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동학은 난인가, 운동인가, 혁명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6회 - YouTube

동학은 난인가, 운동인가, 혁명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6회 - YouTube

동학은 난인가, 운동인가, 혁명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6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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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67 views  Apr 30, 2025  #함재봉 #법률 #법률방송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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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급격한 변화를 맞던 19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조선은 물론, 청과 일본에도 영향을 끼친 큰 사건이자 종교! 동학에 대해 다뤄봅니다.

수운 최제우가 창시해 해월 최시형이 정립시킨 우리 고유의 종교라 할 수 있는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는데요. 불교와 유교가 이미 있었고, 서학이라 불린 천주교까지 들어온 경주라는 공간에서 태동한 동학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요?

동학 혁명 혹은 농민운동, 아니면 난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또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요?
고대 중국으로부터 시작해 난으로 명명되어 온 수많은 사건과 종교에 대해 살펴보면서 동학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그리고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지 분석해 보면서 동학의 진짜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 진행자 :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석·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네스코 사회과학국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장
아산정책연구원장
『한국 사람 만들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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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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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어 오늘은 어 동학난에 대해서 어 동학농민 운동에 대해서 어
말씀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김옥균의 암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김옥균의 암살이 청일
전쟁의 도화선 중에 하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도화선. 어떻게 보면 어 김막 김옥균의 암살과
불과 두 세 달 밖에 차이는 안 나지만 더 중요한 의미에서의 도화선이
된 동학난 동학농민 운동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어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동학을
논하는데 있어서 우선 호칭부터가 참 많이 어 헛갈리고 어 또 헷갈리기도
하고 논진 어 점이기도 합니다. 동학을 동학 난이라고 해야 할 것인지
어 동학 농민 운동이라고 해야 될 건지 또는 동학 혁명이라고 해야 될
건지 어 여러 가지 이견이 있고 논쟁이 있습니다. 저는 어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당시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을 했고 어떤 단어, 어떤 용어,
어떤 개념을 이용해서 그걸 표현을 했고 이해를 했는가 그거를 우리가
이해를 하는 것이 그게 역사이지 어 지금의 시각에서 봤을 때 그게
지금으로 치면은 뭐였다 이거는 저는 올바른 어 역사를 접근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굉장한 역사 외곡이 일어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어 이번
시간은 특히 동학난이 일어났을 때 또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시의 조선 사람들 그 당시 조선의 조종 또
서양 사람들 와 있었던 서양 사람들은 도대체 뭐라고 생각을 했는지 이해를 해야 되고 그 용어라는 것은 그냥 그
당시 사람들도 그냥 쓰는게 아니라 자기네의 전통 자기네의 관습 그
속에서 이것이 무슨 사태였다 무슨 사건이었다라는 거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특정한 용어를 쓰는 거고요. 그래서 오늘이 시간에는 특히 그 점에
그 거기에 좀 주한점을 두면서 어떤 영어를 쓰면 좋겠는가를 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혁명이라 그러면 이제 물론 revolu션이죠. 레볼루션이란 용어를 번역을 한
겁니다. 운동이라 그러면 무브먼트라는 영어의 개념을 번역을 한
겁니다. 사실 난이라고 했을 때는 아주 고유의 용량의 전통적인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쓰든 오랜 전통 속에서 나오든 특정한 개념입니다.
Evolu션 혁명 그러면 뭐 청교도 혁명 그렇죠. Revolution 미국 독립혁명
american revolu 뭐 어프렌vol 프랑스 혁명 뭐 산업
혁명 인더스트 여기서 쓴 레볼루션입니다. 그러니까는 자꾸 서양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서양
사람들이 자기 역사적인 맥락에서 특정한 사건들을 묘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설정했던 개념을 그거를 갖고 이제 동학 혁명이다 이러는 거
거고요. 무브먼트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movement인 운동
그렇죠. 마트루스터킹 목사가 한 civil rights movement 그러면 인권 민권
운동 그다음에 women's rights movement 여권 운동 이런 그 운동이라는 또
revolu션과는 다른 무브먼트라는게 있었던 거죠. 그래서 동학 운동 뭐
농민 운동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우리가 뭐 3일 운동도 그렇지만은 March first
movement 그러니까 사실 서양 사람들의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 나왔던
특정한 종류의 사건들을 표현하는데 쓰는 거를 우리가 갖다 채용을 하는
겁니다. 과연 그것이 올바르게 동학을 이해하는 것인가? 그런데 분명한 건
뭐냐면 동학을 난이라고 했을 때이 사람들은 그럼 어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걸 난이라고 불렀었던가? 우리가 그걸 정확하게 추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문명사에서
보면은 난이라는 것은 난리는 일어났는데 체제가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면
동아시아의 체제는 왕조 체제라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굉장히 조선이나
오랜 동안 그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한 체제가 바뀐 적은 없습니다.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어 왕권이 있었고 그 밑에 신하들이 있어서 통치를 하고
이런 것은 계속됐습니다. 아무리 많은 공격 내난이 있고 했더라도
레볼루션은 서양에서 일어났던 굉장히 특이한 개념들인데 그건 뭐냐면 아예
체제가 바뀌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는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 체제가 전혀 다른 체제로 공화정
체제로 바꾸는 거 인더스트리션이라는 건 산업 혁명이라는 것은 뭐냐면 수만 년 동안 인류가 그냥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먹고 살아왔는데 경 경제가 그렇게 운영이 되왔는데 산업이라는 것이 일어나서 인더스트리라는게
일어나서 전혀 다른 경제가 체제가 바뀌었죠. 그걸 이제 우리가 레볼루션이라고 어 보통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동학이 레볼루션이었는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당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는지 어떤 관점에서 어떤 기준에 의해서 왜 그 특정 용어를
썼는지 그 당시 사람들의 경험을 우리도
어떻게서든지 제현해서 경험을 해 보려고 하는 것이 역사인 것이지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언어, 우리의
용어, 우리의 세계관을 그 당시에다가 투영하는 것은 그건 전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사들이 제가 봤을 때는 그 시대의 특정한 용어나 그 시대의
특정한 가치관을 반영하기보다는 그냥 옷만 옛날 옷도 있고 건물만 옛날
건물 안에서 있었지 사실 지금 사람들하고 거의 똑같은 대화를 하고 똑같은 용어들을 쓰고 그런 걸 보면
어 역사에 대한 어 그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어서 저는 그건 굉장히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그 동학을 이해하데 있어서 동아시아의
문명사에서 이해야 될 것이 뭐냐면 종교가 과연 무엇인가 여러분 동학이라는 종교 그리고 동학과 거의
동시에 일어나서 동학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탄압을 받는 천주교
그렇죠. 도대체이 종교라는게 뭐길래 저렇게 왕조가 탄압을 했는가?
