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상사 - 상 | 한국정치사상사
신복룡 (지은이)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2025-03-14
양장본908쪽 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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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증보판 서문
서 문
제1장 한국정치사상사 연구의 방법과 범위
1. 서론
2. 정치사상사 연구의 시듦[凋落]
3. 정치사상사 연구의 필요와 과제
4. 무엇을 담을 것인가?
5. 결론
제1편 고대 : 신과 인간의 만남
제2장 신시神市의 시대
1. 서론
2. 천신의 하강
3. 인간의 탄생
4.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5. 결론
제3장 왕들의 탄생
1. 서론
2. 군거群居의 시작
3.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4. 왕의 탄생
5. 결론
제4장 원시공동체의 민회
1. 서론
2. 법제 : 8조 금법
3. 남당南堂
4. 화백和白
5. 결론
제5장 제천 의식과 부락제
1. 서론
2. 하늘에 대한 제례
3. 인간의 놀이
4. 소망
5. 결론
제6장 초기 불교
1. 서론
2. 화해와 다툼[和諍]
3. 대승의 세계 : 불교의 세속화와 세속의 불교화
4. 정토의 세계 : 불국토
5. 결론
제7장 노장사상과 도교
1. 서론
2. 자연에 관한 인식 : 경험주의적 유물론
3. 국가와 권력에 관한 의식 : 정치적 냉소주의와 자유의지
4. 폭력에 대한 혐오
5. 결론3
제2편 중세 : 교정敎政의 갈등과 공존
제8장 나말여초의 사조
1. 서론
2. 선종禪宗의 등장
3. 국토비보설裨補說
4. 신라 유학의 잔영
5. 미륵불彌勒佛
6. 결론
제9장 고려의 창업과 수성守成
1. 서론
2. 「훈요십조」
3. 최승로崔承老 : 「시무時務 28조」
4. 신라 정신의 계승
5. 결론
제10장 고려의 불교
1. 서론
2. 팔관회·연등회
3. 천태天台와 돈오頓悟의 세계 : 의천義天과 지눌知訥
4. 대륙에 관한 인식 : 묘청妙淸
5. 대장경의 인각印刻
6. 역사 인식 : 일연
7. 결론
제11장 고려의 향정鄕政
1. 서론 : 왜 향정인가?
2. 지방분권의 유산 : 향신鄕紳
3. 사심관事審官 제도制度의 발생사적 배경
4. 사심관의 존재 형태와 권한
5. 성격의 변질
6. 결론
제12장 무신 정권 시대의 사조
1. 서론
2. 무신 정권의 등장
3. 신분 질서의 도전
4. 지식인의 운신과 고뇌 : 이규보李奎報
5. 해양정신과 민족 의식의 태동 : 삼별초
6. 결론
제3편 근세 전기 : 주자성리학의 논변
제13장 유교의 정치학적 함의
1. 서론
2. 정명正名
3. 위민爲民의 논리
4. 변혁의 논리와 폭군방벌론
5. 결론
제14장 초기 주자학과 절의
1. 서론
2. 주자학의 전래와 초기 인식
3. 왕조의 향수 :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논리
4. 대륙에 대한 인식 : 원명 교체기의 고뇌
5. 결론
제15장 역성易姓과 배불排佛의 논리
1. 서론
2. 불교 배척[排佛]의 논리
3. 역성易姓의 논리
4. 재상론
5. 결론
제16장 세종世宗
1. 서론
2. 백성을 가르침[訓民]
3. 백성을 긍휼히 여김[恤民]
4. 영토에 대한 인식
5. 언로言路
6. 결론
제17장 『경국대전』과 율령국가의 형성
1. 서론
2. 율령의 성립
3. 국가의 틀
4. 통치 이념
5. 결론
제18장 지치주의至治主義
1. 서론
2. 지치주의의 학맥
3. 성왕聖王의 논리
4. 군자·소인의 논리
5. 벽사론辟邪論
6. 결론
제19장 향약鄕約과 향속鄕俗
1. 서론
2. 향약의 역사와 전래
3. 향약의 정신
4. 상조相助 제도의 존재 형태
5. 결론
제20장 선비의 부침浮沈
1. 서론 : 왜 선비인가?
2. 선비 문화의 등장 : 비교문화사적 고찰
3. 선비의 자질
4. 선비의 몰락
5. 결론
제21장 중화주의의 빛과 그늘
1. 서론 : 왜 중화주의를 논의해야 하는가?
2. 원죄原罪 : 나당羅唐 연합과 삼국전쟁
3. 당송唐宋문화의 황홀감 : 김부식金富軾의 생각
4. 이성계李成桂의 업장業障 : 변방 무사의 유기遺棄 불안
5. 조선 주자학의 그늘 : 재조지은再造之恩
6. 탈중화주의 운동의 맥락
7.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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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신복룡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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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정치학 박사), 건국대학교 교수/석좌교수,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보훈부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
저서/역서 : <한국정치사>,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 <한국정치사상사>, <잘못 배운 한국사>, <해방 정국의 풍경>, <入唐求法巡禮行記>(역), <갑신정변 회고록>, <한말 외국인 기록>(전23권, 역).
최근작 : <한국정치사상사 - 하>,<한국정치사상사 - 상>,<한국분단사 자료집 세트 - 전6권> … 총 112종 (모두보기)
신복룡(지은이)의 말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억눌린 무리와 잊힌 무리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어Barrington Moore의 주장처럼, 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 없이 역사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묘청妙淸이든, 신숙주申叔舟든, 김성일金誠一이든, 원균元均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를 위해 변론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선조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헤로도토스Herodotus가 그랬듯이, 나는 사상사를 발로도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가에게는 현장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전 <전봉준평전>을 쓸 때부터였다.
나는 고려 불교의 숨결을 느끼고자 해인사海印寺 장경각藏經閣을 찾았고,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星壇과 정제두鄭齊斗의 묘를 참배했고, 강진康津의 다산茶山 유배지를 돌아보았으며, 북경北京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유적을 찾아보았으며, 김옥균金玉均의 체취를 느끼고자 그의 옷과 머리가 묻혀 있는 일본 도쿄東京의 진조지眞淨寺를 참배했다. 나는 그곳들을 찾아볼 때마다 그분들의 도움[陰佑]을 빌었다.
서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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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사상사 - 하 검색 | 한국정치사상사
신복룡 (지은이)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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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4편
근세 후기 : 이기론理氣論과 당의黨議
제22장 주기론
1. 서론
2. 기氣란 무엇인가?
