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봉이 강좌와 저술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 1890년대 동아시아 3국(조선·청·일본)의 상호 인식과 자국관에 대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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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조선·청·일본의 상호 인식과 세계관의 충돌
함재봉은 1890년대를 단순히 외교적 갈등기가 아니라, 세 나라가 완전히 서로 다른 문명사적 문법과 좌표계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며 충돌한 시기로 규정한다. 한자문화권이라는 외형적 유사성 아래, 세 나라의 내면적 자아인식과 타자인식은 화이론(華夷論)과 만국공법(서구 근대 국제법) 사이에서 격렬하게 갈라져 있었다.
1. 조선: 소중화(小中華)의 오만과 자폐적 속방(屬邦) 의식
조선 지배층(위정척사파 및 유학 관료들)의 세계관은 17세기 명나라 멸망 이후 굳어진 성리학적 '소중화주의'에 갇혀 있었다.
자국 인식: 조선은 스스로를 오랑캐(만주족 청나라)에게 짓밟힌 명나라 문명을 계승한 '유일한 문명의 보루'이자 소중화로 여겼다. 이 도덕적 우월감은 내면적으로 매우 강고했으나, 대외 현실에서는 역설적으로 청나라와의 전통적인 군신·조공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분열적 태도를 보였다.
청나라에 대한 인식: 문화적으로는 오랑캐(호로, 胡虜)라 멸시하면서도, 정치·군사적으로는 250년간 평화를 보장해 준 종주국이자 위기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절대적 보호자로 여겼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주저 없이 청군 파병을 요청한 것은 바로 이러한 오랜 '속방 의식'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다.
일본에 대한 인식: 일본을 근대화된 강국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바다 건너의 야만이자 왜구(倭寇)로 취급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양복을 입고 서양 제도를 도입한 일본을 보며 "금수(짐승)의 도를 따르는 변절자"로 경멸했다. 서구식 국제정치의 힘의 논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유교적 명분론의 잣대로 일본을 얕보았다.
2. 청나라: 종주권의 자의적 왜곡과 문명 제국의 환상
아편전쟁과 양무운동을 거쳤음에도 청나라 지배층, 특히 북양대신 이홍장과 실권자들의 인식은 근대 주권국가 체제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다.
자국 인식: 여전히 천하(天下)의 중심이자 주변 번국(藩國)을 거느리는 제국으로 자처했다. 서구 열강의 압박에 밀려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도, 전통적인 조공 질서와 서구식 만국공법을 자의적으로 섞어 쓰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조선에 대한 인식: 조공 체제의 모호성("내정과 외교는 자치에 맡긴다")을 악용하여, 서양 열강이 조선에 침투할 때는 "조선은 자주국이니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고, 일본이나 서양이 조선을 온전히 독립국으로 대우하려 하면 "조선은 청의 오랜 속방"이라며 간섭했다. 특히 임오군란(1882) 이후 위안스카이(원세개)를 파견해 감국(監國)처럼 군림하며 조선을 실질적인 직할 식민지처럼 다루려 했다.
일본에 대한 인식: 전통적 시각에서 일본은 동쪽 바다의 조공국에 불과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급성장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양무운동으로 확보한 북양함대의 거함(정원·진원호)과 청나라의 거대한 체급만 믿고 일본의 군사적 결속력과 근대화 수준을 낮잡아 보았다.
3. 일본: 탈아입구(脫亞入歐)와 '만국공법'의 도구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으로 대표되는 일본 엘리트들의 인식은 동아시아 3국 중 유일하게 서구식 근대 국가 체제로 완전히 전환되어 있었다.
자국 인식: 아시아의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서구 열강과 대등한 문명국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근대 국민국가로 규정했다.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를 분할하는 약육강식의 국제 현실 속에서, 먹히지 않으려면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는 냉혹한 사회진화론적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청나라에 대한 인식: 청나라는 더 이상 동양의 위대한 문명 중심이 아니라, 낡고 부패하여 서양 열강에 뜯어먹히고 있는 '병든 거인(아시아의 병자)'에 불과했다. 청나라가 지배하는 낡은 조공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의 안정을 도모할 수 없으며, 일본의 안전과 이익선(조선) 확보를 위해 반드시 청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할 적으로 보았다.
조선에 대한 인식: 스스로를 지킬 힘도, 주권 의식도 없는 취약한 완충지대로 보았다. 조선이 청나라의 완고한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거나 러시아 등 서구 열강의 손에 넘어간다면 일본의 안보(주권선)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조선을 '문명화된 독립국'으로 강제 견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명목으로 청나라의 종주권을 단절시킨 뒤 일본의 배타적 세력권으로 흡수하려 했다.
함재봉은 이 세 나라의 상호 인식을 종합하며, 1890년대의 비극은 <조선은 도덕적 자폐에 빠져 있었고, 청나라는 제국의 환상 속에서 교활하게 기득권을 지키려 했으며, 일본은 냉혹한 현실주의와 제국주의적 야심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거대한 불일치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동아시아 전통 질서의 허구성이 만국공법이라는 근대 서구의 규범과 무력을 만나 폭력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이 바로 이 세 나라의 어긋난 시선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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