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8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8회 이홍장 암살 미수와 시모노세키 조약

이홍장 암살 미수와 시모노세키 조약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8회 - YouTube

이홍장 암살 미수와 시모노세키 조약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8회
법률방송
19,217 views  Oct 15, 2025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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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뤼순과 웨이하이웨이를 함락하고 사실상 승기를 잡으면서 진행된 종전협상인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과정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과정은 승전국과 패전국이 평화협정을 어떻게 맺는가와 함께 새롭게 재편된 근대 국제 질서를 일본과 청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일본은 무엇을 얻었고, 청은 무엇을 잃었으며 이 과정은 또 어떤 역사적 의의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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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 시간입니다. 어 오늘은 그 드디어
청일 전쟁을 종결하는 어 시모노새끼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 대해서 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이 과정에서 어 이홍장이 일본으로 심어는
새끼로 건너가서 협상을 버리기 시작하는데 사실 협상이 굉장히 어
불리하게 어 당연히 일본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협상이
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일본의 과격군자가 이홍장을 암사를 시도를
합니다. 그래서이 흥장이 총을 막고 어 다행히 죽지는 않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서 일본이 입장을 확 바꿉니다. 자기 나라의 평화 협장을 하러 어 온
사람을 어쨌든 자국민이 암사를 한 거에 하려고 한 거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해하면서 어 오히려 그 평화 협장 체결을 더 빨리 어 하게 되는 그런
참 놀라운 사건이 또 뒤에 그 도사리고 있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해서 오늘 함께 어 말씀을 나누고 그리고 특히 처음으로
어 조손이 중국의 속방이 아님을 어
천명하게 되는 최초의 어 국제 조약인 어 시모노 새끼 조약의 내용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이홍장은 청일 전쟁 초기부터 어
자기가 일본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 아니면은 최소한 너무 힘든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 서양의 열강들한테
중제를 부탁을 합니다. 전쟁 안 일어나게 해 달라고. 어떻게서든지 일본 설득해서 전쟁 안 하도록 해
달라고. 그래서 특히 어 러시아의 그 부탁을 해서 러시아에서 상당히 열심히
뛰어보기도 하고 뭐 영국한테도 부탁을 했고 독일한테도 부탁을 해 봤고 그랬지만 결국은 아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고요. 그랬던
이홍장애이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계속해서 천군이지기 시작을 하니까
이번에는 이미 시작된 전쟁이지만 종전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외세들한테 서양 열강들한테 계속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
루슨이 합락이 되고 웨하이웨이까지 합락이 되기 시작하면서 특히 이제 루슨이 함락이 됐다라는 얘기는 곧 저
어 베이징 북경이 곧 일본한테 함락될 위기에 처가가 되는 거죠. 수도가.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아주 심각하게 어
협상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그 협상을 어떻게 제한을 하느냐에
대해서 사실 중국은 그것도 어쩔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국제법에
의해서 이런 어 지구 있는 편에서 어떻게 평화 협정을 맺을 수 맺는 그
협상을 시작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실수를 합니다. 어,
우선 청조정이 해 보는 것이 독일 사람을 보냅니다. 구스타
데트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이 이 사람이 누구냐면은 청 해관을 맡 맡은
영국인 하트 밑에서 어 그 세관 업무를 돕고 있었던 대트인 독일
사람이 있는데이 독일 사람을 이홍장의 특사로 해서 일본에 가서
협상을 해 달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11월 26일 자 자신의 비서
그다음에 런던 타임즈의 기자 한 사람 중국인 작가 한 사람 어 중국인 어
하인 두 명하고 고배에 도착을 합니다. 이홍장이 이또 히로부미한테
보내는 친서를 한 통을 갖고서 이제 온 거죠. 그러니까 이용장하고이는
이미 1885년 갑옷 경장 직후에 텐진 조약을 맺을
때 이또가 티엔진에 가서 이홍장을 만나서 그때 조약을 텐진 협약을 그
성사시킨 적이 있었죠.이 과정에서 이제 이하고 어 이홍장은 아주 서로가
잘 아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이때에 이홍장이 데트링이라는 사람을 통해
가지고 어 친서를 보내서 입도를 만나도록 합니다. 입도가 만나 주지도 않습니다. 협상은
이렇게 하는게 아니다. 지금 개인적인 친서를 갖고 와서이 국가에 간의
전쟁을 어 종절시키는 협상을 시작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면서 당신은 공식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들 정부
사람이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돌려버립니다. 이때 이제 이도가 이도가 무스한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만일 데트링이 우리 측으로부터 여하한 긍정적인 신호를 밟고 중국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앞으로의 협상에 자신이나 로버트 하트가 전권 대사로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외국인을 협상 정권 대사로 임명하는 것은 무조건 거절해야 된다. 왜?