그걸 우리가 우선 먼저 큰 틀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데 이런 거죠. 중국의 역대
왕조한테 가장 큰 위협이 뭔지 아세요? 반정도 아니고 다른 무사들이
무슨 쿠테탈를 일으킨게 아니라 사실은 모든 왕조들이 제일 걱정했던게
종교입니다. 이상한 종교가 일어나서 그 종교 때문에 민중들이 완전히
동요를 하고 그러고 나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를
했습니다.이 정통과 이단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불교나 유교가 보면 지금은 우리가 그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면 나라의 종교지 않습니까? 국교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그런데 불교나 유교도 항상 호국
종교가 아니었었죠. 나라의 통제를 벗어남은 사실 이단이
되는 거고 나라를 뒷받침해 주고 나라와 하나가 되는
것을 그걸 정통이라 그러는 겁니다. 유교도요. 유교도 처음에는
음양오행설, 황사상, 천년 왕국설 이런 것이 다 있었어요. 유교 내에.
그런데 그 민간 신앙적인 요소들을 점점 점점 배제해 가면서 주자
성리학까지 오면 성리학적인 이론 체계가 쫙 잡히고 형의상학적인 이론 체계가 잡히고 정치 제도 체제 이론이
잡히고 이렇게 돼 가면서 점점 점점 점점 이단적인 요소들이 사라지는 거죠. 도교에서는요
더 했습니다. 저 도교는 사실 항상 정통이냐 이단이냐의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었죠. 중국에서 초기에는 아주
정통 중에 하나였었습니다. 근데 이단이냐 아니냐가 갈라지기 시작하는게
후한 말에 우리가 삼국지에서 나오는 장각이 태평도라는 걸 일으켜서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는 거 아닙니까? 그 황건적의 난을 진압을 하려고 조조가 일어나고
뭐 저 유비 관우 장비가 일어나고 그러면서 황건적을
진압하려고 군할 거 하기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장기 하는게 그게 도교의
어 일 일 일종이죠. 근데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제거가 돼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통이 이제 생기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도교는 굉장히 정통의 역할을 하기
힘든데 오늘 이제 동학의 얘기를 하기 하하기 시작해서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중국의 종교의 역사를 대충 알아야 되는 거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이
도교의 태평도 황건적의 난이 얘기를 알아야
됩니다. 왜냐면은 동학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조선 조종이 동학이 뭘까?
제일 먼저 비유를 했던게 어 이게 황건적의 난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는
거 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이 이단이냐 아니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차이는 뭐냐면
역대 왕조들이 항상 그게 유교가 됐든 불교가 됐든 어 도교가 됐든 제일
경계한게 뭐냐면 천년 왕곡설입니다. 종말론입니다. 지금 기존 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런 얘기를 자꾸 하면은 그럼 기존체 이제 왕조로서는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천년 왕국설 종말론이 나오는 것을 2단으로 2단으로 치를
합니다. 종말론이 뭐랑 겹치는 겁니까? 천재 지변 아니면 굉장히
통치를 잘못해서 경제가 파탄에 이르면서 홍수가 나고 감뭄이 일어나고
이러면서 사람들이 굶어 죽기 시작하고 도적대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무질서로 빠지고 권력 계층 내에서도
권력 투쟁이 일어나면 그러면은이 민간 신앙 천년 왕국설이랑 그런 상황이 합치면서
왕조가 흔들리고 결국은 무너지면서 체제가 바뀌는 일이 그게 반복이
되는게 중국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종교라는 것, 특히이 천년 왕국설
종말론 그러면서 민간에 퍼지기 시작하는 이러한 민간 신앙은 역대
동아시아의 왕조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되고 걱정해야 되는 종교 어 그리고
어 정치 현상입니다. 동학 일어나니까 1864년 4월 7일 고종 실록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의정부가 동학의 창시자 수훈 최재우를 처형해야 되는
이유를 이때 구합니다. 1864년이면요. 고종이 즉위한지
몇 달 되지 않습니다. 갓 즉위한 후입니다. 이번에 동학이라고 읽컫는 것은 서양의 사수를 전부 답습하고
그니까 천주교죠. 특별히 명만 명목만 이름만 바꿔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만약에 조기의 천토를 행하여 나라의 법으로 처결하지
않는다면 결국에 중국의 황건적이나 백년교라는 도덕적도 도적들처럼 되지
않을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조선 정부에서는 어떻게 이해를
했습니까? 동학이라는 것이 일어났다. 이게 뭐냐? 아 황건적 아니면
백년교구나 그런 종류구나라고 딱 이해를 하는 거죠. 뭐 황건적은 우리가 삼국제에서 봤던 얘기고 백년교
같은 거는 우리가 중국 뭐죠? 무협지 같은데 보면 그 강호에서 자기네들끼년
교도들끼리 뭐를 조직을 해 가지고는 꼭 조정에 반대를 하고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리고 조선 사람들의 치자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경계해야 되는 것이 황건적이나 백년교 같은 건데 마침 통학이 그것에서의 일종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 버리는
겁니다. 실제로 조선실 왕조 신록에는요. 태평도에 대한 기사가
열건. 황건적이라는 거에 대한 기사가 40건. 100년교에 대한 기사가
20여건. 그리고 100년교의 다른 이름인 홍건적에 대한 기사가 80여건.
