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朝鮮半島の歴史: 政争と外患の六百年 (新潮選書)
by 新城道彦 (Author) Format: Tankobon Softcover
4.2 4.2 out of 5 stars (66)
第45回サントリー学芸賞(思想・歴史部門)受賞!
韓流ドラマでは分からない「歴史の深層」を解き明かす!
ソウルの独立門は、日本ではなく清からの独立を意味して建てられた――そんな基本的な事実すら日本や韓国で知られていないのはなぜか。気鋭の研究者が、朝鮮王朝の建国から南北分断に至る長い道のりを、国内の政治闘争と周辺国のパワーバランスに着目して描き、朝鮮特有の政治力学の因果を浮き彫りにする決定的な通史。
(目次)
はじめに
第一章 朝鮮王朝の建国
1.王氏から李氏への易姓革命
2.支配基盤の整備
3.揺らぐ王権
4.熾烈な派閥争い
第二章 華夷秩序の崩壊と朝鮮の危機
1.日本の侵略
2.迫りくる女真族の脅威
3.清の侵略と朝鮮の属国化
第三章 終わりなき政争と沈みゆく王朝
1.蕩平策の功罪
2.勢道政治と相次ぐ民乱
3.大院君と閔氏の争い
4.朝鮮を開いた日本の挑発と清の勧告
第四章 清・日本・ロシアの狭間で
1.親日と親露の角逐
2.大韓帝国の成立
3.日本による韓国併合
4.抗日独立運動の諸相
第五章 朝鮮半島の分断
1.戦後の主導権争い
2.遠のく独立
3.国家樹立の理想と現実
4.朝鮮戦争の帰結
おわりに
あとがき
参考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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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scription
About the Author
1978年、愛知県生まれ。九州大学大学院比較社会文化学府博士後期課程単位取得退学。博士(比較社会文化)。長崎県立大学非常勤講師、九州大学韓国研究センター助教、新潟大学大学院現代社会文化研究科助教などを経て、2023年6月現在、フェリス女学院大学国際交流学部教授。専攻は東アジア近代史。単著に『天皇の韓国併合―王公族の創設と帝国の葛藤―』、『朝鮮王公族―帝国日本の準皇族―』(山本七平賞推薦賞)、共著に『知りたくなる韓国』など。
Product Details
Publisher : 新潮社
Publication date : June 21, 2023
Language :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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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 미치히코(新城道彦)의 저작 <한반도의 역사: 정쟁과 외환의 600년>(2023)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한반도의 역사: 정쟁과 외환의 600년> 요약 및 평론
1. 책의 개요와 집필 의도
일본의 근현대 동아시아사 연구자 신조 미치히코가 2023년 나카코신서(中公新書)를 통해 펴낸 <한반도의 역사: 정쟁과 외환의 600년>은 조선 왕조의 개창(1392년)부터 일제강점기, 분단과 냉전, 그리고 현대 남북한 체제에 이르기까지 약 600년간 한반도가 마주한 권력 투쟁과 대외적 시련을 개괄한 통사적 교양 학술서다.
저자는 한반도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동력을 내부의 <정쟁(政爭)>과 외부로부터의 <외환(外患)>이라는 두 축으로 설정한다. 책의 주요 목적은 고착화된 통념과 민족주의적 서사에 갇히기 쉬운 한반도사를 지정학적 환경과 내부 권력 구조의 상호작용 속에서 실증적이고 균형 있게 재조명하는 데 있다. 6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을 비교적 콤팩트한 분량 안에 담아내며, 전통 시대의 유교적 통치 원리와 근현대의 냉전적 역학이 어떻게 연속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추적한다.
2. 주요 내용 요약
저자는 600년의 역사를 크게 네 가지 흐름으로 분절하여 서술한다.
