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봉의 동학"란"에 대한 주장을 신복룡에 관한 동학 논쟁에 더해서 분석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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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을 둘러싼 한국 근현대사 논쟁은 크게 <민족주의·민중사학>의 성전화(聖戰化) 담론, <신복룡>의 실증주의적·정치현실주의적 비판, 그리고 <함재봉>의 문명사적·자유주의적 <동학란(東學亂)> 규정이라는 세 축의 긴장 관계로 확장되어 전개된다.
<함재봉의 동학란 인식: 문명사적 퇴행과 체제 파괴>
정치학자 함재봉은 저작 <한국 사람 만들기> 등을 통해 근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섯 갈래(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문명사적 충돌로 분석한다. 이 틀 안에서 그는 동학을 근대화의 동력이 아니라, 문명사적 흐름에 역행한 전근대적 미신과 폭력적 소요 사태, 즉 전통적인 의미의 <동학란>으로 규정한다.
전근대적 샤머니즘과 주술성: 함재봉은 동학을 근대적 평등주의나 민주주의의 맹아로 보지 않는다. 시천주(侍天主) 사상과 궁을부(弓乙符), 주문 수련 등은 주자학적 합리주의조차 결여된 민간 신앙과 주술의 결합이며, 총알을 막아준다는 부적을 믿고 돌격한 비이성적 광신주의의 발현이었다고 본다.
청일전쟁 유발과 국망(國亡)의 촉매: 농민군이 일으킨 내란을 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조선 왕조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했고, 톈진조약을 빌미로 일본군이 개입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함재봉은 동학란이 제국주의 열강의 군사적 침탈을 한반도 안으로 직접 끌어들여 조선의 멸망과 식민지화를 가속한 결정적 파국이자 자해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반(反)문명·반(反)근대성: 당시 조선이 생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활로는 서구식 법치, 의회주의, 과학기술, 시장경제 등 문명개화의 길이었다. 함재봉의 시각에서 동학 세력은 서구와 일본의 근대 문명을 단지 '왜양(倭洋)'이라는 타도 대상으로만 바라본 극단적 쇄국·위정척사 세력의 기층적 변종에 불과하다.
<신복룡과 함재봉의 교차점: 탈신화화와 냉철한 현실주의>
신복룡과 함재봉은 모두 주류 학계의 지배적 담론이었던 민중사학의 <낭만적 민족주의>를 정면으로 배격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감상주의와 성역화 거부: 두 학자 모두 농민군을 완전무결한 선(善)으로, 외세와 조정 관군을 절대악(惡)으로 이분법화하는 도식을 거부한다.
군사적 참극에 대한 직시: 신복룡이 사료 비판을 통해 우금티 전투의 무모함과 전술적 무지, 무기 체계의 절대적 격차를 실증했다면, 함재봉은 이를 문명적 무지와 주술적 맹신이 빚어낸 비극적 소모전으로 한층 더 냉정하게 몰아붙인다.
외세 개입의 현실적 결과: 두 사람 모두 농민 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일본군의 서울 침탈과 청일전쟁이 유발되었다는 지정학적 역학 관계의 인과성을 매우 무겁게 다룬다.
<신복룡과 함재봉의 결정적 차이: 비극적 현실주의 vs 문명사적 타격론>
그러나 동학을 바라보는 내부적 시선과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는 두 학자 사이에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전봉준을 바라보는 시선
신복룡: 전봉준을 봉건 말기 백성의 고통을 짊어지고 한계 속에서 번민했던 <과절(過節)의 현실 정치가>로 긍정적 측면을 인정한다. 폐정개혁과 전주화약 체결 등에서 보여준 타협과 결단은 높이 평가하며, 비록 실패했으나 그의 유교적 의기와 민초를 향한 충정은 진지한 역사적 무게를 지닌다고 본다.
함재봉: 전봉준 개인의 고뇌보다는 그가 이끈 운동이 초래한 문명사적 후과(後果)에 집중한다. 동학 세력을 독립협회나 개화파처럼 근대 입헌정치나 근대 국가 체제를 건설할 비전이 결여된, 체제 파괴적 선동 세력이자 반란군의 수괴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반란(亂)인가, 미완의 혁명인가
신복룡: 봉건 제도의 부패와 수탈이라는 구조적 원인을 명확히 인정한다. 동학농민운동을 무조건적인 비적(匪賊)의 난으로 치부하지 않으며, 아래로부터 분출한 민중의 개혁 요구가 외세와 지배층의 탄압에 의해 좌절된 <비극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함재봉: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통치 질서를 붕괴시키고 근대 국가로의 전환을 방해한 <동학란>이라는 표현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개화파의 갑신정변이나 갑오개혁, 서재필·윤치호 등의 근대화 노선과 대비하여 동학은 퇴행적 파괴 운동이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종합 평론: 동학 논쟁의 삼각 구도>
함재봉의 도발적인 <동학란> 규정은 신복룡이 촉발했던 학술적 탈신화화 논쟁을 한층 더 근본적인 문명사적 논쟁으로 전이시켰다.
민족주의·민중사학: 동학을 반봉건·반침략 자주독립의 성전(聖戰)이자 한국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순결한 뿌리로 칭송한다.
신복룡: 실증주의와 냉정한 정치학적 잣대로 민족주의의 신화를 걷어내되, 당시 유교적 질서 안에서 한계를 안고 몸부림친 전봉준과 농민군의 비극적 진정성을 역사적 현실로 복원한다.
함재봉: 서구 자유주의와 해양 문명사적 관점을 잣대로 삼아, 동학을 미신과 폭력으로 국가의 자멸을 촉진한 전근대적 소요 사태로 격하하며 개화파와 기독교적 근대화 노선만을 정당한 역사의 줄기로 세운다.
함재봉의 주장은 감상적 민족주의가 지배해 온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에 날카로운 균열을 내고, 근대화라는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동학의 한계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정한 지적 자극을 던진다. 그러나 수백 년간 이어진 봉건적 착취와 생존권의 위협 앞에서 죽창을 들 수밖에 없었던 기층 민중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오직 서구화된 엘리트의 시각에서 <동학란>으로 일축해 버리는 것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공감 결여이자 또 다른 형태의 이념적 단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신복룡이 감정적 찬양과 차가운 냉소 사이에서 사료를 통해 <인간 전봉준의 고뇌>를 붙들려 했다면, 함재봉은 근대 문명의 우위를 기준으로 동학의 뿌리 자체를 기각하는 급진적 해체를 감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함재봉 원장의 문명사적 관점과 한국 근대사 분파 해석에 대한 깊은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LIVE] 「한국 사람 만들기」 /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 원장 강연이 유익합니다.
이 강연은 함재봉 원장이 직접 동학을 위시한 전통적 흐름과 근대 개화 세력의 충돌을 다섯 가지 이념적 분파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어, 그의 시각을 직접 파악하는 데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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