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 개정신판 |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1
박지원 (지은이),고미숙,김풍기,길진숙 (옮긴이)북드라망2013-09-30초판출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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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청소년들이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옮기고 엮은 편역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의 개정신판.
<열하일기> 중에서 압록강을 건너며 시작되는 '도강록'부터 열하에서 다시 연경(북경)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환연도중록'까지 날짜별로 기록된 길 위의 여정을 모두 옮겨 싣고, 그밖에 중국 선비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나 중국문명을 보며 연암이 했던 사유의 기록, 혹은 만리장성 밖에서 들었던 기이한 이야기들 등은 관련된 여정에 맞물려 편집해 실었다.
또한 연암이 보고 들은 풍물이나 그가 인용하는 고사성어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도판과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역사에서는 물론 세계 어느 여행기와 견주어도 가장 독특하고 가장 생생한 여행기 <열하일기>에 직접 다가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
목차
개정신판 머리말
사행단 구성
『열하일기』 여정도
연암 박지원 약전
도강록
도강록 서 │ 6월 24일 │ 6월 25일 │ 6월 26일 │ 6월 27일 │ 6월 28일 │ 6월 29일 │ 7월 1일 │7월 2일 │ 7월 3일 │ 7월 4일 │ 7월 5일 │ 7월 6일 │ 7월 7일 │ 7월 8일 │ 7월 9일 │요동 옛 성에 올라(구요동기) │ 요동의 백탑(요동백탑기) │ 관제묘 풍경 소묘(관제묘기) │광우사 이야기(광우사기)
성경잡지
7월 10일 │ 7월 11일 │ 예속재에서 만난 친구들(속재필담) │ 가상루에서의 아름다운 만남(상루필담) │7월 12일 │ 7월 13일 │ 7월 14일 │ 성경의 사찰들(성경가람기) │ 요동의 산과 강(산천기략)
일신수필
일신수필 서 │ 7월 15일 │ 7월 16일 │ 7월 17일 │ 7월 18일 │ 7월 19일 │ 7월 20일 │7월 21일 │ 7월 22일 │ 7월 23일 │ 망부석이 된 맹강녀(강녀묘기) │ 장대에 오르내리기가 벼슬살이 같구나(장대기) │ 산해관에 올라 고금의 역사를 생각한다(산해관기)
책속에서
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학문에 대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평생토록 뜻을 다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학문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성인聖人이 태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천하가 작게 보였다”고 말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가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보았다”고 하면 허황하다고 배척할 것이며, “태서泰西(서양) 사람이 큰 배를 타고 지구 밖을 돌았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버럭 화를 낼 것이다.
그러면, 나는 누구와 더불어 이 천지 사이의 큰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 공자가 240년간의 역사를 간추려서 『춘추』春秋라 하였으나, 이 240년 동안 일어난 군사·외교 등의 사적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과 같은 잠깐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는 말 위에서 휙휙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기록하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먹을 한 점 찍는 사이는 눈 한 번 깜박이고 숨 한 번 쉬는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눈 한 번 깜박하고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벌써 작은 옛날小古, 작은 오늘小今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하나의 옛날이나 오늘은 또한 크게 눈 한 번 깜박하고大瞬 크게 숨 한 번 쉬는大息 사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찰나에 불과한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공을 세우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
(「일신수필」 중에서) 접기
2리를 더 가서 말을 타고 강을 건넜다. 강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어제 건넜던 곳보다 물살이 훨씬 세다. 무릎을 움츠리고 두 발을 모아서 안장 위에 옹송그리고 앉았다. 창대는 말 대가리를 꽉 껴안고 장복은 내 엉덩이를 힘껏 부축한다. 서로 목숨을 의지해서 잠시 동안의 안전을 빌어 본다. 말을 모는 소리조차 ‘오호’ 하고 탄식하는 소리처럼 구슬프게 들린다. 말이 강 한가운데에 이르자, 갑자기 말 몸뚱이가 왼쪽으로 쏠린다. 대개 말의 배가 물에 잠기면 네 발굽이 저절로 뜨기 때문에 말은 비스듬히 누워서 건너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하였다. 마침 앞에 말꼬리가 물 위에 둥둥 떠서 흩어져 있다. 급한 김에 그걸 붙들고 몸을 가누어 고쳐 앉아서 겨우 빠지는 걸 면했다. 휴~ 나도 내 자신이 이토록 날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창대도 말 다리에 차일 뻔하여 위태로웠는데, 말이 갑자기 머리를 들고 몸을 바로 가눈다. 물이 얕아져서 발이 땅에 닿았던 것이다.
