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6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10만 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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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10만 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놀토 SENOLTO
156,249 views  Oct 5, 2026  역사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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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10만 명의 조선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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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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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seconds임진혜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이 1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0:044 seconds남원에서 진주에서 영광 앞바다에서 눈바던 아버지와 [음악]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 이제 겨우 열살 남짓한 아이들이 새끼줄에 목이 묶긴 채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넜어요.
0:1515 seconds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지금도 학자마다 말이 다를만큼 기록이 흐릿합니다. 한 고울 두 고울 사람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0:2424 seconds숫자죠. 우리는 임진느란 하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은 바로 떠올리는데 끌려간 그 많은
0:3131 seconds사람들이 그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배운 기억이 거의 없잖아요. 전쟁이 끝났으니 다들 고향으로 돌아왔을까요?
0:3838 seconds남의 나라에서 종으로 부려지다 이름없이 눈을 감았을까요? 남겨진 가족들은 바다 건너를 바라보며 그 사람을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실제
0:4646 seconds기록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막연히 떠올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하나 둘 나옵니다. 일본보다 훨씬 먼 바다를 건너 낯선 유럽 도시의 거리에
0:5555 seconds서게 된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도 일본의 한 신사의 이름이 모셔져 있는 사람이 있고 12살에 끌려간 소년이 남긴 그 시안은 일본에서 문화제가
1:041 minute, 4 seconds됐습니다. 몇태 뒤 조선 사신이 그들을 데리러 바다를 건넜을 때는 포구 갈 때 밭에서 한 남자가 뛰어나오며 이렇게 외쳤다고 해요.
1:121 minute, 12 seconds나는 조선 사람이요 나를 태워 주시오. 그런데 정작 그 사진들이 남긴 기록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10만 명이
1:201 minute, 20 seconds끌려간 그 바다 건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기록 속에 남은 그 사람들의 발자국을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1:301 minute, 30 seconds먼저 그 전쟁부터 들여다 보겠습니다.
1:321 minute, 32 seconds일본군은 조선에 두 번 쳐들어왔습니다. 처음 쳐들어온 임진년 전쟁과 몇태 뒤 다시 쳐들어온 정유년 전쟁이에요.이 두 전쟁은 성격이 꽤
1:411 minute, 41 seconds달랐습니다. 첫 번째 전쟁에서 일본은 한양을 거쳐 영나라까지 가겠다며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어요. 땅을 차지하는게 목표였죠. 그런데 두 번째 전쟁 때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1:521 minute, 52 seconds영나라까지 가는 건 이미 어렵다는게 드러난 뒤였고 일본군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남쪽을 휩쓸고 전어요. 그래서
2:002 minutes한 일본학자는이 두 번째 전쟁을 사람 사냥 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땅보다 사람을 노린 전쟁이었다는 거죠. 조선 쪽 기록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2:092 minutes, 9 seconds남은 사람 조경남이 쓴 난중 잠록을 보면 도요토미 히데오 씨가 장수들에게 내린 명령이 나옵니다. 머리 대신
2:162 minutes, 16 seconds코를 베어보내 전공을 증명하게 하고 그다음에는 사람을 산채로 잡아도 된다고 허락했다는 거예요. 교토에 지금도 남아 있는 귀덤이 그때 베어간
2:252 minutes, 25 seconds코를 묻은 곳입니다. 그 숫자는 여기서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2:292 minutes, 29 seconds그의 가을 교토의 큰절 승려들이 모여이 무덤 앞에서 공양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럼 일본은 왜 그렇게 사람을 데려가려 했을까요?
2:382 minutes, 38 seconds그무렵 일본은 100년 넘게 이어진 내전이 막 끝난 참이었습니다. 오랜 싸움에 농사 지을 사람, 성을 싸울 사람, 잠일을 할 사람이 크게
2:462 minutes, 46 seconds모자았어요. 영주들 입장에서는 조선에서 붙잡아온 사람들이 공짜일선이었던 거죠. 게다가 붙잡은 사람을 장사꾼에게 넘기면 그 자리에서
2:552 minutes, 55 seconds돈이 됐습니다. 사람을 잡는게 곧 전리품을 챙기는 일이었던 겁니다.
2:592 minutes, 59 seconds붙잡으면 일을 시킬 수 있고 일을 안 시키면 팔 수 있으니 군대가 지나가는 마을마다 사람이 사라져 갔어요. 그 사냥이 가장 처절하게 벌어진 곳
3:083 minutes, 8 seconds가운데 하나가 남입니다. 정유년 여름 일본군의 대군이 남성을 에워쌌어요.
3:133 minutes, 13 seconds조성군과 명나라 군대가 함께 성을 지켰지만 끝내 성은 무너졌습니다. 에 있던 군사와 백성들은 대부분 목숨을
3:203 minutes, 20 seconds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줄줄이 포로로 끌려갔어요. 오늘 이야기에 남은 사람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것도이 때문입니다.이 전쟁에서
3:283 minutes, 28 seconds남원만큼 많은 사람이 바다 건너로 끌려간 고울도 드물었거든요. 남성이 무너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정윤년 가을 전라도 영광 앞바다 30살 선비
3:383 minutes, 38 seconds강황은 피란길의 가족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가 일본 수군에게 붙잡힙니다. 배째로 끌려가는 그 와중에 어린 아들과 딸이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 목숨을 잃었어요.
3:483 minutes, 48 seconds아이들을 잃은 아버지는 그대로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비슷한 무려 붙잡힌 또 다른 선비 정의득의 집안 이야기도 기록으로 전합니다.
3:563 minutes, 56 seconds일본군에게 붙잡히던 날 그의 어머니와 형수 아내와 누이가 차례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해요. 끌려가 욕을 당하느니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였죠.
