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중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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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重亮 | Moon Joong-Yang
전공조선시대사, 한국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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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에서 통계학과 컴퓨터사이언스를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 서양과학사와 한국과학사를 공부했다. ‘조선후기의 수리학(水利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줄곧
관심주제
조선후기 우주론, 동서양 과학의 만남, 여말선초 과학의 성격
약 력
1995.09.~1996.08. University of pennsylvania Post. Doc.
1996.09.~1997.08. Harvard University Post. Doc.
2001.10.~2002.0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단 연구교수
2002.09.~2005.01.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2005.02.~ 현 재 서울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
2010.08.~2011.07. University of Washington 교환교수
2017.08.~2018.08.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 교환교수
2018.01.~ 현 재 역사학회 평의원
2019.09.~2021.08.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과장
2019.10.~2021.10. 한국과학사학회 회장
2020.06.~ 현 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운영위원회 위원
2022.03.~2024.02. 자연과학대학 과학학과 겸무
저 서
《조선후기 水利學과 水利담론》집문당, 2000. 4. 25.
《불과 한국인의 삶》(共著) 나남출판, 2001. 10. 31.
《우리의 과학문화재》(共著) 한국과학문화재단, 1997. 3. 25.
《세계를 바꾼 20가지 공학기술》(共著) 생각의 나무, 2004. 7. 20.
《한국실학과 동아시아 세계》(共著) 경기문화재단, 2004. 6. 20.
《여헌 장현광의 학문세계, 우주와 인간》(共著) 예문서원, 2004. 9. 25.
《중국의 우주론과 청대의 과학혁명》(번역) 소명출판, 2004. 12.
《국조역상고》(共譯) 소명출판, 2004. 12.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共著), 해나무, 2005.
《한국실학사상연구4》(共著),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5.
《우리역사 과학기행》, 동아시아, 2006.
《세종의 국가경영》(共著), 지식산업사, 2006.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국사편찬위원회, 2007.
《과학이 세상을 바꾼다》(共著), 한국과학문화재단, 2007.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上》(共著), 지식산업사, 2008.
《개정신판 한국사특강》(共著),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한국유학사상대계 12; 과학기술사상편》(共著), 한국국학진흥원, 2009.
《스무살, 인문학을 만나다》(共著), 서울대 인문대, 2010.
《서구 문화와의 만남》(共著), 국사편찬위원회, 2010.
《조선 전문가의 일생》(共著),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0.
《정조와 정조시대》(共著),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1.
《관암 홍경모와 19세기 학술사》(共著), 경인문화사, 2011.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共著), 민음사, 2013.
《조선 기록문화의 역사와 구조 2: 기록에서 사회로》(共著), 소명, 2014.
《17세기 대동의 길》(共著), 민음사, 2014.
《동서양의 문명과 한국》(共著), 민음사, 2014.
《조선 후기 과학사상사: 서구 우주론과 조선 천지관의 만남》, 들녘, 2016.
《한국문화와 유물유적》(共著),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의산문답: 천지와 인물에 대한 우화적 일탈》, 아카넷, 2019.
《術數学の射程 – 東アジア世界の「知」の伝統 –》(共著), 일본 臨川書店, 2021.
《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 : 문화수용전략에 관한 융합적 연구 –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共著), 일조각, 2021.
《디지털 시대, 인문학의 미래를 말하다》(共著), 사회평론아카데미, 2024.
《새로 쓴 한국사특강》(共著),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논 문
〈F.Engels의 운동개념 및 그 형성과정 -「자연변증법」을 중심으로〉《한국과학사학회지》제10권 1호, 1988. 12.
〈朝鮮時代 農書에 나타난 木綿栽培技術〉《한국과학사학회지》제14권 2호, 1992. 12.
〈한국과학기술사의 종합적 체계화의 첫 시도 – 홍이섭의 《조선과학사》 서평 -〉《역사와 현실》13, 1994.
〈조선후기의 水車〉《韓國文化》15, 1994. 12.
〈The Late Emergence of the Traditional Knowledge of Water Utilization in Choson Dynasty and Its Background〉Hashimoto & Jami ed.,《East Asian Science : Tradition and Beyond》(Kansai University), 1995.
〈18세기 조선 水利學의 등장과 그 推移〉《韓國思想史學》9, 1997. 12.
〈간척사업과 지형진화(Ⅰ) – 강화도 -〉(공저)《농공기술》No.58, 1998. 3.
