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0

이승만의 대미투쟁 - 상/하 권 | 로버트 T. 올리버 2013

이승만의 대미투쟁 - 상권 | 로버트 T. 올리버 | 알라딘


이승만의 대미투쟁 - 상/하권 - 건국과 나라 수호를 위한
로버트 T. 올리버 (지은이),한준석 (옮긴이)비봉출판사2013 
원제 :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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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42년부터 1960년까지 저자와 이승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서신과 전보문,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왔던 일기, 그리고 당시 세계 주요 언론매체에 기고했던 글 등 역사적 원재료들을 시기 순으로 정리하고 배열하여 독자들을 해방 전인 1942년부터 해방, 건국, 6.25, 휴전협정, 4.19 등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이 되고 있는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듯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목차


제1장 암담했던 워싱턴 시절(1942~46년)
제2장 1946년 여름: 서울
제3장 실망, 의견 불일치 그리고 대결(겨울, 1946~47년)
제4장 진통을 겪으며 정책이 전환되다-고통스런 정책 전환(1947년 가을)
제5장 워싱턴의 한국 로비(1946~50년)
제6장 유엔의 불투명한 명령(1947~48년 겨울)
제7장 오리무중에서 어둠을 헤치고 탄생한 하나의 정부(1948년 봄)
제8장 자유로우나 아직 자립이 안 되는 하나의 정부 창조(1948년 여름)
제9장 선동에서 행정으로(1948년 8~12월)
제10장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1949년 봄)
제11장 철의 장막이 불거져 나오다(1949년 7~12월)
=====
제12장 하나의 건전한 사회를 무너뜨린 공산군 남침(1950년 6월)
제13장 38선 이남 ? 대 혼란과 용기(1950년 여름)
제14장 압록강까지 그리고 다시 후퇴(1950년 가을)
제15장 실수의 대가(1951년)
제16장 금 간 아성(牙城) (1950~52년)
제17장 헌정의 위기(1951~52년)
제18장 껄끄러운 동맹 ? 반공포로 석방(1952~53년)
제19장 판문점 휴전 타결(19`53년 7월)
제20장 외교에는 흙탕물이 있다(1954년)
제21장 제3의 전쟁 ? 폐허와의 싸움(1950~60년)
제22장 한 시대의 종언(195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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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역자 서문에서>
차세대들에게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2차 대전 후 일본에서 유행하던 유행병에 오염된 많은 역사학자들이 역사학계의 대세를 이루어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은 교조적인 서술로써 틀린 지식을 교과서에 쓰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잔인하고 철저한 1인 독재의 주인공인 김일성을 진보적 민주적 민족의 지도자라고 찬양하고, 이승만을 낙후된 독재적 후진적 지도자라고 매도하고 있다. 최근에도“백일전쟁”이라는 허위 날조의 욕설을 마구 퍼붓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데, 이것이 국가의 보조금까지 받은 좌파적 역사연구소의 연구 결과물이라고 한다.
공산당이 70년의 시험을 통하여 완전 실패하여 러시아에서 간판을 내리자 구라파에서는 공산당이 일제히 간판을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도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하게 전교조가 살아 있고 언론계에서도 설명하기 쉬운 유물사관적 기사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착오를 일깨워 줄 최적의 책이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로버트 T. 올리버 (Robert T. Oliver)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바크넬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1942년 9월에 당시 에드워드 장킨 목사의 소개로 이미 67세나 된 노신사 이승만을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의 뛰어난 인품과 학식에 매료되어 그는 이승만의 개인비서를 자청하여 그 후 미국에서의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그리고 해방 후 건국 때까지는 한국에 와서 이승만과 미군정청 간의 소통을 돕는 자문관으로 활동했으며, 그 후 이승만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1960년까지 줄곧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고 대변하며 해외에서 한국을 홍보하였던 인물이다.
이 책은 1942년부터 1960년까지 그와 이승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서신과 전보문,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왔던 일기, 그리고 당시 세계 주요 언론매체에 기고했던 글 등 역사적 원재료들을 시기 순으로 정리하고 배열하여 독자들을 해방 전인 1942년부터 해방, 건국, 6.25, 휴전협정, 4.19 등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이 되고 있는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듯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 대하여 같은 저자의 같은 책을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란 제목으로 번역출판한 적이 있는 박일영 씨가 직접 추천사를 써주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기도 하다. 접기

최근작 : <이승만 박사전>,<리승만 박사전>,<이승만의 대미투쟁 - 하권> … 총 19종 (모두보기)

한준석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최고회의 전문위원(1962-63년), 경제담당 비서관(1964-68년), 경제과학 심의회의 위원 겸 사무국장(1969년), 대일청구권 사절단장 경 공사(1970) 등을 지내면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함.

