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6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박맹수 외 2014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박맹수 외 | 알라딘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나카츠카 아키라,박맹수,이노우에 가츠오 (지은이),
한혜인 (옮긴이)모시는사람들2014-11-05





책소개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면한 후, 그리고 100년 만인 1995년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된 이후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는,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공감하고 공유해 가는 과정을 적은 20년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갈등의 역사'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보여준다.


목차


01 청일전쟁을 둘러싼 역사 기억 /나카츠카 아키라
청일전쟁에 관한 일본인의 기억
일본군의 첫 번째 공격이 왜 ‘조선 왕궁 점령’이었을까?
도죠 히데노리(東條英教)의 「격벽청담」
어느 대대장의 자살- 환영받지 못한 일본군

02 동학농민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나카츠카 아키라
‘동학’이란 무엇인가
조선에 대한 편견이 낳은 동학 사교관
조선왕조 말기의 민중과 서양의 압력
동학은 어떤 사상인가
동학의 확산- 잠행하는 포교에서 집단적 시위운동으로
접과 포
끓어오르는 농민의 대중운동
동학농민전쟁의 전개

03 일본군 최초의 제노사이드 작전 /이노우에 가쓰오
조선 전역에서 끓어오른 동학농민군의 재봉기
가와카미 소로쿠의 “살육 명령”- 섬멸작전의 서곡
섬멸작전과 대본영·섬멸대대에 대한 파견 명령
연산의 전투현장-한일 공동조사에서
남발되었던 섬멸 명령
어느 일본군 병사의 「진중일지」에서

04 동학농민전쟁의 역사를 걷는다 /나카츠카 아키라
역사의 현장에 서다
비빔밥이 가장 맛있는 거리와 세계유산 지석묘
‘사발통문’을 새긴 동학혁명 모의탑
무장(茂長)-동학농민혁명 발상지
황토재 언덕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의 충격
삼례의 동학농민기념공원
공주를 눈앞에 둔 대격전지 우금티
지금도 계속되는 저항- 연산
보은-동학의 길
장흥-두 개의 기념비
나주-일본군 최후의 몰살 작전의 기지
진도-두개골을 채집했던 장소
대둔산-기록에 남아 있는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투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이야기하는 것

05 동학농민혁명과 현대한국 /박맹수
광주사건의 한가운데에서 군대에 있었던 나
야학운동의 선두에서 배운 것
민주화운동의 원점인 동학농민혁명
현장 답사를 중심으로 연구 30년
인골방치사건에서 시작한 한일공동연구
풀뿌리 차원의 교류 발전
현대에 살아있는 동학사상 ‘한살림운동’
내일을 위한 제언
접기


책속에서


P. 23 ‘또 하나의 청일전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동학농민군을 주력으로 하는 조선인이 일본군의 조선 침략에 반대해서 일어났을 때, 그 조선인을 상대로 일본군이 몰살 작전을 펼쳤던 전쟁을 말합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때, 많은 조선인이 항일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인은 현재 거의 없습니다. 청일전쟁의 또 하나의 전쟁인 조선의 항일투쟁,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이 싸웠다는 것을 일본인은 대부분 모르고 있습니다. 접기

P. 39 동학은 조선왕조 말기 정치적·사회적으로 직면해 있던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를 민중 차원에서 개혁하고 점점 압박해 오는 외국의 압력으로부터 민족적 이익을 지키려고 하는 당시 조선 사회의 역사적 바람을 반영한 사상이었습니다.
P. 61 수만의 조선농민이 희생당한 조선 동학농민봉기와 일본군의 포위 섬멸 작전은 분명히 청일전쟁 후 일본 정부와 일본군에게 사실은 큰 문제를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사에 다소라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하는 참모본부의 자세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는커녕 대대적인 작전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군사기밀상 병참부의 상황을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는다는 등의 핑계를 대더라도, 참모본부가 편찬한 전사에서는 철저히 은폐되었습니다. 접기

P. 88 즉 28일에 시모노세키 히코시마에 있던 미나미 소좌에게 조선 파견 명령이 내려와서 미나미 소좌는 그날 히코시마 ‘수비 교대 준비’를 끝내고 출발, 다음날 제5사단 사령부로 출두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본영이 설영되어 있었습니다. 미나미 소좌가 수비 교대 준비를 하고 나서 그날 출발했다고 하는 것은 그만한 준비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오후4시 이전, 즉 대본영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성 일본공사관과 인천병참감에 동학농민군 토멸 부대 파견을 타전한 오후4시보다 앞서서 히코시마의 후비 제19대대에 조선 파견 명령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접기

P. 111 미나미 대대장은 섬멸작전 직후에「 동학당정토약기(東學黨征討略記)」라는 강화(講話)기록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농민군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원문대로 소개합니다.
“장흥(전라도 남부--역자 주), 강진(충청도 서부-역자 주) 부근의 전투 이후 비도를 많이 죽이는 방침으로 한다.” “동학당은 잡는 즉시 죽일 것.”
즉 가능한 한 많은 동학농민을 살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잡는 즉시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접기

