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1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 요시미 슌야 | 알라딘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 요시미 슌야 | 알라딘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미 슌야 (지은이),서의동 (옮긴이)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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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원인을 파고든 '일본 최신사정 설명서'. 일본의 헤이세이(1989~2019) 시대는 두 차례의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 외에도 정치개혁 실험이 좌절하고 샤프, 도시바 등 기업들도 글로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속속 무너지던 '잃어버린 30년'이었다.

저자는 헤이세이의 액상화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쇼와 시대에 진행된 지반약화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사적 대전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지만, 일본은 오일쇼크를 무난히 극복한 데 따른 안도감에 사로잡혀 변화를 직시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런 안도감이 1980년대 경제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가져왔고, 1990년대 이후 전개된 글로벌화의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를 초래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목차


머리글 '헤이세이'라는 실패――'잃어버린 30년'이란 무엇인가
실패의 박물관 / '헤이세이'라는 실패 / 정치의 좌절, 회복없는 소자화(小子化) / '쇼와'의 반전 / 네 가지 쇼크 /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제1장 몰락하는 기업국가――은행의 실패, 가전의 실패
벼랑 앞에서 우쭐거리던 일본 / 2년 반 지연된 금리인상 / 일본호, 모로 쓰러지다 / 야마이치증권 '자진폐업'의 충격 / 야마이치증권 파탄을 잉태한 쇼와사 / 반도체시장에서의 일본의 참패 / '가전'의 저주와 신화의 종말 / 도시바의 실패를 검증한다 / 카를로스 곤 신화에 취한 일본 사회

제2장 포스트 전후정치의 환멸――'개혁'이라는 포퓰리즘
버블 속의 액상화――리쿠르트 사건 / 정치극장의 시스템을 바꾸다――소선거구제 도입 / 일본신당 붐이 남긴 것 / 선거제도 개혁의 전말――개혁파와 수구파 / 노조의 변절 사회당의 곤경 / 자멸로 치닫는 사회당의 혼란 / 자민당을 때려부순다――고이즈미 극장의 작동방식 /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정치주도' / 국가전략국 구상의 오류와 전말 / 아베 정권――액상화하는 정 · 관계와 '관저(官邸)주도'

제3장 쇼크 속에서 변모하는 일본――사회의 연속과 불연속
'실패'와 '쇼크' 사이 / 두 차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 옴진리교 사건과 미디어의 허구 / 헤이세이 첫해에 상실한 자아 / 확대되는 격차――미래에 절망하는 청년들 / 격차의 제도화, 계급사회로 가는 헤이세이 일본 / 멈출 줄 모르는 초소자고령화 / 소멸하는 지방――일본의 지속불가능성

제4장 허구화하는 아이덴티티――'아메리카닛폰'의 행방
'종말'의 예감 / '부해(腐海)'와 '초능력' / '미국'이라는 타자=자아 / 허구로서의 '일본' / 아무로 나미에와 여성들, 그리고 오키나와 / 절정 속의 주역교체――두명의 여성 스타 / 10년 후의 절정과 붕괴――1989년과 1998년 / 코스프레하는 자아 퍼포먼스 / 1990년대 말의 전환――환경화하는 인터넷 세계 / 자폐하는 넷사회

마침글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시대'――잃어버린 반세기의 서곡
'헤이세이'를 시대로서 생각한다 / 다시, 올림픽으로 향하다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가 / 후텐마기지 이전과 오키나와의 분노 / 오키나와에서 헤이세이 일본을 바라보다 / 발흥하는 아시아 홀로
뒤처진 일본 / '잃어버린 30년'의 인구학적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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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0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헤이세이’라는 실패에 관한 일종의 박물관을, 한 권의 책 속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헤이세이’ 30년간은 한마디로 ‘실패의 시대’였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실패’가 되풀이됐다. 하지만, ‘실패’들을 열거하기는 쉬워도 그들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있었고, 우리들은 왜 30년씩이나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가를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헤이세이의 ‘실패’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필연이었던가. 접기
P. 51 이미 1980년대 말, 아시아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미일을 축으로 발전해온 일본의 전후 산업체제를, 아시아와의 관계를 축으로 하는 쪽으로 재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얼마 안 가 일본기업은 아시아에 대거 공장을 짓게 되지만, 수요면에서도 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상대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유도돼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구조전환은 뒤로 미뤄지고, 금리인하에 의한 대응이 우선시되면서 효과는 약하면서 부작용이 터무니없이 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은 아닌가. 접기
P. 67 실패의 제1요인은, 일본의 주요 전기산업이 TV시대의 종언과 모바일형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점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1990년대부터 글로벌한 규모로 전개된 수평 분업구조에 일본기업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체제는 ‘계열’ ‘하청’이라는 종래의 일본적 발상을 무의미하게 했다. 즉 일본 기업들은 오랜 기간 익숙해진 조직원리의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받게 됐다. 이것이 전통적인 일본 대기업에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접기
P. 103 헤이세이 전기의 정치사는, 선거제도 개혁, 특히 소선거구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됐다. 이 점에서 자민당도 사회당도 ‘수구파’와 ‘개혁파’로 두동강 났다. ‘수구파’로 불린 것은 중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보수’ ‘혁신’ 간대립구도라는 55년 체제 속에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한 정치가들이었다. ‘개혁파’란 그런 자민당 내 파벌정치와 자민·사회 양당의 보완관계를 뒷받침해온 선거제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권력기반이 구축될 것을 기대한 정치인들이었다. (중략)
총평을 중심으로 한 관공노 계열 노동조합이 내부붕괴로 치달은 것은 사회당의 조직적 기반을 두드러지게 약화시켰다. 확고한 조직적 기반을 상실한 사회당은, 1990년대 들어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그 얼마 전 사회당에는 총평계 노동조합에 의존하는 좌파정당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처럼 풀뿌리적인 저변을 가진 리버럴 정당으로 전환할 최후의 찬스가 있었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전환할 무렵 일었던 도이 붐이 기회였다. (중략)
도이가 이 무렵 시도한 것은 사회당의 중심을 ‘계급’에서 ‘젠더’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 전환 이후에는 ‘지역’과 ‘세대’ 즉, 지방과 고령화 문제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당의 전략이 부상할 참이었다. 접기
P. 147 아베 정권은 민주당이 내건 래디컬한 정치주도를 부정하고, 이를 교활한 관저주도로 대체했다. 관저가 성청의 관료들을 뜻대로 움직이고, 예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각인사국과 경제재정자문회의로 충분했다. 관방장관은 성청의 국장급 인사를 관리함으로써 성청 전체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고이즈미 정권처럼 포퓰리즘과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인 활용을 솜씨있게 조합하면 여론에 ‘정치주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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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요시미 슌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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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도쿄 출생. 도쿄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도쿄대학 신문연구소 조교수, 사회정보연구소 교수를 거쳐, 현재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사회학 · 문화 연구 · 미디어 연구이다.
저서로는 『시각도시의 지정학-시선으로서의 근대』, 『포스트 전후사회』, 『친미와 반미-전후일본의 정치적 무의식』, 『트럼프의 미국에 살다』, 『대예언-'역사의 척도'가 나타내는 미래』, 『전후와 재후의 사이-용융하는 미디어와 사회』 등 다수 있다.