다른 열광들이 개입할 여지를 줄 수가 있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라고 합니다. 청하고 일본 간의
평화 협상의 외세를 개입시키는 결과만 가져온다. 외무 대신한테 얘기를함으로써 전혀 어 그 못 못
만나게 합니다. 그래서 대트을 돌려보냅니다. 1894년
그죠. 12월 21일. 그러니까는 그 전쟁에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에
청정이 대트이 이제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오니까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우리 청조정의 공식 어
협상단을 보내겠다 그러면서 당시의 총리암은 대신 겸 호부좌시랑
장음환을 임명을 하고 또 호남순무 소렴으로 그
두 사람을 협상단으로 입력을 합니다. 강음을
어 대표단으로 협상단으로 임명한 이유는 청조종이 무츠네미스 일본 외무
대신이 워싱턴 일본 공사관에서
공 근무하고 있을 때 그때 장음무하는 청의 공사로 워싱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지 중국에서는 그런 친분을 어 이용을 하고 싶어서
장우만을 임명을 한 거죠. 근데 그 장음만이 임명됐다는 얘기를 듣더니
무스가 일본에 와 있는 영국 공사한테 뭐라 그러냐면 그 장만이라는 사람은
영어 한 마디도 못 하고 중국어밖에 못 하고 아무런 중국 정부내에서
영향도 없는 인물이다라고 벌써 알고 있으면서 주일 영국 공사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그 형편 없는 임무를 어 또 중국
정부가 그 협상단으로 임명했는지를 일본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런데이
두 사람을 이제 임명을 해 놓고 청정부에서는이 평화 협상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되는
걸지 모르니까 그 당시 주청 국공사 댄비를 댄비라는 사람을 아예 초청을
해서 불러서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준비를 하는 건지를 다 물어보고 이제
자문을 구합니다. 그래서 덴비가 모든 국제법에 준해서 어떻게 어떻게
하라는 것을 다 알려줍니다. 덴비가 가장 중요시 했고 수없이 강조했던게
뭐냐면 협상단이 갔을 때 그 협상단 대표라는 사람은 전권 대사여야 된다.
그 자리에서 협상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게 전권 대사입니다. 즉 무슨 얘기를 하다가 협상을 하다가
어우 이거는 상부에 물어봐야 됩니다. 이러면은 전권 대사 대사가 아니죠.
덴비는 정확히 알았던게 대트 같은 사람을 보내면 외국 사람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입장에서
대트링이 절대로 전권을 갖고 온 사람일 수가 없죠. 1본 측에서는 이도가 이도가 전권을 갖고 있죠.
자기가 모든 것을 협상을 해서 그 자리에서 이건 좋다. 이건 안 된다. 권리가
권한이 있는 거죠. 그게 전권 대사입니다. 그러니까 덴는 당연히 이렇게 중요한 전쟁에
이렇게 중요한 협상을 해야 되는 거면 협정을 맺을 거면은 전권을 의받았다라는 거를 뭐 황제의 측령이
됐든 어 총리 아문의 명령이 됐든 뭐든지 분명하게
일본 측이 봤을 때 아이 사람은 전권 대사구나라는 거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의임장을 가지고 가라고 이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장만이 일본에 건너가서 2월 1일 날 회담이
열립니다.이 회담에서는 바로 24년 전에 어비스마르크가
프로이젠 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 그 프랑스하고 베
베르사이 조약을 체계하는데 그때부터 만들어진 관행이 뭐냐하면은
협상의 언어는 승전국의 언어로 한다. 그러니까 그때는 독일이 승전을
했으니까이 프러시아가 이겼으니까 독일어로 이제 협상을 했겠죠. 이런 관행을 일본은 다 알고 있는 거고
이제 처음은 몰랐던 거죠. 그 그래서 일본이이긴 전쟁이니까 그래서 일본말로
하겠다고 이제 딱 선포를 하고 협상을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딱 그렇게 되고 나니까 입도하고 무스는 곧바로 영어로 협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중국 측에서 일본말을 그렇게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국제
관행에 원칙은 확실하게 수립해서 승전국의 언어 일본말로 한다라고
했다가 상당히 못 하니까 그럼 영어로 한다. 청측에서는 오정방 우팡이라는
영어를 잘하는 통역을 데려왔기 때문에 영어로 협상을 시작을 합니다. 협상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하는게 신임장을 교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이는
이제 장음환이 갖고 온 광서제의 신임장을 임명장을 받아서 그걸 이제
검토합니다. 그리고 무츠는 그때에 천왕으로부터 받은 신임장을 이제 그
중국측에 청측에 넘겨 주는 거죠. 근데 이또가 그
신임장을 쭉 보더니 이거는 전권 대사로 임명한다라는
광서제의 측량만 있는 것이지 제대로 된 전권을
위임하는 위임장이 아니라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곧바로이는 협상난 떠나라.
일본 당신들은 아무런 자격이 없이 왔다. 당장 떠나라. 그러니까 이제
첫 번째 네트링은 아예 받아주지 만나주지도 않고 두 번째 협상단이 왔는데 자격이 부족하다 그러면서 또
내칩니다. 당장 일본을 떠나라 그러니까 이제 장환이랑 우리는
청황제 우리 황제님의 측령이 없이는 일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못
돌아갑니다. 그랬더니 어 그때 이도가
장어 보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베이징에 전문을 보내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 베이징으로부터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다. 이제 여기서 떠난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러면서 아주 매장하게 어 내칩니다.
그런데 그 협상단이 이제 어쩔 수 없이
장음환이랑 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때이가 영어 통역으로 있었던 온
청의 우팡 우정방을 남으라고 그러면서 귓ड़을 해 줍니다.
청이 제대로 된 신임장을 갖춘 전권 대사를 보내면은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천과 협상을 하겠다. 그리고이 말을 이홍장한테 전해 달라.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베이징 사람들 투유의 관관습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른 나라들에는 적용할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중국이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고래의 관습들을 고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를 바란다.