〈18세기 조선 실학자의 자연지식의 성격 ― 象數學的 우주론을 중심으로〉《한국과학사학회지》21권 1호, 1999. 6. 30.
〈16․17세기 조선 우주론의 상수학적 성격 ― 서경덕과 장현광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34, 1999. 12. 31.
〈과학사, 회고와 전망(1998)〉《歷史學報》163, 1999. 9. 30.
〈Traditional Cosmology Associated with the I-Ching and Anti-Cosmological Discourses in 18th-Century Korea〉《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vol.12, 1999.
〈과학사, 회고와 전망(1999)〉《歷史學報》167, 2000. 9. 30.
〈19세기의 사대부 과학자 남병철〉《(계간)과학사상》33. 2000. 5. 25.
〈18세기 후반 조선 과학기술의 추이와 성격 ― 정조대 정부 부문의 천문역산 활동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39, 2001. 3. 31.
〈한국의 전통과학〉《과학과 사회》창간호, 2001. 4. 20.
〈조선후기 자연지식의 변화패턴; 실학 속의 자연지식, 과학성과 근대성에 대한 시론적 고찰,〉《大同文化硏究》38, 2001. 6. 30.
〈최한기의 천문학 분야 미공개 자료분석 ― 《儀象理數》와 발굴자료 《踳駁》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23권 2호, 2001.12. 31.
〈18세기 조선 수리학사(水利學史)〉《한국문화사상대계3》, 2003. 4. 15.
〈崔漢綺의 기론적 서양과학 읽기와 기륜설〉《大同文化硏究》43, 2003. 9.
〈18세기말 천문역산 전문가의 과학활동과 담론의 역사적 성격 ― 徐浩修와 李家煥을 중심으로 ―〉《東方學志》121, 2003. 9.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과학담론, 그 연속과 단절의 역사 ― 기론(氣論)적 우주론 논의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26권 4호, 2003.
〈한국유학사상대계 과학사상사 서술의 과제와 방향〉《국학연구》3, 한국국학진흥원, 2003.12.
〈조선후기 서양 천문도의 전래와 신․고법 천문도의 절충〉《한국과학사학회지》26-1, 2004. 6.
〈홍이섭의 과학사 연구를 넘어서〉《동방학지》130, 2005.
〈전통적 자연인식 체계의 사적 변화 ; 상수학적․기론적 우주론의 심화․전개〉《韓國實學思想硏究 4; 科學技術篇》,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편, 혜안, 2005. 9.
〈Re-Thinking “Independence” of Science and Technology during King Sejongs Reign〉《The Review of Korean Studies》9,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19세기 호남 실학자 이청의 『정관편』저술과 서양천문학 이해〉《한국문화》37, 서울대한국문화연구소, 2006.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 다시보기〉《역사학보》189, 역사학회, 2006.
〈이청의 정관편에 담긴 자연지식의 역사적 위치〉《제10회 다산학 학술회의 “다산학단의 학문적 성격과 성과”》, 다산학술재단, 2008.
〈19세기 조선의 자연지식과 과학담론 : 명말明末·청초淸初 중국 우주론의 늦은 유입과 그 영향〉《다산학》13, 2008.
〈Late Circulation of the Early Qing Natural Studies in 19th Century Korea〉《Historia Scientiarum》, The history of science society of Japan, vol. 17-3, 2008. 03.
〈『東國·增訂·增補文獻備考』「象緯考」의 편찬과 영⋅정조대의 천문학〉《진단학보》106, 2008. 12.
〈Landscape and Historicity of Korean Science of the Early to Middle Nineteenth Century〉《The review of korean studies》13,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전근대라는 이름의 덫에 물린 19세기 조선 과학의 역사성〉《한국문화》54, 2011.
〈창조적 일탈의 상상: 19세기 초 이규경의 하늘과 땅에 대한 사유〉《한국문화》59, 2012.
〈‘鄕曆’에서 ‘東曆’으로: 조선후기 自國曆을 갖고자 하는 열망〉《역사학보》218, 2013.
〈중국과 조선에서의 빛과 소리에 대한 기론적 논의 : 17세기 방이지 학파와 19세기 초 이규경을 중심으로〉《한국사상사학》44, 2013.
〈15세기의 ‘風土不同論’과 조선의 고유성〉《한국사연구》162, 2013.
〈한국과학사 연구의 현황과 쟁점 – 전근대 천문지리학 및 우주론 연구를 중심으로〉《역사와 현실》92, 2014.
〈김영식의 동아시아 과학 전통 읽기를 넘어서〉《한국과학사학회지》36-3, 2014.
