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박지원 |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은이)돌베개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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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연암 박지원의 아들인 박종채가 쓴 박지원의 전기. 박종채는 4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초고를 집필했으며, 그후 몇 년에 걸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아버지 박지원을 후세에 제대로 전하기 위해 고심했던 박종채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만이 아니라 그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도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박지원이 활동했던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대한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
목차
1부 꿈에 붓을 얻다
2부 세상을 경륜하다
3부 원칙 있는 정치를 펼치다
4부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을 통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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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중앙일보 2013년 6월 22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박종채 (朴宗采)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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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차남으로 자(字)는 사행(士行)이고 호는 혜전(蕙田)이다. 벼슬은 음직(蔭職)으로 경산현령을 지냈다. 개화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박규수(朴珪壽)의 아버지이다.
최근작 : <역주 과정록>,<나의 아버지 박지원 (양장본)>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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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내 아들도 나에 대해서 이렇게 할 말이 있을
베스트맨 2009-03-2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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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입니다.
나침반 2010-07-1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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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 세 권 세트 다 읽고 나서
구입한 도서입니다. 좋은 책입니다.
sung-mo7781 2022-06-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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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개인적 인품이야 훌륭하다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가 편벽된 조선의 유학자.
인니 2010-08-30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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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버지를 곁에서 보면서 적은 글로 단편 모음 비슷하나... 이또한 많지 않아 귀중한 자료인듯!!! 연암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읽어야할 책.
독서꽝 2014-07-1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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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사부곡(思父曲)을 만나다
특별한 사부곡(思父曲)을 만나다
사부곡, 아버지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기도 하지만 그 절절한 마음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세월을 두고 시간이 흘러가는 시간만큼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림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유교국가의 이념이 살아남아 부모에 대한 깊은 정이 유독 강한 우리에게 특히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겉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깊은 가슴속에 감춘 것이 대부분이지만 차고 넘쳐 토하듯 강한 울림을 전하는 사부곡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부곡일지라도 각기 다 다른 감정을 전하는 것은 아버지와 자식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기에 그 감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는 것 때문이겠지만 그 바탕에 그리움과 후회가 있음은 자식의 마음을 그나마 표현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글로 남긴 것은 묘비명이나 산문, 시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엄격한 유교의 이념에 의해 움직였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아버지의 정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상황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문집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오늘 접하는 ‘과정록’도 그런 형태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과정록은 아들 박종채가 쓴 박지원의 전기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당대 주목을 받았던 박지원은 박종채에서 박규수로 이어지는 가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실학자 박지원과 개화사상가 박규수는 박종채를 사이에 두고 그 사상적 측면을 이어가고 있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를 통해 본 박지원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4년여 시간을 공을 들여 집필한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과정록’이다. 북학파 실학자로 열하일기의 저자로 무엇보다 대문장가로 특출한 글을 남겨 당대부터 주목받으며 온갖 구설수에 올랐던 박지원은 아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았을까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이 책 ‘나의 아버지 박지원’은 박종채의 ‘과정록’을 박희병이 대학에서 강독했던 것을 기초로 번역한 책이다.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짧은 글을 순번을 매겨 번역되어 있다. 전기이기에 태어나는 과정에서부터 성장배경과 사람들과의 어울림, 학문과 삶의 태도 및 관직생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아버지 박지원의 성격으로 자신이 남긴 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던 시기로 이를 직접 수집하고 때론 아버지의 지인들로부터 전해 듣고 해서 모은 글들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 중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글을 온전히 수집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부분이다. 문장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의 글이 유실된 것은 곧 아버지의 본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일 것이다.