3. 군주에 관한 인식 : 보왕론補王論
4. 양민養民
5. 양병養兵
6. 결론
제23장 주리론
1. 서론
2. 이성理性의 이해
3. 성왕聖王의 논리
4. 존주尊朱의 세계
5. 결론
제24장 정여립鄭汝立
1. 서론
2. 정여립의 생애
3. 정여립의 생각
4. 기축옥사의 전개
5. 결론
제25장 양명학
1. 서론
2. 반주자적 정서 : 친민親民인가 신민新民인가
3. 마음이 곧 이성이다[心卽理]
4. 아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知行合一]
5. 통치와 권력
6. 결론
제26장 정치지리학 : 풍수지리설
1. 서론
2. 통치 자료로서의 지리학
3. 낙토樂土·승지勝地
4. 호남 기피
5. 서북 차별
6. 결론
제27장 당의黨議와 예송禮訟
1. 서론
2. 예송 : 군주의 부모·자식은 군신인가, 혈육인가?
3. 반주자反朱子의 논리와 역습
4. 복수復讎 설치雪恥와 북벌론北伐論
5. 결론 : 조선조 당쟁의 정치적 함의
제5편
근대 : 서구와의 만남
제28장 전기 실학사상
1. 서론
2. 발생사적 배경
3. 백과전서파
4. 토지 제도
5. 관제 개혁
6. 결론
제29장 서학西學의 전래
1. 서론
2. 중국 교회사와 마테오 리치가 주는 교훈
3. 지식인의 서구 인식과 세계관의 변화
4. 신과 인간의 관계
5. 국가와 군주에 관한 인식
6. 결론
제30장 후기 실학사상
1. 서론
2. 선정론善政論
3. 제도개혁론
4. 토지와 생산성
5. 우주론
6. 결론
제31장 근대 민족주의의 생성
1. 서론
2. 시대 구분과 가치 준거
3. 발생사적 배경
4.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특질
5. 결론
제32장 위정척사 사상
1. 서론
2. 의병 운동의 전개와 성격 변화
3. 정사正邪와 화이지별華夷之別
4. 민족의식과 상관성
5. 결론
제33장 개화사상
1. 서론
2. 개화사상의 형성 배경
3. 민권에 관한 인식
4. 부국강병富國强兵
5. 개화파의 민족의식을 둘러싼 담론
6. 결론
제34장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 서론
2. 권력 의지 : 왕권의 강화
3. 민생 : 서원書院의 문제
4. 서구에 관한 인식 : 쇄국인가?
5. 결론
제35장 동학사상
1. 서론
2. 조선왕조 후기의 정치 상황
3. 대각大覺
4. 민권사상
5. 국가론
6. 민족주의
7. 결론
제36장 신흥 종교
1. 서론
2. 신흥 종교의 발생 과정
3. 궁극적 관심 : 해원解寃
4. 경제적 민족주의 : 상생相生
5. 망국에 관한 인식
6. 결론
제6편
현대 : 이데올로기의 시대
제37장 3·1운동
1. 서론
2. 1919~1920년의 정치적 분위기 : 절망과 분노의 이중주
3. 공화주의
4. 경제적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로
5. 비폭력 무저항주의
6. 결론
제38장 역사주의
1. 서론
2. 역사 회복 운동
3. 비분강개悲憤慷慨의 역사학
4. 영웅사관
5. 사회진화론
6. 결론
제39장 무정부주의
1. 서론
2. 만남 : 무정부주의의 사상적 계기
3. 무정부주의자로서 신채호의 행적
4. 무정부주의의 전개
5. 결론
제40장 우파 민족주의3
1. 서론
2. 유교적 근왕사상
3. 친미주의와 반공 노선
4. 반일사상에서 민족지상주의로
5. 부르주아 민족주의
6. 결론
제41장 온건주의
1. 서론
2. 삼균주의
3. 해방에 관한 역사 인식
4. 미군정에 관한 인식 : 좌우 합작
5. 결론
제42장 좌파 이데올로기
1. 서론
2.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발생사적 배경
3. 민중주의
4. 미래 조국의 건설 계획
5. 결론
제43장 박정희朴正熙
1. 서론
2. 역사주의와 영웅사관
3. 민족 중흥의 논리
4. 군사 문화와 반의회주의
5. 결론
제44장 결어 : 한국 민주주의의 유산과 그 미래
1. 서론
2. 한국정치사상사에서 민주주의적 유산과 미덕
3. 한국사에서 비민주주의적 유산과 흠결
4.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 갈등의 현상과 그 극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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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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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정치학 박사), 건국대학교 교수/석좌교수,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보훈부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
저서/역서 : <한국정치사>,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 <한국정치사상사>, <잘못 배운 한국사>, <해방 정국의 풍경>, <入唐求法巡禮行記>(역), <갑신정변 회고록>, <한말 외국인 기록>(전23권, 역).
최근작 : <한국정치사상사 - 하>,<한국정치사상사 - 상>,<한국분단사 자료집 세트 - 전6권> … 총 112종 (모두보기)
신복룡(지은이)의 말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억눌린 무리와 잊힌 무리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어Barrington Moore의 주장처럼, 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 없이 역사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묘청妙淸이든, 신숙주申叔舟든, 김성일金誠一이든, 원균元均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를 위해 변론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선조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헤로도토스Herodotus가 그랬듯이, 나는 사상사를 발로도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가에게는 현장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전 ��전봉준평전��을 쓸 때부터였다. 나는 고려 불교의 숨결을 느끼고자 해인사海印寺 장경각藏經閣을 찾았고,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星壇과 정제두鄭齊斗의 묘를 참배했고, 강진康津의 다산茶山 유배지를 돌아보았으며, 북경北京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유적을 찾아보았으며, 김옥균金玉均의 체취를 느끼고자 그의 옷과 머리가 묻혀 있는 일본 도쿄東京의 진조지眞淨寺를 참배했다. 나는 그곳들을 찾아볼 때마다 그분들의 도움[陰佑]을 빌었다.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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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63
동아시아시각으로 한국정치사상사를 읽는다 - 신복룡, 《한국정치사상사》(2011)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승인 2024.05.04
■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중-일의 사상사 논저와 비교 및 총평
동아시아시각에서 서평을 쓴다는 것은 국적의 시각이 아닌 탈국적의 동아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비평해 본다는 의미이다. 《한국정치사상사》라는 모범적인 교과서를 본 후에, 그것을 도약대로 삼아 우리 사상사의 사고체계를 동아시아로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서 토론해 본다.
동아시아 지식계에는 통사 형식의 사상사가 많다. “사상과 철학은 정치를 통해서 구현된다”라는 명제는 ‘정치사상사’를 따로 연구하고 저술하는 동기를 만들었다. 내가 읽은 범위 안에 대표적으로 중국에는 소공권과 류택화의 《중국정치사상사》가 있다면, 일본에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와타나베 히로시의 《일본정치사상사》가 있다. 한국의 석학 신복룡 교수의 《한국정치사상사》는 양과 질적으로 이들과 같은 반열에 있는 책이다.
