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군, 동학과 내통하는 대원군과 평양전투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3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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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02 views Aug 6, 2025 #한국역사 #함재봉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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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청일전쟁이 진행되면서 달라지는 조선과 청 그리고 일본의 전쟁 대응 방식을 알아볼까 합니다.
청일전쟁으로 가는 와중 일본의 개혁 의지에 따라 복귀한 대원군은 엉뚱하게도 개혁이 아닌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데요.
그러는 동안 평양에서는 청과 일본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합니다. 청 역시 봉건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근대 전쟁에 걸맞은 행보를 이어가는데요.
평양전투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사를 가르는 중요한 일전으로 발전합니다.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동아시아 근대 전쟁을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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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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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이제 청일 전쟁이 본격적으로 어 시작되는 어 풍도
회전하고 그러니까 최초의 해상 전투였고 그다음에 이제 최초의 육상
전투였던 어 성환 전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전히 전 근대
사회에 머물고 있는 청나라 그리고 급격한 근대화를 겪고 있는 일본이란
나라가 어 전장에서 충돌하면서 본공 국가대 근대 국가의 그 국가의 힘에
대해서 좀 우리가 살펴볼 어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오늘은 그이어서
풍도 회전하고 성환 전투가 일어나고 있을 때에 이제 대원군이 본격적으로 집권을 다시해서 역설적으로 대원군한테
이제 갑경장이라는 근대화의 급진 개혁을 어 맡겼지만 거기에 대해서
이제 대원근이 어떻게 대응을 해 나가는지 어 그 내부에서 그 개혁에
반대하는 어 대원군이 개혁을 이끌어야 되는 자기의 그 상황을 어떻게
다뤄 나가는지 어 그리고 이제 다른 한편으로는 그 평양 전투라는 청일
전쟁의네 개 4대 큰 전투 중에 하나이고 첫 번째 큰 육상 전투인 그
평양 전투가 이제 어떻게 준비가 되는지 또 대원군이 이제 여러 가지
그 개혁에 반대해서 암약하고 있는 일들이 어 밝혀지기 시작하고 하나는
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게 또 평양 전투 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갑보장 제1차 갑경은 군국 김무철를 통해서 어
개혁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군국 김무처가 첫 개혁관을 내 내놓은게 7월
28일입니다. 그런데 8월 4일이 되면은 벌써 갑경
갑을 맡은 대원이 그 갑옷 개혁 내용에
대해서 전부 다 반대를 하고 심지어는 오돌이 일본 공사한테 가서 이거 너무
급진 개혁이다. 그러면서 이제 불평을 토로합니다. 개혁을 맡은 덕분에 다시
권력도 회복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개혁을 반대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 그 일본의 서기관 무라 실제로 대원군을 설득해서 어 그 갑보 계획을
맡게끔 했던 그 스기라가 어 보고서를 올리는데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대원군은 권력을 장악하고 적을
숙청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이렇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면 대원군은 도대체 뭐를 원하는 거냐? 사실은
민비를 폐서인하고 자기 아들 고종을 폐위를 하고 자기
손자 이주운용을 왕위에 앉친 다음에 자기가 완전히 권력을 다시 잡으려는게
그게 대원군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7월 24일에 이미 초기에 그 권력을
잡자마자 한게 뭐냐면은 이준용을 자기 손주를 손주를 중전 별입시라는 자리에
임명해서 민비가 뭐를 하는지를 자기 손주를 집어넣어서 그 감시를 하도록
합니다. 8월 15일에는 어 그 또 이준영을 자기 손자를 종정경
왕시를 또 통제하는 겁니다. 거기에 임명을 하고 통영사라는 거에 임명을
해서 수도권의 병권을 잡게 하고 이러면서 동시에 또 네모함은 서리의
어 서리 대신에 임명을함으로써 뭐냐면 전국 지방관의 임명권 한양의 경찰권
이런 거를 완전히 이준영 자기 손조 하여금 장악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대원군이 노골쪽으로 선조를 저렇게 요직에다치면서
모든 거를 장악을 하는 그 모습을 보이니까 군국 기무처의 군국처 기무처 위원이라
그런는데 위원에 임명돼서 개혁을 주도하던 6일준 김하구 어 김가진
안경수 조희현 이런 사람들은 아이 사람이 전혀 딴 뜻이 있다는 걸 알고서 점점 더 일본에 의존을 하게
되고 어 그러면서 대원을 라고 맞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준용을 결국은
대원군이 군국 기무처 위원에 임명을 하려 그러니까 군국 기무처 위원들이
두 번이나 8월 1일 8월 17일 두 번이나 이준영을 임명하는 거를 반대해서 부결을 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8월 18일에는 내무 대신의 지방관 임명권 그것까지도
박탈을 해 버립니다. 왜냐면 이준용이 내무 대신 서리가 돼 버리는 거니까. 그래서 그 권력을 빼려고 기껏 개혁을
하려고 만하라고 만들어 놓은 그 군국 기무천회의 엄청난 안력이 권력 투쟁이
암투가 이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대원군이 파월를 조정을
조정을 어 조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6일준, 박정, 이원긍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이윤영, 안경수, 김가진, 권영진 이런 사람들을
계속해서 압박을 하니까이 사람들은 오히려 고정하고 민비한테로 점점점 가서 그러니까 개혁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개혁에는 뜻이 없는 대원군이 개혁하고 부딪히니까 결국은
군부 기무처 내에서도 있는 위원들 입장에서 그랬을 거 아닙니까? 이거 어느 쪽에 이게 지금 일본이 있지
고종하고 민비가 있지 대원군이 있는데 이거 어느 편에 가서 우리가 서야지 이게 유지가 되나 이제 이렇게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이런 사람들은 상당히 온건 계약화들이죠.
