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현대 지성사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거대한 위치를 차지하는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에 대해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오리구치 시노부는 누구인가>
오리구치 시노부는 일본의 민속학자, 국문학자이자 <샤쿠 초쿠(釈迢空)>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가인(歌人) 겸 소설가다.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와 더불어 일본 근대 민속학의 양대 지주로 꼽힌다. 야나기타가 관료적이고 경험주의적인 시선으로 일본 농촌 사회의 관습과 설화를 체계화했다면, 오리구치는 고대 문헌과 현장 민속, 그리고 인간 내면의 종교적·예술적 충동을 직관적으로 결합해 독자적인 <오리구치학(折口学)>을 구축했다.
그의 핵심 사상은 다음과 같다.
<마レビ토(まれびと)론>: 바다 너머 상심향(常世國, 토코요노쿠니)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와 인간 세상에 축복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내방자 개념이다. 그는 일본의 신앙, 축제, 연극(노, 가부키)의 원류가 이 외부에서 찾아온 존재를 맞이하고 대접하는 의례에서 출발했다고 보았다.
<고대 연구와 예술의 융합>: 학문적 분석에 머물지 않고, 고대인의 감성과 신화적 사유를 자신의 단가(短歌)와 소설 속에 직접 재현해 낸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다.
<왜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가, 어떤 종류의 인기인가>
오리구치의 인기는 일반적인 대중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기라기보다는, <지식인, 문학가, 서브컬처 창작자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주는 컬트적·신화적 인기>에 가깝다.
<지성사적 매혹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 그의 문장은 실증주의적 논문이라기보다는 시적이고 신비주의적이며 주술적인 색채를 강하게 띤다. 논리적 빈틈이 있을지언정 상상력을 자극하는 폭발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 나카가미 겐지 같은 전후 대표 작가들이 끊임없이 그를 다시 읽고 오마주했다.
<중심이 아닌 '주변부'를 향한 시선>: 천황제와 국가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강요되던 시대에, 그는 방랑 예능인(괴뢰자, 맹인 법사 등), 차별받던 천민, 여성, 변방의 신앙 등 소외된 주변부의 시선에서 일본 문화의 원형을 탐구했다. 이 독특한 소수자적 감수성은 현대 비판적 인문학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
<삶 자체의 드라마성>: 그는 당대에 보기 드문 동성애자였으며, 자신의 양자이자 제자였던 후지이 하루미가 태평양 전쟁(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하자 비통 속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등 개인적 생애 자체도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서사를 품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겹쳐 문예계에서는 거의 신화화된 인물로 소비된다.
<책을 한 권 읽는다면: 추천 도서>
오리구치 시노부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 한 권을 꼽는다면 단연 소설 <죽은 자의 서(死者の書)>다.
학술 논문집인 <고대 연구(古代研究)>가 그의 이론적 정수이지만, 방대한 고어와 독창적 용어로 가득 차 있어 읽기가 매우 난해하다. 반면 <죽은 자의 서>는 그의 <마レビ토> 신앙, 고대 신토와 불교의 충돌, 죽음과 재생, 그리고 지극한 에로티시즘이 하나의 문학적 결정체로 집약된 걸작이다.
나라(奈良) 시대의 비극적인 황자 오쓰 황자(大津皇子)의 유령과,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다라를 짜는 귀족 처녀 후지와라노 주조히메(中将姫)의 영적 교감을 다룬다. 고대 일본의 주술적 풍경과 언어의 울림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학술적 개론을 먼저 파악하고 싶다면, 그의 대표 논문들을 엮어 해설을 덧붙인 선집류(예: 이와나미 문고의 <고대 연구: 민속학 편> 발췌본)나 현대 연구자가 쓴 입문 평전을 곁들여 보는 것도 좋다.
