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란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8회
법률방송
48,876 views May 28, 2025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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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2대 교주 최시형에 의해 삼남지방까지 그 세력을 확산한 동학이 어떻게 봉기하여 민란으로 이어지게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들고일어난 봉기가 어떻게 해서 민란의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는지 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청과 일본까지 개입하기에 이르렀는지 당시 상황을 더욱 심층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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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현재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 동학이
어 수훈 최재우 교의 처형 이후에 순교 이후에 어떻게 재건을 하게
됐는가? 특히 해월 7시형에 지도하여 2대 교주에 지도하여 무너진 교회를
재건을하고 그리고 특히 그 경주를 떠나서 벗어나서 더 확산이 되기
시작하면서 경전을 갖추고 재례를 갖추게 되면서 어 조직을 갖추는 그
모습을 한번 봤습니다.
뭐 이필제의 난 같은 큰 또 시련도 겪기도
하지만은 결국 가서는 특히남 지방에 남지방의 큰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고
궁극적으로
첫째 어 자기 교주의 억울한 죽음을 영 회복을 해 달라라는
요구와 그리고
둘째는 우리도 천주교처럼 박해 없이 어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생활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이런 거를 걸고서 이제 그 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기 시작하고 실력 행사에 들어가기 시작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제 조종이 어 처음으로 중앙 조정이 본격적으로 동학하고 맞닥뜨리기 시작하면서 어
점점 점점 어 이제 동학 난으로 가는 그 과정을 봤습니다.
오늘은 이제 난이 본격도적으로 터지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청하고 일본까지 개입을
하게 되면서 동학 문제 때문에 개입을 하게 되면서 청일 전쟁으로 가는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공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어 특히
어 과거 시험을 치는 선비들로 변장한 40명의 어 그 동학 교도들이 한양 도성에 잠입해서 경복궁
앞에서 교훈을 어 임금한테 이제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하소연을 사흘
밤낮을 이제 어 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어 동학이 이제 중앙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대비를 하게 되고 중앙 조종도 어 여기에 어 대응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때에 고종이 동학한테 유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자중해라라고 고종이 처음으로 유능을 내립니다. 그 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말한다. 아 너희들은 모두 나의 명령을 들으라. 우리 열성조는 훌륭한
분들이 대를 이어나와 나라의 정사를 크게 빚내었으며 윤리를 밝혀서 사람이
지킬 규범을 세우고 유학을 앞세우고 장려하여 나라의 풍속을 오른길로
인도하니 집집마다 공자의 덕행을 본받고 가정마다 정자와 주자의 책을
읽어 충신과 효자 연려들이 대를 이어 계속 나오고 산농공상이 각기 자기
직업에 안착하여 온지 지금까지 500년이 되었다. 너희들이 이르는 바 학이라는 것은 스스로는 하늘을
공경하고 현인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너희들이 말하는 공경한다거나
존중한다는 것은 다 하늘을 무시하고 하늘을 속이는 것이다. 원칙을
어지럽히고 불순한 마음을 품었으니 어찌 하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 수 있으며 거짓말을 퍼뜨리고 감원 이설을
늘어놓으니 어찌 하늘을 속인 것이 아닐 수 있는가? 무리를 끌어들이고 불러 모으는 그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도를 쌓아 성을 만들고 깃발을 세우고 서로 호응하면서 감히
큰 의리를 재창한다고 써 놓고는 혹 통문을 내기도 하고 혹은 방을 붙여
인심을 선동하니 너희들이 비록 어리석고 영리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대세와 조종에서 정한 조약을 어찌하여 듣지 못하고 감히 핑계되고
말을 꾸며내어 결국 화단을 일으키니 저축이 있는 사람은 재산을 탕진하게
하고 농사 짓는 사람은 농사처를 놓치게 하였는가? 이것은 큰 의리를 제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난을 앞장선 것이다. 너희들이 일정한 것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세력이 많은 것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심지어는 조종의 정사도 미치지 못하게 하고 명령도 시행할 수 없게 하니 예로부터 어찌 이런 일이 있었는가? 이것은 모두 나 한 사람이 너희들을 잘 인도하지 못하고 너희들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 원인이 있으며 또한 각 고울의 원들이 너희들의 피담을 긁어내고 너희들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니 탐한 아전들과 수령들은 이제 곧 증벌하리라. 내가 백성의 부모된 사람으로서 백성들이 스스로 옳지 못한
길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가슴 아파하면서 어두운 데서 밝은 데로 이끌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만일 괴수를 사아잡아 바치거나 그 종족을 탐지하여 신고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에 따라 후한 상을 주겠다. 각기 스스로 도망쳐 돌아온 사람도 그의 토지와 재산을 찾아서 돌려주어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게 하겠으니 의심하거나 겁내지 말라. 이렇게 개요한 이후에도
너희들이 잘못을 고치지 않고 해산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땅히 큰 처분을 내릴 것이니 어찌 너희들이 다시이 세상에 용납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즉시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나라의 법을
위반하지 말도록 하라. 지금 해산하면은 아무 벌을 주지 않겠다.