〈칠정산의 역사적 의미와 사대부 천문학자 김담〉《김담, 조선의 하늘을 열다》, 도서출판 느티나무, 2019.3.28.
〈From Local Calendar to Eastern Calendar: the Aspiration for an Independent Calendar of the Kingdom in Late Choson Korea〉, in Francesca Bray and Jongtae Lim ed., 《Science and Confucian Statecraft in East Asia》, Leiden: Brill, 2019.
〈세종대 박연의 율관 제작; 고악 구현의 난제〉《동방학지》192, 2020.
〈세종대 척도의 탄생; 주척과 황종척을 중심으로> 《동방학지》196, 2021.
〈강희제는 어떻게 朱載堉의 樂律을 부정했나― 명청대 眞律ㆍ眞尺 재현의 경쟁> 《대동문화연구》127, 2024.
문중양 교수와 이영훈 전 교수의 역사관을 조선시대사 및 세종대 해석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한 내용입니다.
1. 학문적 출발점과 문제의식의 차이
<문중양: 과학사학 내부에서의 실증적 맥락화>
문중양은 통계학과 전공 후 과학사(서양과학사 및 한국과학사)를 전공한 연구자다
. 그의 학문적 문제의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를 지배해 온 <근대주의적 맹아론>과 <민족주의적 자주성 담론>이 조선의 전통 과학기술을 지나치게 박제화하거나 왜곡해 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 2006년 논문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 다시보기〉 등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칠정산이나 측우기 등 세종대의 업적을 20세기 민족국가의 관점으로 소급하여 '자주적 근대 과학의 싹'으로 찬양하는 통설을 엄밀하게 비판했다
. 그러나 이는 조선을 폄훼하기 위함이 아니라, 유교적 천문역법과 '동아시아적 지적 네트워크'라는 당대 고유의 맥락 속에서 그 성취를 정당하게 자리매김하려는 내재적 비판이었다 .
<이영훈: 경제사·수량경제학 기반의 역사수정주의>
이영훈은 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식민지반봉건사회론 등)에서 출발했으나, 토지대장과 호적 등 수량경제학적 실증 작업을 거치며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을 전면 파기하고 '식민지근대화론' 및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전환했다
. 그의 문제의식은 전통 사회(조선)를 철저히 서구 근대성 및 시장경제 모델에 비추어 결손(lack)의 공간으로 규정하는 데 있다. 그의 저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세종을 비판한 것 역시, 당대 지적 세계의 내적 논리를 이해하기보다 '중화 사대주의의 고착화', '노비제와 기생제의 폐해' 등을 서구식 자유주의·근대적 인권과 국가 모델의 잣대로 단죄하는 방식이다
.
2. 세종 시대와 '대중국 관계(사대)'에 대한 인식 비교
<문중양: 보편 문명과의 긴장과 적응>
문중양은 세종대의 학술·과학 성취를 중국의 중심주의와 조선의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이루어진 정밀한 번역과 적응의 과정으로 본다.
예컨대 칠정산내편과 외편의 편찬은 명나라의 역법을 단순히 모방한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독자성을 주장한 것도 아니다
. 그것은 당시 동아시아 보편 지식 체계(회회력과 수시력)를 수용하되, 한양의 북극고도(위도)에 맞추어 현지화하려는 <실용적 지적 적응>이었다. 그는 사대(事大)를 노예적 굴종이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이 세계 보편 문명에 접속하고 체제 내적 안정을 도모하던 유교적 통치 기술이자 합리적 선택으로 파악한다 .
<이영훈: 타율적 사대와 문명적 정체성론>
반면 이영훈은 세종대의 업적(훈민정음 창제 등)마저도 "중국에 대한 지성사대(至誠事大)의 결과물"로 극단화하여 서술한다
. 그는 조선이 스스로의 문명을 창출하지 못하고 오직 중국의 유교 문명 체제에 예속되어 정체(停滯)되었다는 관점을 취한다
. 이는 과거 일제 식민사학의 '타율성론' 및 '정체성론'의 구조를 근대 자유주의적 언어로 다시 포장한 것에 가깝다 .
