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 야요리·우에노 지즈코·박유하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인식 비교
세 사람을 함께 놓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식사에서 매우 다른 세 가지 길이 보입니다.
마쓰이 야요리는 <가해국 일본의 책임과 피해여성의 증언>을 중심에 놓습니다. 우에노 지즈코는 <전쟁·국가·민족주의·가부장제의 결합>을 분석합니다. 박유하는 <식민지 지배 속에서도 실제 경험과 기억은 단일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차이를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 마쓰이 야요리 | 우에노 지즈코 | 박유하 | |
|---|---|---|---|
| 중심 질문 | 일본은 아시아 여성에게 무엇을 했는가 | 왜 여성의 몸이 국가·민족주의의 전장이 되는가 | 실제 위안부 경험은 왜 하나의 피해서사로 환원되었는가 |
| 핵심 개념 | 전쟁 성폭력·일본의 가해책임 | 젠더·국민국가·기억·가부장제 | 제국·식민지·기억의 복수성 |
| 피해자 증언 | 정치적·역사적 출발점 | 기억정치 분석의 핵심 | 기존 운동이 배제한 다양한 증언까지 포함해야 함 |
| 일본 국가 책임 | 매우 강하게 강조 | 구조적으로 강하게 강조 | 인정하지만 책임의 방식과 행위자를 세분화 |
| 한국 민족주의 비판 | 상대적으로 약함 | 일본·한국 모두 비판 | 매우 강함 |
| 운동과의 관계 | 직접적인 운동가 | 운동과 학문을 오가는 비판적 지식인 | 운동의 지배적 서사를 비판 |
| 가장 큰 위험 | 운동 논리가 사실 검증을 압도할 가능성 | 피해의 구체성이 구조론 속에 희석될 가능성 | 식민지 권력의 비대칭이 흐려질 가능성 |
이 차이를 조금 깊게 보겠습니다.
1. 마쓰이 야요리: <가해국 여성으로서 일본을 고발한다>
마쓰이에게 위안부 문제는 무엇보다 <일본의 전쟁범죄와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입니다.
첨부하신 자료에서도 그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부터 위안부 문제를 다루었고, 이후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일본 네트워크>를 설립하고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의 공동대표가 된 인물로 나타납니다. 松井やより
그의 사고방식에는 명확한 권력구도가 있습니다.
일본 제국
→ 군대
→ 식민지 지배
→ 가부장제
→ 여성의 성적 동원
따라서 위안부 여성은 우선적으로 <제국과 군사주의의 피해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쓰이가 일본 여성 자신도 일본제국의 피해자였다고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본 여성도 식민지 아시아와의 관계에서는 가해국 국민의 위치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의 질문은 끊임없이 일본 내부로 되돌아옵니다.
<우리는 아시아 여성에게 무엇을 했는가?>
이것이 마쓰이의 윤리적 출발점입니다.
마쓰이에게 증언은 무엇인가
증언은 단순한 역사자료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던 여성이 직접 말하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권력관계를 뒤집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마쓰이의 접근에서는
<피해자가 말한다 → 일본 사회가 듣는다 → 책임을 인정한다 → 배상하고 기억한다>
라는 구조가 매우 강합니다.
이 점에서 마쓰이는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명확한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우에노 지즈코: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들어내는 국가와 젠더 구조를 묻는다>
우에노 지즈코는 마쓰이보다 한 단계 더 추상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왜 전쟁에서 여성의 성이 국가와 민족의 문제가 되는가?>
입니다.
대표작 <ナショナリズムとジェンダー 국민주의와 젠더>에서 우에노는 위안부 문제를 통해 국민국가와 가부장제의 관계를 분석합니다. 관련 연구에서도 우에노가 1990년대까지 위안부 여성의 목소리가 억압된 배경에 일본과 한국 양국의 민족주의와 가부장제가 있었다고 강조한다고 평가합니다. JSTAGE
여기서 마쓰이와 미묘한 차이가 생깁니다.
마쓰이는 기본적으로
<일본 → 조선·아시아 여성>
이라는 가해-피해 축을 강조합니다.
반면 우에노는 여기에 하나의 축을 더 넣습니다.