P. 133 여행에 즈음하여 늘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걷고 싶었습니다. 우선, 동학농민이 1894년에 봉기했던 전라도라는 지역이 어떤 지역이었을까를 현지를 보면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현지를 방문하면 동학농민의 고투를 기념하는 여러 가지 비(碑)와 조각품, 기념탑과 기념관 등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당시 농민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것과 동시에 기념상과 탑, 건물을 만들고 있는 현재 한국 사람들의 ‘지금의 생각’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한 체험입니다. 접기

P. 155 여기에는 올려 보게 되는 탑은 없습니다. 가운데 주탑에는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이라고 새겨진 받침대 위에 사각의 화강암 판으로, 넘어져 있는 동료를 껴안고 죽창을 들고 외치는 농민의 모습이 엷게 새겨져 있습니다.
앞에 소개했던 박준성 씨의 발표에 의하면 이 조각 방법은 1980년대에 자주 쓰였던 민중 판화 양식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1987년 6월 민주화 투쟁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같은 달 9일,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연세대학교의 이한열이라는 학생을 일으켜 안은 동료가 전두환 정권에 대하여 화난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사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접기

P. 185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국의 군대가 범한 전쟁범죄의 진상을 해명하고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의 청산을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연구자들도 제노사이드 학회를 만들어 진상규명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한국인은 평화와 공생을 실현하려는 생각으로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명백하게 밝히는 한편, 불행했던 역사를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과제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떻습니까?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 ‘과거의 잘못된 유산’은 자국 사람들에 의해서 청산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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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3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나카츠카 아키라 (中塚明)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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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출신으로 교토대 사학과를 졸업하였고, 일본근대사를 전공했다. 1960년대부터 근대 일본 역사에서 ‘조선 문제의 중요성’을 자각하여, 청일전쟁을 비롯한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사 등 한일관계 역사를 연구했다. 1963년부터 나라여자대학 문학부 강사, 조교수, 교수로 근무하였고 1993년에 정년퇴임하였다. 조선사연구회 간사, 역사과학 연구회 대표위원, 일본학술회의 회원 등을 지냈다. 나라여대 명예교수이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대표적 지성이다.

저서에 <청일전쟁연구日淸戦爭の硏究>(1968), &l... 더보기

최근작 : <건건록의 세계>,<건건록>,<일본인이 본 역사 속의 한국> … 총 22종 (모두보기)

박맹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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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무이자 한국근대 역사 및 사상 연구자로 오랜 기간 활동했다. 동학농민혁명에 관해 다수의 연구를 발표하고 관련 활동에 참여했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와 같은 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사료로 보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동학농민혁명과 제국일본』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 등이 있다.

최근작 : <개벽사상과 종교공부>,<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동학으로 가는 길> … 총 30종 (모두보기)

이노우에 가츠오 (井上勝生)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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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기후(岐阜) 현에서 출생. 1967년 교토대 문학부를 졸업했고 전공은 막말(幕末)·유신사이다. 2014년 현재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다.

주요 편저서에는 『시리즈 일본근현대사 1-막말·유신』(이와나미신서, 어문학사에서 『막말유신』으로 번역됨), 『동학농민전쟁과 일본』(공저, 高文研), 『막말유신정치사 연구』(塙書房), 『일본의 역사 18-개국과 막말변혁』(講談社 학술문고), 『막말유신론집 2-개국』(편저, 吉川弘文館) 등이 있다.

최근작 : <경상도 구미 동학농민혁명>,<동학농민전쟁과 일본>,<메이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 … 총 9종 (모두보기)