항상이 사람들은 여기저기도 안 끼려고 중립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에 가면 8월 중순쯤 되면 이제 대원군 파로 흡수가 돼 버립니다. 그러면서 이제 대원군이
자기의 본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기기가 바로 청일 전쟁의 시작입니다.
8월 1일 드디어 청하고 일본이 서로에 대해서 선전 포를 하니까
대원근이 그때 곧바로 러시아 공사를 찾아갑니다. 그래서 러시아 공사 베르를 8월 2일
날 찾아가서 러시아가 청일 전쟁을 중제를 해서 곧바 좀 전쟁을 종식시켜
줄 것을 그거를 요청을 합니다. 자 근데 이게 왜 문제입니까? 일본
일본이 지금 청물 조선에서 축출해서 조선을 소위 말해서 독립시키겠다고
들어오고 와서 경복공을 점령을 하고 그리고 대원군을 앉혀서 갑장을
시작하고 있는데 대원군은 엉뚱하게 러시아에 가서 러시아 공사관에 가서
어이 전쟁 좀 끝나게 해 달라고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거를 하는 거죠.
옷돌리는 이거를 금방 그 상황을 정황을 파악을 하고서는 외무 대신
무스문의 미스한테 보고서로 올립니다. 그랬더니 무스가 그거를 읽고서이 외무
대신이 그걸 읽고서 오토리한테 답신을 한 전문이 남아 있습니다. 귀하의
8월 2일부 기밀 제14호를 잘 받았소 대원근과 러시아 공사관의 관
대담에 관하여 조선측이 주조하는 태도는 일본을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아넣으며 외국의 간섭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의사 표시는 강하게 질책해야 합니다. 현재의 전쟁은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버린 전쟁으로서 조선은 일본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천국에
대항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고 강화를 통해 전쟁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조선 정부에 철저히 인식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당연히 갔겠죠. 오토리는 얘기를 하고 했겠죠. 그렇지만 대원 전혀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급기학 8월
16일 평양에 있는 청분의 밀사를 보냅니다.
이용호, 김종한, 이민수, 정인구, 김영목 등 다섯 명의 밀사를 평양의
천군진중에다가 보냅니다. 이들이 8월 21일 날 평양에 도착을 해서 청회
장수 위여귀를 만납니다. 이들은 청군의 지원을 요청하고 그리고
대원군의 친서는 물론이고 고종 고종의 형인 이재 국내부 대신 이재면 총리
대신 김몽집의 편지들까지도 친서들까지도 전달을 합니다. 그리고
8월 28일에는 평양 감사 민병섭에게 청회 장수의 전에게 전달해 달라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또 전달을 합니다. 그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종사의 안위가 일시에
위급해져서 날마다 천사 천군이요. 천 천사라 그럽니다. 천사의 동원 그니까
동쪽을 도와주는 동원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듣건데 대부대가
연이어 출정하였다고 하니이는 참으로 조선이 다시 소생할 때입니다. 엎드려
바라올 건데 상국은 많은 원병을 보내셔 우리의 종사와 전궁을 보호해
주시고 또 간당과 일본에부터 매곡하는 무리들을 일소하셔 하루히 초미
지급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피눈물로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좀
미리 말씀드리면이 편지들이요. 평양에 있는 천군진 중에 남아 있었습니다.
청군이 패에서 평양 전투에서 패해서 도망치면서 편지들이 이르고 모든 걸
다 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이 그때 들어갔을 때이 편지들을 전부 다
입술을 해 버립니다. 즉 청 보고 우리를 도와서 일본을 격퇴해 달라고
하는 그 내용이 들어 있는 편지들을 결국은 일본이 그대로 입수하게
됩니다. 나중에 대원군을 1번이 결국은 축출시키는데 있어서이 편지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원군은요. 청의 저 평양에 있는 천군과만 내통을
한게 아닙니다. 남쪽에는 동학과 접선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죠? 왕의 친서라고 해서 고정의 친서라
해서 보내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뭡니까? 이게 무슨 전략입니까?
임진외란 때 임진외란 때 일본이 쳐들어오니까 명군이 들어와서 북쪽에서
치 내려 쳐내려오기 시작하고 그 남쪽에서는 의병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하자면 협공을
해서 남북 양쪽에서 협공을 해서 1번을 격대시켰다. 그러니까 지금
이번도 똑같다. 그러니까 뭐 역사가 반복되는 부분 물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진회란 때도 그랬고 청일 전쟁 때도 그렇고 사실 625 때도 그렇고 항상 양쪽에서 협공을 해서
이제 축출을 하고 이제 이런 거를 해야 되는 건 알겠는데 그런데 대원군의 역사 인식과 상상력이라는 건
역시 다른 건 전혀 모릅니다. 근대 국가의
전쟁들이 예를 들어서 어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 보블 전쟁 같은 거
그 일본 군들은 그걸 다 보면서 그래서 군대를 만들고 전략을 짜고 독일군한테 이걸 하고 그러면서 서양
세계에서 이런 전 엄청난 전쟁들이 지금 뭐 일어나고 있는 뭐 크림 전쟁 뭐 하여튼 다 알고 있는데 지금
대원군의 입장에서는 그냥 유일한 역사적으로 자기가 기댈 수 있는 거는
그냥 임진한테 했습니다. 자, 그러니까 또 북쪽에서는 중국군,
남쪽에서는 의병 일으켜서 하는 거를 그대로 하자. 그래서 이번엔 천군, 평양에 있는 천군, 남쪽에서선 동학을
일으켜서 협공을 하도록 어 그렇게 합니다.이 이 내용이 대원군이
적극적으로 동학을 사주해서 결국은 제2차 동학 본기간 일어나게
되는 그게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데 대원근축하고 동학간의 연락을 맡았던
이병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대원 근축에서 동학한테 보냈고 동학한테서 받아서 답신하고 이런 거를 다 추설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수를 해 갖고 신문 과정에서 이걸 전부 다
고백을 한 자백을 한 그런 기록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대원군은 충청도에는 이건영, 박동진 뭐 하여튼 이런 박세강등 이런 사람들
초모사라는 거 그러니까 이렇게 군사를 모집하고이 보내 가지고 동학 접주들하고 다 접촉을 하도록 합니다.