그만큼 조선 사람들의 뇌리에는이 태평도 황건적 백년교 홍건적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뇌리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는 것이고 바로 동학이
이거다라고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자기네가 집어낼 수 있는 설례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실제로 또 하나
뭐냐면 그 당시 바로 동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중국이 바로 100년 교도의
난 1794년에서 1804년까지 100년교의 난 때문에 아주 혼이
납니다. 그리고 이제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우리가 자세히 다뤘던
태평국의 난이 또 일어났었던 것이고 1862년에서 77년까지 니엔난이라는
이슬람 무슬림 교도대간 반란이라고도 하죠. 그 반란이 신장국 위구에서 또
일어났었던 거죠. 이런 이단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청조를 위협했던 거죠. 청조를 내부로부터 흔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교도들의 민간 신앙에서 비롯되는
그러한 난들이고 그러는 왕조 교체기에는
매번 일어나는 삼국주의 그 시대 배경에서부터 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 사건들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어 청에서도 잔뜩
긴장을 하고 조선에서도 야 똑같은 일이 우리한테도 또 벌어지기
시작했구나라면서 동학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학이 됐든 황건적의 난이 됐든 홍권적에
난이 됐든 100년 교회의 난이 됐든이 신앙의 핵심은 뭐냐면 병을
고쳐 주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겁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요. 뭐
왕족이나 귀족이 사람들 빼놓고는요. 보통 사람들은 의사가 없었습니다. 병원이
없었습니다. 한의사가 있었겠지만 한의사조차도 특권층한테나 가서 저걸
했겠지 뭐. 보통 사람들한테는 민간 요법이라는 거 빼놓고 아무것도 없었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요. 기근이 나고 홍수가 나고 뭐 전염병이 돌고 그럴
때에 보통 사람들한테 필요한게 뭡니까? 그냥 먹을 거하고 병 고쳐 줄 사람입니다. 특히 병 고쳐 주는
사람. 그러니까 모든 민간 신앙은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이 나옵니다. 지도자들은 다 병을 고쳐줍니다.
여러분 예수 예수도요. 유대 지방에서 뭐를 합니까? 병을 고쳐 주지
않습니까? 문둥병을 낳게 해주고 안정병이 일어나게 해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 근대 사회에서
지도자는 특히 민간 신앙의 민간 종교의 지도자들은
병을 고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삼국제에 나오는 그 장각도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후한서에
나오는 장각 황건적에 대한 기록입니다. 거룩의 장각은 스스로 스스로 대현사 혹은 대현사라고 칭하고
황로의 도교죠. 황교를 행하며 제자를 키웠다. 장각은 신자에게 끌어 엎드려
자신에게 배례하며 과을 고백시켰고 부적과 물을 써서 주문을 외우며 병을
고쳤다. 환자들이 잠못 병이 나으니 사람들은 그를 신앙하기 시작했다.
장각은 이에 제자 여덟 사람을 사방으로 보내어 선한 길로서 천하를 교화시켜 제자들은 차제의 사람들을
미혹하게 되었다. 10여년 사이에 신자 무리는 수십만이 되었으니 군국이
서로 결명하게 되었다.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
여덟 개 주의 사람들 가운데 이에 응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러분,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의 활약하는 상 그죠?
얘기나 동학의 얘기나 나중에 나오겠지만 그리고 이런 얘기 뭡니까?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올바로 살으라 그러고 그걸 가르쳐서 제자들을 해 갖고 퍼트려서
그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시작했다. 교화시키기 시작했다 얘기입니다. 그래서 장각은이어서
이렇게 합니다. 장각은 이에 36개 방을 설치했다. 방이라 하면 장군의 호와 같은 것이다. 대방은 1만 명
이상 소방은 6 7천명 정도로 각기 거수를
세웠다. 동하기 나중에 접주 접이라는 걸 만들지 않습니까? 똑같은 일들이
지금 벌어지는 겁니다. 신자들은 천명을 고실로 창천은 이미 죽었고 황천히 세워져야 할 것이다. 때는
갑자히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 그러니까 황천의 세계가 온다. 이게
천년 왕국소리죠. 그러니까 종말론이죠.이 이 왕조는 무너진다. 새 세상이 돌아간다.
