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The Long Defeat: Cultural Trauma, Memory, and Identity in Japan
Hashimoto, Akiko 2015
Description
Book written by 1995 Abe Fellow Akiko Hashimoto based on her project “Collective Memories of World War II in Japan, Germany and the US.”
In The Long Defeat, Akiko Hashimoto explores the stakes of war
memory in Japan after its catastrophic defeat in World War II, showing
how and why defeat has become an indelible part of national collective
life, especially in recent decades. Divisive war memories lie at the
root of the contentious politics surrounding Japan’s pacifist
constitution and remilitarization, and fuel the escalating frictions in
East Asia known collectively as Japan’s “history problem.” Drawing on
ethnography, interviews, and a wealth of popular memory data, this book
identifies three preoccupations – national belonging, healing, and
justice – in Japan’s discourses of defeat. Hashimoto uncovers the key
war memory narratives that are shaping Japan’s choices – nationalism,
pacifism, or reconciliation – for addressing the rising international
tensions and finally overcoming its dark history.
The Japanese translation of The Long Defeat (日本の長い戦後: 敗戦の記憶・トラウマはどう語り継がれているか) is available from Misuzu Sho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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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g Defeat: Cultural Trauma, Memory, and Identity in Japan
Hashimoto, Akiko
University of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June 2015
On the Web
https://global.oup.com/academic/product/the-long-defeat-9780190239169?cc=us&la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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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패배: 일본의 문화적 트라우마, 기억, 그리고 정체성>
(The Long Defeat: Cultural Trauma, Memory, and Identity in Japan)
하시모토 아키코(Hashimoto, Akiko), 2015
서론: 왜 일본은 <패배>를 끝내지 못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전쟁 기억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패전이 단순한 군사적 실패에 그치지 않고 국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한 <문화적 트라우마(cultural trauma)>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패전국 일본은 파괴된 도덕적 지반을 복구하고 무너진 자아 존중감을 재건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했다.
본문 요약: 세 가지 기억 서사와 도덕적 지향
하시모토는 교과서, 언론 보도, 영화, 만화, 구술 증언 등 광범위한 대중문화와 공적 담론을 분석하여 전후 일본 사회를 지배해 온 세 가지 핵심 기억 서사를 도출한다.
첫째, <피해자 서사(Victim narrative)>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도쿄 대공습, 오키나와 전투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서사는 무모한 군국주의 지도자들에게 기만당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평범한 일본인들의 고통을 강조한다. 이 서사의 핵심 감정은 비탄과 상실이며, 도덕적 목표는 고통의 <치유(healing)>와 반전 평화주의의 확립이다.
둘째, <가해자 서사(Perpetrator narrative)>이다. 난징대학살, 731부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저지른 잔학 행위를 직시하고 국가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적 담론이다. 이 서사를 움직이는 도덕적 동력은 과거 청산과 <정의(justice)>의 실현, 그리고 피해국들과의 진정한 화해다.
셋째, <영웅적 희생자 서사(Fallen Hero narrative)>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비롯해 전장에서 산화한 군인들을 국가와 가족을 위해 고귀하게 헌신한 비극적 영웅으로 기리는 보수주의적 서사다. 이 담론은 패배의 오욕 속에서 국가적 존엄과 <도덕적 소속감(national belonging)>을 회복하려는 충동에 기반한다. 이 서사 안에서 전몰자는 가해자가 아니라 순수한 애국심을 지닌 숭고한 존재로 미화되며, 이는 전후 평화주의 체제를 넘어 군사적 보통국가화를 꾀하는 우파 정치의 강력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된다.
저자는 이 세 서사가 각각 치유, 정의, 소속감이라는 근본적인 인간적 요구를 대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비평: 책의 성과와 한계
<오랜 패배>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일본의 전쟁 기억을 <망각하는 가해자 대 기억을 요구하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구출해 냈다는 점이다. 외부 관찰자들은 종종 일본 전체를 역사 수정주의에 매몰된 단일 집단으로 단순화하기 쉽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일본 내부가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으며, 전후 일본인들이 패전의 굴레 속에서 도덕적 자아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내적 갈등을 겪어 왔는지를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텍스트 선정과 분석의 스펙트럼 또한 매우 돋보인다.
반면 이 연구는 몇 가지 분석적 한계도 내포하고 있다.
첫째, 화해의 가능성에 대한 비관적 현실 분석의 부재다.
둘째, 냉전 질서와 미일 동맹이라는 국제정치적 구조에 대한 설명의 부족이다. 일본의 불완전한 탈식민화와 과거사 청산의 실패는 내부적 심리 갈등 때문만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도쿄재판을 통해 천황의 책임을 면제하고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았던 미국의 전략적 개입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결론: 동아시아 화해를 위한 시사점
하시모토 아키코의 <오랜 패배>는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퇴행을 단순히 일탈적 민족주의로 치부하지 않고, 미완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깊은 구조적 상처로 이해하게 돕는 수작이다. 패배의 낙인을 씻어내지 못한 사회가 느끼는 불안감이 어떻게 퇴행적 민족주의로 전환되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결국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역사적 화해는 일본 내부에서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는 <정의>의 서사가 시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고, 타자의 고통을 배제하지 않는 성숙한 <치유>의 서사로 나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책은 일본이 스스로의 상처를 넘어 이웃 국가들과 공존하는 윤리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어떤 험난한 도덕적 과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환기한다.