여기에는 박지원과 교류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북학파, 실학자로 그리고 소위 백탑파로 불리었던 홍대용, 박제가, 이서구, 이덕무 등과 유한준 같은 사람들이며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 특이한 점은 산송문제에 휘말려 심한 고통을 당했다는 점이다. 산송문제는 조선시대 여려 사람들이 겪었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학자 박지원의 경우는 문장에 대한 평가가 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특색이 있다. 박지원과 유한준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다. 이 둘은 상당한 친분을 가진 사이지만 유한준의 문장에 대해 박지원의 평가로 갈라진 사이다.
요사이 박지원에 대해 주목하는 부분으로 그의 문장에 대한 것이 많아 보인다. 이 책의 역자가 책머리에서 언급한 구한말 문장가 김윤식이 박지원의 문장을 평한 글에서도 나타나듯 조선의 역사에서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문장 즉 글쓰기가 뛰어난 문장가로만 박지원을 접근한다면 그의 일면에만 주목하는 결과로 이어져 박지원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돌 수도 있음이 염려된다. 박지원 관련 책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으니 우선, 박지원의 생애와 그의 업적에 대한 입문서 형태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부곡,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넘어 아버지가 남긴 업적을 후대 사람들이 올바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글을 남긴다는 것은 단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을 찾아보는 것도 현대인이 아버지를 생각할 때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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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3-09-1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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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과 곧음....!!
한 사람의 기록은 개인적인 삶의 넘어서 당대의 삶을 구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민식이라는 작가가 담아내는 얼굴은 우리 당대의 삶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최민식씨의 사진을 보고 이해를 한다는 것은 당대의 삶에 대한 총체성을 가진 눈을 지녔을 때에야 비로소 가슴에서 진정한 울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난 삶이 앞선 시대의 삶을 볼 때에는 아련한 향수 내지 기록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하일기』를 싸두고 아직 잃지 않고 있는 나, 그러기에 앞서 조금은 부담이 덜 되고 가벼운 박지원의 알들이 적은 아비에 대한 기록을 읽어갔습니다. 아비에 대한 기록이 자칫 미화되거나 숨겨짐이 있을 지언정 들어냄이 없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냥 읽어갑니다. 마냥 아비에 대한 아버지의 글을 읽으가면서 나는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누구처럼 세살에 시를 지어 임금을 놀라게 하거나, 책을 많이 읽어 당대의 선비로 부터 "너는 필시 큰 인물이 될 것이야"라는 가슴깊이 새길만한 말도 듣지 못한 우리 아버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겨우셨던 해방둥이. 소학교를 1년도 채우시지 못하고 "너무집(남의 집)" 살이를 하시면서 밥 한끼를 들어셨던... 70년대 보릿고개를 거치면서도 꿈과 희망을 품으셨던... 결혼 전 까지 "너무집"을 살면서 '꼭' 자기 집을 짓겠다는 꿈을 버리지시 않으셨던... 결혼하시고도 10여년을 여섯짜리 방에 머물렀던... 너무 힘든 일을 이기기 위해 한 두 잔 마신 두꺼비(진로), 학(무학)이 몸을 떠나지 않아 끝내는 짓눌려셨던... 오직 아침 저녁으로 마시는 술 한 잔이 힘겨움을 이겨내는 버팀목이셨던...
소학교를 오래다니지 않아서, 혹은 책상물림이 짧아서 문장을 남기시지는 않았던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가 하루하루 힘에 겨우셔셔... 그러면서도 책에 대한 열정을 지니셨던 분.
누구나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높은 학문을 이룩하여, 좋은 직책에 오래 머물러 있어서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폭풍의 한 가운데에서 희망의 돛을 올리렸기에 나는 존경합니다. 내 삶의 힘겨움이 과연 아버지의 무게에 1/10의 만큼이나 되나 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마시자는 술에 과연 세상의 힘겨움을 들어내기 위한 약이 첨가되어 있는지 나는 묻습니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지원에 대한 평가는 정규 교과를 걷쳤다면 어느정도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선조들 가운데도 올바르고 곧은 사람이 있다고 내세우고픈 우월감도 있었습니다.