최근작 : <문계 학부 폐지의 충격>,<[큰글자도서]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총 6종 (모두보기)

서의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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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서 근무하고 있다. 1996년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 사건을 취재하며 분단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대중 정부 시기 평양과 신의주, 함경남도 금호와 금강산 등을 방북 취재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2004년)을 지냈고, 도쿄특파원(2011~2014년)으로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아베 총리의 재집권 초기를 지켜봤다. 북한과 일본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전체의 시야로 한반도를 살펴보려는 태도를 갖게 됐다.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과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대에서 동아시아사를 공부했고,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일본의 대북한 외교전략과 피해자 국가정체성」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탈냉전 이후 일본과 한반도 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 안내서』(2018), 『다음 세대를 위한 통일 안내서』(2020), 『101평화』(2023), 『대혼란의 세상, 희망을 찾아서』(2024․공저) 등을 썼고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2019),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2020)을 우리말로 옮겼다. 접기

최근작 : <네오콘 일본의 탄생>,<101 평화>,<다음 세대를 위한 통일 안내서> … 총 14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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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텔레캐스터 비보이>,<가이드 담당 천사를 때려눕혔더니, 사령술사가 되었습니다 5>,<사마귀의 우리 5>등 총 1,185종
대표분야 : 만화작법/일러스트 2위 (브랜드 지수 122,990점), 요리만화 6위 (브랜드 지수 162,332점), 라이트 노벨 15위 (브랜드 지수 70,52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원인을 파고든 '일본 최신사정 설명서'

일본의 헤이세이(1989~2019) 시대는 두 차례의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 외에도 정치개혁 실험이 좌절하고 샤프, 도시바 등 기업들도 글로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속속 무너지던 '잃어버린 30년'이었다. 1989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개사 중 32개사를 차지했던 일본 기업은 2018년에는 도요타(35위) 외엔 전멸했다.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 증가, 인구감소, 지방 소멸위기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고,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같은 엽기적인 사건들도 충격을 가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전후(戰後)에 구축돼 쇼와 시대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작동되던 일본형 시스템의 한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연약한 지반이 수분을 머금어 액체 같은 상태로 변하는 '액상화'가 일본 사회의 각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 헤이세이 말기다.
저자는 헤이세이의 액상화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쇼와 시대에 진행된 지반약화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사적 대전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지만, 일본은 오일쇼크를 무난히 극복한 데 따른 안도감에 사로잡혀 변화를 직시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런 안도감이 1980년대 경제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가져왔고, 1990년대 이후 전개된 글로벌화의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를 초래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 결과 헤이세이 일본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쇼크(버블경제의 붕괴,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2001년 미국 동시다발테러와 이후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와 동시병행적으로 전개된 글로벌화와 넷사회화, 저출산고령화 등 충격 속에서 일본은 좌절해갔고,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들이 실패했다. 쇼와의 빛나는 성공신화가 헤이세이 일본의 태세전환을 어렵게 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전기·전자산업의 어이없는 몰락은 그 단적인 예다.

동아시아 중심에서 밀려난 일본의 앞날은?

헤이세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종막을 고한 시대이기도 하다. 150여 년 전 메이지유신을 달성한 일본은, 서양의 기술, 제도, 지식을 전력으로 도입해 불과 30년에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중심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냉전 후의 헤이세이 시대, 동아시아의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은 점점 늙어가는 사회가 되고, 성장은 환상으로 끝났지만 정부는 리스크를 각오한 채 어떻게든 경제를 부양하려고 필사적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그러므로, 제2, 제3의 버블 붕괴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 타개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한층 더 취해지고, 감세조치와 규제완화로 공공영역은 점점 축소돼 경제가 일시 부양하더라도 격차는 확대되는 만큼, 사회전체의 열화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잃어버린 30년'이 '잃어버린 반세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는다. 저자는 위기의 실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모두가 위기를 위기로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헤이세이 시대의 사회 분야에서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초저출산과 격차확대다. 제도와 시스템 미비가 저출산을 가속화시켰지만 가장 큰 원인은 '빈곤화'이다. 버블붕괴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대거 늘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을 붕괴시켰고, 그들이 인생설계를 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더 심각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2018년 0.98명, 2019년에는 0.92명까지 떨어지며 2년째 '0명대 출산율'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0명대인 유일한 나라다. 합계출산율 1.4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저출산 현상의 구조적 배경은 일견 흡사하지만, 한국은 교육비·주거비의 과중한 부담이 출산은 물론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추가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체제인 일본의 가장 최신 경향을 담은 현대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일본이 겪는 위기를 한국은 피해갈 수 있을까.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일본을 만들어간 다양한 인물들

이 책은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 교주,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대중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고무로 데쓰야,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오토모 가쓰히로 등 각 방면의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헤이세이 일본을 어떻게 직조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말' 서사가 헤이세이 시대와 어떻게 조응했는지도 흥미를 더해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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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의 실패는 겸손이고, 현실적으론 일본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30여년의 시행착오를 돌아보면서 발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질풍 2020-11-1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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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강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shuita 2022-02-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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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대사 관련해서 나온 책들이 많으나, 본서처럼 일본 근황을 잘 다룬 책은 아직 못봤다. 출판사 책 소개처럼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원인을 다룬 책인것은 분명하나, ‘일본 최신사정 설명서‘라는 표현은 이 책을 설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너무 무겁지 않은 제목을 고심하다 찾은 제목이겠만..
큰댕댕이 2022-03-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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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는 많이 다른 한국 .. 하지만 닮아가려는 기득권층들... 지금까지의 시대는 속는자와 속이는자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속았던자와 속였던자의 시대이다....견뎌라 그러면 속였던자들이 다시 속이는 시대가 온다 그때가 벗어날수있는 기회이다....
- 2022-10-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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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 책은?



이 책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일본의 아키히토 (明仁) 일왕 재위시의 일본 사회를 분석해 놓은 책으로, 일본의 최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요시미 슌야, <도쿄대학 정보학환(情報學環) 교수로 사회학, 문화연구의 전공을 토대로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으면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저서가 있다. >



이 책의 내용은?



우리나라는 시대 구분을 정권을 기점으로 하는데, 일본은 일왕의 재위를 기점으로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레이와(令和) 시대다.



히로히토 일와의 쇼와 (昭和) 시대 - 아키히토 일왕의 헤이세이(平成) 시대 - 나루히토 일왕의 레이와 (令和) 시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헤이세이 (平成) 시대는 일왕 아키히토( Akihito, 明仁)가 즉위한 1989년부터 퇴위한 2019년까지를 말한다.



일왕 아키히토( Akihito, 明仁) :

<일본 제125대 일왕. 195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대관식 참석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순방하였다. 1989년 히로히토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하고 연호를 헤이세이(平成)로 고쳤다.>



저자는 헤이세이 30년간을 ‘실패의 시대’로 규정하고, 그 기간을 실패박물관을 만들듯이, 실패원인을 찾아내어 전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일본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표 1- 1을 보면, 세계 기업 시가 총액을 알려주는 표 1-1을 살펴보면 단적인 예를 알 수 있다.



세계 기업 시가 총액을 비교하는 자료인데, 1989년과 2018년 변화에 주목해보자.



1989년에는 50위 안에 들어가는 기업 중 32개가 일본기업이었다. (41쪽)

잘 알려진 기업 이름을 열거해보자.

NTT, 일본흥업은행, 스미토모 은행, 후지 은행, 도요타 자동차, 도쿄전력, 신일본제철, 도시바, 닛산 자동차, 중부 전력, 도쿄 가스 등 일본 기업이 즐비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50위 안에 들어있는 일본 기업은 도요타 자동차 단 1개일뿐, 나머지 31개는 사라졌다.