(「도강록」 중에서) 접기
강물 소리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다. 문 앞에 큰 시내가 있는데, 매번 여름철 큰비가 한 번 지나고 나면 물이 급작스레 불어나 항상 수레와 기병, 대포와 북이 울리는 듯한 굉장한 소리를 듣게 되고 마침내 그것은 귀에 큰 재앙이 되어 버렸다. 내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가만히 이 소리들을 비교하며 들어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 숲이 퉁소 소리를 내는 듯한 건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건 성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듯한 건 교만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만 개의 축筑이 번갈아 소리를 내는 듯한 건 분노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마구 쳐대는 듯한 건 놀란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건 흥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거문고가 우조羽調로 울리는 듯한 건 슬픈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한지를 바른 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건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이는 모두 바른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이미 가슴속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가지고 귀로 들은 것일 뿐이다.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너다(일야구도하기)」 중에서) 접기
옛 성인은 물건을 주고받는 일에 있어서 매우 조심했다. 옳은 것이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주지 않고, 옳은 것이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받지 않았다. 대저 지푸라기는 세상에 지극히 작고도 하찮은 물건이어서 만물로 치지도 않으며, 지푸라기 하나를 주고받는 일은 논의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지푸라기와 같은 하찮은 물건까지도 조심하라는 성인의 말에서 청렴이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오미자 사건을 겪고 나니 비로소 지푸라기에 대한 성인의 말씀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아, 성인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오미자 몇 알은 정말 지푸라기처럼 보잘것없는 물건인데, 그걸 빌미로 저 미련한 중은 나에게 이토록 무례한
행위를 했으니 상식에 어긋난 짓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서 주먹다짐에까지 이르렀고, 바야흐로 그들이 싸우게 되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피차 간에 생사를 걸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비록 오미자 몇 알일지라도 재앙은 산더미처럼 커졌으니, 작고 하찮은 물건이라 해서 결코 얕볼 수 없다는 걸 알겠다.
(「환연도중록」 중에서) 접기
여행 막바지, 연암은 자신이 던진 화두에 대해 하나의 답을 찾아낸다. 고북구 장성을 지나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강행군을할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견마잡이 창대가 발을 다쳐 뒷수레에 실려오고 연암이 홀로 말을 타고 물을 건너는데, 그야말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이었다. 폭우로 범람한 강을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건너 면서 연암은 ‘이제야 비로소 도를 깨우쳤노라‘ 고 소리친다. 그가 말하는 도는 명심眞心이다. 명심, 말 그대로 어두운 마음‘ 이다. 도가 어 두운 마음이라니, 웬 선문답? 도를 깨치면 눈이 밝아져 사방천지가훤히 드러나야지, 다시 깜깜해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게바로 연암식 패러독스다. 그가 말하는 명심이란 ‘이목耳目의 누宗, 곧분별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분별을 내려놓는 그 순간,
‘목전에 펼쳐지는 깊은 적막과 평정, 연암은 그것을 눈과 귀가 사라 지는 ‘어둠‘ 으로 표현한 것이다. 접기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벌써 이런 그릇된 마음이 일다니. 대체 왜? 아마도 내 견문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부처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살핀다면 무엇이든 다 평등해 보일 테지. 모든 게 평등하면 시기와 부러움이란 절로 없어질 테고.˝ 접기
뜻을 얻은 곳에는 두 번 가지 않는 법, 만족함을 알면 위태롭지않다네!˝ - 세담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 세담
『열하일기』는 이국적 !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지리하게 나열하는 흔해 빠진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의장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열하일기를 통해 아주 낯설고 새로운 여행의배치를 만나게 된다. 접기
외양간이나 돼지 우리까지 모두 법도 있게 깔끔하다. 땔감 쌓아 놓은 것이나 두엄 더미까지도 그림처럼 곱다. 아!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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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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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표적 문신이자 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그는 한양 서쪽 반송방에서 노론의 중진 박필균의 손자이자 박사유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서인과 노론의 명문가였으며 조부 박필균은 정2품 관직에 오르면서도 붕당 정치에 휩쓸리지 않아 적이 없었다. 박지원은 어린 시절부터 체격이 건장하고 영민하며 암기력이 뛰어났다. 열여섯 살에 처사 이보천의 딸과 결혼한 후에는 장인과 처삼촌 이양천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학문에 정진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배우고 처삼촌에게서는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역사서와 문장론을 익히며 글쓰기의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이때 함께 공부한 처남 이재성은 평생의 문우이자 든든한 조언자가 되었다. 또한 영조의 부마이자 청나라를 다녀온 삼종형 박명원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청나라 선진 문물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는 향후 그가 실학의 핵심인 ‘북학파(北學派)’의 거두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이후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등과 교유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홍대용과 교제하며 지구 자전설을 비롯한 서양의 신학문을 접하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천적 가치를 토론하며 견문을 넓혀나갔다. 과거에 낙방한 후 저술에 전념하던 박지원은 1780년(정조 4)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를 방문했다. 이 여행은 그의 사상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충·효·열을 강조하던 전통 도학에서 벗어나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실학에 주목했다. 자연과학과 서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그는 농업 기술서인 《과농소초》를 저술했다. 나아가 백성에게 이롭다면 오랑캐의 기술이라도 배워야 한다는 ‘북학’ 정신을 주장하며 명분에 치우쳤던 당시 조선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또한 그는 기발한 문체로 양반 계층의 타락상을 날카롭게 고발한 문학가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산문으로 조선 문단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청나라 견문록인 《열하일기》에서는 현지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서체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글씨체를 선보이기도 했다.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그의 문장은 조선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열하일기》에 수록된 〈양반전〉, 〈허생전〉, 〈호질〉을 비롯해 〈민옹전〉,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접기