4:054 minutes, 5 seconds정의득은 혼자 살아남아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두회쯤 뒤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남은 가족 없이 돌아온 그 길이 어땠을지는 진작하기도
4:134 minutes, 13 seconds어렵습니다. 그의 겨울 일본군 진영 안에서는 이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일본 규슈의 한 영주를 따라 의사겸 승려로 종근한 게이라는
4:224 minutes, 22 seconds사람이 일기를 남겼는데 이렇게 [음악] 적었습니다. 일본에서 온갖 상인이 건너왔는데 그 가운데 사람 장사꾼도 있었다. 본진 뒤를
4:304 minutes, 30 seconds따라다니며 남녀 노소를 사들려 새끼줄로 목을 묶어 모으고는 앞으로 몰아세웠다. 걷지 못하면 뒤에서 몽둥이로 몰아치며 때려 달리게 하니
4:384 minutes, 38 seconds지옥의 옥조이 죄인을 다그치는 것이 이러할까 싶었다. 이게 끌려간 조선 사람이 남긴 기록이 [음악] 아니거든요. 끌고 간 쪽 일본 군대를
4:464 minutes, 46 seconds따라온 일본 스님이 자기 눈으로 보고 적은 겁니다. 이걸 쓴 사람이 일본 쪽 스님이었다는게 저는 좀 멈칫했습니다. 같은 편이 봐도 지옥
4:554 minutes, 55 seconds같았다는 얘기니까요. 군대 뒤에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이 따라다녔고 붙잡힌 조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값이 매겨져 팔려 나갔습니다.이
5:045 minutes, 4 seconds사냥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정윤년 이듬의 가을 히데오 씨가 세상을 떠나자 일본군은 서둘러 조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해요.
5:125 minutes, 12 seconds그런데 돌아가는 배에도 조선 사람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남의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싸움을 버린 노량 회전도 바로이 철수하는 일본
5:215 minutes, 21 seconds배들을 막아서는 싸움이었어요. 그 배들 가운데 상당수가 바다를 건너갔고 그 안에 실린 조선 사람들도 함께 일본 땅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5:305 minutes, 30 seconds끌려간 사람이 모두 몇 명이었는지는 기록이 퍼져 있어서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한국 학계는 10만 명 안팎으로 보고 일본 학계는 2만에서
5:395 minutes, 39 seconds3만 명이 넘는다고 봐요. 어느 쪽으로 보든 바다를 건 조선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렀다는 건 분명합니다.
5:455 minutes, 45 seconds그럼 이렇게 목에 줄이 묶여간 사람들은 어디로 갔느냐? 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닙니다. 어떤 사람은 또 한번 팔려서 일본보다 훨씬 먼 바다
5:545 minutes, 54 seconds건너로 갔고 어떤 사람은 손해 가진 기술 때문에 일본 영주들이 일부러 데려갔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일본 사람이 되어 살았습니다. 첫 번째
6:036 minutes, 3 seconds길은 일본의 서쪽 끝 한구 나가사키에서 시작됩니다.
6:086 minutes, 8 seconds나가사키는 그무렵 일본에서 가장 국제적인 한구였습니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커다란 배를 타고 드나들면서 중국 비당과 은을 사고 팔던
6:176 minutes, 17 seconds곳이에요. 그런데이 한구에서 거래된 물건 가운데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6:216 minutes, 21 seconds일본군이 끌고 온 조선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시 포르투카 상인들에게 팔려 나간 거죠. 이렇게 팔린 사람들은 중국 마카오, 말레이반도의
6:296 minutes, 29 seconds말라카, 인도의 고아, 필리핀 마닐라 같은 곳으로 실려갔습니다. 얼마나 팔렸는지 정확한 숫자는 남아 있지 않아요. 다만 전쟁 동안 한해에
6:386 minutes, 38 seconds천명이 넘는 조선 사람이 포르투카 상인에게 [음악] 팔렸다고 보는 연구가 있습니다. 마카오에는 조선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작은 공동체가
6:466 minutes, 46 seconds생겼다는 연구도 있고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남쪽 한구에서 같은 처지의 조선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며 살았던 거죠.
6:526 minutes, 52 seconds사람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값이 크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6:566 minutes, 56 seconds사람값이 시장에서 폭락했다는 말을 이렇게 문장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여기에는 얄구준
7:037 minutes, 3 seconds모순이 하나 있습니다. 히데오시는 전쟁을 일으키기 몇 해 전에 일본 사람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걸 금지하는 문서를 낸 적이 있거든요. [음악]
7:117 minutes, 11 seconds포르투카 상인들이 일본 사람을 사서 해외로 데려가는 걸 맡겠다는 거였어요. 천주교 선교사들을 일본에서 내쫓겠다는 명령을 내리기 바로
7:197 minutes, 19 seconds전날다운 문서였습니다. 서양 상인과 선교사들이 일본 백성을 노예로 사가는 걸 문제 삼은 거죠. 그러니까 일본 사람을 파는 건 안 되는데 조선 사람을 파는 건 막지 않은 셈입니다.
7:307 minutes, 30 seconds자기 [음악] 백성은 지키겠다던 그 사람이 남의 나라 백성이 같은 한고에서 팔려 나가는 건 눈감은 거죠. 저는이 문서 한 장이 그
7:377 minutes, 37 seconds시대일보니 조선 사람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보여주는 거울 같다고 생각해요. 음마전 한국 축구가 사연패를 하며 시상을 하던 장면이
7:457 minutes, 45 seconds떠오르는데 참 씁쓸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람으로 대접받기도 하고 물건으로 팔리기도 했던 겁니다. 그
7:547 minutes, 54 seconds한구에서 조선 사람을 산 유럽인이 직접 남긴 기록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온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라는 사람이에요. 세 개를 한
8:028 minutes, 2 seconds바퀴 돌며 장사를 하고 나중에 그 여정을 책으로 남긴 그는 나가사케에 머물던 무려 조선 사람 다섯 명을 샀다고 적었습니다. 그 값이 다섯
8:118 minutes, 11 seconds명을 다 합쳐서 은화 열두이 핀 남짓이었다고 해요. 다섯 사람을 다 합쳐서 그 값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카를레티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8:198 minutes, 19 seconds않습니다. 그는이 다섯 사람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인도의 고아에 이르렀을 때 풀어 주었다고 적었어요.