철저하게 계속해서 가르치는 거죠. 연합함대 사령관 이또 스케웃기가
국경함대 그 사령관 정여창한테 편지를 보내면서도 일본이 이렇게 앞서 나갔고
당신들이 이래서 뒤졌고 이런 얘기가 계속하지 않습니까? 여기에서도 또이는
우방한테 당신들 지금 자꾸 옛날 고래의 관습대로 뭐를 하려 그러고
아직도 새로운 국제법과 관행을 안 따르려 그러는데 이래 갖고 절대 안
된다. 그것을 철저하게 따르고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전권을 갖고 오는
사람이 오면은 우리가 협상에 임하겠다. 예를 들어서 이홍장이나
공친왕 같은 최고의 지위를 갖고 있고 전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오면은
협상을 하겠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2차 협상에도 실패하고 중국의
협상단이 되돌아갑니다. 강음은 결국은 쫓겨나서 나가기로 가서 이제
중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같이 왔던 미국 사람 포스트라는 미국 사람한테 하소연을 합니다. 뭐라
그러냐면은이 또 히로부이가 맞았다. 우리가 제대로 된 전권을 의하는 심인장을 못 갖고
왔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아 그래서 뭐냐 그랬더니
황제가 임명장이라고 너 전권 대사라고 임명장 임명을 한다고 임명장을 써
줬는데 거기다 대고 누가 폐하 황제 폐하 이거는 임명장에
불과합니다. 저를 전권 대사로 임명하는 신임장을 따로 만들어
주십시오.이 말을 해야 되는데 그 말을 감히 누가 하겠냐라는 거죠.
그래서 알면서도 알면서도 못 받아왔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귀국한 장음하고 소염은 해임돼 버립니다. 그리고
이도의 제한대로 이홍장이 드디어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전권 대사로
임명이 됩니다. 참 역설입니다. 이홍장은 사실은 북양군이
계속해서지면서 그리고 결국은 북양 함대까지 규멸되면서
모든 권리를 가장 큰 명예였던 황매계도 뺏기고 전쟁의 폐전의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고 물러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이홍장밖에이 협상을 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이홍장이야말로이 전쟁이 부지없는 전쟁이라는 거를 제일 먼저
알았던 사람이고 처음부터 막아보려던 사람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자기밖에 없으니까 수행을 해서 그래서 자기가
예측한 대로 졌는데 결국은 그 지구난 결과를 가지고 평화 협정을 맺어야
되는 그 협상을 하는 것조차도 자신일 수밖에 어 없었습니다. 이홍장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걸출했다라는 것도 어 보여주는 얘기 하지만은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 있었던 일본이 갖고 있었던 그 수많은 인재들 근대화를
어떻게 이뤄야 되고이 전략과 전술과 모든 거를 다 알고 있고 공유하는
그러한 엘리트 층이 두un해 있는데 비해서 청의 입장을 국제무대에서
대변할 수 있는 일 인물이 이홍장 딱 한 사람 개인으로 봐서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면서도 중국으로서는 참 어 서울픈 어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용장은 한족입니다. 분명히 안희성 출신 한족입니다. 할림학사고요.
최고의 과거에 쳐서 최고의 지위에 도달한 사람이고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한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수 있었던 건 정말 그 놀라운
카리즈마, 머리, 놀라운 리더십 이런 것 때문이었던 거죠. 그 당시에 그
퍼스터라는 그 미국 외교관이 이홍장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는
7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상당한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였다. 당당한 신체, 180cm가 넘는 키, 모두를
압도하는 분위기. 꽃한 자세와 튼튼한 몸, 검고 날카로운 눈빛, 강인한 인격을
보여주는 힘이 있는 얼굴선은 그 어떤 외국인도 압도하였다. 부드럽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찬란한 다이아몬드와 공작의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는 자랑이요 일본인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에 이용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신체 조건이 됐든 그
지성이 됐든 여기서 말하는 그야말 옷입는 패션이 됐든 뭐 하나가 상대방을 압도하지 않는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실 어 그 이홍장이 유럽 순방길에 올라서 갔을 때 독일에
가서 비즈마르크랑 영국에 가서 어 거기에 있는 총리 대신들이랑 다
만나서 같이 사진 찍고 그랬을 그럴 때마다 서양 사람들은 그 이홍장하고
같이 사진 찍고 이러는 것이 진짜 지금 무슨 아이돌 어 스타랑 찍는 거
같이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참 이장이 어 대단한 인물이었다.
놀라운 카리즈마를 갖고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던 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어 2월 16일
청이 드디어 미국을 통해서 일본한테 정전합니다. 이홍장은 평화 협정
협상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전권을 분명히 갖고 간다라는 거를
전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특히 상황에 따라서 본인이 알아서 다 모든
걸 할 수 있다라는 규정까지 그 임명장에다 넣도록 하겠다 그러면서
1번이 알았다 그러면 어장을 보내라 이렇게 결정이 내려집니다. 이용은
정권대서에 임명된지 3주 만에 일본으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일본측은 이용장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그
2월 18일 이전에는 시원새끼 시몬의 새끼에 도착하지 말아라. 이때 만주하고 대만에서 아직도 작전을 하고
있던 전쟁을 수행하고 일본에 시간을 좀 벌기 위한 어 그런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사실 이제 이홍장을 맞이하기 위한 어 준비를 어 그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용장은 3월 19일 결국 33명의
공식 수행원과 90명의 하인을 대동하고 심원의 새끼에 도착을
합니다. 그 수행원 중에는 두 명의 전직 공사. 그다음에 어 1 프랑스를
하는 비서 네명 통역사 힐경사 호위부대 주방장 여러 명 최고급
감학꾼까지도 데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조카이자 양자인 이경방 어 그리고
이홍장 집안의 비소로 오랫동안 일하고 있던 미국인 패틱어도
동행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거대한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에 도착합니다.