최근작 :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연암 박지원 소설선 호질 양반전 외 11편>,<[큰글자책] 양반전·허생전·호질 외>,<박지원> … 총 278종 (모두보기)
고미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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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의 작은 광산촌에서 자랐고,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감이당 & 남산강학원에서 ‘밥과 친구와 생사의 비전’ 등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또 탐구하고 있다. 그동안 낸 책은 열하일기 3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동의보감 4종세트(『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를 비롯하여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의 인생 특강 : 욕망과 자유에 대한 비전 탐구』,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청년 붓다 :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9명의 전문가에게 듣는다 AI 시대, 내일의 나를 만드는 시간>,<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 총 219종 (모두보기)
인터뷰 : '수유+너머'를 듣기 위해 고미숙을 만나다! - 2004.04.02
김풍기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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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고전문학사의 라이벌』(공저), 『선가귀감, 조선 불교의 탄생』, 『한시의 품격』, 『선물의 문화사』, 『한국 고전 소설의 매혹』, 『정원에서의 질문』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공역), 『옥루몽』, 『금오신화』 등이 있다.
최근작 : <허균의 맛>,<교유서가 10주년 기념 작품집 세트 - 전2권>,<판타스틱 북월드> … 총 63종 (모두보기)
길진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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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사. <사이재> 대표.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필동의 <사이재>에서 밥과 책과 글을 나누며, ‘이순’(耳順)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연암, 붓다, 공자, 장자, 맹자, 사마천, 김부식, 일연, 푸코, 들뢰즈, 푸시킨, 고골, 도스토옙스키 등 멋진 스승들을 만나 이 고단하고 번뇌 가득한 사바세계를 즐겁게 헤쳐 나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삼국사기, 역사를 배반하는 역사』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루쉰, 길 없는 대지』 등이 있다. 함께 번역하고 엮은 책으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가 있으며, 『낭송 춘향전』, 『낭송 열하일기』, 『낭송 18세기 소품문』, 『낭송 연암집』을 함께 풀어 읽었다. 접기
최근작 : <why & how 인문학 강의>,<[큰글자책] 소세키와 가족, 가족으로부터의 탈주>,<발견,『한서』라는 역사책> … 총 3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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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해탈은 어렵지 않다>,<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등 총 183종
대표분야 : 고전 21위 (브랜드 지수 211,373점), 청소년 인문/사회 30위 (브랜드 지수 31,04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옮긴이의 말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단 하나의 텍스트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열하일기』를 들 것이다. 또 동서고금의 여행기 가운데 오직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또한 『열하일기』를 들 것이다. 『열하일기』는 이국적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지리하게 나열하는 흔해 빠진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의 장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열하일기』를 통해 아주 낯설고 새로운 여행의 배치를 만나게 된다.”
“연암에게 있어 삶과 여행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길 위에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길을 떠나는 ‘노마드’(유목민)였던 것. 이질적인 것들 사이를 유쾌하게 가로지르면서 항상
예기치 않은 창조적 선분들을 창안해 내는 존재, 노마드! 『열하일기』는 이 노마드의 유쾌한 유목일지다. 『열하일기』가 18세기에 갇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도 삶과 우주에 대한 눈부신 비전을 던져 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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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읽었다
Blue 2017-11-02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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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만 봤던 그 책
샤마 2016-02-0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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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계절도 비슷하고... 오래 전 그가 다녔던 길을 같이 걸어보려 한다. 그 옛날 그의 경험과 지혜가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큰 유익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the WAY 2015-07-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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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번역이 나와 있는 고전, 여러 번역들을 대조하며 읽으려 구매
못동 2014-05-0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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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도 사긴 사야되는데..
