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8

영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 스크린에 돌아온다 : 네이트 연예

영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 스크린에 돌아온다 : 네이트 연예



영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 스크린에 돌아온다

스포츠경향 원문 기사전송 2026-07-22

“이렇게 웃던 소녀들이 우리 곁에 단 5명 남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안아주세요”

1943년, 영문도 모른 채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 끔찍한 절망 속에서도 끝내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끝나지 않은 여정이 10년 만에 다시 시작된다.

7만5270명의 국민이 후원하고 358만 관객이 함께 만든 기적의 영화 ‘귀향’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오는 8월 26일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로 다시 극장가를 찾는다. 8월 26일 문화의 날로 개봉일을 확정 짓고, 두 소녀의 먹먹한 웃음과 따뜻한 포옹을 담은 메인 포스터를 공개했다.

각본/감독: 조정래 | 출연: 강하나, 최리, 손숙 | 제작: 제이오엔터테인먼트 | 배급: 커넥트픽쳐스

2016년 개봉 당시 3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 국민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 심리치료 중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는 기존 상영본에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더해, 참혹한 절망 속에서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놓지 않았던 소녀들의 국경을 초월한 연대와 우정을 그린다.

공개된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 포스터는 14살 정민과 15살 영희가 서로를 껴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 위로 “이렇게 웃던 소녀들이 우리 곁에 단 5명 남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안아주세요”라는 묵직한 카피가 더해져 눈길을 끈다. 이와 함께 “8월 26일, 358만 관객을 울린 기적 10년 만에 다시 잇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어우러진다. 이는 10년 전 7만5000명의 마음이 모여 이뤄낸 숭고한 기적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환하게 웃는 소녀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잔혹한 현실을 교차시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책임감을 뭉클하게 환기한다.

개봉 확정과 함께 조정래 감독은 “이제 생존자는 단 다섯 분만이 살아계신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면서 절박한 심정이 담긴 ‘감독의 변(辯)’을 직접 발표했다.

조 감독은 글을 통해 “올 초 3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셨던 강일출 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며 “이후 대구 상영회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께서 ‘이제 네가 책임지고 해결해!’라고 제 등을 치시며 하시던 말씀이 번개처럼 내려왔다”고 재개봉을 결심하게 된 뼈아픈 계기를 밝혔다. 10년 전 개봉 당시 47명이었던 생존자는 현재 5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어 조 감독은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해결이란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며 그 역사를 후세에 올바르게 남기는 것”이라며 “이번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가 잊혀가는 역사를 다시 기억하게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기억하는 작은 문화적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고 진심 어린 호소를 전했다.

10년 전 7만5270명의 국민과 함께 시작된 기적,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는 오는 8월 26일, 전국 극장에서 관객들과 다시 한번 뜨거운 연대의 손을 맞잡을 예정이다.


■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 개봉에 부치는 조정래 감독의 변(辯)
안녕하십니까.
영화 ‘귀향’ 감독 조정래입니다.
영화가 개봉된 지 어느덧 10년째가 되었습니다. 7만5270명의 국민들께서 보내주신 마음이 모여 탄생한 영화 ‘귀향’은 그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달 국내외 상영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알리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어왔습니다.