도래한다. 이렇게라며 백토로 경성의 공무소 및 주근의 공무소에 갑자의
문자를 써 놓았다. 이러면서 이제 주문들을 써 놓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새를 키워 나가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홍건적은 고려 시대에도 침입을 하죠. 홍건적이라는 건 굉장히 조선
사람들한테 익숙한 난입니다. 그리고 특히 홍권적이 너무나 익숙한 이유는
황건적이 아니라 홍권적입니다. 홍건적은 백년교라는 불교의 그죠. 미륵 그
미륵 사상의 일종이죠. 그래서 그 100년 교가 일어났는데 조선이 섬긴
그 명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본인이 백년
교도였었습니다. 홍건적이었었습니다. 두원장이 등장하게 되면서 결국은 원이
무너지고 명이 들어서게 사는 계기가 바로 온갖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정치적인 대혼란이 일어나는 와중에 백년교와 같은 민간 신앙이
일어나면서 민중들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끌어가면서 그러면서 왕조 교체가
일어났던 거죠. 그러니까 이거는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역사적인 설례가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런 거였습니다. 1331년에서 1333년에
허에서 전염병이 돌아서 1,300만 명이 죽습니다. 저 당시에
1,300만 명이면요. 조선의 인구가 다 죽는 거죠. 그리고
1344년에서 1446년 후젠 하고 산동성에서
1351년에서 50년 사이에는 산시 허배의 장수성에서 전염병이 창벌라.
1356년에서 1500 1362년에는 매년 전염병이 전국
휩소를고 1358년에는 산시에서만 20만 명이 사망합니다.
여러분 명나라가 언제 세워집니까? 1364년에 세워집니다. 이런
대혼란이 있으니까 세워지는 겁니다. 자,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이렇습니다.
1340년대부터 이제 매년 황하가 법남을 하면서 운화가 막혀 버리죠.
운하라는 거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양자강 유역에서 나오는 많은 곡식과
과일 수많은 거를 대하운화를 통해서 이동 이동을 해서 어 양자 저 황화를
통해 갖고 운송을 해 갖고 경제가 유통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 운하가 막혀 버리니까 은화를 막는 대토목
공사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조종이 15만 명의 백성을 동원을 해 버립니다. 이럴 때에
이제 인간 신앙, 미륵 신앙이 일어나는 거죠. 그때 누가 나타나냐면 한산동이라는 백년교 지도자가
나타나는데이 사람이 뭐라 그러냐면 나는 송의 팔대황제인 휘종 그 그림
잘 그린 휘종이죠. 예. 팔대손이다. 그리고 미륵불의 현현이다. 내가
미륵불이다. 다시 태어난 거다. 그러면서 거기에 이제 토목 공사에 도원된 사람들을
맨 움직여 가지고 그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그때에이 사람들이 모두 홍색
수건을 머리에 섰기 때문에 그때부터 홍건적이라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원장은이 홍건적의
일파의 두먹이 되는 거죠. 처음에는. 그래 갖고 세를 키우기 시작해서 결국은 자기가 권력을 잡으면서 천하를
다시 통일을 해서 명나라를 일으키는 겁니다.이 말씀을 자꾸 드린 이유는 거듭해서 민간 신앙 그리고 병을 고쳐
주고 새상이 온다라는 얘기를 하는 종교는 중국 역사상에 끊임없이 있어
왔던 거고 그럴 때마다 사실은 대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왕조 교체가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리고 평소에도 밀교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뭐를 하고 있는지 항상 감시를 해야 됐었고 조심을 해야 됐었고 특히 난세가 됐을 때에 큰
다른 세력들을 규합을 해서 큰 세력으로 일어나는 거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그것이 왕조를 유지하는
관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서
지금 동학이 일어나는 겁니다.이 이 100년 교도는요. 18세기 말에도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은
1796년에서 1805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의 서부를 100년 교도의 난이
초토화시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청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이것이 조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중국의 역사입니다. 조선에서는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냐?