전라도에는 임기준과 서장옥이라는 사람을 보내 가지고 전봉준, 김계남,
송희옥 등 동학군들하고 어 접속을 한다. 그리고 이제
경상도에는 어 또 일사들을 보내 가지고 거기에는 4대부들한테 이제 일어나라고 다음과
같은 밀서를 보냅니다.이 이 물서에서 보시면 역시 아 임진회라 때랑 똑같은
전략으로 지금 대원군이 어 인식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이 정확히 드러납니다. 그대들은 선왕조부터
화중 중화를 받아들인 유민인이 선황의 은덕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 선왕들 덕분에 너희들이 중화가 됐다. 중국 문명을 받아들였다. 이런 뜻이죠. 지금의 이르로 조종에
상존하여 있는 자는 모두 저들에게 붙어서 대골에는 한 사람도 상해할 자가 없는 까닭에 완전히 독좌하고
있으니 앙천호곡할 뿐이다. 바야하로 이제 외구가 범걸하여 화가 종사에
미치고 명은 조속에 달렸다. 사기가 이에 이르러 너희들이 만약 올라오지
않는다면 화환이 박도하였으니이를 어찌 할 것인가? 대로부터 위와 같은
밀교가 있어 소모사 이건영을 보내니 그쪽에 도착하면 문의하라. 그리고이
이야기가 외에게 누설되면 화가 옥채 미칠 터이니 신 비밀을 유지하라라는
이제 편지를 곁뜨려서 밀서랑 같이 보냅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지금 갑을 하라고 하고 있고 일본은 갑을 시작하는 동시에
결국은 중국하고 개전을 해서 풍도 회전이 일어나고 성환 전투가 일어나고
그다음에는 천군이 쫓겨가서 본격적으로 다시 평양에 집결하면서
큰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원군은 개혁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지금 어떻게 하면은 자기가 다시 권력을 잡을까하면은
그 민비는 는 폐손시키고 자기 아들은 이제 그 고정은 쫓아내고 그리고 손주를 안 치고 자기가 권력 지금이
계산을 하느라고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일본의 간섭도 제껴야 된다.
그러니까 이때에는 뭐를 해야 되냐? 청군을 이용해서 그리고 동학을 이용해서 그래서 외놈들을 쫓아내고
내가 권력을 잡아야겠다.이 계산을 하면서 지금 청하고 동학하고 내통을 하고 있는 거죠. 자,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일본은 뭘 하고 있냐? 이제 본격적인 전쟁 시작이죠. 풍도 회전은 이제
거의 우연하게 일어나 일어난 그런 그 전투였었고 그 현장에 있었던
도거해야치로 함장에 난이와라는 수양함의 함장의 어떻게 보면 기지로서
이제 일어난 첫 전투였었고 성환 전투는 소수 경복공을 진압 장악하로
들어갔던 일계 여단이 그게 이제 남쪽으로 급히 내려가면서 청분하고
마었던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소규어 전투였죠. 그렇지만 이제 전쟁이
시작된 이상 일본의 입장에서는 전면전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뭐가 문제가 뭡니까?
평양 전투를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평양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일이 너 하는게 너무 힘들죠. 중국은 청은 그냥 군대를 보내면 됩니다. 뭐 뭐 칭다워에서도
보내면 되는 거고 천진에서도 보내면 되는 거고 그냥 북쪽에서 내려오면 되는 거죠. 암강 건너서 내려오면
되는 거지만 일본으로서는 지금 평양에까지 군대를 전개해야 되는 엄청난 일이 있습니다. 일본이 이때
이제 평양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서 대군을 전개하면서
본격적으로 근대전을 치르게 됩니다. 성이 평양을 사수하면은
그렇죠. 그러면 한양 이남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위치가 굉장히 위태로워지는 거죠.
반면에 평양을 일본이 탈란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은 청구는 더
이상 한 반도에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반도 밖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고 그다음 전투는 어디서
벌어집니까? 조선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중국으로서도 청으로서도 평양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주 결정적인 중요한
전투였었습니다. 1번은 카츠라타로 어 피하의 제5사다. 하스라타로는 어
야마가따리 또뭐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그 프로이젠 신식 군대를 모든 거를
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군인이고 우리 우리 역사에서는 한국의
역사에서는 태프트 가츠라 밀서 미약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그
미약의 총리 대신 수상이 되었었던데죠. 이제 1905년 그 전에 이제 거의 10년 전에 지금
카트라는 일본의 육군을 육성을 해서 그 5 4단을
이끌고 그다음에 노즈미치스라는 사람이 3 4단 두 개 4단에 35천
병력 이것이 그 1군 제1군입니다. 그 1군의 총사령관는 이제 야마가리모가 맞습니다. 자, 그런데이
35,100원을 어떻게 조선에 전개하느냐? 일본에서 오면 세 가지 방법 있죠.
