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8

Lee Jungbae - 문익환목사님께서 변선환학장님에게 보낸 손글씨.

Lee Jungbae - 아래 글은 30여년전 문익환목사님께서 곤경(종교재판)에 처한 변선환학장님에게 보낸 손글씨... | Facebook






Lee Jungbae

p͏t͏o͏n͏r͏o͏s͏d͏e͏S͏a͏1͏o͏5͏7͏6͏1͏1͏t͏1͏e͏t͏h͏4͏:͏h͏f͏r͏c͏c͏1͏7͏u͏0͏a͏h͏c͏g͏u͏a͏c͏O͏ ͏1͏1͏c͏6͏5͏0͏ ͏7͏8͏t͏g͏ ͏b͏0͏c͏3͏t͏ ·


아래 글은 30여년전 문익환목사님께서 곤경(종교재판)에 처한 변선환학장님에게 보낸 손글씨 엽서를 AI 도움받아 박효식 목사께서 풀어 보내준 것이다..감옥에서 걱정하며 아래 편지를 쓰셨을것인데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편지에서 문익환목사는 김재준을스승으로
변선환을 제자로 호칭한다. 그도 그럴것이 변선환학장께서 한신대 대학원에 적을 두셨던 까닭이다(당시감신대는 석사과정이 없었다) 그 시절 문익환 목사님과의 친분과.배움이 있었다고 사료된다. 고 박봉랑교수가.석사논문 지도 교수였다. (이후 변학장님은 존 웨슬리를 칼바르트 식으로 썼던 당시 논문에 스스로 문제점을 제기했다). 문익환 목사님은
자기 스승 김재준으로 종교재판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제자인 변선환에게서 그 일이 반복되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 하셨다. 이 모두가
정통주의 신학의 폐해였고 사대주의에 물든
한국 기독교의 병폐라 여겼다. 아마도 감리교 신학자였다면 교단은 문목사님을 퇴출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 문목사님은 종교재판의 죄목(?)인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사조 역시 사대주의 산물이 아닌가 물었다. 이들 사조를 신봉하는
옛 제자에게 종교적 사대주의 잣대를 조심스럽게
들여댄 것이다. 문익환 목사님으로서는 충분히
하실 수있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관련하여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변선환 학장의 최종목표는 종교 다원주의가 아니었다. 그가 이 사조를 소개한 것은 서구 기독교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목적에서였다. 서구 중심주의해체와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의 소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서구에서 비롯한 종교 다원주의
사조보다 아시아적 자각에서 비롯한 신학자들의
사유를 더 좋아했다. 그들의 생각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아 변선환은 끝까지 토착화 신학자였고
종교 해방신학자였다. 그는 토착화론의 한계를
모르지 않았다. 문화에 역점을 둔 탓에 정치적 무관심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적 상황에서 종교해방신학을 말했고
토착화론의 틀을 바꾸려했다. "토착화론에서 토발론으로 혹은 토착화론을 넘어선 창조론으로".
문익환 목사님은 옛제자의 이런 의중을 살피지
못한채 걱정하셨다. 일아 변선환의 신학의 기본 흐름은 문익환목사님과 괘도를 같이 한다.
이런 사상적 흐름을 이어 전개하는 것을 필자의
과제라 여기며 선생의 사후 긴 시간을 보내왔다.
'역사유비'와 '개벽신학'이란 이름의 신간 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선생의 탄생 백주년에 맞출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종교재판30년 백서>에서 새롭게 찾은 문익환 목사의 엽서를 찾아 읽으며 한없이 감사했다.
옛 스승들의 모습앞에 한없이 초라한 지금의 선생들, 학생들 스스로 변선환 세미나를 하겠다는데 강의실을 허락하지 않은 대학, 그들을 추운 운동장으로 몰아낸 감신은 이제 교육부 미인가 교단신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리라.
-------
변선환 학장님!
중세기도 아닌데 또 종교재판이 이 땅에서 벌어지다니. 나의 스승 김재준 목사로
종교재판은 끝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제자가 종교재판의 곡경(曲境)을 치르리라고는 천만뜻밖이군요.
김재준 목사님이야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 휩쓴
장로교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이단이었지요.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고 보니,
그를 정죄했던 보수주의는 이제 거의 무너져 내렸는데, 그런 역사를 목격한 사람들이,
그것도 자유주의 신학의 담당자로 출항한 감리교가 시대착오적인 종교재판 판을 벌이다니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의 종교재판 소식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게
천진난만하게도 자랑스럽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콘스탄틴 대제 이후로 1,700년 동안
기독교가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른 온갖 죄악이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거죠.
그 죄악의 뿌리는 독단(獨斷)과 독선(獨善) 아닙니까? 종교인들의 독단과 독선 말고도
우리 겨레에게도 무서운 독단과 독선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주자학(朱子學)이죠.
주자학 이외의 모든 것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를 서로 흘렸습니까.
서양의 기독교는 그런 .. 독단과 독선을 많이 청산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독단 독선이 아직도 날뛰는 것은 기독교의 독단과 독선이 주자학으로 길들여진 우리 민족의 기질 속에 한 세기 동안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이것이 두 번째로 내가 느낀 점입니다.
셋째는 사대주의입니다.
주자학을 지고(至高) 지선(至善)한 학문이라고 믿고, 그 이외의 것은 다 그릇된 학문이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사대주의 근성이죠.
신라 삼국통일 이후 1,300년 동안
우리는 사대주의로 병들어 왔던 것 아닙니까?
미국에는 일본 사람도 많고 중국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특히 흑인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는데,
왜 우리가 그토록 미움을 샀겠어요.
우리 교민들은 백인 숭배하는 사대주의에 기울어
흑인들을 그리도 업신여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난 요새 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도
나의 핏속에 있는 사대주의 기질의 결과가 아닌가 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것을 너무 외면하고 살아왔거든요.
모든 것을 백인들의 신학에서 배우려고 했던거죠.
김재준 목사님을 정죄한 것도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을 주자학 신봉하듯 신앙하는 사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지금 변학장이나 홍교수를 정죄하는 사람들도
백인들에게서 전수된 교리의 수호에 목적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정죄를 받는 편도 투철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준 목사님은 분명히 함석헌 선생이 배우다만 서구신학에 기울어 있었습니다.
변학장의 종교다원화를 인정하는 종교신학도 사대주의가 아닌가? 홍교수의 포스트모더니즘 신학도 안 그런가? 내가 나의 신학에서 사대주의를 발견하고 이를 청산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운동권에 뛰어든 이후입니다.
외세가 씌워준 분단과 억압구조와 싸우면서
자주하는 민족으로 제 발로 일어서려는 겨레의 ..됨 속에서
나는 이 겨레의 힘과 슬기를 볼 수 있었고,
거기에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운동권에도 사대주의가 있습니다.
운동권에서 말하는 과학성이라는 말 속에서
나는 사대주의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헬라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사고 구조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온 과학정신이죠.
그 과학 정신이란 게 세계를 온통 파멸로 몰아가고 있고, 그걸 신봉하고 있으나
나의 신학, 나의 세계관에서 사대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의 산물이 바로 <희브리 민중사>입니다.
나는 이미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백인의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성서의 신앙은 철저하게 반사대주의적 이라는 것이명명백백(明明白白)해 졌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인으로 남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사상사적으로 말하면,
정의란 반사대주의라고 해도 되겠지요.
몇 차례 계속해서 나의 느낌을 써 보렵니다.
늘봄 문익환 (안동 교도소)