최근작 : <박정희, 한국경제를 살린 대통령>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편지·전보 등 원사료 중심으로 엮어진 한국 현대사의 결정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고 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라는 말이다. 지금 북한 동포들은 노예 상태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며 유족하게 살게 된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지켜냄으로써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도록 해준 위대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해방직후 1946년부터 북에선 이미 <인민위원회>란 이름의 공산정권을 수립, 토지개혁 등 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1948년 1월, 유엔은 한반도 전체에서 총선거를 실시, 독립국가 건국을 결의했으나 이미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과 그 하수인 김일성이 유엔선거감시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함으로써 남한만의 선거로 남한 단독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당시 김구 등 감상적 민족주의자들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결사반대했다. 당시 상황에서 <통일정부수립>이란 곧 소련지배화의 공산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유와 공산주의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결합될 수 없으므로 공산주의와의 타협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반대와 압력, 몰이해를 무릅쓰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꿈과 학식, 그리고 신념과 고집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독재는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켜낸 위대한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주한미군에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지도자, 건국의 영웅이었다.
이승만은 독재자도 아니었고 친미파도 아니었다. 그의 꿈은 국민 각자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나라의 독립과 자존, 자립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나라의 건설이었다.
그는 이러한 나라 건설을 방해하는 공산주의 세력과 단호하게 싸웠다. 그는 독재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이러한 목표를 위해 독재자라고 비난받는 것도 겁내지 않았다.
4·19 후 병원을 찾아가 다친 학생들에게 불의에 항거하는 그 용기를 칭찬해 주었고, 사저로 돌아간 후 담장너머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들을 보며 자기 꿈이 성취되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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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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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쟁이 미국 교수 눈에 비친 한국...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약속국의 위치와 그 속에서 이승만이 벌인 치열한 투쟁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
재미있는 것은 그 시대 우리가 아는 많은 독립토사들에 대한 로버트 교수의 인물묘사를 통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이 어떠한 위치에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아직 후미가 남았지만....이승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lee.siwon 2017-02-19 공감 (10) 댓글 (0)



초대 대통령이 우리나라처럼 비판받는 곳은 아마 없지 않을까. 참 안타까웠다. 그 시절에 대미투쟁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힘썼던 이승만을 기리며 읽었다. 다른사람이 말하는 이승만만 보고는 이승만을 정확히 꾀뚫을 수 없다.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징징징이 2015-01-23 공감 (15) 댓글 (0)





생각해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도 많고 그 외 다른 대통령들의 이야기도 많았는데,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이야기는 많이 못들어봤다.



학창시절 국사, 근현대사에서도 간략하게만 언급되고 말아서 왠지 모를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의문이 좀 해소되는 것 같다.



아니 의문이 해소된다기 보다도, 이렇게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대통령이 왜 이렇게 저평가 받고 있는지 이해가 안갈 지경이라는 점에서는 되려 의문이 더 커졌다.



당최 학교를 6년 + 3년 + 3년 다니면서 이승만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

