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난인가, 운동인가, 혁명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6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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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67 views Apr 30, 2025 #함재봉 #법률 #법률방송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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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급격한 변화를 맞던 19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조선은 물론, 청과 일본에도 영향을 끼친 큰 사건이자 종교! 동학에 대해 다뤄봅니다.
수운 최제우가 창시해 해월 최시형이 정립시킨 우리 고유의 종교라 할 수 있는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는데요. 불교와 유교가 이미 있었고, 서학이라 불린 천주교까지 들어온 경주라는 공간에서 태동한 동학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요?
동학 혁명 혹은 농민운동, 아니면 난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또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요?
고대 중국으로부터 시작해 난으로 명명되어 온 수많은 사건과 종교에 대해 살펴보면서 동학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그리고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지 분석해 보면서 동학의 진짜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 진행자 :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석·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네스코 사회과학국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장
아산정책연구원장
『한국 사람 만들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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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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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어 오늘은 어 동학난에 대해서 어 동학농민 운동에 대해서 어
말씀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김옥균의 암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김옥균의 암살이 청일
전쟁의 도화선 중에 하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도화선. 어떻게 보면 어 김막 김옥균의 암살과
불과 두 세 달 밖에 차이는 안 나지만 더 중요한 의미에서의 도화선이
된 동학난 동학농민 운동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어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동학을
논하는데 있어서 우선 호칭부터가 참 많이 어 헛갈리고 어 또 헷갈리기도
하고 논진 어 점이기도 합니다. 동학을 동학 난이라고 해야 할 것인지
어 동학 농민 운동이라고 해야 될 건지 또는 동학 혁명이라고 해야 될
건지 어 여러 가지 이견이 있고 논쟁이 있습니다. 저는 어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당시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을 했고 어떤 단어, 어떤 용어,
어떤 개념을 이용해서 그걸 표현을 했고 이해를 했는가 그거를 우리가
이해를 하는 것이 그게 역사이지 어 지금의 시각에서 봤을 때 그게
지금으로 치면은 뭐였다 이거는 저는 올바른 어 역사를 접근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굉장한 역사 외곡이 일어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어 이번
시간은 특히 동학난이 일어났을 때 또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시의 조선 사람들 그 당시 조선의 조종 또
서양 사람들 와 있었던 서양 사람들은 도대체 뭐라고 생각을 했는지 이해를 해야 되고 그 용어라는 것은 그냥 그
당시 사람들도 그냥 쓰는게 아니라 자기네의 전통 자기네의 관습 그
속에서 이것이 무슨 사태였다 무슨 사건이었다라는 거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특정한 용어를 쓰는 거고요. 그래서 오늘이 시간에는 특히 그 점에
그 거기에 좀 주한점을 두면서 어떤 영어를 쓰면 좋겠는가를 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혁명이라 그러면 이제 물론 revolu션이죠. 레볼루션이란 용어를 번역을 한
겁니다. 운동이라 그러면 무브먼트라는 영어의 개념을 번역을 한
겁니다. 사실 난이라고 했을 때는 아주 고유의 용량의 전통적인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쓰든 오랜 전통 속에서 나오든 특정한 개념입니다.
Evolu션 혁명 그러면 뭐 청교도 혁명 그렇죠. Revolution 미국 독립혁명
american revolu 뭐 어프렌vol 프랑스 혁명 뭐 산업
혁명 인더스트 여기서 쓴 레볼루션입니다. 그러니까는 자꾸 서양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서양
사람들이 자기 역사적인 맥락에서 특정한 사건들을 묘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설정했던 개념을 그거를 갖고 이제 동학 혁명이다 이러는 거
거고요. 무브먼트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movement인 운동
그렇죠. 마트루스터킹 목사가 한 civil rights movement 그러면 인권 민권
운동 그다음에 women's rights movement 여권 운동 이런 그 운동이라는 또
revolu션과는 다른 무브먼트라는게 있었던 거죠. 그래서 동학 운동 뭐
농민 운동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우리가 뭐 3일 운동도 그렇지만은 March first
movement 그러니까 사실 서양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 나왔던
특정한 종류의 사건들을 표현하는데 쓰는 거를 우리가 갖다 채용을 하는
겁니다. 과연 그것이 올바르게 동학을 이해하는 것인가? 그런데 분명한 건
뭐냐면 동학을 난이라고 했을 때이 사람들은 그럼 어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걸 난이라고 불렀었던가? 우리가 그걸 정확하게 추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문명사에서
보면은 난이라는 것은 난리는 일어났는데 체제가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면
동아시아의 체제는 왕조 체제라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굉장히 조선이나
오랜 동안 그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한 체제가 바뀐 적은 없습니다.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어 왕권이 있었고 그 밑에 신하들이 있어서 통치를 하고
이런 것은 계속됐습니다. 아무리 많은 공격 내난이 있고 했더라도
레볼루션은 서양에서 일어났던 굉장히 특이한 개념들인데 그건 뭐냐면 아예
체제가 바뀌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는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 체제가 전혀 다른 체제로 공화정
체제로 바꾸는 거 인더스트리션이라는 건 산업 혁명이라는 것은 뭐냐면 수만 년 동안 인류가 그냥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먹고 살아왔는데 경 경제가 그렇게 운영이 되왔는데 산업이라는 것이 일어나서 인더스트리라는게
일어나서 전혀 다른 경제가 체제가 바뀌었죠. 그걸 이제 우리가 레볼루션이라고 어 보통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동학이 레볼루션이었는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당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는지 어떤 관점에서 어떤 기준에 의해서 왜 그 특정 용어를
썼는지 그 당시 사람들의 경험을 우리도
어떻게서든지 제현해서 경험을 해 보려고 하는 것이 역사인 것이지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언어, 우리의
용어, 우리의 세계관을 그 당시에다가 투영하는 것은 그건 전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사들이 제가 봤을 때는 그 시대의 특정한 용어나 그 시대의
특정한 가치관을 반영하기보다는 그냥 옷만 옛날 옷도 있고 건물만 옛날
건물 안에서 있었지 사실 지금 사람들하고 거의 똑같은 대화를 하고 똑같은 용어들을 쓰고 그런 걸 보면
어 역사에 대한 어 그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어서 저는 그건 굉장히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그 동학을 이해하데 있어서 동아시아의
문명사에서 이해야 될 것이 뭐냐면 종교가 과연 무엇인가 여러분 동학이라는 종교 그리고 동학과 거의
동시에 일어나서 동학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탄압을 받는 천주교
그렇죠. 도대체이 종교라는게 뭐길래 저렇게 왕조가 탄압을 했는가?
그걸 우리가 우선 먼저 큰 틀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데 이런 거죠. 중국의 역대
왕조한테 가장 큰 위협이 뭔지 아세요? 반정도 아니고 다른 무사들이
무슨 쿠테탈를 일으킨게 아니라 사실은 모든 왕조들이 제일 걱정했던게
종교입니다. 이상한 종교가 일어나서 그 종교 때문에 민중들이 완전히
동요를 하고 그러고 나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를
했습니다.이 정통과 이단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불교나 유교가 보면 지금은 우리가 그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면 나라의 종교지 않습니까? 국교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그런데 불교나 유교도 항상 호국
종교가 아니었었죠. 나라의 통제를 벗어남은 사실 이단이
되는 거고 나라를 뒷받침해 주고 나라와 하나가 되는
것을 그걸 정통이라 그러는 겁니다. 유교도요. 유교도 처음에는
음양오행설, 황사상, 천년 왕국설 이런 것이 다 있었어요. 유교 내에.
그런데 그 민간 신앙적인 요소들을 점점 점점 배제해 가면서 주자
성리학까지 오면 성리학적인 이론 체계가 쫙 잡히고 형의상학적인 이론 체계가 잡히고 정치 제도 체제 이론이
잡히고 이렇게 돼 가면서 점점 점점 점점 이단적인 요소들이 사라지는 거죠. 도교에서는요
더 했습니다. 저 도교는 사실 항상 정통이냐 이단이냐의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었죠. 중국에서 초기에는 아주
정통 중에 하나였었습니다. 근데 이단이냐 아니냐가 갈라지기 시작하는게
후한 말에 우리가 삼국지에서 나오는 장각이 태평도라는 걸 일으켜서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는 거 아닙니까? 그 황건적의 난을 진압을 하려고 조조가 일어나고
뭐 저 유비 관우 장비가 일어나고 그러면서 황건적을
진압하려고 군할 거 하기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장기 하는게 그게 도교의
어 일 일 일종이죠. 근데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제거가 돼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통이 이제 생기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도교는 굉장히 정통의 역할을 하기
힘든데 오늘 이제 동학의 얘기를 하기 하하기 시작해서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중국의 종교의 역사를 대충 알아야 되는 거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이
도교의 태평도 황건적의 난이 얘기를 알아야
됩니다. 왜냐면은 동학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조선 조종이 동학이 뭘까?
제일 먼저 비유를 했던게 어 이게 황건적의 난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는
거 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이 이단이냐 아니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차이는 뭐냐면
역대 왕조들이 항상 그게 유교가 됐든 불교가 됐든 어 도교가 됐든 제일
경계한게 뭐냐면 천년 왕곡설입니다. 종말론입니다. 지금 기존 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런 얘기를 자꾸 하면은 그럼 기존체 이제 왕조로서는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천년 왕국설 종말론이 나오는 것을 2단으로 2단으로 치를
합니다. 종말론이 뭐랑 겹치는 겁니까? 천재 지변 아니면 굉장히
통치를 잘못해서 경제가 파탄에 이르면서 홍수가 나고 감뭄이 일어나고
이러면서 사람들이 굶어 죽기 시작하고 도적대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무질서로 빠지고 권력 계층 내에서도
권력 투쟁이 일어나면 그러면은이 민간 신앙 천년 왕국설이랑 그런 상황이 합치면서
왕조가 흔들리고 결국은 무너지면서 체제가 바뀌는 일이 그게 반복이
되는게 중국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종교라는 것, 특히이 천년 왕국설
종말론 그러면서 민간에 퍼지기 시작하는 이러한 민간 신앙은 역대
동아시아의 왕조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되고 걱정해야 되는 종교 어 그리고
어 정치 현상입니다. 동학 일어나니까 1864년 4월 7일 고종 실록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의정부가 동학의 창시자 수훈 최재우를 처형해야 되는
이유를 이때 구합니다. 1864년이면요. 고종이 즉위한지
몇 달 되지 않습니다. 갓 즉위한 후입니다. 이번에 동학이라고 읽컫는 것은 서양의 사수를 전부 답습하고
그니까 천주교죠. 특별히 명만 명목만 이름만 바꿔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만약에 조기의 천토를 행하여 나라의 법으로 처결하지
않는다면 결국에 중국의 황건적이나 백년교라는 도덕적도 도적들처럼 되지
않을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조선 정부에서는 어떻게 이해를
했습니까? 동학이라는 것이 일어났다. 이게 뭐냐? 아 황건적 아니면
백년교구나 그런 종류구나라고 딱 이해를 하는 거죠. 뭐 황건적은 우리가 삼국제에서 봤던 얘기고 백년교
같은 거는 우리가 중국 뭐죠? 무협지 같은데 보면 그 강호에서 자기네들끼년
교도들끼리 뭐를 조직을 해 가지고는 꼭 조정에 반대를 하고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리고 조선 사람들의 치자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경계해야 되는 것이 황건적이나 백년교 같은 건데 마침 통학이 그것에서의 일종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 버리는
겁니다. 실제로 조선실 왕조 신록에는요. 태평도에 대한 기사가
열건. 황건적이라는 거에 대한 기사가 40건. 100년교에 대한 기사가
20여건. 그리고 100년교의 다른 이름인 홍건적에 대한 기사가 80여건.