단적으로 세계 경제에서 일본 경제의 존재감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경제 현상을 비롯하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이렇게 4개 분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으로 일본의 최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하겠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 기간 동안 4개의 쇼크가 있었다는 것이다.

제 1 쇼크, 1989년에 정점을 찍은 버블 정책의 붕괴

제 2 쇼크, 1995년의 한신. 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제 3 쇼크, 2011년의 미국 동시다발 테러와 이후 국제 정세의 불안정화

제 4 쇼크,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 1원전 사고.



이렇게 4개의 쇼크를 시간적으로 살펴보니, 일본의 현재 모습이 그려진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일본 기업의 실패를 조명하고, 정치면에서는 일본 정당의 변천사 특히 일본 신당과 사회당, 민주당의 실패, 그리고 자민당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 다음 사회적 측면에서 초저출산, 격차 확대, 빈곤화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특히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원전 사고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사회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1989년 미야자키 쓰토무 유아 연속 유괴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헤이세이 시대에 잇따른 엽기적 살인 사건의 선구가 된다. 그 후 1995년 3월에는 옴진리교 사건이 일어나 일본 사회를 뒤흔들기도 하였다.



저자는 헤이세이 시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버블 경제의 붕괴, 글로벌화와 넷사회화, 소자고령화 속에서 전후 일본 사회가 좌절해간 시대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다수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시대였다. (37쪽)



저자는 그렇게 헤이세이 시대를 실패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의 결론은 무엇일까?

헤이세이 시대의 실패와 쇼크의 경험을 헤이세이 시대의 종언과 함께 과거의 것으로 묻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의 실상을 정면에서 응시하며, 모두가 위기를 위기로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다. (306, 307쪽)



다시, 이 책은?



일본의 헤이세이 시대 - 실상 이런 식으로 일본의 역사 시대를 구분하는 것도 이 책을 읽고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 즉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일본 상황을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정리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해야만 겨우 한 분야의 30년 역사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일텐데, 이 책으로 - 300여 쪽의 분량으로 일본의 실제 모습을 - 정리할 수 있다는 것, 대단한 행운이다.



그간 매스컴을 통해 띄엄띄엄 정리해보던 일본의 모습을 이렇게 한 줄로 주욱 꿰어 볼 수 있으니. 일본의 현재 모습이 제법 잘 보인다.
- 접기
seyoh 2020-08-0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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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나온 길을 보며 한국의 현재를 가늠해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괜찮았다면 이상할 거 같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의 상황이다.

헤이세이라 불리는 1989년 이후 30년간의 기간으로

거시적으론 견고한 기반이 흐물거리는 액상화로 묘사되는

저자가 느낀 일본내의 몰락기운들을

크게 4단계의 분류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얘기들을 시대순으로 읽다보면

이것이 과연 일본만의 얘기인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저출산도 아닌 초저출산으로 묘사되는 시기 도래,

변화되는 산업환경에서 점차 존재감이 희미해져 간

우리가 알만한 유명 기업들의 사례들,

자연재해나 인재로써 은연중 위기감이 베어버린 시간들까지

한국의 현상황과 오버랩 시켜도 전혀 이질감 없을

남의 나라 얘기인 듯한 한국의 상황이 떠올려지니까.

일본의 한 역사를 다루고 있구나란 기분이 아닌

한국의 얘기라 생각하고 들어도 무방할 듯한 많은 얘기가 들어있다.

하나 아쉬운 건, 일본은 먼저 겪었고 이를 해결키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써 봤기에 참고할 좋은 아이디어도

볼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그마저도

지금의 한국 상황과 별 다르지 않음에 아쉽고 놀라웠다.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이란 것들도

한국의 매스컴이나 정책가들이 말하는 범주의

피상적인 방법들과 크게 다른 것들이 없었다.

그 말은 고로, 먼저 겪어왔던 일본도 뾰족한 방법을 찾아냈거나

큰 효험을 본 정책이 없었다는 얘기와 같았다.

그럼 우리도 그냥 겪을 수 밖에 없는가란

암울한 역사의 흐름을 묵시하는 느낌마저 드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역사의 한토막을

본인의 시각으로 정리했기에 그는 찾을 수 없었던

일본이 필요했던 해법들을 한국의 경우엔

다를 수 있진 않을까란 희망을 가져본다.

일본 헤이세이 시대의 기간을 책으로 펴낸 이유를 빗대어

책 맨 앞 도입부에 실린 스웨덴 군함의 얘기는

전체적인 본문내용과 별도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나만 모르고 지나친 듯한 특별한 세상사이기도 했지만

실패의 사례로 박물관을 짓은 스웨덴이나

이를 이 책의 모티브처럼 끌어다 쓴

저자의 아이디어도 매우 훌륭하다 느꼈다.

거시적인 듯 하다가 주관적으로 아쉽게 흘러간 부분들도 많으나

전체적인 역사적 구도나 관점은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많은 부분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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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2020-08-1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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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요시마 순야



머리글 '헤이세이'라는 실패─'잃어버린 30년'이란 무엇인가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2세는 17세기 초 유럽에서 최대최강을 목표로 군함 '바사vasa호'의 건조를 명했다. 1628년 8월 10일 마침내 완공된 바사호는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항해를 시작했지만 얼마 안가 선체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침몰했다." "바사호 참사는 일부 치명적인 미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계획이 지나치게 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지나치게 큰 규모의 배에 과다한 중장비, 너무 높은 마스트 등 모두 최대이길 바라는 왕의 주문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대국 국왕의 명령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면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기술자는 스스로의 지식을 구사해 부여된 직무 범위 내에서 왕의 의향을 좇아 일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에서 결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분의 최적화는 전체의 최적화와 다르다. 부분적으로는 아무리 똑바로 쌓아올려도, 전체가 똑바르게 되지는 않는다."(8-9)




# 헤이세이 30년 동안 발생한 4개의 쇼크

1. 버블경제의 붕괴(1989.1~1995.1)

2.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1995.1~2001.9)

3. 9·11 테러와 국제정세의 불안정(2001.9~2011.3)

4.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2011.3~2019.4)




제1장 몰락하는 기업국가─은행의 실패, 가전의 실패




"1980년대 말 일본은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다. 경제는 호조였고, 그 기반도 약하지 않았다. 내수도 상승하고 있고, 실업률은 최저 수준, 학생의 취업 전선도 공급자에게 대단히 유리한 시장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여유가 있을 때 산업의 체질 개선과 기술 혁신을 추진한다면 〈개인 소비도 솟아오르고 성장은 지속할 것〉으로 여겨졌다." "세련된 자신을 연출하는 것이 행복의 실체라고 모두들 믿을 수 있던 시대가 버불의 1980년대였다. 젊은이들은 아직 1990년 이후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었고, 미래는 과거와 다름없이 밝고 풍요로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장 시대의 인간에게는 성장 이후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차를 운전하면서 앞이 잘 안 보일 경우 똑바른 길이 있을 것으로 믿어버리는 것과 같아, 커브를 꺾을 수 없는 상태로 벼랑에서 굴러 떨어지고 만다. 버블시대에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43-5)