총평부터 하자면, 신복룡의 저서는 한국 정치사상사의 흐름에서 주요 사상가와 시대성을 반영하는 사조의 특성을 가장 적절하게 추출하여 서술한 ‘훌륭한 안내서이자 연구서’이다. 저자는 중어와 일어로 번역 출판하려는 뜻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외국어로 번역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동서양 모든 연구자가 한국정치사상사 연구의 출발점을 이 책으로 잡는 게 가장 표준적인 경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일본의 비판적 지성인 오에 겐자부로(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는 “마루야마 마사오 선생은 일본의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평하였다. 마루야마의 많은 연구서 중에 특히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을 비판한 논리를 오에는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제기하는 ‘동아시아시각’에서 보면, 마루야마보다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과 그의 사상이 일본의 ‘공통 언어’로 칭송을 받는 게 더 적절하다. 마루야마에 대한 덕담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의 성찰적 일본 정치사상사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사실 그의 저작을 거의 다 접한 후에 느낀 바는 일본의 무엇을 성찰한 것인지 모르겠다. 《일본정치사상사연구》와 함께 역작으로 꼽히는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에서는 ‘패전의 (무)책임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책임이양의 심리구조”)을 주로 하면서도 동아시아 침략과 식민화에 대해서는 별로 반성하는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일본의 문제를 비판적 사상사론으로 서술하면서 침략주의에 대한 반성보다도 패전에 대한 회한을 더 심각하게 논하고 있다. 일본의 동아 침략의 근원적 사유를 구성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에 대해서도 시종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에 눈 감고 있다.
결국 마루야마는 침략으로 귀결한 일본의 근대화 우등생의식을 자부하는 심리에 대해 ‘자아비판’하면서 전후 새로운 일본의 ‘미래주의적 사상’을 창출하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나쓰메 소세키가 메이지 근대화의 이면에 숨은 ‘자기본위 의식의 부재’를 통찰한 것에 비해 한 참 못 미친다.
혹시 독자 중에 중국의 루쉰과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마루야마 마사오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분이 있다면, 나와 토론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지식계는 중국과 일본 ‘내부의 대가’들을 ‘탈국적의 동아시아 수준의 사상가’들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기 3인의 사상은 ‘자기 국적의 사고체계’를 초탈한 업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의 사상은 동아시아 보편가치의 반열에 들지 않는다.
내 지인 중에 일본문학 전공자가 술회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루쉰과 나쓰메 소세키의 모든 저작을 번역하여 서가에 꽂아놓고 숭배에 가까운 경의를 표하는 곳은 중일 양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지식계가 ‘유일’하다고 한다. 모택동이 루쉰을 가리켜 ‘공자 이래 최대의 성인’이라고 정치적인 동기에서 극찬했는데 그것은 중국인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한국인에게는 ‘글쎄’다. 동시대에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로서 동아시아 피압박민족 전체를 사고하고 논했던 신채호에 대해서는 중국과 일본만 생각했던 루쉰과 니쓰메 소세키에 비해서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지 반성해보자. 우리 모두 생각이 다르지만,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한 마루야마, 즉 국적을 떠나지 않는 사상을 가진 그와는 달리, 오에는 일본에서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진보적 개인의 차원에서 침략사와 각종 잔학행위에 대한 철저한 죄의식과 반성을 통하여 인류 보편적인 비판적 인문정신을 실천한 작가이자 문학 사상가이다. 그는 더 나아가 천황제의 폐지를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오에 겐자부로의 비판적 사상이야말로 상기 3인의 국내적 차원의 문제의식을 초탈하고 동아시아에 확장되어 감동을 주고 있으며, 그 자체가 ‘일본의 공통 언어’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지식의 탈국경-지구화 시대를 맞아서, 만일 동아시아 3국의 정치사상사의 상호관계성을 찾아내려면 신복룡, 소공권, 류택화, 마루야마 마사오의 저서들을 비교 참고하고 ‘동아시아시각’으로 연동하여 재해석하는 게 필수적이다. 한국 정치사상의 시대적 흐름과 이에 따른 특성은 신복룡의 독해를 통해서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른바, 한국 정치사상의 보편적 이해의 틀을 제공해 주었다고 평하고 싶다.
몇 가지 인상적인 측면을 다음같이 토론하는 마음으로 제기해 본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 생각이기에 저자와 다른 독자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저서의 의도와 지향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의식도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

사상가와 사조의 혼합적 구성과 서술
저자는 필자와의 차담에서 직접 밝히길, 가장 먼저 염두에 둔 사항은 세계적 보편의 마음으로 한국정치사상사를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 노르웨이인과 고교생이 보아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썼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되었는지는 다소 의심이 든다고도 했다. 아마도 저자는 한문 원저를 참고해야 할 고전시대를 다룬 사상서는 근래 젊은 학도들에게 비인기 분야라는 것, 그래서 독자가 전문 연구자들로 거의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으신 듯하다.
다음으로 저자의 직접 소개처럼, 세계의 모든 사상사 책에서 신화의 시대부터 출발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즉, 신화의 시대부터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출발한 최초의 사상사이다. 따라서, 신화의 시대부터 근대까지 사상가와 사조를 총망라하여 다루었다. 그 의미는 한반도 신화시대부터 서술함으로써 장기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과 달리 독자적인 연원을 가진 한국 정치사상의 특성을 파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이후 한반도의 사상사는 중국, 일본과 연동되어 전개되며, 그 사상적 관계망의 특징과 의미를 밝히려는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후’신라(필자는 ‘통일신라’ 호칭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다)시대와 고려시대에 걸쳐 불교와 유학의 역할을 균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불교정치상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것을 준비 중이라고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불교는 정치세력과 깊은 연관을 가지면서 확산해왔다. 저자의 연구 의도와 열정에 충분히 공감이 가면서, 그의 학문적 포부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넷째,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한국사에서 왜곡된 묘청의 인물평을 바로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묘청을 사이비 종교적인 기이한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그의 사상과 인물됨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치가의 모습으로 바로잡고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에서 ‘묘청의 난’ 이후로는 ‘대륙지향 사관’과 ‘자율이성’에 기초한 진취적인 사상과 대외의식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자의 재해석은 한중일 사상사의 재구성을 기획하는 필자 같은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고무적이다. 묘청이 한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상의 정치개혁가로 부활한 계기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이다. 일반적으로 신채호와 묘청의 사상을 민족주의적 열정만 앞선 비실증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나, 이것은 일제 식민사학의 왜곡을 그대로 추수하는 사학자들의 심각한 착오이다. 신채호와 근래 등장한 이덕일 등의 “실증적 민족주의 사학”(필자의 정의)은 이러한 견해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이덕일의 한국통사》 참조)
다섯째, 묘청과 같이 왜곡되어 해석된 인물 정여립(1546-1589)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반란을 일으킨 반역적인 인물이자 사상가가 아니라 ‘천하공물설’(天下公物論)을 제시한 진정한 ‘공화주의 사상가’로 복원하고 있다. 이는 영국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의 공화주의(republicanism)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선진적인 사상이었다. 묘청과 정여립의 진보적이고 독자적인 사상에 대한 저자의 적극적인 복원작업은 후학들의 진취적인 한국정치사상사론을 의식하면 분명 사고의 도약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묘청과 정여립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에서 역사와 사상사는 사료에 근거한 해석의 학문이라는 점을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묘청과 정여립에 대한 사료가 있는데, 후학들은 그것의 가장 안 좋은 측면만을 부각하면서 좋은 측면을 무시하였으므로 그간의 왜곡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승려인 묘청의 난을 제압한 김부식 등은 중화주의적 정체성을 국가정체성보다 우위에 두는 유교 지상주의자들이었다. 이들에게는 고려의 국가정체성보다 ‘중화주의적 유교문화 정체성’이 더 우위에 있었다. 조선시대의 주자학자와 노론 세력도 거의 그러한 길을 추종했다. 따라서 우리의 사상도 중화에 거역하면 반역이라는 ‘반도사관과 타율이성’을 내면화한 사유와 실천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한반도의 자기 경시의 사상사에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멸망 이래 우리의 정신세계와 사상사를 지배한 “반도사관과 타율이성”(필자)이 있었다. 이러한 사상사적 특성으로 인해 “대륙사관과 자율이성”(필자)을 추구하는 인물들의 사상과 정치가 탄압받고 역사의 무대에서 푸대접받으면서 사라진 게 우리의 역사이다.