한혜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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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했습니다. 강제연행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단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이노우에 가쓰오(井上勝生), 박맹수
세 명의 역사학자가 말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진상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면한 후, 그리고 100년 만인 1995년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된 이후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는,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공감하고 공유해 가는 과정을 적은 20년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갈등의 역사’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2014년 10월 21일, 광주 상록회관
드넓은 예식홀, ‘한일 시민 교류회’에 참석한 1백여 명의 청중을 향하여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강연을 시작했다. ‘제9회 한일 시민이 함께 하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의 일본 측 여행단 50여 명을 인솔하고 한국에 온 나카츠카 교수는 성성한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내각의 폭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는 강력한 일성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나카츠카 교수는 현재 일본의 극우화 흐름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간략히 설명하고, 그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나카츠카 교수, 2014년 4월 25일 제7회 녹두대상 수상
특히 나카츠카 교수는 본인이 올해 4월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로부터 제7회 녹두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의 감동을 전하면서 그것은 한국의 시민들이 일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그 내용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양국 사이의 역사인식을 바로 세워 가는 데 신명을 다하자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흔쾌히 수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이날의 특강 내용은 이 보도자료 말미에 첨부)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기행’은 무엇인가
이제는 한국인에게도 잊혀져가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일본인들의 역사기행이 길게 보아 20년째, 그리고 조직적으로 올해로 9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카츠카 교수는 반세기 이상의 시간 동안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헌신해 왔으며(나카츠카 교수는 일본 교과서를 바로 잡는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이 청일전쟁과 그 속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 정리를 하던 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올바로 일본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올해 행사의 특징은?
특히 올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2주갑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이하여 일본에서는 42명이라는 대규모 견학단이 참가하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또한 일본인의 관심은 ‘전라도 동학’을 넘어 동학의 발상지 경주 용담정 견학을 시작으로, 대구(동학 창도주인 수운 최제우의 순도지)와 남원(수운 최제우가 경전을 다수 집필한 동학의 성지)의 동학 유적지를 거쳐, 정읍과 전주, 논산과 공주 일대 동학 사적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에게 ‘동학농민혁명’은?
일본인에게 ‘동학농민혁명(전쟁)’은 존재하지 않는 역사이다. 일본인이 기억하는 당시의 동아시아 역사는 오직 ‘청일전쟁’뿐이다. 일본에게 ‘조선(한반도)’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한 것을 전후 사정으로 알 수 있다. ‘청일전쟁(1894-1895)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것(이노우에 가쓰오 교수는 이를 ‘일본이 저지른 최초의 제노사이드’라고 표현한다.)은 동학농민군’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천착하는 데서부터 나카츠카 교수의 역정(歷程)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학’이라는 거대한 동력을 주저앉힌 일본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재인식하고, 그것을 바로 잡아가자는 희망에서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고 있다. 그것은 동학 사상과 이념 그리고 그 정신의 미래 지향성, 생명사상 등의 측면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보다 나카츠카 교수에게, 그리고 그의 뜻에 공감하여 해마다 한국을 찾아오는 양심적 일본인에게 그것은 한국(조선)의 문제가 아니다. 우경화의 길로 치닫는 일본 정부와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한, 그렇게 해서 일본이 또다시 전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여야만 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 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장정(長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
이 책 <동학농민전쟁과 일본-또 하나의 청일전쟁>에서 나카츠카 교수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되고, 특히 이 길에 있어서 학문적 동지인 이노우에 가쓰오 교수, 한국의 박맹수 교수와 어떻게 연계되고 함께 노력해 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또 이노우에 가쓰오 교수는 일본 내에 은폐되고 유폐된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료를 발굴하면서 그 속에서 일본군이 그 후 50여년에 걸쳐 저지른 ‘제노사이드’의 원형질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밝히고 있다. 또 박맹수 교수는 1994년 동학농민군 유골 발굴을 계기로 두 명의 일본인 석학들과 교신하면서 스스로 한일 시민 교류의 중심이 되어 갔던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최근 번역 출간된 <일본의 양심이 보는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나카츠카 아키라),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나카츠카 아키라)과 연속된 선상에 있다. 이 책의 출간이 한편으로는 한-일 간의 바른 역사 인식의 확산을 위한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동학’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한국에서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로 확장시켜 가는 디딤돌로서 역할할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몰아올 폭풍을 일으킬 나비의 날갯짓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역사를 직시하는 한일시민 교류회 강연문