새누 2015-07-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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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묘사력
연암앓이를 하게 된 계기가 '열하일기'을 읽으면서이다.
이 책은 이국적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나열한 여행기가 아니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 2300여 리가 넘은 여정.
삼종형 박명원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연암이 이 여행에 동반자가 되면서 연암은 6개월 동안 찬찬하게 사물을 보고 기록했다.
나는 연암이 왕성하게 관찰하고 사유하고 기록했다는 데서 존경심을 금할 수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람들과 필담을 하며 또 '호질' 같은 작품을 베껴써올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랍고,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같은 작품을 써냈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찬찬하게 읽으나가노라면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표현력,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학자로서의 탐구심과 자존심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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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2013-12-2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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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열하일기 상ㅡ연암 박지원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는 연암 박지원 선생님의 열하일기… 장황한 이야기에 혼을 놓게 되네요. 압록강을 건너 연경까지. 또 연경에서 열하까지 기나긴 여행길의 기록을 일기식으로 적어 놓았는데요. 연암 박지원 선생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삼종형 박명원 덕분에 건륭황제 만수절 70세 생일 축하 사절로 따라가게 되는데요. 연암 박지원은 그때 지금으로치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하니 이 여행길이 그에게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싶으면서 호기심도 참 많은 사람이었구나 싶어요.
연경까지 가는 길이 그리 만만한 길도 아닌데다 날씨도 요동쳐 찌는듯한 무더위를 주기도 하고, 심한 폭우를 만나 길을 재촉할 수도 없을 때가 있어도 강을 일고여덟번씩 건너며 죽음을 맛보는 생사를 오가면서도 연암 박지원 선생은 그 모든 것을 불평불만 하지 않고 덤덤히 받아드리며, 그 거리거리 지역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덕을 쌓고 우정을 나누면서 벗을 만들어요. 또한 신기한 일이 있거나, 새로운 동.식물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잘 기록하고 있어요. 이러니 후세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으네요. 또한 이리 연암 박지원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책을 읽다보면 중국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언젠가 연암 박지원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길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그리고 벗에 대한 사랑과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 신분에 구분없이 남녀노소 누구와도 필담으로 덕담을 나누고 정을 쌓는 등을 보게 되면서 그 옛날 이런 멋진 분이 더 많았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도 지금고다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못내 아쉬우면서 열하일기(하)를 기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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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례공주 2022-05-0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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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향연’ 맛보기

『책만 보는 바보』를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정조 시대와 북학파, 조선의 외교관계, 정조의 정책 등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이덕무, 홍대용, 유득공,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백동수, 나이와 신분과 성품과 빈부가 다름에도 함께 어울려 꽃을 피우는 지식인들의 향연! 감동을 공유하기에는 아이들과 나의 격차가 컸다. 애초에 같은 감동 포인트를 찾는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공감하는 지점이 다를 텐데 말이다.
아이들의 감상문에는 주로 그들의 신분 때문에 생긴 불공평함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사실 나는 그들이 차례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문물을 접하고 외국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책을 쓰게 된 지점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그들은 그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각자의 연행록과 <열하일기>, <북학의>, <발해고>, <의산문답> 등의 역작을 남긴다. 아직 그렇게 보기에는 채워져야 할 배경지식이 부족했을 테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관계를 돌아보고 이들의 관계가 진정한 벗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커서 누군가에게 이런 벗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글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 이제 이 책을 읽었으니 이 사람들이 쓴 책을 하나씩 읽어볼까?”하고 넌지시 운을 뗀다. “지난번에 읽은 「양반전」과 「허생전」은 박지원의 글이니까, 이번에는 발해고 읽어보자.” 끄덕끄덕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실 내 안에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어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발해고』가 우리 역사연구에서 갖는 의의를 설명하고 헤어졌다. 다음 모임, 아이들은 읽긴 했으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읽어 온 게 어딘가! 대견하다.