그만큼 조선 사람들의 뇌리에는이 태평도 황건적 백년교 홍건적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뇌리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는 것이고 바로 동학이
이거다라고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자기네가 집어낼 수 있는 설례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실제로 또 하나
뭐냐면 그 당시 바로 동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중국이 바로 100년 교도의
난 1794년에서 1804년까지 100년교의 난 때문에 아주 혼이
납니다. 그리고 이제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우리가 자세히 다뤘던
태평국의 난이 또 일어났었던 것이고 1862년에서 77년까지 니엔난이라는
이슬람 무슬림 교도대간 반란이라고도 하죠. 그 반란이 신장국 위구에서 또
일어났었던 거죠. 이런 이단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청조를 위협했던 거죠. 청조를 내부로부터 흔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교도들의 민간 신앙에서 비롯되는
그러한 난들이고 그러는 왕조 교체기에는
매번 일어나는 삼국주의 그 시대 배경에서부터 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 사건들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어 청에서도 잔뜩
긴장을 하고 조선에서도 야 똑같은 일이 우리한테도 또 벌어지기
시작했구나라면서 동학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학이 됐든 황건적의 난이 됐든 홍권적에
난이 됐든 100년 교회의 난이 됐든이 신앙의 핵심은 뭐냐면 병을
고쳐 주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겁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요. 뭐
왕족이나 귀족이 사람들 빼놓고는요. 보통 사람들은 의사가 없었습니다. 병원이
없었습니다. 한의사가 있었겠지만 한의사조차도 특권층한테나 가서 저걸
했겠지 뭐. 보통 사람들한테는 민간 요법이라는 거 빼놓고 아무것도 없었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요. 기근이 나고 홍수가 나고 뭐 전염병이 돌고 그럴
때에 보통 사람들한테 필요한게 뭡니까? 그냥 먹을 거하고 병 고쳐 줄 사람입니다. 특히 병 고쳐 주는
사람. 그러니까 모든 민간 신앙은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이 나옵니다. 지도자들은 다 병을 고쳐줍니다.
여러분 예수 예수도요. 유대 지방에서 뭐를 합니까? 병을 고쳐 주지
않습니까? 문둥병을 낳게 해주고 안정병이 일어나게 해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 근대 사회에서
지도자는 특히 민간 신앙의 민간 종교의 지도자들은
병을 고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삼국제에 나오는 그 장각도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후한서에
나오는 장각 황건적에 대한 기록입니다. 거룩의 장각은 스스로 스스로 대현사 혹은 대현사라고 칭하고
황로의 도교죠. 황교를 행하며 제자를 키웠다. 장각은 신자에게 끌어 엎드려
자신에게 배례하며 과을 고백시켰고 부적과 물을 써서 주문을 외우며 병을
고쳤다. 환자들이 잠못 병이 나으니 사람들은 그를 신앙하기 시작했다.
장각은 이에 제자 여덟 사람을 사방으로 보내어 선한 길로서 천하를 교화시켜 제자들은 차제의 사람들을
미혹하게 되었다. 10여년 사이에 신자 무리는 수십만이 되었으니 군국이
서로 결명하게 되었다.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
여덟 개 주의 사람들 가운데 이에 응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러분,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의 활약하는 상 그죠?
얘기나 동학의 얘기나 나중에 나오겠지만 그리고 이런 얘기 뭡니까?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올바로 살으라 그러고 그걸 가르쳐서 제자들을 해 갖고 퍼트려서
그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시작했다. 교화시키기 시작했다 얘기입니다. 그래서 장각은이어서
이렇게 합니다. 장각은 이에 36개 방을 설치했다. 방이라 하면 장군의 호와 같은 것이다. 대방은 1만 명
이상 소방은 6 7천명 정도로 각기 거수를
세웠다. 동하기 나중에 접주 접이라는 걸 만들지 않습니까? 똑같은 일들이
지금 벌어지는 겁니다. 신자들은 천명을 고실로 창천은 이미 죽었고 황천히 세워져야 할 것이다. 때는
갑자히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 그러니까 황천의 세계가 온다. 이게
천년 왕국소리죠. 그러니까 종말론이죠.이 이 왕조는 무너진다. 새 세상이 돌아간다.
도래한다. 이렇게라며 백토로 경성의 공무소 및 주근의 공무소에 갑자의
문자를 써 놓았다. 이러면서 이제 주문들을 써 놓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새를 키워 나가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홍건적은 고려 시대에도 침입을 하죠. 홍건적이라는 건 굉장히 조선
사람들한테 익숙한 난입니다. 그리고 특히 홍권적이 너무나 익숙한 이유는
황건적이 아니라 홍권적입니다. 홍건적은 백년교라는 불교의 그죠. 미륵 그
미륵 사상의 일종이죠. 그래서 그 100년 교가 일어났는데 조선이 섬긴
그 명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본인이 백년
교도였었습니다. 홍건적이었었습니다. 두원장이 등장하게 되면서 결국은 원이
무너지고 명이 들어서게 사는 계기가 바로 온갖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정치적인 대혼란이 일어나는 와중에 백년교와 같은 민간 신앙이
일어나면서 민중들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끌어가면서 그러면서 왕조 교체가
일어났던 거죠. 그러니까 이거는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역사적인 설례가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런 거였습니다. 1331년에서 1333년에
허에서 전염병이 돌아서 1,300만 명이 죽습니다. 저 당시에
1,300만 명이면요. 조선의 인구가 다 죽는 거죠. 그리고
1344년에서 1446년 후젠 하고 산동성에서
1351년에서 50년 사이에는 산시 허배의 장수성에서 전염병이 창벌라.
1356년에서 1500 1362년에는 매년 전염병이 전국
휩소를고 1358년에는 산시에서만 20만 명이 사망합니다.
여러분 명나라가 언제 세워집니까? 1364년에 세워집니다. 이런
대혼란이 있으니까 세워지는 겁니다. 자,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이렇습니다.
1340년대부터 이제 매년 황하가 법남을 하면서 운화가 막혀 버리죠.
운하라는 거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양자강 유역에서 나오는 많은 곡식과
과일 수많은 거를 대하운화를 통해서 이동 이동을 해서 어 양자 저 황화를
통해 갖고 운송을 해 갖고 경제가 유통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 운하가 막혀 버리니까 은화를 막는 대토목
공사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조종이 15만 명의 백성을 동원을 해 버립니다. 이럴 때에
이제 인간 신앙, 미륵 신앙이 일어나는 거죠. 그때 누가 나타나냐면 한산동이라는 백년교 지도자가
나타나는데이 사람이 뭐라 그러냐면 나는 송의 팔대황제인 휘종 그 그림
잘 그린 휘종이죠. 예. 팔대손이다. 그리고 미륵불의 현현이다. 내가
미륵불이다. 다시 태어난 거다. 그러면서 거기에 이제 토목 공사에 도원된 사람들을
맨 움직여 가지고 그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그때에이 사람들이 모두 홍색
수건을 머리에 섰기 때문에 그때부터 홍건적이라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원장은이 홍건적의
일파의 두먹이 되는 거죠. 처음에는. 그래 갖고 세를 키우기 시작해서 결국은 자기가 권력을 잡으면서 천하를
다시 통일을 해서 명나라를 일으키는 겁니다.이 말씀을 자꾸 드린 이유는 거듭해서 민간 신앙 그리고 병을 고쳐
주고 새상이 온다라는 얘기를 하는 종교는 중국 역사상에 끊임없이 있어
왔던 거고 그럴 때마다 사실은 대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왕조 교체가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리고 평소에도 밀교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뭐를 하고 있는지 항상 감시를 해야 됐었고 조심을 해야 됐었고 특히 난세가 됐을 때에 큰
다른 세력들을 규합을 해서 큰 세력으로 일어나는 거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그것이 왕조를 유지하는
관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서
지금 동학이 일어나는 겁니다.이 이 100년 교도는요. 18세기 말에도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은
1796년에서 1805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의 서부를 100년 교도의 난이
초토화시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청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이것이 조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중국의 역사입니다. 조선에서는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냐?
19세기부터 삼남에서 밀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사실 19세기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 봐 삼남은 거의 중앙정부의 힘이 거의 미치질
못합니다. 교통신이 발달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길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방의 유지들이 모든
거를 다 했지 결코 원님들이 힘을 쓸 수도 없었던 거고 그리고 경제적인 단위도 그죠. 다 따로따로 영남,
호남 그 3일장, 5일장을 돌아다닐 수 있는 그 똑같은 상인들이 곧
장이서는 정도가 한 경제단이었었습니다. 말이 같은 나라지 중앙조 조정에서 거의 이쪽을 직접
통치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19세기까지 들어와서 조선의 정부의 힘이 무너지고
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서선 더욱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1852년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미 조선 인구의 절반이 삼남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양의 인구가 그 당시 1850년대에 한양의 인구가 20만이었습니다. 경상도 인구요
150만 명이었습니다. 전라도가 100만 명, 충청도가 9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쪽에 인구가
엄청나게 컸었던 거죠. 그리고 중요했던게 뭐냐면 삼남 지방에서는
각종 종교가 그렇게 성했었습니다. 특히 경상도의 종교가 그렇게
성했었습니다. 불교는 원래 뭡니까?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기 때문에 어떻게 합니까? 조선대에서도 불교는 영남 지방에
강하게 부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조가 창근돼서 숭유억불 정책을 해 갖고 뭐 3,000개의 사차를
36개로 줄이고 종단을 두 개로 줄이고 뭐 이런 쭉 공식적으로는 경상도에 그 이후로 사찰이네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가 되면요. 그때 조사한
걸로 경상도에만 절이 338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중앙에서 그걸
누르려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아주 성행을 하고 있었던게 경성
경상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뭡니까? 천주교가 가장 포교가 잘되는
데가 경주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천주교 철종대에는 천주교도 그렇게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포교를 합니다. 그래서 왜 동학이 동학이라 그러냐? 서학을
받기 때문에 천주교를 받기 때문에 최재우가 그렇죠. 수훈이 경상도 경주
출신으로서 너무나 천주교를 쉽게 대접할 수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천지교가 아닌 서학이 아닌 동학이라고 했던 겁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경상도는 중앙 정보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었고 워낙 종교가 흥했던 그런
데에서 동학이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기
[음악]
위해서 자 그럼 수훈 최재우가 누구냐? 수훈은 1824년 12월
24일 경주에서 30 떨어진 가정리라 데서 태어납니다. 아명은
복록에도 보면 최복술 최복술 이렇게 나옵니다. 호는 수훈. 본관는 경주.
경주 최시입니다. 부친의 호가 그남이고 최옥 1762년생이고
1840년에 어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수훈이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는 거죠. 근데 그 아버지가 아주
수제였답니다. 아주 수제로 이름이 났는데 아홉차례나 과거에 납방하고 결국 해서는 쉬운 세세 53세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염하겠다. 그래서 영남에서 어 영 아주 그 유명한
유학자로 어 여생을 지냅니다. 그런데 그 최제옥의 아버지 최옥이 첫 번째
부인과 자식들을 다 전염병으로 잃고 두 번째 그 부인을 맞이한는데 또
둘째 부인이 딸밖에 못 나니다. 그래서 조카를 결고 양자로 들일
수밖에 없고 그리고 어 두 번째 부인이 돌아간 다음에 그다음에 경주의
금청이란데 사는 과부 한씨를 소실로 맞이합니다. 그게
누구냐면 바로 어 수훈의 어머니, 최재우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래서
수훈은 어 아버지가 예순실 때 그때에
태어납니다. 후실의 자식으로. 자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어 서출이죠. 서출이니까 뭐 집안에서 아무 대접을 못 받겠죠. 그래서
수훈이 어쨌든 울산의 규수하고 결혼해서 스라의 어 일곱 명의 자식을 둡니다. 그러니까 그렇지만 어 아예서
그 과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친이 돌아간 다음에 자기가 2년 동안 막 병을 공부해서 내가 무장으로
뭐 성공을 하겠다 뭐 했는데 결국 그것도 포기하고 울산으로 처갓집 있는
대로이 이사를 가고 거기서 이제 포목 행상을 합니다. 근데이 홍 행상을
하면서 수훈이 삼남 지방을 두루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포목상을 하면서
돌아다니면서 어쨌든 경주와 울산을 벗어나는 더 큰 세상을 보는 거죠.