하나는 부산으로 가는 거. 늘 하듯이 부산으로 가는 거. 그다음에 원산을
개향을 했으니까 원산으로 가서 하는 거. 그리고 이제 재물포로 가는 거.이 이 세 가지가 사실은
있습니다. 근데 제일 좋은 거는 사실은 아예 그냥 대동강 어기로 해서
대동강을 따라서 평양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면 제일 좋은데 대동강은 바로
건너편에 뭐가 있습니까? 웨이하이웨이가 있죠. 거기에 청북
부양함대의 기지가 있습니다. 외하의외에 큰 기지가 있고 루에 큰 기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군의
입장에서는 어 대동강으로 그냥 수송선들 잔뜩 보냈다가 왜하위에서
북양함대가 와 갖고 수성선 수성선들을 공격을 하면 이거 괴멸이 될 거니까
처음에는 아예 대동강옥에로는 갈 생각을 못 하고 제일 좋은게
부산이죠. 그런데 가서 자기네가 보니까 한양하고
부산엔 길이 없습니다. 지금 같이 무슨 경부고속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속철도가 있는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선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이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3만 내지
35천 대군을 부산에 약 상륙을 시켜 갖고 도로를 만들면서
한양까지 가고 평양까지 가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어떡합니까? 일본을 원산으로 보냅니다. 근데
원산조차도 길이 전혀 없습니다. 한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훨씬 가까우니까 일부는 그쪽으로 보내고 대부분의 군대는 이제 재물포로
보내겠다고 해서 대군을 재물포로 어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번의
전략은 뭐냐면 성환 전투에서 이기고 오시마의 제9연대가 이제 계속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재물포하고 원산에서 상륙하는 제1군 이렇게 해갖고 세 방향에서 협공을
하기로 이제 그렇게 전략을 어 니다. 사실 이런 거를 해낼 수 있다라는
거는 근대 전에 모든 거를이 사람들이 일본군이 파악을 이미 하고 있다라는
거를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 그렇게 대군을 35, 대군을 이제 전개를 하기 시작을
하는데 이또 스케이 그 저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입장에서는
제일 걱정되는게 자기네가 어쨌든 수성을 갖고 오면은 서해로 올라와야
될 수밖에 없는데 그 까우호를 난이와가 격침시켰듯이 그 풍도 회전
같이 수송선들은이 저남들 앞에서는 아무 뭐를 어떻게 방어할 방법이 없는
거죠. 엄청 걱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웨하이웨이에 있는
청의 북양 함대를 미리 어떻게 손을 써야 되겠다. 그러니까 일단 전투가 한번 붙어 가지고 북양함대를 이기든지
아니면 최선 북양 함대가 마음대로 못 나오게끔 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저남들을 보내서 북양군이
움직일까? 북양 함대가 움직일까 움직일까? 이걸 외아에 가서 계속 감시를 합니다. 그런데
안 나옵니다. 이게 청일 전쟁의 승패를 가음하는 첫 번째 이홍장의
폐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폐착이 뭐냐면요. 이런 거예요. 북양함대가
나와서 당연히 일본이 군대를 전개시키는 그 수송선을 통해서 하는 거를 그걸 어떻게 중간에서 막아야지
육상전도 치르지 않고 어떻게 이게 전세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할 수가 있는 저로의 찬스인데도 안 나오는
이유가 뭐냐면요. 청부에서 계속해서
암투가 벌어집니다. 이홍장의 북양군하고 특히이 북양함대를 다른
대신들이 다른 세력들이 이홍장으로부터 뺏으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다. 그래서
온갖 소문을 만들어 내고 재판에 회부하고 기소하고 이제 이런 식이죠.
무서 뭐를 잘못했고 돈을 어디 빼먹고 이러면서 전혀 뭐를 못 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나중에 이흥장이 뭐라고 결정을 내리냐면요. 내가
북양함대를 내보내서 일본군하고 싸웠다가 혹시 북양함대가 지거나
치명타를 맞으면은 그럼 내 권력은 끝났다는 거죠. 그죠? 내 권력은 지금 북양군하고 북양함대인데
그러니까 어떡합니까? 아, 그럼 부양 함대를 지켜야 되겠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전투를 피해라 그러는 거죠. 그러니깐 이또의 함대가 또
외하이웨이로 갔더니 그때는이 북양 함대가 어디가 있습니까? 아예 외하에 있지도 않고 루슈에가 있고 이러는
거죠. 그러면서 아니 우리 같았으면은 당연히 부양함대가 이때쯤 나와 가지고
서해를 재해권을 가져가 버리면은 자기네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텐데. 그러니까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러면서가 갖고 뭐 대포도 쏴보고 그런데 외하이웨이에서 아무 반응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돌아와서 결국은 뭔 이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북양함대가 나서질 않는다라는 걸 확인을 하고 재물포로 전개를 하기로
합니다. [음악]
그러니까 이제 대본형 일본의 이제 그 전략 사령부죠. 전쟁이 일어나면
차리는이 대번영이때 처음 차려지는데 그 대번영에서는 우리가 재외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니까 1군, 제1군의 주력을 무조건 조선에
전개한다. 그러면서 수송선 30척을 동원해서 병력을 어 시작합니다.이
수송선도요.이 사람들이 어떻게 마련하냐면은 매지유신을 통해 가지고 새로운 우편 제도를 만들고 그러면서
이게 섬나라니까 우편 제도를 만들면은 제일 필요한게 뭡니까? 우편선이죠.