"(버블이 이미 제어불능 단계로 확대되어버린) 1980년대 말의 일본경제를 되돌아보면 한편으로는 (1985년 9월 G5에서 체결된 플라자합의가 촉발한) 엄청난 기세의 엔화강세로 국내 제조업은 대타격을 입었고, 이는 특히 중소 제조업에서 심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수 확대를 위해 금리가 대폭 완화됐고, 시중에는 대량의 자금이 풀렸지만, 이들은 엔화강세로 이윤이 감소한 제조업을 활성화시키기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로 돈을 벌려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갔던 것이다. 문제삼아야 할 것은, 당시 정말 필요했던 것이 금리인하나 재정투입이었던 것인가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목표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축소시키기 위해 일본의 내수확대와 수출주도형 산업의 구조전환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엔화강세를 진정한다는 이유로 추진된 금융완화는 내수를 확대시키고 제조업을 지지하기보다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과잉투자를 초래했다."(49-50)




"거대함선 일본호가 옆으로 쓰러지며, 마침내 침몰에 이르는 첫 충격이 나타난 것은 1995년부터였다. 이 해 7월, 코스모신용조합의 경영이 파탄했고, 8월에는 효고은행, 기즈신용조합도 파탄, '주센住專문제'가 결정적으로 심각해진다. 1990년 이후 땅값이 대폭락을 계속하는 가운데 땅값 상승을 전제로 확대노선을 밟아온 금융업계의 붕괴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붕괴는 1997년부터 1998년에 걸쳐 정점에 달한다. 1997년 11월 우선 산요증권이 파탄했고, 이어 20대 대형은행 중 하나인 훗카이도척식은행이 파탄했다. 이어 4대 증권회사의 하나인 야마이치증권이 '자진폐업'한다. 붕괴는 일본경제의 중추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일본호는 이미 구멍이 뚫려 선내에 물이 차는 단계를 지나 배 전체가 바닷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이 잇따라 파탄을 맞았다."(54-5)




# 주센住專문제 : 주택금융전문회사가 버블붕괴 직후 떠안은 불량채권과 그 처리를 둘러싼 문제




"2000년대 이후 파탄의 중심은 금융계에서 과거 '재팬 이즈 넘버원'의 주역이던 제조업의 붕괴로 향해갔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실패를 두드러지게 드러낸 것은 전기電機산업이다. 1990년대 말 금융의 실패는 버블시대의 '재테크' 광풍에 휩쓸린 기업의 말로였지만, 2000년대 이후 전기산업의 실패는 보다 뿌리 깊었다. 일본기업의 체질 그 자체가 1990년대부터 진행된 글로벌화와 인터넷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일본 대기업이 (종합전기 메이커라는) 수직적인 분업체계 유지에 집착하면서 글로벌한 수평분업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반도체가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본업'〉으로는 간주하지 않았던 것과도 표리를 이룬다. 일본에서 '전기메이커가 사라지는 날'을 생생하게 묘사한 오니시 야스유키에 따르면 가전에서 중전重電까지 폭넓게 취급하는 일본기업에게 〈반도체는 여러 사업 중 하나에 불과하고 '실패해도 회사가 망할 일은 없다'는 안이함 속에서 경영이 이뤄졌다.〉"(64-9)




"헤이세이 시대,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여겼으나 몰락으로 치달은 일본의 전기기업 중에서도 특히 실패 규모와 영향이 컸던 것은 (근대 일본의 전기화를 중추적으로 담당해 온) 도시바의 실추였다." "거함의 침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직내부에 억압의 사슬이 엄존했으며 정보도 횡적으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시바에서는 '챌린지'라는, 통상의 방법으로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경영진이 각 부문에 강요했다. 그것이 상명하달식으로 전달되면서 이익을 부풀려 수익이 좋아진 것처럼 꾸미는 부정회계가 만연했다." "한편으로 도시바 몰락의 직접 요인은 그들이 2006년 거액을 쏟아부어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력 부문을 매수한 데 있다." "이미 당시, 1979년의 스리마일섬과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를 겪으면서 원자력은 결코 안전하지 않고 리스크가 큰 시설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시바가 원전건설에 집착한 이유는 원전수출이 국책사업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78-80)




제2장 포스트 전후정치의 환멸─'개혁'이라는 포퓰리즘




"헤이세이 직전인 1988년 발각된 리쿠르트 사건은 헤이세이 정치의 액상화를 가속화하는 쇼크로 작용했다. 리쿠르트 사건이 원인이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헤이세이 정치질서는 일거에 유동화로 나아갔다." "리쿠르트 사건의 특징은 제공된 것이 미공개 주식이라는 점인데, 종래 법적 규제의 바깥에 있던 금융상품이었을 뿐 아니라 양도대상도 극히 넓어 자민당 실력자 대부분이 포함됐고, 그 범위는 야당에까지 미쳤다. 뇌물 수수 목적도 상당히 애매했다. 일반적으로는 정계나 재계에서 리쿠르트사의 '지위'를 높일 목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지위'라는 것이 대단히 애매한 탓에 뇌물을 제공한 측은 실제로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미공개주식을 대량으로 건넨 것이었다. 뇌물을 건넨 목적도, 받은 쪽의 범위도, 수수 방법도 그 전까지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 사건이었다."(94-5)




"(스캔들의 여파로) 자민당 내 다케시타파가 분열하면서, 1993년 8월에는 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민사당 등 8개 회파會派 연립의 지원으로 일본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총리로 하는 정권이 탄생했다. 물론 정권의 탄생을 배후에서 연출하고, 전후 55년 체제의 숨통을 끊은 것은 오자와 이치로였다. 호소카와 정권은 오자와의 지원 내지는 조종을 받으며 소선거구 비례대표병립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자금규정법 개정 등을 실현했다. 호소카와가 스캔들로 사임한 후 연립의 중추에 있던 오자와는 하타를 총리로 세우지만, 하타 정권은 2개월의 단명으로 끝난다. 이 흐름을 타고 자민당은 사회당 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총리를 맡도록 하는 신공을 발휘해 정권복귀에 성공했고, 자민당 야당시대는 종막을 고했다. 무라야마 내각 이후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모리 요시로와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연립정권이 이어지지만, 모두 단명으로 끝났다."(99-100)




"리쿠르트 사건을 계기로 자민당 파벌의 정치역학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걸쳐 액상화되어갔다. 특히 이 액상화, 아니 멜트다운이 발생한 중심무대는 과거 다나카 카쿠에이에 의해 구축됐고, 다나카가 록히드 사건으로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계를 지배해온 거대한 정치 권익집단인 다나카파였다. 그리고 마치 핵폭발처럼 주위를 빨아들이며 이 멜트다운을 확대시킨 것은 오자와 이치로라는, 다나카 못지않은 개성 강한 정치가였다. 오자와는 1990년대 일본 정치는 물론, 민주당 정권 탄생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헤이세이 일본 정치는 오자와를 중심으로 움직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의 파벌 역학이나 정당의 자기보존 능력으로 보자면 일어날 리 없는 중선거구제 파괴가 1990년대 일본에서 극적인 스피드로 추진된 것은 오자와 이치로라는, 다나카 가쿠에이로 시작하면 3대째에 해당하는, 극히 특이한 보수정치인의 움직임을 빼면 이해할 수 없다."(104)