3. '근대'를 바라보는 사관의 충돌
| 비교 항목 | 문중양 (Moon Joong-Yang) | 이영훈 (Lee Young-hoon) |
| 학문적 성격 | 한국과학사상사, 동아시아 지성사 | 역사수정주의, 수량경제학, 뉴라이트 |
| 탈민족주의의 방향 | 탈식민적 내재 비판: 민족주의적 성역화를 걷어내고 당대의 맥락과 동아시아 네트워크 복원 | 서구/근대 중심적 해체: 민족주의적 성역을 깨뜨리며 조선 전근대 사회의 낙후성과 타율성 강조 |
| 조선 사회의 평가 | 유교적 합리성과 자연인식 체계의 자생적 변화 및 서구 과학 수용의 복합적 전개 | 사유재산권 부재, 신분제적 억압(노비·기생), 근대화 동력 결여의 정체된 사회 |
| 사료 해석의 태도 | 조선의 천문도, 율관, 농서, 우주론 텍스트의 정밀한 문헌학적·과학사적 추적 | 사회경제 통계 및 이념적 논쟁을 위한 선택적·탈맥락적 인용 |
4. 총평
문중양과 이영훈은 둘 다 "기존 주류 국사학계의 닫힌 민족주의적 세종 서사(‘자주적 과학 발전’, ‘만고의 성군’)"를 비판했다는 점에서는 외견상 출발선이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궤적은 정반대의 지향을 가진다.
문중양의 비판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살아 숨 쉬었던 당대의 천문지리학과 유교적 세계관을 20세기 근대 민족주의의 억지스러운 틀에서 해방시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실체(truthfulness)를 복원하려는 역사학 내부의 엄밀한 자정 작업이었다
. 반면 이영훈의 비판은 민족주의 신화를 허무는 과정에서 오히려 서구 중심적 근대화 서사와 식민사학적 타율성론을 다시 소환하여, 조선이라는 사회 전체를 '극복해야 할 전근대적 야만'으로 단순화하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
결국 문중양의 작업이 전통을 '신화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은 채 동아시아 보편 문명사 속에서 조망하려는 <탈식민적 맥락화>라면, 이영훈의 작업은 신화를 깨는 충격 요법을 통해 또 다른 극단적 결론으로 나아간 <근대주의적 탈맥락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중양과 이영훈의 역사관 비교 — 세종의 과학기술, 중화질서, 탈민족주의 역사학
1. 두 학자의 공통점과 근본적인 차이
문중양(文重亮)과 이영훈은 전공과 연구방법이 다른 역사 연구자이지만, 공통적으로 한국 근대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조선시대의 역사상을 비판한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세종대왕을 한국 민족의 자주성·창조성·우수성을 대표하는 영웅으로만 이해하는 기존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역사학적 관심과 설명의 방향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문중양은 세종대 과학기술을 당시 동아시아의 지적·정치적 질서 속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15세기 조선인들이 무엇을 과학적 지식으로 받아들였으며, 어떤 목적과 세계관에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는가 하는 문제이다.
반면 이영훈은 세종대의 정치와 사회제도를 분석하면서, 세종이 신분제와 사대질서를 유지하거나 강화한 측면을 부각한다. 그가 제기하는 중심 질문은 세종의 통치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그러한 군주를 오늘날까지 성군이라고 칭송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 학자의 차이는 단순히 세종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문중양은 역사적 행위자들이 살았던 세계를 복원하려 하고, 이영훈은 그 세계의 제도적 성격과 성군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재검토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이 추구하는 역사적 설명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2. 역사관의 비교
쟁점 | 문중양 | 이영훈 |
|---|---|---|
주된 전공 | 조선 과학기술사·지성사 | 경제사·사회경제사 |
주요 연구대상 | 우주론, 천문역법, 농학, 과학지식 | 노비제, 재산권, 신분제, 국가와 경제 |
민족주의 역사학 | 민족적 자주성을 과거에 투사하는 해석 비판 | 민족주의가 조선의 문제를 미화한다는 비판 |
세종대 과학기술 | 중국과의 지적 교류 및 유교적 보편질서 속에서 파악 | 세종의 성군상과 문화적 업적에 관한 통념 재검토 |
명나라와 조선 | 중화질서 안의 수용·변용·교섭에 주목 | 사대질서와 조선의 제후국적 성격을 강조 |
핵심 방법 | 과학지식의 역사적 맥락화 | 사회경제적 제도와 역사적 평가의 재검토 |
근대적 가치의 적용 | 과거의 과학을 현대의 자주성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 신중 | 노비의 지위 등에서 오늘날의 인권·자유 개념도 평가 기준으로 활용 |
서술 경향 | 학술적·맥락적 설명 | 제도사적 분석과 대중적 역사비판 |
이 비교는 문중양의 논문·연구목록과 이영훈의 2018년 저서에 나타난 특징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특히 문중양의 정치적 입장이나 한국 근현대사 전체에 대한 견해까지 단정한 것은 아니다.