그래서 그 우편선 선단을 다 만듭니다. 그걸 나라가
지원을 해 줘 갖고 그거를 만들게 하면서 그 대신 전시는 국가가 수용한다라고 해 놨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니까 그 그때 만들어 놨던 그 모든 이제 우편선
이런 거를 다 수용을 하면서 그래서 수선 30척에다가 군대를 실어 갖고 조선의 전개를
시작합니다. 제10여단은 4 나을에 걸쳐서 재물포의 상륙을 끝내고 곧바로
평양으로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성들이 다시 히로시마로 돌아가서
제34단 제5여단의 8천 병력을 또 실어날서 제5여단은 원산으로 갑니다.
8,명은 원산으로 8월 26일에 원산에 다 도착을 해서 이제 서진을
평양쪽으로 가기 시작하는 거고 그리고 어 3,500명은 원산의 진지를
구축하고 통신망을 만들어서 그걸 지키고 나머지 4,500명이 이제 평양으로 갑니다. 마지막으로 투입되는
1군의 마지막 병력이 제34단 그리고 암록강을 도강하기 위한 제6
기계 여단 철교 이런 부교 같은 거를 금방 세울 수 있는 기계 여단까지도 다 전개를 합니다. 그래서 어이 3
4단은 어 총 12,명의 병력에 보급품 4,명의 짐꾼들과 함께 9월
10일 날 36척의 수송선에 올라서 히로시마에서 추항하고이 수성선단에
야마가따리또모 원수 합참의장 가바야마 스캐놀리 이런 사람들이 승선을 해
갖고 이제 어 본진이 이제 가는 거죠. 그래서 목포 근처에서부터 일본
해군의 어 호위를 받으면서 재물포에 도착하고 병력과 장비는 이틀에 걸쳐서
상륙하면서 곧바로 평양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제9여단과
5여단이 성환 전투 이기고 올라온 여단하고 저쪽 원산에서 오는 여단까지
다 평양 근처까지 왔는데도 그 북양함대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이때 연합 이또 연합함대 사령관하고 야마가 원수가 상의를 한
다음에 아이의 병력을 재물가 아니라 우리 대동강어기로 간다. 대동강으로
전개시킨다. 그래서 어 9월 13일 날 이의 제6 기계 여단 7천의
병력이 재물표를 추량해서 9월 34일 날 대동강 어기에 도착을 합니다. 제
6여단은 진남포에 상륙해서 곧바로 그래서 평양으로 진격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일본은 놀랍게 빠른 속도로 총 3만 명의 병력을 재물포
원산 진남포를 통해서 평양에 진주시킵니다.
진짜 그 놀라운 속도와 정교한 전략을 요구하는 그 군사
전개를 하고 있는 동안에 일본 내에서는 어
메이지 천왕이 메이지가 대본용을 히로시마로 옮깁니다. 그래서
히로시마로 갑니다.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모든 결정은 내각에서 결정을
하는 거고 그래도 전쟁 같은 데서 마지막 재관 항상 메이지가 직접 했습니다. 그래서 청일 전쟁 중에도
메이지가 직접 주제하는 주제하는 회의가 90회 이상이
있었습니다. 비록 실질적인 결정은 다 수야의 군인들하고 정치인들이 다 하는 거지만 상징적인 존재로서 그리고
국가의 원수로서 메이지가 그 자기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은 참
놀랍습니다. 늘 드는 생각이 고정하고 같은 나이에
거의 동시에 즐기를 합니다. 그런데 두 군주의
리더십 이런 거 보면 너무 큰 차이가 납니다. 에이지가 이때 청일 전쟁 때
보이는 리더십도 참 대단합니다. 결국은 어 9월 1일 날 다루이토
친왕 어 천왕한테 가서 메이저한테 가서 조선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청나라하고 전쟁을 할 하게 되니까 도쿄에서 하긴 애도에서 하기 너무 힘들다. 그러니까 히로시마로 우리
본부를 옮깁시다. 그래서 9월 8일 날 메이지가 그래 우리 대번형을
히로시마로 옮긴다 그러면서 메이지도 시종 주치 비서진하고 같이 히로시마로
갑니다. 9월 13일 신발시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 역으로
가는데 메이지의 마차가 지나가는 길 길에 군인 학생 민간인들이 도열
도열에서 만사의 만세를 외칩니다. 즉 왜이 말씀을 듣냐면이 광경이 중요한게
청에서는 이런 관경이 안 일어납니다. 군대 국가를 만들어서 어쨌든 징집을
해서 평민들을 징집을 해서 보통 국민군들을 해 갖고 군대를 만들고 하니까는이 전 국민이이
전쟁에 이겨야 되겠다 그러면서 총력전을 버리니까 국가 원수가 지나가니까 도여를 해서 환호를 하고
하는 지극히 근대 국가적인 모습이죠. 군사열하고 행진하고
국민들이 나가서 그걸 같이 보고하는 그 모습을 일본은 이때 처음 연출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고야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제 또 고배로 계속해서 어 가는데 고배에는 이미
중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살고 있었죠. 그니까 명나라가 망했을 때에 그때 명예 유민들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메이지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이게 지금 중국하고 전쟁을
시작하는데 중국 사람들 많은데 여기를 가면은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가 매주 괜찮다 그러면서 내 신하들이라
그러면서 거기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일부러 가서
국민들 백성들을 만나는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9월 15일 저녁에 드디어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천왕의 숙소로
지정된 아주 간단한 2층 목적 업무입니다. 거기에 여장을 풉니다.
