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

복벽주의 < 대동단(大同團)

복벽주의 < 사료로 본 한국사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복벽주의

…(전략)…
문 : 피고가 대동단(大同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언제쯤이었는가.
답 : 그것은 금년 4월경이었다. 전협(全協)으로부터 그 단체의 취지를 들었다. 또 대동단의 관계인인 동창률(董昌律)에게도 경성(京城) 입정정(笠井町)의 그의 집을 방문한 일이 3·4회 있는데, 동(董)의 집에서 전협을 만난 일도 있다. 처음 대동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돈을 내라고는 하지 않았다.

문 : 피고는 이달하(李達河)와의 관계에 대하여 상세히 진술하라.
답 : 이달하에 관해서 전회 신문 때 진술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전회에 진술한 대로 금년 음력 8월 10일경 우리 집에 한 번 왔었다. 그때는 공주군(公州郡) 사람으로 구종서(具宗書)라고 하는 사람이 같이 와서 소개했는데, 구(具)의 이야기로는 이달하는 상당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이달하는 국사(國事)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조선 독립을 도모하는 데에는 먼저 이왕(李王), 그 왕세사(王世嗣) 및 이강공(李堈公) 전하 중 누군가 한 분을 황제로 추대하고 여기에 조선의 민심을 수람(收攬)하는 것이 아니면 도저히 독립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가정부(假政府)에서 이리저리 운동하나 독립에는 먼저 이조(李朝)의 복벽(復辟)을 꾀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나도 이달하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바 있었으며, 조선의 현재의 상황은 이조 500년은 죄없이 망했다는 이구동성의 민심인 즉, 그의 설(說)에는 크게 찬사를 보냈다. 왜냐하면 가정부가 주장하는 대통령이라든가 공화정치라든가 하는 것은 신용하는 사람이 적다. 이와 반대로 이조 복벽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달하는 전협이 자기와 함께 대동단에 진력하여 이조 재흥을 위해 이강공 전하를 상해로 모셔가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으므로, 나도 이 계획에는 대찬성을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이달하는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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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斗和 신문조서(제2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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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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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단(大同團)은 1919년 3월 말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항일 독립운동 단체이다.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 또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이라고도 불렸다.[1]

개설

대동단은 1919년 3월 서울 봉익동 전협(全協)의 집에서 조직되었다. 일진회 출신 인사였던 전협과 최익환(崔益煥)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으며, 항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1]

단체는 귀족·관료·유림·종교계·상공인·청년 학생 등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였다. 김가진, 박영효, 민영달, 김찬규 등이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4월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였다.[1]

또한 경기·충청·전라·경상·평안 지역과 만주 안동현 등에 지부를 설치하고 조직 확대와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2]

활동

대동단은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선전 활동과 대규모 독립만세운동 추진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았다. 최익환은 권태석의 지원을 받아 인쇄 시설을 마련하고 격문과 선언문 등을 제작·배포하였다.[1]

이들이 배포한 문서 가운데에는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무력 항쟁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도 포함되어 있었다.[3]

그러나 1919년 5월 일제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면서 최익환·권태석·이능우·엄경섭·김영철 등이 체포되었다.[1]

의친왕 망명 계획

대동단의 대표적인 활동 가운데 하나는 의친왕 이강(李堈)을 상하이로 망명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 했던 계획이다.[4]

전협·정남용·김가진 등은 의친왕을 상하이로 이동시켜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하고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려 하였다. 이를 위해 김가진과 전협은 먼저 상하이로 이동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창호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1]

1919년 11월 정남용·이을규·한기동·송세호 등은 의친왕과 함께 수색역을 출발해 압록강을 거쳐 만주 안동으로 이동하였으나, 일제 경찰에 의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실패하였다. 의친왕은 서울로 압송되었고 관련 인물들도 차례로 체포되었다.[5]

재판

1920년 12월 경성지방법원 재판에서 전협은 징역 8년, 최익환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정남용·권태석 등 관련 인물들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

같이 보기

각주

  1.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민족대동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6년 5월 26일에 확인함.
  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 제4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312-315쪽.
  3. 김희곤 (2004). 《한국독립운동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1-203쪽.
  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대동단 관련 자료”. 2026년 5월 26일에 확인함.
  5. 윤대원 (2011). 《한국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역사공간. 144-148쪽.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4권》, 1972.
  • 김희곤, 《한국독립운동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04.
  • 윤대원, 《한국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역사공간, 2011.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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