어 이홍장 일행은 독일 국적의 증기선 두 쪽에 나누어서 어 시원의 새계 입항을 하는데 그 협상단이 머물 수
있도록 배를 개조를 또 합니다. 그래서 협상단이 원래는 배에서
있으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일본측은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일본측은
중국의 대표단이 묵을 수 있 묶도록 하기 위해서 인접사라는
절을 어 불교 사차를 완전히 중국식으로 개조를 합니다. 이홍장
중국 일행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그다음에 이홍장을 대이 대동하고 온
외국인들은 먹을 수 있도록 시몬세게 있는 유일한 양식을 또 내줍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일본은 이용장 맞을 준비를 합니다. 회담 장소는 순반로
어 춘복로라는 식당을 개조한 건물을 이용합니다.이 건물은 아직도 그 기념관으로 어 남아 있어서 관람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그렇게 꾸며 놓고 있습니다. 협상은 3월 20일 날
이용이 도착한 날 오후에 모츠 일본 외모 대신이 가서 우리 측에서는 자기
자신 모수하고 이도 효로금이 전권대서로 임명됐다라는 거를 알립니다. 그랬더니 이용이 그
자리에서 그럼 우리 빨리 회담하는 날짜를 잡자. 무츠는 그러면 다 바로
다음 날인 3월 20일 오후 3시에 협상을 시작하자. 이렇게 해 버립니다. 그래서 다음날 곧바로
협상에 들어갑니다. 협상은 영어로 진행이 되고 그 이노의 카츠노스케라는
일본측 통역과 이홍장의 비서 나풍로 회담 내용을 이제 통역을 합니다.
고경방도 다시 와서 옆에서 그 영어를 통역을 거두었고이는
어 본인이 중간중간에 또 영어로 또 직접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이때에
그 통역을 하던 러북록하고 이또가 서로가 아는 사이입니다. 나풍록도 외국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이또하고 만난 겁니다.이 이 나폭록은 1873년에
정부 장학생으로 외국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외국 유학을 다녀오느라고 과거 공부를 못
했고 과거 급제를 못 합니다. 그러니까 청에서는 과거 급제를 못 하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제 안
되는 거죠. 외국을 많이 배우고 왔지만 완전히 썩고 있었습니다.
이또가 그래서 오랜만에 본 뭐 몇십년 만에 봤겠죠. 나풍록한테
왜 서양의 문물을 도입하지 못하고 이렇게 약해 빠진 나라가 됐냐라고
나풍록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나풍록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보십시오.
젊은 시절 우리는 학생으로 서로 알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당신은 당신 나라의 총리 대신이요
나는 내 나라의 통역사입니다. 이것이
일본과 청나라 두 나라의 명함을 운명을 완전히 가르는 거죠. 인재를
그 능력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건적인 전근대적인 어 차별대 근거한
제도에 의해서 선택하는 중국하고는 아무리 숫자가 많고 아무리 자원이
풍부하고 땅덩어리가 넓더라도 일본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협상이 이제 시작이 됩니다.이 이 시모노 새끼 조약 협상 과정에서
이홍장하고 이또가 나누는 대화. 그 대화는이 동아시아의 문명 대전환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중화질서 일본이 주도하는 근대 질서로 넘어가는
그 모습. 중국에 쓰러지고 있는 문명을 대변하는게 이홍장이고
새로 부상하는이 일본의 근대문명을 대변하는게 이돈인데 궁극적으로 그
양국의 국력이 뒷받침하고 있는 그 대화의 내용이 너무나 흥미진합니다.
그 일단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홍장이 먼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아시아에서 우리 두 나라가 가장 가깝고 또 글이 같습니다. 즉 한문이
같습니다라는 뜻이죠. 최근에 잠시 다투는데 이것은 서로의 이로움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계속해서 원수 지간으로 지내면
우리에게 큰 해가 될 것이며 일본도 결코 이롭지 못합니다. 서양 사정을
보면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웃 나라와는 우호적으로 지냅니다. 우리 두 나라도 서양 사정을 참고하여
아시아의 평화를 이륙합시다.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면 아시아 황인종이 유럽
백인종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홍장은 이제 인종주의
카드를내는 거죠. 지금 우리가 싸울게 중요한게 아니라 사실은 뭐냐? 이게
서세 동점 즉 서양의 백인종과 황인종의 싸움이지 않느냐 이제 이렇게
어 얘기를 슬쩍 꺼낸 겁니다. 그래서 서로가 협조를 해야 된다. 즉 일본이
너무 아는 거를이 평화 협정을 위해서 청월부터 요구해서 안 될 것이다.