어, 그리고 사실 탐 자기도 정치를 잘못했고 탐과 놀이들이 나쁜 짓을 한 걸 잘 알겠다. 이런 거를 다 시정을 하겠다. 뺏기든 재산 이런 거 있으면 다 돌려 주겠으니 이제 돌아가라.
그렇게 어 회를 합니다. 그런데 동학이 듣지를 않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어 반대 어 상소를 올립니다.
황공하우나 살펴보시옵소서.
저희는 선왕조가 화육한 적자요. 천지간에 기댈 때 없는 창생으로 돌을
닦아서 윤상의 밝음을 알고 있습니다. 안과 밖에 화이의 차이가 있으니
그러므로 겨양 개나 양 같은 외양은 비록 오척의 아이라도 같이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역사에 이르기를 마니 그니까 야만인
거울랑케죠. 마이를 공격하는 것은 중국의 장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선으로 조선을 공격하는 것이 외양의 장기가 되었으니 통곡하며 한심하게 여길 일입니다. 창의해서
외양을 격퇴하는데 무슨 큰 죄가 있다고 오직 잡아다 가두고 싹 쓸어 버리려고만 하는 것입니까? 천지
귀신이 모두 굴보살 피시고 거리의 아이들과 잔신부름하는 하인들까지도 그 곡을 알 것입니다. 순상 임금의 명령을 받고 사신으로 나가는 종이품. 순상이 우리를 크게 미워해서이 무고한
창생들을 모두 도탄에 빠뜨렸으니 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어찌 이처럼 잔인한 것입니까? 또 외양이 우리 임금님을 위협하는 것이 위협하는 것이 만극합니다. 조종에 누구 하나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없으니 군주가 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 의은 어디에 있습니까? 수위를 입은 하파께서는 산두의 명망이 있고 성황의 명을 받들어 각도의 선비들에게 효유하시니 수많 선비들이 마치 큰 감뭄에 비구름을 바라듯 기대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은 끝이 없는데 의를 보기 힘든 것은 다만 강약의 형세만 보고서 외양을 격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천하만고의 목숨을 버려서 의를 이룬다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희가 비록 촌구속의 천품이지만 어찌 외양이 강임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열성조에서 유학을 숭상한 교화로 인해 모두가 외양을 격태하다가 죽는다면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하고 있으니이는 국가에서 경화할 일이지 우려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논리가 어 이제 완전히 착취 어 탐과 놀이들의 학정
폭정에서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논리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해서 어찌해서 우리가 외구와 어 양의를 격태하고자 일으켰는데 왜 우리를 못 살게냐? 왜 우리를 적대시 하느냐?
그러면서 조선이 조선을 겨냥하는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그러면서 논의의 틀을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주된 목적이 어 그 서양 오랑캐 특히 어
석교 서양의 그 격태 어라고 그렇게 문제를 어 그 재규정을 합니다.