<일본 국가 ↔ 한국 국가 ↔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 여성>
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 역시 위안부 여성에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민족주의에서는 여성의 몸이 흔히
<민족의 순결>,
<민족의 수치>,
<민족의 피해>
를 상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안부 여성 개인이 자신의 복잡한 경험을 말하기보다 <민족의 피해자>라는 역할을 요구받을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3. 우에노의 중요한 문제: ‘민족의 피해’와 ‘여성의 피해’는 같은가
우에노의 페미니즘은 여기서 매우 날카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가
<일본 남성이 조선 여성에게 가한 범죄>
로만 구성될 경우,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만 동시에
<조선 남성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도 가부장제가 있었고, 여성의 성과 순결을 가족·민족의 소유물처럼 보는 구조가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끝난 뒤 피해여성이 침묵하게 된 이유를 모두 일본의 억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과 공동체에서 배척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에노에게 이것은 일본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논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서로 적대하면서도 여성 지배에서는 닮을 수 있다>
는 것이 핵심입니다.
4. 박유하: <피해자의 경험 자체도 하나가 아니었다>
박유하는 여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는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단일한 유형으로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책 소개도 이 책이 전 위안부들의 증언을 검토하면서 한일 양국의 대립적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고, 동시에 <제국 아래의 여성>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설명합니다. 国立国会図書館サーチ(NDLサーチ)
박유하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강제로 끌려간 어린 조선 여성 →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 해방 후 피해자>
라는 하나의 표준적 이미지가 모든 여성의 경험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증언을 읽으면
사기당한 사람,
인신매매된 사람,
업자에게 모집된 사람,
도망칠 수 없었던 사람,
폭력을 당한 사람,
등 경험이 다양했고, 때로는 일본군 병사와 인간적인 관계나 애정이 생긴 사례도 나타납니다.
박유하는 이런 기억도 지우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녀의 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보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피해자에게 우리가 원하는 기억만 말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반면 비판자들은 박유하가 일부 증언을 선택적으로 읽으면서 ‘동지적 관계’나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논쟁은 당시 상당히 격렬했고, 박유하의 책은 한국에서 민형사상 소송 대상이 되었습니다. The Asia-Pacific Journal
5. 세 사람에게 가장 큰 차이: <복잡성>을 어디에 두는가
여기서 세 사람의 차이가 아주 선명해집니다.
마쓰이에게 복잡성은 주로
<전쟁 성폭력의 다양한 형태>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권력관계는 명확합니다.
<일본 제국이 가해자이고 아시아 여성은 피해자이다.>
우에노에게 복잡성은
<제국주의 + 민족주의 + 가부장제>
사이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가해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민족주의가 피해여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묻습니다.
박유하에게 복잡성은 한층 더 개인의 경험 안으로 들어갑니다.
동일한 위안부 제도에서도
폭력,
강제,
돈,
애정,
공포,
친밀성,
식민지인으로서의 동원
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사람을 세 문장으로 만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쓰이:
<가해를 흐리지 말라.>
우에노:
<가해와 피해를 만들어내는 국가와 젠더의 구조를 보라.>
박유하:
<그 구조 속에서도 개인의 경험을 하나로 만들지 말라.>
6. ‘성노예’라는 개념에서도 차이가 난다
마쓰이는 위안부 제도를 본질적으로 <군사적 성폭력>의 제도로 봅니다.
따라서 국제적인 여성인권 담론과 연결하기 쉽습니다.
우에노 역시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과 성적 착취를 인정하지만, 동시에 <성노예>라는 명칭 자체도 기억정치 안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박유하는 이 표현에 가장 많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 이유는 위안부의 구체적 경험을 하나의 <성노예 모델>로 설명할 경우 일본군·업자·식민지 사회·여성 자신의 처지가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박유하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도 나옵니다.
구체적 차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제도의 근본적 강제성과 식민지 권력관계가 약화되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유하 비판자들은 특히 ‘동지적 관계’나 일본군과의 친밀성에 관한 서술이 이러한 위험을 실제로 낳았다고 주장했습니다. The Asia-Pacific Journal
7. 그런데 우에노와 박유하는 생각보다 가까운 부분도 있다
매우 흥미로운 점입니다.
우에노는 박유하의 모든 역사적 해석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박유하에 대한 형사 기소에는 반대했습니다.