19세기부터 삼남에서 밀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사실 19세기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 봐 삼남은 거의 중앙정부의 힘이 거의 미치질
못합니다. 교통신이 발달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길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방의 유지들이 모든
거를 다 했지 결코 원님들이 힘을 쓸 수도 없었던 거고 그리고 경제적인 단위도 그죠. 다 따로따로 영남,
호남 그 3일장, 5일장을 돌아다닐 수 있는 그 똑같은 상인들이 곧
장이서는 정도가 한 경제단이었었습니다. 말이 같은 나라지 중앙조 조정에서 거의 이쪽을 직접
통치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19세기까지 들어와서 조선의 정부의 힘이 무너지고
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서선 더욱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1852년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미 조선 인구의 절반이 삼남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양의 인구가 그 당시 1850년대에 한양의 인구가 20만이었습니다. 경상도 인구요
150만 명이었습니다. 전라도가 100만 명, 충청도가 9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쪽에 인구가
엄청나게 컸었던 거죠. 그리고 중요했던게 뭐냐면 삼남 지방에서는
각종 종교가 그렇게 성했었습니다. 특히 경상도의 종교가 그렇게
성했었습니다. 불교는 원래 뭡니까?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기 때문에 어떻게 합니까? 조선대에서도 불교는 영남 지방에
강하게 부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조가 창근돼서 숭유억불 정책을 해 갖고 뭐 3,000개의 사차를
36개로 줄이고 종단을 두 개로 줄이고 뭐 이런 쭉 공식적으로는 경상도에 그 이후로 사찰이네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가 되면요. 그때 조사한
걸로 경상도에만 절이 338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중앙에서 그걸
누르려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아주 성행을 하고 있었던게 경성
경상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뭡니까? 천주교가 가장 포교가 잘되는
데가 경주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천주교 철종대에는 천주교도 그렇게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포교를 합니다. 그래서 왜 동학이 동학이라 그러냐? 서학을
받기 때문에 천주교를 받기 때문에 최재우가 그렇죠. 수훈이 경상도 경주
출신으로서 너무나 천주교를 쉽게 대접할 수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천지교가 아닌 서학이 아닌 동학이라고 했던 겁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경상도는 중앙 정보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었고 워낙 종교가 흥했던 그런
데에서 동학이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기
[음악]
위해서 자 그럼 수훈 최재우가 누구냐? 수훈은 1824년 12월
24일 경주에서 30 떨어진 가정리라 데서 태어납니다. 아명은
복록에도 보면 최복술 최복술 이렇게 나옵니다. 호는 수훈. 본관는 경주.
경주 최시입니다. 부친의 호가 그남이고 최옥 1762년생이고
1840년에 어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수훈이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는 거죠. 근데 그 아버지가 아주
수제였답니다. 아주 수제로 이름이 났는데 아홉차례나 과거에 납방하고 결국 해서는 쉬운 세세 53세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염하겠다. 그래서 영남에서 어 영 아주 그 유명한
유학자로 어 여생을 지냅니다. 그런데 그 최제옥의 아버지 최옥이 첫 번째
부인과 자식들을 다 전염병으로 잃고 두 번째 그 부인을 맞이한는데 또
둘째 부인이 딸밖에 못 나니다. 그래서 조카를 결고 양자로 들일
수밖에 없고 그리고 어 두 번째 부인이 돌아간 다음에 그다음에 경주의
금청이란데 사는 과부 한씨를 소실로 맞이합니다. 그게
누구냐면 바로 어 수훈의 어머니, 최재우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래서
수훈은 어 아버지가 예순실 때 그때에
태어납니다. 후실의 자식으로. 자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어 서출이죠. 서출이니까 뭐 집안에서 아무 대접을 못 받겠죠. 그래서
수훈이 어쨌든 울산의 규수하고 결혼해서 스라의 어 일곱 명의 자식을 둡니다. 그러니까 그렇지만 어 아예서
그 과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친이 돌아간 다음에 자기가 2년 동안 막 병을 공부해서 내가 무장으로
뭐 성공을 하겠다 뭐 했는데 결국 그것도 포기하고 울산으로 처갓집 있는
대로이 이사를 가고 거기서 이제 포목 행상을 합니다. 근데이 홍 행상을
하면서 수훈이 삼남 지방을 두루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포목상을 하면서
돌아다니면서 어쨌든 경주와 울산을 벗어나는 더 큰 세상을 보는 거죠.
삼남 지방에서 얼마나 조선의 백성들이 그때 도탄에 빠진 삶을 살 수 살고
있었던가 그것을 직접 어 그 목격을 하고 그리고 이제 행상을 다니다
보면은 어디 가서 묵어야 되고 그런데 그럴 때 이제 불교 사찰에 가서 절에 가서 묻고 그러면서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민간 신앙들을 접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삼남지방을 다
섭렵하면서 현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 그 부른했던 시대에 자기네의 그 그
삶의 의미나 이런 거를 찾기 위해서 민간 신앙을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1855년에 결국은 어 울산으로
돌아와서 다시 뭐 농사도 지보고 대장관도 운영해 보는데 다 실패해
버립니다. 그래서 완전히 어 빚비제스 어 빗덤이에 깔리게 됐는데 이때에 어
아주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수훈이 암자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금강산 유점사의 노승이 나타나서 금강산에서 자기가 특이한
서적 이석을 발견을 했는데 그것을 수훈한테 주고선 이걸 좀 해독해
봐라. 그런 환영을 어 봅니다. 그래서 수훈이 곧바로 양산 통도사로
들어가서 49일 동안 기도를 마칩니다. 기도를 마친 수훈이 울산의
가족을 데리고 용담으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지어 놓은 영 용담
서사란 조금만 정자가 있는데 글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신비한
체험을 하고는 그리고 나서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어 수우는 복수이었던 아명을 재우 즉 뭡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뜻이죠. 제우가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도를 창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수훈은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유가 뭐냐? 어리석인 어리석은 민중이 천주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비와
이슬을 내려 주시는 은택을 모르고 그것이 자위 없이 저절로 되는 줄
알고 하늘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이슬이 내리고