이때 이제 어연중을 보내서 어 그 고종이 다시 그 답을 합니다.
너희가 시 취당 즉 무리를 불러모은 의도가 양의에 있다면 온 나라의
공공의 의리를 갖고 어찌 독 어찌 독자적으로 한 깃발을 세운 것이냐.
지금 너희가 갑자기 외세 척결이라고 그러는데 아니 그렇다면 지금 우리 다 그걸 해야 되는데 왜 너희 혼자서
깃발을 들고 너희만 뭐를 마치 뭐를 하는 듯이 지금 그러느냐 그러나 문장에서 위협 은운한 것은 소문이
잘못될 것임을 이미 효유했다. 이러한 사연을 상세히 려어 상달할 길을 마련하겠으니 너희들도 물러가서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것을 고하노라. 앞으로는 평안 무사하게 있으라. 그러면서 너희들 위협하고 그런 거
아니니까 이제 다시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하라. 그러면서 이제 정업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해산시키려고 이제 무진 애를 씁니다.
그때에 고부봉기가 일어납니다. 고부봉기는 1894년 1월 10일 날 일어납니다.
양력으로는 2월 15일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고부에서 봉기를 하는데 뭐 여러분 역사에서 잘
아시듯이 고부근수 조병갑의 수탈에 대한 어 반항이었습니다. 고부기에서
시작된 건 1차였고 2차는 이제 10월 달에 어 일어나는 거였는데 그
2차 동학나 이후에 이제 전봉준이 체표가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신문을 받습니다.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자세하게 신문관하고 이제 어떻게해서 어 동학란이 일어나게
됐는가에 대한 고부봉기가 일어나는 대한 자세한 얘기를 나눕니다.
지금 그 세세한 조목을 다 이루 말할 수 없고 대개를
대략 구합니다. 하나는 민보의 보를 쌓고 늑정으로 민간에 전령하여 상답은
한두락의 두두의 세를 거두고 하답은 한두락의 1의 세를 거두니 도합 조가
700여석이요 진황지 버려진 땅을 백성에게 갈아먹기를 허가하여 관가로
문하여 징세를 안 한다 하더니 추소할 때 미치어 강제로 징수한 일이요
하나는 부민에게 늑탈한 엽전이 이만양이요 하나는 그 아비가 일찍이
이 태인 수령을 지낸 연고로 그 아비를 위하여 비각을 세운다고 알리고능한 돈이 천양이요. 하나는
대동미를 민간에서 징수하기는 정백미로 16 준로
추첨하고 상납은 추미를 사서 이익을 모조히 먹은 일이요.이 밖에 허다한
조건은 기억할 수 없나이다. 그러니까는 전봉준이 쭉 얘기를 하는 겁니다. 좋은 땅들은 자기네가 갖고
나쁜 아주 불지가 된 땅을가 그 우리 보고 개관을 하라 그래 놓고 나서는
거기선 세금을 안 걷는다. 그러고 나서도 다 세금을 걷고 이러면서 이제 온갖 짓을 나쁜 짓을 다 지금
조변갑이비하고 있어 있어서 이걸 일일이 다 나열로 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을 하는게이 정도입니다라고 이제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이제 신문하는 사람이 물어봅니다. 이런 일은 한 곳에서 행하였느냐 또한
각처에서 행하였느냐 그랬 전봉준이 이러한 일은 한 곳에 그침이 아니여 수십권이 수십곳이 되었나이다.
그랬더니 또 그 문추하는 사람이 수십곳이 된다 하니 그중에 혹 이름을
아는 자가 있느냐 그랬더니 전봉준이 지금 성명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이 밖에는 고부수령이 어떤 일을 행하였느냐 그때 전봉주 이렇게 합니다. 지금 진술한 사건이
다 민간에 탐막한 일일 뿐더로 보를 쌓을 때 남의 산에서 수백년 된
구목을 강제로 도끼로 찍어내고 보를 쌓는 일에 민정을 일전도 주지 않고
강제로 일을 시켰나이다. 그러니까 보호를 쌓는다고 해놓고서는 뚝 같은 걸 쌓는다. 그러고 나서는 남의 산에
가서 오래된 나무를 캐다가 돈도 하나도 안 주고 캐다가 와서 사람들이 일을 시켜서 노동을 시켜서 하고
나서는 그 또 노동값도 하나도 주지 않고 강제를 시켰다. 그래서
묻습니다.