올 초 3월, 영화 ‘귀향’의 실제 주인공이셨던 고 강일출 할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영정 앞에서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25년 전 나눔의 집에서 처음 뵈었던 순간을 오래도록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손을 맞잡고 조심스레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귀향 상영회가 떠올랐고 많은 시민들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며 또다시 상영회를 만들겠다며 그때도 꼭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얼마 뒤 대구의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귀향 상영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신 이용수 할머니께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찾아와 주셨습니다. 영화를 초대해 주신 시민단체 대표께서는 강일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이제 생존자가 다섯 분 밖에 남지 않았다며, 다시 한번 영화 ‘귀향’ 보기 운동’을 벌여 이 문제의 해결을 외쳐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제 마음속에서는 부끄럽게도 이미 많은 분들이 보신 영화를 다시 개봉한다는 것에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영화 상영을 마친 후,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마이크를 들고 지금 정부에서 꼭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이용수 할머니를 기억하는 저는 할머니의 낮게 떨리는 목소리에 목이 메었습니다.
할머니와 작별을 할 때 손을 잡고 오래도록 옛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국에서 마이크 혼다 의원과 동행했던 추억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하시는 할머니를 뵈며 비록 몸은 많이 쇠하셨지만 그 명징한 총기는 여전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말씀 도중 문득 할머니께서 제 등을 손바닥으로 치시며 하시던 말씀. “이제 네가 책임지고 해결해!” 그 말씀은 제게 번개처럼 내려왔습니다. 국민께서 제게 맡겨주신 영화 ‘귀향’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시는 회초리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이미 해결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지금도 이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피해자 중심의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계속되어 왔으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역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죄와 배상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해결’은 금전적 보상 자체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며 그 역사를 후세에 올바르게 남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바람은 피해자들의 오랜 증언뿐 아니라 우리 법률에서도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 역사교육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성남시장 시절, 그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던 시기에 영화 ‘귀향’ 상영회를 여러 차례 열어주시고 매번 오셔서 관람하셨습니다. 이후 경기도 지사 때도 수차례 나눔의 집을 방문하셔서 ‘피해자 중심 원칙’,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검토’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 역사 기억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제 생존자는 단 다섯 분만이 살아계십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절대로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어지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제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생존해 계신 다섯 분의 피해자들께서 평생 바라오신 ‘진정한 해결’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를 위해 부족하지만,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삶을 빼앗긴 수많은 소녀들의 영령과 지금도 생존해 계신 피해자 분들을 기억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과 광복절이 있는 8월, 영화 귀향’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오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담아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영화는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잊혀가는 역사를 다시 기억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있다고 믿습니다. ‘귀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기억하는 작은 문화적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 주신 7만5270명의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영화가 끝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는 8월 말, 다시 극장에서 함께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독 조정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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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가자>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줄거리 요약

영화는 1943년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간 열네 살 소녀 정민과 영희의 비극적인 과거,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생존자 영희(영옥)와 무녀 은경이 마주하는 현재를 교차하며 전개된다.

평화롭던 마을에서 강제로 차출되어 만주 전선의 일본군 위안소에 갇힌 소녀들은 감금과 폭행, 끔찍한 성폭력에 시달리며 생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정민과 영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버티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은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위안부 여성들을 집단 학살하기 시작하고, 탈출 과정에서 정민은 끝내 숨을 거두며 영희 홀로 살아남는다.

세월이 흘러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 살아온 노년의 영희는 무녀 은경을 만나 씻김굿을 치르게 된다. 영화는 정민을 비롯해 타향에서 비명횡사한 수많은 소녀들의 원혼을 나비의 형상으로 불러내어 마침내 그리던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위령 의식으로 매듭짓는다. 본 확장판은 이 극영화 서사에 실제 피해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 미공개 장면, 그리고 역사적 기록을 보강하여 구성되었다.

평론

영화 <귀향>은 일반적인 극영화의 문법보다는 일종의 시네마틱 '진혼곡'이자 거대한 '위령제'에 가깝다. 제목의 '귀향'이 단순히 몸이 돌아오는 귀향(歸鄕)에 그치지 않고 타지에서 스러져간 넋들을 고향으로 모셔온다는 귀향(鬼鄕)의 중의적 의미를 지니듯, 작품의 본령은 드라마틱한 서사적 완결성보다 잊힌 영혼들을 불러 모으는 의례적 성격에 있다.

기록과 제의(祭儀)로서의 가치

작품의 가장 강력한 힘은 외면하고 싶은 참상을 스크린 위로 직시하게 만든 데서 나온다. 특히 씻김굿이라는 한국 전통의 제의적 장치를 끌어들여, 산 자의 부채감과 죽은 자의 한(恨)을 교감하게 하고 이를 나비의 귀환이라는 상징으로 승화시킨 대목은 관객에게 깊은 정서적 파동을 안긴다. 확장판에서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과 인터뷰를 결합한 것은 이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명백한 역사적 실체임을 다시금 각인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영화적 완성도와 연출의 한계