8:268 minutes, 26 seconds그리고 그 가운데 한 명은 자기 고향 이탈리아까지 데려갔습니다. 그는 그 사람에 대해 이렇게 썼어요. 지금은 로마에 있고 안토니오라고 불린다.
8:348 minutes, 34 seconds유럽 땅을 밟은 조선 사람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 가운데 하나입니다.
8:388 minutes, 38 seconds나머지네 사람이 고아에서 풀려난 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요. 조선의 어느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을 텐데 전쟁에
8:478 minutes, 47 seconds붙잡히고 팔리고 풀려나서 로마의 거리를 걷게 된 거예요.이 안토니오를 두고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8:538 minutes, 53 seconds벨기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그림 가운데 한복처럼 [음악]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를 그린 소묘가 있는데이 남자가 바로 안토니오라는 이야기예요.
9:029 minutes, 2 seconds한국에서도 꽤 널리 알려졌죠. 물론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오차림도 그렇고 시기도 얼추 맞아 떨어지니까요. 근데 그림을 가지고
9:099 minutes, 9 seconds있는 미국 개술관도이 사람이 저선 사람이라고 못 박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에는이 사람이 중국 상인의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까지 나왔어요.
9:189 minutes, 18 seconds이탈리아 어느 마을에 코리아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이 그 후손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도 근거가 약한 전설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일수록
9:279 minutes, 27 seconds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봐요. 진짜 기록하나가 이미 충분히 [음악] 무겁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두고 유럽 교회 안에서도 생각이 갈렸습니다.
9:359 minutes, 35 seconds나가사키에 있던 세르케이라 주교는 조선 사람을 사는 자는 교회에서 내쫓겠다고 경고했어요. 그리고 일본인 신자들에게 조선인 포로를 대사서 풀어
9:449 minutes, 44 seconds주라고 했습니다. 스페인의 한 신학자는이 매매가 합법이라는 판단을 내놓았어요. 같은 교회 안에서 한쪽은 막으려 했고 한쪽은 괜찮다고 한
9:539 minutes, 53 seconds겁니다. 그 사이에서 조선 사람들은 계속 배에 실려 나갔죠. 먼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긴 했습니다. 진주삼비 조 완벽은 일본에
10:0210 minutes, 2 seconds끌려간 뒤 일본 상인의 배를 타고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까지 세 번이나 [음악] 다녀왔어요. 그리고 끝내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10:1010 minutes, 10 seconds당대의 학자 이수광이 따로 글로 남길만큼 신기한 일로 여겨졌어요.
10:1410 minutes, 14 seconds조선 사람이 베트남 땅을 밟고 돌아왔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람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기록에 이름이나 사연이 남은
10:2310 minutes, 23 seconds사람은 아주 드니다. 끌려간 [음악] 사람 대부분은 일본 어느 영주의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성을 쌓거나 남의 집 부엌에서 일하며 이름없이
10:3110 minutes, 31 seconds살다 갔어요. 주인이 바뀔 때마다 다른 집으로 넘겨지기도 했고요.
10:3510 minutes, 35 seconds오늘이 영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우연히 기록이 남은 몇 사람일 뿐입니다. 그 뒤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훨씬 많은
10:4410 minutes, 44 seconds사람들이서 있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이렇게 팔려 나간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일본 영주들이 팔지 않고 [음악] 일부러 곁에 둔 사람들도
10:5210 minutes, 52 seconds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영주들이 탐내는 무언가가 있었거든요.
10:5810 minutes, 58 seconds일본 영주들이 가장 탐낸 건 흙을 다루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무렵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는 다도가 무사들
11:0611 minutes, 6 seconds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어요. 좋은 차사발 하나가 성하나값에 만모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그런데 일본은 아직 단단하고 하얀 그릇을 구원내는
11:1411 minutes, 14 seconds기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조선 도공들은 영주들 눈에 귀한 보물처럼 보였을 거예요. 재미있는 건 일본 무사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긴 첫사발
11:2311 minutes, 23 seconds가운데 조선에서 건너간 그릇이 많았다는 겁니다. 조선에서는 막쓰던 평범한 사발이 일본에 건너가서는 최고의 차사발로 대접받았어요. 그런
11:3211 minutes, 32 seconds조선 사발 가운데 하나는 지금 일본 국보로 지정된 교토의 한절에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무심히 빚던
11:3911 minutes, 39 seconds그릇이 바다 건너에서는 보물이 된 거죠. 그 그릇을 만들던 사람들을 직접 데려가고 싶어 한 영주들의 마음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11:4711 minutes, 47 seconds일본에서도이 전쟁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만 이건 [음악] 전쟁이 끈다고 규슈 곳곳에 감마가 늘어난 결과를 두고 붙인 별명이에요.
11:5611 minutes, 56 seconds도공을 데려가려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은 아닙니다.이 부분은 오해가 많아서 짓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12:0212 minutes, 2 seconds그 도공들 가운데 가장 이름이 높은 사람이 이산평입니다. 그는 사가의 영주 나베시마군에게 끌려가 처음에는
12:0912 minutes, 9 seconds한 가신의 땅에서 지내다가 지금의 아리타 지역에 자리를 잡았어요.
12:1312 minutes, 13 seconds일본에서는 가나가의 삼베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아리타 근처 이즈미야마라는 산에서 하얀 자기를 구울 수 있는 좋은 돌을
12:2212 minutes, 22 seconds찾아냅니다.이 돌을 캐서 빠으면 백자의 원료가 되는 거죠. 이산평은이 원료로 아리타를 자기를 굽는 마을로 키워냈습니다. 그보다 앞서 근처
12:3012 minutes, 30 seconds감마에서 이미 자기를 구었다는 학설도 있어서 그를 일본 최초에 자기를 만든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2:3712 minutes, 37 seconds그래도 원료를 찾아내 한 마을의 산업으로 키운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어요. 그는 끌려온 뒤 60년 가까이 아리타에서 그릇을 구우며 살다가 그 땅에 묻였습니다.