그냥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였다.' 라는 식의 사실 하나만 배웠고 나머지는 그저 과 에 대한 이야기들 뿐...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했다는게 어떤 의미이며 그 안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듣질 못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역사관이며 교육 수준이라는 것이겟지.
gtk7518 2015-01-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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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우리가 언제나 바로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지식으로 배워온것 이상의 탐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외국서적과 많은 역사적 사료를 찾고 확인할수록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사람들의 인식속에서 회복되어야할 위대한 인물임을 깨닫습니다.
smilecat7 2014-02-24 공감 (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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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이 우리나라처럼 비판받는 곳은 아마 없지 않을까. 참 안타까웠다. 그 시절에 대미투쟁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힘썼던 이승만을 기리며 읽었다. 다른사람이 말하는 이승만만 보고는 이승만을 정확히 꾀뚫을 수 없다.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징징징이 2015-01-23 공감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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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과? 나는 학교에서 공에 대해 배운바가 없다. 이런 평가마저 못할 북한처럼 될 뻔 했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gtk7518 2015-01-23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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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곡된 사실이 너무나도 퍼져있다.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
medici 2015-01-23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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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찬양하려는 책이 아니다. 비록 독재자였지만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하고, 경제적 자유가 주어진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살게 해준 점은 칭찬받아야 할 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jungpurnn 2015-01-30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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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거나 객관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이승만의 공이 있고 과가 있어 공이 크면 과를 삭감해 주는 시장통 장사가 아닙니다. 역사는. 게다가 이승만은 사실 과오가 너무나 크기에 많지 않은 공과마저 평가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레논 2014-09-04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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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도대체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네요.....
단한발 2020-08-18 공감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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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이승만을 알고 싶다면
이승만에 매료된 개인비서의 책을 읽는 것보다
우남 이승만연구 책을 읽는걸 추천한다.

그 어떤 책보다 객관적이라 넘 객관적이라 가독성이 떨어질수도
(근거사료 등등의 분량에 눈이 돌아간다)

듣고 싶은게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게 낫고
美 胤 郞 2018-08-31 공감 (7) 댓글 (0)


마이리뷰


[마이리뷰] 이승만의 대미투쟁 - 상권

코쟁이 미국 교수 눈에 비친 한국...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약속국의 위치와 그 속에서 이승만이 벌인 치열한 투쟁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재미있는 것은 그 시대 우리가 아는 많은 독립토사들에 대한 로버트 교수의 인물묘사를 통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이 어떠한 위치에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아직 후미가 남았지만....이승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lee.siwon 2017-02-19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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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미국, 가까워보였지만 멀었던 관계

이승만이 친미주의자라고?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망쳤다고? 웃기는 소리다. '이승만과 대미투쟁'은 그러한 왜곡된 사실을 정면으로 깨버리는 용기있고 소신있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정책 입안자들과 이승만과의 대립투쟁을 벌여온 사실들에 관한 사료를 중심으로 이 책을 썼다.건국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기바란다.
medici 2015-01-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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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내용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도 많고 그 외 다른 대통령들의 이야기도 많았는데,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이야기는 많이 못들어봤다.



학창시절 국사, 근현대사에서도 간략하게만 언급되고 말아서 왠지 모를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의문이 좀 해소되는 것 같다.



아니 의문이 해소된다기 보다도, 이렇게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대통령이 왜 이렇게 저평가 받고 있는지 이해가 안갈 지경이라는 점에서는 되려 의문이 더 커졌다.



당최 학교를 6년 + 3년 + 3년 다니면서 이승만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

그냥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였다.' 라는 식의 사실 하나만 배웠고 나머지는 그저 과 에 대한 이야기들 뿐...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했다는게 어떤 의미이며 그 안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듣질 못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역사관이며 교육 수준이라는 것이겟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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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7518 2015-01-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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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T. 올리버의 <이승만의 대미투쟁 - 상/하권>(원제: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이 책은 1942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과 그의 정치적·외교적 고문이자 친구였던 로버트 T. 올리버(Robert T. Oliver) 교수가 주고받은 서신, 전보, 일기, 기고문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정세 기록이자 회고록이다.

상권은 태평양 전쟁 시기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한 외교 활동부터 해방 후 신탁통치 반대 운동,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이승만은 미 국무부의 친소적·현상유지적 태도와 대립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국가 창설을 위해 미국 정치권과 언론을 상대로 강경한 외교 투쟁을 벌인다.

하권은 6·21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협정 과정,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거쳐 제1공화국 종식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이승만은 미국이 강요하는 조기 휴전과 한반도 분단 고착화에 거세게 반발하며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파격적인 단독 행동을 감행한다. 이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경제·군사적 지원 약속을 이끌어내며 대한민국의 안보적 기반을 확립하는 과정이 올리버의 내부자적 시각에서 상세히 기술된다.