삼남 지방에서 얼마나 조선의 백성들이 그때 도탄에 빠진 삶을 살 수 살고
있었던가 그것을 직접 어 그 목격을 하고 그리고 이제 행상을 다니다
보면은 어디 가서 묵어야 되고 그런데 그럴 때 이제 불교 사찰에 가서 절에 가서 묻고 그러면서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민간 신앙들을 접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삼남지방을 다
섭렵하면서 현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 그 부른했던 시대에 자기네의 그 그
삶의 의미나 이런 거를 찾기 위해서 민간 신앙을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1855년에 결국은 어 울산으로
돌아와서 다시 뭐 농사도 지보고 대장관도 운영해 보는데 다 실패해
버립니다. 그래서 완전히 어 빚비제스 어 빗덤이에 깔리게 됐는데 이때에 어
아주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수훈이 암자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금강산 유점사의 노승이 나타나서 금강산에서 자기가 특이한
서적 이석을 발견을 했는데 그것을 수훈한테 주고선 이걸 좀 해독해
봐라. 그런 환영을 어 봅니다. 그래서 수훈이 곧바로 양산 통도사로
들어가서 49일 동안 기도를 마칩니다. 기도를 마친 수훈이 울산의
가족을 데리고 용담으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지어 놓은 영 용담
서사란 조금만 정자가 있는데 글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신비한
체험을 하고는 그리고 나서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어 수우는 복수이었던 아명을 재우 즉 뭡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뜻이죠. 제우가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도를 창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수훈은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유가 뭐냐? 어리석인 어리석은 민중이 천주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비와
이슬을 내려 주시는 은택을 모르고 그것이 자위 없이 저절로 되는 줄
알고 하늘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이슬이 내리고
하는 것이 모두가 자연 현상을 일어나는게 아 아니라 천주께서 해 주신 건데 그거를 일반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그걸 다 잊어버리고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하늘을 섬기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이제 어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이 근세 일에 온 세상
사람들이 각각 스 스스로 딴 마음을 먹고 하늘의 이치에 순종하지 아니하며 하느님의 분부를 돌아보지 아니하니
마음이 늘 송구스러워 지향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자기가 너무 죄송해서
하늘에 사람들이 전혀 하늘을 모르니까. 그러면서 경신년에 이르러 전하여
듣건데 서양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여 부기를 취하지 아니하면서
천하를 공격하여 얻어서 집 당 교회 당을 세우고 그 도를 시행한다 하므로
나에게도 또한 그러할까 어찌 그러할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1860년이 되면은 뭡니까? 천주교를 접하는 거죠.이 사람이 카톨릭을 접하는 거죠. 카톨릭은
뭐 1782년에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오고 또 1806년에 주문 신부도 들어오고 그다음에 이제 빠리 외방 선교회를 통해서 여러 프랑스
신부님들이 들어오면서 전국에 흩어져서 포교를 하는데 특히 경주에서 포교가
굉장히 잘 됩니다. 그 그러니까 수훈이 그거를 본 거죠. 어 이렇게
이런 거를 하네. 교회당도 만들어서이 사람들이 이렇게 한데 많은 사람들이 따르네. 어, 나도 여기를 가야
되나? 이런 걸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이제 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1860년 4월 5일 본인이
상제 체험을 합니다. 뜻밖에도 4월의 마음에 한기가 들고 몸이 전율하여 병
증세를 잡을 수 없으며 말로 형상할 수 없는 지음에 어떠한 신선의 말이
홀련이 귓속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놀라 일어나 케어른데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나를 하늘님이라고 읽컫는다. 너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강림하신 까닭을 묻자온데 이르시기를
내 또한 보람이 없는 연고로 너를 세상에 낳아서이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겠다.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서도로서 사람을 가르칩니까? 그러니까
아 그러면 저보고 천주교가 교도가 되라는 것 말씀이십니까? 하니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신스러운 부험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며 그 모습이
태극이고 또 그 모습이 궁궁이다. 나의이 부험을 받아 사람들을 병드는
데서 건져내며 나의 주문을 받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한다면
내가 또한 길이 살아서 덕을 천하에 펼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또한 그 말씀에
감동하여 그 부험을 받아 글씨 써서 불사른 죄를 물에 타 먹어 보니 몸이
은택해지고 병이 나음에 봐야로 곧 선약임을 알겠더라.
이것이 병에 사용됨에 이르서는 어떤 사람에겐 나음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 나음이 없는 연구로 그 가닥을 알 수
없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니 참되고 또 참되어 하느님을 지극히 위하는
사람에게는 번번히 적중됨이 있고 도와 덕에 수능하지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효험이 없었다. 이것은 받은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닌가? 그런 겁니다. 그니까 마음이 신실하고 하늘을 공경하고 받뜨는
사람한테는 영험한 치유법이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그 치유법까지 그
약까지도 받아서 그거를 이제 믿음을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짜 믿는 사람들한테 주니까 백발백중 병이
났더라. 그러면서이 동학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내용이 용담 유사 어 나중에 이대 교주 최시형이 구수를 하는 어 그
용담 유사 수훈 최재우는 본인은 책을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훈이
구수한 거를 나중에 최시영이 이렇게 들었다 그러면서 구슬을 한 거를
책으로 만든 것이 그게 지금 전해지는 겁니다. 그 안심과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자가 마주앉아 손을 잡고
우는데 하느님이 이르시되 지각 없는 인생들아 삼신산 불사약을 누구나 보겠느냐 미련한이 인생아 내가 다시
그리고 불살라 남은 죄를 기도하며 물에 타서 천천히 삼켜보라이 말씀들은
후에 밥비 한 장 그려내어 물에 타서 먹어 보니 냄새 없고 맛 없으나 느낌은 특별하여 그럭저럭 먹은 것이
수백장 되었네 여덟 달쯤 지나니 가는 몸이 굵어지고 검떤 낯이 휘어졌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신선풍채 내 아닌가 좋고도 또 좋구나. 몸과이 다 좋구나. 늙음 죽음 어디 있나?
독재자 진시황도 여산에 묻혀 있고 한 무죄을 먹고 웃음거리 되었더라.
좋것도 좋구나. 몸과을이 다 좋구나. 불변진리이 아닌가? 좋것도 좋구나.
금을 준들 바꿀소냐? 은을 준들 바꿀소냐?
찬송과 같은 거죠. 아니면 기도문 같은 거죠. 주기도문 같은 거. 사람들이 민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기네 종교의 그 내용을 쉽게 외우고 남한테 전수할 수 있는 그러한
노래들을 어 이제 만들어 주는 거죠. 그런데 자 수훈은 경주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짜 경주를 우주의 중심으로 봅니다. 우주의 중심이 경주입니다. 경주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뭡니까?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 신선 마을 이런 것이 동주에는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경주가 또 얼마나 유교가 강합니까? 유학도 유학의 중심이기도 하죠. 유교,
불교, 도교를 발언지고 중심지인 그 경주의 경험을 다 합치는 거죠. 그래서
경주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이제 우리가 동학을
얘기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경주가 중요한 이유는 수훈이 봤을 땐 이게 작은
중국이라고 보죠.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동학도 역시 중화 사상이 굉장히 강합니다. 경주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중국 곤륜산에 한 줄기가 뻗어내려와서
형성된 작은 중국 즉 소중화죠. 송열 우암 송시를 통해서 중화 사상을
받아들여서 중국이 다 오랑캐 땅이 돼 버렸는데도 우리가 중화를 소중화 명예
그 중화 사상을 이어간다라고 그래서 중화주의라고 한다면 지금 수운도 경주가 왜 우주의
중심이냐 곤륜산의 줄기가 경주에 닿았기 때문이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 많은
민족주의 사관에서 동학이 우리 고유의 것이다. 어 유교의 반대에서
일어났다.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지만 중화 사상이 중요한 건 맞는데 그 중화 사상을 제대로 받아서 한 거는
한양의 조선이 아니라 지금 경주에서 자기가 하는 거라는 거죠.이 이 동학이 이게 제대로 소중화를 하는
거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나라 이름 조선이요 고울 이름 경주로다. 성
이름 월성이요 물 이름 문수로다. 기자 때 왕도로서 천년이나 되었구나.
경주는 옛나라요 한양은 새 나라니 우리나라 생긴 후에 이런 더욱도 있을까? 물길도 좋거니와 산기운도
좋구나. 금모는 남산이요 구미는 서산이라. 봉황대 높은 봉에 봉황은 가고 없고 첨성도 높은 탑은 월성을
지켜주네. 청색 황색 피리가 자으로 짝이 되어 1천년 신라의 가물홍수
조절하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천하승지 구경하소. 동쪽 세산
둘러보면 신선 마을 분명하고 서쪽 주산 살펴보면 유학 중심 분명하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옛수도 구경하소. 땅 기운이 이제 내니 큰 선비 아니까
하물며 구미사는 경주의 주산일세 곤륜산 한 가닥이 중국에서 뻗어내려
우리나라 구미산에 작은 중국 꾸며냈네. 어와 세상 사람들아 나서
자한 이강산을 나 또한 바로 지켜 대로 전하려네. 그니까이 경주 여기의
중요성은 뭐냐? 작은 중국이라는 겁니다. 자, 그러니깐 수훈은 이런
식으로요. 정말 어 수많은 글을 짓습니다. 구수를
합니다. 포동문, 논학문, 수동문, 불련기연 한문으로 된 경전. 그다음에
교훈과 안심과 용담과 몽중 노소 문답과 도수사 권학과 도덕과 흥비가
검결 등의 온문가사 이런 거를 다 주 분명히 천재였었습니다.
놀라운 제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이 구수를
또 해월 최시형이라는 걸 제자가 그니까 사도 바울 같은 경우가
되겠죠. 굳이 비유를 하자면은 그거를 다 받아 가지고 그거를 그대로 구수를
하면서 한문으로 된 동경 대전 그다음에 언문으로 된 한글로 된 용담
유사를 또 구수를 해서 그걸 출판을 다해서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쉽게
역사를 설명하고 우리의 전통을 설명하고 유래를 설명하고 하는 그러한 것들을 어 글들을 어
지어내면서 점점 어 교세를 확정 확장해 나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수훈은 경주가 중심인 그 유교, 불교, 도교를 다 통합을 시킵니다.
그래서 동경대전에 포동문, 노학문, 수동문에는 150개의 고유명사가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수복 오래산 거 복과 관련된 도교, 불교,
풍수설의 용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기도문을 지어서 글을 모르는
층들도 쉽게 동학의 교리를 암송하고 그렇죠. 전파할 수 있는 뭐
천주교에서도 당연히 카톨릭에서도 수많은 기도문들을 암송을 하지 않습니까? 종교 개혁이 일어나서
개신교가 일어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중에 하나가 찬송가입니다. 그 마틴 루터 같은 사람들이 찬송가라는
걸 처음으로 짓기 시작을 해서 노래들을 버티기 시작하죠. 그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개신교도들이 돼 갑니다. 그 프랑스가 그랬고 어디 네덜랜드 그렇고 독일도 그랬고 다 노래를
시켜서 똑같습니다. 여기서도 가사들을 어 부르게 해 갖고는 쉽게 사람들이
교리를 이해하고 퍼트릴 수 있게 어 말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인게 37주
뭐 당장 장생주라고 하는 어 동학의 주문인데 직위금지 원위 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뭐 이런 거를 이제 쭉 외우게 모든 사람들이 어
외우게 하는 겁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요. 수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이게
교수 교세가 커질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그 경험을 통해서
어려운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주변에 이제 친지들한테 동네 사람들한테 그냥
좀 마음에 평안을 주고 이렇게 해 주려고 글쎄요. 뭐 충고 하는 얘기들, 가훈, 교훈 이런 것들이
결국은 그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그러니까 정부의
지금 체제에 저항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점점점 변해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학이 급속하게 퍼져 나갑니다.
1863년 1월 28일 선전관 정귀가 동학을 이제 조사를 하고
나서계를 올린게 있습니다. 조룡에서 경주까지는 400여이가 되고 죽은이
모두 열개나 10여나 되는데 거의 어느 하루도 동학에 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없었으며 주막집 여인과 산골 아이들까지 그
글을 외우지 못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위천주라고 명령하고 또
시천주라고 명령하 명령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한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오염되고 번성한지를이를 통해서 알만합니다. 그것을 전파시킨 자를
염탐해 보니 모두 말하기를 최선생이 혼자서 깨달은 것이며 그의 집은
경주에 있다고 하였는데 만 사람이 떠든 것이 한 입으로 집거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은 경주에
도착하는 날부터 장시와 사찰 사이에 출몰하면서 나무꾼과 장사치들과
왕내하니 혹은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내기도 하고 혹은 대답도 하기 전에 상세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자들은
서로 물들여 도당을 잃은 죄로 조율하면 처음부터 피차와 천심의 구별이 없으니 전부 처 처분을
내린다고 해도 아까울 것이 없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대왕 대비의 덕을 받들어 억지로 차등을
두었습니다. 정학이 밝아지지 못하고 사설이 회하므로 혼란을 좋아하고
재화를 즐기는 무리들이 거짓말과 헛소문을 퍼뜨려 점점 젖어들고 익숙하게 하여 결국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경상도는 우리나라에서 노나라 그렇죠. 공자가 살았던 태어난 노나라나
추나라와 같이 음악 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던 고장이었으나 이런
일종의 요사스러운 무리들이 나타나서 많은 도당을 집결하게 이르렀습니다.