첫째, <조선 왕조의 성립과 유교적 권력 체제의 명암>이다. 고려 말의 혼란 속에서 유교적 이상 국가를 표방하며 등장한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왕위 계승을 둘러싼 치열한 정쟁을 겪었다. 그러나 저자는 붕당 정치를 단순한 파벌 싸움이나 망국의 원인으로만 단정하지 않는다. 붕당은 유교적 의리론과 상호 견제를 바탕으로 권력 독점을 억제하는 공론(公論) 시스템의 성격을 띠었음을 짚는다. 문제는 이 제도가 자기 수정 능력을 잃고 특정 문벌의 기득권 수호로 변질되었을 때, 국가적 위기 대응력이 급격히 마비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임진왜란·병자호란과 외환의 충격>이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전반에 걸친 양대 전쟁은 한반도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명·청 교체기라는 거대한 대륙의 판도 변화 속에서, 조선 조정은 내부 명분론과 냉혹한 국제정세 사이에서 극심한 괴리를 겪었다. 외환 극복 과정에서 서인 중심의 집권층은 내부 결속을 위해 정통성을 강조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대외 감각을 경직시키고 18~19세기 세도정치와 체제 침체로 이어지는 온상이 되었다.
셋째, <개항,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그리고 식민지화>다.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박 속에서 조선은 근대화와 자주독립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조정 내부에서는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친청·친일·친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히며 정쟁을 거듭했다. 저자는 조선의 멸망을 단순한 수동적 피침략으로만 그리지 않고, 내부의 개혁 실패, 지도층의 분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전략이 맞물린 입체적 과정으로 조명한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통치와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의 다양한 갈래 역시 정밀하게 다룬다.
넷째, <해방과 분단, 그리고 현대 남북의 대립>이다. 1945년 해방은 외세에 의해 주어졌고, 미소 냉전의 최전선이 된 한반도는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이후 남북한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며 각자 내부의 권력 재편과 독재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나 여전히 진영 갈등과 이념 대립이 극심하며, 북한은 3대 세습 독재 체제 속에서 핵 개발을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현대 한반도 역시 과거 600년과 마찬가지로 대국들의 패권 경쟁(외환)과 내부의 양극화된 정치 갈등(정쟁)이 맞물린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3. 비판적 평론
신조 미치히코의 이번 저작은 다음과 같은 뚜렷한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장점으로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배제한 <냉철한 객관성>을 들 수 있다. 한국사 서술에서 흔히 나타나는 피해자 중심적 역사관이나 도덕주의적 단죄를 지양하고, 지정학적 조건과 제도적 인과관계를 차분하게 분석한다. 특히 붕당 정치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보던 식민사관의 왜곡을 극복하는 한편, 지나친 자민족 찬양으로 기우는 것도 경계하며 균형을 잡는다. 동아시아 전체의 세력 균형 변화 속에서 한반도 내부 정치가 어떻게 조응했는지를 일관된 맥락으로 엮어낸 점은 교양사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반면 한계 또한 명확하다. 책의 프레임워크인 <정쟁>과 <외환>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대신, 민중의 삶, 경제 구조의 변화, 문화적 발전 등 비정치적 동역학을 사상(捨象)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 발전의 중요한 축인 사회경제적 변동보다는 지배층의 권력 투쟁과 외교적 사건 위주로 서술이 편중되어 있다.
더불어, 한반도 역사를 지나치게 '외세에 휘둘리고 내부에서 다투는 구조'로 단순화할 경우, 과거 식민주의 사관이 내세웠던 '타율성론'이나 '당파성론'의 잔영으로 오독될 위험도 내포한다. 저자가 이를 의식하여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고는 있으나, 600년이라는 방대한 역사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구조적 원인보다는 정치 엘리트들의 갈등 국면이 과도하게 부각된 면이 있다.
4. 종합 평가
<한반도의 역사: 정쟁과 외환의 600년>은 외부 관찰자의 시선에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 공간이 겪어온 시련과 적응의 궤적을 명료하게 정리한 수작이다. 역사 속에서 지배층의 내부 분열이 국가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외교적 실기가 국난을 불렀던 과거의 교훈은 오늘날 미중 패권 경쟁과 남북 대치, 극단적 국내 정치 갈등을 겪고 있는 현대 동아시아 정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조 미치히코 (2023) 요약과 평론
新城道彦, 『朝鮮半島の歴史―政争と外患の六百年―』, 新潮選書, 2023. 296쪽. 2023년 제45회 산토리학예상 사상·역사 부문 수상작.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조선반도의 지난 600년을 이해하려면 왕조 내부의 정쟁과 주변 강대국의 세력 경쟁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의 건국과 붕괴,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해방 이후의 남북 분단을 하나의 장기적인 정치사로 연결한다. 특히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현대 국민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재검토한다.