2층에는 사무실하고 욕실, 타리실이 있고 나머지 공간과 1층에는 그
참모들에 숙소하고 그리고 전략 회의시들이 있었습니다. 천왕의 방에는
메이지의 방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의자 뒤에는 금색 병풍 그리고 두
개의 상이 있었습니다. 상안에는 뭐 천왕의 칼과 보석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이제 옥색 이렇게 이제
상징적인 건 놨던 거죠. 웨이지는 같은 방에서 사무도 보고 식사도 하고
잠도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메이지가 세면을 하고 있으면은 시종들이 돼서 침상을 치우고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고 장식도 없고 벽에는 싸구려 벽식이 하나만 걸려
있었습니다. 시종이 좀 더 편한 의자나 좀 날로 같은 거를 갖다 놓겠다고 하니까 메이지가 전방의
군사들한테 그런게 있느냐? 없으면 나도 안 한다 그러면서 거절을 합니다. 또 집이 너무 협수하니까
건물을 확장하해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메이지는 전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장교들과
병사들 생각하면 어떻게 이것을 불편하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서 거절을 합니다. 메이지가 히로시마에
도착한 날 평양 전투가 벌어집니다. 평양은요. 그때까지만 해도이 성이 있었습니다.
평양성의 그 모습이 있었습니다. 평양성이 대동강을 끼고 쫙 양각도
대동강 뭐 이래 갖고 동강 해 갖고 이렇게 있는 그 지도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때 이제 군사대군 양쪽
군에서 일본군이 특히 썼었던 거겠죠. 그래서 청은
전쟁이 전투가 벌어지기 두 달 전부터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8, 명이 대동을 따라 배로 이제 그 웨이
하이웨이하고 루에서 여순에서 이제 건너왔겠죠. 그리고 5,명은 이제 만주로부터 진격을 해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전투 직전까지 13,000의 병력이 평양에 집결해서 27개의
진지를 구축을 합니다. 아주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고요. 충분한 활약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이 초롱성 같은 평양성 안에서 그 많은 화력과
보급품과 군사를 갖고 그 많은 진지를 구축해 놓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바깥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일본군보다는 청군한테 유리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문제는 천군 내부의 상황입니다. 그때 9월
11일자 폴 멀세트라 그래 갖고는 이제 영 중국에서 나오는 또 영자 신문이 있습니다. 그 신문에 이런
보도가 나옵니다. 다수의 정보원에 의하면 조선 북부의 청구는 비참한
상황에 있다고 한다. 장군들은 형편없이 무능하고 하급 장교들은 불만에 차 좌절하고 있으며 일반
병사들은 지치고 의기 소침해 있다고 한다. 그나마 도로라고 있던 것들은 모두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 만주에서
평양까지 보급품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총, 탄약, 식량은 모두
길이 막혀 기류에서 썩고 있고 전방에서는 식량이 떨어지고 있다.
평양은네 명의 천군 장수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이네 명은 각자가 맡은 장소를
지키는 거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뿐 협력을 하지
않어요. 협력시킬 수 있는 어떤 전략 본부, 사령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합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형식적으로는 자기 전구를 나눈 거죠. 그런데 이게
전투가 시작이 됐을 때는 원망 측착했 효율적인 방어를 전혀 할 수가
어 없었습니다. 평양은 지도에서 보시면 지형상으로는 남쪽이나
동쪽으로부터 공격하는 것은 강의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북쪽에서
공격을 하는 거는 쉬었는데 그대 그 대신에이 그 동쪽에 있는 성 동쪽에 있는 동강에 건너야 되는 겁니다.
어쨌든 도강을 해야 되는 거죠. 일본어서 뭐 원산에서 오든 남쪽에서 오든 도강을 해야 되는 거죠. 강을
건너야 되는 거죠. 강을 건널 때야말로 가장 군대가 약할 때 아닙니까? 위험할 때 아닙니까? 그때
공격을 하면은 괴멸시키 수 있습니다. 그런데 9월 15일에서
16일 사이에 도강을 합니다. 그리고 세 갈래로 16,명의
군대가 세 갈래로 평양성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15일 새벽 4시 반에
원산에서 진격해 온 4사단이 먼저 공격을 시작하고 9여단이 평양의 남서
쪽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마지막으로 6여단이 병 그 대동강 어기로부터
공격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노즈미치라 중장하고 오시마 요시마사 중장의
병력은 북쪽으로부터 또 공 성을 공격을 합니다. 새벽의 전투가
시작되는데 결국은 외곽의 천군 진지들이 차례로 일본군 수중에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오후 2시 반이 되니까 외곽에 있었던 모든 천군들은
다 성내로 다 퇴각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오시마 장군 휘아의
쉬운네 포가 있습니다. 그 포. 그다음에 대동강 어기를 향해 그
통해서 거슬러 올라온 포함들이 네척이 와서 그니까 쉬운 내문에 어
야포들하고 그 한포들이 밤새 평양성을 어 그의 포탄을 퍼었습니다. 청구는
항복을 처음에 생각을 하다가 모두 어둠을 틈타서 밤새 평양성을 그냥 다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안주루 도망을가 버리고 다음날 아침 일본군은
봤더니 아무 저항 없이 그냥 평양성에 입성을 해 버립니다.이 평양 전투에서
천군 2,명이 전사하고 700명이 포로가 됩니다. 반면에 일본군은 102명이 전사고 438명이 부상을
당하고 33명이 실종이 됩니다. 1번에서 나오는 영자 신문에서는
천군이 저항을 했다면 별로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청군이 8월 4일 평양에 입성하였고 따라서 준비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그까 어떻게 이렇게 쉽게 무너지느냐. 저렇게 미리
들어와서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그랬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루
전투하고는 그냥 다 도망가 버리냐 하면서 오히려
일본 측에서 굉장히 놀랍니다. 그때에 노스차이나 헤럴드라고 이제 중국의
영자 신문이죠. 노 차이나 헤럴드는 기사를 이렇게 썼습니다.이 청분과
내에서 단압이 안 되는 문제를 썼습니다. 무슬림 장수 좌보 휘하의
군사들은 용맹하게 싸웠고 좌장군 군인도 전사한다. 반면 만주족
군사들은 아무런 술모가 없음을 보여줬다. 지인의 만주적 군사들 즉 팔기군은 자신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떠들어 주었던 왕조를 지키는 것보다 앞편 담배대를 채울 것을 찾는 것에 훨씬 더 집중한다. 이들은 마치