이야말로 음과 양이 사라지고 자라나라는 기회와 같은 것입니다.
삶과 등대한 자리에서 따로 진달하려고 합니다만 먼저 이런 내용으로 행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하였다. 이제 안 된다라고 어 금지한다라는
프로그램을 내리겠습니다 하니 고정이 윤호합니다. 즉위하고 나서 가장 거의
최초로 하는 일 중에 하나가이 수훈 어 최제우의 처형입니다. 그래서 수훈은
1863년 체포되어서 1864년 4월 15일 대구에서
순교합니다. 우선 대구에서 처형됐다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뭐냐면은 나라에서 봤을 때 이게 아주
심각한 위협이라 그러면은 꼭 한양으로 압성을 합니다. 한양으로 압성을 해서 취조를 하고 죽이는데 문초를 하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대구 감명에서 그냥 처형을 하고 그리고 시신도 다
유가족들한테 내 줬습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이라고 사실 생각들 안 했던 거죠. 다만 100년교 그렇죠.
황건적 이런 거 같이 될 수가 있으니까 우리가 좀 미리 미리 좀
빨리 뿌리 뽑자라고 일을 단행을 했었던 겁니다.
그런데 수훈의 처형으로 인해서 그리고 탄압으로 인해서 결국은 동학 교도들이
수훈의 가족들과 제자들 그렇죠.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경주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탄압을
하니까 경주 중심으로만 있었던 동학이 어떻게 됩니까? 전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됩니다. 어, 해월 초시형이 2대 교주가 되면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의 그 말씀들을 전부 다 자기가 그걸 최고로 다 인쇄를 해서
경전을 만들고 동경 경주 대전을 만들고 그리고 영담유사를 만들어서
퍼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점점이 사람들이 우리 교주께서 너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를 갖다가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를 왜 그러냐 그러면서 교조 신혼 운동을 버리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교조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 그래서 교조 신혼 운동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점점점
정부와 부딪히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결국은 1894년이 되면은 그렇죠.
그러니까는 수훈이 순교한지 30년 되는 해에는
본격적으로 정부와 맞서는 더 동학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네. 오늘은 동학이
왜 란인지 동학 란이냐 동학 운동이냐 동학 혁명이냐라는 걸로 어
처음에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쭉 말씀드렸던게 뭐냐면 난이라는 것은
동양의 정치사에 있어서 정확하게 규정됐었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동학난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는 전혀 문제가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확한 호칭이라고 부르고 왜 굳이 서양 역사에서 했었던 혁명이라 그러면
멋있는 거고 운동이라고 하면 멋있는 거고 반면 난이라고 하면은 뭔가 낮은
걸로 생각한다. 그건 전 고급스럽고 저급스러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 정확하게 맞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그 유명한
어 영화 중에 란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그 란이라는게
뭐냐면 그로사와 어 쉐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을 한 거죠. 일본의 전국 시대에서 일어나는이 얘기를
갖다가 각색을 해 갖고 그거를 란이라고 붙였습니다. 난 우리가 바로 그 동학 난할 때 그건 난입니다.
오히려 서양거를 자기네 맥락 속에서 각색을 했거 란이라고 해서 서양 사람들도 란 란 그러면서 최고의
로사와 영화라고 그럽니다. 차라리 동학 란이라고 서양 사람들한테 가르쳐 주
뭐 동학 레볼루션 동학 무브먼트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오히려
합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혁명이라는 것은 완전히 체제가 바뀌는
겁니다. 정치 체제가 바뀌는 거든. 그러니까 왕조만 교체되는게 아니라 체제 자체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바뀌어 버리고 상권 분립이 일어나고 농업 기반 사회에서 산업 기반 사회로 가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런 거를 레볼루션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개념사적으로 보더라도
동학은 홍경 내에 나는 진주 밀란은 난이죠. 그게 레볼루션이 될 수가
없고 어 무브먼트가 될 수도 저는 없다고 생각하고 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이어서 그러면
순내 순교 이후에 해월 최시형이 이어받으면서 동학을 본격적으로 이제
제도화, 체제화시키는 과정. 그다음에 이제 새 교세가 커지면서 탄압도
커지면서 우리를 받아 달라 인정하게 해 달라라고 하는 그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을 어 살펴보고 그다음에는 또 본격적으로 이제 어쩔 수 없이
정부와 부딪히면서 난이 일어나는 상황까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해 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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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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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ned by @lawtv_kr
@lawtv_kr
1 year ago
법률방송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재미있게 보셨나요? 한국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다면, 함재봉 원장의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1~5권)』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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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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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replies
@user-dl8ox4lt3k
1 year ago
숨참고 이거만 기다렸으면 개추 ㅋㅋㅋ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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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KWAK-qn2nj
1 year ago
동학을 혁명으로보는 전라북도는 동학혁명의 후손자를 찾아 국가에서 이들 후손자들에게 보훈비를 매달 지급하자고 하는데????전라북도 지자체애는 재정이 흑자인가 봅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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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i7m
1 year ago
대한민국의 탄생이 어찌보면 혁명이네요. 그리고 소중국을 꿈꾸던 최제우도 결국은 대명유민이길 바랬나보군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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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이-f3h
1 year ago
동학을 난으로 이해해야하는 근거를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시간이 기대됩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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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Class89
1 year ago
좌익들이 역사를 장악하면서 동학란이 동학농민운동(혁명)으로 변질됐죠
공산주의 사상으로 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거든요
좌익들은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치는게 아니라
정권을 잡기 위해 조작해서 가르쳐요
임오군란은 절대 혁명이라고 안해요
그렇게 되면 516도 군사혁명이 되니깐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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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novablaze
2 weeks ago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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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ky4658
2 weeks ago
교수님 잘 배우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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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donghyun1037
1 year ago
세상의 학문의 유희만큼 큰 행복이 없네요.
고맙습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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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처럼나무처럼바람
8 months ago
1. "동학"과 전봉준의 최초 농민 봉기사건을 "구분'하고
2. 그 후 백산 창의 봉기를 위한 난의 전초전 사건을 구분해서 들ㅇㅕ다봐야하고
3. 나중에 관군이 패하여 전주성까지 진입한 농민들에게 "동학군"이라고 명명해야하는가,아닌가를 판단해서 해석해야한다
4. 나중에 동학의 접주제도로 농민운동이 "동학化"로 포장되어지고
5. 결국 조정에서 일본과 청나라의 조선 진출,침략으로 무리지어 한양에 들어오고, 야욕을 드러내
6.2차 동학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는데 공주 우금치에서 3만 동학군이 총에 맞아 죽고 결국 실패한 동학 +농민운동은 끝난다
7. 그 후유증으로 청일전쟁이 나고 한일 합병을 이루고
8.그런데 함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당대 사람들이 그 사건을 뭐라 불렀ㅇㅡㄹ까요?
9.혁명도 못되고, 운동은 되지않았을까요? 농민 피해,수탈에 저항 등으로 3.1운동, 419혁명,518광주민주화운동,6월 항쟁 등 주요 고비고비마다 의식의 눈을 갖고 사회 변화를 이끈 그 단초를 제공하는 ....
10.따라서 ,당시 혁명까진 못갔다해도 ,난리이기도하고 운동에까지 거슬러 갔다고 판단됩니다
11. 지금으로서는 당장 혁명에 이르진 못했어도 한국 근대사에서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놀라운 의식을 불러 세웠으니 감히 "혁명"이라고해도 무리는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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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동선-b5s
1 year ago
당시에도 안중근 의사는 이땅에 일본군을 불러들인 동학군을 토벌 해야 말했고 또 토벌에 나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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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구-x9d
1 year ago
교수님의 유장한 강의를 들으니 150여년전 우리 조상들의 질곡 속의 삶이 그대로 전하여져 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밝히고자 시작된 교수님의 원대한 계획이 큰 수확으로 이어질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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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란-q5i
1 year ago
맞습니다 1970년대도 초ㆍ중ㆍ고 학교를 왕복 30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자동차 라고는 세발의 막걸리 배달용과 소나무 배어서 실어나르는 삼판용 트럭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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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egwan2
1 year ago
기다렸습니다.
왜 난인지 찬찬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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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저이런댓글 첨올립니다 선생님 넘 감사합니다 진정한역사 전부터 역사좋아했는데 선생님강이보구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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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s1n
1 year ago
very good. have a nice day.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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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제-t8j
5 months ago
동학이 현재의 민주주의와 부합하므로
혁명이라해도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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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학한
1 year ago
선생님 감사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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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실-h4l
1 year ago (edited)
70대 할매인데요..
어린시절 교과서에서만 만나던 동학란..
너무 재밌게 들었습니다…계속해서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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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감사
8 months ago
그당시 지배 계급의 입장에서는 난 피지배 계급 입장에서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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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song6841
1 year ago
Thank you, Dr. 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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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식-b2x
1 year ago (edited)
저는 온전히 객관성을 가지고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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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angheg
9 months ago
돌아가신 아버님이 35년생이신데 윗대 어른에게서 들은바가 있으신데 동학을 도적떼라고 표현하시더군요 경북 선산지역인데 호남쪽은 더 심하지않았나 생각입니다 낮에는 산에 숨어있다가 밤이 면 내려와서 물건이나 곡식을 뺏어갔다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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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Wise
11 months ago
유투브가 아니면 이런 강의를 내평생 못 보고 죽을 뻔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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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woonyeom4446
1 year ago
와 명강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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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카대진
8 months ago (edited)
큰 맥락에서 이해를 하게 되어 참 감사드립니다~~ , 사실을 떠나서 예쁘게 각색하면 왜꾸눈 동네를 많이 만들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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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gotogether8717
9 months ago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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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kk614
1 year ago
봉기의 목표가 스스로 밝혔듯이,
고종이 제대로 왕노릇을 하게 민씨일파를 쫓아내자거나,
사대부의 나라를 지키자고 했던것을 혁명이니 민중봉기니 하는건 웃기는 얘기지.
농민폭동을 운동으로 미화했던 단초가 일제때인 1930년대 사회주의 문학가가 쓴 사실과 다른 소설로 인해서
아직까지 못 벗어나고 있는 왜곡에서 기인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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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인오후-r7y
1 year ago
종종 혁명이니 난이하니 언쟁했었는데 덕분에 이제 분명해졌네요 항상 고맙고도 재미있게 배우고 갑니다. 다음회가 기다려집니다 함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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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plies
@황상원-i4p
11 months ago
약자들이 더 약한자를 억압한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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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me-si4zx
1 year ago
이번 회차는 난이란 어떤 것인가를 통해 동학과 관련된 사건을 규정지은 당시 시각의 배경을 알 수 있었던 강의였습니다. 난은 서양의 역사적 경험이 반영된 운동이라는 용어와 구별되며, 동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에서 기존 권력의 지배력을 벗어난 다른 중심축으로 작동한 종교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동학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난이라 바라볼 수 있는 정치사적 배경을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강의 감사드리며 계속하여 좋은 영상 제공해 주시는 법률방송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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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q5y
1 year ago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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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송-c7o
4 months ago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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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00766
1 year ago (edited)
동학의 뿌리가 천주교에 닿아 있었네요.
행적은 모하메드와 닮은 꼴이고요..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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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d9y
5 months ago (edited)
동학은 난입니다
절대 소환해서
보상하는 짓거리 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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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my3hu
6 months ago
❤❤동학농민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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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저감탄했음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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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주-o2t
1 year ago
이렇게 조예깊은 역사채널을 지금 알았다니, 아주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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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감사
8 months ago
갑오개혁의 직접적 원인은 동학혁명임이 동학이 혁명인 근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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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aus4935
1 year ago
기존 질서 답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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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w2n
1 year ago
감사합니다.