하시모토 아키코 — 일본의 문화적 트라우마, 전쟁 기억, 국민 정체성
Akiko Hashimoto, The Long Defeat: Cultural Trauma, Memory, and Identity in Japan,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1,000단어 요약 및 평론
일본어판은 日本の長い戦後――敗戦の記憶・トラウマはどう語り継がれているか (みすず書房, 2017)이다.
사회학자 Akiko Hashimoto는 일본의 패전 경험이 70년 이상 지난 뒤에도 왜 국민 정체성과 정치적 갈등을 지배하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의 핵심은 일본이 전쟁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전쟁 기억들 사이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1. 문제의식: 일본의 패전은 왜 끝나지 않았는가?
1945년 일본은 군사적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패전이라는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그것이 남긴 사회적·도덕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전후 경제성장에 성공했고 민주주의 국가로 재편되었으며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그럼에도 제국 일본의 침략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하시모토는 이러한 현상을 문화적 트라우마(cultural trauma)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문화적 트라우마는 단순히 개인이 겪은 심리적 상처가 아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도덕적 자기이해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일본의 경우 중요한 것은 패전으로 인한 고통 자체만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어떤 도덕적 이야기로 구성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일본인은 전쟁에서 희생된 국민인가? 아시아를 침략한 가해자인가? 아니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기려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패전은 여전히 진행 중인 문화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2. 일본의 전쟁 기억을 구성하는 세 가지 이야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공헌은 일본의 전쟁 기억을 세 가지 도덕적 서사로 구분한 데 있다.
기억의 유형 | 중심 인물 | 도덕적 의미 | 정치적 방향 |
|---|---|---|---|
영웅의 기억 | 전몰 군인과 선조 | 희생과 명예 | 민족주의 |
피해자의 기억 | 공습·원폭·전쟁 피해자 | 고통과 비극 | 평화주의 |
가해자의 기억 | 침략과 전쟁범죄의 책임자 | 죄책감과 책임 | 역사적 화해 |
① 영웅의 서사: 명예로운 일본
첫 번째 이야기는 전쟁에서 죽은 일본인들을 영웅으로 기억한다.
전몰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선조이며,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것은 후손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이러한 기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서사는 패전으로 손상된 국민적 자부심을 회복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침략전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약화되면 전몰자에 대한 애도가 전쟁의 정당화로 변할 위험이 있다.
② 피해자의 서사: 비극의 일본
두 번째 이야기는 일본 국민을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도쿄 대공습, 오키나와 전투, 식량 부족과 가족의 이별이 중심에 놓인다.
이 기억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주의를 강화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일본인이 경험한 전쟁의 고통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일본 제국이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가한 고통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국민이 자신을 주로 피해자로 이해하는 역설이 나타난다.
③ 가해자의 서사: 죄책감을 가진 일본
세 번째 이야기는 일본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기억의 중심에 놓는다.
중국에서의 학살, 식민지 지배,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기억은 일본인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왜 일본은 침략전쟁을 수행했는가? 당시 국민은 전쟁에 어떤 방식으로 협력했는가? 전후 세대는 그 역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는가?
이 서사는 자기비판과 피해국 국민들과의 화해를 가능하게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조상을 도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부담을 수반한다.
하시모토는 세 서사가 서로 경쟁하며 일본 사회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정당성을 주장한다고 분석한다.
3. 가족의 기억: 아버지는 가해자였는가, 피해자였는가?
제2장에서 저자는 가족 안에서 전쟁 기억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조사한다.
1986년부터 2013년까지 아사히신문에 실린 독자 투고 430건 등을 분석하면서, 전쟁 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자녀와 손자녀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본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자신의 삶을 도덕적으로 복구하는 과정, 즉 '전기적 복구(biographical repair)'다.
예를 들어 전쟁에 참가했던 아버지가 있다고 하자.
그가 전쟁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다. 가족이 존경해 온 아버지의 도덕적 정체성을 다시 평가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들은 종종 아버지를 국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개인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설명은 가족의 화합을 유지하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하시모토의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개인의 기억은 객관적 사실을 보존하는 장치일 뿐 아니라 현재의 관계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구성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후손들은 직접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가족 이야기를 통해 전쟁에 대한 감정과 도덕적 태도를 계승한다.
4. 대중매체: 기억을 둘러싼 경쟁
제3장은 신문, 텔레비전, 영화와 전몰자 추모행사를 분석한다.