2014년 10월 21일 / 광주 상록회관 3층
나카츠카 아키라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그리고 전라북도에서 오신 여러분들께서 저희들 ‘제 9회 한일 시민이 함께 가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단’ 일행을 맞아, 이렇게 성대한 시민교류회를 개최하여 주신 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일행들을 대표하여 짧은 말씀으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폭주하는 아베(安倍) 내각
여러분들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듯이,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내각의 폭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초에 아베 내각은 내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만, 19명의 각료 가운데 아베 신조 수상과 아소 타로 부총리를 비롯한 15명의 각료가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으로 메워졌습니다. ‘일본회의’란 “일본의 모든 악의 근원은 도쿄재판사관에 있다”는 주장을 기본적인 생각으로 삼고 있는 단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제천황제 국가였던 일본군국주의는 패배했습니다.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임으로써 항복했습니다. 그 후 일본은 1951년의 대일(対日)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 제 11조)에서 도쿄재판, 즉 ‘극동국제군사재판소 재판을 수락’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복귀했습니다. ‘일본회의’는 이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 약속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정치집단입니다.
아베 내각은 단순한 ‘보수정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인식되어 있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역사수정주의의 ‘우익집단 정권’입니다. 이 아베 내각의 정책은 일본 시민들의 다양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결정 반대’, ‘원전 재가동 중지’, 오키나와의 ‘헤노코(辺野古) 기지 건설 반대’ 등의 목소리는 일본 내 그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지니지 못한 채’ 폭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야를 세계로 넓히고, 긴 안목으로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자
그러나 아베 내각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과연 세계에 통할 수 있는 길일까요? 지난 9월 18일,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2014년판「전략개관」을 발표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베 정권에 대해 상세한 논평을 하면서 아베 신조 수상의 역사인식에 관한 자세가 일본을 국제적 고립으로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식민지시대의 역사인식을 재검토함으로써 국제관계를 전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아베 씨의 정치적 신조는 일본을 후퇴시켰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저해해 왔다”고 비판했으며, 특히 2013년 말에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중국에 의한 동지나해 상공의 방공식별권(ADIZ) 설정 문제를 둘러싼 일본 측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을 날려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견해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아베 정권 평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베 정권을 일본 정계로부터 퇴출시킬 가장 기본적인 힘은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본시민들인 저희들이 아베 내각의 폭주에 맞서서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 핵심은 시야를 세계로 넓히고 긴 안목으로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녹두대상의 감동
지난 4월 25일, 저는 한국 전라남도 ‘고창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로부터 ‘녹두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수상 후보자로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고 아베 내각의 폭주를 생각했을 때,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일본인에게 최초로 녹두대상을 수여하려는 것일까?”라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분간 못하는 아베 내각의 ‘망언’과 ‘망동’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분개하고 있을 지는 용이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민감한 시기에 “왜 일본인인 나에게 녹두대상을 수여하려는 것일까”를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작금의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는 데 있어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이겠는가,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측이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어 ‘녹두대상’을 기꺼이 수상하기로 하였습니다. ‘녹두대상’은 나카츠카라는 한 개인에게 수여했다기보다는 “일본인들에 대한 메시지다”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녹두대상’ 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녹두대상’을 수상하고 나서 제가 대단히 감동한 일입니다만, ‘녹두대상’ 상패에 새겨진 문장 속에는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선동하는 글자를 단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추구하고자 했던 ‘자주’와 ‘평등’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 ‘자주와 평등’을 위한 사업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의 본지(本旨)이다, 이것을 지금의 한국 고창군 군민들이 계승, 발전시키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사업에 공헌했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나라) 안으로는 억압과 경쟁, (나라) 밖으로는 침략”이라는 구미열강과 일본이 경험했던 근대화와는 별개의 근대화의 길, 그것을 현대에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현대에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저는 이해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현실의 나날 속에서는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격차를 확대시켜 가고 있는 일본의 아베 내각과는 천지 차이가 나는, 역사의 창조적 실천이 아닐까, 저는 대단히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녹두대상’ 수상 이후, 나라(奈良)를 비롯하여 도쿄(東京)와 교토(京都) 등지에서 녹두대상 수상 관련 보고와 함께 동학농민혁명이 현대한국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는가를 일본의 벗들과 시민 여러분들에게 강연하기도 하고 잡지에도 기고하기도 함으로써 ‘녹두대상’ 수상의 의미를 일본사회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녹두대상’을 수여 해 주신 ‘고창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배운 것
‘한일 시민이 함께 가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올해로 제 9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저희들이 이 여행을 통해서 120년 전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물론입니다만, 그와 동시에 방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한국 땅에서 살고 계신 한국의 여러 시민들의 생각과 세계관을 배우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직시하면서, 그리고 그런 역사적 진실로부터 눈을 딴 데로 돌리지 아니하고 살아갈 때, 틀림없이 한국의 여러분들께서 지니고 계신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하는 고민들과 진지하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개인의 생물학적 장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예견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이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쌓여진 한일 두 나라 시민들 간의 우정은 틀림없이 이 여행을 언제까지나 계속하게 만들어 연륜을 거듭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한일 두 나라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한일 시민 상호간의 교류가 더 한층 발전해 가기를 염원 드리면서 인사 말씀에 가름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녹두대상은

전라북도 고창군이 매년 선정하여 동학농민혁명의 계승 발전을 위해 공헌, 혹은 동학농민혁명 정신 계승을 위한 학술·연구·문화사업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무장기포일인 4월 25일(음력 3월 20일)에 수여하는 상으로, 1894년 무장기포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한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2008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을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정남기 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이화 선생, 조경달 교수, 전북일보 동학농민혁명 특별취재팀 등을 수상자로 선정해 왔으며, 올해(2014년) 4월 근대 한일 관계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본인들의 올바른 인식과 이해에 기여한 공로로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에게 시상하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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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1894년은 한국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해이다. 먼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이후 한국사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둘째,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동아시아의 주도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갑오개혁이 시행되어 신분제 철폐적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1894년은 의미가 깊다.