2015년 박유하 기소에 항의한 일본과 미국 등의 지식인 성명에 우에노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The Asia-Pacific Journal
이것은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박유하의 역사해석이 맞는가>
와
<그 역사해석을 국가가 형사법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에노에게 이것은 학문과 기억의 자유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우에노는 위치상 마쓰이와 박유하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책임과 피해여성의 권리를 강하게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의 기억을 하나의 국민적 정답으로 고정하는 것에도 경계합니다.
8. ‘민족주의’를 대하는 태도가 세 사람을 가른다
이 차이는 특히 한국을 바라볼 때 분명합니다.
마쓰이에게 가장 중요한 민족주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일본 민족주의>입니다.
일본이 자신을 피해자로 기억하며 제국주의의 가해 역사를 망각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우에노는 대칭적이지는 않지만 양쪽을 봅니다.
일본 민족주의는 가해를 은폐하고,
한국 민족주의는 위안부 여성을 <민족의 피해자>라는 특정한 위치에 고정할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박유하는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훨씬 강합니다.
그녀는 한국의 위안부 운동과 기억정치가 다양한 경험 가운데 특정한 형태를 ‘올바른 피해자의 기억’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 결과 박유하는 한국에서는 일본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논자로 비판받았고, 반대로 일본에서는 기존 한국의 역사서사를 비판한 지식인으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었습니다. 당시 논쟁을 다룬 연구에서도 이런 상반된 수용이 확인됩니다. The Asia-Pacific Journal
이 일본에서의 호의적인 수용 자체도 박유하 논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저자의 의도와 별개로 책이 <일본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는 방향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9. ‘피해자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말도 세 사람에게 뜻이 다르다
세 사람 모두 피해여성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뜻이 다릅니다.
마쓰이에게는
<지워졌던 피해자의 증언을 공론장으로 가져오는 것>
입니다.
우에노에게는
<국가와 남성이 피해여성을 대신해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박유하에게는
<피해자에게도 모순되고 불편하고 예상 밖의 기억을 말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박유하 비판자들의 반론 역시 바로 이 지점을 겨냥했습니다.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논지에 맞는 증언만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The Asia-Pacific Journal
따라서 이 논쟁의 핵심은 단순히
<피해자의 말을 믿느냐?>
가 아닙니다.
더 어려운 질문은
<누가 어떤 증언을 선택하고, 어떤 맥락에서 읽으며, 그것을 어떤 역사 이야기로 만드는가?>
입니다.
10. 세 접근의 강점과 약점
마쓰이 접근의 가장 큰 강점은 <권력의 비대칭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식민지 지배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을 같은 위치에 놓지 않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출발점이 일본제국의 전쟁과 군사체제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틀이 너무 강해지면 피해자의 개인적 경험이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평면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에노의 장점은 일본과 한국의 민족주의, 가부장제, 기억정치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조 분석이 정교해질수록 ‘누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라는 역사적 책임 문제가 이론 속에서 멀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박유하의 강점은 피해자들 사이의 차이와 모순을 다시 끌어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위험 역시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복잡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권력관계가 대칭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 사이에 애정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제국과 식민지 조선 사이의 구조적 비대칭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이 점이 박유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봅니다.
11. 세 사람을 하나의 좌표 위에 놓으면
아주 간단한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구조적 가해책임
마쓰이 야요리
↓
우에노 지즈코
↓
박유하
개별 경험과 기억의 복수성
그러나 이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임을 약화시킨다’고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설명은 질문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쓰이:
<누가 여성에게 폭력을 가했는가?>
우에노:
<어떤 국가·젠더 구조가 그 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기억하게 만드는가?>
박유하:
<그 구조 안에서 실제 여성들은 무엇을 경험했고, 왜 그 기억은 서로 다른가?>
세 질문은 원칙적으로 동시에 필요합니다.