그 문처하는 사람이 고부 수령의 성명은 누구냐? 그랬더니 전봉준이
조병갑입니다. 자, 그럼 조병갑이 누굽니까?
조병갑은 1892년에 고부근수로 어 그 부임을 합니다. 그랬다가 1894년 1월
6일 날 어 익산군수의 명돼서 고부를 떠납니다. 그러니까 조병갑이 전라 감사로 있는
김무현한테 자기가 다시 고부근수직을 좀 할 수 있게 고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좀 해 달라고 청탁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 전라감사 김문현이 조중 중앙 조종의 2조 관직 재수하는데
이제 사람을 어디다 쓰느냐 인적 자원부죠. 거기에 조병갑이 다시
고부근수를 여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가 이제 그걸 올립니다. 그랬더니 그리고 김문현은 조병갑의
후임으로 고부군수 후임으로 이은용이라는 사람을 다른 안악군수로 전근을 시킵니다. 조병갑을 다시 고부 군수로 앉치기 위해서. 근데 이제 또 다른 군수가 어 임명이 됩니다.
이러는 사이에 1893년 음력 12월 한 달 동안 12월 24일에는 고부근수입니다. 신신좌이 고부군수에 임명이 됐다가 26일에는 이규백이 임명됐다가 12월 27일에는 하일이
임명되었다가 12월 28일에는 박희성이 임명되었다가 29일에는 강인철이 보군서 임명됩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하루마다 바뀝니까?
다 돈을 바꾸 정부에서 돈을 받고 그렇죠.
그러면은 누가 하면은 돈을 받고 다음날 또 딴 사람한테 파는 거죠.
원래 이렇게 매관 매직하는 건데 그런데 더군다나 지금 고부근수로 돌아가게 해 달라 그래서 익산으로 가서 그 자리를 비워 놓고 있는데 동안에 고부근수로 다시 임명될 때까지 잠깐 비어 있으니까 그대 어떡합니까? 돈을 받고 하루씩일에도 임명을 해서 계속해서 딴 사람으로 고급수를 채우는 겁니다.
이게 지금 조선 조종의 현실이 여기서 너무 적난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문현은 결국은이 사람들을 다 사임하게 하고
1894년 2월 14일 음력 1월 9일 날 조병갑을 드디어 고후 근수로 복직을 시킵니다.
그니까 그 사이에 돈들 많이 벌고 다시 이제 복직을 시킵니다. 그 복직을 시켜 달라고
올렸 올린 거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 전라감사 김문현의 장계를 보니 전 고부군수
조병갑이 오랫동안 포흠한 많은 수를 차례로 메워 장부를 정리해야 하는데
조세를 받는 일이 한창 벌어지고 있어서 아직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이
다른 고울로 옮겨가고이 일을 새로운 사람에 맡긴다면 잘못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도신의 장계 내용이 이와 같으니 장계에서 청한 대로 특별히 잉시킨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그대로 윤호한다고 반부하였다라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병갑이 아 제가 지금 열심히 일을 해서 지금 막 세를 세금을 걷고 있었는데 아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딴 데로 전근시켜 버리니까 이일을 제대로 맞춰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좀 특별한 경우가 되겠지만 저를 다시 그쪽에 임명시켜 주십시오 하니까 그래 그 좋은 생각이다 그러면서 다시 임명을 시켰다라고 이렇게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고부군수의 복직한 조병갑은 수타를 이어갑니다. 바로 이때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 또는 전승록이라고도 하는데 조병갑의 학정에 대해서 이게 말이 됩니까 하고 이제 진정을 하다가 장살이 됩니다. 어, 전봉준의 아버지가 어, 그 권장을 막고 맞아 죽습니다. 조용갑한테. 그래서 고울 사람들이 전부 다 소를 올리지만 올린 사람마다 전부 다 감옥에 가거나 매를 막고 쫓겨나 버리 이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이제 그 전봉준이 문초하는 사람한테 얘기를 한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너희가 처음부터 관종의 1차로 소장을 내지도 아니하여 보았느냐? 뭐 그뭐 소장이라도 내지 않느냐?