하는 것이 모두가 자연 현상을 일어나는게 아 아니라 천주께서 해 주신 건데 그거를 일반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그걸 다 잊어버리고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하늘을 섬기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이제 어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이 근세 일에 온 세상
사람들이 각각 스 스스로 딴 마음을 먹고 하늘의 이치에 순종하지 아니하며 하느님의 분부를 돌아보지 아니하니
마음이 늘 송구스러워 지향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자기가 너무 죄송해서
하늘에 사람들이 전혀 하늘을 모르니까. 그러면서 경신년에 이르러 전하여
듣건데 서양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여 부기를 취하지 아니하면서
천하를 공격하여 얻어서 집 당 교회 당을 세우고 그 도를 시행한다 하므로
나에게도 또한 그러할까 어찌 그러할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벌써
1860년이 되면은 뭡니까? 천주교를 접하는 거죠.이 사람이 카톨릭을 접하는 거죠. 카톨릭은
뭐 1782년에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영세를 받고
오고 또 1806년에 주문 신부도 들어오고 그다음에 이제 빠리 외방 선교회를 통해서 여러 프랑스
신부님들이 들어오면서 전국에 흩어져서 포교를 하는데 특히 경주에서 포교가
굉장히 잘 됩니다. 그 그러니까 수훈이 그거를 본 거죠. 어 이렇게
이런 거를 하네. 교회당도 만들어서이 사람들이 이렇게 한데 많은 사람들이 따르네. 어, 나도 여기를 가야
되나? 이런 걸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이제 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1860년 4월 5일 본인이
상제 체험을 합니다. 뜻밖에도 4월의 마음에 한기가 들고 몸이 전율하여 병
증세를 잡을 수 없으며 말로 형상할 수 없는 지음에 어떠한 신선의 말이
홀련이 귓속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놀라 일어나 케어른데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나를 하늘님이라고 읽컫는다. 너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강림하신 까닭을 묻자온데 이르시기를
내 또한 보람이 없는 연고로 너를 세상에 낳아서이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겠다.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서도로서 사람을 가르칩니까? 그러니까
아 그러면 저보고 천주교가 교도가 되라는 것 말씀이십니까? 하니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신스러운 부험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며 그 모습이
태극이고 또 그 모습이 궁궁이다. 나의이 부험을 받아 사람들을 병드는
데서 건져내며 나의 주문을 받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한다면
내가 또한 길이 살아서 덕을 천하에 펼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또한 그 말씀에
감동하여 그 부험을 받아 글씨 써서 불사른 죄를 물에 타 먹어 보니 몸이
은택해지고 병이 나음에 봐야로 곧 선약임을 알겠더라.
이것이 병에 사용됨에 이르서는 어떤 사람에겐 나음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 나음이 없는 연구로 그 가닥을 알 수
없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니 참되고 또 참되어 하느님을 지극히 위하는
사람에게는 번번히 적중됨이 있고 도와 덕에 수능하지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효험이 없었다. 이것은 받은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닌가? 그런 겁니다. 그니까 마음이 신실하고 하늘을 공경하고 받뜨는
사람한테는 영험한 치유법이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그 치유법까지 그
약까지도 받아서 그거를 이제 믿음을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짜 믿는 사람들한테 주니까 백발백중 병이
났더라. 그러면서이 동학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내용이 용담 유사 어 나중에 이대 교주 최시형이 구수를 하는 어 그
용담 유사 수훈 최재우는 본인은 책을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훈이
구수한 거를 나중에 최시영이 이렇게 들었다 그러면서 구슬을 한 거를
책으로 만든 것이 그게 지금 전해지는 겁니다. 그 안심과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자가 마주앉아 손을 잡고
우는데 하느님이 이르시되 지각 없는 인생들아 삼신산 불사약을 누구나 보겠느냐 미련한이 인생아 내가 다시
그리고 불살라 남은 죄를 기도하며 물에 타서 천천히 삼켜보라이 말씀들은
후에 밥비 한 장 그려내어 물에 타서 먹어 보니 냄새 없고 맛 없으나 느낌은 특별하여 그럭저럭 먹은 것이
수백장 되었네 여덟 달쯤 지나니 가는 몸이 굵어지고 검떤 낯이 휘어졌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신선풍채 내 아닌가 좋고도 또 좋구나. 몸과이 다 좋구나. 늙음 죽음 어디 있나?
독재자 진시황도 여산에 묻혀 있고 한 무죄을 먹고 웃음거리 되었더라.
좋것도 좋구나. 몸과을이 다 좋구나. 불변진리이 아닌가? 좋것도 좋구나.
금을 준들 바꿀소냐? 은을 준들 바꿀소냐?
찬송과 같은 거죠. 아니면 기도문 같은 거죠. 주기도문 같은 거. 사람들이 민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기네 종교의 그 내용을 쉽게 외우고 남한테 전수할 수 있는 그러한
노래들을 어 이제 만들어 주는 거죠. 그런데 자 수훈은 경주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짜 경주를 우주의 중심으로 봅니다. 우주의 중심이 경주입니다. 경주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뭡니까?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 신선 마을 이런 것이 동주에는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경주가 또 얼마나 유교가 강합니까? 유학도 유학의 중심이기도 하죠. 유교,
불교, 도교를 발언지고 중심지인 그 경주의 경험을 다 합치는 거죠. 그래서
경주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이제 우리가 동학을
얘기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경주가 중요한 이유는 수훈이 봤을 땐 이게 작은
중국이라고 보죠.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동학도 역시 중화 사상이 굉장히 강합니다. 경주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중국 곤륜산에 한 줄기가 뻗어내려와서
형성된 작은 중국 즉 소중화죠. 송열 우암 송시를 통해서 중화 사상을
받아들여서 중국이 다 오랑캐 땅이 돼 버렸는데도 우리가 중화를 소중화 명예
그 중화 사상을 이어간다라고 그래서 중화주의라고 한다면 지금 수운도 경주가 왜 우주의
중심이냐 곤륜산의 줄기가 경주에 닿았기 때문이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 많은
민족주의 사관에서 동학이 우리 고유의 것이다. 어 유교의 반대에서
일어났다.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지만 중화 사상이 중요한 건 맞는데 그 중화 사상을 제대로 받아서 한 거는
한양의 조선이 아니라 지금 경주에서 자기가 하는 거라는 거죠.이 이 동학이 이게 제대로 소중화를 하는
거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나라 이름 조선이요 고울 이름 경주로다. 성
이름 월성이요 물 이름 문수로다. 기자 때 왕도로서 천년이나 되었구나.