항상,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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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fbittenfeldfritz4235
1 year ago
늘 명강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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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저진쨔 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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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식-z7u
1 year ago
좋은 내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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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s1k4b
1 year ago
멋진 강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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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ibong1917
1 year ago
국민(백성)의, 지지를 받아 성공했으면 혁명이고, 지지를 못 받아 실패를 했으면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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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 충격입니다 소규모 사업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강의 충격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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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세금내야겠죠 법과 현실은 너무멀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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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erman-k8w
2 months ago
우리나라의 난의 개념은 riot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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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c6p
1 year ago
혁명과 운동은 정의로운 세상으로 개선하려는 활동, 그러나 난은 불온세력이 자신들의 사욕과 만족을 채우기 위한 행동으로 알고있었는데 함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정확하게 배웠습니다. 동학난은 조선말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후대 역사가들과 정치, 교육분야의 의도된 역사인식으로 왜곡 포장되어 혁명과 운동으로 추켜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해석으로 과거를 인식하고 우리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것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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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replies
@고호원-x6b
1 year ago
아놔!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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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은 다알고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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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이런분이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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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v3q
5 months ago
여기서의 '소 중화'는 동아시아의 역사 정통성(주나라)을 이어간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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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감합니다 선생님 말씁 대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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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 진짜 궁금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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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저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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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ME-z5m9j
1 year ago
황건적의 난과 다를 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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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 출마하실생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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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b9p
8 months ago
본 강의 내용은 "한국 사람 만들기" 중에서 몇 권에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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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v3q
5 months ago
역사적 사건을 당시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거대한 역사 발전의 맥락에서 그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단지 사건의 나열에 불과하죠. 따라서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재해석 하는것도 중요한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 정치의 유불리와는 좀 거리를 두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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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n6i
1 year ago
공교육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서는 공공연하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색한 단어긴 한데 왜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동학의 모태가 되는 사건이 홍건적의 난이나 황건적의 난 등과 같은 것이라고 사료를 풀어서 설명해주시니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잘못된 교육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사들에게 잘 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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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plies
@강찬-c6s
1 year ago (edited)
역사를 현대 시각으로 재 해석하는 것이 진보사학이고 그들이 사학계를 장악했는데 당시의 시각이 중요하다는 것,
또 혁명, 운동, 난의 개념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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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저 김포에서 소소하게 사업하는 사업하는 사람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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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n0551
1 year a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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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울선생님 울 대왕 추진 어쩌세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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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j-f3d
1 year ago
앵삼이가 핵맹이라 했지요
그전에는 난이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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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videoproduct
1 year ago (edited)
한국인의 탄색 27회는 안나오나요? 예정이라도 있으면 알려주세요. 1회~26회 보고 맥이 끊겨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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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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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onghee32
7 months ago
어쩌면 모두 다 방식이 비슷 하네요.... 예수님, 석가, 홍건적, 백련교도, 동학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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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Jhgood11
10 months ago (edited)
동학파가 지금도 … 있는듯 …
친중 (미륵사상 홍건적) + 민족주의 + 천주교 복합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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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4516
1 year ago (edited)
동학이라고 하는 조선말 하나의 종교 혹은 사상이 어떠한 경위로 탄생하고 또 발전해나가게되었는지 알수있게 되었습니다. 제가배운 역사교과서에서 알고있던 동학이란, 단편적으로 당시의 "서학" 이라고 불리우던 서양의 가톨릭 및 근대서양의 종교 혹은 철학에 반대되는 작용반작용의 후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고 그 결과로 우리의것을 지키지못하고 결국 청일전쟁이라는 비극, 그리고 일본의 승리로인해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게 되는 일련의 사건이라고 알고있었는데
함재봉선생님의 "한국사람만들기" 강의를 1강부터 지금의 강의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공부하면서 역사를 한쪽면에서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지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세계사적 큰변화의 흐름가운데 함께 처하고있는 우리의 역사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25강에 이어서 전개될 최시형의 동학은 어떻했는지 다음강의도 너무 기대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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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말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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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ak8595
1 year ago
동학은 중화사상기반의 종교로 시작된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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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v3q
5 months ago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는 강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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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leenchang749
1 year ago
동학난이지 무슨 혁명이고 운동인가? 정부가 무능하여 고부 민란을 진압하지 못하여 결국 일본 세력에 득세하여 조선이 망하는 계기가된 한심한 반란이된 것인데 무슨 혁명이고 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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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형기-m2u
11 months ago
한마디로 동학은 서자출신인 전봉준의 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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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ofFreedom-h6m
6 months ago
함재봉 교수님. 공무원인재개발원에 오셨을 때 해주신 강의도 너무너무 달콤한 이야기로 잘 들었는데. 이렇게 유튜브로 뵐 수 있으니 넘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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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abong-oh9nw
1 year ago
동학과 518은 유사한점 많다
1ㅡ둘다 절라도에서
2ㅡ동학은 대원군 옹립 518은 김대중 옹립
3ㅡ동학은 일본군에게 진압당함
518은 미군개입 여부로 논란
4 ㅡ동학은 관의탄압
518은 갱상도에 비해 불평등
5ㅡ동학결과 일본의 속국화 가속 518 결과 군부 정권 강화
6ㅡ동학후손 연금 10만원 수혜 ㅡ후손 증명 이 어떻게 가능 한지모르겠고 임진왜란 삼국통일 후손도 찿아낼 대단한한 나라 ㅋㅋㅋ
518 ㅡ유공자되고 진짜가짜 구분안함
결론 ㅡ 역사관에 지역과 감성에 구애없이 연구되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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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감사
8 months ago
노비의 입장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었으니 혁명이 맞습니다. 그 당시의 입장도 여려 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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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9u
1 year ago
좋은 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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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y1906-t4e
10 months ago (edited)
동학은 한계가 뚜렷했던 사상이었습니다. 유교이념과 체제를 전체부정한 사상이 아녔습니다. 용담유사에 '대보단에 맹세하여 한의 원수를 갚아보세' 같은 내용은 중화 중심의 책봉 조공체계, 명나라에 대한 의리 이런 내용입니다. 다만 주술, 부적, 한울님같은 민간신앙 도교같은 이념이 들어있고 최시형이 모든 게 한울님이니 한울님처럼 대하라는 인내천 사상으로 전환하면서 신분상승 꿈꾸는 몰락양반 서얼, 천민들의 기대치를 높였으며, 전봉준 등이 동학 조직과 대원군을 이용해 일정부분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 점이 창도자 최제우의 동학과 다른 점이겠죠. 게다가 근대화를 꿈꾸는 사상은 더더욱 아녔습니다. 동학의 창도 배경 자체가 서양열강과 서학인 천주교의 유입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척왜척양은 원래 대원군과 유생들이 주장하던 구호입니다. 아예 개화와 근대화에 대한 것 자체를 배격하는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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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zv5ju
1 year ago
이런거 보면 한국드라마의 허구성과 심각한 왜곡이 얼마나 심한것인지 알수있다.정도껏 해야지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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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kim3970
1 year ago (edited)
란(亂)이란 기득권자들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낱말이지 않나요?
인내천, 즉 사람이 즉 하늘이라는 인간 평등 사상으로 환골탈태 기키려는 발상과 행동이 혁명을 꿈꾸는 것이죠.
모순으로 가득찬 조선을 되살리고 외세를 배격하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이 왜 한낮 亂 따위로 불리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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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s6i
5 months ago
동학난에 가담한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았을터이지만 동학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을 당시의 90% 넘는 농민들은 뭡니까? 동학은 난입니다. 주모자가 동학을 접한 것이 1~2년 밖에 안 되었어요. 조선을 누가 되살립니까? 동학이 성공하여 주모자들이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집권하면 외세를 배격할 수 있었다고 봅니까? 외세를 배격하려면 독립운동을 하거나 병탄되기 전에 군에 자원 입대하여 국방을 튼튼히 했어야지 난을 일으켜 다 죽어가는 나라를 일제시대로 직행하게 한 데 도움을 준게 혁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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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park2870
1 year ago
그렇죠. 저분 이야기는 그 당시의 썩은 조선 기득권자 일본제국주의 시각에서 보는 생각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정 국가에서 동학을 난이라고 부르는것은 어불성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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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s6i
5 months ago
@mikepark2870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난을 일으킬 권리까지 있다고 보십니까? 윤석열은 대통령이기 이전에 국민 아닙니까? 그리고 그는 헌법으로 주어진 계엄을 선포할 유일한 권리를 가진 사람인데도 지금 내란죄로 재판 받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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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f9i
4 months ago
동학란은 안타까우나 실패한 혁명 민주화서막을 동방나라 한민족에게 쏘아올린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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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htvfjwefc
11 months ago
성공해서 정권 잡으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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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왜? 선생님 같은 분들을 우리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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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lee1346
1 year ago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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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ymologistSeoWa
1 year ago
애초에 대한제국 쿠데타 세력! 서학이 동학으로 교묘히 꾸며 독립협회 독립신문 만민공동회 물산장려회 일진회 후에 대한제국군대 의병으로 폄하해 일본군 과 친일파들이 도륙하고 의병 독립군으로 세탁합니다..실록..
<대한글씨어원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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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wongo
6 days ago
5.18 = 광주폭동
4.3 = 제주폭동
대구항쟁 = 대구폭동
여순항쟁 = 여순반란
5.16 = 혁명
이것이 역사이고 만고의 진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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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기연
1 year ago
동학은 운동도 혁명도 아닌 그냥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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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masspeaker684
1 year ago (edited)
우리도 일본처럼 하급 사무라이 무사가 일으킨 메이지유신했었다면..., 천황을 필두로 한 민족신앙 신도가 동학이나 증산교 정도가 되었을 텐데...........
중국 식민급 사대주의와 중국종교 유교가 워낙 강해서...
사람들이 고유의 민족종교는 우습게 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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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뿔-h3b
1 year ago
난이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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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agm1144
1 year ago
동학 만큼 왜곡이 심한 사례가 없죠. 이들은 혁명가도 이념가도 아닙니다.
천주(天主)라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숭배하는 전형적인 신흥 사이비 종교였고, 그들이 난을 일으킨 본질적 이유도 혁명이 아니라 초대 교주 최제우를 복권하고 동학 포교를 합법화하려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을 위해 탐관오리에 불만이 많던 농민들을 선동해 난을 일으켰던거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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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g2f
1 year ago
근본적 문제가 해결 안되면 사회는 주기적. 소란이 일어날수밖에 없답니다.
문제라함은 역사관이요.
1만년 역사가 있다는 측과 2000년밖에 안되었다는 측의 갈등이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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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도-x6e
1 year ago
동東학學 농민운동을 난亂 운동 혁명인가😂
표현을 했는가요 😮😮
당시 사람들이 이해를 했는가요 😢
자기의 관습 전통속에서 정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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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꽝
1 year ago
함재봉 선생님 역사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민족주의 혹은 국뽕 위주의 주류 역사관에서 살짝 벗어나서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공화정 국가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과오를 되집어보는 색다른 시선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이번에 다룬 동학농민운동은 그동안 자주적이고 개혁적인 농민운동을 정부가 무참히 진압한 사건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당시 조선 조정의 시각에서 바라본 해석이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히 조정뿐만아니라 동학을 제외한 사회혼란을 우려한 다수 백성들의 생각일 수도 있겠네요
중국 역대 왕조들이 민간신앙과 결합된 종교로 무너졌다는 사실을 잘 아는 조선 정부 입장에서는 동학이 국가 통치 질서를 위협하는 체제 전복의 징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처참한 학살은 청일전쟁 이후 주도권을 가져온 일본의 개입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되겠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학농민운동은 서양에서 쓰는 개념인 운동이라기 보다는 동양에서 쓰는 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동학이 추구했던 신분타파, 반외세 움직임은 역사적 교훈으로 후대에 큰 영향를 남겼지만 어쨋든 동학은 실패했고 체제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을 선과 악의 구도로 보지말고 그 속에 감춰진 복잡성과 모순을 직시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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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y4692
1 year ago
말기암에 걸려서 오늘 내일하며
골골대는 환자의 호흡기를 뗀 亂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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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my3hu
6 months ago (edited)
❤❤체제에 불복하고 무장하여 덤벼들었기에 반란이다.. 운동은 개뿔..무슨 운동을 그따위로 하냐고요..혁명은 더욱 아니고 왜냐하면 주동자가 체제를 바꾼게 하나 없기 때문..😊😊 박정희장군이 했던게 대표적인 혁명이었다...모든 것을 사그리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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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7757
1 year ago
이분 논리리면 광주사태가 맞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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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plies
@verizon8134
5 months ago
나는 이렇게 일일히 길게 덧글 도 다읽었 습니다 많은 댓글 다 너무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했습니다 유익한 정보 조선 혁명 이였네요 정말 많이 공부를 했습니다 천재 입니다 함재봉 원장님 정말 좋아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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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유저분들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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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zon8134
5 months ago
👍✝️🙏💯✨️🙋♀️천재 함재봉 🎉정말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마라톤 역사로 볼때 1위 1등 천재 라고 하는 사람 재미있게 흥미진진 한 조선 혁명 을 유익한 정보 습득할 만한 함재봉 원장님 의 천재 박사님 이십니다 감사 하면서 봤습니다 공부 📖 😄 👍 잘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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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pl37270
3 months ago
난으로 봐야 일본군이 동학농민들을 학살한걸 정당화 할 수 있으니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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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ymologistSeoWa
1 year ago
서학을 교묘히 꾸민게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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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수-y6c
1 year ago
동학 그 역사적의의는 대단한데 힘한번 못쓰고 그많은 인원이 패배했다는것이 어이없다 아무리 농민이라도 수만수십만명이 고작 몇백 몆천명에 지리멸렬 ? 분노보다 먼저 창피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누가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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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t4x
2 months ago (edited)
노론이ㅡ나라팔면서ㅡ난이라고ㅡ정의한거지ㅡ난일수가ㅡ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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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anymayor2371
1 year ago
이론이 정교하게 정리되지 않았고 난이 철저하게 진압된 탓에 구체적인 결과물을 현실화시키지 못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폐정개혁안의 내용을 보면 성리학적 명분론에 바탕을 둔 조선을 혁명적으로 바꾸자는 제언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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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주-h9l
10 months ago
그시대의 시간으로 해석 이라는말 공감 그러나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 그시대 용어및 시대상황은 해석이 필요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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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별-s9n
6 months a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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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teme6165
1 year ago
동학민중항쟁의 배경으로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동학의 평등사상인 인내천 사상이 민중들의 가슴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던 점, 거기다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정부 관리들의 수탈과 학정이 반란의 계기가 되었던 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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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wons40
1 year ago (edited)
울 할아버지 세대들 반응(me, 80대~): 극과 극: 왕정파들은 동학을 매우 극협쪽~, 농민(난 깡촌 가난한 농부 자식);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마라~! - - - -" 매우 서글픈 울 민요를~! 지금은 이 민요 잘 모르는듯? 해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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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hscGnm
9 months ago (edited)
교수님 말씀에 동의해요. 오직 뒤틀린 사상과 정치만이 학문에 손을 대려 하지요. 포장하고 가공하려는 전제부터가 왜곡의 시작이고 그 자체가 학문에 대한 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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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솔향-g9u
11 months ago
과거에는 혁명을 반역이라고 여겼습니다.