 
 
by author
만일 기독교가 아프리카에서 발원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다면 그렇듯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을까요?
  • Reply
  •  
     
    by author
    감신대 종합관 앞 아레오바고에서 강사로 오셨던 문익환 목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Reply
  • Edited
  •  
     
    by author
    교수님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 Reply
  •  
     
    by author
    17행 종교인들의 독단과 독선 --> 기독인들의 독단과 독선
  • Reply
  •  
     
    by author
    변 선환 선생님께서 주장하시고 싶으셨던 것이 종교다원주의적 사상이라 할 수 없는데...
    토착화, 곧 우리의 문화적 사고로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것이었을진데 ...
    왜 감리교단은 그리고 많은 목사님들과 감리교인들은 이를 '예수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방향으로 몰고가려 하는 것일까요?
    과연 이들은 기독교 신학자 변선환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린 자기 판단이었을까요?
    대화를 하려하면, 무조건 아니랍니다. 몰라서 그러는거랍니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너무도 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제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만나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참 답답한 한국 개신교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성서적 무지에 대한 교수님의 끊임없는 애쓰심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지치지 않으시기를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 Reply
  •  
     
    by author
    예수님이 겪었던 고초의 대부분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보수신학과 교회가 가하는 것과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도 계실 곳이 없으시겠지요. 그래서 안오시는 것인지~~~
  • Reply
  •  
     
    by author
    공유합니다.
  • Reply
  •  
     
    by author
    80년대 민통련 시절, 문익환 목사님(의장)을 가까이에서 뵙고 모신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제 처남 김의기의 죽음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계셨지요. 강원도 정선으로 첫목회를 나갔을 때 특별히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던지셨던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깊은 존경과 그리움이 앞섭니다.
  • Reply
  •  
     
    by author
    교수님과 페북에서 만남은 노후의 나에게는 교회변혁의 말문을 열게한 장(場)이되었네요 목회자로서 40년 넘는세월 오늘의 교회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말과 글로 수없이 외쳐도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였지요 변혁의 과제는 신학적 성찰로 부터 시작되겠지요 하여 신학이 이권과 교권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모든 신학자들이 변교수님이나 교수님처럼 학문적 의리와 신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에 동학의 다시개벽 사상과 접목하여 고유의 문화적 전통을 소중히여겨 한국적 신학 토착화신학 민중신학이 인간구원(해방)의 원초적 뿌리가 될 때이지요 이에 함께 한마디 거드는 것 뿐입니다
  • Reply
  • Edited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