위 세 가지 이유의 중심에는 물론 동학농민운동이 자리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주제를 이곳에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대체로 한국측 자료와 증언들이다. 이에 비해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풍성한(?) 일본측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자료들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군 참전 병사나 지역 신문 등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면서 한 개인으로의 심경을 드러낸다. 반면 일본 군부가 작성한 자료들은 왜곡(내지 조작)을 통해 자신을 위대한(?) 입장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지나간 과거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일본군의 무고한 농민 학살(30만명 추정), 일본의 부인, 당시 정부와 집권자들의 무능력, 개인의 무기력함 등이 동시에 밀려와 후대의 독자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개인적 감정을 느끼고자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린 자는 잊으려하고 맞은 자는 분노에 치를 떤다. 비록 내가 100년도 더 지난 후대인일지라도.

책의 출발은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 유골이 대학에 오게 된 경위를 조사하면서 잊혀진 과거의 사실이 드러나고, 이것을 다시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며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고마운 것은 이 사실은 조사하고 인정한 일본의 학자들이다. 진실을 마주할 줄 아는 그분들의 용기에 그저 고개숙여질 뿐이다. 그렇기에 일본 자료를 중심으로 쓰여졌다해도 그렇게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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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8-03-10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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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박맹수 외



# 동학사상의 특징

1. 시천주侍天主 : 누구나 자신 안에 ‘천주’(만물의 생명의 근원)를 모실 수 있다는 만민평등 사상

2. 보국안민輔國安民 : “국가의 악정을 고쳐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민본주의적 사상

3. 후천개벽後天開闢 : 현세가 종말을 맞이하고 가까운 미래에 이상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

4. 유무상자有無相資 :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공동체 정신




# 동학조직의 구성

1. 대도소大都所 : 2대 교주 최시형이 1893년 충청도 보은에 설치한 총본부

2. 포包(대접주) : 몇 개의 접을 묶어 만들어진 중간 조직

3. 접接(접주) : 35-70호 정도의 규모로 지역에 만들어진 기초 조직




# 동학농민전쟁의 전개

1. 최초의 무장봉기 : 1894년 2월 15일 전봉준 등이 중심이 되어 고부의 악덕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항의하면서 일어난 봉기

2. 혁명을 목표로 한 봉기: 전봉준과 손화중·김개남 등의 대접주들이 뜻을 모아 전면 봉기하여 황토재에서 전라 감영군을 격파(5월 10일)하고 전주마저 점령(5월 31일). 동학농민군 진압을 구실로 청나라와 일본군이 조선 출병.

3. 전주화약(全州和約) :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은 농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도소(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을 진행하기로 합의

4. 항일투쟁 : 일본군의 경복궁점령 소식이 전해지면서 10월 이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2차 봉기. 두 차례의 우금티 전투(11월 10-12일, 12월 4-7일)에서 일본군에게 대패

5. 우금티전투 이후 : 일본군의 포위섬멸작전





후비 제19대대 3개 중대 중 일본군 서로 부대인 제2중대는 남·북접 합동 농민군의 북상을 논산평야 북부에 있는 금강 강변의 요지인 공주성에 들어가서 기다렸습니다. 11월 20일에 농민군이 북상해서 동학농민전쟁 최대의 격전이었던 공주전투가 두 차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 후비 부대는 스나이더 소총이라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이플총은 탄구를 회전시키도록 총 내부에 나선형 홈이 새겨진 총으로, 당시의 소총과는 격이 다른 사정거리와 명중률, 살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 보병전에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 최대의 격전이 되었던 이 공주전투가 전장의 최후로 서술되어 있는 우금티전투입니다. (···) 수만 명의 동학농민군은 100명 단위로 병력이 훨씬 적은 일본군에게 개개 전투에서는 압도적으로 격파당하였습니다. 죽창과 화승총을 가진 농민군과 라이플총을 가진 훈련된 근대 보병대와의 싸움은 농민군 200명을 일본군 1명이 대적할 정도로 엄청난 전력 차가 있었던 것입니다.(94-6)




# 후비병 : 현역과 예비역 다음으로 병역에 임한 27-32세 가량의 최고령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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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9-06-2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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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나카츠카 아키라, 박맹수, 이노우에 가츠오 (지은이), 한혜인 (옮긴이) --- 1,000 단어 요약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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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또 하나의 청일전쟁>에 대한 요약과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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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개요 및 구성>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인 나카츠카 아키라, 박맹수, 이노우에 가츠오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한·일 양국의 사료를 바탕으로 공동 추적한 연구서다. 1906년 일본 홋카이도 제국대학으로 무단 반출되었다가 1995년에 발견된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아, 메이지 정부가 자행한 대규모 진압 작전의 실체를 파헤친다.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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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전개된다.