이 책은 유득공과 『발해고』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발해고 본문에서도 「군고(君考)」를 「발해의 역대 임금」으로 「신고(臣考)」를 「발해의 신하들」로 「지리고(地理考)」를 「발해의 지리」와 같이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친절하게 계보나 복식 등의 도표와 사진 그리고 지도들이 들어가 있어 이해를 돕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이사이 용어와 배경 설명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유득공은 『발해고』 이전부터 역사와 지리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동국지리지』를 읽고 그 감상을 쓴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 나타난다. 말년에 ‘한사군’의 역사에 관한 『사군지』를 집필했다. 북학 사상은 북벌론(北伐論)을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 되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압록강을 넘어선 지역의 역사 인식에서 알 수 있다. 유득공의 사회 개혁과 관련해서 ‘용차론(用車論)’과 ‘축성론(築城論)’을 소개하며, 박제가의 그것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소개한다. 박제가는 급진적이라고 한다면 유득공은 현실을 고려한 제안을 하고 있다. 이런 자세는 그의 고증을 통한 역사 연구에도 나타나 신뢰를 높인다. 『발해고』는 『신당서』를 주요 사료로 사용했고, 그 외의 사료들을 참고했다.
『발해고』는 “발해와 고구려의 연계성을 인식하여, 발해와 신라가 양립된 남북국 시대를 한국사 체계에 도입했으며, 역사서술의 유용성을 믿었고, 문헌이 인멸되는 위험을 막고, 연구가 안 된 공백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보궐(補闕)’의 역사서술 방식에 의해 본격적이고도 체계 있게 발해사를 최초로 정리했음을 알 수가 있다.” 당시 사료의 불충분 때문에 잘못된 부분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박제가 서문과 유득공의 서문을 이해하면 이 책을 읽는 의미는 다 얻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박제가의 글은 발해고의 원문에는 없고 그의 『정유집』에 실려 있던 것을 붙인 것이다. 박제가는 연경을 향할 때 지났던 길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상을 적는다. 요동은 천하의 한 모퉁이지만 영웅과 제왕이 일어날 만한 곳이며, 중국의 형세를 엿볼 수 있는 지역이지만, 고려가 망할 때까지 압록강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신라의 ‘구주오소경’ 안에 갇혀서 한·당·송·명의 흥망을 모르는 선비들을 한탄한다. 그러기에 박학하고 필력이 뛰어난 유득공의 『발해고』가 반갑다.
유득공은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한다. 발해가 망한 후에 그 유민들이 고려로 들어왔으므로 그들을 통해 발해를 알 수도 있었는데 소홀한 것에 대해 통탄한다. 문헌이 흩어지고 사료가 부족하여 ‘9개의 고(考)’-군고, 신고, 지리고, 직관고, 의장고, 물산고, 국서고, 국어고, 속국고-로 구성했다. “세가(世家)와 전(傳)그리고 지(志)라고 안하고 고라고 한 것은 사서로서 체계를 못 이루었고, 또 감히 사(史)라고 자처하지 못하기 때문”(39p)이라고 하며 서문을 마친다. 이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사체(史體)에 대해 설명하고 싶으나 참았다.
아이들에게 ‘인용문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전달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 사료의 신뢰도는 그 저서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발해고』는 당나라의 정사 『신당서』를 주요 사료로 했다.
발해의 왕들에 대한 기록 「군고(君考)」로 시작한다. 본기(本紀)에 해당한다. 진국공은 대조영의 아버지다. 이름은 걸걸중상이고 속말말갈인이고 고구려 유민이다. 중국의 요령성 조양으로 옮겨가 살다가, 측천무후 통치 2년에 반란을 일으키고 말갈의 추장인 걸사비우와 요수를 건너 성을 쌓는다. 측천무후에게 진국공이라는 봉작을 받는다. 걸사비우는 죽고 진국공의 아들 대조영이 고왕이 된다. 이때 국호를 발해라고 한다. 그리고 무왕, 문왕, 폐왕,…, 마지막 왕 인선까지. 당나라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신라나 고려와 달리 연호를 독자적으로 쓰고 있다.

당나라와 발해의 관계와 관련해서 ‘안사의 난’과 발해가 준 도움을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현종과 양귀비, 안녹산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구려 유민인 당나라 장군 고선지의 활약까지! 발해군왕이다가 대이진때 발해국왕으로 칭호를 바꾸게 된다. 계속 당에는 조공을 보낸다. 발해의 신하들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대문예, 무왕의 아우다. 나중에 당나라로 달아나 현종의 장군이 되었다. 발해의 지도를 펴놓고 오경(상경, 동경, 중경, 서경, 남경)의 위치를 짚어본다. 국서고(발해의 외교문서)에서는 일본에 보낸 친서들을 볼 수 있는데, 중국과는 달리 오히려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발해가 망하고 그들은 정안국으로 명맥을 이었다.