그랬더니봉준이 처음에는 40여명이 등소하였다가 하다가 잡혀 감옥에 들어가고 제차 등소하다가 60여명이 쫓겨났습니다. 그럼 언제 그랬느냐? 등소는 어떤 때인 거? 하니 처음번은 재작년 11월이요? 두 번째는 같은 12월이요. 그러니까 이제 더저히 목목 견디게서 결국은 어 일어났다
그랬더니 그러면 기포할 때에 내 들고 일어날 때 나를 일으킬 때 네가 어찌 주모가 되었느냐 하고 물으니까 전동준이 중민이 다이 몸을 추대하여 주모하라 하기에 백성의 말을 의거함입니다. 백성들이 다 요구해서 따랐습니다. 그랬더니 중민이 너로 주모하라 할 때 너의 집에 이르렀더냐? 아, 그러니까 너가 너희 집에까지 와서 사람들이 그렇게 지도자가 되라고 욕을 했느냐?
그랬더니 중민 수천 명이이 몸의 집 근처에 모두 모인고로 자연이 된 일이 올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다 보니까 됐습니다. 저희 집에 다 모였습니다. 이런 얘기죠.
수천 명 중민이 무슨 가닥으로 너를 추대하여 주무하게 하였느냐? 왜 네가 지도자가 그
사람들이 너를 뽑았느냐? 지목했느냐? 그랬더니 전봉준이 중민이 비록 수천명이라 일컬러나 모두 우준한 농민이요이 몸은 문자를 거칠게 남아 해득하는 연구입니다.
아 참 멋 멋있습니다. 겸손합니다. 그나마 나도 글을 참 아는 정도가 아주 투박한 글밖에 모르는 정도밖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글을 제가 조금 안다고 해서 다들 저를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이런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 전봉준이 그 농민들을 끌고 이제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어 이때 이제 관화를 습격을 하지만 조병감은 이미 피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병감은 살아납니다. 근데 그러니까 이런 사건이 전봉준의 이런 것 때문에 그 결국은 조병갑이 파면이 되는데 근데 이제 문제가 더 커지기 시작합니다.
뭐냐면은 박원명이 신이라는 사람이 신임 군수로 부임을 합니다. 그리고 조종에서는 이게 이제 사태가 커지는 거 같으니까 안핵를 고부에 어 이제 파견을 해서 이제 수습을 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1894년 2월 12일에 15일에이 형태가 어 임명이 됩니다. 그래서 가서 민심을 진정시키고 그러라고 했는데 이형태는 가자마자 동학이 누구였고 난리를에 참가한 놈들이 누구냐 그러면서 오히려 거꾸로 난을 일으킨 사람들을 색출하기 어 그 시작하고 특히 이제 동합 교도들을 색출하는데 아주 모든 또 노력을 기울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제 완전히 어긋나게 어긋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봉준이 어 그 무장에 있는 손화중과 태인의 김개남이 사람들은 아주 제대로 된 동학 그 지도자들이죠. 전봉준이 동학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전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전봉준은 어디에서도 자기가 그냥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하두 수타를 하는 관리에 대해서 자기가 그나마 글을 조금 아는
선비이기 때문에 그래서 백성들이 나를 추대해서 우리가 나를 일으켰습니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동학이란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때쯤 되면은 결국은 새를 모으다 보니까는 이미 호남 지방에 널리 동학이 퍼져있었고 웬만한 저작거리 큰 도흡에 가면은 다 공개적으로 도동학들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동학이 어 정부에 상수를 올리고 하느라고 모여 있었고 출력 행사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이제 동학 교도들과 힘을 합쳐서 본격적으로 난을 일으킬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전봉준이 이렇게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장흥부사 이용태가 아사로 본 고울에 와서 기포한 인민을 동학이라 통칭하고 이름을 열거하여 포착하며 그 가사를 태워 버리며 당사자가 도망하면 처자를 체포하여 사륙을 행하는 거로 다시 기뻐하였나이다. 이때쯤 되면은 아넥사이 용태가 와서 무조건 이거는 동학이다. 이렇게 돼 버린 거죠.