평론

<이승만의 대미투쟁>은 미·소 냉전이라는 거대한 세계사적 파도 속에서 약소국 지도자가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어떻게 국익을 극대화했는지를 입증하는 1차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노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이승만의 외교 노선을 단순한 친미(親美)가 아닌,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도 타협 없이 대립했던 <용미(用美)>이자 <대미 투쟁>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는 점에 있다. 미국 국무부와 군부의 현실타협적 정책에 맞서 한국의 자립과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쳤던 이승만의 지략과 고뇌가 당시의 비밀 문서와 서신을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약소국 지도자의 끈질긴 압박과 외교적 결단으로 쟁취한 산물임을 보여준다.

또한, 올리버 교수의 기록은 외부 관찰자의 객관적 시선과 내부 자문관의 밀착 기록이 결합되어 있어, 당시 미 정부 내의 복잡한 기류와 대한(對韓) 정책의 혼선을 일체화하여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다만, 저자인 올리버가 이승만의 오랜 고문이자 조력자였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내정적 한계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그리고 집권 후반기의 정치적 과오에 대해서는 옹호적이거나 온정적인 시각을 띤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술은 한미관계사의 핵심 이면을 가장 밀도 있게 파헤친 고전이며, 강대국 정치의 냉혹함 속에서 서구적 안목과 외교술로 국가의 안보적 기틀을 마련했던 한 인물의 통찰을 다각도로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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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대미투쟁> 상·하 —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미국에 저항한 약소국 지도자의 외교

로버트 T. 올리버 지음, 한준석 옮김
원제: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A Personal Narrative>

  1. 책의 성격과 저자의 위치

『이승만의 대미투쟁』은 1942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과 미국 정부의 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원서는 1978년 서울에서 출간되었으며, 제목에 붙은 ‘개인적 기록’이라는 표현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객관적인 제3자가 쓴 이승만 연구서라기보다, 이승만의 미국인 참모이자 오랜 협력자였던 로버트 T. 올리버가 자신의 경험과 자료를 토대로 쓴 정치적 증언록이다.

올리버는 미국의 수사학·연설학 교수였으며 1940년대부터 이승만의 연설문 작성, 미국 정치인 접촉, 언론홍보와 외교활동을 도왔다. 미국 국무부 문서에서도 그는 이승만의 미국 내 고문이자 대표자로 등록되어 있었음이 확인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연구자와 정치인의 관계가 아니었다. 이승만은 올리버에게 자신의 판단과 불만, 전략을 비교적 솔직하게 전달했다. 올리버는 이승만의 주장을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듬어 미국 정부와 여론에 전달했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전보, 메모와 외교문서가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있다. 한국어판의 소개도 이 책이 이승만의 고백적 기록과 올리버와의 서신 등 원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친밀성은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다. 독자는 이승만의 내면과 외교전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승만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위치에 서 있다.

  1. 1942년: 한국 독립을 미국의 전쟁목표로 만들기

책의 출발점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이다. 이승만은 당시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과 전쟁 중인 미국이 전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을 우려했고, 중국·소련·영국과의 관계도 고려했다. 미국 정책 담당자들에게 한국은 전쟁 수행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은 이에 맞서 한국 독립이 단순히 한 민족의 소망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패망한 뒤 한국이 독립하지 못하면 소련과 공산주의가 한반도로 진출할 것이며, 이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는 미국 정치인, 언론인, 종교계 인사들을 접촉하고 연설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올리버는 이 과정에서 이승만의 주장을 영어로 정리하고 미국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한국 독립운동과 미국 정치홍보가 결합된 특이한 협력관계였다.

올리버의 서술에서 이승만은 일찍부터 소련의 팽창과 한반도의 공산화를 예견한 선견자다. 실제로 이승만은 연합국이 소련과 협력하던 시기에도 소련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 패망 뒤 한반도가 강대국에 의해 분할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승만 이외의 독립운동 세력과 임시정부 내부의 갈등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여러 지도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립을 준비했지만, 올리버의 이야기에서는 이승만이 거의 유일하게 국제정세를 정확히 이해한 지도자로 나타난다.

  1. 해방과 미국 군정과의 갈등

1945년 일본이 패망했지만 한국은 즉시 통일 독립국가가 되지 못했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했다. 이승만은 미국으로부터 귀국했지만, 미국 국무부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미국 군정 안에서도 이승만을 유능한 반공 지도자로 보는 시각과 고집이 세고 통제하기 어려운 정치인으로 보는 시각이 함께 존재했다.