신복룡이 사료를 기초로 삼아 묘청과 정여립을 우리 사상사의 무대에 뛰어난 진보적 개혁가로 부활시킨 점은 이 책의 훌륭한 업적이다. 그리고 율곡을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정치사상가로 정의한 것도 인상적이다. 퇴계가 주로 조선의 보편 윤리를 구축하고 인격수양주의를 강조하면서 주자와 같은 철학자 역할에 치중한 것을 율곡과 대비시키면서 걸출한 양대 사상가를 적절하게 비교했다.
여섯째, 일반적인 사상사의 전개방식을 넘어 율곡 계열의 주기학을 퇴계 계열의 주리학보다 먼저 배열하였다. 그 주기론의 선구자 격인 김시습이 주리론의 선구자 이언적보다 연배가 위라는 단순한 이유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 정치는 주리론 계열이 주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이다. 그리고 조선의 양명학자들도 자세히 언급하면서 오로지 주자학만이 주류사상이었다는 한국 사회의 세속적 이해를 해체하고 조선 사상사의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조선시대에는 양명학자들이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렸으나, 비공개적으로는 양명학을 연구했다는 현상을 저서는 말해주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합리적인 진보성’은 일제 식민사학에서 우리의 사상사를 사색당쟁의 분열적 측면으로만 단순화하여 폐쇄적인 민족성을 부각하는 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특히 일제의 식민사학의 한국사상사 폄하 시도는 신복룡의 저서와 더불어 최영성의 《한국유학통사》(2016)와 《되짚어 본 한국사상사》(2015)에서 철저하게 허물어지고 부정되고 있다. 물론 이 두 석학은 적극적으로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사상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특성을 제시함으로써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제 식민사학의 편협한 한국관을 초극하고 있다. 즉, 양인의 저작은 ‘조선 유학보다 일본 유학이 더 발전하였다’는 일제 식민사학의 ‘작위적’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려줄 만큼 역작이다. 그동안 한국 학계에서조차 그런 식민지적 사유를 해왔고 중국과 일본 학계조차 그것을 추수하면서 한국 유교사상의 수준을 폄하해 왔다는 것에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소공권과 류택화, 마루야마의 저서들이 시대를 따라 등장한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 것에 비해, 신복룡은 시대 흐름을 따라 등장한 대표 사상가들의 논리와 시대적 사조를 혼합하여 저술하였다. 사상가들의 사유와 시대상의 사조의 특징을 연결하고 혼합하여 장과 절의 제목을 메기고 서술하였다. 사조의 의미는 당대의 문제와 담론을 집약하여 구성된 공통적 사상(思와 想)이다. 따라서 엘리트 지식인의 사상과 시대적 문제와 담론의 혼합형이라 할 수 있다. 즉, 단순한 시대-사건-인물의 단선적인 통사가 아니다.
저자가 밝힌 바대로 개정판이 나온다는 데 기대가 되면서 다시 읽을 기쁨을 누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토론을 위한 문제의식
하나의 훌륭한 책을 보고 나서도 우리는 항상 어떤 부분을 좀 더 보강하면 더 좋았을까를 생각하고 토론한다. 그리고 자신의 평을 더한다. 물론 평을 하는 것보다 원저를 쓰는 게 몇 배나 힘든 것은 당연하다. 다음 같은 필자만의 보충적인 ‘추론적 상상’을 하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동아에서는 사상사는 있는데 사상이 없고, 사상사가는 있으나 사상가는 없는 게 아쉬움이다. 한중일 철학사는 있는데, 한중일 철학이 없는 것과 같다. 아직도 제자백가를 제외하면 사상의 생산지(중국과 동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에 보편화한 사상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한국 정치사상사를 합리적 진보성으로 재해석하고 재정리하였으나 정치사상의 문제와 담론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독자적 조망 혹은 도구적 시각이 없는 게 아쉬움이다. 즉 일반화의 오류라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사조의 특징을 개념화하고 그것으로써 해석을 할 수 있는 준거가 부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냥 시대를 따라서 지정한 각 장의 주제들에 대한 독립적인 서술을 위주로 하고, 그 주제들이 한국의 전체 사상사를 어떻게 구성하였는가에 관해서는 독자들의 미시적 연구에 맡기고 있다.
예를 들어, 다소 추론적이지만, 중국의 이택후(李澤厚)의 《고대, 근대, 현대사상사론》의 현대 부분에서는 “求亡(구망)과 계몽의 이중변주”의 시각으로 사상가들과 당대 사조를 바라보면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중체서용’에 대해서는 ‘서체중용’으로 대응하는 논리를 제시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주체적 작위”라는 도구적 시각으로 오규우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의 사상을 재해석하면서, 메이지시대 근대적 개혁의 사상적 근거를 발굴하고 연동하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 논리는 마루야마가 중국, 한국과 비교해서 일본의 근대화 우등생 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서구와 비교하면 중국과 일본, 한국에도 기본적으로는 사상사는 있으나 그것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려는 사상사가들의 독자적인 도구적 조망이 미약한 게 특징이다. 모두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위한 독자적 시각을 제시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중국의 사상사는 한일과의 상호관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상 그 자체가 동아보편으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추론한다. 일본은 어떨까. 근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중화에서 일본을 분리하고 일본의 독자성을 발굴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일본의 새로운 중화 지위를 획득하려는 작위적 이론화작업을 역사와 사상사의 영역에서 발휘하고 있다.(다카하시 도루, 나이토 고난,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다 소키치 등) 그 와중에 중화에 도전하는 발판이자 희생양으로 걸려든 게 한국의 사상사이다. 그들은 일제 식민사학을 주조하여 한국 사상사의 식민성과 왜소성, 폐쇄성을 마치 모자란 학생을 대하는 지도교수 같은 태도로 지적하고 주입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작위적 한국 사상사 해석을 깨트린 최영성의 《한국유학통사》에 감탄한다.