3. 문중양의 역사관: 조선 과학기술의 을 다시 묻다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서구 우주론과 조선 천지관의 만남
문중양, 2016
문중양의 역사학이 세종대 연구를 넘어 조선 지식인들의 우주론과 과학지식 수용으로 확장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저서이다.
첨부하신 문중양 교수의 연구목록에서 특히 중요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2006)
(2008)
(2013)
(2016)
(2021)
이 연구들은 조선 과학기술의 성과를 과학자 개인의 천재성이나 민족적 우수성만으로 설명하기보다, 당대의 지식체계와 국가정책, 동아시아 학술교류 속에서 파악하려는 방향을 보여준다.
세종대 과학기술은 얼마나 독자적이었는가?
문중양의 2006년 논문은 세종대 과학기술의 성과가 중국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발전의 결과였다는 통설을 재검토한다.
그가 다루는 분야는 천문역법, 농업기술, 의학, 음악, 훈민정음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조선이 독창성을 갖지 못했다는 평가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종대의 천문역법 사업은 중국에서 발전된 계산법과 천문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조선에서 필요로 하는 역법의 정비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뿐 아니라, 조선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고 수정했는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문중양의 접근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근대 민족주의는 흔히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문화적 성취를 자주성의 증거로 이해한다. 그러나 15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 문명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과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특수성을 발전시키는 것을 반드시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를 상호 배타적인 두 개념으로 보는 근대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해석이다.
문중양에게 중화질서란 무엇인가?
문중양의 연구에서 중화질서는 단순한 외교적 종속관계가 아니라, 지식의 권위와 문명적 보편성을 구성하는 질서이기도 하다.
유교적 세계관 속에서는 천문학, 역법, 음악, 예제, 농업 등의 지식이 정치를 올바르게 운영하기 위한 지식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따라서 세종이 명나라의 학술·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반드시 조선의 문화적 열등감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다. 당시의 보편적 문명질서에 참여하려는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명나라와 조선의 권력관계가 평등했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위계와 문화적 교류는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문중양의 역사관은 근대 민족국가를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방식과 구별된다.
4. 이영훈의 역사관: 조선의 신분제와 성군 신화에 대한 비판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백년동안, 2018
세종의 노비제, 기생제, 사대관계를 중심으로 기존의 성군상에 도전한 저서이다.
이영훈은 경제사학자로서 조선의 사회경제적 제도, 특히 노비제와 재산권 관계를 연구했다. 그의 (2018)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중적 역사비평으로 확대한 책이다.
그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세종대 노비 관련 법과 정책은 노비의 권리를 제약하고 양반 지배질서를 강화했다.
둘째, 기생제도 역시 여성의 신분적·성적 종속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했다.
셋째, 세종은 외교와 예제의 영역에서 명나라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수용하고 조선의 제후국적 지위를 정비했다.
이영훈의 문제 제기는 세종의 과학기술과 문화적 업적에 대한 평가를 노비와 기생 등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대한 평가와 구별하도록 요구한다.
이때 문중양과의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문중양이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서 지식의 수용과 변용, 유교적 이상국가의 구현을 연구한다면, 이영훈은 동일한 시대의 제도에서 신분적 위계와 사회적 억압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영훈의 주장을 모두 검증된 역사적 결론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실제로 2021년 소순규의 논문 은 이영훈의 노비제 연구가 학술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포함한다고 인정하면서도, 2018년 대중서에서는 기존 연구의 내용을 선택적으로 부각하거나 과장한 부분이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영훈의 역사관을 평가할 때는 그의 실증적인 경제사 연구와 대중서에서 전개한 역사적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
5. 가장 중요한 차이: 중화질서에 대한 역사적 이해
이 대목이 두 역사관을 비교하는 핵심이다.
문중양: 중화질서는 당시의 보편적인 지적 세계
문중양의 2006년 논문 초록에는 세종과 관료들이 중국의 과학기술과 문화적 원형을 검토하고 수용하려 했으며, 그것을 통해 조선 문화를 발전시키려 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문중양의 입장에서 세종대의 중국 문명 수용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유교적 세계관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조선의 과학기술적 성과는 중국과 완전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지식체계를 만들어냈는가 하는 기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국의 선진 지식에 접근하고, 이를 조선의 정치·사회적 요구에 맞게 실현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역사적 성취일 수 있다.