모임을 마치며, 아이들은 혼자 읽을 때와 달리 함께 모여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이해가 되었다고 말한다. 세세한 내용은 언제까지 기억이 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역사연구에 있어서 『발해고』의 의의와 유득공의 업적, 그 가치(특별히 오늘날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반론으로서)는 잊지 않길 바란다.
“자 이제 『열하일기』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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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02 공감 (55)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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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 요약 및 평론입니다.
1. 개요 및 여행의 배경
<열하일기>는 조선 정조 4년(1780),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은사절단(삼종형 박명원을 수행)의 일원으로 동행하여 기록한 연행록이다. 압록강을 건너 북경을 거쳐 황제의 여름 휴양지이자 군사 요충지였던 열하(피서산장)까지 다녀온 5개월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당시 조선의 주류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못하고 이미 명망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청을 '오랑캐'로 멸시하는 북벌론과 소중화 사상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연암은 낡은 이념의 장막을 걷어내고, 청나라의 번영과 고도화된 문명을 직시하며 조선 사회의 모순을 통렬히 응시했다. 이 책은 단순한 견문록을 넘어 철학적 사유, 문명 비판,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가 녹아든 조선 최고의 기행문학이다.
2. 핵심 견문과 사유의 요약
여정 속에서 연암이 주목한 핵심 통찰은 크게 세 갈래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물질문명이다. 연암은 웅장한 궁궐이나 화려한 사찰보다 길거리의 벽돌, 온돌, 수레, 분뇨 처리에 감탄했다. 조선에서는 제대로 굽지도 못하고 운반도 서툴렀던 벽돌이 청에서는 정교하게 규격화되어 견고한 집과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거름을 다루는 방식조차 합리적이어서 버려지는 것이 없었다. 연암은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고 생활을 넉넉하게 하지 못하는 도학(道學)은 공리공론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며, 실용적 기술과 유통망(수레와 선박)의 도입을 역설했다.
둘째, <호곡장(好哭場)>과 인식의 전복이다. 광활한 요동벌판을 마주한 순간, 연암은 통곡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라고 외친다. 갓난아기가 좁은 모태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올 때 터뜨리는 첫 울음처럼, 좁은 반도의 편협한 세계관에 갇혀 있던 자아가 무한한 대지 앞에서 겪는 존재론적 해방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셋째,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와 내면의 통찰이다. 칠흑 같은 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너며 연암은 소리와 공포의 본질을 파고든다. 낮에는 눈이 귀를 방해하고, 밤에는 마음에 맺힌 두려움이 물소리를 괴수의 울부짖음으로 둔갑시킨다는 관찰이다. 감각의 착각과 편견을 벗어던지고 내면의 평정을 얻을 때 비로소 사물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인식론적 깨달음이다.
여기에 허생전, 호질 등 빼어난 우화와 단편을 삽입하여, 무능하고 위선적인 양반 계급의 허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3. 평론: 갇힌 세계를 깬 열린 시선
<열하일기>가 오늘날에도 고전으로 우뚝 서 있는 이유는 박지원의 시선이 특정 민족주의나 이념적 편협성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나라는 오랑캐이므로 배울 것이 없다'는 독선에 빠져 현실을 왜곡했다. 그러나 연암은 편견을 내려놓고 대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했다. 비록 만주족이 세운 왕조라 할지라도 인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기술을 발전시켰다면 기꺼이 배워야 한다는 태도였다. 이는 맹목적인 사대주의도 아니요, 폐쇄적인 국수주의도 아닌, 인류의 보편적 번영과 진보를 긍정하는 <탈국경적 지성의 시선>이었다.
또한 그의 문체는 당대의 엄격하고 박제된 고문(古文) 양식을 통쾌하게 파괴했다. 비속어와 한시, 날카로운 풍자, 생동감 넘치는 대화가 뒤섞인 그의 글은 지배층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사상 통제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권력이 문장을 단속하려 했을 만큼 그의 사유와 언어는 살아 숨 쉬었고 위험할 정도로 자유로웠다.
결국 <열하일기>는 경계를 넘나든 한 자유인의 궤적이다. 좁은 울타리와 과거의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거대한 세계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젖혔던 한 지식인의 용기 있는 기록이다. 오늘날 국경과 진영논리가 다시금 벽을 쌓아가는 시대에, 편견 없는 관찰과 실용적 지혜를 담은 이 여행기는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울림을 던진다.