왕조가 처음부터 특별히 자신들만을 위해서 존재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만주적 장군 지휘하의
팔기군은 싸우는 대신 하나도 다치지 않고 후퇴했다. 여러분 팔기군이라는게
뭡니까? 팔기군이라는게 청조를 일으킨 누르아치, 청태종, 홍타지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러니까 청이 일어날 때는 최강 구됐던 바로 그
팔기군입니다. 팔기군이 만주가 고향입니다. 그 만주의 팔기군을 평양에 투입을 한
건데 그 팔기군이 지금 어떻게 변해 있습니까? 나라가 망하는 바로 그
모습이죠. 전혀 장군들과 병사들이 이걸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진짜 앞편에나
중독이 돼 있고 몰락해 가는 나라의 굉장히 서글픈 모습들이 이런 외신
기사들을 통해서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을 합니다. 참고로 참 이때의
전쟁이 거의 최초로 서양의 신문 기자들이 전부 다 와서 참관을 하는
해서 끊임없이 기사를 써내는 그 첫 전쟁이 됩니다. 근대 그런 의미에서
진짜 근대전입니다. 그래서 뉴욕 타임스 기자도 와서 어 취재를 해서 이런 기사를 씁니다. 퇴각하는 청구의
퇴각론는 너무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장총, 장검, 탄약 등 그들이 급히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것들이
도초에서 발견된다. 폐잔병들은 강도대로 변했다. 마을들은 약탈당하고 불태워졌다. 농가들은 부서지고 모든
곡식들은 불태워졌다. 저항하던 조선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학살 당했다.
귀신들은 모두 창에 찔려 있었다. 어 모스코브스키
베도모스티라는 러시아의 신문은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의 침공보다
천군들을 훨씬 더 무서워한다. 나중에 우리가 그
선교사들 얘기를 할 때에 그때에 보면 그 제임스 홀 로제타 홀의 남편인
제임스 홀이 평양에 와서 청일 전쟁 때에 부상당하고
그렇지만 천군이 버리고 간 청의 부상병들 그리고 특히 퇴각하는
청군들한테 저렇게 창이 찔리고 학살당하고 그중에 살아남은 조선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를 치료하다가 장푸에 걸려서 죽습니다. 그게 그 일이 지금 어 그
평양에서 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럼 천군인 왜 그랬냐?
천군 입장에서도 절박했습니다. 천군은 일본군하고 달리 무슨 군위관들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어 식량과 모든 보급품을 대주는게
없습니다. 여러분 본건 군대는요. 그니까 그런 거죠. 삼국지에 나오는
뭐 조조 무슨 그죠? 유비 관우 이런 군대들은요. 그때 무슨 보급품들이
어디습니까? 그냥 알아서 가서 현지에서 자기가 줘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본건군 전근대 군대하고
근대 군대의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절박했던 겁니다.이 사람들은 약탈하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됐어요. 총군들은. 그리고 보수요. 전쟁
참전에서 월급이요. 보수 어떡합니까? 전리품들 챙기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근대식 전쟁이 벌어지는
주변의 모든 양민들은 이제 초토화가 완전히 황폐화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존로스 목사
스틀랜드 장로교회 선교사로 와 있었던 분이죠. 한글 성서 번역을 가장 먼저
시작해서 한글의 보급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이 존수 목사 이제 그
기록해 놓은 겁니다. 천군이 지나간 농촌는 모든 식물은 다 뽑히고 마치
메뚜기 때가 지나간 평원과 같았다. 청군하고 일본군은 완전히 다른 전쟁을
합니다. 전혀 다른 시대의 전쟁을 치릅니다. 어,
정말이 당시에 어, 외국 기자들이 와서 보면서 너무 놀랍니다. 근대식이
군인의 그 전력이라는게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거를 절감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때 결정적으로 뭐가
바뀌냐면요. 중국과 일본에 대한 바깥 세계의
인식이 이때 완전히 바뀝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이 훨씬 문명국
가고 훨씬 오랫동안 서양하고 교류를 했었던 너무나도 잘 알려진
엄청난 문명이었다. 유럽 사람들 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미국 사람들 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일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나라 처음 변방에 있었던 야만적인 나라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청일 전쟁에서 실제 전쟁하는 그 모습 군사력이나 전력 뭐
전략 이런 것만이 아니라 보급품 그다음에 어
의료진 주변의 그 양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일을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당하는가 이런 모든 거를 보면서 뭐가 문명이고 뭐가 야만인고에 대한 너무나
직접적이고 적 정라한 경험들을 하면서 완전히 일본하고 중국에 대한 박화 세상의
인식이 변합니다. 지금까지도 중국은 청일전쟁의 패배를 통해서 그때 형성된
바깥 세상의 인식 일본이 선진국이고 중국이 후진국이라는 그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지금 노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은 중국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청일 전쟁이 전 세계의 양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때에 그러면 일본군을
지휘하는 그러니까 일본의 군인들이 그냥 두 사람만 여기서 계속해서 나오는 노즈미치시라
어이이 사람 하고 그다음에 오야마 이와오이 두 장군들이 어떤 배경이었고
그리고 어떻게 군사를 지휘했는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말씀을 드림으로써 좌복귀 평양성을 수기 수 사수하든
그다음에 나중에 북양함대를 지휘하는 는 정여창이나 이런 사람들하고 당시
일본군을 지휘하던 그 지위관들하고의 그 차이가 뭐였는가를 한번 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노즈미츠라는 1840년에 태어나서 어
1908년에 죽는 어 장군인데요. 가고시마의 하급 사무라이집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사스마 번이죠. 그 사이고하고 그보도시미치가 나오는
그 사스마번의 역시 또 거기 하급 사무라의 아들입니다. 도구가와 막보하고 이제 싸우는 거죠. 그래서
막불을 쓰러뜨리면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그 보신 전쟁에 이제 참여를 했던 거고 1876년
10월에 그러니까 68년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고 8년 후인 1876년 10월에 필라델피아의 100주년
박남회를 관람을 합니다. 36살에 그리고 1877년에
세인안 전쟁 그 사이고가 일으킨 그 세인안 전쟁에 가서 사회고 하고
싸우면서 결국은 그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1884년에는이
1년 동안 오야마이와 전쟁상하와 함께 유럽의 군사제도를 시찰을 합니다.