12:4712 minutes, 47 seconds그렇게 아리타에서 구운 자기는 다시 바다를 건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이 그릇에 사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과 중동으로 대량
12:5612 minutes, 56 seconds수출되기 시작했어요. 한 번에 수만 개 단위로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음악]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궁전 장식장에 아리타 자기가
13:0413 minutes, 4 seconds올라갔죠. 끌려간 사람의 손에서 나온 그릇이 끌려간 사람들이 팔려 나가던 그 바닷길을 따라 유럽까지 간 겁니다. 한쪽 배에는 사람이 실렸고
13:1213 minutes, 12 seconds다른 쪽 배에는 그 사람들이 빚은 그릇이 실렸던 거예요. 남원에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유년에 남원성이 무너졌을 때 사스마의 영주
13:2113 minutes, 21 seconds심마주군이 남 사람명 남짓을 붙잡아 갔어요. 그 가운데 심당길이라는 도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규슈 남쪽
13:2813 minutes, 28 seconds90키노라는 바닷가에 내렸다가 몇테 뒤 나의시로가와라는 마을로 옮겨가 자리를 잡았어요. 그리고 마을에 당군을 모시는 사당을 세웁니다.
13:3613 minutes, 36 seconds옥상궁이라는 이름이었어요. 남의 나라 땅 한가운데 우리 시조를 모시는 사당을 [음악] 세운 거죠.이 이 마을 사람들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조선마을 쓰고 조선 옷을 입었습니다.
13:4613 minutes, 46 seconds일본이 근대 국가로 바뀌는 메이지 시대까지 그 풍속을 지켰다고 해요.
13:5013 minutes, 50 seconds사스마의 영주가이 마을을 보호하며 도자기를 굽게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혼슈 서쪽 끝 하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13:5813 minutes, 58 seconds모리가문이 데려간 조선 도공 이경은 나중에 무사대우를 [음악] 받고 새 이름을 얻었는데 그 이름에 고려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일본
14:0614 minutes, 6 seconds이름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어디서 갔는지는 이름 속에 남긴 셈이죠.
14:1014 minutes, 10 seconds규슈 후쿠호가에 다카토리 감아도 구로다가문이 데려간 조선도공이 [음악] 연곳입니다. 하기의 그릇은 지금도 일본 다도에서 손꼽히는
14:1814 minutes, 18 seconds차그릇으로 대접받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이름난 가마 가운데 상당수가 이렇게 조선 사람의 손에서 시작됐어요. 일본 사람들이 귀하게
14:2614 minutes, 26 seconds여기는 그릇의 밑바닥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손잡국이 남아 있는 셈이죠. [음악] 흙만 데려간게 아니었습니다.
14:3514 minutes, 35 seconds글도 데려갔어요. 앞에서 아이들을 바다에서 잃은 선비 강황.
14:3914 minutes, 39 seconds기억하시죠? 그는 처음에 시코의 오즈라는 곳에 갇혀 있다가 교토 근처 후심미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후지와라 세이카라는 학자를 만나요.
14:4914 minutes, 49 seconds세이카는 원래 승녀였는데 유학에 깊이 빠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어요. 세이카를 따르던
14:5614 minutes, 56 seconds아카마스 히로미치라는 영주도이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강황은 포로신 분이었지만 세이카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스승 같은 존재였던 거죠.
15:0415 minutes, 4 seconds강황은 세이카와 함께 유학의 기본 경전인 사서 오경을 일본 사람들이 읽기 좋게 풀어쓰는 작업을 했습니다.
15:1115 minutes, 11 seconds한문에 일본식 읽기 표시를 달아주는 일이었어요.이 작업이 일본에서 성리하기 자리를 잡는데 한 축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두 사람이
15:1915 minutes, 19 seconds주고받은 글을 모은 책이 지금도 일본 덴니 대학에 남아 있어요. 아이들을 바다에 잃고 끌려온 포로가 끌고 간 나라의 한문에 뿌리를 내려준
15:2815 minutes, 28 seconds셈입니다. 비슷한 길을 간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이진영이라는 선비는 일찍 끌려가 일본에서 학문을 익혔고 훗날 기슈 지역 영주의 학문 스승이
15:3615 minutes, 36 seconds됐어요. 기슈의 영주는 도쿠가와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의 선비가 일본 최고 권력문의 아이를 가르친 거죠.
15:4315 minutes, 43 seconds칼로 끌려간 사람이 붓으로 그 나라를 가르치는 자리에 선 겁니다. 그의 아들도 대를 이어 기슈의 유학자가 됐어요. 아버지가 끌려간 땅에서 아들이 학문의 집안을 일군셈이죠.
15:5315 minutes, 53 seconds강황은 3년 가까이 일본에 붙잡혀 있다가 끝내 함께 잡혀온 일행 30서른 여명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붙잡혀 있는
16:0116 minutes, 1 second동안에도 일본의 지리와 군사, 영주들의 사정을 [음악] 몰래 적어 조선 조정에 보내려 했었어요. 포로 신분으로 적국을 살핀
16:0916 minutes, 9 seconds첩보 보고서였던 셈이죠. 돌아온 뒤에는이 글들과 함께 일본에서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가 그 기록에 처음 붙인 제목은
16:1716 minutes, 17 seconds건거록이었습니다. 죄인을 씻는 수레라는 뜻이에요. 살아돌아온 사람이 자기록에 죄인의 수레라는 이름을 붙인 겁니다.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16:2616 minutes, 26 seconds한참 뒤 제자가 펴내면서 간양녹록으로 이름이 바뀌어요. 흉로에 붙잡혀 양을 치면서도 절개를 지켰다는 옛 중국
16:3316 minutes, 33 seconds사람 소무의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강항은 돌아왔습니다.
16:3716 minutes, 37 seconds하지만 돌아오지 않고 그 땅에서 아예 일본 사람이 되어 살아간 이들도 많았어요.