경주는 옛나라요 한양은 새 나라니 우리나라 생긴 후에 이런 더욱도 있을까? 물길도 좋거니와 산기운도
좋구나. 금모는 남산이요 구미는 서산이라. 봉황대 높은 봉에 봉황은 가고 없고 첨성도 높은 탑은 월성을
지켜주네. 청색 황색 피리가 자으로 짝이 되어 1천년 신라의 가물홍수
조절하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천하승지 구경하소. 동쪽 세산
둘러보면 신선 마을 분명하고 서쪽 주산 살펴보면 유학 중심 분명하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옛수도 구경하소. 땅 기운이 이제 내니 큰 선비 아니까
하물며 구미사는 경주의 주산일세 곤륜산 한 가닥이 중국에서 뻗어내려
우리나라 구미산에 작은 중국 꾸며냈네. 어와 세상 사람들아 나서
자한 이강산을 나 또한 바로 지켜 대로 전하려네. 그니까이 경주 여기의
중요성은 뭐냐? 작은 중국이라는 겁니다. 자, 그러니깐 수훈은 이런
식으로요. 정말 어 수많은 글을 짓습니다. 구수를
합니다. 포동문, 논학문, 수동문, 불련기연 한문으로 된 경전. 그다음에
교훈과 안심과 용담과 몽중 노소 문답과 도수사 권학과 도덕과 흥비가
검결 등의 온문가사 이런 거를 다 주 분명히 천재였었습니다.
놀라운 제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이 구수를
또 해월 최시형이라는 걸 제자가 그니까 사도 바울 같은 경우가
되겠죠. 굳이 비유를 하자면은 그거를 다 받아 가지고 그거를 그대로 구수를
하면서 한문으로 된 동경 대전 그다음에 언문으로 된 한글로 된 용담
유사를 또 구수를 해서 그걸 출판을 다해서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쉽게
역사를 설명하고 우리의 전통을 설명하고 유래를 설명하고 하는 그러한 것들을 어 글들을 어
지어내면서 점점 어 교세를 확정 확장해 나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수훈은 경주가 중심인 그 유교, 불교, 도교를 다 통합을 시킵니다.
그래서 동경대전에 포동문, 노학문, 수동문에는 150개의 고유명사가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수복 오래산 거 복과 관련된 도교, 불교,
풍수설의 용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기도문을 지어서 글을 모르는
층들도 쉽게 동학의 교리를 암송하고 그렇죠. 전파할 수 있는 뭐
천주교에서도 당연히 카톨릭에서도 수많은 기도문들을 암송을 하지 않습니까? 종교 개혁이 일어나서
개신교가 일어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중에 하나가 찬송가입니다. 그 마틴 루터 같은 사람들이 찬송가라는
걸 처음으로 짓기 시작을 해서 노래들을 버티기 시작하죠. 그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개신교도들이 돼 갑니다. 그 프랑스가 그랬고 어디 네덜랜드 그렇고 독일도 그랬고 다 노래를
시켜서 똑같습니다. 여기서도 가사들을 어 부르게 해 갖고는 쉽게 사람들이
교리를 이해하고 퍼트릴 수 있게 어 말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인게 37주
뭐 당장 장생주라고 하는 어 동학의 주문인데 직위금지 원위 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뭐 이런 거를 이제 쭉 외우게 모든 사람들이 어
외우게 하는 겁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요. 수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이게
교수 교세가 커질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그 경험을 통해서
어려운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주변에 이제 친지들한테 동네 사람들한테 그냥
좀 마음에 평안을 주고 이렇게 해 주려고 글쎄요. 뭐 충고 하는 얘기들, 가훈, 교훈 이런 것들이
결국은 그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그러니까 정부의
지금 체제에 저항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점점점 변해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학이 급속하게 퍼져 나갑니다.