이제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이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중당의 말씀이 내 생각과 같습니다. 그러나 10년 전에
즉 1885년 텐진에서 만나서 텐진 조약을 체결할 당시 내가 중당에게
권한 바 있습니다만 어찌하여 오늘날까지 정치를 한 가지도 개혁하지
못했습니까? 그랬더니 이홍장이 이럽니다. 귀대신은
저와 만난 후 귀국에 좋지 않은 제도를 일제히 고쳐서 오늘과 같이 발전했으니 진실로 부럽습니다. 우리
천국은 과거의 제도에 젖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10여년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정말로 잃어버린 10년이었습니다.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1884년에서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 그 10년은 조선하고 청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었고 일본에게는 완전히 나라를 탈바꿈시켜서
본 국가를 근대 국가로 만들어 버린 10년이었습니다. 이용장이
이하고 무스의 나이를 묻습니다. 그랬더니 이또가 나는 55세, 무추는
52세.라고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랬더니 이홍장이 이렇게 다
답합니다. 나는 올해 73세요. 귀대신은 연부 역강하여 나라를
하면서도 편안한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또가 하소연비슷하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일본 국민은 천국 국민보다 다스리기가 더 어렵고 또
의회가 중간에 있어 처신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 사실이 좀 뭐냐면 의회 정치를
하기 위해서 맨날 야당 공격을 막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신문이나 여론으로부터 언론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서 사실 의회주의를 한다는게 얼마나 힘든다라는 걸 입펀 주의를 한다는게 얼마나 힘드라는 거를
이제 은연 중에 자랑을 하면서도 사실은 실제 고충을 얘기하는 어 것도
있습니다. 이러면서 우선 휴전 협정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선 휴전 협정을
하고 그 휴전 기간 동안에 이제 계속 연구이 갈 평화 협정을 또
협상을 해서 맺는 거죠. 그러면 조건 1번 보고 1번한테 이제 청의 그럼 휴전을 하기 위한 조건이 뭐냐
그랬더니 1번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첫째 1번은 따쿠코 포대 티엔진 산하관 그리고이 세 도시를
둘러싼 성각을 모두 점령한다. 2.이 세 도시의 청구는 모두 항복하고
무기와 보급품을 일본측에 양도한다. 3. 일본군은 텐진과 산하관을
연결하는 철도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다. 4. 휴전 기간 동안 청은
일본군의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5. 만일 청측이 이러한 조건 중 하나라도
거부한다면 청측의 제한을 제시해야 한다. 일본측은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 이렇게 해 보입니다. 그랬더니 이용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각박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강화 조건은 휴전을 논의할 때처럼 각박하게 처리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변함없이 각박하게 하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니 귀 대신은 천하 대세를 깊이 생각하여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용장이 여러 가지로 하소연을 합니다. 지금이
텐진과 여기는 내가 직례 총독으로 있는 내 관할인데 여기에 당신들이
요구하는이 모든 조건을 주면 나는 어떻게 되고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라고 하서연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용장이 본국에다가 전보를 칩니다. 지금 일본에선 3군을 보내서
그 병력은 산하관 텐진 그렇죠. 따쿠 텐진에 있는 따쿠코니까 거기에 이제
군대를 어 보낼 것이다. 어 그러면 그러기 때문에 빨리 방어 준비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일본이 또 세부대 그니까 사실 3군을 그렇죠. 1군과
2군을 파견해서 이제 루하고 외하에까지 다 점령을 했습니다.
원래는 3군까지 동원을 해서 그 3군은 티엔진으로 보내서 곧바로
베이징으로 보내기로 지금 돼 있어서 3군을 사실은 양성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이 전보를 받은
광서제하고 대신들 서태훈은 아주 경악을 합니다. 하두 일본측이 강한
강화 조약이죠. 잠깐 휴전하는 거죠. 그 조약을 내거니까 청이 그걸 어쩔
줄 몰라 갖고 열강들한테 이제 또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열강이 그러지 말고 그러면
아예 그냥 강화조약으로 가라. 평화 협정으로 그냥가 버려라. 추전 따로 하고 강화협 평화 협정하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평화 협정 강화 협정으로 가라. 어 그 전문을 받고서 이홍장이
다시 3월 24일 날 협상을 속개합니다. 그동안에 했던 휴전
이거에 대해서 다 처리하고 다시 한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해서
이홍장이 비망록을 건냅니다. 그랬더니 이또가 그 비록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중당이 일본으로 오기 전에 이미 귀국에서 진심으로 강화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합니다.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 해외에 나갈