그러나 영화 예술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참혹한 폭력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발생하는 윤리적 피로감과,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보다는 선악 구도를 평면적으로 강조한 연출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씻김굿과 판타지적 연출이 다큐멘터리적 고발성과 다소 충돌하며 서사의 결이 거칠어지는 지점, 그리고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느라 영화적 리듬과 조형미가 투박해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완성도의 미흡함을 넘어선 강력한 시대적 의의를 가진다. 시민들의 펀딩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는 점, 그리고 전쟁의 광기가 앗아간 보편적 인간의 존엄을 향해 "이제 집에 가자"는 위로를 건넸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사회적 텍스트로서 묵직한 무게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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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s 동안 처리함

영화 (2016) — 요약과 평론






한국 영화 · 역사 드라마 · 2016년
귀향 (Spirits' Homecoming, 2016)

감독·각본: 조정래

주요 출연: 강하나, 최리, 손숙, 서미지

상영시간: 127분

주요 주제: 일본군 '위안부', 식민지 여성의 고통, 역사적 기억, 생존자의 죄책감, 무속과 영혼의 귀환

1. 들어가며 —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귀향

조정래 감독의 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인 소녀들의 고통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작품의 핵심은 단순히 일본군의 잔혹행위를 폭로하는 데 있지 않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영혼을 고향으로 데려오고, 살아남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짊어진 고통을 위로하려는 데 있다.

영화 제목의 '귀향'은 일반적인 고향 귀환을 뜻하는 歸鄕이 아니라, 귀신의 귀(鬼)를 사용하는 鬼鄕이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다.

이 작품은 역사극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집단적 진혼 의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범죄와 식민지 지배의 문제인데, 영화가 이를 소녀들의 희생과 영혼의 위로라는 이야기로 표현할 때 역사적 책임의 문제는 충분히 드러나는가?

이 질문을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본다.

2. 줄거리 — 두 시대를 연결하는 고통과 기억

은 1943년의 식민지 조선과 1990년대 한국을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1943년, 열네 살 소녀 정민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난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에는 웃음과 따뜻함이 있다.

어느 날 정민은 일본군에 의해 가족과 강제로 헤어지고, 다른 조선인 소녀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낯선 땅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일본군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일본군 위안소는 소녀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정민은 그곳에서 영희를 만나 서로 의지한다. 두 소녀의 우정은 극심한 폭력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는 저항의 한 형태다.

전황이 악화되자 일본군은 소녀들을 살해하려 한다. 혼란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정민은 끝내 생명을 잃는다. 영희는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1990년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노년의 영옥은 과거의 고통을 숨긴 채 살아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침묵을 선택해 왔다.

다른 한편에는 성폭력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가진 소녀 은경이 등장한다. 은경은 무속의 세계와 연결되고, 죽은 자들의 영혼과 교감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 두 인물의 만남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마침내 무속 의식을 통해 죽은 소녀들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에 정민은 부모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간다.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귀향이 영화 속에서 상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Hangul Celluloid
+1

3. 영화의 중심 주제 — 고통의 재현보다 영혼의 귀환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증언과 영적 구원이라는 두 차원에서 다룬다는 것이다.

첫째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에 대한 고발이다.

영화는 소녀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위안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지배와 폭력에 희생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는 생존자의 고통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단지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계속되고, 죽은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남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생존자 죄책감(survivor guilt)'이다.

영희에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행복인 동시에 고통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죽은 정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동체적 애도다.

무속 의식은 사적인 고통을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위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영화에서 귀향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여성들의 고통을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이 점에서 은 단순한 역사 재현 영화보다 제의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4. 2026년 확장판 — 조선인 여성의 비극에서 아시아 여성의 비극으로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질문하신 는 2016년 영화 의 10주년 기념 확장판으로, 2026년 8월 26일 개봉했다. 기존 127분에 미공개 장면을 추가하여 상영시간이 132분으로 늘어났다.

새롭게 추가된 부분은 조선인 여성뿐 아니라 일본군 성폭력에 희생된 다른 아시아 여성들의 경험을 부각한다.

연합뉴스
+1

이 변화는 짧지만 역사인식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한국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 여러 지역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민족적 대립으로만 이해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적 성폭력 체제라는 더 넓은 역사적 구조를 놓치게 된다.