주역에서도 혁괘는 곧 뒤집어진 솥을 의미하는데 문정지중 즉, 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초 장왕이
주나라의 권위인 구정의 무게를 물었다는데에서 혁은 곧 이 정을 뒤집는 뜻으로 쓰엿던 것입니다.
반역은 성공하면 혁명입니다. 때문에 혁명을 운운하는것 부터가 반역을 뜻하죠!
한데 조선인들이 오늘날의 싸구려이미지로서의 혁명을 생각했을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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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w1r1w
1 year ago
처음에는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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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나의성가름
8 months ago
동학은 000 운동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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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토끼-11
1 year ago
친미기독교파 이승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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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p4v
1 year ago
좌파들은 이 동영상을 꼭 보고 배워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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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wb3fz
5 months ago
https://youtu.be/EAquh3mj370?si=g7Of51gHkbamqM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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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Lee-z8p
1 year ago
동학은 '사이비 종교의 교리'와 100% 똑같다. 이런 동학을 맹종하는 자가 오늘날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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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말슴 서민들 세금 낼돈두없는데 세금것어드린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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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나그네-c3u
3 months ago
대순진리회난 증산교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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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o6r
1 year ago
무당굿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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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선-l4i
1 year ago
참 감명깊게 들으면서 곱십어보면서 들어본 67세남자인 못뵈운 시골 현장의 막일하는 사람입니다
전 최제우의 동학은 이단의 한 종교로서 생각하며 이슬람의 마호메트와도 비슷한 시초라는것이 사이비 종교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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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래기
1 year ago
강단에서 숨 죽이고 자리 보전하는 학자들을 강사라 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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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triver2211
1 year ago
탐관오리 조병갑같은 넘들,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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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友千齋우천재
1 year ago
교묘한 논리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천주교 “박해” 사건은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정당한 행위였으니, 박해로 부를 수 없다는 논리인가요? 게다가 안중근 의사도 “테러리스트”라는 당시 규정대로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요?
역사는 당시의 규정이 동학난 이라 규정했을지라도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제대로 규정하면 그것이 후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함교수의 교묘한 논리는 친일개화로 미화되어 포장된 여전히 현재하는 그 세력의 입장일 뿐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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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l365
1 day ago
좌파들이 동학혁명으로 부르며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며, 동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가르침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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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석-k3j
1 year ago
홍경래의 난이나 공주 명학소를 중심으로 일어난 망이 망소이의 난도 규모가 컷. 그러나 이들 난은 우두머리 한명에 의해 일어났고 이론적으로도 체계화 되지를 못했다 이점이 동학과 다르다 동학은 왕조를 무너 뜨리지는 못해서 혁명은 아니고 농민 봉기라고 본다 1911년 중국 무창봉기 처럼 무창 봉기는 결국 청왕조를 무너 뜨리는 신해혁명 의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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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따봉
1 year ago
폭동이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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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_Constantine_Asshall
6 months ago
찢 고막도좀 찢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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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n9e
7 days ago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 국사는 두 가지 억지 때문에 거짓말이 많다
중국의 영향력 축소와 일본의 영향력 축소를 위한 거짓말이 그것이다.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줘도 될텐데, 취사선택, 과장으로 국민들의 눈을 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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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책사이전이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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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울 대.통 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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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lhan
3 days ago
그당시사람을 백성으로봐야지 기득권을 당시사람으로 보시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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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m-v7h
6 months ago
동학농민혁명이라고 어떤 정권에서 비꾸려는 이유를 동학자체가 소중화 종교라 생각하니까 이해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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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en8053-m8q
2 weeks ago (edited)
동학은 흥선대원군이 배후에 있었고, 조선왕조를 제대로 옹립하자는 운동이였습니다...따라서, 동학정신을 계승하자는데, 제정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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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qwertyuuiioo
9 months ago
동학농민운동은 노비들이 이가들의 토지에서 추수한 쌀을 지속적으로 훔쳐가다가 발각되어 이가들과 노비들이 전쟁을 하게되면서 조선왕조가 망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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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나그네-c3u
1 year ago
마니교 = 마교 = 명교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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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대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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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리-i1p
1 year ago
통도사가 아니고 천성산 수운굴에서 49일간 정진득도했다고 합니다.지금도 수운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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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선생님같은 분들이 우리대한민국 이끄러가셔야하는거아닌거아닌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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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illilil111
1 year ago
지난회 김옥균 포함하여 이번 동학내용까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시질않아 두번 시청하고 댓글답니다.
전체적인 내용과 논리적 구성에 대해서는 (삼프로출연시에도 무지성 댓글로 까내리는 녀석들과 설전을 버렸을만큼) 함선생님의 사상과 큰맥이 같은편이나 이번내용에 관해서는 이견을 제시하고싶습니다.
일단 저는 현 천도교(동학)에 관하여 크리스트교(이후엔 짧게 서학이라 적겠습니다.)의 사이비 아류라고 생각하는 사견이 있습니다만,
이번 주제인 동학을 단순히 민란이라 표현하신다묜 지금까지의 함선생님 영상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와 주장의 맥락적 모순이 생긴다고 봅니다.
일단 조선내 그 많던 크고작은 종교중 유독 조선후기에 서학과 동학이 큰 박해를 당한이유는 '조선 이씨왕실 이외의 신성성에 대한 도전'때문입니다.
이는 (함선생님 주장대로 당시의 표현 그대로를 빌리자면) 하느님을 '천주'라고 표현하는데에 있어서부터 알 수있는데 동양에서의 황제권(조선의 경우 사대국으로서의 왕권)은 서양과는 달리 속세의 통치권 + 하늘과 접촉할 수 있는 '신성성'을 동시에 갖고있습니다. 때문에 서양과는 다르게 만세혈통을 위해 첩을 두는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유일하게 하늘신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천원지방의 원리, 이것때문에 조선의 왕실건물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둥근 형태의 건물인 '-원 과 -단'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같은이유로 대한제국 건국시 우리가 독립된 황제국임을 증명하고자 만든 건물이 환구단이었고 동시에 일제가 국권침탈시 가장 먼저 철거했던 건물이 환구단인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하늘의 길흉화복(=병을낫게하는것포함)은 왕실만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우리의 조공국인 청나라는 당연한것이고 옆의 일본국의 천황또한 이런 논리때문에 폐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양의 경우는 로마황제 시절부터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임으로서 이 세속통치권(황제)과 신성성(교회, 이래서 교황이라는 명칭을 조상들이 붙인것이지요)을 일찍히 분리해뒀던 것이고요.
아무튼 동학/서학 이 모두가 (조선왕실의 관점에선) 다른 잡신을 숭상하고 신성시 한다는거부터가 이미 역모였기에 박해를 통한 박멸을 꿈꿨고 동학또한 그런 '사이비무리들이 일으킨 소란'이다 라는 관점때문에 당시엔 민란이라 명기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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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onghee32
7 months ago (edited)
동학은 난이죠. 뭐 할때 마다 다 운동 혁명 붙이면 사이비 교가 막 집단 행동 해서 폭력시위하는 것도 다 해당 될 수 있죠.
무슨 우리나라 시민 국민 우리나라를 위해서 한건가요? 동학교를 위해서 한건데
그 사건의 이유, 목적, 주장, 행위, 결과, 영향 등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면 동학난 (rebellion)이죠.
체제 변혁을 일으키려고, 일으킨 그런 사건은 아니잖아요. 선생님 말씀 따르면 그래야 revolution 혁명이지.
동학의 신념과 동학인의 처우를 개선하려 했던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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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가
11 months ago
결정적인 것이 대원군이 전주성 함락전 동학군에 소총 3,000정 지원해줍니다.
아래는 증거입니다.
“나는 나의 정보원을 통해 다음과 같은 첩보를 받았다. 임금의 아버지(대원군)가 주모자로 나서서 중대한 폭동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 폭동은 오는 여름 혹은 아무리 늦어도 가을 이전에 폭발할 것이며, 공모자와 대리인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미 4천여정의 소총이 구매되었는바, 그 중 일부는 일본에서 나왔고 소수의 일본인이 이에 가담하여 일을 같이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
— 1894년 2월 21일, 주일본 러시아 공사 미하일 히트로포(Mikhail Hitrovo)가 주조선 러시아 공사 칼 베베르(Karl L. Weber)에게 보낸 비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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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짐유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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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저항측정-h7p
1 year ago
제의견 : 혁명하려고 시작 했으나 혁명 실패해서 동학 농민 운동이됨 한계는 너무 늦게 운동 일어남 1850년쯤 일어나서 왕조를 뒤집고 새세상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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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저항측정-h7p
5 months ago
조선시대=난 / 현재 언어로=운동 이다.. 절대 혁명 아니다. 정권 뒤집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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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이-m9w
1 year ago
ㅋㅋ아직 동학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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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壑松
6 months ago
지금은 예수쟁이들 갖가지형태의요사스런말과행태로 사회를어지럽히고 재물을축척하여 한나라의정치권력까지넘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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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fgogn
1 year ago
무얼 연구했는지 흔적을 찾을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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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u7v
3 months ago
동학 민란이 라고 해야 합니다. 동학은 보국안민입니다. 또 당시 농민만 참여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부류의 압박 받은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동학 민란이라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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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염둥이-z7b
1 year ago (edited)
실패한 반란이지 무슨 혁명 ㅋㅋ
사이비종교 반란으로 인해
고종이 청나라 부르고
청일 전쟁 나고 나라 뺏겼지
동학사이비가 나중에
백백교로 분파하잖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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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elim728
1 year ago
동학혁명ㅡㅡ우리나라 사상의 역사를 기준하는 것 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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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inkim
9 months ago
지금 동학을 혁명이라하고, 그 피해 자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는데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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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v9s
1 year ago
질문하나 드립니다.소실이란 본처와 혼인관계에 있는동안 또다른 여인을 맞아들일때 첩혹은 소실이라 불리우고 그소생이 서자 혹은 서녀가 되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최옥이 본처사망후에 재취를 하고 그재취한여인마저 죽은뒤에 맞아들인 여인이 어찌 소실이되며 서자가 된다는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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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v6l
11 months ago (edited)
동학은 명백한 폭동내란이었다.