1863년 1월 28일 선전관 정귀가 동학을 이제 조사를 하고
나서계를 올린게 있습니다. 조룡에서 경주까지는 400여이가 되고 죽은이
모두 열개나 10여나 되는데 거의 어느 하루도 동학에 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없었으며 주막집 여인과 산골 아이들까지 그
글을 외우지 못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위천주라고 명령하고 또
시천주라고 명령하 명령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한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오염되고 번성한지를이를 통해서 알만합니다. 그것을 전파시킨 자를
염탐해 보니 모두 말하기를 최선생이 혼자서 깨달은 것이며 그의 집은
경주에 있다고 하였는데 만 사람이 떠든 것이 한 입으로 집거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은 경주에
도착하는 날부터 장시와 사찰 사이에 출몰하면서 나무꾼과 장사치들과
왕내하니 혹은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내기도 하고 혹은 대답도 하기 전에 상세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자들은
서로 물들여 도당을 잃은 죄로 조율하면 처음부터 피차와 천심의 구별이 없으니 전부 처 처분을
내린다고 해도 아까울 것이 없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대왕 대비의 덕을 받들어 억지로 차등을
두었습니다. 정학이 밝아지지 못하고 사설이 회하므로 혼란을 좋아하고
재화를 즐기는 무리들이 거짓말과 헛소문을 퍼뜨려 점점 젖어들고 익숙하게 하여 결국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경상도는 우리나라에서 노나라 그렇죠. 공자가 살았던 태어난 노나라나
추나라와 같이 음악 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던 고장이었으나 이런
일종의 요사스러운 무리들이 나타나서 많은 도당을 집결하게 이르렀습니다.
이야말로 음과 양이 사라지고 자라나라는 기회와 같은 것입니다.
삶과 등대한 자리에서 따로 진달하려고 합니다만 먼저 이런 내용으로 행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하였다. 이제 안 된다라고 어 금지한다라는
프로그램을 내리겠습니다 하니 고정이 윤호합니다. 즉위하고 나서 가장 거의
최초로 하는 일 중에 하나가이 수훈 어 최제우의 처형입니다. 그래서 수훈은
1863년 체포되어서 1864년 4월 15일 대구에서
순교합니다. 우선 대구에서 처형됐다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뭐냐면은 나라에서 봤을 때 이게 아주
심각한 위협이라 그러면은 꼭 한양으로 압성을 합니다. 한양으로 압성을 해서 취조를 하고 죽이는데 문초를 하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대구 감명에서 그냥 처형을 하고 그리고 시신도 다
유가족들한테 내 줬습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이라고 사실 생각들 안 했던 거죠. 다만 100년교 그렇죠.
황건적 이런 거 같이 될 수가 있으니까 우리가 좀 미리 미리 좀
빨리 뿌리 뽑자라고 일을 단행을 했었던 겁니다.
그런데 수훈의 처형으로 인해서 그리고 탄압으로 인해서 결국은 동학 교도들이
수훈의 가족들과 제자들 그렇죠.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경주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탄압을
하니까 경주 중심으로만 있었던 동학이 어떻게 됩니까? 전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됩니다. 어, 해월 초시형이 2대 교주가 되면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의 그 말씀들을 전부 다 자기가 그걸 최고로 다 인쇄를 해서
경전을 만들고 동경 경주 대전을 만들고 그리고 영담유사를 만들어서
퍼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점점이 사람들이 우리 교주께서 너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를 갖다가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를 왜 그러냐 그러면서 교조 신혼 운동을 버리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교조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 그래서 교조 신혼 운동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점점점
정부와 부딪히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결국은 1894년이 되면은 그렇죠.
그러니까는 수훈이 순교한지 30년 되는 해에는
본격적으로 정부와 맞서는 더 동학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네. 오늘은 동학이
왜 란인지 동학 란이냐 동학 운동이냐 동학 혁명이냐라는 걸로 어
처음에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쭉 말씀드렸던게 뭐냐면 난이라는 것은
동양의 정치사에 있어서 정확하게 규정됐었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동학난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는 전혀 문제가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확한 호칭이라고 부르고 왜 굳이 서양 역사에서 했었던 혁명이라 그러면
멋있는 거고 운동이라고 하면 멋있는 거고 반면 난이라고 하면은 뭔가 낮은
걸로 생각한다. 그건 전 고급스럽고 저급스러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 정확하게 맞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그 유명한
어 영화 중에 란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그 란이라는게
뭐냐면 그로사와 어 쉐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을 한 거죠. 일본의 전국 시대에서 일어나는이 얘기를
갖다가 각색을 해 갖고 그거를 란이라고 붙였습니다. 난 우리가 바로 그 동학 난할 때 그건 난입니다.
오히려 서양거를 자기네 맥락 속에서 각색을 했거 란이라고 해서 서양 사람들도 란 란 그러면서 최고의
로사와 영화라고 그럽니다. 차라리 동학 란이라고 서양 사람들한테 가르쳐 주
뭐 동학 레볼루션 동학 무브먼트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오히려
합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혁명이라는 것은 완전히 체제가 바뀌는
겁니다. 정치 체제가 바뀌는 거든. 그러니까 왕조만 교체되는게 아니라 체제 자체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바뀌어 버리고 상권 분립이 일어나고 농업 기반 사회에서 산업 기반 사회로 가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런 거를 레볼루션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개념사적으로 보더라도
동학은 홍경 내에 나는 진주 밀란은 난이죠. 그게 레볼루션이 될 수가
없고 어 무브먼트가 될 수도 저는 없다고 생각하고 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이어서 그러면
순내 순교 이후에 해월 최시형이 이어받으면서 동학을 본격적으로 이제
제도화, 체제화시키는 과정. 그다음에 이제 새 교세가 커지면서 탄압도
커지면서 우리를 받아 달라 인정하게 해 달라라고 하는 그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을 어 살펴보고 그다음에는 또 본격적으로 이제 어쩔 수 없이
정부와 부딪히면서 난이 일어나는 상황까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해 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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