"고이즈미와 자민당과의 관계는 1990년대에 걸쳐 치열한 대결을 거듭해온 오자와와 자민당 간의 관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자와의 경우, 자민당을 뛰쳐나와 신당을 만들고, 권모술수를 동원해 자민당을 궁지에 몰았지만, 그 정치 수법은 구 다나카=다케시다파와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자민당의 지배체제와 싸우기 위해 도입한 것은 오자와적인 수업 대신 직접 언론 앞에 나서 자신의 말과 퍼포먼스로 적이 누구인지를 시사하고,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정세를 전환시키는 방법이었다." "고이즈미 내각은 헤이세이 기간의 모든 내각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내각이다. 역으로 말하면, 헤이세이의 일본에서 고이즈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한 정권은 없다." "문제는, 민주당 정권의 '대실패'와의 비교를 덧붙이면, 헤이세이 시대 정치의 성공은 고이즈미 같은 포퓰리즘적 방식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129-32)




"2009년 8월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115석에서 308석으로 의석수를 3배 가까이 늘리며 압승했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총리가 되고 정권교체가 실현됐다."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를 비롯해 민주당이 매니페스토를 통해 표방한 정책에는 자민당이 오랜 기간 누려온 기득권의 굴레를 깨뜨리겠다는 임팩트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먼저 거버넌스 설계에서 몇 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정'과 '당'을 일원화하겠다는 원칙을 관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양자의 제도적인 조정 시스템을 파괴해버린 탓에 '정치주도'의 이름 아래 '관'을 권력중추에서 배제하게 됐고, 이로써 내각이 과다한 조정 리스크를 지게 됐다. 게다가 정부 내에서도 핵심인 국가전략국 구상은 그간의 내각관방 체제와 모순됐다." "결국 2012년 12월에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당이 118석에서 294석으로 3배 가까이 의석을 늘리며 압승했다."(145-6)




"수차례 정치주도의 실패를 거치면서 아베 정권은 민주당이 내건 래디컬한 정치주도를 부정하고, 이를 교활한 관저주도로 대체했다." "게다가 민주당 정권의 실패가 너무도 참담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식의 '정치주도'라면 딱 질색이었다." "헤이세이 시대 일본이 추구해온 정치주도란, 공적인 의사결정의 주체를 행정기관의 관할주의 메커니즘에서 끄집어내 총리관저가 됐건 시민과 정치인들의 이니셔티브가 됐건 누군가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두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행정에서 빼앗은 결정권은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확실히 기록되고 공개됨으로써 그 공정성이 검증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독재의 싹이된다. 제2차 아베정권은 민주당 정권의 실패를 뒤집고 관저주도의 기본형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최대 위험은 관저와 성청의 관계가 액상화하는 가운데 공적기록에 기반한 정치의 공정성이 뿌리부터 손상되면서 전체가 허구화한 것이다."(147-53)




제3장 쇼크 속에서 변모하는 일본─사회의 연속과 불연속




"일본 사회에는 다양한 참사를 사회 '실패'의 결과라기보다 외부에서 초래된 '쇼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단순한 '쇼크'로 간주하는 이는 적지만, 옴진리교 사건이나 미야자키 쓰토무의 유아연속유괴살인사건, 고베의 '사카키바라세이토'의 연속아동살상사건,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 사가미하라 시의 장애인 시설 '쓰쿠이야마유리원'에서 일어난 대량살인사건 등은 모두 범행동기가 불가해한 것으로, 광기에 의해 돌연 저질러진 '쇼크' 이상의 것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버블붕괴도, 중간층의 붕괴를 초래한 격차확대도 '1.57 쇼크'로 알려진 초저출산도 '지방소멸'로 일컬어지는 인구감소도, 모두 헤이세이 일본이 불가항력적으로 입은 사회적인 '쇼크'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쇼크'로 간주하고 요령부득의 일로 받아들이는 수용 패턴은 사회가 정책이나 정치적 타협이 야기한 실패들을 '실패'로 인식하며 그 구조적 문맥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것을 곤란하게 만든다."(161-2)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헤이세이뿐 아니라 전후를 통틀어 일본이 경험한 최대 사건이었으며, 1995년에도 일본을 근저에서 뒤흔든 한신·아와지대지진이 발생했었다." "두 대지진 모두 고도성장기 일본식 개발주의의 위험성을 근저에서 지적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진은 원전이나 고속도로, 인공섬 같은 기술의 한계를 드러내 보였을 뿐 아니라 전후 흔들림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의 기반이 의외로 무르고, 불안정함을 일깨웠다. 1995년의 지진은 직하형이었기 때문에 붕괴 충격은 고층빌딩이나 고속도로 등 도시 인프라에서 두드러졌다. 2011년의 재해는 바다의 쓰나미에 의한 것으로 광대한 지역에 미쳤으며, 에너지 공급체계가 근본부터 의문시됐다. 두 차례 지진으로 현대 일본의 대도시와 그 광대한 배후지 양쪽 모두 도마에 오른 것이다. 또한 고도성장기에 발전해 1970년대에 확립된 도시개발과 에너지 공급체계 전체에 심각한 물음표가 붙게 됐다."(165-8)




"일본 전체가 고베시가지를 괴멸시킨 대지진의 충격 한가운데에 있던 1995년 3월 20일, 이번에는 도쿄 도심에서 사람들을 한층 격하게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옴진리교 신도에 의한 지하철 사린사건이다." "1995년 3월 이후 지하철 사린사건의 쇼크로 옴진리 교단 특유의 타자공포감을 이번엔 거꾸로 일본 사회가 갖게 됐다. 사건 후 TV에서는 엄청난 물량의 특별 보도프로그램이 편성됐고 높은 시청률을 획득했다. 이 시기 TV는 거의 전면적으로 '옴' 관련 소재로 뒤덮였다." "신문의 경우 스포츠지나 석간신문뿐 아니라 종합지에서도 속속 센세이셔널한 제목으로 보도가 이뤄졌고, 오보도 되풀이됐다. 이는 사람들이 극히 기괴한 사건에 대한 강박적인 호기심과 불안에 휘둘리는 과정이었다. 즉, 옴진리 사건의 '쇼크'란 교단 신도들에 의한 범행만을 가리키지 않고, 그런 쇼크로 촉발돼 일본사회 전체가 빠져든 타자에 대한 공포심의 고양, 강박적인 타자 배제 등 모든 활동을 포함했다."(168-72)




"신도들에게 행해진 '모략'이나 '마인드 컨트롤'의 결과물이라는 옴사건의 해석은,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회 쪽의 일상과는 철저히 이질적인 것으로 옴신자들을 타자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략'론은 옴 교단의 이해불능한 행위를, 현대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반사회적 집단의 악랄한 의도에 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마인드 컨트롤'론은 옴 신자들의 행위를 교조의 '광기'로 조작된 집단적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이 광기와 우리들 자신의 정기正氣=일상은 철저히 불연속적이라고 여긴다. 어떤 것이든 '옴'이란 불쌍하긴 하되 '우리들'과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고, 그 다른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교조의 '광기' 혹은 '어둠'의 조직이라는 뜻이다. 1995년에 휘몰아친 옴 보도는 사건에 이러한 해석을 부여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공포심을 자극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리얼리티가 뿌리부터 추궁당할 가능성을 박탈하면서 사건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만으로 소비되는 것을 가능케 했다."(173-4)




"헤이세이 시대를 뒤흔든 쇼크에는 〈권투의〉 보디블로처럼 보다 지속적으로 사회를 변모시켜온 것도 있다. 보디블로처럼 일본을 덮친 쇼크에는 글로벌한 신자유주의의 조류가 관통하고 있다." "헤이세이 직전은, 가장 격차를 보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러나 이 1억 총중류總中流의 상황이 헤이세이가 시작될 무렵, 버블경제 속에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변화의 방아쇠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었다. 버블경제 결과, 자산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가 확대됐다. 자기 소유의 집이 없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 앞으로 평생 집을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격차사회'라는 단어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신은 하층에 속한다고 답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1980년대 말은 계층면에서 일본인들의 의식에 균열이 확실히 생겨나던 순간이었다." "일본이 다행증多幸症적인 소비사회에서 불안투성이의 격차사회로 바뀌었던 것이다."(182-5)