동학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팩트 그대로 보라.
역사 드라마에서 미화하는 꼴을 보면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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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nero
1 year ago
가르치다를 매회 가르키다라고 틀리게 사용하는게 너무 거슬립니다. 좀 고쳐주시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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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s6i
5 months ago
말씀하신대로 중국의 과거 역사에서 위정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이 사교의 발흠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어쩌면 건강 체조 정도로 볼 수 있는 파룬궁을 그토록 잔인하게 짓밟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많은 민란이나 반란이 있었지만 신흥 종교가 세를 확장해가면서 민란을 일으킨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동학난이 그러한 난인 것 같습니다. 이 난을 전라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운동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혁명이라고 합니다. 이건 아니죠. 동학은 분명히 난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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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pskim
3 days ago
바보같은 놈들이 외세 기관총에 돌격하게한 참담한 실패지 무슨 혁명인지? 난이라하던 운동이라 하던 외세에게 빌미를 준 사건일뿐 혁명은 국가 페러다임을 바꾸고 성공해야하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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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런대로
1 month ago
함병춘은 함태영의 아버지로 양곤에서 폭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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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초월자-n9m
11 months ago
함재봉교수님 유트브를 통해 좋은 강의를 듣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전쟁을 통해서 왕조가 변경이 된건 혁명으로 봐도 될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신미양요 병인양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렇게 외우는데. 전쟁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다 같다고 보이는데. 이건 그 시대적 개념인걸까요? 아님 후세에 정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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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현-s9i
1 year ago
동학은 사회적 불만자 들이 일으킨ㅡ 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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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qwertyuuiioo
9 months ago (edited)
하나님은 리 단입니다.리 환과 리 단의 후손들은 굶어죽는 사람들이 없도록 땅을 찾아 이동하며 나무를 심고 가축을 기르고 벼농사를 짓기위해 형제들과 아들들을 세워 나라를 세웠습니다.
은나라 신이었던 리 장은 도둑질하지마라,살인하지마라 등 법을 만들어 인간을 다스렸고 주역을 썼으며 삼례를 만들고 주나라 신이었던 리 발은 중국과 일본 등 벼농사를 짓기위해 108개 나라를 세웠습니다.
환국의 이가들은 벼농사를 짓고 옷을 입고다니는 유일한 인간이었습니다.이 단은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백성을 먹이고 도둑질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켰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농사짓는 이가들의 농사 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으며 살았던 노비들이 이가들의 토지에서 추수한 쌀을 훔쳐가다가 발각되어 이가들과 노비들이 전쟁을 하게되면서 조선왕조가 망한 사건입니다.
노비들은 궁궐에 쳐들어가 지붕에 있는 치미를 때려부시고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오래된 고서와 삼만년 어진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장과 영과 실의 기술을 훔쳐갔고 불의 기술을 훔쳐갔으며 108개나라를 세운 주나라 신들의 지도를 훔쳐갔습니다.조선시대까지만해도 양반은 임씨 홍씨 서씨 소씨 사씨 두씨 등 몇 되지 않았으며 아들자자나 임금왕자나 구슬옥자같은 수많은 글자는 법으로 금지되었기때문에 이름과 성으로 쓸수도 없었습니다.벼슬을 사고팔며 족보를 사고 팔기 전까지 이가들을 제외하고 이름을 가진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개똥이 말똥이 등 이상한 이름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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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와치카
3 months ago
학교에서 역사좀 제대로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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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_fool
8 months ago
어떻게든 선조들의 희생을 깎아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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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대갈-v1n
1 year ago
사이비 학자 도울이, 설민석 황현필보다 깊이 있고 정확한 역사를 강의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우리나라 사이비 사기꾼 학자들이 너무 많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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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_MACHINE
2 months ago (edited)
반란이었지만 성공해서 조선왕조를 끝장냈으면 좋았을 것을. 김옥균도 그렇고. 고종 놈이 독살당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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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렌조
1 year ago
용어의 혼란에 대한 지적 적절합니다. 저도 일련의 동학 관련 사건은 난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사람들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난과 운동, 혁명은 그 어원이 동양이나 서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동양에도 있고 서양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칭은 당시의 의미나 지금의 의미가 아니고, 보편적인 역사적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난은 피지배 세력이 지배세력에 대해 저항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운동은 시대적 조류를 말하는 것이고, 혁명은 경제나 과학 등 권력과 무관한 중요한 발전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동학은 운동도 혁명도 절대로 될 수가 없고, 난이라는 용어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규정하기 위해 있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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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l6c
1 year ago (edited)
동학도 문제지만 그동학농민을 안중근 이나 김구가 고종한테 잘보이려고 난진압에 관련있다고 들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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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리-g7x
1 year ago
16:00 즈음, 선생님...나병이나 한센병으로 표현하시면 어떨까요? 훨씬 듣기가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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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환-f2s
10 months ago
일본 애들 올려칠때부터 긴가민가했는데 오늘 영상보면서 확신했습니다 영상 잘봤습니다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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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iy1jg7pr7s
1 year ago
함교수님, 궁금한게 있는데 12.3 비상계엄을 내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니다 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동학난의 관점에서 볼때 내란이 맞는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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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plies
@errorwindows-1
10 months ago
동학의 태동 그 자체는 그저 사이비에 불과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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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nyche7300
7 months ago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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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g4g-k8e
1 year ago
최제우 이단사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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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ymologistSeoWa
1 year ago
실록의 기록 📝 동학 독립협회 독립신문 만민공동회 물산장려회 일진회 전부 대한제국 패망시킨 농노역적들 쿠데타 수괴집단 독립군으로 세탁합니다.
일본은 8도 66주 실록의 기록 📝 조선사편수회가 날조 일본=조선! 한국인은 전부 고려인입니다! 夏殷하은=韓한 구한국 구고려 영어 슬라브(실라) 이두문자 산스크리트가 즐라부 백제 이두문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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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l4v1l
11 months ago
선생이라면 정치색띄지 말고 결론을 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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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노-y7t
1 year ago
역사를 수박 겉핧기식으로 얇게 배운놈들이, 이런식으로 퍼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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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sari4366
9 months ago
조선을 철저하게 부정하던 논리로 갑자기 조선의 논리로 동학을 부정하는거 보면 그냥 자학적 역사관을 가진자인지 아니면 뉴라이트 돈줄로 연명하는자인지 의심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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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fighter797
1 year ago
동학농민폭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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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orea-q6c
1 year ago
《역사는 암기아닌생각》현재 모든 학론은 서양인들이 주인인논리입니다.암기서울대의 문제점 심각한 조선병 깨달읍시다.참고로 지금 역사ㆍ국사는 조선때는 중국이 주인,현재는서양이 주인 우리는 미개한 원주민개념입니다.끝으로 반구대 암각화 근거로는 한반도는 3.5만년전 고래잡이 성지였습니다.제발 제정신좀가집시다.학술은 암기가 아니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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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논어.맹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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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HipHop-o5e
3 months ago
동학폭동이 맞다. 그 후신이 대표적으로 사이비종교인 대순진리회ㆍ증산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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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jungkeun
1 month ago
웃기네 ..말장난하네 동학의 주장12 이자나 댓글보면..혁명 난 그래서 그들이 단지 자기들만위해 그렇게죽어간거냐?.??자동차기어중립기자같은소리하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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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조네스-i6b
9 months ago
동학은 난이다. 동의합니다.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 이젠 좀 바로 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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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mangs
1 year ago
ㅋㅋㅋ 진짜 개웃기네 지금 방식으로 조선을 통째로 부정하면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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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h3i6v
2 months ago
이건 의견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역사 인식의 수준 문제다. 무엇을 ‘사건’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외부의 이름표에 달린 일이 아니다. 그 공동체가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바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동학을 단순한 ‘난’이나 ‘소요’로 취급하는 건, 무지하거나 게으른 해석이다. 동학은 반봉건적 농민 생존권 요구이자, 낡은 질서—이른바 앙시앙 레짐—를 바꾸려는 집단적 각성이었다. 동시에 서학에 맞서 조선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주체적 정체성의 선언이었다. 이걸 두고 오합지졸의 이익 다툼이라고 하는 건, 역사를 읽지 않았다는 자백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동학은 인내천이라는 사상을 통해 인간 존엄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인식. 이건 단순한 종교 구호가 아니라, 근대적 공화주의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은 하나의 ‘운동’을 넘어, 체제 전환을 내포한 혁명이었다.
비교를 하자면, 프랑스혁명도 처음부터 거창한 이념으로 시작된 게 아니다. 배고픔과 궁핍, 그리고 불공정한 신분 질서에 대한 분노가 출발점이었다. 그 결과가 신분제 해체와 시민 권리의 확립으로 이어졌고, 나중에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것이다. 나폴레옹의 민법전 역시 그 연장선에서 제도화된 결과물이다.
동학도 마찬가지다. 당시 조선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이었고, 농업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었다. 그래서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선언이 나온 것이다. 이건 감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권력과 질서의 우선순위를 뒤집는 급진적인 명제다. 오늘날 말로 하면 천부인권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이걸 여전히 ‘난’ 수준으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해석의 다양성이 아니다. 최소한의 맥락과 사료를 무시한 채, 자기 편한 대로 역사를 비틀어버리는 태도다. 그건 학문도 아니고, 견해도 아니다. 그냥 무지다.
역사를 두고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동학을 제대로 보려면, 그 시대 사람들의 절박함과 사상의 깊이를 함께 봐야 한다. 그걸 외면한 채 단어 몇 개로 재단하는 건, 생각이 아니라 소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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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3park
1 year ago (edited)
뉴라이트들의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 동학농민운동을 민란으로 규정하는자 일본의 동학농민들 학살을 정당화 하는 짓이다 감히 친일 매국노라 할수있다 김구 선생도 동학의 접주셨다 옳은일을 하신 것이다 흉하게 죽은 일본총리 아베의 할아버지가 동학농민 학살의 지휘관 이였다 우리는 130년전 동학농민들의 꿈을 받들어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에 살아야 한다 수십년간 역사연구만 하신 역사학자들이 있다 그들애게 동학을 물어보면 이해할것이다 .뉴라이트들의 역사 왜곡을 믿으면 역사에 죄를 짖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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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sp5iy
8 months ago
조금 어이없음 일본인들이 역사를 왜곡하려고 동학운동을 지우려했던 논리와 비슷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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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기닭-k3o
7 months ago
동학은 어떤 사조의 운동도. 혁명도 아니 고래의 유학중심인 사이비고ㅡ주의 반란이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나 신천지 정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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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가
11 months ago
최근 동학농민혁명으로 명칭 교체등의 배경을 설명해드리죠.
천도교 11~15대 교령 최덕신 1986년 월북, 22~23대 교령 오익제 1997년 월북
먼저 공산당인 중국도 의화단 운동이지 의화단 혁명이라고 안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맞는 표현입니다.
두번째 전주성 함락전 대원군이 동학군 무장한 근거가 있습니다. 대원군과 고종의 권력다툼의 연장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흥선대원군의 농민운동 사주
한편 흥선대원군이 동학 농민군에게 거병을 사주했다는 것은 러시아의 외교관의 비밀 편지에도 나타난다.
“나는 나의 정보원을 통해 다음과 같은 첩보를 받았다. 임금의 아버지(대원군)가 주모자로 나서서 중대한 폭동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 폭동은 오는 여름 혹은 아무리 늦어도 가을 이전에 폭발할 것이며, 공모자와 대리인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미 4천여정의 소총이 구매되었는바, 그 중 일부는 일본에서 나왔고 소수의 일본인이 이에 가담하여 일을 같이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
— 1894년 2월 21일, 주일본 러시아 공사 미하일 히트로포(Mikhail Hitrovo)가 주조선 러시아 공사 칼 베베르(Karl L. Weber)에게 보낸 비밀 정보
위 편지가 1894년 2월 21일 입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 함락한 것이 1894년 5월 23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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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o8c
1 year ago
기괴한 논리로 동학을 한낱 난으로 선동하는 뉴라이트 강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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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구-h2z
1 year ago
그럼, 당신은 동학을 난으로 보지않고
무엇으로 해석한답니까?
그리고, 당신이 바라보는 역사관에
문제가있다고보여집니다. 그리고 또
뉴라이트라는 용어의
기원도 궁금하군요? 도대체 어떤 허접한
인간들이, 그런 해괴한 용어를
만들었는지 궁금할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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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구-h2z
1 year ago
다시 한번 더, 말씀드려보면!