거듭 말씀드리지만은 전봉주는 동학이 아니었습니다. 동학이라고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런데 오히려 안핵가 와서 모든 백성들을 못살 줄으면서 동학이기 때문에 이렇다 그러면서 재산을 뺏고 도망가면은 그 처자를 사육을 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까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그러면서 전봉준이 동학과 손을 잡고 이제 어 의거를 일으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무장 현등상 동학인 포문이라는 거를 발표를 합니다. 이게 이제 본격적으로 어 기포하는 겁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함은 오로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의 의리는 인륜 중에서 잠못 큰 것이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고두며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아비에게 효도한 연후에 비로소 집과 나라를 이루어 무한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는 어질고 효성스럽고 백성에게 자애로우시며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시니 만약 아래로 현량하고 정직한 신하가 있어 힘을 더하여 그 총명을 돕는다면 요순의 덕화와 문제 경제의 치세를 가의해를 보듯이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문제와 경제 문경의치라는 건 뭐냐면 한나라 때의 황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기서 보면은
역사를 보는 관점, 그 시각 그리고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으로 지목하는 그 틀이 뭐냐면 완전히 유교적인 틀이죠. 저는 그러니까 이게 지금 전봉준의 글로 여겨지는데 완전히 사대부의 글입니다. 양반 저 유학자의 글입니다.
포악한 정치는 날로 심해가고 원망하는 소리는 그치지 아니하니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분들이 드디어 무어지고 말았도다. 자가 말하기를 사유 예의 연치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하고 만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형세는 오히려 옛날보다도 더 혹시다 하겠다. 공경 이하 방백 수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일신의 비대와 가문의 윤택만을 꾀할뿐 벼스라치를 뽑고 움직이는 일을 돈벌이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과거를 치르는 마당은 마치 물건을 사고파는 저자로 변하고 말았다. 백성에게서 거둔 세금과 물건이 국봉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세도가의 사복만 채우고 있으며 나라에는 빚이 쌓여 있는데도이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교만과 사치와 음란한 생활만을 일삼으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릴 줄을 모른다. 이에 이르니 온 나라가 집밟필로 집밟혀 결단이 나고 만미는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우리들은 비록 초야에 버려진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옷을 얻어 입고 사는 터. 어찌 앉아서 나라에 멸망하는 꼴을 보고만 있겠는가? 온 나라가
마음을 같이 하고 억조 창생이 뜻을 모아 이제 의기를 들어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사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일어섰으니 오늘의 과경이 비록 놀라운 일이기는 하겠으나 결코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생업에 충실할지며 함께 태평성대를 비로 성상의 덕화를
골고루게 된다면 천만 다행이겠노라.
완전히 유교의 관점입니다. 제목에는 동학이라고 그랬지만 완전히 유교의 관점이죠.