우리가 명조 말기 양명학 좌파 이탁오(1527-1602)를 보고 감탄하지만, 거의 동시대 조선에서 우리에게도 보헤미안 자유주의자 임제(1549-1587)와 허균(1569-1618)의 탈유교적 사상가가 있었다. 일본도 탈계급주의와 체제비판적 사상을 설파한 안도 쇼에키(1703-1762)가 있었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자유주의 사조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에게서 시대적이고 공간적인 한계를 걷어내면 오늘날 서구에서 도래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도 연결된다. 즉, 일방적으로 서양이 동아시아를 근대화 시킨 게 아니다. 동서양은 상호학습효과를 통해 서로를 근대화시켰다. 동아시아의 한중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자백가는 탄생한 이래 동아시아에 확산하여 원래의 의미와 그 확산한 지역의 특수성이 혼합하여 혼성화 발전을 지속하였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동서양 상호학습을 통한 혼성발전과 근대화는 지속되고 있다. 그 과정은 완성(completion)이 아니라 끝없는 생성(becoming)이다.
그래서 나는 신복룡이 되살린 묘청(?-1135), 정여립(1546-1589), 율곡(1536-1584), 동학사상을 동아시아시각에 접목하여 사고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저자의 책이 언급하지 않는 박은식, 신채호의 사상을 당시 동아시아 피압박 민족의 ‘보편적 저항 사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당시 한국에서 나온 민족주의 사조로만 치부하면서 동아시아를 향한 보편적 저항사상의 메시지를 스스로 축소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사상사는 자기 위축이 너무 내면화되었다. 중국과 일본 앞에서 ‘소한민국의 사상사’로 사는 게 오히려 편한 상태가 된 것인지 의심이 간다. 왜 우리가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산할 수 있는 우리의 사상사적 자원을 못 보거나 안보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박정희 사상을 다루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불필요하거나 의미가 있다면 다른 상관성 있는 인물들의 주제를 같이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만일 ‘박정희’ 장을 독립적으로 둔다면, 왜 김구와 이승만, 김일성의 chapter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저자가 다루지 않은 주제 - 허균, 최한기, 박은식과 신채호, 김구와 이승만, 김일성 - 들을 포함했어야 박정희 chapter가 있는 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전부터 생각해 온 연구 주제로서 “한국사에서 독립운동을 한 자주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이후 근대화의 주역이 못되고, 친일부역세력이 근대화(주로 경제적인 측면)의 주역이 된 것에 대한 역사철학적인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를 하나의 주제로 하는 chapter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필자가 품고 있는 우리 정치사상사에 관한 문제의식에 의하면, 상해임시정부의 정통 독립운동 세력이 아닌 방계 독립운동 세력이자 친일 부역자와 손을 잡은 숭미-반공 보수세력이 국가근대화(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주역이 된 것은 분명 우리 사상사와 정치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결과일 것이다. 그 역사철학적 해석과 문제점을 풀어보는 주제의 chapter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여기에는 조선 말기의 화석화된 주자학,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인물들의 타율이성의 사상적 잔재, 식민지 근대화론 등에 대한 논의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근현대사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치가들에 대한 주제도 빠져있는 게 아쉽다. 만일 연구의 금기가 있다면 아직도 우리는 절름발이 사상사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념의 경계를 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차담의 자유토론
정치사상 연구자로서 평소의 의문을 독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사상사 연구에서 내재적인 비판과 외재적인 비판의 시각 사이에서의 균형이다. 내재적 비판의 시각에서 모든 사상과 사상가들은 당시의 시공간인 그들의 시대적 상황에 들어가면, 그들의 어떠한 생각과 행위도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르고 공간도 변해버린 외재적인 시각, 즉 현재 상황에서 당시의 생각과 행위의 좋고 나쁜 의미를 규정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즉, 사상사 연구에서, 이 내재적-외재적 시각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석학이 제기한 정치사상 연구자의 태도에 대한 제언도 중요하다. “공산주의가 무조건 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공산주의가 오로지 우리의 살길이라 주장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교조적 태도에 대한 비판인데, 내가 제기한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는 인류 발전의 모델 중의 하나로 상대화하여야 한다는 논지”에 대해 응답한 것이다. 숭미-혐중, 남북갈등과 북한 악마화, 남남갈등이 지배하는 사고체계가 아직도 정치적 지배기제로 작동하는 시민사회와 지식계에 중요한 제언으로 생각한다.
“역사적 자본주의”가 있다면 “역사적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도 사상사와 현실정치에서 존재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도 사회주의(공산주의)도 어느 한 시점에 등장한 창조물이 아니고, 근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사상적인 근거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근대 인류사회의 사악한 악마라는 논법은 인류의 사상사의 한 측면을 인위적으로 지워버리는 행위이다.
그리고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에 관한 주제로서 진보 진영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관한 성찰적 대화이다. 최고지도자가 착하게 정치를 하려고 하면 착한 백성보다 악당들에게 용기와 기회를 주게 된다는 나의 비평에 대한 응답으로, 이른바 “정치 지도자의 통치술에 대해 생각해 보면, 구약에는 ‘지혜롭게’ 살라는 말이 750번 나오는데, ‘착하게’ 살라는 말은 350번 나온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이 경청해야 할 석학의 화두라고 생각한다.
신복룡 교수님께서 고맙게도 필자에게 출판 전이지만 참고하라고 개정판 원고를 보내 주셨다. 그런데 ‘개정판 서문’을 보고 깜짝 놀랐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풍우란, 소공권, 류택화, 마루야마 마사오의 사상사보다 자신의 것이 모자란다는 겸양의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의 책을 정독해 본 바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중에 전화를 드리고 ‘과례는 비례’이니 표현을 조금 수정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자신은 원래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다’라고 하셨다. 나는 ‘개인의 겸손은 좋으시지만, 우리 학계와 후배들의 자존심을 고려하시라’하고 말씀드렸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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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시각으로 한국정치사상사를 읽는다 - 신복룡, 《한국정치사상사》(2011)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승인 2024.05.04
■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중-일의 사상사 논저와 비교 및 총평
동아시아시각에서 서평을 쓴다는 것은 국적의 시각이 아닌 탈국적의 동아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비평해 본다는 의미이다. 《한국정치사상사》라는 모범적인 교과서를 본 후에, 그것을 도약대로 삼아 우리 사상사의 사고체계를 동아시아로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서 토론해 본다.