16:4416 minutes, 44 seconds세 번째 길을 걸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대부분 아주 어린 나이에 끌려갔다는 겁니다.
16:5016 minutes, 50 seconds어른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고향 말과 기억을 붙들고 있지만 아이들은 낯선 땅의 말과 풍습을 스펀지처럼
16:5716 minutes, 57 seconds빨아들이거든요. 그래서 어려서 끌려간 아이들일수록 일본 사회 깊숙히 섞여들었고 그 가운데 몇몇은 일본 사람들도 놀랄만큼 높은 자리에
17:0517 minutes, 5 seconds올랐습니다. 일곱살에 끌려간 김여철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7:0917 minutes, 9 seconds임진년 전쟁 때 오키타 히데이에라는 일본 장소의 군대에 붙잡혔어요.
17:1417 minutes, 14 seconds오키타는 히데요 씨가 아끼던 젊은 영주였는데이 아이를 데려가 자기 아내에게 맡깁니다. 아내는 히데오시의 양였던 고이메라는 여인이었어요.
17:2317 minutes, 23 seconds아이는 그 집에서 자라다가 다시 가가 지역을 다스리던 마에다 가문의 여인 손에 맡겨집니다. 조선 아이가 일본 최고 권력자의 집안을 차례로 거치며
17:3217 minutes, 32 seconds자란 거죠.이 이 아이는 자라서 와키타라라는 무사 집안의 사위가 됩니다. 이름도 와키타 나오타로 바꿨어요. 그리고 일본 전국 시대의
17:4017 minutes, 40 seconds마지막 큰 싸움이었던 오사카 전투에 나가 공을 세웁니다. 그 덕분에 노봉이 크게 늘었고 가가의 중심도시 가나자와 시내 행정을 맞는 마치부교라는 자리에까지 올라요.
17:5117 minutes, 51 seconds우리로 치면 시장쯤 되는 자리입니다.
17:5317 minutes, 53 seconds일본 전통 연작인 낸도 뛰어났고 지금도 가나자와에 남아 있는 정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서 끌려간 아이가 일본 무사 사회 한가운데에서
18:0218 minutes, 2 seconds출세를 한 거예요. 그가 공을 세운 오사카 전투가 어떤 싸움이었는지 보면 좀 묘한 기분이 듭니다.이 싸움은 도쿠가와 이에스가 히데오시의 아들을
18:1018 minutes, 10 seconds무너뜨린 싸움이었거든요. 조선을 쳐들어와이 아이를 끌고 가게 만든 바로 그 히데오시의 집안이이 싸움으로 끝장이 납니다. 그리고 그 싸움터에
18:1918 minutes, 19 seconds도크가와 편 마이다 가문의 무사로 나선 사람이 그 전쟁에 끌려온 조선 소년이었던 거죠. 역사가 참 기묘하게 돌아간 셈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눈길를 끄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18:3018 minutes, 30 seconds평생 일본 이름으로 살던 그가 말년에 자기 원래 이름인 여철, 여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18:3818 minutes, 38 seconds않습니다. 저는 이걸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함부로 단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른이 넘도록 일본 사람으로 산 사람이 마지막에 조선에서
18:4618 minutes, 46 seconds받은 이름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홍호현이라는 소년도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진주 성사이
18:5418 minutes, 54 seconds벌어지던 무렵 경상도 산청 근처에서 사과의 영주 나베시마군에게 붙잡혔어요. 12살이었습니다. 그는 교토의 큰 절들에서 공부를 하며
19:0319 minutes, 3 seconds글씨와 학문을 익혔고 이름난 서해가 되어 사가의 영주 나베시마 가스시계의 곁을 지켰어요. 영주가 가장 믿는
19:1019 minutes, 10 seconds측근이 된 거죠. 그리고 말년에 고향에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길을 떠났다가 영지 경계에서 다시 불려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9:1819 minutes, 18 seconds이건 기록이라기보다 전에 오는 이야기라서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요.
19:2219 minutes, 22 seconds그래도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오래 전해 왔다는 것 자체가 그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마지막도 일본
19:3019 minutes, 30 seconds부사의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끌려간지 예수쯤 지난 어느 봄 죽은 나베시마 가스 시계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른 여섯살이 된 홍오여는 사과의
19:3919 minutes, 39 seconds아미다지라는 절에서 붓을 들어 글자 하나를 크게 써요. 참을 인.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참으면 마음에 보배가
19:4719 minutes, 47 seconds되고 참지 못하면 [음악] 몸에 재앙이 된다. 그리고 죽은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이 글씨가 지금 사가연의 문화재로 지정되
19:5519 minutes, 55 seconds있는 그 글씨예요. 죽은이 세상을 떠나면 가까운 가신이 뒤따라 목숨을 끊는 걸 순사라고 하는데 그무렵 일본
20:0220 minutes, 2 seconds무사 사회에서는 이걸 충성의 진표처럼 여겼어요. 홍우연은 그 길을 택했습니다. 여태 뒤 막부는이 순사를 법으로 금지하게 되는데요. 그러니
20:1120 minutes, 11 seconds그는이 오래된 풍습의 거의 끝자락에서 주군을 따라간 셈입니다. 조선 아이로 태어나 이본 무사의 방식으로 생을 마친 거죠. 여인들의 길도
20:1920 minutes, 19 seconds있었습니다. 오타 줄리아라고 불린 조선 여인이 있어요. 어린 나이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에 붙잡혀 일본으로 [음악] 갔습니다. 고니시는
20:2720 minutes, 27 seconds천주교를 믿던 영주였는데 그 집안에서 자한 소녀도 세례를 받고 줄리아라는 이름을 얻었어요. 그녀는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에서 시중을
20:3620 minutes, 36 seconds드는 시녀로 일하게 됩니다. 조선에서 끌려온 소녀가 일본 최고 권력자의 성안에서 살게 된 거죠. 그런데 이에야스가 천주교를 금지하면서 그녀의
20:4420 minutes, 44 seconds삶이 뒤집힙니다. 신앙을 버리라는 명령을 거부한 줄리아는 도쿄 남쪽 바다의 외딴 섬들로 차례차례 유배를 가요. 마지막에 간 섬이 고주시마라는
20:5320 minutes, 53 seconds작은 섬이었습니다. 도쿄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닿는 바다 한가운데 화산 섬이에요.이 섬 사람들은 그 뒤로 400년 가까이 섬 안에 있는
21:0121 minutes, 1 second돌탑파나를 줄리아의 무덤이라 여기며 모셔왔어요. 지금도 해마다 줄리아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한 때는 그
21:0821 minutes, 8 seconds무덤의 흙을 한국 천주교 성지로 옮겨와 모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최근 연구를 보면 그녀는 그 섬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유베에서 풀려나
21:1721 minutes, 17 seconds나가사키로 옮겨갔고 오사카에서 그녀를 돕고 있다는 한 신부의 편지가 그녀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에요. 섬 사람들이
21:2421 minutes, 24 seconds정삼껏 모셔온 무덤에 정작 그녀는 없었던 셈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 섬 사람들의 마음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21:3121 minutes, 31 seconds않아요. 낯선 섬에 홀로 끌려온 조선 여인은 400년 동안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니까요.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조선 사람도 있었습니다.
