의 1920~30년대 지식인, 한국의 식민지 시대 및 해방 후 청년들, 미국의 1960년대 신좌파에는 놀랄 만큼 비슷한 구조가 있었다.

<현실에 대한 도덕적 분노 → 하나의 이론을 통한 설명 → 운동에 참여>

이다.


3. 두 번째 단계: 운동을 가까이에서 경험한다

여기서 중요한 갈림길이 생긴다.

좌파를 멀리서 지지하는 것과 조직 내부에서 활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실제로 조직에 들어가면

권력투쟁, 파벌, 조직규율, 이념검증, 배신, 숙청, 폭력

같은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이때 일부 사람들에게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권력을 잡으면 정말 지금보다 나은 사회가 될 것인가?>

Horowitz에게 Black Panther 경험이 결정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에게 좌파의 문제는 더 이상 이론상의 오류가 아니었다. 자신이 신뢰했던 운동 내부에서 폭력과 범죄의 가능성을 본 것이었다.

일본 공산주의 운동이나 한국의 좌익운동에서도 조직 내부 갈등과 숙청 경험이 전향의 한 원인이 된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전향의 중요한 메커니즘 하나는

<억압받는 자에 대한 연대 → 운동에 참여 → 운동 자체의 권력성 발견>

이다.


4. 세 번째 단계: ‘현재의 악’보다 ‘대안의 악’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정치적 시선이 완전히 바뀐다.

젊은 급진주의자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현재의 체제가 가장 위험하다.>

그러나 전향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체제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자본주의의 불평등보다 공산주의 독재를 더 두려워하게 되고,

국가권력보다 혁명폭력을 더 두려워하게 되고,

기존 질서의 부정의보다 사회붕괴를 더 두려워하게 된다.

이 순간부터 <질서>라는 가치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좌→우 전향의 깊은 심리적 변화는

<정의 우선>

에서

<질서 우선>

으로의 이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5. 일본: 전향은 개인 선택이 아니라 국가체제의 문제였다

일본의 경우는 특히 독특하다.

1930년대 <転向(전향)>은 단순한 정치적 의견변화가 아니었다.

일본 공산당원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찰과 국가의 강한 압력 아래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는 현상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대표적인 분기점이 1933년 일본 공산당 지도자 사노 마나부(佐野学)와 나베야마 사다치카(鍋山貞親)의 전향 선언이다.

이들은 단순히

<공산주의는 틀렸다>

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천황제와 민족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구조가 나타난다.

<세계혁명이라는 절대적 역사 → 일본 민족이라는 절대적 역사>

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일본 전향연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전향은 정말 사상의 포기인가, 아니면 급진주의의 대상만 교체된 것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되어 왔다.

이 문제를 연구한 일본의 사상사가 매우 풍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6. 한국: 전향의 핵심에는 ‘분단’이 있다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보다 더 복잡하다.

한국의 좌→우 이동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식민지 → 해방 → 분단 → 한국전쟁>

이라는 구조를 넣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좌우 선택이 단순한 정치철학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체제에서 살아갈 것인가라는 생존의 문제였다.

사회주의에 어느 정도 호감을 가졌던 사람이

북한 체제의 형성,

소련식 공산주의,

숙청,

한국전쟁

등을 경험하면서 극단적인 반공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한국 특유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사회주의 비판 → 반공주의 → 대한민국 국가 정당성의 적극적 옹호>

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로 이동>

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로 이동>

하는 경우다.

둘은 동일하지 않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둘을 모두 ‘우파화’라고 묶어버리면 많은 것을 놓친다.


7. 미국: ‘배신당한 1960년대’라는 서사

미국의 Horowitz 세대에는 또 다른 형태의 전향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국가의 강제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일본의 1930년대 전향보다 훨씬 자발적인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대략 이런 흐름이 나타난다.

1960년대:

민권운동
베트남전쟁 반대
신좌파
반문화운동

1970년대:

급진운동 내부의 폭력
소련·중국 현실에 대한 실망
신좌파의 분열

1980년대:

Reagan 보수혁명

이 과정에서 일부 전직 좌파는

<우리가 미국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았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 가운데 일부가 네오콘 또는 강경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Horowitz 역시 이런 흐름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8. 전향자가 왜 원래 우파보다 더 강경해지는가

이것은 세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전향자는 이전 동료의 세계를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저들의 말을 문자 그대로 듣지 않는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이것은 강력한 정치적 권위를 만들어낸다.