1885년 4월에서 5월 베이징의 일본 무관으로 또 파견됩니다.
그러니까 청의 군사력과 모든 거를 다 어 파악을 하게 되는 거죠. 88년
5월 야곱 메겔 맥켈이 주도를 해서 일본군을 재편할 때 그때에
죄오사단장에 임명이 어 됩니다. 야마갔다 이런
사람들이 초청을 해서 자기네 군대를 다시 육군사관학교부터 다 다시 만들어 주고
참모 만들어 주고 어 크리그라는 전쟁 놀이 하는 거 다 해해 달라고 하는
그 맥켈. 그리고 94년 9월 평양 전투에 참여를 하고 95년 3월에
대장으로 진급을 하고 야마가 대신 일군 사령관을 맞 맡으면서 전쟁을
종결해 이니다. 1905년 러일 전쟁 때 공천 전투라고 가장
중요한 전투 중에 한데 거기에서 일본의 제4군을 지휘를 했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오야마
이와오라는 사람은 1842년생이고 1916년에 죽는데 역시 가고시마의
하급 사무라이. 그러니까 조선으로 치면 무슨 중인 정도죠. 향이나 중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죠. 그런데이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해외 유학을 가면서 세상에 눈을 뜨고 메이주신에 참여를 하면서 근데 군을 편성해 나갑니다.
보신 전쟁에 역시 참여를 하고 1870년에 그죠 28살 나이에 프랑스의 생시르
사관학교 에콜 스페셜 밀리테어드 생시르라는 유명한 군사학교에 어 그
보내줍니다. 그러면서 어 유학을 하면서 바로 이때 보블 전쟁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 그니까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전전 전쟁이 바로이 프랑스하고 전쟁 아닙니까? 바로 그 전쟁을
현장에서 창반을 다합니다. 1871년에서 74년에는 제네바에서 외국을 공부를
하고 러시아를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일본 최초의 루입자입니다.
루입을 그때 사 가지고 그니까 무슨 말씀이냐면요. 뭐 사치를 했다 이런게 아니라 그
당시에이 군인들이라는 사람들이 가장 선진국의 모든 문화 심지는
패션이나 이런 것까지도 다 알고 흡수를 하고 그런 거를 바탕으로 해서
전쟁을 알고 군사를 알고 그랬던 사람이 청일 전쟁 때 당시 일본군 제2사령 2군 사령관 임명이 돼서 루
전투에를 통해서 루을 함락시키고 곧바로 군대를 다시 전개해서 그래서 칭따 그 엔타이
외하이웨에 가서 결국은 어 북양함대를 괴멸시키는 그러한 그 역할을 합니다.
러일 전쟁 당시에는 만주 전구를 또 총 지휘하는 어 그런 군사 역할을
합니다. 당시 일본의 군대라는 것은 최첨단
문명을 최첨단 군사를 최고의 외국
교관들을 불러서 훈련만 받은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이 아니라 직접 몸소 나가서 다 외국에 나가서 오래서
체험을 하고 평민들을 증집해서 일으키는 세 군대를 훈련을 시키고
조직을 해 나가면서 막강한 군대를 키워서 결국은 청일 전쟁이라는
중국을 상대로 하는 그 엄청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그러한
군대를 그러한 실력을 양성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네. 오늘은 어 평양 전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전에 대원군이이 가보장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속에서
어떻게 암투를 버리면서 청문하고 동학하고 내통을 하게 됐는지 이제 이런 부분들을 어 살펴봤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대원군이 쫓겨나게 되고 일본이 다시금 2차 갑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들이 되기 때문에 오늘 좀 자세히 말씀을 드렸고요. 다음 시간에는 어 황해 전투가
또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평양 전투가 최초의 큰 전투였었으면 4대 전투 중에 하나였으면 그중에 하나가 또
하나가 바로이 황해전입니다. 자, 그러면서 제가 그 황해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일본군이 도대체 전력이 어떻게 돼 있고 어떻게
형성이 됐었는가? 근데 군대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그리고 다른 한편 청은
계속해서지면서 자기네가지는게 아니라는 그 선전을
전쟁 내내 지속하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서 결국은
완전히 몰락해 가는 그러한 모습을 좀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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