12.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지점
이 세 사람을 함께 읽으면 위안부 문제에서 흔히 생기는 잘못된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면 피해자의 복잡한 경험을 말할 수 없다>
거나 반대로
<피해자의 복잡한 경험을 인정하면 일본의 책임이 약화된다>
는 식의 선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는 두 문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제도는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간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일본군 병사와의 관계는 동일하지 않았다.>
마쓰이는 첫 번째 문장을 끝까지 지키려 했고, 박유하는 두 번째 문장을 다시 회복시키려 했으며, 우에노는 그 두 문장이 각각 어떻게 <국가와 민족의 기억>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질문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다른 두 사람을 ‘교정한다’고 보기보다는,
마쓰이는 <책임>, 우에노는 <구조와 기억>, 박유하는 <관계와 복수성>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다
고 읽는 것이 세 사람의 차이를 가장 생산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진님이 최근 계속 읽어오신 <이은선–박유하> 문제와도 곧바로 연결됩니다. 이은선을 여기에 넣으면 매우 흥미로운 네 번째 축, 즉 <여성주의적 관계성·화해·종교적 윤리>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마쓰이–우에노–박유하–이은선> 네 사람의 차이가 훨씬 더 선명해집니다.
마쓰이 야요리·우에노 지즈코·박유하·이은선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인식 비교
이은선을 넣으면 네 사람의 차이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세 사람의 비교에서는 <책임–구조–복수성>이 중심이었다면, 이은선은 여기에 <관계·치유·화해·종교윤리>를 추가합니다.
아주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물 | 중심 질문 | 가장 중요한 개념 | 위안부 문제의 핵심 |
|---|---|---|---|
| 마쓰이 야요리 | 일본은 아시아 여성에게 무엇을 했는가 | 전쟁 성폭력·가해책임 | 일본 제국과 군대의 책임 |
| 우에노 지즈코 | 왜 여성의 몸이 국가와 민족의 전장이 되는가 | 젠더·국민국가·기억 | 제국주의·민족주의·가부장제의 결합 |
| 박유하 | 실제 피해자의 경험은 정말 하나였는가 | 제국·관계·기억의 복수성 | 단일한 피해자 서사의 해체 |
| 이은선 | 상처 입은 관계는 어떻게 진실과 책임을 통과해 치유될 수 있는가 | 여성신학·관계성·기억·화해 | 책임 없는 화해를 거부하면서 관계 회복을 추구 |
1. 이은선은 마쓰이와 상당히 가깝다: 먼저 ‘가해의 구조’를 본다
이은선은 기본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식민주의와 남성중심적 전쟁체제가 만든 여성폭력으로 봅니다.
이 점에서 박유하보다는 마쓰이 야요리에 훨씬 가깝습니다.
마쓰이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주의가 아시아 여성에게 가한 폭력>
을 강조한다면, 이은선은 여기에 여성신학의 언어를 더합니다.
즉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국가 간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 가부장제 + 여성 신체의 도구화>
가 결합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피해여성의 고통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은 채
“이제 미래로 가자”
거나
“양쪽 모두 잘못이 있었다”
고 말하는 방식에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이 점에서 이은선에게 화해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먼저 진실을 말하고, 가해가 인정되고, 피해자의 고통이 받아들여진 뒤에야 화해가 가능합니다.
2. 그러나 이은선은 마쓰이와도 다르다: 최종 목표는 ‘고발’보다 관계 회복이다
마쓰이 야요리의 언어에는
<고발·책임·전쟁범죄·여성인권>
이 매우 강합니다.
반면 이은선에게는
<치유·관계·생명·평화·화해>
라는 종교적 언어가 더 강합니다.
이 차이는 꽤 중요합니다.
마쓰이는 무엇보다
<가해자를 책임지게 하는 정치적 윤리>
를 강조합니다.
이은선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영원히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남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유하식으로 가해·피해 구도를 빨리 해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순서는 이렇습니다.
상처의 인정
→ 가해책임의 인정
→ 피해자의 존엄 회복
→ 기억의 공동체화
→ 관계의 변화
→ 화해
즉 이은선에게 화해는 <망각>이나 <책임 면제>가 아닙니다.
3. 이은선과 우에노: 둘 다 민족주의와 가부장제를 비판하지만 방향은 다르다
우에노 지즈코와 이은선도 상당히 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의 문제가 국가와 민족의 논리에 흡수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우에노의 질문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왜 여성의 몸이 민족의 순결과 수치를 상징해야 하는가?>
이은선 역시 위안부 여성을 단순히
<민족의 수난을 대신 보여주는 여성>
으로만 보는 방식에는 불편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우에노는 이것을 사회학적·페미니즘적 구조분석으로 풀어냅니다.