전향한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자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안다>

고 말한다.

전직 신좌파는

<급진좌파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안다>

고 말한다.

따라서 정치적 반대자를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숨겨진 의도를 가진 위험한 세력>으로 해석하기 쉽다.

이것이 전향자가 때때로 기존 보수주의자보다 훨씬 강한 반좌파가 되는 이유다.


9. 여기에는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20년 동안 믿었던 이념을 버렸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조금 잘못 판단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자신의 인생 20년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훨씬 강력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나는 속았다.>

<그 이념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내부에서 그 위험을 직접 보았다.>

이렇게 하면 과거의 실패가 새로운 정치적 자산으로 바뀐다.

과거의 잘못은

<나는 잘못 판단했던 사람>

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나는 적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이라는 자격증이 된다.

Horowitz의 후기 정치활동에서도 이 구조가 매우 강하다.


10. 그래서 전향자의 세계관은 종교적 개종과 닮는다

사회학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종교 개종자 가운데 일부가 새로운 신앙에 가장 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구조를 단순화하면

옛 믿음

위기

깨달음

옛 믿음의 부정

새로운 진리

증언 활동

이 된다.

전향 지식인의 회고록도 놀랄 만큼 같은 구조를 가진다.

“나는 이렇게 믿었다.”

“이 사건이 내 믿음을 흔들었다.”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따라서 정치적 전향을 <세속적 회심 conversion>이라고 분석하는 것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11. 그러나 좌→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균형이 필요하다.

우→좌 이동도 매우 흔하다.

식민지 지배,

인종차별,

노동착취,

전쟁,

독재

를 경험하면서 보수적 세계관을 버리고 좌파나 진보주의로 간 사람도 수없이 많다.

그런데 좌→우 전향자가 특별히 눈에 띄는 이유는 이야기가 훨씬 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적 청년 → 냉혹한 현실 경험 → 성숙한 현실주의자>

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서사는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전향자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에도 항상 자기정당화가 들어간다.


12. 가장 중요한 세 유형

결국 좌→우 전향을 세 가지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A. 자유주의적 전향

급진주의를 버리지만 인권·민주주의·다원주의는 유지한다.

마르크스주의
→ 사회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

이것은 실제 의미에서 <중도화>다.

B. 보수주의적 전향

급진주의의 위험을 깨닫고 시장·전통·국가·질서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한다.

좌파
→ 보수주의

C. 급진주의적 역전

적만 바뀐다.

극좌
→ 극우

이 경우

절대주의,

적대정치,

역사적 사명감,

도덕적 확신

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Horowitz는 B와 C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라고 본다.


13. 세 나라를 한 표로 압축하면

일본한국미국
결정적 시대   1930년대1945–60년대1960–80년대
핵심 충격      국가 탄압·천황제분단·전쟁·북한신좌파의 급진화
주요 출발점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민족주의New Left
이동 방향   국가주의반공주의보수주의
국가 강제   매우 강함강함약함
중요한 감정   굴복·재해석공포·생존환멸
핵심 질문   천황제와 공산주의어느 국가인가미국은 정말 악인가

이 표에서 특히 중요한 차이는 <국가의 역할>이다.

미국의 Horowitz식 전향은 상당히 자발적이었다.

일본의 1930년대 전향은 국가의 강압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의 전향은 그 중간쯤에 있으며 여기에 전쟁과 분단이라는 극단적인 조건이 더해졌다.


결론

좌에서 우로의 전향에는 분명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도덕적 이상주의 → 운동 참여 → 현실 경험 → 환멸 → 대안에 대한 공포 → 기존 질서의 재평가>

이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 전향자의 길은 갈린다.

어떤 사람은

<좌파도 틀릴 수 있고 우파도 틀릴 수 있다>

는 다원주의자가 된다.

이 경우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고방식까지 변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내가 과거에는 잘못된 편에 있었고 이제 진짜 옳은 편을 찾았다>

고 생각한다.

그 경우에는 신념의 내용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편과 절대적으로 잘못된 편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은 남는다.

저는 전향 연구에서 바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구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깊은 전향은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하나의 정답과 하나의 적으로 설명하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Horowitz를 단지 “좌파였다가 우파가 된 사람”이라고 보는 것보다, <급진좌파적 세계관의 구조 가운데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보수주의 속으로 그대로 가지고 갔는가>를 묻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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