형편이 못 되는데 형세가 이처럼 급한데다가 내가 귀대신과 친분이 있다 해서 우리 정부에서 특별히 나를 보내
천리길이 멀다고 달려왔으니 우리나라의 성인은 충분히 짐작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랬더니 이도가 답합니다. 우리가 의논한 일은 한 번 결정한 후에는
확실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귀국은 예전부터 외국과의 교섭에서 약속한
것을 시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일본 정부는
귀국이 약속한 사안을 반드시 이행할 수 있도록 확실한 조치를 위할 것을
나에게 명하셨습니다. 귀국은이 뜻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니까 자꾸
굉장히 강한 조건을 협상 조건을 내거는 이유가 중국은 어떤 협정도
약속을 해 놓고 나서는 지키지 않는 그런 전례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걸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 철도를 자기네가 장악을 해야 되고 그 주둔 비용을 청이 돼야 돼 등등등
이런 거를 내걸 수밖에 없다라고 이제 입도가 설명을 하는 거죠. 3월 24일 날 협상은 오후 4시 반쯤
끝이 납니다. 협상이 끝나고 이흥장은 일본신 가마 카고를 타고 숙소인
인조지로 이제 향합니다. 그 가마가 구경꾼 사이를 해치고 가는데
김모노를 입은 그리고 머리는 산발을 얻는 남자가 뛰어들면서 이용장 얼굴에
권총을 쏩니다. 저격범이 한 발을 쏘고 난 다음에 두 번째 발을 쏘으려고 그러는데 그때 경찰들이 어
달려들어서 저격범을 제제어를 합니다. 잡습니다. 이홍장은 얼굴에 총을
맞았는데 침착하게 앉아서 가꾼한테 손수건을 달라 그래서 흐른 얼굴에서
흐른 피를 막으면서 그 그대로 감마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서 자기가 내려서
걸어서 숙소로 들어갑니다. 저격범은 혼에서 온 고야마 더러라는
친구인데 대주지의 아들로서 아주 돈이 많았습니다. 부잣집 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다 제 개의 의숙에서 입학을 하지만 곧바로 뭐 이제 향락에 빠져서
그 보내준 그 학자금 다 탕진을 하고 이제 빛에 빚에나 빠지고 이제 그런
삶에 빠져 버리는 거죠. 그래서 결국 아버지가 용돈을 끌어버리니까 이제 전 여기저기 어 전전을 하다가 자기
말로는 나중에 이홍장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동양의 표
형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이장을 제거하기로 결심을
했다. 이렇게 이제 증언을 합니다. 그래서 어 모든 지금 극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다 중국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하고
프랑스가 전쟁 일으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이고 다까모리가 서남 전쟁
그렇죠. 사스마 그 사무라이의 반란을 일으킨 것도 다 중국 다시 돌리면서
예를 들어서 청일 전쟁이 시작되니까 대본영을 도쿄에서 시로시마로 옮길
때에 그때의 천왕이 그 시로시마로이 옮기게 된 거. 이것도 다 이용장
때입니다. 그러면서 그 얘기를 할 때는 막 그 그 충정심을 못 이겨서 목아 울었다고
또 합니다. 전쟁을 하면서 일본 군인들이 잡혀서 잔인하게 고문을 당한 거 이제 이런 거를 다 자기가 이용을
죽임으로써 복수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머리를 길게 길른 이후도 중국인으로 변장해서 중국인으로
가장을 해서 중국으로 건너가서 이장을 암살를 하려고 그랬는데 마침 이장이 시원 새끼로 평화 협상화를 하기
위해서 건너온다. 그래서 아 때는 이때다. 그러고는 아버지한테 다시 고향에 찾아가서 아버지 저 개과
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속아서 또 기뻐서 막대한 돈을 또 줬답니다.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총도 사고 옷도 새 옷을 사서 입고서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24일 이또 저 이홍장을 저격을 하는
겁니다. 이홍장은 왼쪽 눈에 2cm쯤에 총알이 바뀝니다. 이홍장이 대동하고 온
의사들은 수술을 시술을 하지 못합니다. 탄나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다음날 일본 의사들이 또 와서 다 그
도착해서 치료를 하려고 그러지만 그때 일본인들을 가리키려고 와 있던 독일인
의사 스크리바라는 박사가 있었는데이 당장 생명이 지적 수 일단 놔드라는
조언에 의해서 수술을 하지 않도록 않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용장은
73세 고령인데도 2주 만에 회복을 합니다.
이용은요. 저격을 당하고 숙소에 도착해서 1번측 전권 대사한테
이제 쪽지를 보냈는데 거기서 갑자기 의회일을 당하여 다음날 아침에
예정되어 있던 회담에 어 자기는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에이 경방을
통해서 나한테 좀 전해 달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일본 측에서 이제 난리가
납니다. 지천왕 본인이 내가 대신들 전원이 서명한
측령을 이홍장에게 보내서이 사건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이또와 무수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용장의 인조지 숙소로 찾아가서
유감과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다음날에도 공식적인 서신을 또 보내서
위로하고 어 결국 3월 26일 날 어 이장은 거기에 돼서 위로에 감사한다는
답신을 또 보냅니다. 메이지는 경로하면서 어 두 명의 고참 군위관들을 시원한
새끼로 당장 보내서 이용장을 치료하도록 합니다. 천하의 황후는
자기가 손수 만든 붕대 그리고 자기의 간호사들을 심어의 새끼로 보냅니다.