홋카이도 대학에서 발견된 유골 반환 운동과 이에 얽힌 근대사적 배경

일본군 대본영과 주한 일본공사관 차원에서 기획된 동학농민군 섬멸 작전의 실증

청일전쟁이라는 대외적 침략전쟁의 이면에 은폐된 <또 하나의 침략전쟁>과 역사 왜곡의 계보 규명

<핵심 내용 요약>

1894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기존 일본 관학의 서사는 청나라와 일본의 정규군 간 충돌인 <청일전쟁>만을 부각해 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일본 육군 참모본부 공문서, 참전 군인의 진중일기, 전신 명령문 등 1차 사료를 면밀히 교차 검증하여, 동학농민군에 대한 진압이 단순 치안 유지가 아닌 철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적 군사작전이었음을 명확히 밝힌다.

1894년 10월 말 도쿄 대본영은 한반도 파병 부대에 동학농민군을 포로로 잡지 말고 남김없이 살육하라는 취지의 명령을 하달했다. 전남 장흥, 해남 등지에서 작전을 수행한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는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농민군을 최신식 스나이더 총과 무라타 소총으로 사격하며 궤멸시켰다. 진중일기에 기록된 현장은 체포된 부상자를 불태워 죽이거나 줄 세워 총검으로 척살하는 등 무차별 학살의 양상을 띤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이 과정에서 희생된 농민군은 수만 명에 달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잔혹 행위가 일선 지휘관의 일탈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 내각과 육군 참모본부 등 메이지 국가 지도부의 조직적 결정이었음을 논증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탄생한 일본 근대국가는 문명개화를 표방했으나, 실제 대외 팽창의 첫걸음은 자국의 이권을 위해 이웃 나라의 민중을 몰살하는 침략적 폭력 위에 서 있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드러낸다.  
동아일보

<비평과 평가>

이 책은 동학농민전쟁을 한국사의 내부적 반봉건·반외세 운동이라는 단일 민족사적 테두리에서 건져 올려, 근대 동아시아 제국주의 형성사라는 거시적 맥락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첫째, 한·일 역사학계의 엄정한 사료 비판과 양국 연대의 성과물이다. 나카츠카 아키라를 비롯한 일본 양심적 학자들은 자국 군사문서와 지방 문서고에 묻혀 있던 사료를 발굴해 국가가 은폐해 온 범죄적 진상을 복원했다. 이는 자국 중심적 시각이나 편협한 내셔널리즘에 갇히지 않고, 객관적 진실 추구를 학문의 최우선 가치로 둔 역사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동아일보

둘째, 청일전쟁의 본질을 재규정했다. 일본 근대화의 승리로 칭송받던 청일전쟁의 그늘에는 조선 민중을 학살하고 식민지 지배의 교두보를 마련한 비정규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는 이후 의병 탄압, 3·1 운동 탄압, 난징 대학살로 이어지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초토화 작전 원형이 이미 1894년 한반도에서 완성되었음을 시사한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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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실천적 태도를 제시한다. 홋카이도 대학에 방치되었던 유골 문제는 단순한 유물의 처리가 아니라,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어떻게 대면하고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다. 책은 민족 간의 감정적 대립을 넘어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만이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구축하는 길임을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국가주의적 기억의 신화를 걷어내고 피억압 민중의 시각에서 근대사를 다시 읽게 만드는 치열한 역사적 고발장이자, 동아시아의 진정한 역사 화해를 모색하는 의미 있는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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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나카츠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 요약·평론

<동학농민전쟁과 일본>(中塚明·井上勝生·朴孟洙)은 2013년 일본에서 <東学農民戦争と日本―もう一つの日清戦争(동학농민전쟁과 일본―또 하나의 청일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한혜인이 번역하여 2014년 모시는사람들에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이 책은 일반적인 동학농민혁명사가 아니다. 핵심 질문은 훨씬 도발적이다.

“1894년의 전쟁을 정말 ‘청일전쟁’이라고만 불러도 되는가?”

저자들의 대답은 사실상 “아니다”이다. 중국과 일본이 조선에서 싸운 청일전쟁의 이면에는 일본군과 조선 농민군 사이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대규모 전쟁이 있었고, 일본의 역사서술은 이것을 오랫동안 주변화하거나 삭제해 왔다는 것이다. 일본판 부제가 바로 ‘또 하나의 청일전쟁’인 이유이다.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카츠카가 청일전쟁의 기억과 동학농민전쟁의 배경을, 이노우에가 일본군의 섬멸작전을, 나카츠카가 전적지 답사를, 박맹수가 동학과 현대 한국의 관계를 다룬다.

1. 청일전쟁은 풍도·성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첫 장에서 나카츠카 아키라가 가장 중요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일본군의 1894년 7월 경복궁 점령이다.

전통적인 일본 청일전쟁사는 일본과 청이 조선의 개혁 문제를 놓고 대립하다가 결국 전쟁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그러면 조선은 전쟁이 벌어진 ‘무대’가 되고 일본과 청이 역사의 주체가 된다.