이 글은 출판사의 상세 목차, 저자의 수상 소감, 공개 서평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요약과 비평이다. 따라서 원문 전체를 직접 대조한 장별 정밀 요약과는 구별한다.
1. 문제의식: 정쟁이 외환을 불러왔는가
신조 미치히코(新城道彦, 1978~)는 일본의 동아시아 근대사 연구자이다. 이전 저서 (天皇の韓国併合), (朝鮮王公族)에서는 일본제국이 대한제국 황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연구했다.
이번 책에서는 연구의 범위를 크게 확대해 1392년 조선왕조 건국부터 1953년 한국전쟁 정전까지 다룬다.
저자의 중심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조선반도에서는 국내의 정치적 분열이 국가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고, 외부 강대국의 개입은 다시 내부 권력투쟁을 격화시켰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23년 산토리학예상 수상 소감에서 이러한 해석을 직접 설명했다. 특히 조선반도를 주변 강대국 사이의 완충지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설명에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한국사를 외세 침략과 민족적 저항만으로 서술하는 대신, 왕실과 관료집단의 선택, 정치제도의 실패, 국제정치의 제약을 함께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정쟁이 외환을 불러왔는가, 아니면 강대국의 팽창이 조선 내부의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켰는가? 이 두 방향의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것이 이 책을 평가하는 핵심이다.
2. 제1장: 조선왕조의 건국과 권력투쟁
저자는 조선왕조의 성립을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국제질서의 변화와 국내 권력 재편이 결합한 사건으로 설명한다.
고려 말에는 원나라의 세력이 약화되고 명나라가 등장했다. 이성계는 요동정벌에 반대하면서 위화도회군을 감행했고, 결국 고려왕조를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새로운 국가체제의 설계를 담당했고, 이방원은 왕권 강화와 정적 제거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왕자의 난을 비롯한 유혈 권력투쟁이 이어졌다. 태종은 경쟁자들을 제거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다.
세종 시대에는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저자는 세종의 성군 이미지도 역사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세종 사후에는 계유정난과 세조의 즉위 등 폭력적인 권력 교체가 반복되었다.
15세기 후반부터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격화되고, 사화와 반정을 거쳐 사림 내부의 붕당 대립이 형성되었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조선의 정치가 단순히 유교적 도덕정치의 실현 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실제 정치에서는 왕위 계승, 인사권, 외척 관계, 관료집단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성군 중심 왕조사에 대한 유익한 교정이다.
그러나 사림의 등장을 단순한 당파정치의 시작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림은 향촌사회와 성리학적 공론을 바탕으로 기존 훈구 권력을 비판하는 정치세력이기도 했다. 붕당정치는 권력투쟁인 동시에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의 제도적 표현이었다.
3. 제2장: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 국제질서의 위기
16세기 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은 초기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선조는 한성을 떠나 피난했다.
그러나 의병의 저항,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의 활동, 명나라 군대의 참전으로 일본의 군사적 진격은 저지되었다.
저자는 전쟁 전 조선 내부의 붕당 대립과 외교적 판단의 문제에 주목한다. 조선의 지배층이 일본의 군사적 위협에 충분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정치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17세기에는 명나라가 쇠퇴하고 만주 지역에서 후금이 성장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신중한 외교를 추진했으나,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대외정책도 달라졌다.
그 결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했고, 조선은 청나라의 군사적 압력 아래 굴복했다.
저자는 특히 조선이 청나라와 종속적인 관계를 맺게 된 사실을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그는 조선의 역사인식에 존재하는 한 가지 모순을 지적한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기억하면서 청나라에 대한 종속은 민족적 역사인식 속에서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제기는 의미가 있지만, 명·청과 조선의 관계를 모두 동일한 의미의 속국 관계로 이해할 수는 없다.
책봉·조공 체제 아래에서도 조선은 상당한 내정 자율성과 독자적인 행정체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국제질서에서의 위계적 관계와 근대 식민지 지배를 구별해야 한다.