메이지는 그리고 측량을 반포합니다. 천국이 비록 우리와 전쟁을 멈추지는
않았으나 지체 높은 대신을 우리나라에 파송하여 화친을 의논할 때 우리도
전권 대신을 임명하여 회의하도록 했다. 마땅히 국제 관리에 따라 천국
사신을 우대해야 국가 체면에 합당한 것이었다. 짐이 이미 특별 명령을
여러 번 내려 문무 관원으로 하여금 화친과 관련한 사물을 잘 처리하도록
했는데 불법한 흉도가 천국 대신을 저격하여 짐의 근심이 끝이 없다. 그
죄인은 엄한 법률로 다스릴 것이며 특별히 명을 내려 관민에게 다시 한번
경계하니 내 뜻을 각별히 시행하여 나라의 영광을 손상되게 하지 말라.이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일본의 모든 언론 내체와 일본 사람들은 전부 다
비홍장을 아주 노해한 중국 사람으로 그렇게 조롱하면서 노래까지도 어 만나
만들만 만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암살 시도가 있고 난 다음부터는 일본 전체
여론이 동정 여론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의회, 정당, 언론, 일반
대중으로부터 수천통의 위로 편지가 답재를 하고 숙소의 전국으로 전국에서
선물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무츠 무네미스
외무 대시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7은 일청 양국이
개전한 일에 우리나라의 각 신문들은 물론이고 공적인 모임이든 사적인
모임이든간에 사람들만 모이면 천국 관민들의 단점을 혹평하거나 욕하고
꾸짖으며 비방하고 나아가서는 이홍장의 신분에 대해서도 듣기 어려울 정도의
악설을 내뱉던 자들이 이홍장이 조환을 당하고 나서부터는 그에 대한 애석함을
표하는 언행이 거의 아첨하는 말에 속할 정도로 칭찬의 칭찬을 거듭하 하는
지나칠 만큼의 말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홍장의 지난날의 공적을
열거하여 동방의 장례는 이홍장의 생사에 달려 있느냐 말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이홍장의 조환을 애통해야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외래적인 비난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전승의 열기로 들떠 있고 광희로 물드려져 있던 사회는 마치 초상집에
슬픔에 빠진 것처럼 되었다. 일본은요 정말 최면의 나라입니다. 이홍장 암살
시도로 국격이 실출될 것을 저렇게 온 국민이 염려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렇게 되면은 천국이 서양 열강들의 동정심을 살
것이다. 그러면은 일본이 강화 협정 협상을 하는데 분리해 줄 수밖에
없다.이 점을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츠는 이또한테
특의 조치가 필요하다. 미장이 요청한 휴전 협정의 모든 안을 무조건 받아들이자 그럽니다. 그래서 이또가
그 그러마 했더니 군부가 반대를 하고 있 합니다. 군부의 입장에서는 지금
자기네가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는 거고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고 있는데 지금 이용장의 요구들을 들어 줄 수
없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이는 곧바로 히슈마로 가서 26일 대본용
회의를 소집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도가 이렇게 대본용을 설득을 합니다. 우리가 연전 연성을 할 수
있었던 거 왜 할 수 있었냐? 서구 열강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청은 처음부터 서구 열강의 개입을 요청하지 않았느냐? 다행히
열강들이 아무도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이 불행한 사태로 청이 또다시
서행의 열강의 개입을 요청하 핑계가 분명히 생겼고 실제로 그럴 여지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런
빌미를 줘서 안 되기 때문에도 이용장에 요청을 들어 줘야 된다. 그러면서 결국은 대번영이 그렇게
하자. 그래서 야마가다리 또모가 급화됩니다.
어디로? 웨이하이웨이거 로션으로 급화돼서 거기에 있는 일본군을
설득을 합니다. 이거는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해야 된다라고 설득을
해서 이홍장의 조건들을 요건 요구 사항들을 휴전 협정을 위해서 들어 줄
것을 동의를 하고이 또는 내용을 가지고 천왕의 제가를 받아냅니다.
3월 27일 루스는 천왕의 휴전안을 제거했다라는 거를 들고서 그리고 이홍장을 찾아갑니다.
이홍장은 왼쪽 눈에 붕대를 감은 채 그 얘기를 듣습니다. 그 휴전 안에
서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본 천왕폐하는 불행한 사태로 인하여
강화 조약을 위한 협상이 중단되었음을 고려하여 제국의 강화조약 협상 전권
대사들에게 임시 휴전에 합의할 것을 지시하였다. 일으켜집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이노웨아 대화중장은 휴전 제한을 받아들입니다. 휴전
협정은 3월 30일 날 조인이 되고 그날부터 3주간 모든 육군 해군은
휴전에 들어가 기록합니다. 이장은 곧바로 어이어서
강화 협상 이제 진짜 평화 협상 시장할 것을 이번 축에 전합니다. 자 그 평화 협정 그 강화 협상 협정이
바로 심어는 새끼 조약입니다. 그런데 4월 1일 일본은 이홍장에게
강화조약 조건을 제시합니다. 조건은 가혹했습니다. 조선을 독립구로 인정한다. 1번에게
펑티엔 봉천 그러니까 요동반도의 남쪽 대만 타완 펑제도 그거를 한량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전장 전쟁 배상금으로 3억량 450만행을
낼 것. 그리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상인들한테 축 저 특를 줄 것을
요청을 합니다. 이용장이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제가 지난 반세기 동안 조국을 위해 봉사해
왔다는 점을 얘기해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의 생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임무는 아마 폐하와 백성들에게 봉사하도록 내게 허용된 마지막 중요
임무일 것입니다. 우리가 대표하는 백성과 정부의 지속적인 평화와 우회를 가져 줄 수 있는 그런 협상을
도주라는 것이 저의 간절한 영원이자 가장 큰 발람입니다. 우리는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위대한 두 민족의 이익과 장례 번영을 수호하기 위하여 정치인으로서 가장
고귀한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수세기에 걸친 두 민족의 운명과 행복이 지금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라면서 너무나 가혹하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4월 6일 이도가 회를 합니다. 이제
대중국 흠차 정권 대신이 제시한 비망록을 검토하고 대일본 정권 변리 대신은 그 내용이 강화조약의 조건을
제거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중국 제국이 처한 국내 어려움을 상세히 설명한 것에 국한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미록은 대1번 전권 별리 대신이 제출한 조약 초안에
대한 회신으로 접수될 수 없을 뿐도로 대중국 흠처 정권 대신의 발람이나
요구를 분명하게 포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처한
국내 어려움은 현 논의의 영역 안에 포함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또한
전쟁의 결과 제기되는 요구 조건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협상 문제로 간주될 수 없음을 중국 정권 대신에게
상기시키면서 대번 정권 변리 대신은 대중 흠차 정권 대신이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이미 제시된 강화조약 초안의 수용 또는 수용 불가 여부를
총괄로 또는 항목별로 분명하게 하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명확한 형식으로이를
제시해 주시기를 요구합니다. 우리 양국간의 오랜 뭐 역사와 친분과 이런
거에 자꾸 호소하는 얘기 그런 얘기 다 필요 없다. 그리고 당신이 뭐 국내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위계에
처할지 다 필요 없는 얘기고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여기에서는
정확하게 어떤 조건이 충족 못 시킬 거고 어떤
조건을 받아들일 건지 그럼 못 받아들이는 거는 왜 못 받아인는지를 형식에 갖춰서 딱 답을 해 달라라고
아주 냉정하게이가 답신을 합니다. 결국
5일간의 협상 끝에 4월 15일 이홍장이 오후 7시에 협상안을
받아들니다. 서명한 양측이 서명한 시모너스키 조약은 이렇습니다. 제1조 천국은
조선국이 완전 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주 독립을
훼손하는 천국에 대한 조선국의 공헌 전례 등은 장례에 완전히 폐지한다.