나카츠카는 이 구도를 뒤집는다. 일본군이 청군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조선 왕궁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조선 정부를 장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한 충돌이 아니라 일본의 대조선 정책과 청일전쟁 수행을 위한 정치·군사적 행동이었다고 본다.

이 주장은 나카츠카의 오랜 <건건록> 연구와 직결된다. 그는 무쓰 무네미쓰의 <건건록> 간행본뿐 아니라 초고와 외교문서를 대조하면서, 출판 과정에서 감춰진 부분을 추적했다. 그 결과 조선 왕궁 점령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일본의 외교·군사전략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청일전쟁의 출발점이 달라진다.

“동학농민군 봉기 → 조선의 청군 요청 → 일본의 파병 → 청일전쟁”이라는 단선적 설명 대신,

“동학농민봉기 → 청·일 개입 → 일본의 조선정부 장악 → 청일전쟁 → 일본에 대한 동학농민군의 재봉기 → 일본군의 대규모 진압”

이라는 연속된 하나의 과정으로 읽는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역사해석이다.

2. 동학은 단순한 ‘농민폭동’도, 순수한 ‘민족독립운동’도 아니다

두 번째 장에서 나카츠카는 동학의 발생과 확산을 설명한다. 최제우의 동학은 서학에 대항하는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평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를 품은 민중종교였다. 정부의 탄압 아래 비밀스럽게 전파되었던 동학은 접·포의 조직을 통해 농촌사회에 확산되었고, 1890년대에는 집단적 사회운동의 조직망으로 변해갔다.

따라서 1894년의 봉기는 단순히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 하나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지방관의 수탈, 농촌경제의 불안, 신분질서의 동요, 외세의 침투, 왕조국가의 통치능력 약화가 중첩되어 있었다.

여기서 저자들은 1차 봉기와 2차 봉기의 성격 차이를 중요하게 본다. 1차 봉기의 중심에는 탐관오리 제거와 폐정개혁 같은 국내 개혁 요구가 있었지만,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정치에 직접 개입한 뒤 일어난 2차 봉기는 명백한 ‘척왜’, 즉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전쟁의 성격이 훨씬 강해진다.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조선 관군의 연합전력에 맞서 공주 방면으로 진격했고 우금티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한국사 자료에서도 2차 봉기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본격화되었으며, 우금티에서는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압도적 화력과 전술에 밀려 붕괴한 것으로 정리된다.

3. 책의 핵심: 일본군의 ‘섬멸전’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노우에 가쓰오가 쓴 제3장이다.

저자들은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단순히 전투에서 격퇴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추격하고 포위하고 처형하는 ‘섬멸작전’을 실시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일본군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의 명령, 대본영의 지시, 후비보병 제19대대의 파견, 각 지역의 토벌기록과 병사들의 진중일지 등을 연결한다.

공주에서 패퇴한 농민군은 전라도로 남하했지만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본군은 연산·전주·장흥·나주 등으로 농민군을 계속 추격했으며, 포로와 농민군 혐의자에 대한 대규모 처형도 이어졌다. 책은 일본군 지휘관의 보고와 병사 개인 일지를 비교해 공식 보고보다 실제 희생자가 더 많았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출판사 소개에서는 이 과정에서 조선인 희생자를 약 3만~5만 명으로 추산하며, 청일전쟁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쪽이 전장 자체였던 조선이었다는 역설을 강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들은 이를 “일본군 최초의 제노사이드 작전”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책의 문제의식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4. ‘해골 하나’에서 시작된 한일 공동연구

이 책에는 특이한 기원이 있다.

1995년 홋카이도대학의 연구실에서 여러 사람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에 “한국 동학당 수괴의 머리라고 한다”는 취지의 기록이 붙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노우에와 박맹수가 만나고 나카츠카가 합류하면서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탄압과 인골 수집의 역사를 추적하는 공동연구가 진행되었다. 한국어판 소개도 이 책을 그로부터 약 20년에 걸친 한일 학자들의 공동연구 성과로 설명한다.

이 때문에 제4장의 현장답사가 중요하다. 정읍의 사발통문과 무장기포지, 황토현, 삼례, 공주 우금티, 연산, 보은, 장흥, 나주, 진도, 대둔산을 직접 찾아간다.

이 책에서 ‘현장’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일본 군사기록과 한국 현지의 구전·지형·묘지·기념비를 대조함으로써 국가의 공식 전쟁사가 지워버린 사람들을 다시 역사 속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다.

5. 박맹수에게 동학은 끝나지 않은 역사이다

마지막 장에서 박맹수는 자신의 삶과 동학연구를 연결한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경험, 야학운동, 동학농민전쟁 현장답사, 일본 연구자들과의 공동작업을 회고하면서 동학을 과거의 패배한 반란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 민주주의와 생명운동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전통으로 해석한다.