21:3921 minutes, 39 seconds권 빈첸시오라는 사람은 어려서 고니시군에게 붙잡혀 일본에 왔고 13살의 세례를 받아 천주교 전도사가
21:4721 minutes, 47 seconds됐어요. 그리고 천주교 박해가 거세지던 때 나가사키에서 불에 타 순교했습니다. 훗날 로마 교황청은 그를 복자로 올렸어요. 그와 함께
21:5521 minutes, 55 seconds복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조선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21:5921 minutes, 59 seconds이렇게 일본 땅에 남아 저마다의 삶을 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조정은 이들을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22:0822 minutes, 8 seconds그런데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장면들이 나옵니다.
22:1522 minutes, 15 seconds전쟁이 끝나고 몇 뒤 사명 대사가 바다를 건 의병을 이끌던 그 스님이 그는 교토처 후심미성에서 새로 일본의
22:2322 minutes, 23 seconds실권을 진 도쿠가와 이에아스를 만나 단판해 버렸고 끌려간 조선 사람 3천여 명을 데려왔다고 전해집니다.
22:3022 minutes, 30 seconds그 뒤로도 조선은 새 차례나 일본의 사신을 보냈어요.이 이 사신단 이름에는 데려온다는 뜻에 쇠환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끌려간 사람들을
22:3822 minutes, 38 seconds데려오는게 사신단의 중요한 임무였던 거죠. 조선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나라를 짓밟은 원수의 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거니까요.
22:4722 minutes, 47 seconds그래도 끌려간 백성들을 데려오고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게 일본의 성내를 살피려면 길을 다시 터야 했습니다.
22:5422 minutes, 54 seconds일본 쪽에서도 새로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가문이 조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포로를 돌려보내는 일이 두 나라가 다시 말을
23:0223 minutes, 2 seconds트는 조건처럼 된 겁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신길은 나중에 조선 통신사로 이어집니다. 조선 사신들이 에독까지
23:0923 minutes, 9 seconds가는 길마다 일본 사람들이 몰려나와 글씨와 그림을 받아가던 그 통신사여.
23:1423 minutes, 14 seconds그 화려한 문화교류의 출발점에는 끌려간 백성들을 찾아나선 쓸쓸한 사신 길이 있었던 셈이에요. 첫 번째 사신단이 일본을 떠나던 날 오사카
23:2323 minutes, 23 seconds포구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신 경섬이 남긴 해사록에 나오는 장면이에요. 귀국하는 배가 떠나려는데 일본인 남편을 속이고 몰래 빠져나와
23:3223 minutes, 32 seconds사신행렬로 뛰어든 여인도 있었고 칼을 쥐고 아내를 막아서는 일본인 남편도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수십명이 그렇게 폭으로 쏟아져 나왔다고 해요.
23:4123 minutes, 41 seconds그렇게 애를 써서 그에 데려온 사람이 10000여명이었습니다.
23:4523 minutes, 45 seconds경섬은 이걸 두고 아홉 마리 소의 털 가운데 하나를 뽑은 것과 같다고 한탄했어요. 끌려간 사람에 비하면 너무나 적었다는 거죠. 왜 그렇게
23:5323 minutes, 53 seconds적었을까요? 경은 두 가지를 적었습니다. 일본인 주인들이 앞다 포로를 숨겼다는 거. 그러니까 막보가
24:0024 minutes돌려보내라고 해도 각 영주와 주인들이 쉽게 내놓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포로들도 이미 그곳에 사는 것을 편하게 여기게 됐대다는 것이에요. 그
24:0924 minutes, 9 seconds뒤로 사신단이 갈 때마다 데려오는 사람은 더 줄어듭니다. 두 번째 사신단이 데려온 사람은 첫 번째 1/4도 안 됐고 세 번째는 그
24:1724 minutes, 17 seconds절반에도 못 미쳤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끌려간 사람들은 그 땅에 뿌리를 내렸고 고향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사명대사가 데려온 사람과
24:2624 minutes, 26 seconds세차례 사신단이 데려온 사람 스스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까지 모두 합쳐도 돌아온 사람은 6,에서 7,명
24:3324 minutes, 33 seconds남짓으로 봅니다. 한국 학계 추정대로라면 열에 하나도 돌아오지 못한 셈이고 일본 학계에 적은 추정으로 봐도네 명 가운데 한 명
24:4124 minutes, 41 seconds골밖에 안 돼요. 두 번째 사신단의 기록에는 그 사정이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사신 이경직이 남긴 부상록이에요. 이경직은 끌려간
24:4924 minutes, 49 seconds사람들을 만나보고 나이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걸 알아니다. 15살이 넘어 끌려온 사람들은 돌아가자는 말에 먼저
24:5724 minutes, 57 seconds이렇게 물었어요. 지금 조선 살림은 어떻습니까? 돌아가서 먹고 살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진 거죠. 반면 열살 전에 끌려온 사람들은 말투도 몸짓도
25:0525 minutes, 5 seconds[음악] 이미 완전히 일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고향마을 잊어버린 거예요. 그 가운데 창원 출신 김개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5:1325 minutes, 13 seconds12세 살에 끌려와서 조선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해요. 사신이 돌아가자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20여년 동안 은혜를 입은 주인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25:2325 minutes, 23 seconds끌려온 아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 붙잡아온 사람이 은인이 되어 있었던 거죠. 20년 은혜라는 말에서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남 선비의
25:3125 minutes, 31 seconds아들 길은 13살에 끌려와 부잣집 상인의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돌아가자는 말 앞에서 쉽게 답하지 못했어요.