4. 제3장: 붕당정치의 변화와 19세기 왕조의 위기
18세기 영조와 정조는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저자는 탕평책의 성과뿐 아니라 그 부작용에도 주목한다. 국왕이 정파 간 균형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은 일시적인 안정을 가져왔지만,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자율적인 제도와 관행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19세기에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는 세도정치가 등장했다. 관료제의 부패, 지방행정의 수탈, 농민들의 불만이 누적되었다.
홍경래의 난, 1862년 농민항쟁, 동학의 확산은 왕조의 지배 질서가 심각한 위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질서를 재정비하려 했지만, 서구 열강과의 충돌 속에서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고종과 민씨 세력이 대원군을 몰아내면서 권력투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저자는 조선이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이 늦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근대화 실패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역시 유리한 정치적 조건, 기존 경제구조, 국제정세와 결합하여 성립했다.
조선이 일본과 같은 경로를 따르지 못한 것을 단순한 지도층의 무능이나 정쟁의 결과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5. 제4장: 청·일·러 경쟁과 대한제국의 소멸
이 책에서 저자의 전문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에서는 개화파와 수구파, 친청파와 친일파, 친러파 등이 복잡하게 대립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은 국내 정치갈등에 청나라와 일본이 직접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계기로 일본과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의 승리로 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조선은 기존의 책봉 질서에서 벗어났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했다. 그러나 일본과 러시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적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다.
1904~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1910년에는 강제로 병합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일본 지도층 내부의 정책 차이에도 주목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보호국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선호한 반면,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군부 지도자들은 직접 병합을 추진했다.
이러한 분석은 일본의 한국병합을 처음부터 모든 지도자가 동일하게 추진한 단일한 계획으로 보지 않고, 제국 내부의 정책 경쟁과 결정 과정을 살펴본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토의 병합 반대를 한국의 독립 존중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보호국화 자체가 이미 한국의 외교적 주권을 강탈하는 행위였으며, 이토의 대안도 제국주의적 지배 방식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제국 내부의 정치적 혼란이 일본 병합의 필연적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병합을 최종적으로 실행한 주체는 일본제국이었다.
6. 제5장: 해방과 남북 분단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은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점령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저자는 해방 이후에도 국내 정치세력들이 통합된 국가 건설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한에서는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좌익세력, 중도파가 국가 건설 방식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북한에서는 소련의 후원 아래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가 확립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고 냉전이 격화되면서 1948년 남한과 북한에는 각각 정부가 수립되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참전으로 국제전쟁이 되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분단은 지속되었다.
저자는 이 과정을 조선왕조 이래 이어진 정치적 분열과 외세 개입의 장기적 구조 속에 배치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분단을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연장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1945년 이후의 갈등은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토지개혁과 소유권, 민족주의와 냉전이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발생했다. 조선시대의 정치적 갈등과 구조적 유사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사적 원인은 동일하지 않다.
7. 핵심 논쟁: 조선은 과연 청나라의 속국이었는가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장은 조선의 독립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조선이 청나라의 종속 상태에서 벗어난 시점을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 또는 1897년 대한제국 수립으로 본다. 따라서 근대적 의미에서 온전한 독립을 누린 기간은 1905년 보호국화까지 약 8~10년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상징적 사례가 서울의 독립문이다. 독립문은 본래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청나라와의 전통적인 종속 관계에서 벗어났음을 기념하는 건축물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이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 지적에는 타당한 부분이 있다. 근대 이전 조선의 국제적 지위를 오늘날 국민국가의 독립 개념에 그대로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반대 방향의 시대착오에 빠질 위험이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 관계는 서구 근대 국제법의 주권 개념과 달랐다. 명·청의 책봉을 받았다고 해서 조선이 모든 대내외 정책의 결정권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독자적인 통치기관과 법률, 재정체계, 군사조직을 유지했다.