"헤이세이 일본 사회가 양극화로 나아간 것은 인구구조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초소자화超少子化가 멈추지 않게 된 것이다." "여성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평균적으로 낳는 아이 수인 합계특수출생률이 연속해서 1.50을 밑돌고 있는 것은 그 국민의 인구가 자력으로 회복가능한 선을 넘었다는 것, 즉 사회의 기반이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인구동향에는 일종의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출생률 저하는 장기적인 추세로 유지된다. 실제로 합계특수출생률이 2.00을 밑돌기 시작한 뒤 반세기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이 추세는 이미 장기화되고 있다. 그리고 반세기 이상 전부터 출생률이 저하한 영향이 지금, 인구감소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출생률 변화가 인구구조를 확실하게 변화시키기 시작하는 데까지는 반세기의 시차가 있다. 지금 당장 소자화의 근원적인 대책이 마련돼 출생률이 회복되더라도 인구가 회복기조로 바뀌는 것은 적어도 반세기 이상 지난 뒤의 일이라는 것이다."(199-201)




제4장 허구화하는 아이덴티티─'아메리카닛폰'의 행방




"헤이세이 경제가 버블 붕괴로 시작했고, 헤이세이 정치가 55년 체제를 무너뜨렸으며, 헤이세이 사회가 단카이 주니어 세대의 취직빙하기와 조우함으로써 초소자화가 멈추지 않을 것을 예고하듯, 헤이세이 문화는 '종말'의 예감을 이어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종말'에 대한 관심은 사회의 성장에 대한 '꿈'이 성장의 끝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에 부상한다. 1970년대 초는 바로 이런 불안감이 분출하던 시대였다. 이런 불안감은 1980년대의 다행증적인 시대를 넘어 재부상했고, 현실 속의 다양한 붕괴가 사회 전반에서 분출하던 것이 헤이세이 시대였다. 전후 일본의 '종말' 이미지의 원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1954년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일본의 참치어선이 피폭된 것을 계기로 제작된 영화 《고질라》다. 태평양 저편에서 등장한 고질라는 도쿄 도심부를 유린하며 수도를 철저히 파괴한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도쿄대공습의 재연이고 전후 일본인에게는 원풍경原風景적인 '종말'이었다."(216-8)




"1980년대의 '종말' 예감은 묵시록적인 이미지를 계승하면서도 '핵=방사능'으로 인한 문명 파멸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전쟁보다는 테러, 그것도 내면적인 파괴의 이미지로 결정화된 『AKIRA』가 있다." "두 작품은 헤이세이에 선행한 시대가 낳은 '종말' 서사의 쌍벽이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개가 나타내듯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의 계보는 '종말'에서 '판타지'로 향했다. 반면 헤이세이의 '종말' 서사의 주류를 이룬 것은 『AKIRA』의 계보다. 이 계보는 안노 히데아키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을 거쳐 안노가 제작한 영화 《신 고질라》로 이어진다. 여기에 '종말' 서사를 집어넣은 오시이 마모루의 영화 《공각기동대》와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을 추가하면 '종말'은 헤이세이 일본 애니메이션계 서브컬처를 관통하는 기축 테마였음을 알 수 있다. 전후 일본인들은 오랜 기간 '종말'의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221-6)




"TV나 레코드에 의해 확산되고 소비된 주류 대중문화를 관통한 것은 '종말'의 예감만은 아니었다. 대중문화에 있던 것은 오히려 '미국'에 대한 희망이다." "1960년대 말 청년들의 '반란' 시대를 지나 1970년대는 '패배' 후의 침잠과 내향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 '아메리카닛폰'에 균열이 발생했고 그 균열에서 '포스트 전후사회'적인 감성이 부상했다." "해외에서 역수입돼 대히트한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반전은 안과 밖, 자아와 타자, 일본과 미국, 내셔널과 글로벌 간 경계선의 위치바뀜을 나타낸다. 1970년대 초에는 아직 남아 있던 '내=일본'과 '외=미국'의 경계선은 1980년대가 되면, 서서히 부상하던 미디어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 쉽게 조작가능한 것이 됐다. YMO는 〈'외'를 향해서는 '일본'과 '아시아'를 상징적으로 짊어지며, 서구인의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을 유도하는 것으로 주목을 끌었다. 반대로 '내'에서는 '외'에서의 평가를 지렛대로 이른바 박래품 대접을 받으며 인기를 획득했다.〉"(232-5)




"마릴린 아이비 콜럼비아대 교수는 1970년대 일본을 대표한 'Discover Japan'에서 '이그조틱 재팬'으로의 이행을, 동시대의 아이덴티티 정치와 연결지었다." "1980년대에 등장한 '이그조틱 재팬'에서 재발견되어야 할 자신은 이미 허구일 뿐이다. 아이비는 외국의 시선을 의식해 영어로 쓰여진 'Discover Japan'과는 달리, '이그조틱 재팬'이 가타카나로 쓰여진 것에 주목한다. 가타카나는 통상, 일본인이 자국에 수입된 외국 제품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서체이다. 이것이 '일본'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은, 일본이 이미 일본인 자신에게도 '외국'으로 느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통상, '자/타'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보자면 '이그조틱'한 것은 '자아'가 아니라 '타자'다. 따라서 광고가 주장하듯 '재팬'이 '이그조틱'하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일본'이 타자화됐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설정된 것은 마치 서구 관광객처럼 자국의 풍경에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일본인 자신이다."(236-7)




"코스프레에서 스트리트 패션까지 1970년대에 나타나 1990년대 이후에 전국화, 일상화한 현상은 '미디어 속의 타자'와 '도시 속이 자신'이 반향하며 융합하는 현상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스타와 아이돌, 판타지 주인공은, 동경의 대상이긴 하되 자신이 아닌 타자이다. 그런 타자의 복장과 스타일, 몸짓의 일부를 자기표현에 인용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모방이었고, '오리지널'에 대한 '카피'였다. 그러나 이 관계는 1990년대에 반전된다. 이미 인터넷 이전부터 젊은이들은 서브컬쳐, 패션, 음악 영역에서 누구나 오리지널 즉 발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넷 사회의 확대는, 이 경향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다. 코스프레에서 청년들은 단순히 만화,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코스프레를 공연하는 청년들 스스로 자신을 '작품'화하고, 그 제작자, 즉 가공 이미지의 공급자가 된 것이다. 이제 와서는 '카피'가 '오리지널'이 된 것이다."(257-8)




"헤이세이 시대를 문화 차원에서 훑어보면 ①'종말'의 실현 ②허구로서의 '일본' ③새로운 집합성이라는 3가지 조류가 이 시대를 관류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첫째로 1970년대부터 부상한 '종말'의 예감은 헤이세이 시대 들어 두 차례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의해 눈에 보이는 현실이 된다. 버블 붕괴와 급격한 경제적 쇠퇴, 격차사회화와 인구감소 등에 의해 장기적으로도 '종말'은 이 나라에서 실현되고 있다. 두 번째로, 역시 1970년대에 시작된 일본의 소비사회화는 우리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일본'의 자아인식을 근저에서 변화시켰다. 1980년대에 등장한 것은 현실성이 존립할 지평의 상실이고 헤이세이의 리얼리티 전체가 이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 번째로 1990년대말 이후 인터넷의 일상 침투는, 우리들의 집합성을 근본부터 바꿨다. 인터넷은 다른 입장을 연결하는 대화의 매개에서, 얼마 안 가 배제의 매개로 반전해가지만, 동시에 각 유저들을 '수용자'에서 '발신자'로 변모시켰다."(267-8)