특히 8월 15일은 단순한 패전 기념일이 아니라 일본인이 자신들의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충돌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어떤 매체는 전쟁의 참상을 강조한다. 다른 매체는 전몰 군인의 희생을 기리고, 또 다른 매체는 침략과 전쟁범죄의 책임을 제기한다.
1990년대에는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려는 기억의 움직임이 두드러졌지만, 2000년대에는 이에 대한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이 분석은 일본 사회의 역사인식이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서 진보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사적 성찰이 심화될수록 이에 반발하는 민족주의적 기억도 강화될 수 있다.
이것이 패전 70년을 지나서도 일본의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5. 역사교육: 평화주의와 역사적 책임은 같은 것인가?
제4장에서 저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역사만화, 평화박물관 등을 분석한다.
주목할 점은 일본의 역사교육을 단순히 역사왜곡이나 침략 책임의 은폐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시모토는 46종의 사회과 교과서와 역사만화 등을 검토하면서 일본의 역사교육이 실제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평화주의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구별이 필요하다.
'전쟁은 끔찍하다'는 교훈과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인식은 같지 않다.
전자는 전쟁 일반에 대한 반대를 낳지만, 후자는 구체적인 역사적 책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이 차이는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를 평가할 때 특히 중요하다.
일본인이 전쟁을 반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공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 일본의 미래: 민족주의, 평화주의, 화해
마지막 장에서 하시모토는 일본이 장기적인 패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민족주의는 과거의 부정적 기억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부심을 회복하려 한다.
둘째, 평화주의는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면서 군사력 사용을 억제하고 평화헌법의 가치를 지키려 한다.
셋째, 화해주의는 역사적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국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려 한다.
저자는 이 세 방향이 일본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적·도덕적 선택과 연결된다고 분석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평화주의와 화해주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는 국가가 되는 것과 과거에 침략한 국가들과 역사적 화해를 이루는 것은 서로 연결되지만 구별되는 과제다.
7. 평론: 이 책의 학문적 성과와 한계
① 일본은 전쟁을 잊은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일본의 역사문제를 집단적 망각으로 설명하는 통념을 수정했다는 데 있다.
일본 사회에는 전쟁에 대한 방대한 기억이 존재한다.
문제는 기억의 부재가 아니라 어떤 기억에 도덕적 우선권을 부여하는가에 있다.
원폭 피해를 강조하는 역사교육과 난징대학살을 강조하는 역사교육은 모두 전쟁을 기억하지만, 일본인에게 서로 다른 도덕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는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를 훨씬 정교하게 이해하게 해준다.
② 그러나 세 가지 서사가 동등한 역사적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하시모토의 접근에는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영웅, 피해자, 가해자의 기억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면 세 가지가 동등하게 정당한 역사적 관점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차원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라는 구조적 현실이 먼저 존재한다.
일본인들이 전쟁에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과 일본 국가가 침략전쟁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이다.
그러나 이 두 사실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더구나 제국 일본의 폭력은 일본의 패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조선의 식민지화와 중국 침략은 194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진행되었다.
따라서 패전을 중심으로 일본의 기억을 연구하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타당하지만, 그것만으로 제국주의의 전체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③ 일본인의 고통을 중심에 놓는 서사의 문제
최근 살펴본 일본의 전후 역사드라마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다.
일본의 패망, 귀환, 가족의 이별, 고아의 성장 등을 다루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강한 감동을 준다.
이 작품들이 직접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전쟁의 비극을 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점이 일본인에게 고정되면,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조선인과 중국인의 경험은 일본인의 비극을 설명하는 배경으로 축소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하시모토의 분석은 유용하다.
역사적 성찰을 가로막는 것은 반드시 노골적인 역사왜곡만이 아니다. 진실한 고통의 기억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가족을 잃은 일본인 여성이나 전쟁고아에게 공감하는 것과 일본 제국주의의 구조적 책임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과정이다.
따라서 작품이 얼마나 감동적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작품을 본 시청자가 일본인의 고통뿐 아니라 일본 제국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한 고통까지 이해하게 되는가?
④ 독일과 일본의 비교
독일 역시 전쟁 패배와 나치 범죄라는 역사적 부담을 경험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국가 정체성의 핵심적인 도덕적 기준으로 제도화되었다.
물론 독일에도 전쟁 피해자의 기억과 역사수정주의가 존재한다. 독일의 역사적 화해 역시 완성된 사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후 일본과 독일에서는 가해 책임의 기억이 공적 문화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 가지 구조적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나치 체제가 붕괴했고 전후 국가가 그것과 단절된 정통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천황제가 존속했고 전전과 전후의 국가적 연속성이 유지되었다.
이 차이는 일본이 침략전쟁의 책임 주체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시모토의 연구에 천황제와 제국의 연속성에 관한 정치사회학적 분석을 더한다면 일본 전후 역사인식의 구조를 더욱 깊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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