오리구치 시노부의 소설 <죽은 자의 서(死者の書)>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죽은 자의 서(死者の書) 요약 및 평론>
<1. 작품 개요와 집필 배경>
<죽은 자의 서>는 민속학자이자 국문학자인 오리구치 시노부가 '샤쿠 초쿠(釈迢空)'라는 필명으로 1939년 잡지 <일본평론>에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일본 고대 설화인 '주조히메(中将姫)의 당마사(當麻寺) 연기 설화'와, 아스카 시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천황의 아들 '오쓰 황자(大津皇子)'의 전설을 융합하여 구축한 환상적이면서도 심오한 문학적 제의(祭儀)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사회가 군국주의와 국가신도(國家神道)라는 단일한 광기에 휩쓸려 갈 무렵, 오리구치는 고대 국가 권력에 희생된 원혼과 그 넋을 달래는 여성의 주술적 교감을 그림으로써 권력의 폭력성을 초월하는 근원적 구원의 세계를 직조해 냈다. 고대 이집트의 사후 세계 안내서인 동명의 문헌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처럼, 이 소설은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에로스와 종교적 승화가 교차하는 영혼의 순례기다.
<2. 줄거리 요약>
작품은 나라 분지의 니조산(二上山)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한 '죽은 자'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며 눈을 뜨는 기이하고 매혹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죽은 자는 서기 686년 모반의 혐의를 쓰고 억울하게 자결을 강요당해 니조산 꼭대기에 묻힌 비운의 지식인 황자, 오쓰 황자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백골이 된 황자의 영혼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살과 뼈를 다시 맞추고, 생전의 집착과 원한, 그리고 갈망에 이끌려 무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8세기 나라(奈良)의 귀족 가문 출신인 순결한 처녀 후지와라노 나카조노 히메(주조히메)는 세속의 번화함을 멀리한 채 오직 불경 필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 번의 사경(寫經)을 완수하던 밤, 서쪽 하늘 니조산 너머로 장엄하게 지는 붉은 노을 속에서 광채를 뿜어내는 거룩한 환영을 목격한다. 그녀는 그 존재를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부처(존형, 尊形)'의 현현이라 믿고, 그 환영을 쫓아 한밤중에 저택을 탈출하여 서쪽 당마사(當麻寺)로 향한다.
하지만 나카조노 히메가 본 환영은 부처가 아니라, 무덤에서 깨어난 오쓰 황자의 원혼이었다. 황자는 생전 죽기 직전 자신을 애도하며 슬픈 눈빛을 보냈던 여인 미미나시노 히메(귀족 여인)의 환영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순결한 나카조노 히메의 영혼과 공명하여 서로를 끌어당긴 것이다.
당마사에 도착한 히메는 여인 금제의 성역인 사찰 암자에 머물며, 우물 속에서 자라난 연꽃 줄기(연사, 蓮絲)를 뽑아 실을 잣기 시작한다.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조에 몰두하여, 자신이 본 환영의 모습을 거대한 만다라(당마만다라)로 형상화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직조하는 대상이 거룩한 부처인 동시에, 피를 흘리며 원통하게 죽어간 한 남자의 가련한 영혼임을 점차 깨닫는다.
마침내 연꽃 실로 짠 극락정토 만다라가 완성되는 순간, 방황하던 오쓰 황자의 원혼은 나카조노 히메의 지극한 자비와 직조의 행위를 통해 위무를 받고 성불(재생)에 이른다. 영혼의 구원을 완수한 히메 또한 세속의 육신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초월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3. 심층 평론과 문학적 의의>
<첫째, '마レビ토' 신앙과 에로티시즘의 결합> 오리구치 시노부 민속학의 핵심 개념인 '마レビ토(외부에서 찾아오는 신적인 손님)'가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무덤에서 깨어나 인간 세계로 찾아온 오쓰 황자는 공포의 대상인 원령이자, 인간 세계의 정화를 위해 찾아온 초월적 내방자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신적 내방자와 인간의 만남이 차가운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농밀한 '성적 긴장감(에로티시즘)'을 통해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황자는 여인의 관능적 환영을 쫓아 움직이고, 처녀 히메는 무의식적인 연모와 갈망 속에서 그를 맞이한다. 오리구치는 원초적 에로스와 종교적 법열(카타르시스)이 실은 동일한 인간적 충동의 양면임을 탁월하게 논증한다.
<둘째, 원한의 치유로서의 여성적 행위: 직조(織成)> 고대 일본 신화에서 옷을 짜는 행위는 천지를 창조하고 신을 불러모으는 최고위 여성 사제의 성스러운 의례였다. 나카조노 히메가 연꽃 실로 직조를 하는 행위는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라, 찢겨지고 흩어진 황자의 육체와 부서진 넋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새롭게 봉합하는 '재생(再生)의 제의'다. 국가 권력의 잔혹한 칼날에 난도질당한 남성적 원혼을, 여성이 모성적이고 직관적인 예술 행위를 통해 감싸 안고 치유하는 구도의 드라마를 완성해 낸다.