박지원 상·하 (2008·2013) — 요약과 평론
박지원 지음 | 고미숙·길진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2008년, 북드라망 개정신판 2013년
1780년 조선 지식인 박지원이 청나라를 여행하며 기록한 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중국의 문명과 사회를 관찰하면서 조선의 지적 폐쇄성, 신분질서, 경제적 낙후성을 비판한 문명비평서이자 철학적 산문이다.
이 책의 핵심은 라는 문제에 있다.
1. 책의 성격과 역사적 배경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북학사상의 선구자이다. 그는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 사절단에 동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베이징과 열하를 여행했다. 정식 사신이 아닌 친척 박명원의 수행원 자격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현지 사회를 관찰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은 모순된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명나라는 1644년에 멸망했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여전히 명나라를 문명의 정통으로 여기고 청나라를 오랑캐 국가로 멸시했다.
박지원은 이러한 관념을 뒤집는다.
그는 청나라에서 잘 정비된 도로, 수레, 상업시설, 시장, 건축기술, 물자 운송체계 등을 관찰했다. 그리고 문명의 수준은 민족적 혈통이나 유교적 명분이 아니라 실제로 백성들의 생활을 얼마나 개선하는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의 기본 문제의식이다.
2008년판은 원작의 여정 기록과 주제별 잡록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새롭게 배열한 편역서이다. 2013년 개정신판도 이러한 구성을 계승한다. 따라서 두 권은 원작 전체의 전통적 편차를 그대로 재현한 판본이 아니라, 여행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재구성한 대중적 판본이다.
2. 상권: 압록강에서 베이징으로
상권은 압록강을 건너 요동과 심양을 지나 산해관으로 향하는 여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서 박지원은 국경을 넘는 경험을 통해 조선이라는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강 하나를 건넌다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판단 기준을 상대화하는 계기다.
요동에서는 조선의 역사적 기억과 중국의 현실이 충돌한다. 박지원은 고구려와 관련된 유적과 지명을 살펴보면서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는 사고방식을 넘어 실제 세계를 관찰하려 한다.
에서는 심양의 풍속과 도시생활, 중국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한다. 그는 낯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서로의 관습과 생각을 비교한다.
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도로, 수레, 교량 등 실용적인 시설에 대한 관심이다. 박지원에게 수레는 단순한 운송도구가 아니다.
수레가 널리 사용되려면 도로가 좋아야 하고, 도로가 좋아지면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상업과 생산이 발전한다.
이처럼 그는 사회의 번영을 도덕적 훈계보다는 물질적 조건과 제도의 개선에서 찾는다.
그의 관찰은 18세기 조선의 경제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조선의 지배층은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과 기술을 낮게 평가했지만, 박지원은 기술과 유통이야말로 민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반이라고 보았다.
3. 하권: 베이징과 열하에서 만난 세계
하권에서는 베이징과 열하를 오가는 과정에서 관찰한 문명, 종교, 정치, 철학이 한층 풍부하게 전개된다.
특히 청나라는 박지원에게 하나의 문화적 세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거대한 제국으로 나타난다.
그는 중국의 학자들과 필담을 나누고 불교·티베트 종교·천문학·외교 등의 주제를 탐구한다.
건륭제가 체류하던 열하에서는 청나라 제국의 복합적 성격이 드러난다. 청 황제는 한족 세계에서는 유교적 황제로, 만주족에게는 자신들의 통치자로, 몽골과 티베트 세계에서는 불교를 후원하는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박지원이 만난 청나라는 단순히 명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 국가가 아니었다. 동아시아와 내륙아시아를 연결하는 복합적인 정치·문명 질서였다.
이 경험은 조선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든다.
4. 과 : 문학을 통한 사회비판
의 가장 유명한 문학적 성취는 과 이다.
은 호랑이가 인간, 특히 도덕적 권위를 자처하는 위선적 지식인들을 꾸짖는 풍자적 이야기다.
박지원은 호랑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인간 사회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한다. 유교적 윤리를 입으로만 강조하는 선비가 실제 생활에서는 탐욕과 허위에 빠져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니라 누가 도덕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권위의 문제를 제기한다.
은 더욱 직접적인 경제·사회비판을 담고 있다.
가난한 선비 허생은 부유한 상인 변씨에게 돈을 빌려 상업 활동에 뛰어든다. 그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이용해 큰돈을 벌고, 축적한 재산을 사회적으로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상업과 유통의 중요성, 조선 경제의 취약성, 지배층의 무능이 드러난다.
그러나 허생은 단순한 성공한 상인이 아니다. 그는 돈벌이를 통해 사회 구조의 모순을 증명하고, 궁극적으로 재산 축적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은 상업을 옹호하면서도 상업적 탐욕을 비판하는 복합적인 작품이다.