마침글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시대'─잃어버린 반세기의 서곡




"헤이세이는 종언의 시대이고, 시작의 시대였다. 종언이라는 것은 인구증가의 종언, 경제성장의 종언, 총중류화의 종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인구가 축소하고 경제가 장기적으로 정체하고 사회가 분열해가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정치는 전후 일본의 시스템을 '개혁'하려 거듭 노력했지만, 이 사회의 기반적 변화에 몇 번이고 걸려 넘어졌다. 또한 헤이세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던 시대의 종언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약 150년 전, 메이지유신을 달성한 일본은, 서양의 기술, 제도, 지식을 전력으로 도입해 불과 30년에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동아시아의 중심성을 중국으로부터 빼앗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 패배 이후에도 미국과 일체화하는 것으로 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냉전 후의 헤이세이 시대, 동아시아의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갔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원상복구로,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시기가 특수한 시대였던 것이다."(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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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21-05-3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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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오늘 소개할 책은 도쿄대학교 요시미 순야 교수가 집필하고, 서의동 역자의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출판한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왕(텐노, 천황, 일황)이라고 불리는 왕이 다스리는 얼마 전까지 전제왕권국가의 형태를 가졌던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점이다.



에도막부시대를 끝내는 대정봉환을 시작으로 메이지 1868년~1912년, 다이쇼 1912년~1926년, 히로히토의 쇼와 1926년~1989년, 아키히토의 헤이세이 1989년~2019년, 나루히토의 레이와 2019년~현재라는 사실이다.



126명의 일왕이 역사에서 한 번도 자리바꿈을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다 보니 일왕의 치세를 시작으로 사용하는 원호(연호)의 사용은 서력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각종 공문서와 주민등록증, 병원문서, 회사문서, 술집에서의 병에 이르기까지 연호의 사용이 우리가 사용하는 서력을 대체한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첫머리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의 바사호 박물관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1618년~1648년의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의 왕이자 영웅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료들이 그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재위 기간 건조한 대형전함 바사호를 만들었던 기술자들은 배가 기울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만, 왕의 무리한 명령에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배가 진수되어 결국 침몰하게 된다.



마치 일본인이 상급자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못해 패전의 빌미를 가졌던 지난 과거의 경험이 떠오른다.



순야 교수는 조화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번 도서를 통해 일본에 대한 냉정한 어조로 헤이세이 시대에 관해 말한다.

일본이라는 박물관이 헤이세이 30년간 어떻게 서서히 실패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면으로 나눠 헤이세이 기간에 왜 일본 사회가 실패하게 되는지 너무도 솔직하게 서술해서 일본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주장이라 놀라면서 책을 보았다.



쇼와 시대의 일본은 지옥과 같은 나락에서 서서히 부상해서 1980년대에는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을 꿈꾸며, 당시 유행했던 ‘일본 도쿄 땅을 팔면 미국을 다 살 수 있다’라는 말이 회자하곤 했다.

실제 일본은 뉴욕의 주요 빌딩을 매입해서 그 열기를 한층 더 가열한다.



2차 대전 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에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마셜 플랜은 러시아에서 맹위를 떨치던 공산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 시절 무역적자가 심해지고, 재정 적자가 심해지는 쌍둥이 적자를 맞이한 미국은 1985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급 비리에 불러 합의한다.



독일과 일본의 화폐 가치를 인상하라는 요구이고, 이제껏 미국의 원조로 경제를 일으킨 독일, 일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플라자 합의를 시작으로 일본의 당시 엔∙달러 환율은 1년 만에 달러당 235엔에서 150엔대로 하락한다.

이런 급격한 엔화 강세는 일본의 수출산업에 대타격을 입힐 거라 예상되어 일본 정부는 재정투입이나 금융완화 조처한다. 즉 금리를 가파르게 인하하는 것이다.

1986년 1월 5.0%인 금리는 1987년 2월 2.5%로 인하하게 된다.

정부는 경기의 선순환을 유도했으나, 당시 시중에 넘쳐나는 자금은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금융권은 대장성을 믿고 부동산 담보대출의 비율을 70%에서 80%를 지나 심지어 110%까지 대출 경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일본 금융권은 어차피 가격이 상승할 부동산의 미래가치를 미리 계산해서 대출 경쟁이 벌였다.



하지만 이것은 ‘버블’의 시작이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인플레이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금융 당국이 금리를 차례로 올리기 시작한 1989년을 기준으로 금융권에선 부실이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노무라 증권과 쌍벽을 이루었던 도쿄를 거점으로 하는 야마이치증권이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파산을 예견한 임원진은 어리숙하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임원 중 한 명을 사장으로 선임해서 이 모든 책임을 몰아가는 방법을 취한다.



야마이치증권의 파산을 시작으로 일본의 금융권, 부동산시장, 제조업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거품 경제의 붕괴는 오늘날까지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독일의 경우, 동독 서독 통일과 유로화에 편입하여 이런 문제를 피하게 된다.

물론 경제의 기초체력이 더 튼튼한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일본보다는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정치면에서는 헤이세이 시대 4가지 쇼크가 있었다.

제1의 쇼크는 1989년에 정점을 찍은 거품 경제의 붕괴이고, 제2의 쇼크는 1995년의 한신∙아와지대지진(고베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이다.

제3의 쇼크는 2001년의 미국 동시다발테러와 이후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제4의 쇼크는 물론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전사고이다.



정치적으로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자민당이 정권을 공고히 한다.

2012년 보수적인 아베 정권이 집권해서 오늘날까지 일본의 보수 민족주의를 다지고 있다.



이번 주는 일본과 우리와의 정치 경제 관계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강제징용 사례에 관해 충분히 배상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일본 회사의 자산 동결 및 강제집행을 통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으려 한다.



일전에 한 블로거 분의 포스트에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멀어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본이 과거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선출되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가 상임이사국이 되는 걸 싫어하는 국가들의 모임인 ‘커피클럽’이 만들어져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좌절된 사건이 중요하다고 했다.



작년부터 일본의 원호는 레이와 시대이다. 이름에 걸맞게 주변국들과 ‘질서, 평화, 조화’를 이루어 헤이세이의 잃어버린 시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서로 발전하는 이웃 나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헤이세이 #일본의잃어버린30년 #요시미슈운야 #서의동 #레이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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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aeho2000 2020-08-0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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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 경제가 이미 꺾여 있던 2000년대에도 일본의 경제 위엄은 실로 엄청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일본 패션이나 제품은 그 때까지도 많은 이들의 동경경의 대상이었다. 나의 첫 핸드폰은 '산요'에서 나온 폴더 폰이었다. 당시 75만원이라는 거금으로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핸드폰은 당시 주변인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곤 했다. '일제' 하면 일단 고품질로 인정하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지금 일본과 무역 전쟁을 할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유학을 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일본의 아류국가 정도였다. 마치 우리가 캐내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미국'과 비슷하지만 작다라는 이미지 인것 처럼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지만 조금 저렴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일 뿐이 었다.