국민국가
민족주의
가부장제
젠더체제
기억정치
등의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은선은 같은 문제를 보다 윤리적·종교적으로 묻습니다.
<여성의 고통을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피해자를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상처를 반복하지 않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따라서 우에노가 <구조의 비판>에 강하다면 이은선은 <관계의 재구성>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4. 가장 큰 긴장은 이은선과 박유하 사이에 있다
네 사람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립은 이 둘입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단순한 민족주의를 넘어가려 하고, 궁극적으로는 한일 사이의 화해를 생각하지만, 그 화해에 도달하는 길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박유하는 먼저 묻습니다.
<우리가 피해자의 경험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은선은 먼저 묻습니다.
<그 복잡성을 말하는 방식이 피해자의 상처와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차이가 핵심입니다.
박유하는
<복잡성 → 관계의 재해석 → 화해>
쪽으로 움직입니다.
이은선은
<상처의 인정 → 책임 → 치유 → 관계 → 화해>
쪽으로 움직입니다.
둘 다 화해를 말하지만 순서가 다릅니다.
5. ‘관계성’이라는 말도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박유하에게 <관계>란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는 개념입니다.
식민지 조선인은 일본 제국의 완전한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의 식민지인>이었고,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에도 상황에 따라 의존·애착·동지감 같은 감정이 생길 수 있었다고 봅니다.
즉 관계는
<역사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도구>
입니다.
반면 이은선에게 관계는 단순히 있었던 관계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윤리적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같은 <관계성>이라는 말을 쓰더라도 방향이 다릅니다.
박유하:
<실제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했다.>
이은선:
<폭력으로 파괴된 관계를 어떻게 정의롭고 평화로운 관계로 바꿀 것인가?>
전자는 역사해석이고, 후자는 규범적 윤리입니다.
6. 피해자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마쓰이는 피해자를
<억압받았으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하는 여성>
으로 봅니다.
우에노는
<국가와 민족이 대신 말해서는 안 되는 여성 주체>
로 봅니다.
박유하는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을 가진 개별적 주체>
로 봅니다.
이은선은 여기에
<상처 입었지만 단순한 피해자 정체성을 넘어 존엄과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주체>
라는 관점을 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은선이 피해자 중심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를 영원히
<상처받은 피해자>
라는 위치에 고정하는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여성신학의 중요한 관심은 억압받은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와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는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
과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남겨두지 않는 것>
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7. 이은선의 박유하 비판에서 중요한 부분
이전의 이은선–박유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은선이 박유하의 접근을
<역사적 가해의 특수성과 집단적 책임을 지나치게 관계의 복잡성 속에 녹여버리는 것>
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이은선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박유하가 피해여성의 경험이 다양하다고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누가 지배했고 누가 지배당했는가>
라는 식민지 권력의 비대칭이 상대화될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이은선에게는
<복잡성보다 먼저 책임의 비대칭을 분명히 해야 한다>
는 윤리적 순서가 있습니다.
박유하에게는 반대로
<책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복잡성을 지워서는 안 된다>
는 지적 순서가 있습니다.
이 둘은 단순히 한쪽이 책임을 인정하고 다른 쪽이 부정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하는가>
에 대한 충돌에 가깝습니다.
8. ‘화해’에서도 네 사람이 크게 갈린다
이 문제를 기준으로 보면 차이가 아주 잘 보입니다.
마쓰이 야요리
화해 이전에
<진상규명·일본의 책임·공식 사죄·피해자 권리>
가 우선합니다.
그녀의 정치적 언어에서 화해는 상대적으로 뒤에 있습니다.
우에노 지즈코
화해 자체보다는
<어떤 기억이 국가와 민족의 공식 기억이 되는가>
를 더 문제 삼습니다.
국가가 피해여성을 다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유하
네 사람 중 <화해>를 역사해석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합니다.
기존의 가해자/피해자 이분법만으로는 한일관계를 미래로 가져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서로 얽혀 있었던 과거를 다시 읽으려 합니다.