두 이야기는 기존 질서의 바깥에서 사회를 바라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의 호랑이와 의 허생은 모두 조선 지배층이 독점하던 도덕적·정치적 판단권에 도전하는 인물이다.
5. 북학사상: 문명은 민족이 아니라 생활에서 판단한다
박지원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성취는 북학론이다.
북학이란 북쪽에 있는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과 기술을 배워 조선을 개혁하자는 사상이다. 여기에는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등과 공유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다만 박지원은 청나라의 모든 것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았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실제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의 사상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용후생(利用厚生): 기술과 제도를 개선하여 백성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 기존의 명분이나 관념보다는 사실과 경험에 근거하여 판단한다.
개방적 문명관: 다른 민족의 문화라도 우수한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특히 세 번째 원칙은 당시 조선 지배층의 세계관과 충돌했다.
조선은 스스로 중화문명의 계승자라고 생각했지만, 박지원은 문화적 우월감만으로 국가의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문화적 자존심과 경험적 현실인식을 구별하려는 시도였다.
6. 여행문학으로서의 독창성
가 뛰어난 이유는 사상의 참신함뿐 아니라 문학적 표현에도 있다.
박지원은 철학적 논증과 풍자, 인물 묘사, 유머, 일상적인 관찰을 자유롭게 결합한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낯선 풍습에 대한 놀라움, 말과 마차가 오가는 풍경, 우스꽝스러운 사건 등이 생생하게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언제나 권위 있는 관찰자로 제시하지 않는다. 때로는 실수하고 당황하고 오해하는 여행자로 등장한다.
이러한 자기풍자 때문에 독자는 박지원과 함께 낯선 문화를 발견하는 경험을 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일기 형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 여행의 시간적 흐름에 철학적 논평과 문학적 이야기를 결합한 복합적인 작품이다.
7. 비판적 평가: 박지원의 사상에도 한계가 있다
박지원의 사상을 오늘날의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첫째, 그의 개혁론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정치질서 안에서 이루어졌다. 신분제와 군주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폐지하려는 사상가는 아니었다.
둘째,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에 대한 감탄이 곧 청나라의 정치체제에 대한 전면적 긍정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청나라는 다양한 민족을 통합한 제국이었지만 동시에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적 통제에 의존한 국가였다. 박지원의 시선은 제국의 문명적 성취에 비해 지배와 억압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셋째, 경제와 기술의 발전을 강조했지만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정치적 개혁 프로그램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그가 살았던 18세기 조선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
그의 독창성은 근대 민주주의를 예견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식을 의심하고 외부 세계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비판했다는 데 있다.
8. 고미숙 등의 현대어 편역본에 대한 평가
2008년 그린비에서 출판되고 2013년 북드라망에서 개정된 는 고전을 현대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번역자들은 어려운 한문 문장과 방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여행의 흐름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배치했다.
지도와 도판, 해설을 활용한 편집은 독자가 박지원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돕는다. 특히 긴 필담을 읽기 쉬운 대화 형식으로 옮긴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편역에는 한계도 있다. 원작의 독특한 구성과 사유의 비약이 어느 정도 정돈되면서, 박지원 특유의 복잡하고 불규칙한 문학적 형식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이 판본은 에 입문하기에 매우 적합하지만, 박지원의 문체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면 원문의 구성에 충실한 완역본과 함께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9. 종합 평가: 조선의 세계관을 뒤흔든 여행
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박지원에게 청나라 여행은 단순한 외국 견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질서가 다른 사회에서는 전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점에서 는 근대 인류학의 비교문화적 시선과도 일정한 공통점을 가진다. 물론 박지원은 현대 인류학자가 아니며, 그의 관찰은 유교적 가치관과 18세기 동아시아의 문명질서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기가 속한 문화를 판단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는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박지원은 낯선 문명을 관찰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버리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이 살아남으려면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 오늘날에도 지닌 중요한 의미다.
특히 근대 이후 한국에서 반복되어 온 이라는 논쟁을 생각하면, 박지원은 이미 18세기에 이 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답을 제시했던 셈이다.
그의 해답은 단순하다.
다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문화를 배반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한 지적 용기다.
그런 의미에서 는 단순한 여행기나 실학사상서가 아니다. 자기 사회의 상식을 상대화하고,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지식인의 지적 모험을 기록한 작품이다.
최종적으로 를 관통하는 질문은 가 아니라 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질문 때문에 는 2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읽을 가치가 있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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