88년 세계 10대 기업에서 IBM과 엑슨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 뿐만아니라 전세계 50대 기업 중에서 34개가 일본 기업이었을 정도다. 지금 니케이 지수가 20,000포인트를 겨우 넘었던 것에 비해, 이미 89년도 니케이 지수는 거의 4만불에 육박할 정도였다. 정기예금 금리가 8%에 소비지출로 미국을 넘어서고 일본 국영기업인 NTT 하나만으로 독일의 모든 회사의 주식가치를 넘어서는 엄청난 시기를 거쳤던 일본은 이제 힘 빠진 호랑이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한 일본에 대한 뼈아픈 참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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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경제로 시작한다. 나는 일본 경제를 좋아한다. '일본의 경제'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 일본 경제가 담고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거나 유럽의 변방인 포르투칼이 세계 패권을 쥐거나 떠돌이 유목민이었던 몽고가 세계를 지배하듯, 우리는 반전을 좋아한다. 이것이 역사가 재밌는 이유이다. 일본의 반전은 아래에서 위로의 반전도 있지만, 그 반대의 반전도 있다. 현재 진행형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근현대사 100년 가장 다이나믹한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

2차 세계대전에서 기세를 세우던 아시아 패권국에서 1950년대 영국GDP 50% 수준까지 떨어졌던 일본 경제는 다시 반등 하시 시작하여 결국 40만에 영국의 3배 가까운 GDP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경제 전쟁에서 '해볼만하다'라는 의견들이 들려온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성장도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일본의 빠른 속도의 몰락이 이유이다.

​

일본의 버블경제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플라자 합의'를 이야기한다. 마치 미국이 일본의 경제만 망치기 위해 한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버블경제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인의 그리움일 뿐이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에 대한 조치가 명분이었다. 달러화의 가치 상승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마르크화도 엔화와 마찮가지로 7% 이상 가치 절상되며 경제에 타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현재 독일과 일본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힘든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의 건전성을 유지하였던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은 기존 자신들에게 영광을 안겨 준 여러가지 방식을 고수했다. 화폐개혁이나, 구조조정 혹은 정권교체도 없이 일본은 가진 것에 대해서만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정책을 폈다. 이는 일본을 최강국의 자리에서 유지하게 했지만, 성장없이 머물거나 조금씩 침체하게 만들기도 했다.

​

유럽은 유럽통합이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행운 적인 요소도 있다. 하지만 그 요인은 결코 그저 행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독일은 패전 후 각 국가들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빠르게 내비췄고 그로인해 타 국가와의 교역양이 늘어나면서 생필품 가격이 낮아지고 물가 안정과 주택가격 안정이 일어났다. 독일의 실질 부동산 가격은 1975~2007년 사이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 뿐만 아니라 외교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

부동산 가격 뿐만아니다. 그와 함께 농산물 가격도 낮게 유지 되었다. 이 또한 남유럽 등지에서 저렴한 가격의 농산물 유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유럽에서 저렴한 노동자들도 유입되었다. 실질적으로 2차세계대전 전범국이던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았단 것이다. 과거에 대한 사죄나 반성의 자세가 외교의 힘으로 그리고 그것이 경제의 힘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주변국은 중국과 한국이다. 사실상 한국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노동력은 일본의 물가와 임금을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과 반대로 주변국 간의 꾸준한 마찰이 있어 왔다.

​

'헤이세이'와 '쇼와'는 이는 일본의 연호이다. 이는 아키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인데, 우연찮게도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1989년부터다. 책은 이 시대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첫번째 장에서 경제를 설명하고 두번째 장에서 정치를 설명한다. 경제는 참으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정치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어렵긴 했다. 아무렴 일본에 대해 정치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느꼈던 건, 우리가 생각하는 잃어버린 30년에 관한 관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보통, 경제에 관하여만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 생활 전반적으로 후퇴해가고 재난을 겪는다.

​

그무렵 동일본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포함하여, 일본 사회 전반에 암울한 기운을 만드는 여러가지 이벤트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일본은 경제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가혹한 시간을 맞이한다. 이런 가혹한 시간에 대해 일본인들은 '옴 진리교'를 포함하여 이색적인 돌파구를 찾았는다. 그 괴이한 사회적 활동들이 일본사회에 일어나며 일본이 얼마나 암울하게 변했는지를 대변해 준다. 이책은 일본사회가 갖고 있던 두려움을 전반적으로 훑어준다. 얼핏 미야자키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이 많아지며, 우리는 극단적인 사건과 일본을 동일시 하기도 한다.

​

책이 단순 경제 서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을 자세와 함께 고쳐앉고 저자가 말하려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간의 사회 상실감에 대해 접했다. 격차사회나 소자화 사회 등 일본의 몰락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현실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형이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해결되지 않은 원전 문제와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한 부담도 껴앉고 있다.

​

얼핏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누구나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막상 일본의 참혹한 내면을 바라보니 그런 일본에게도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썩어가는 내부를 숨기기 위한 자격지심이 외교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은 어쨌거나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

주변 국가가 모두 망하고 나서는 대한민국이 혼자 그 대륙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아프리가 대륙 한 가운데 일류국이 생성되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가 더욱 잘되기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이 함께 상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다만, 일본의 완전한 몰락보다는 비등비등하지만 대한민국이 조금 더 살기 좋고 외교력이나 경제력에서 일본에게 큰소리 칠수 있는 위치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

우리는 흔히 일본을 '악'이라고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관념에서의 라이벌은 존재할지라도 일본인 개개인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인일 뿐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가감없는 반성문이다. 읽고서 괘씸한 일본사회가 빠져있는 절망에 통쾌하다고 시작했다가 결국은 연민의 마음이 한 켠에 들게 했다.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일본 한자 식 번역이 가끔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 또한 일본의 저자가 썼다는 감정이입이 되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어쨌던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일단 싸우게 된다면 이겨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함께 드높이는 라이벌 국가로써 두 국가가 함께 공생하고 자라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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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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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류 2022-06-06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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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소닉은 2007년부터 박막형TV에 매년 2000억...


세류 2022-06-0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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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류 2022-06-0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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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내부에서 초래된 ‘쇼크‘의 다수는 실은 그 사회...


세류 2022-06-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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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만일 IMF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

우리나라가 만일 IMF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현재의 일본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새삼, 대학에 다니던 90년대,
국제화와 세계화의 차이를 따지던 수준낮은 논의가 떠오른다.
이미 그시절 우리를 비롯한 전세계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에 직면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수준 낮던 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논의를 거부하고 ‘JAPAN is NO.1’을 외치던 일본이 저모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일본에도 이렇게 자신들의 사회를 철저하게 비판할 수 있는 학자들이 있지만 대부분 그런 학자들은 50년대생 이더라.

읽는 내내,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던 이건희가 생각났다. 이건희는 어디서 그런 자극을 받았을까?
삼성전자가 일본에게 많은 걸 배웠다지만 일본은 막상 삼성전자와 같은 혁신이나 과단성 있는 결단을 감행하지 못했다.

포퓰리즘, 정경유착, 공공개혁 부진, 정치개혁 등 우리를 비판하던 시각의 모든 것들이 일본에서는 지난 30년간 실패했다.
반면 뒤돌아보면 어찌됐건 우린 여기까지 왔다.

지금의 우리의 편가르기와 싸움이 막상 미래에 뒤돌아보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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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mine93 2020-08-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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