그러니까 사실 전봉준하고 김개남이 관계도 그렇지만 그런 거죠. 이게 이쯤 되면은 사실 어디까지가 몰락한 유학자들 폭정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폭정에 반대하는 거고
어디서부터는 또 동학인지 이게 굉장히 이제는 그 사실 구분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대표하는게 바로 전동준이란 인물이죠. 동학이었느냐 아니었느냐 어 본인이 동학 교도였냐 아니었느냐 논쟁이 아직도 있는 바로 그런 인물이 어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드디어 어 동학군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4월 26일 음녀 2월 21일 날 전봉준의 농민군과 손화중 김계남의 동학권이 무장에서 출발하여서 백산에서 두 편대로 나누어서 부 하나는 부안, 하나는 배인으로 진격을 합니다. 4월 27일 황토제에서 관군을 기습하여 이김 관군을 무찌릅니다. 5월 6일 날 드디어 조종해서 홍계훈을 초토사에 임명을 해서 동학을 토벌하는 명을 내립니다. 5월 8일 날 홍계훈이 원세계의 지원을 받아서 인천에서 인천에서 청북함대의 군남 평원에 올라서 5월 10일 날 군산에 도착해서 전주로 진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월 21일 5월 22일 장성 황룡천에서 동학군이 대성을 거둡니다.
그래서 이때 관군이 갖고 있던 대포 산문 하고 서양총 진총 백정을 노액을 하고 5월 30일 전주에 동학군이 입성을 합니다. 다시 공초받는 어 받을 때 이제 전봉준하고 그 문추하는 사람의 그 대화입니다.
장성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장성에서 접전하였느냐?
전봉준이 경군과 접전하였습니다.
경군과 접전하여 누가 이기고 누가 패하였노?
그랬더니 전봉준이 아군이 모여서 밥을 먹을 때에 경군이 대포로 사격하였기 때문에 아군 전사자가 450명이었기에 아군이 일제히 추격하니 경군이 폐저하을 대포 두자와 여관의 탄환을 취해 왔습니다. 여긴 두두 두 문이라 그러는데 실제로 세 문을어 탈출 했습니다.
그때 양쪽 군사의 수요는 각각 얼마였니?
그랬더니 경군 관군은 700명이요. 그니까 수도에서 온 경군은 700명이요. 아군은 4,명입니다.
근데 사실 700명이라고 하더라도 어 최신 무기로 무장을 한 어 명세기 훈련을 받았어야 되는 그런 군대입니다. 근데 지금 이때가 뭡니까? 흥선 대원군이 병인 양효여, 신미양효 등을 통해서 미군하고 프랑스군을 격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물러가는 미군이 이렇게 지독하게 싸우는 영맹한 군사를 본적이 없는데 우리 더 이상 싸워 봐야 소유 없겠습니다라고 그때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조선의 군대는 없어집니다. 사실 유명 무실해집니다.
뭐 이모군란 직전에 일본에서 일본 군관을 불러 갖고 별기군을 만들어서 근대식으로 좀 훈련을 해 보려다가 이모글란 때 없어지고 그다음에 또 갑신 정변 때에 일본에서 훈련받은 서제필 서제창을 불러 갖고 뭐를 하려다가 또 실패하고 결국은 청군이 들어와서 청군이 훈련을 시키지만 갑진정빈 이후에 서로가
일본하고 중국이 텐진 협약을 맺으면서 둘 다 조선에서 손 뛰고 조선군 훈련은 중국 사람도 안 되고 일본 사람도 안 된다.제3국에 맡기자
그렇지만 아무도 와서 해 주지않습니다. 그러니까 조선 군대는 사실은 이때쯤 되면
아무런 내용이 없는 군대가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700명의 현대 정예군이 저런 대포와 최신식 총을 갖고 갔었으면은 농민군이
4,명이 아니라 4만 명이라도 쉽게 무찌를 수가 있는 거였죠. 그런데 농민군 4,명한테 정부군 700명이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정부근이 무너져
버립니다. 이때 6월 3일 날 드디어 동합군이 4대명의라는 거를 발표를 합니다.
하나, 사람을 죽이지 않고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둘, 충효를 함께 갖춰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한다.
셋, 일본 오랑캐를 모아내 없애고 성인의 도리를 맑고 깨끗이 한다.
네. 군사를 몰아 서울로 들어가 권세 있고 지위가 높은 자들을 모두 없애 버린다. 기강을 떨치고 명분을 바르게 세워 성인의 가르침을 따른다.