제2조 천국은 아래 토지의 주권 및 해당 지방의 성 변기 제조소 및 관청
소유물을 영원히 일본에 하려 한다. 1. 아래 경계 내에 있는 홍텐성
남부의 땅 타이완 전도 및 그 부속 도서 평 펑후 열도 즉 영국 그린
동경 119도에서 120도와 북기 23도에서 24도 사이에 있는 여러
도서 정확하게 물을 원하는지를 얘기를 합니다. 조선에서 완전히 손 떼고
요동반도를 내놓고 대만섬을 내놓고 홍우제도를 내놓 겁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메이지가 측령을 내립니다. 짐이 즉위한 이후 항상 평화를
위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갑자기 천국과 시비가 발생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다행히 여러
대신과 관리들이 힘을 다하여 대책을 세우며 전쟁 준비를 하여 국정을 돌보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각종
중대한 사건에 부족함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해군과 육군의 군사들은 풍한 서습을 무릎 쓰고 재난을
두려워하지 않아 가는 곳마다 백전 백승했다. 백성들의 충성스러운 마음과
용맹 없이는 이런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짐이이 점을 심히 고맙게 여기는 바이다. 이제 사이가
좋아졌고 휴전 기한도 정했으니 백성들은 앞으로 나라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 주기 바란다. 앞으로는
천국을 원수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 우리에게 시비한 것을 후회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화친을 요구하니 우리 나라가 더욱 영광스럽다. 혹시라도 우리 백성이 전쟁에서 승리한
덕에 교만한 마음이 생겨나 이웃 나라를 업신 여길 경우 두 나라 외교
관계에 해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앞으로는 타인에게 공손한 마음을 가지고 재반 규정을 지키며 분수를
넘지 말고 수능하는 마음을 더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라노라. 천국이
우리나라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후 우리와 외교 관계를 돈독하고 더욱
친밀한 정을 쌓아갈 것이니 지난 허물을 다시 들추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백성들아 짐의 뜻을
힘써 봤더라. 청일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시몬의 새끼 조약을 통해서 일본은
엄청난 것을 받아냅니다. 중국으로 엄청난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조선에서 청이 완전히 손을 뗀다. 바타가 공인하는 청의 속방이었던
조선에서 중국으로 하여금 완전히 손을 뛴다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천명하게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요동반도를 아예 일본이
갖겠다는 겁니다. 거듭 말씀드렸지만 요동반도를 갖는다.
대련하고 루신을 갖는다. 점령하고 있다. 그거는 뭡니까?
언제라도 베이징에 쳐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그 당시에 어떤 외국
서양 외교가 말로는 이렇게 되면은 완전히 중국은 일본의 속방이 되는 것이다라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네. 오늘은 청일 전쟁을 종결시키는 시몬의 새끼
조약이 어떻게 조인됐는지 그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시몬 새끼 조약을 통해서 일본은 참으로 많은 것을 얻어냅니다. 특히 요동반도를
얻어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일본이
루을 차지해서 그야말로 중국을 도관에 둔쥐로 만드는
거, 자기의 속방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서구 서방 열강들이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결국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힘을 합쳐서
요동반도 내나라 뱉턴 나라가 봅니다. 그게 삼국 간섭입니다. 지금 방금
청하고 전쟁하느라고 국력을 다 소진을 했는데
러시아하고 독일하고 프랑스가 와서 요구하는 거를 협박하는 거를 안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먹음고 요동반도를 다시 뱉어냅니다.
그게 삼국 간섭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로 삼국 간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삼국 간섭을 통해서
일본의 힘이 힘이 위축이 됐을 때 고정하고
민비하고 민시 척적 세력하고가 일본에
저항을 하기 시작하고 어 결국은
갑옷 경장을 완전히 수톱시키고 미우라 공사가 주도하여서
자기네가 보기에 반일대 앞서고 있는 민비를 시해하는 을미 사변을 일으키는
그러한 무도한 짓을 버립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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