25:4025 minutes, 40 seconds사람들을 붙잡아 두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이 본인 주인들은 포로들에게 이렇게 겁을 줬어요.
25:4525 minutes, 45 seconds조선에 돌아가면 죽임을 당하거나 외딴 섬으로 보내진다. 사신들이 너희를 데려가서 자기 종으로 부릴 거다.
25:5225 minutes, 52 seconds주인이 숨기니까 못 오고 못 오는 사이 일본에서 가정을 꾸리고 가정이 생기니까 이제는 안 오게 되는 거예요. 세월이 그렇게 사람을 붙잡아
26:0026 minutes두었습니다. 세 번째 사신다니 에도에 머물던 겨울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신 강중이 남긴 동사록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전라도
26:0826 minutes, 8 seconds한평 양반 최홍의 아내 춘이라는 여인이 두 아들을 데리고 사신을 찾아옵니다. 그녀는 고향이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아들 순위가
26:1726 minutes, 17 seconds문제였습니다. 순는 일본에서 일본인 아내를 얻어 아이까지 있었고 갚아야 할 빛도지고 있었거든요. 어머니는 아데고 함께 가고 싶은데 아들은
26:2526 minutes, 25 seconds아내와 아이와 빚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던 거죠.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붙들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보다못한 사신들이 쌀을내어 빚을 갚게 해줬고
26:3426 minutes, 34 seconds순위는 나중에 뒤따라가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의 사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돌아가기를
26:4226 minutes, 42 seconds원하는 자가 전혀 없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도 형이 보낸 편지를 받고도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신은 남은
26:5126 minutes, 51 seconds사람들을 두고 오랑캐풍속에 물들었다고 나무었습니다. 데리러 간 사람의 눈길부터가 차가웠던 거죠. 그럼 돌아온 사람들은 어떻게 됐느냐?
26:5926 minutes, 59 seconds스스로 목숨을 걸고 탈출해 온 사람들에게는 조정이 부역을 면해 주는 등 나름의 대우를 했습니다. 남원에서 붙잡혔던 노인이라는 선비는 중국배의
27:0727 minutes, 7 seconds몸을 숨겨 일본을 빠져나온 뒤 중국 푸쟁과 베이징을 거쳐 먼기를 돌아냥까지 돌아왔고 그가 남긴 일기는
27:1427 minutes, 14 seconds지금 보물로 지정돼 있어요. 그런데 사신이 한꺼번에 데려온 사람들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사신들이
27:2327 minutes, 23 seconds데려온 사람들을 부상 근처에 내려놓고 그냥 떠나 버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향까지 가는 길조차 막막했던 거죠. 더 아픈 일도
27:3027 minutes, 30 seconds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박수영이라는 사람은 적에게부터 나라를 배반했다는 죄로 처형됐어요.
27:3627 minutes, 36 seconds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반역자로 몰린 겁니다. 좀 씁쓸합니다.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살아남으려고 일본군 밑에서 일한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27:4527 minutes, 45 seconds그 사정을 조선은 너그럽게 봐주지 않았습니다. 유교의 저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회에서 적에게 붙잡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흠이
27:5327 minutes, 53 seconds됐거든요. 돌아온 사람들은 그런 눈길 속에서 차별과 멸시를 견뎌야 했습니다. 방황이 자기 기록에 죄인의 수레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
28:0128 minutes, 1 second있어요. 붙잡혔던 것도 살아서 돌아온 것도 부끄러움이 되는 사회였던 거죠.
28:0628 minutes, 6 seconds그 시대 기준으로 저리를 따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28:1028 minutes, 10 seconds물론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으니까요. 근데 끌려간 사람 대부분이 누구였는지 한번 생각해
28:1928 minutes, 19 seconds보시면 칼 한번 잡아본 적 없는 농민과 여인과 아이들이었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저리를 묻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28:2728 minutes, 27 seconds그래서 열이 남았습니다. 일본이 놓아주지 않은 사람, 스스로 남기로 한 사람, 돌아가도 설자리가 없었던 사람이 뒤섞여서요. 붙잡아 두려는 나라와 데려와도 반기지 않는 나라.
28:3828 minutes, 38 seconds그 사이에서 수많 사람들이 바다 건너편에 남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흔적은 지금도 일본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28:4828 minutes, 48 seconds일본 여행 가서 아리타 그릇 한 번쯤 보신 분들 계실 거예요. 그 아리타에 가면 도잔 신사라는 신사가
28:5528 minutes, 55 seconds있습니다.이 신사에는 사가의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계와 함께 2, 3평이 신으로 모셔져 있어요. 신사 입구에는
29:0229 minutes, 2 seconds하얀 자기로 만든 도리이가서 있습니다. 에이지 시대에 아리타 사람들이 직접 구워 세운 거예요.