인류의 모든 역사를 훑어보더라도
성공하면, 혁명이되는것이고
실패하면
난, 정변, 사태, 사건으로
기록된다는것입니다! 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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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ff1001
1 year ago
뉴라이트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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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tsalYang
1 year ago
지금 한국 정치를 경상도 전라도가 망쳐놓는 원인이 과거 역사에도 나와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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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배러
1 year ago
법률방송에서 이런 강의를 시리즈로 더군다나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중요한 주제로 방송한다는 자체가 우리나라 법조계가 어딴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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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형기-m2u
11 months ago
서자인 전봉준이 조정에 진출할수없는 한을품고 무지한 농민을 선동해서 일으킨 난을 지금의시각으로 좌파들이 혁명으로 표현할뿐 동학은분명 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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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보-l3r
1 year ago
그 당대 누구?
기득건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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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HAN
1 year ago
폭도들이니까 민주당에서 지원금 주려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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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ineKim-q6o
11 months ago
정치적 움직임은 그것이 그 당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냐가 중요하다. 1894년 전라도 고부, 백산에서 발단이 되고 전라도를 장악했으며 일본 군대와 맞서 싸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부에서는 봉기(uprising)다. 백산부터 시작해서 전주 화약까지는 지역 쿠데타라 해야... 이후의 한양으로의 진격과 공주 우금치에서의 전멸은 반란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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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m5n
10 months ago
함재봉이라는 이 사람의 역사 해석을 보고 있노라면, 1960년대 일본 사학자들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우리 학계, 특히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사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학농민운동을 ‘난(亂)’이라 규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배 권력의 관점에서만 본 단편적인 시각일 뿐이다.
사실 ‘혁명’이라는 말은 근세의 산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고대 중국의 경전 속에 그 개념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주역》 혁괘에는 “革,己日乃孚,元亨利貞,悔亡”이라 하여, 스스로 변혁하여 믿음을 얻으면 크게 형통하고 뉘우침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 ‘革’이란 바로 ‘바꾼다’는 뜻이다. 또한 《서경》의 탕세에는 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무너뜨리며 하늘의 명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혁명’이라 표현하였다. 곧, 하늘이 뜻을 바꾸어 새 왕조를 열게 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함재봉은 혁명의 기원을 서양의 프랑스 혁명에 두고, 일본 학자들의 시각을 끌어와 마치 근대 일본이 만든 개념인 듯 둔갑시키고 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무지이자, 왜곡이다.
‘난(亂)’이란 말은 원래 정당성이 없는 무질서와 난동을 뜻한다. 일본의 전국시대야말로 그러했다. 봉건제가 철저히 굳어진 일본에서, 병과 농이 구분된 가운데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무력으로 서로를 제압하던 시대—그들에게는 ‘란(亂)’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의 동학농민군이 일으킨 움직임은 달랐다. 그것은 단순한 난동이 아니었다.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 지배층의 무도한 폭정에 맞서 일어선 백성들의 몸부림이었다. 그 속에는 정의를 향한 열망이 있었고,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존엄을 찾으려는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시대를 놓고 본다면 그것은 혁명이었고, 그 정신적 내용을 헤아린다면 올바른 각성을 향한 ‘운동’이었다.
이 점에서 늘 동학농민운동을 떠올릴 때면, 한겨울 들판에서 언 발을 동동 구르며 깃발을 움켜쥐던 농민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들의 행렬은 단지 굶주린 자들의 아우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그러하기에 동학은 ‘난’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처음으로 백성이 주체가 되어 외친 ‘혁명’이요, ‘운동’이었다.
법률방송이라는 데서조차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함재봉과 같은 이의 역사관을 사실인냥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학문적 오류가 아니라 고의성 다분한 왜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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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ounglyu4245
1 year ago
동학을 난이라 하는 뉴라이트 강사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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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n8g
1 year ago
동학을 미학하지 마시게 /걸마들은 거진다 뺄갱이 사회주의에 물던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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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배조-k2c
1 year ago
함재봉씨 역사왜곡 쩌내요 집강소에서 실시하려했던 개혁내용을 보면 갑오개혁과 거의 일치합니다 청나라 일본개입으로 실패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이렇게 종교단체가 개혁을 시도한 적은 없습니다 태평천국의 난은 예외입니다 정신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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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원-x6b
1 year ago
저역적인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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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s6i
5 months ago
아니 이분 미국서 어린 시절 보냈다더니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모르시는 건가?. 난은 동양의 것이고, 운동과 혁명은 서양의 것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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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수-y6c
1 year ago
동학군 수만명이 일본군한명 못때려죽이고 지리멸렬 그게 분하고 한편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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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노-y7t
1 year ago
여보셔요!!너는 글면 윤석렬의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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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범식-k8y
1 year ago
혁명인 듯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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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ankim417
11 months ago
결국 역사 인식이 이 정도 였군.
동학혁명까진 아니더라도, 동학난은 아니다.
이 정도는 고등학생도 내릴 수 있는 결론.
역사의식이 이 정도니 횡령이나 하지 ㅉㅉ
앞으로 공직에 있어선 절대 안된다.
그리고 여기서 시리즈 영상 보는 거 중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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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철이-x3e
1 year ago
난이나 혁명이나똑같은말 아닐까? 현실에 불만이쌓여 일어난 서민들의 저항운동은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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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lp8yr8dg8s
1 year ago
글쎄요. 이건 동의가 어렵네요. 동학이 황건적, 홍건적처럼 완전히 사라져서 그 후에 아무 영향을 못 미쳤으면 난이라고 부르는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잖아요. 결국 당시 정부가 스스로 해결을 못해서 외세를 끌여들여 진압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분하게 여기고 동학의 뜻을 기억하고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후에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처럼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할 때마다 동학정신이 계속 소환되게 되었죠. 그렇게 그 사상적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계속 이어져서 현재 한국 체제의 한 뿌리를 형성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당대 사람들은 인식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난"이라는 인식은 당시 기준으로도 지배층의 인식이지 동학과 가까웠던 피지배층에게는 오히려 "혁명"으로 인식될 여지가 많은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런 인식이 쭉 이어져서 일제강점기나 민주화 운동시기까지 영향을 미쳤는걸요. 여전히 그 사상적 계승을 자처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어찌보면 근현대사의 문제를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에 한정해서 현대와 유리 시키는 것도 타당하ㅈㄴ 않고 심지어 그 시대 사람들중 오히려 소수인 "지배층의 인식"에 국한 시켜 "난"이라 부르는 게 옳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협소한 시각에 근거를 둔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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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r9e4m
9 months ago
그럼 지배걔급이 썩어서 민중운동을 나쁘게 지칭해서 저거 없애야되
그럼 민중운동,민중혁명이 아니라 민중난이 되는거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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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419KR
1 year ago
내용이 ㅈㄴ산만하고 중구난방이네 그래서 결론이 뭔데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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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tlo-galgal
1 year ago
얘도 뉴라이트지? 참고만 해야지 정설로 받아들이면 안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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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e7m
1 year ago
항상 어쩌다 들어보면 약 파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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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원-w1b
1 year ago
동학난이 이니라 동학농민혁명으로 2004년에 대한민국정부에서 확정했는데. 왜 동학난으로 정의하나요?
그 시대덕 배경으로 본다해도 난은 지배층의 입장에서 본것이지만 혁명은 동학농민입장에서 본것입니다
함교수님은 당시 지배계급 선조를 두신것 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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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구-h2z
1 year ago
허허, 나원참! 여기에서도
한번 더 언급을해야하겠군요!
그러니까,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는
성공하면, 혁명이되는것이고
실패하면
난, 정변, 사태, 사건으로
불리는것입니다! 그리고
1884년의 갑신정변도
성공하였으면, 갑신혁명으로
불렀을것입니다! 그리고, 또
지난 노무현 정권때
동학농민혁명이라고한것은
당시, 허접한 민주당인간들의
일방적이고 꼴리는대로의
자기들, 멋대로의
사고방식이랍니다! 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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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구-h2z
1 year ago
허허, 아저씨!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는
성공하면, 혁명이되는것이고
실패하면
난, 정변, 사태, 사건으로
불리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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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구-h2z
1 year ago
그러니까, 지난 1884년의
갑신정변도 성공하였으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갑신혁명으로 불렸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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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구-h2z
1 year ago (edited)
그리고, 2004년에 어떤 인간들이
우리나라에서, 허접하고도
엉터리 역사를 가르쳤습니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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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mt
1 year ago
내가 억울 한것이 이 양반 책을 혹 해서 읽었다는 겁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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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t4781
8 months ago (edited)
혁명이 현대좌파적.의미의 혁명해야한다.뒤집어야한다. 이런의미가 짙어서 부정적인것은 아닐까요?
그렇게치면, 사회모순을 부수고,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은 혁명을 붙인다면, 아닌게 어딧어요? 미국독립혁명 홍경래혁명, 홍길동혁명, 왕건궁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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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s6i
5 months ago
동학난이 성공했으면 그 주모자들이 지배층이 되지 않나요? 지배층은 나쁜 것입니까? 그리고 동학난에 가담하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들은 뭐라고 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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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song8864
1 year ago
함재봉 : 2010년부터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며 약 9년 동안 연구원 예산 10억여 원을 빼돌려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거나, 자녀 유학비로 쓰는 등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범죄자가 뻔뻔하게 역사를 운운하고 자빠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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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노-y7t
1 year ago
야 너는 서양에서 계속살지 뭐하러 한국와서,니 생각을 각인시켜러하냐??그냥 미국에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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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mt
1 year ago
뉴라이트가 이래서 무서워요. 그럴듯 하잔아요... 굉장히 학문적인듯 논리적인듯... 그러나 확실한 목표가 있죠. 조선의 부정화. 일제의 합리화. 친일의 긍정화. 친일재산의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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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s6v
1 year ago
난이란요? 혁명이죠. 혁명의 정의는 질적변화를 뜻합니다. 동양에서도 혁명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의것에서 전혀다른 무엇인가로 옮겨갈때 化를 씁니다. 동학에서도 분명 變이 아니라 化를 지향했습니다. 신분제를 타파하고 대동사회를 만들자는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어떻게 난으로 규정할수 있는지요? 난은 저항입니다. 하지만 동학농민군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개혁에 대한 정확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혁명은 저절로 발생한것이 아니라.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신분제 사회의 붕괴와 그로부터 시작된 조선민중에 자의식의 성장이 동학혁명의 배경이라고 봐야 타당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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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go1302
11 months ago
혁명이란 말은 서양에서 온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부터 사실과 달라요. 함재봉 교수님은 동학을 혁명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서양 혁명 개념과 다르다는 설명인데,, 그 전제 자체가 이미 틀린 겁니다. 혁명은 '天命'이 바뀐다는 것이고, 맹자에서도 나오지만 백성에게 잔혹한 군주를 죽이는 것은 왕을 죽이는게 아니라 필부를 죽이는 것에 불가하다는 의미에서 역성혁명을 얘기합니다. 성씨를 바꾸는 게 왕조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그 시대 그 시각에서 봐야한다고 말하면서 함재봉 교수님은 서양의 기독교 시각에만 고정되어 있습니다. 문외한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조금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참으로 우려스러운 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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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oungjang7745
1 year ago
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연구비 10억으로 가족해외여행가고 자식 유학 보내고...횡령한 돈 10억 토해내면 범죄자 아닌건가??
조용히 살지 왜 이딴 썩은 내용 올려서 혹세무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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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etree3633
1 year ago (edited)
뒤늦게 들어와보지만 논지의 빈곤이 있다 거창한 제목 내걸었다면 좀더 깊이있게 강의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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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보-l3r
1 year ago
조선 대변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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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park2870
1 year ago
친일 역사학자 뉴라이트 논리로 곡학아세 하지 말아라. 3.1운동 정신의 뿌리를 동학농민운동 으로 보고 있는데 당신 논리라면 3.1운동도 그렇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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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mt
1 year ago
하여간 교묘하게 뉴라이트 사상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퍼트리는 사람임. 조선을 전근대적인 무식한 나라로 만들어서 일제을 정당화 함. 어떻게 난이라는 말과 혁명이라는 말이 같다고 우기나요?? 교수가. 우리는 안중근 독립투사라고 하지만 일본인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하지요. 동학을 운동이나 혁명으로 부르는 사람과 난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각각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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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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