이은선
화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정의 없는 화해>
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화해는 종교적·윤리적 목표이지만
진실과 책임을 통과하지 않은 화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박유하보다 <화해>라는 이상에는 가까우면서도, 현실적인 위안부 논쟁에서는 박유하에게 더 비판적일 수 있습니다.
9. 네 사람의 핵심 문장을 만들어 보면
마쓰이 야요리:
<가해를 직시하고 책임져야 한다.>
우에노 지즈코:
<국가와 민족이 여성의 경험을 소유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박유하:
<피해자의 실제 경험을 하나의 공식 기억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은선:
<상처와 책임을 충분히 인정해야 비로소 관계가 치유되고 화해할 수 있다.>
이렇게 놓으면 상당히 명확합니다.
10. 네 사람을 두 개의 축으로 보면 더 재미있다
한 축을
<구조적 책임 ←→ 개인 경험의 복수성>
으로 놓고,
다른 축을
<비판·고발 ←→ 관계·화해>
로 놓아볼 수 있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비판·책임 쪽 | 관계·화해 쪽 | |
|---|---|---|
| 구조 중심 | 마쓰이 야요리 | 이은선 |
| 기억·개인 경험 중심 | 우에노 지즈코 | 박유하 |
물론 정확한 사분면은 아니지만 네 사람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특히 이은선과 박유하는 둘 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은선은 <정의 이후의 관계>,
박유하는 <이미 존재했던 복잡한 관계>
를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한 가지 차이가 둘 사이의 긴장을 상당 부분 설명합니다.
11. 여기서 이은선의 여성신학이 결정적으로 들어온다
이은선이 다른 세 사람과 가장 다른 것은 결국 종교입니다.
마쓰이도 기독교적 배경이 있었지만 그의 공적 언어는 주로 인권운동의 언어였습니다.
우에노는 사회학과 페미니즘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박유하는 문학·식민지 연구·기억론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은선은 여기에
<성(聖)·성(性)·성(誠)>
그리고 유교, 여성신학, 생명, 평화, 관계성을 연결합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 역시 단순한 역사판정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며, 잘못된 관계를 어떻게 다시 만들어갈 것인가>
라는 영적·윤리적 문제입니다.
이것이 이은선의 독특한 위치입니다.
12.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은선 자신의 긴장도 생긴다
이은선의 접근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그녀는
<관계·포용·화해·생명>
을 매우 강조하는 사상가입니다.
그런데 박유하 문제에서는 상당히 강한 비판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모순이라기보다 그의 사상 안의 긴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어디까지 포용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관계성과 화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도
<가해책임을 희석한다고 판단되는 담론까지 포용해야 하는가?>
라는 한계가 생깁니다.
이은선은 여기에서
<관계성보다 정의와 피해자의 기억이 먼저다>
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박유하는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관계의 복잡성을 말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고 말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갈등은 의외로 깊은 철학적 문제입니다.
단순한 <친일 대 반일> 논쟁이 아닙니다.
13. 네 사람을 함께 읽었을 때 가장 중요한 통찰
저는 네 사람을 합쳐 읽으면 다음 네 질문을 동시에 던질 수 있다고 봅니다.
마쓰이의 질문
<누가 무엇을 했으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우에노의 질문
<국가와 민족은 여성의 기억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박유하의 질문
<그 공식 기억에서 사라진 개인의 다른 경험은 무엇인가?>이은선의 질문
<그 기억과 책임을 안고 우리는 어떤 관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 네 질문 가운데 하나만으로 위안부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쓰이만 있으면 역사적 책임은 선명하지만 관계의 복잡성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에노만 있으면 구조분석은 정교하지만 피해자의 구체적 삶이 멀어질 수 있습니다.
박유하만 있으면 복잡성은 살아나지만 권력의 비대칭이 약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은선만 있으면 윤리와 치유의 지평은 넓어지지만 <어느 시점부터 화해가 가능한가>라는 어려운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네 사람을 하나의 연속된 질문으로 읽으면 가장 생산적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마쓰이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 우에노
<그 안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가?> — 박유하
<그 역사를 안고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 이은선
이렇게 보면 이은선은 단순히 네 번째 인물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세 사람이 주로 다룬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윤리와 관계의 미래>로 가져가는 위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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