이승만은 신탁통치에 강하게 반대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한반도에 일정 기간 신탁통치를 실시할 가능성을 제시하자, 그는 이를 또 다른 외세지배로 규정했다. 반면 미국은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세우려 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이승만은 남한이라도 먼저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6년 정읍에서 발표한 이른바 ‘정읍 발언’은 분단정부를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리버는 이를 분단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북한에 공산정권이 형성되고 있던 현실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으로 해석한다.

이 책에서 이승만과 미국의 관계는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이승만은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했지만, 미국 군정의 정책이 한국의 독립과 반공국가 건설을 방해한다고 판단하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1946년 말 이승만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미소관계가 악화되고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한반도 정책을 바꾸었다. 한국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되었고, 남한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올리버는 이를 이승만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한다. 미국이 처음부터 대한민국 건국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이 미국 정책의 모순을 지적하고 끈질기게 압박하여 정부 수립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1. 대한민국 건국과 미국의 철군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이승만과 미국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미국은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군사비를 줄이려 했고, 한국의 전략적 가치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미군 철수가 북한의 남침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군을 충분히 무장시키고 미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승만이 북한을 공격하여 무력통일을 시도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따라서 한국군에 방어용 무기는 제공했지만 전차, 중포, 전투기와 같은 공격용 장비는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

1949년 미군의 주력부대가 철수했고, 1950년 6월 북한군이 남침했다. 올리버는 이 사건을 이승만의 경고가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한다. 미국이 한국을 방위선 밖에 둔 듯한 신호를 보냈고 한국군의 무장을 제한한 것이 북한과 소련의 오판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전 이승만 정부의 국내정치와 남북 간 무력충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38선에서는 남북 양측의 충돌이 계속되었고 이승만도 북진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군의 공격능력을 제한한 데에는 단순한 무관심뿐 아니라 전쟁 확대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도 있었다.

  1. 한국전쟁과 한미 갈등

1950년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유엔군을 중심으로 참전했다. 이승만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국가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 수행의 목표를 놓고 이승만과 미국은 계속 충돌했다.

이승만의 목표는 북한 정권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었다. 미국도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때 북진을 승인했지만, 중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의 목표를 원상회복과 휴전으로 바꾸었다. 미국은 전쟁이 중국 및 소련과의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승만은 38선 부근에서 전쟁을 끝내면 북한이 재무장하여 다시 침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휴전을 ‘민족의 사형선고’라고 보았다. 미국은 반대로 군사적 통일을 시도하면 수십만 명의 추가 희생이 발생하고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1953년 반공포로 석방이다. 휴전협상에서는 귀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과 중국 출신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큰 쟁점이었다. 이승만은 미국과 유엔군의 동의 없이 반공포로들을 석방했다.

미국 정부는 격분했다. 이승만이 휴전협상을 무너뜨리고 전쟁을 계속하려 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승만을 제거하거나 권력을 제한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당시 미국 언론도 이승만이 즉각적인 휴전의 성립을 방해했다고 보도했다.

올리버는 포로 석방을 무모한 행동이라기보다 계산된 외교적 승부수로 해석한다. 이승만은 미국이 한국의 협조 없이 안정적인 휴전체제를 만들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미국은 한국에 한미상호방위조약, 군사·경제원조와 한국군 증강을 약속했다.

이 해석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이승만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수 없었지만,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한국의 협조를 협상수단으로 활용했다. 약소국 지도자가 강대국의 전략적 필요를 이용해 안전보장을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포로 석방은 동맹국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린 위험한 행동이기도 했다. 휴전이 무산되었다면 전쟁은 장기화되고 더 많은 한국인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오직 외교적 승리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1. 휴전 이후의 ‘대미투쟁’

1953년 휴전 뒤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대통령이면서 동시에 미국 정책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휴전체제를 임시적인 것으로 보았고, 기회가 있다면 북진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면서도 이승만이 전쟁을 재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려 했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부 아래 두고, 경제·군사원조를 협상수단으로 사용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한국을 일본의 경제권에 다시 편입하려 한다고 의심했다. 미국은 냉전기 동아시아 질서에서 일본의 경제회복을 중시했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으며, 경제적 영향력을 통해 다시 한국을 지배하려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설정한 이른바 ‘평화선’도 일본과 미국의 반발을 불렀다. 미국은 한일관계 악화가 동아시아 반공전선에 해가 된다고 보았지만, 이승만은 어업자원과 영토주권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올리버는 이승만을 미국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은 민족주의적 지도자로 그린다. 그는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한국의 이해가 미국의 정책과 충돌하면 공개적으로 저항했다. 책의 한국어 제목인 ‘대미투쟁’은 이러한 관계를 강조한다.