특히 한살림을 동학의 ‘생명사상’과 연결한다. 여기서는 역사학자의 목소리와 운동가의 목소리가 겹친다. 박맹수에게 동학은 연구대상인 동시에 현대 한국사회가 다시 발견해야 할 사상적 자원이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현재까지 이어져 있으며, 일본판 저자소개 역시 그를 동학 연구자이자 한살림 생명·환경운동과 관계해 온 인물로 소개한다.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동학농민전쟁을 ‘한국 국내사’라는 울타리에서 끌어내어 일본 제국 형성사 속에 집어넣었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한국사 서술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다음에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이 나온다. 일본사 교과서에서는 청일전쟁 속에 ‘동학당의 난’이 잠깐 등장한다. 이 책은 이 두 개의 역사를 하나로 합친다.

1894년은

<조선의 농민혁명> + <일본의 대외팽창> + <청일전쟁>

이라는 세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 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1910년에 갑자기 시작된 사건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일본군이 조선 왕궁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정부 구성에 개입하고 조선 민중의 저항을 직접 무력으로 진압한 1894년을 제국 일본의 조선 지배가 실제 군사행동으로 나타난 중요한 출발점으로 보게 한다.

두 번째 장점은 일본의 책임을 한국 민족주의의 주장으로만 제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핵심 증거 상당수가 일본군 명령서, 일본군인의 일지, 일본 정부문서, <건건록>의 초고와 간행본 등 일본 측 자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해석한다”는 식으로 쉽게 밀어낼 수 없다. 오히려 일본인 역사학자들이 일본 국가가 남긴 자료를 통해 일본의 공식 기억을 비판한다는 것이 이 책의 독특한 힘이다.

그러나 비판할 부분도 있다.

첫째,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은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대규모 살육과 섬멸명령이 있었다는 것과 현대 국제법상의 ‘genocide’가 성립한다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1948년 제노사이드협약의 엄격한 정의에서는 특정 국민·민족·인종·종교집단을 그 집단 자체로서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는 특별한 의도가 필요하며 정치집단은 보호집단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이라는 저항세력’을 섬멸하려 했다는 증거만으로 ‘조선민족을 집단으로서 파괴하려 했다’는 법적 의미의 제노사이드까지 자동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제노사이드’는 법률적 판정이라기보다 ‘조직적인 대량살육·섬멸전’을 강조하는 역사적·윤리적 개념으로 읽는 편이 더 타당하다.

둘째, 동학에 대한 저자들의 공감이 강하다. 특히 박맹수의 장에서는 동학→민주화→한살림→생명사상으로 연결되는 비교적 곧은 계보가 만들어진다. 사상사적으로 매우 매력적이지만, 역사적으로는 후대의 가치가 1894년의 농민들에게 투영될 위험도 있다. 동학농민군 내부의 지역적 차이, 지도자 간 갈등, 폭력, 민보군과의 충돌, 비동학 농민들과의 관계까지 함께 보아야 훨씬 복합적인 역사가 된다.

셋째, 일본의 폭력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보니 조선정부와 지방 지배층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린다. 그러나 동학농민전쟁은 일본 침략만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탐관오리의 수탈, 왕조의 행정적 무능, 지방사회의 갈등, 청나라 개입을 요청한 조선정부의 선택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것을 빼면 반대로 모든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로 환원하는 또 하나의 단순화가 될 수 있다.

종합 평가

그럼에도 이 책은 동학농민전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특히 <건건록>과 함께 읽으면 가치가 훨씬 커진다.

무쓰 무네미쓰의 <건건록>이 1894년을 도쿄의 외무대신 집무실에서 내려다본 역사라면,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바로 그 외교와 전쟁에 의해 죽어간 조선 농민들의 현장으로 내려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건건록>에서는 조선이 ‘외교문제’이다.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역사의 행위자’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책 사이에 나카츠카 아키라가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무쓰의 <건건록>을 가장 면밀하게 연구하고 교주한 일본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기록이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평생 추적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반일적 동학사’가 아니다. 오히려 일본 근대국가가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삭제하고, 후대가 그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청일전쟁사’로 기억하게 되었는가를 묻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다음과 같다.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1894년을 ‘조선에서 일어난 농민반란 때문에 일본과 청이 싸운 해’에서 ‘일본이 조선의 주권을 군사적으로 침해하고, 이에 저항한 조선 민중과 직접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해’로 다시 읽게 하는 책이다.

이 점에서 앞서 읽은 신복룡의 <전봉준 평전>, 무쓰의 <건건록>, 함재봉의 ‘동학란’ 해석을 연결하면 매우 흥미로운 네 개의 시각이 만들어진다. 특히 다음 단계에서는 <무쓰–나카츠카·이노우에·박맹수–신복룡–함재봉>을 놓고 “1894년은 혁명인가, 내란인가, 항일전쟁인가, 일본의 조선침략전쟁인가?”라는 네 갈래 해석을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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