동아시아 지식계에는 통사 형식의 사상사가 많다. “사상과 철학은 정치를 통해서 구현된다”라는 명제는 ‘정치사상사’를 따로 연구하고 저술하는 동기를 만들었다. 내가 읽은 범위 안에 대표적으로 중국에는 소공권과 류택화의 《중국정치사상사》가 있다면, 일본에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와타나베 히로시의 《일본정치사상사》가 있다. 한국의 석학 신복룡 교수의 《한국정치사상사》는 양과 질적으로 이들과 같은 반열에 있는 책이다.
총평부터 하자면, 신복룡의 저서는 한국 정치사상사의 흐름에서 주요 사상가와 시대성을 반영하는 사조의 특성을 가장 적절하게 추출하여 서술한 ‘훌륭한 안내서이자 연구서’이다. 저자는 중어와 일어로 번역 출판하려는 뜻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외국어로 번역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동서양 모든 연구자가 한국정치사상사 연구의 출발점을 이 책으로 잡는 게 가장 표준적인 경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일본의 비판적 지성인 오에 겐자부로(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는 “마루야마 마사오 선생은 일본의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평하였다. 마루야마의 많은 연구서 중에 특히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을 비판한 논리를 오에는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제기하는 ‘동아시아시각’에서 보면, 마루야마보다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과 그의 사상이 일본의 ‘공통 언어’로 칭송을 받는 게 더 적절하다. 마루야마에 대한 덕담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의 성찰적 일본 정치사상사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사실 그의 저작을 거의 다 접한 후에 느낀 바는 일본의 무엇을 성찰한 것인지 모르겠다. 《일본정치사상사연구》와 함께 역작으로 꼽히는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에서는 ‘패전의 (무)책임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책임이양의 심리구조”)을 주로 하면서도 동아시아 침략과 식민화에 대해서는 별로 반성하는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일본의 문제를 비판적 사상사론으로 서술하면서 침략주의에 대한 반성보다도 패전에 대한 회한을 더 심각하게 논하고 있다. 일본의 동아 침략의 근원적 사유를 구성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에 대해서도 시종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에 눈 감고 있다.
결국 마루야마는 침략으로 귀결한 일본의 근대화 우등생의식을 자부하는 심리에 대해 ‘자아비판’하면서 전후 새로운 일본의 ‘미래주의적 사상’을 창출하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나쓰메 소세키가 메이지 근대화의 이면에 숨은 ‘자기본위 의식의 부재’를 통찰한 것에 비해 한 참 못 미친다.
혹시 독자 중에 중국의 루쉰과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마루야마 마사오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분이 있다면, 나와 토론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지식계는 중국과 일본 ‘내부의 대가’들을 ‘탈국적의 동아시아 수준의 사상가’들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기 3인의 사상은 ‘자기 국적의 사고체계’를 초탈한 업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의 사상은 동아시아 보편가치의 반열에 들지 않는다.
내 지인 중에 일본문학 전공자가 술회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루쉰과 나쓰메 소세키의 모든 저작을 번역하여 서가에 꽂아놓고 숭배에 가까운 경의를 표하는 곳은 중일 양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지식계가 ‘유일’하다고 한다. 모택동이 루쉰을 가리켜 ‘공자 이래 최대의 성인’이라고 정치적인 동기에서 극찬했는데 그것은 중국인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한국인에게는 ‘글쎄’다. 동시대에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로서 동아시아 피압박민족 전체를 사고하고 논했던 신채호에 대해서는 중국과 일본만 생각했던 루쉰과 니쓰메 소세키에 비해서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지 반성해보자. 우리 모두 생각이 다르지만,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한 마루야마, 즉 국적을 떠나지 않는 사상을 가진 그와는 달리, 오에는 일본에서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진보적 개인의 차원에서 침략사와 각종 잔학행위에 대한 철저한 죄의식과 반성을 통하여 인류 보편적인 비판적 인문정신을 실천한 작가이자 문학 사상가이다. 그는 더 나아가 천황제의 폐지를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오에 겐자부로의 비판적 사상이야말로 상기 3인의 국내적 차원의 문제의식을 초탈하고 동아시아에 확장되어 감동을 주고 있으며, 그 자체가 ‘일본의 공통 언어’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지식의 탈국경-지구화 시대를 맞아서, 만일 동아시아 3국의 정치사상사의 상호관계성을 찾아내려면 신복룡, 소공권, 류택화, 마루야마 마사오의 저서들을 비교 참고하고 ‘동아시아시각’으로 연동하여 재해석하는 게 필수적이다. 한국 정치사상의 시대적 흐름과 이에 따른 특성은 신복룡의 독해를 통해서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른바, 한국 정치사상의 보편적 이해의 틀을 제공해 주었다고 평하고 싶다.
몇 가지 인상적인 측면을 다음같이 토론하는 마음으로 제기해 본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 생각이기에 저자와 다른 독자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저서의 의도와 지향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의식도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

사상가와 사조의 혼합적 구성과 서술
저자는 필자와의 차담에서 직접 밝히길, 가장 먼저 염두에 둔 사항은 세계적 보편의 마음으로 한국정치사상사를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 노르웨이인과 고교생이 보아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썼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되었는지는 다소 의심이 든다고도 했다. 아마도 저자는 한문 원저를 참고해야 할 고전시대를 다룬 사상서는 근래 젊은 학도들에게 비인기 분야라는 것, 그래서 독자가 전문 연구자들로 거의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으신 듯하다.