나는 박지원이 누구의 손(孫)이며, 무슨 장원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안씁니다. 다만 한낱 군수에 지나지 않는 직책에 있으면서 그가 보여준 행동입니다.
안의현(84쪽)이나 면천군수(131쪽)로 있으면서 그가 보여준 행동입니다. 그는 민중의 곁에서 그들을 먼저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아프면 왜 아픈가를 고민하지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니 쓸데가 없는 인물이구나라고 구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안의현에서 보여준, 아전들이 포탈한 곡식을 본래대로 창고에 쌓아둔 그의 지혜는 가히 손자가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듣었습니다. 손자는 그의 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최상책이라 했습니다. 이를 몸소 실천한 이가 박지원인것입니다. 또한 순이라는 임금이 어느날, 백성에게 묻길, "네 임금이 누구냐?"하니 "그런건 모른다"했습니다. 박지원이 현의 군수로 있을 때, 백성들은 그가 있는지없는지 모른체 한가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윗사람이 보여주어야 모범을 실로 행동으로 보여준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굳이 오늘의 현실을 들추어내는 것은 사족이라 생각되어 줄입니다)
"다스림은 구차히지 않으나
가끔 꾀병을 부린다"(137쪽)
박지원에 대한 가장 명확한 평가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모두들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에 물불을 안가리는데, 스스로 낯추기만 하려는 그의 풍모에서,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한 시대를 이해한다는 건, 당대의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힘들것입니다. 마찬가지라 한 인물에 대한 삶을 구현 할 때에 당대의 현실을 묘사하지 않고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박채원이 아비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당대의 삶을 얼마나 포용했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나는 단순히, 고등학교 입시시험 마냥 당대의 삶에 대한 총체성을 배제한 체 박지원만 쫓고 있습니다. 그의 삶이 당대의 삶 속에 어우러진 모습을 볼 때에 그의 풍모가 더 들어나지 않을가까 생각합니다. 내가 박지원만을 만난 부분은 지극히 일면이지만 내 마음이 풍요로운건 그의 깊이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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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5-05-12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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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일제고사를 거부했다
연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나의 아버지 박지원>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요즘 일제고사(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문제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만한 내용들이 있다.
박지원은 천재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민사고나 대원외고 학생 중에서도 전교1등감이다. 그런데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서울대는 물론 하버드도 시험만 보면 들어갈 천재가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박지원은 예수였을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들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아버지의 문장에 대한 명성은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치를 때마다 시험을 주관하는 자는 아버지를 꼭 합격시키려하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눈치 채고 어떤 때는 응시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응시는 하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과거시험장에서 고송과 괴석을 붓 가는 대로 그리셨는데, 당시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는 당신께서 과거 보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박지원의 장인 이보천은 시험을 보지 않는 사위 박지원을 두고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한다. 오늘날 부모 가운데 일제고사를 거부한 자식을 두고 칭찬을 해주는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아버지는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않으려 하셨는데, 꼭 응시해야 한다고 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억지로 시험장에 들어가긴 했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오셨다.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모두 말하기를, “구차하게 벼슬하려 하지 않으니 옛날 사람의 풍모가 있다”고 하였다. 유안옹(이보천, 박지원의 장인)은 이때 시골집에 머물러 계셨는데 그 아들(이재성, 박지원의 처남)에게 말하기를, “지원이 회시를 보았다고 하여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는데, 시험지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몹시 기쁘구나”라고 하였다.
조선봉건왕조나 대한민국공화국이나 시험을 안 보겠다는 사람을 보는 족족 족치는 건 다를바가 없다.