이영훈: 중화질서는 위계적인 정치질서
반면 이영훈은 세종이 천제를 폐지하고 명나라 황제를 중심으로 한 제후국적 질서를 정비한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사대관계가 강화된 사례로 해석한다.
여기에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서 권력의 비대칭성과 조선 왕권의 제약을 강조하는 관점이 나타난다.
다만 문중양이 문화적 교류를 중시한다고 해서 정치적 위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이영훈이 정치적 종속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조선의 모든 문화적 성취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다루는 사료와 역사적 질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6. 역사학 방법론의 차이: 현재주의와 역사적 맥락주의
두 사람의 연구를 비교하면서 특히 주목할 것은 역사적 판단에 현재의 가치를 어느 정도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문중양의 연구는 15세기의 과학적 성취를 오늘날의 민족적 독립성이나 과학의 진보라는 기준만으로 평가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다시 말해 역사적 행위자의 목표를 당시의 가치체계 안에서 먼저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영훈은 세종대의 노비제와 기생제를 검토하면서 현대 독자들에게 익숙한 자유, 인간의 존엄성, 권리 등의 개념을 평가의 기준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두 접근에는 서로 다른 장점과 위험이 있다.
문중양의 접근은 시대착오적인 평가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맥락에 대한 이해만으로 과거의 불평등과 억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영훈의 접근은 지배층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드러내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현대적 가치판단과 당대 제도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구분되지 않으면 시대착오적인 해석이 될 위험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이해와 도덕적 평가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대의 제도가 왜 형성되었는지 설명하는 일과 그 제도 아래서 어떤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았는지 평가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7. 정다함과 문중양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제 처음의 으로 돌아가 보자.
정다함이 제기한 질문은 문중양의 연구와 상당히 가깝다.
문중양이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둘러싼 근대적 역사서술을 재검토한다면, 정다함은 훈민정음과 15세기 조선의 정치·문화질서에 관한 역사해석을 재검토한다.
두 연구자는 모두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주의가 15세기의 역사적 행위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를 경계한다.
또한 중국 문명과 조선의 관계를 단순한 지배와 종속 또는 민족적 저항의 이분법으로 설명하기보다, 당시의 지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문중양과 정다함의 연구 사이에는 학문적 연속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중양의 연구가 정다함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영훈에 대한 비판까지 공유한다는 뜻은 아니다.
더욱이 문중양이 정다함의 글에 나오는 익명의 인지 여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두 학자의 연구 내용이 가깝다는 점은 신원을 추정하는 단서일 수 있으나, 박사학위 심사 기록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8. 종합 평가: 같은 민족주의 비판에서 서로 다른 역사서술이 나온다
이 비교에서 도출되는 가장 중요한 결론은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에 대한 비판이 하나의 역사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중양은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을 재검토하면서 조선의 과학과 문화를 중국의 지적 전통 및 유교적 보편질서 속에 위치시킨다.
이영훈은 세종의 성군상을 재검토하면서 노비제, 기생제, 사대관계 등 조선사회에 존재했던 신분적·정치적 위계를 강조한다.
두 사람은 세종을 근대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영웅상에서 분리하려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것을 통해 설명하려는 역사의 모습은 다르다.
여기서 나의 분석적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민족주의적 역사상을 비판하는 일과 조선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는 일은 동일하지 않다. 문중양의 연구는 중국의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조선이 그 지식을 수용하고 변용한 역사적 활동을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조선의 과학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일과 조선의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일은 모순되지 않는다. 세종대 과학기술과 노비제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서로 다른 측면을 밝힐 수 있다.
셋째, 역사학은 과거의 행위자를 당대의 세계관 속에서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이 만들어낸 제도가 누구에게 이익을 주고 누구에게 불이익을 주었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문중양과 이영훈의 차이를 단순히 친중국적 역사관과 반중국적 역사관, 또는 세종 옹호론과 세종 비판론으로 구분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더욱 근본적인 차이는 와 라는 두 연구 방향에 있다.
추가로 읽을 핵심 자료
이번 비교의 주요 근거이며, 문중양의 2006년 논문은 공개 초록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첨부 PDF는 교수 소개와 연구목록이므로 개별 논문 전문에 근거한 분석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다함의 문제 제기까지 포함해 세 사람을 함께 읽으면, 한국 역사학에서 중요한 과제 하나가 선명해진다. 조선을 민족주의적으로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조선이라는 사회의 역사를 특정한 근대적 가치판단 하나로 환원하지 않는 역사서술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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