다음으로 저자의 직접 소개처럼, 세계의 모든 사상사 책에서 신화의 시대부터 출발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즉, 신화의 시대부터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출발한 최초의 사상사이다. 따라서, 신화의 시대부터 근대까지 사상가와 사조를 총망라하여 다루었다. 그 의미는 한반도 신화시대부터 서술함으로써 장기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과 달리 독자적인 연원을 가진 한국 정치사상의 특성을 파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이후 한반도의 사상사는 중국, 일본과 연동되어 전개되며, 그 사상적 관계망의 특징과 의미를 밝히려는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후’신라(필자는 ‘통일신라’ 호칭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다)시대와 고려시대에 걸쳐 불교와 유학의 역할을 균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불교정치상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것을 준비 중이라고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불교는 정치세력과 깊은 연관을 가지면서 확산해왔다. 저자의 연구 의도와 열정에 충분히 공감이 가면서, 그의 학문적 포부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넷째,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한국사에서 왜곡된 묘청의 인물평을 바로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묘청을 사이비 종교적인 기이한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그의 사상과 인물됨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치가의 모습으로 바로잡고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에서 ‘묘청의 난’ 이후로는 ‘대륙지향 사관’과 ‘자율이성’에 기초한 진취적인 사상과 대외의식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자의 재해석은 한중일 사상사의 재구성을 기획하는 필자 같은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고무적이다. 묘청이 한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상의 정치개혁가로 부활한 계기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이다. 일반적으로 신채호와 묘청의 사상을 민족주의적 열정만 앞선 비실증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나, 이것은 일제 식민사학의 왜곡을 그대로 추수하는 사학자들의 심각한 착오이다. 신채호와 근래 등장한 이덕일 등의 “실증적 민족주의 사학”(필자의 정의)은 이러한 견해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이덕일의 한국통사》 참조)
다섯째, 묘청과 같이 왜곡되어 해석된 인물 정여립(1546-1589)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반란을 일으킨 반역적인 인물이자 사상가가 아니라 ‘천하공물설’(天下公物論)을 제시한 진정한 ‘공화주의 사상가’로 복원하고 있다. 이는 영국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의 공화주의(republicanism)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선진적인 사상이었다. 묘청과 정여립의 진보적이고 독자적인 사상에 대한 저자의 적극적인 복원작업은 후학들의 진취적인 한국정치사상사론을 의식하면 분명 사고의 도약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묘청과 정여립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에서 역사와 사상사는 사료에 근거한 해석의 학문이라는 점을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묘청과 정여립에 대한 사료가 있는데, 후학들은 그것의 가장 안 좋은 측면만을 부각하면서 좋은 측면을 무시하였으므로 그간의 왜곡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승려인 묘청의 난을 제압한 김부식 등은 중화주의적 정체성을 국가정체성보다 우위에 두는 유교 지상주의자들이었다. 이들에게는 고려의 국가정체성보다 ‘중화주의적 유교문화 정체성’이 더 우위에 있었다. 조선시대의 주자학자와 노론 세력도 거의 그러한 길을 추종했다. 따라서 우리의 사상도 중화에 거역하면 반역이라는 ‘반도사관과 타율이성’을 내면화한 사유와 실천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한반도의 자기 경시의 사상사에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멸망 이래 우리의 정신세계와 사상사를 지배한 “반도사관과 타율이성”(필자)이 있었다. 이러한 사상사적 특성으로 인해 “대륙사관과 자율이성”(필자)을 추구하는 인물들의 사상과 정치가 탄압받고 역사의 무대에서 푸대접받으면서 사라진 게 우리의 역사이다.
신복룡이 사료를 기초로 삼아 묘청과 정여립을 우리 사상사의 무대에 뛰어난 진보적 개혁가로 부활시킨 점은 이 책의 훌륭한 업적이다. 그리고 율곡을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정치사상가로 정의한 것도 인상적이다. 퇴계가 주로 조선의 보편 윤리를 구축하고 인격수양주의를 강조하면서 주자와 같은 철학자 역할에 치중한 것을 율곡과 대비시키면서 걸출한 양대 사상가를 적절하게 비교했다.
여섯째, 일반적인 사상사의 전개방식을 넘어 율곡 계열의 주기학을 퇴계 계열의 주리학보다 먼저 배열하였다. 그 주기론의 선구자 격인 김시습이 주리론의 선구자 이언적보다 연배가 위라는 단순한 이유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 정치는 주리론 계열이 주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이다. 그리고 조선의 양명학자들도 자세히 언급하면서 오로지 주자학만이 주류사상이었다는 한국 사회의 세속적 이해를 해체하고 조선 사상사의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조선시대에는 양명학자들이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렸으나, 비공개적으로는 양명학을 연구했다는 현상을 저서는 말해주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합리적인 진보성’은 일제 식민사학에서 우리의 사상사를 사색당쟁의 분열적 측면으로만 단순화하여 폐쇄적인 민족성을 부각하는 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특히 일제의 식민사학의 한국사상사 폄하 시도는 신복룡의 저서와 더불어 최영성의 《한국유학통사》(2016)와 《되짚어 본 한국사상사》(2015)에서 철저하게 허물어지고 부정되고 있다. 물론 이 두 석학은 적극적으로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사상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특성을 제시함으로써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제 식민사학의 편협한 한국관을 초극하고 있다. 즉, 양인의 저작은 ‘조선 유학보다 일본 유학이 더 발전하였다’는 일제 식민사학의 ‘작위적’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려줄 만큼 역작이다. 그동안 한국 학계에서조차 그런 식민지적 사유를 해왔고 중국과 일본 학계조차 그것을 추수하면서 한국 유교사상의 수준을 폄하해 왔다는 것에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소공권과 류택화, 마루야마의 저서들이 시대를 따라 등장한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 것에 비해, 신복룡은 시대 흐름을 따라 등장한 대표 사상가들의 논리와 시대적 사조를 혼합하여 저술하였다. 사상가들의 사유와 시대상의 사조의 특징을 연결하고 혼합하여 장과 절의 제목을 메기고 서술하였다. 사조의 의미는 당대의 문제와 담론을 집약하여 구성된 공통적 사상(思와 想)이다. 따라서 엘리트 지식인의 사상과 시대적 문제와 담론의 혼합형이라 할 수 있다. 즉, 단순한 시대-사건-인물의 단선적인 통사가 아니다.
저자가 밝힌 바대로 개정판이 나온다는 데 기대가 되면서 다시 읽을 기쁨을 누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토론을 위한 문제의식
하나의 훌륭한 책을 보고 나서도 우리는 항상 어떤 부분을 좀 더 보강하면 더 좋았을까를 생각하고 토론한다. 그리고 자신의 평을 더한다. 물론 평을 하는 것보다 원저를 쓰는 게 몇 배나 힘든 것은 당연하다. 다음 같은 필자만의 보충적인 ‘추론적 상상’을 하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동아에서는 사상사는 있는데 사상이 없고, 사상사가는 있으나 사상가는 없는 게 아쉬움이다. 한중일 철학사는 있는데, 한중일 철학이 없는 것과 같다. 아직도 제자백가를 제외하면 사상의 생산지(중국과 동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에 보편화한 사상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한국 정치사상사를 합리적 진보성으로 재해석하고 재정리하였으나 정치사상의 문제와 담론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독자적 조망 혹은 도구적 시각이 없는 게 아쉬움이다. 즉 일반화의 오류라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사조의 특징을 개념화하고 그것으로써 해석을 할 수 있는 준거가 부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냥 시대를 따라서 지정한 각 장의 주제들에 대한 독립적인 서술을 위주로 하고, 그 주제들이 한국의 전체 사상사를 어떻게 구성하였는가에 관해서는 독자들의 미시적 연구에 맡기고 있다.