확장판은 바로 이 한계를 부분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추가된 분량이 짧기 때문에 작품 전체의 한국 민족 중심적 서사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5.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

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의 그림 에서 출발했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에서 이 그림을 접한 뒤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그러나 제작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약 7만 5천 명의 시민 후원을 받아 작품을 완성했다. 2016년 개봉 당시 관객은 약 358만 명이었다.

한성백제박물관
+2

영화는 실제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개별 인물과 사건을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서 여성들이 강제 동원, 기만, 경제적 압박, 인신매매 및 군사적 통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유를 박탈당하고 성폭력에 노출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연구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영화 속 모든 피해자가 어린 조선인 소녀이며 일본군이 직접 납치한다는 식의 묘사는 역사적 경험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지적하는 것이 일본군의 책임을 약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해의 다양한 형태와 제도를 가능하게 한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6. 평론 — 피해자의 고통을 보여주는 방식의 문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관객이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폭력을 영화로 표현할 때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그렇다.

관객이 성폭력의 잔혹함을 이해하도록 하려는 목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고통받는 여성의 신체가 반복적으로 화면에 등장할 때, 영화는 자신이 비판하려는 폭력을 또 다른 시각적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국내 학술논문 도 바로 이러한 모순을 지적한다. 여성 피해자를 위로하려는 이야기와 남성 중심적인 카메라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KCI

이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재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반드시 폭력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피해자의 삶, 인간관계, 두려움, 저항, 생존 전략, 전후 사회에서의 생활 등을 보여주는 것이 더 깊은 역사적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은 관객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피해자를 역사적 행위 주체로 충분히 보여주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다.

7. 무속과 역사적 정의 — 영혼의 귀환은 해결인가?

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씻김굿을 통한 영혼의 귀환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가 무속 의식을 중심적인 서사 장치로 선택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기독교적 구원이나 국가적 추모 의례가 아니라 한국의 민간신앙을 통해 죽은 여성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이것은 국가와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고통을 민중의 종교적 전통이 위로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역사적 정의가 실현되는가?

물론 영화가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객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서적 위안을 얻고 눈물을 흘리는 동안, 일본 정부의 책임과 국가적 배상, 전쟁범죄의 역사적 규명 같은 문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난다.

이 점에서 은 '기억의 정치'와 '위로의 종교성' 사이에 긴장을 안고 있다.

2020년 발표된 조란 리 페치치의 논문은 과 박찬경의 을 비교하면서, 이 무속을 통해 식민지 경험을 민족적 향수와 결합한다고 분석했다.

Taylor & Francis Online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씻김굿은 일반적으로 망자의 한을 풀고 저승으로 보내는 의례인데, 영화는 이를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변형했다.

영화적 상상력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한국 무속의 역사적 관습을 충실히 재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KCI

8. 종합 평가 — 애도를 넘어 역사적 책임으로

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다.

제작 과정 자체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집단적 역사 기억 운동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2026년 확장판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조선 민족의 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아시아 여성들의 공동 경험으로 확대하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는 세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피해자의 고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일본 제국의 군사제도, 국가권력, 식민지 지배의 구조적 작동 방식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둘째,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주로 무력하고 순수한 희생자로 그리기 때문에 생존자들의 다양한 삶과 역사적 주체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난다.

셋째, 영적 귀환이라는 결말은 깊은 위로를 제공하지만, 역사적 책임의 문제가 관객의 정서적 만족 속에서 희석될 위험도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역사적 책임을 망각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래 감독 자신은 확장판을 발표하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올바른 역사 전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결국 작품의 목적과 그것이 관객에게 미치는 효과는 구별해야 한다.

나의 평가는 이렇다.

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기억의 영화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관한 충분한 역사적 분석을 제공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그러한 희생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권력과 군사제도를 이해하고,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여성의 민족적 수난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전쟁, 가부장제, 여성의 성적 착취가 교차하는 세계사적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26년 확장판이 다른 아시아 여성들의 경험을 추가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영화 마지막의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라는 말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역사적 성찰은 그 말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왜 소녀들은 집을 떠나야 했는가? 누가 그들을 보냈으며, 누가 그 제도를 유지했는가?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왜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죽은 소녀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은 애도의 영화로서는 강력하지만, 역사적 정의의 영화로서는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이것이 작품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오늘날에도 계속 논의할 가치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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