청과 조선의 관계도 1637년부터 1895년까지 변함없이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882년 이후 청의 적극적인 내정간섭은 그 이전의 관계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었다는 명제는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 간섭의 범위를 구분하여 설명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독립을 청나라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1895년의 독립과 1945년의 해방은 그 의미와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
8. 역사학적 평가: 정쟁 중심 역사관의 장점과 한계
이 책은 2023년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한반도 정치사 연구자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는 이 책이 조선왕조부터 분단까지의 장기적인 정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는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첫째, 정쟁은 조선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일본의 전국시대, 중국 명말·청말의 정치투쟁, 영국의 장미전쟁과 17세기 내전에서도 권력투쟁과 외세의 개입은 긴밀하게 결합했다.
따라서 조선의 정쟁이 유난히 파괴적이었다고 주장하려면 다른 국가와의 체계적인 비교가 필요하다. 이러한 비교 없이 정쟁을 조선 역사 전체의 주요 원인으로 설정하면 조선 정치문화의 결함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다.
둘째, 외침의 책임 문제이다.
정쟁이 국가의 방어 능력을 약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침략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임진왜란은 히데요시의 대외 팽창정책에서 비롯되었고, 한국병합은 일본제국의 군사적·외교적 침략의 결과였다.
조선 내부의 취약성은 침략에 대응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침략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셋째, 사회경제사의 비중이 작다.
이 책은 왕실, 관료, 정치파벌, 외교와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 결과 농업생산력, 상업의 성장, 신분제의 변화, 농민의 저항, 근대적 사회운동 등의 독자적인 역사적 의미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위험이 있다.
특히 동학농민전쟁을 왕조 위기나 청일전쟁의 발생 배경으로만 바라보면, 농민들이 추구했던 정치적·사회적 개혁의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넷째, 장기적인 역사적 연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와 해방 후 좌우대립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양자는 국가의 성격, 국제질서, 사회계급, 정치이념이 서로 달랐다.
600년의 역사를 하나의 인과적 연쇄로 설명하는 일은 독자의 이해를 돕지만, 시대별 단절과 변화를 희생시킬 가능성도 있다.
9. 종합 평가: 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읽는 책인가
신조 미치히코의 는 조선왕조의 성립에서 남북 분단까지를 국내 권력투쟁과 국제정치라는 두 축으로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다.
특히 일본인 독자들에게 한국사를 일본의 침략과 한국인의 저항이라는 양자관계만으로 이해하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가 조선의 정쟁, 고종의 정치적 판단, 대한제국의 외교적 한계 등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것도 학술적으로 정당한 작업이다.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서술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던 문제들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생산적인 자극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의 전체적인 설명 구조에는 정치적 취약성이 외세의 개입을 초래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저자에게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구조의 역사서술은 독자에게 조선의 멸망과 한국병합이 내부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역사적 결과를 그 이전의 모든 사건이 향하고 있었던 필연적인 종착점으로 해석하는 목적론이다.
1910년의 한국병합은 1392년 조선왕조 건국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었다. 1948년의 남북 분단 역시 조선시대 붕당정치가 예정한 결과가 아니었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장점과 약점은 동일한 곳에서 나온다. 600년의 복잡한 역사를 명확한 하나의 설명 구조로 통합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저자가 남북 분단의 비극뿐 아니라, 분단된 두 국가가 70년 이상 외부의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 없이 존속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이는 독립과 통일이 언제나 동시에 달성되는 목표는 아니었다는 역설을 제기한다.
그렇다고 분단이 독립을 보장하는 이상적인 상태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대외적 독립, 국민의 민주적 자기결정, 민족의 통일은 서로 구별해야 할 정치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해석하는 유일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 중심의 역사서술을 상대화하는 하나의 강력한 정치사적 관점으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게 읽을 때 신조의 저작은 한국사를 폄하하는 책도, 기존 한국사 연구를 대체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조선의 정치적 실패와 외부 제국주의의 책임을 어떻게 구별하고 연결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역사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앞서 살펴본 신조 미치히코의 과 연결하여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전자는 조선이 왜 주권을 상실했는가를 장기적인 정치구조에서 설명하려 하고, 후자는 일본이 한국병합 이후 조선의 왕실과 그 권위를 어떻게 제국의 지배질서 안으로 편입했는가를 분석한다.
두 책을 함께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두 설명은 양립할 수 있다. 다만 어느 한쪽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다른 쪽의 책임과 인과관계를 지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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