예를 들어, 다소 추론적이지만, 중국의 이택후(李澤厚)의 《고대, 근대, 현대사상사론》의 현대 부분에서는 “求亡(구망)과 계몽의 이중변주”의 시각으로 사상가들과 당대 사조를 바라보면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중체서용’에 대해서는 ‘서체중용’으로 대응하는 논리를 제시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주체적 작위”라는 도구적 시각으로 오규우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의 사상을 재해석하면서, 메이지시대 근대적 개혁의 사상적 근거를 발굴하고 연동하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 논리는 마루야마가 중국, 한국과 비교해서 일본의 근대화 우등생 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서구와 비교하면 중국과 일본, 한국에도 기본적으로는 사상사는 있으나 그것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려는 사상사가들의 독자적인 도구적 조망이 미약한 게 특징이다. 모두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위한 독자적 시각을 제시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중국의 사상사는 한일과의 상호관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상 그 자체가 동아보편으로 생각하기 때문으로 추론한다. 일본은 어떨까. 근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중화에서 일본을 분리하고 일본의 독자성을 발굴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일본의 새로운 중화 지위를 획득하려는 작위적 이론화작업을 역사와 사상사의 영역에서 발휘하고 있다.(다카하시 도루, 나이토 고난,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다 소키치 등) 그 와중에 중화에 도전하는 발판이자 희생양으로 걸려든 게 한국의 사상사이다. 그들은 일제 식민사학을 주조하여 한국 사상사의 식민성과 왜소성, 폐쇄성을 마치 모자란 학생을 대하는 지도교수 같은 태도로 지적하고 주입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작위적 한국 사상사 해석을 깨트린 최영성의 《한국유학통사》에 감탄한다.

우리가 명조 말기 양명학 좌파 이탁오(1527-1602)를 보고 감탄하지만, 거의 동시대 조선에서 우리에게도 보헤미안 자유주의자 임제(1549-1587)와 허균(1569-1618)의 탈유교적 사상가가 있었다. 일본도 탈계급주의와 체제비판적 사상을 설파한 안도 쇼에키(1703-1762)가 있었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자유주의 사조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에게서 시대적이고 공간적인 한계를 걷어내면 오늘날 서구에서 도래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도 연결된다. 즉, 일방적으로 서양이 동아시아를 근대화 시킨 게 아니다. 동서양은 상호학습효과를 통해 서로를 근대화시켰다. 동아시아의 한중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자백가는 탄생한 이래 동아시아에 확산하여 원래의 의미와 그 확산한 지역의 특수성이 혼합하여 혼성화 발전을 지속하였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동서양 상호학습을 통한 혼성발전과 근대화는 지속되고 있다. 그 과정은 완성(completion)이 아니라 끝없는 생성(becoming)이다.
그래서 나는 신복룡이 되살린 묘청(?-1135), 정여립(1546-1589), 율곡(1536-1584), 동학사상을 동아시아시각에 접목하여 사고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저자의 책이 언급하지 않는 박은식, 신채호의 사상을 당시 동아시아 피압박 민족의 ‘보편적 저항 사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당시 한국에서 나온 민족주의 사조로만 치부하면서 동아시아를 향한 보편적 저항사상의 메시지를 스스로 축소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사상사는 자기 위축이 너무 내면화되었다. 중국과 일본 앞에서 ‘소한민국의 사상사’로 사는 게 오히려 편한 상태가 된 것인지 의심이 간다. 왜 우리가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산할 수 있는 우리의 사상사적 자원을 못 보거나 안보는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박정희 사상을 다루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불필요하거나 의미가 있다면 다른 상관성 있는 인물들의 주제를 같이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만일 ‘박정희’ 장을 독립적으로 둔다면, 왜 김구와 이승만, 김일성의 chapter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저자가 다루지 않은 주제 - 허균, 최한기, 박은식과 신채호, 김구와 이승만, 김일성 - 들을 포함했어야 박정희 chapter가 있는 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전부터 생각해 온 연구 주제로서 “한국사에서 독립운동을 한 자주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이후 근대화의 주역이 못되고, 친일부역세력이 근대화(주로 경제적인 측면)의 주역이 된 것에 대한 역사철학적인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를 하나의 주제로 하는 chapter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필자가 품고 있는 우리 정치사상사에 관한 문제의식에 의하면, 상해임시정부의 정통 독립운동 세력이 아닌 방계 독립운동 세력이자 친일 부역자와 손을 잡은 숭미-반공 보수세력이 국가근대화(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주역이 된 것은 분명 우리 사상사와 정치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결과일 것이다. 그 역사철학적 해석과 문제점을 풀어보는 주제의 chapter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여기에는 조선 말기의 화석화된 주자학,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인물들의 타율이성의 사상적 잔재, 식민지 근대화론 등에 대한 논의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근현대사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치가들에 대한 주제도 빠져있는 게 아쉽다. 만일 연구의 금기가 있다면 아직도 우리는 절름발이 사상사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념의 경계를 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차담의 자유토론
정치사상 연구자로서 평소의 의문을 독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사상사 연구에서 내재적인 비판과 외재적인 비판의 시각 사이에서의 균형이다. 내재적 비판의 시각에서 모든 사상과 사상가들은 당시의 시공간인 그들의 시대적 상황에 들어가면, 그들의 어떠한 생각과 행위도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르고 공간도 변해버린 외재적인 시각, 즉 현재 상황에서 당시의 생각과 행위의 좋고 나쁜 의미를 규정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즉, 사상사 연구에서, 이 내재적-외재적 시각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석학이 제기한 정치사상 연구자의 태도에 대한 제언도 중요하다. “공산주의가 무조건 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공산주의가 오로지 우리의 살길이라 주장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교조적 태도에 대한 비판인데, 내가 제기한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는 인류 발전의 모델 중의 하나로 상대화하여야 한다는 논지”에 대해 응답한 것이다. 숭미-혐중, 남북갈등과 북한 악마화, 남남갈등이 지배하는 사고체계가 아직도 정치적 지배기제로 작동하는 시민사회와 지식계에 중요한 제언으로 생각한다.
“역사적 자본주의”가 있다면 “역사적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도 사상사와 현실정치에서 존재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도 사회주의(공산주의)도 어느 한 시점에 등장한 창조물이 아니고, 근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사상적인 근거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근대 인류사회의 사악한 악마라는 논법은 인류의 사상사의 한 측면을 인위적으로 지워버리는 행위이다.
그리고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에 관한 주제로서 진보 진영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관한 성찰적 대화이다. 최고지도자가 착하게 정치를 하려고 하면 착한 백성보다 악당들에게 용기와 기회를 주게 된다는 나의 비평에 대한 응답으로, 이른바 “정치 지도자의 통치술에 대해 생각해 보면, 구약에는 ‘지혜롭게’ 살라는 말이 750번 나오는데, ‘착하게’ 살라는 말은 350번 나온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이 경청해야 할 석학의 화두라고 생각한다.
신복룡 교수님께서 고맙게도 필자에게 출판 전이지만 참고하라고 개정판 원고를 보내 주셨다. 그런데 ‘개정판 서문’을 보고 깜짝 놀랐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풍우란, 소공권, 류택화, 마루야마 마사오의 사상사보다 자신의 것이 모자란다는 겸양의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의 책을 정독해 본 바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중에 전화를 드리고 ‘과례는 비례’이니 표현을 조금 수정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자신은 원래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다’라고 하셨다. 나는 ‘개인의 겸손은 좋으시지만, 우리 학계와 후배들의 자존심을 고려하시라’하고 말씀드렸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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