<셋째, 고대어의 주술성을 복원한 파격적 문체> 이 작품이 일본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특유의 문체에 있다. 오리구치는 고대 만엽집(万葉集) 시대의 어휘와 주술적 리듬, 한문 훈독의 중후함, 그리고 근대 심리소설의 내면 독백을 기이하게 융합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고 시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의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이성적인 독해가 아니라 고대인의 샤머니즘적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독특한 문체적 주술성은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한 수많은 전후 작가들에게 절대적인 찬사를 받았다.
<넷째, 국가 권력에 대한 조용한 저항> 오쓰 황자는 덴무 천황 사후 정치적 모략에 의해 황위 계승에서 배제되고 숙청당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오리구치가 '국가를 건설한 승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하여 무덤에 갇힌 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은 깊은 함의를 지닌다. 국가라는 거대 서사가 지워버린 희생자의 목소리를 불러내어 영적 승리를 안겨준 이 소설은, 오리구치가 지닌 주변부와 패자를 향한 깊은 연민의 정점을 보여준다.
<결론>
<죽은 자의 서>는 학문적 엄밀성에 갇히지 않고 고대인의 생생한 혼을 문학으로 부활시킨 오리구치학의 결정판이다.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스러져간 영혼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의 상실감은 예술을 통해 어떻게 영원한 안식을 얻는가에 대한 고색창연하면서도 전위적인 대답을 제시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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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口信夫 <死者の書> — 1,000단어 요약 평론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의 <死者の書>(사자의 서, 죽은 자의 책)는 1939년 <日本評論>에 처음 연재되고 1943년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대표적 소설이다. 오리구치는 국문학자·민속학자이면서 釈迢空라는 이름으로 시와 소설을 썼는데, <死者の書>는 그의 민속학과 종교론, 고대문학론이 가장 완전하게 문학 작품으로 변환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청공문고의 현행 본문도 초출을 1939년 1~3월, 첫 단행본을 1943년으로 밝히고 있다.
겉으로 보면 나라 시대의 귀족 여성과 70여 년 전에 죽은 왕자의 혼령이 만나는 괴이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이 작품의 주제는 귀신이 아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세계에 남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종교가 새로운 종교로 넘어갈 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살아남는가>, 그리고 <문학과 예술은 어떻게 죽은 자를 구제하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1. 무덤 속에서 깨어난 大津皇子
소설은 현대소설로서는 놀라울 만큼 낯선 장면에서 시작한다.
칠흑 같은 돌무덤 속에서 한 죽은 사람이 의식을 되찾는다. 물방울 소리가 “した した した” 하고 들린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처음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차츰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는 자신이 <滋賀津彦(시가쓰히코)>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 속 시가쓰히코는 역사상의 大津皇子(오쓰 황자)를 모델로 한다. 그는 죽고 나서도 耳面刀自(미미모노토지)라는 여인을 잊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욕망이다. 죽었는데도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한 낭만적 연애가 아니다. 그는 “내게는 자식이 없다. 내 자식을 낳아 달라. 내 이름을 전할 자식을”이라고 갈망한다.
즉 죽은 자는 자신의 혈통과 이름이 단절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오리구치가 오랫동안 연구한 고대인의 영혼관과 조상신앙이 여기에 들어 있다. 죽음은 개인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며, 후손과 기억과 제사를 통해 계속 살아야 한다. 그런데 시가쓰히코에게는 그것이 끊어졌다. 그래서 그의 혼은 죽음 속에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死者の書>에서 죽은 자는 무서운 유령이라기보다 <끝나지 못한 욕망>이다.
2. 70여 년 후의 소녀, 郎女
시간은 훌쩍 넘어간다.
후지와라 남가의 도요나리(藤原豊成)의 딸 郎女(이라쓰메)가 등장한다. 이 인물의 배후에는 당마사(當麻寺)의 유명한 <中将姫 전설>이 있다. 중장희가 연꽃 실로 당마만다라를 짰다는 전승을 오리구치가 다시 구성한 것이다. KADOKAWA판도 <死者の書>를 오쓰 황자의 망령과 후지와라 집안의 郎女의 영혼이 교감하는 이야기로 소개한다.