  1.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문제

이 책의 가장 큰 한계는 이승만의 국내정치를 다루는 방식이다. 올리버는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적 가치에 헌신한 인물로 평가한다. 과거 그의 이승만 전기도 이승만을 민주주의와 동서양 문화를 결합하려 한 정치인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실제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바꾸고 야당과 언론을 억압했다.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진보당 사건, 조봉암 처형과 3·15 부정선거는 그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한계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제주 4·3과 여순사건,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도 건국과 국가수호라는 말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여순사건에서는 반란세력과 정부군 양쪽에서 폭력이 발생했고, 진압과정에서 광범위한 민간인 피해가 뒤따랐다.

1960년 부정선거에 항의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4월혁명은 단지 미국이 이승만을 버린 사건이 아니라, 한국 국민이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혁명이었다.

올리버는 이승만의 권위주의적 행동을 공산주의의 위협, 전쟁, 정치적 혼란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해하려 한다. 이러한 설명은 당시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만,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파괴의 책임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1. 책의 가치와 한계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이승만과 미국의 관계를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승만은 흔히 미국이 선택하고 지원한 친미 정치인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는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불신하고 끊임없이 압박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미국도 이승만을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했다. 미국은 그를 제거하고 싶을 만큼 불편해하면서도, 한국의 정치적 안정과 반공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와 협력해야 했다. 이승만 역시 미국 없이는 국가의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미국의 세계전략에 한국의 이익이 희생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책은 특히 서신과 전보를 통해 공식 외교문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승만의 감정과 판단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중 이승만과 올리버가 주고받은 편지는 오늘날의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인용된다.

그러나 올리버는 이승만의 협력자이자 홍보자였다. 그는 이승만의 주장을 미국인에게 전달했을 뿐 아니라, 이승만 정권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따라서 이 책을 독립적인 역사서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강조하는 ‘건국과 나라 수호’는 실제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에는 이승만뿐 아니라 독립운동가, 제헌의원, 관료, 시민과 수많은 사회세력이 참여했다. 국가수호도 대통령 개인의 결단만이 아니라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 유엔군의 참전과 국제적 지원으로 가능했다.

  1. 종합평가

『이승만의 대미투쟁』은 이승만을 미국의 꼭두각시로 보는 단순한 해석을 수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의 지원을 필요로 했지만,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미국의 반공전략과 한국의 독립·안보를 결합하면서도, 두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에는 미국을 압박하고 위협했다.

특히 남한 정부 수립, 미군 철수 반대, 한국전쟁기의 북진통일론,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은 이승만 외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약소국의 도덕적 호소만으로는 강대국을 움직일 수 없다고 보았다. 강대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고, 협조를 거부할 가능성까지 협상수단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때때로 성과를 거두었다. 대한민국은 국제적 승인을 얻었고, 한국전쟁에서 생존했으며, 미국과 방위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나 같은 외교방식은 매우 위험했다. 그의 북진통일론과 독단적 행동은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을 안고 있었고, 모든 양보를 배신으로 보는 태도는 타협의 공간을 좁혔다.

또한 대외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주장했던 이승만이 국내에서는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모순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외교적 자주성과 국내적 민주주의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에 저항했다고 해서 그의 권위주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승만을 찬양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반드시 읽을 가치가 있는 1차적 증언자료다. 다만 올리버의 해석을 그대로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미국 정부 문서, 이승만 비판자들의 기록, 한국전쟁과 국가폭력에 관한 연구와 함께 읽어야 한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이승만의 대미투쟁』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미국의 한반도 전략에 맞서 한국의 생존과 안전보장을 확보하려 했던 이승만의 외교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증언록이지만, 그의 가까운 참모가 쓴 책인 만큼 권위주의와 국가폭력의 책임을 축소하는 강한 옹호론적 편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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