하루는 감제(황감제의 준말. 제주도에서 그곳의 특산품인 황감을 진상하면 이를 성균관과 하학의 유생들에게 하사한 다음 보이던 시험)를 보이라는 임금의 분부가 있었는데, 유생들이 대의(大義)와 관련된 일로 과거장에 들어오지 않았다.(정조10년 이래 유생들은 상소문을 올려 은언군 등 상계군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그 처벌에 미온적이었다. 이 일로 유생들은 계속 문제를 제기했으며 급기야 시험을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임금님께서는 유생들 대신 음관들에게 시험을 보이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또 분부하시기를 이미 과거를 단념한 사람들도 모두 응시하게 하여 감히 빠지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답안지를 바칠 때 이름을 적은 명부도 함께 바치도록 분부하셨다.
아, 그래도 대한민국공화국보다는 조선봉건왕조가 덜 나쁘다. 최소한 일제고사 거부한 박지원을 처벌하지는 않았으니까. 여하튼 예나 지금이나 불의를 따르지 않는 선비들이 곳곳에 있으니 희망은 여전하다.
아버지는 여러 사람을 따라 시험장에 들어가긴 하였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오셨다. 이윽고 임금님께서 시험 본 사람들의 명부를 들여오라 분부하시고 친히 살펴보았는데, 명부에는 아버지 이름이 빠져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자신을 뜻을 전해오기를, “이처럼 과거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그 몇 년 뒤의 일이다. 다시 음관들이 보는 시험을 베풀라는 임금님의 분부가 내렸다. 이때 아버지는 제릉령(제릉을 관리하는 종5품 벼슬) 벼슬을 맡고 있었지만 서울에 와 계셨다. 임금님의 이런 분부가 있자 아버지는 즉시 근무지인 제령으로 향해 떠나면서, 자신이 지방에 있어서 응시할 수 없다는 편지를 예조에 보냈다.
그렇다면 왜 박지원은 그토록 과거시험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오늘날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거시험과 일제고사가 사람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와 사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을 선비들이 무지하여 경전과 사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서야 비로소 과거공부 이외에 문장공부가 있고 문장공부 위에 학문이 있으며, 학문이란 글을 끊어 읽거나 글에다 훈고를 붙이는 것만으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중략) 하루는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네들이 책을 읽는 데에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의 뜻과 이치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닐세. 평소 과거시험의 글을 익히던 버릇이 종이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 그것을 벗어나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지. - 박지원의 제자 이현겸
아버지는 우리나라 선비들이 과문(科文. 과거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문체의 글.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하며, 상투적이고 진부한 성격을 띤다)의 낡은 관습에 골몰하여 진부한 말들을 늘어놓거나 남의 글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순수하고 질박한 글을 짓는 체하여 문풍(文風)이 날마다 거칠고 무잡스럽게 변해감을 병통으로 여기셨다.
선악에 대한 연암 박지원의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일제고사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기다리며, 아니 역사적 심판을 함께 하는 그 날을 꿈꾸며....
선과 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자기 몸에 갖추고 있는 이치거늘 신명(神明)이 굽어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행하는 선에 따라 일일이 복을 내려주지 않는다. 왜 그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딱히 훌륭하다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은 단 한 가지라도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이는 어째서일까?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므로 미워하고 노여워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벌을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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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 2009-10-17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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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지원을 보다
연암에 관한 기록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가운데, 우리에게 연암은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걸출한 실학자로 당대의 관습을 타파하고자 했던 지식인으로, 그것도 아니면 고집이 세서 도연명처럼 '獨也靑靑'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진 않는가.
어떤 식으로 기억되건 연암은 왠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위인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알고 보면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을 뿐, 그리고 70~80년대 민주화 열망에 꽉차 시대를 고민했던 지식인들처럼 그도 당대 지식인으로서 우리 나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연암은 우리에게 참으로 멋진 선배이며, 좋은 스승임에 확실하다.