郎女는 처음에는 세상 물정을 거의 모르는 귀족 여성이다. 집 안 깊숙이 보호되어 살아왔으며 불경을 필사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던 어느 저녁, 二上山의 두 봉우리 사이에 찬란하게 나타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에 이끌려 산으로 간 郎女는 여성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万法蔵院의 결계 안까지 들어가 버린다. 여성금제의 신성한 공간을 침범한 죄 때문에 일정 기간 산 아래 암자에 머물며 속죄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유폐가 郎女의 정신적 탄생이 된다.
오리구치는 매우 인상적인 표현을 쓴다. 이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귀족 여성들 가운데 郎女에게 처음으로 사유가 싹트는 모습을 <연꽃 봉오리가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에 비유한다.
이 점에서 <死者の書>는 의외로 여성의 각성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3. 죽은 남자를 부처로 보는 여자
어느 밤 郎女 앞에 그 남자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벌거벗은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젊은 남자이다.
독자로서는 그가 시가쓰히코의 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郎女는 모른다. 그녀에게 그는 인간 남성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로 보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阿弥陀ほとけ……”
이다.
이것이 <死者の書>의 가장 중요한 전환이다.
죽은 남자는 여자를 원한다. 자신의 연인을 찾고 후손을 원한다. 즉 그의 욕망은 육체·혈통·기억에 묶여 있다.
반대로 郎女는 그를 아미타불처럼 바라본다. 그녀는 그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욕망하기보다는 “추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옷을 만들어 덮어주고 싶어 한다.
따라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죽은 자에게 郎女는 <사랑받아야 할 여자>이고, 郎女에게 죽은 자는 <구제하고 덮어주어야 할 존재>이다.
바로 이 어긋남 때문에 이 소설은 평범한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4. 연꽃 실을 짜다
郎女는 연꽃 줄기에서 실을 뽑아 천을 짜기 시작한다.
왜 그러는지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이 천을 빨리 짜서 저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고 싶다.”
실은 쉽게 끊어진다. 베틀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밤낮없이 계속 짠다. 꿈속에서는 늙은 語部의 여인이 나타나 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자 郎女의 기술과 의식이 한 단계를 넘어간다. 작품은 이를 “郎女의 지혜가 하나의 경계를 넘었다”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오리구치의 민속학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여성, 베틀, 신에게 바칠 옷, 타계에서 찾아오는 신성한 존재는 일본 고대 제의에서 서로 연결된다. 실제로 <死者の書>를 연구한 논문에서도 작품의 불교적 표면 아래에 일본 고대의 <機織り女> 전승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오리구치 자신은 문학과 예술의 근본동기를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解脱>의 욕망에서 찾았다.
그런 의미에서 郎女의 직조는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그녀는 죽은 자의 욕망을 <예술>로 바꾸어 놓고 있다.
5. 옷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만다라가 되다
마지막 단계에서 郎女는 짠 천을 이어 붙여 거대한 옷을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안료를 가져오게 하고 그 천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당마사의 건물과 누각, 구름과 자운(紫雲), 황금빛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기가 산에서 보았던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그녀가 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바라보자 그것은 더 이상 한 남자의 초상이 아니다. 어느 순간 화면은 수천의 보살이 나타나는 장엄한 만다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오리구치는 마지막 순간을 일부러 애매하게 처리한다. 실제 기적이었는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본 “백일몽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바로 이 애매함이 중요하다.
한 죽은 남자의 육체
→ 한 여인의 연민
→ 옷
→ 그림
→ 만다라
로 변한다.
즉 개인적인 집착이 종교적·예술적 형상으로 승화된다.
이 장면에는 실제로 오리구치가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의 하나인 <山越阿弥陀図>와 <當麻曼陀羅>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현대 KADOKAWA판이 이 두 그림을 작품 이해의 핵심 자료로 함께 수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6. 사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문화의 변화>이다
<死者の書>를 단순히 “고대 일본의 신비한 세계를 재현한 소설”이라고 읽으면 반밖에 읽은 것이다.