29:0829 minutes, 8 seconds보통 도리인이는 나무나 돌로 만드는데 여기는 도자기로 만든 거죠. 해마다 5월 4일이면 2, 3평을 도자기에
29:1529 minutes, 15 seconds시조로 기리는 제사가 열려요. 신사 뒤쪽 산 위에는 2, 3평을 기리는 커다란 비속도서 있습니다. 아리타 자기 300년을 맞아 마을 사람들이
29:2429 minutes, 24 seconds세운 비석이에요. 그 비석 앞에 서면 아리타 마을과 굴뚝들이 내려다 보인다고 합니다. 아리타에서는 해마다 봄에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도
29:3329 minutes, 33 seconds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2, 3평의 후손는 지금 14대째 대를 이어 그 이름을 지키고 있어요. 끌려간 도공 한 사람이
29:4129 minutes, 41 seconds일으킨 마을이 400년이 지난 지금 [음악] 일본에서 성고피는 도자기 마을이 된 겁니다. 남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던 나의 시로가와 지금의 미아마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29:5129 minutes, 51 seconds[음악] 당군을 모셨던 옥상궁은 옥산 신사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그 자리에 있어요. 나중에 모시는 신이 도자기의
29:5829 minutes, 58 seconds신으로 바뀌긴 했지만 남은 사람들이 세운 사당이 400년 동안 사라지지 않은 거죠. 심당길의 후손이 대를 이어온 심수관 감아도 지금 문을 열고
30:0730 minutes, 7 seconds손님을 맞습니다. 그 가운데 14대 심수관은 한국과 특히 인연이 깊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일본 사람으로서는
30:1430 minutes, 14 seconds처음으로 대한민국 명예 총영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조상이 떠나온지 400년이 되던 남원에서 부시를
30:2130 minutes, 21 seconds가져가에 옮겨붙였어요. 남원의 불로 사스마의 그릇을 구운 겁니다. 그 해 미야마에서는 조선 도공들이 건너온지
30:2930 minutes, 29 seconds400년을 기리는 큰 행사가 열렸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어요.
30:3430 minutes, 34 seconds일본의 이름난 소설과 시바 탈로는 그를 모델로 고향을 입기 어렵습니다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30:4030 minutes, 40 seconds그는 몇 해 전 아은이 넘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15대가 그 이름을 입고 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전혀 다른 길을 간 후손도
30:4930 minutes, 49 seconds있었습니다. 박무덕이라는 아이가이 마을에서 태어났어요.네 네살 때 아버지가 무사신분을 사서 집안의 성을 일본식인 도고로 바꿉니다. 그 아이가
30:5830 minutes, 58 seconds자라서 도고 시계놀이라는 일본 외모 대신이 [음악] 돼요. 그것도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때 외모 대신이었고 전쟁을 끝낼 때도 다시 외모
31:0631 minutes, 6 seconds대신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A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아 금고 20년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병으로
31:1431 minutes, 14 seconds세상을 떠났어요.이 사람을 두고 조선의 후손이 일본의 전쟁을 이끌었다며 손가락질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물론 그렇게 보실 수
31:2231 minutes, 22 seconds있습니다. 전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음악] 자리에 있었던 건 분명하니까요. 근데 한번 생각해 보시면이 사람의 조상은 원해서 그
31:2931 minutes, 29 seconds마을에 간게 아니었거든요.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이 300년 가까이 일본 땅에서 살다 보니 그 나라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겁니다. 한
31:3731 minutes, 37 seconds마을에서 한 사람은 남원의 부씨를 가져가 그릇을 굽고 한 사람은 일본의 전쟁을 지휘하는 자리에 섰어요.
31:4431 minutes, 44 seconds저는이 [음악] 두 사람을 미담이나 비난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기보다 끌려간 사람들의 400년이 얼마나 여러 갈래로 흘러갔는지를 보여주는
31:5231 minutes, 52 seconds장면으로 보고 싶습니다. 홍호연의 그씨도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있어요.
31:5631 minutes, 56 seconds그가 남긴 글씨가 사가연 문화재로 지정되던네. [음악] 그 유무이 잠시 한국에 와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12살에 끌려간 아이가
32:0532 minutes, 5 seconds몸으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그씨로만 400년 만에 구양땅을 밟은 셈이죠. 끌려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곳은 일본에 더 많습니다.
32:1332 minutes, 13 seconds고즈시마에서는 지금도 줄리아 축제가 열리고 강황이 갇혀 있던 오지에는 그를 길이는 비석이 세워져 있어요.
32:2032 minutes, 20 seconds그 비석은 오즈 씨가 직접 세운 겁니다. 조선비가이 고장에서 일본 학문의 씨앗을 뿌렸다는 걸 자랑으로
32:2732 minutes, 27 seconds여긴 거죠. 아리타와 미아마의 신사와 가마도 마찬가지고요. 일본 사람들이 자기 마을의 뿌리로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이들이 떠나온
32:3632 minutes, 36 seconds곳은 어떨까요? 남원, 영광, 산청, 진주, 창원, 한평이 사람들의 고향 이름입니다. 물론 우리 쪽에도 흔적은
32:4432 minutes, 44 seconds있어요. 강항의 고향 영광에는 [음악] 그를 모신 서원이 있고 남원에는 남원 성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 있습니다.
32:5232 minutes, 52 seconds다만 그 기억은 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 절개를 지킨 사람을 향해 있어요.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농민과 아이들. 그 땅에서 일본
33:0133 minutes, 1 second사람으로 살다 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보면 마음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저는
33:0833 minutes, 8 seconds개인적으로는 누구 타시냐를 따지는 것보다 누가이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느냐가 더 아프다고 생각을 합니다.
33:1533 minutes, 15 seconds끌려간 쪽의 고향밥보다 끌고 간 쪽의 마을이 이들의 이름을 더 오래 불러왔다는 게요.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몇
33:2333 minutes, 23 seconds해 전 한 방송사가 홍연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다뤘고 그 영상은 요즘 다시 올라와서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고
33:3033 minutes, 30 seconds있습니다. 남원에서는 심수강 가문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요. 400년 전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33:3733 minutes, 37 seconds이제야 조금씩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는 셈입니다. 끌려간 사람들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그릇과 글과 이름 속에 섞여 남았을 뿐이죠.
33:4733 minutes, 47 seconds그럼 지금까지 세상 놀란 토끼 세월토 바피디였습니다.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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