이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이다. 출처는 논어에 나오는 진항와 공자의 아들 伯鯉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공자가 아들만 편애할거라, 아니면 아들에게만 뭔가 비법을 줬을 거라 의심하던 차에 백리에게 뭔가 특별한 걸 배운게 있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백리가 말하길 "뜰을 지날 때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시를 배웠느냐라고 하길래 안 배웠다고 했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하지 못한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날에도 뜰을 지나고 있는데 예를 배웠느냐고 묻길래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서 설 수 없다고 하셨죠"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진항은 공자가 자식을 멀리 한다는 것과 예와 시를 배웠다고 말한대서 '過庭之訓(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이 나왔다. 바로 과정록은 그런 아버지의 일상적인 가르침을 기록하고자 했던 박종채의 뜻을 담은 책이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 연암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성인정도로 치켜 세웠다가 실망함으로 깍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면모가 그렇게 다정다감해 보이며, 그 안에서 그런 우뚝한 정신적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이야기일 뿐 이니까.
조정에 등용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었던 관리들과,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연암의 이야기, 50대가 넘어 어쩔 수 없이 군수 자리에 앉아 선정을 펼치다 군민들이 선정비를 세우려 하자 만류했던 연암의 이야기, 중인들과의 아무거리낌 없던 교제 등등 웃지 못할 이야기들과 그의 결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 같은 건 없다. 그저 자기의 행복을 위해 살되, 그 행복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최고의 삶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연암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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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7-05-3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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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다시 보는 듯 문집이 아득하고
자식이 아버지에 대한 글을 적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조상들의 생활상을 잘 알지 못함이라. 원 제목은 '과정록(過庭錄)'이다. 과정록은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다. 아들 박종채는 4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 책의 초고를 집필했다 한다. 자신이 아버지에 대한 학문적 업적과 삶을 후대에 알리려 한 점 높이 살 만하다.
세상의 벗사귐은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을 쫓았다. 이를 꼴불견이라 하여 아홉편의 전을 지어 세태를 풍자하였다.(20 - 22)
세 미치광이가 서로 벗삼아 세상을 피해 거지로 살아가네.
아첨배를 조롱하는 말 들어보니 그 작태가 환히 눈에 보이듯.
이에 '마장전'을 쓴다.
선비가 배고파 구차해지면 온갖 행실이 어그러지는데
엄행수는 똥을 져 날라 스스로 먹을 것 마련하니 하는 일은 더럽지만 입은 깨끗하지.
이에 '예덕선생전'을 쓴다.
민옹은 골계를 잘하고 세상을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해마다 벽에 글을 지어 써서 스스로 분발했으니 정말 게으른 자를 깨우칠 만하지.
이에 '민옹전'을 쓴다.
명분과 절개를 힘써 닦지 않고 문벌과 지체를 밑천삼아
조상의 덕을 파니 장사치와 뭐가 다를까?
이에 '양반전'을 쓴다.
그가 쓴 아홉편의 글은 연유가 있어 이 작품을 창작했음을 밝혀놓고 있다. 그 중 '학문을 팔아먹은 도둑놈전'은 그 대상이 죽자 그 글을 불태워버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글들을 장난삼아 읽는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라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이다.
훗날 경상도 안의현감으로 있으면서 곳간의 곡식이 모자라는 것을 보고 아전들을 불러 다그치거나 매질을 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백성을 불러 아전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도 백성이 아전을 욕하지 않게 하고 서로 도와가며 그 곡식을 채울 궁리를 하여 2년여만에 모두 채워놓은 업적이야 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굶어가자 자신의 사재를 털러 그들을 구휼하고 여름철 저수지 둑을 막기 위해 각 마을별로 할당을 해서 일의 효율성을 높였고 수십년간 무너지지 않는 일을 성취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현감의 일을 보면서 있는듯 없는듯 업무를 보면서도 백성이나 아전 모두 힘들지 않게 한 행정의 모습은 오늘날 도지사, 시장, 군수 등이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한다.
감히 말하건대 국민을 위하고 시민을 위하는 위정자들은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새겨 읽으며 하루 그리고 한달 그리고 일년 계획을 세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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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__왕 2006-12-1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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