작품 후반에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옛날 이야기를 대대로 전하던 語部의 노파가 있다. 그런데 이제 세상 사람들이 옛 신화나 독백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작품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영리해져서” 옛이야기를 믿고 듣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노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여기에 오리구치가 생각한 일본 정신사의 거대한 전환이 들어 있다.
고대의 신과 인간이 함께 있던 세계가 사라진다.
구전되는 신화가 사라진다.
새로운 불교가 들어온다.
문자와 경전이 들어온다.
그리고 옛 신들이 불교의 부처·보살 이미지 속으로 들어간다.
그 결과 시가쓰히코는 더 이상 죽은 왕자의 혼령으로만 남지 않는다. 郎女의 눈을 거쳐 아미타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死者の書>는 <신도냐 불교냐>를 선택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종교가 들어왔을 때 오래된 종교적 감각이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상 안으로 들어가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7. 평론 — 오리구치의 놀라움과 위험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고대 일본을 박물관의 과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리구치에게 죽은 자는 정말 죽지 않는다. 현재의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옛사람들의 욕망과 기억을 물려받는다. 종교가 바뀌어도 이전 종교의 감각은 새로운 종교 안에서 형태를 바꾸어 살아남는다.
바로 이 점에서 <死者の書>는 오리구치의 <まれびと>, <常世>, <依代>, <語部> 같은 민속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논문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는 이론을 소설 속에서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오리구치는 현재의 민속과 문학 속에서 아주 오래된 “일본인의 원형적 정신”을 복원하려 했다. 그것은 대단히 매혹적이지만 역사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1939년과 단행본이 나온 1943년은 일본의 전쟁과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향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태고부터 이어지는 일본인의 정신”이라는 사고는 당시의 민족적 본질주의와 완전히 무관하게 읽기 어렵다.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가 야나기타 구니오의 <先祖の話>와 오리구치의 <死者の書>를 모두 전시기(戰時期)에 쓰인 죽음과 진혼의 저작으로 함께 읽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死者の書>를 국수주의적 고대찬양으로만 규정하는 것 역시 작품을 놓친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천황도 전쟁 영웅도 없다.
중심에 있는 것은
죽어서도 쉴 수 없는 사람,
사회적으로 갇혀 있던 젊은 여자,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늙은 語部,
이 세 존재이다.
그리고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국가도 정치도 아니다.
<이야기하고, 듣고, 짜고, 그리고 기억하는 행위>이다.
이것이 <死者の書>를 오늘날까지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종합 평가
<死者の書>는 줄거리만 놓고 보면 별로 복잡하지 않다. 오쓰 황자의 혼이 깨어나고, 수십 년 뒤의 郎女가 그의 모습을 보며, 그를 위해 연꽃 실로 천을 짜고 그림을 그려 결국 만다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야기에 오리구치는 자신의 평생 연구를 압축해 넣었다.
<죽은 자 → 기억 → 신 → 여자 → 직조 → 이야기 → 불교 → 예술>
이라는 흐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죽은 자가 구제되는 소설>이라기보다 <죽은 자의 기억이 예술로 변환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오리구치를 한 권만 읽는다면 <死者の書>를 권한다고 말씀드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古代研究>를 먼저 읽으면 마레비토, 타계, 의례, 어부(語部), 문학발생론이 추상적인 이론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死者の書>를 먼저 읽으면 그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인물과 이미지가 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 하나가 오리구치 전체를 압축한다.
郎女가 본 것은 한 사람의 죽은 남자였다.
그녀가 그린 것도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수천의 보살을 보았다.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그것이 바로 민속학자 오리구치가 평생 탐구했던 문제이며, 소설가 오리구치가 <死者の書>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 낸 장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청공문고에서 일본어 원문 전체를 무료로 읽을 수 있다. 折口信夫 <死者の書> 원문—青空文庫
다음 단계로는 <死者の書>를 읽고 나서 <古代研究>로 바로 가지 않고, 이 작품에 나오는 <大津皇子–中将姫–當麻曼陀羅–山越阿弥陀図> 네 요소가 각각 실제 역사·전설에서 무엇이었고 오리구치가 그것들을 어떻게 변형했는지를 따로 떼어 비교해 보면, 이 소설이 훨씬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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