이 내용을 보면은 동학인지 사실 유학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구변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되면은 서양과 일본의 침투에 대한 격렬한 어 민중들의 조선 민중들의 그 반감, 불안감 이런 것이 다 섞이고
거기에 대한 반항으로서 다 일어나는 겁니다. 어 따라서 이걸 우리가 이름하여 동학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을 봐서는 꼭 동학이라고만 지목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 전통적인 유교적인 어 그 시각에서 맥락에서 임금님은 잘하고 계신데 탐과 우리기 때문에 나라를 다 망치고 있는데 어떻게선지 우리가 일어나서 임금님이 눈을 뜨시게 하고 다시 좋은 문제들 뽑아서 선정을 베풀게 하고 우리는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도록 하자라는 유가적 밀란의 의 그 논리가 그대로 담겨 있음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때에 조종이 군대까지 보내서 중앙군까지 보내면서 어 동학을 진압하려고 한다라는 거는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니까 이제 한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라
전체가 알게 되는 거고 당연히 한양 주제하는 외국 사절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거고
그 와중에 일본 공사관이 가장 기민하게 움직입니다.
일본 공사관에 있었던 스기무라는 일본 대리 공사가 있는데이 사람은 벌써 이때쯤 되면 10년 넘게
조선의 일본 공사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사람이고 그러니까 당연히 한국말을 조선 말을 유창하게 하고 있었고 그리고 조선 사정을 혼히 깨뜨고 있었습니다. 이때 원래 있었던 공사는 오토리 공사라는 사람인데 오토리 공사는 이제 잠깐 와서 있었던 사람이라서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서 이때에 일본에가 있었습니다. 그니까 난리가 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별거 아니겠거니 하고 이제 일본에 건너가 있었고 그 스기무라가 대리 대리공사로 있으면서 쓴 일기와 그리고 자기 본국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은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고 특히 외국의 입장에서이 난을 어떻게 보고 있었고
그리고 일본의 입장에서이 난을 어떻게 보고 있었던 것이 정확히 드러납니다.
스기무라 일본 대리공세 일기입니다.
민영익은 군대를 보내 동학란을 분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많은 대신들은 이들이 현지의 탐과 놀이 확정에 봉기한 착한 백성들이라면서 강제 진압에 반대한다. 그 대신 잘 타일를 주장한다. 민영익은 조종에 의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비밀리의 원세계와 의논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게 핵심적인 내용이죠. 그러니까는 민영익은 민시들은 정확히 알았던 거죠.
뭐냐면은이 난리가 일어난 것이 정부의 학정 폭종이지만 그리고 고부에서는 조병갑의 학정이지만은 지금 조선 8도의 백성들이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 뭐냐면 이게 지금 민시 척정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이 민심의 분노의 가장 큰 대상은 민시척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민감하게 민영익은 금방 아는 거죠. 그러니까 민영익은 뭐라 그러냐면 빨리 이거를 진압을 해야 된다. 강제로도 진압해야 된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대신들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그냥 그 폭정에 못 이겨서 백성들이 그런 걸 우리가 강제로 진압하면 어떻겠냐 그러면서 조종해서 군대를 제대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니까 이때 민영익이 원세계를 접촉을 해서 원세계와 본격적으로 대안을 의논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비로써 이제 청이 본격적으로 계획을 하게 됩니다.
원세계는 조선이 너무 약해서 반란을 진압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고 조선군이 패하고 폭도가 한양에까지 들어오면 외국과의 관계가 복잡해질 것을 걱정하여 하루 빨리 진압되기를 바랬다.
그러면서 괄호에이는 내가 원세계로부터 직접들은 얘기다. 그러니까 숙기모라는 이거를 원원세계하고 대화를 하면서 원세계한테 확인을 한 거죠. 원세계가 숙임으로 하고 얘기를 하면서이 조선군이 이거를 전혀 진을 못 하고 있는데 이래 갖고 큰일 나겠다. 이거 어떻게 손을 써야 되겠다라는 얘기를 스기무라한테도 이제 했던 거죠.
다시 쓰기무라 얘기입니다.
그는 또한 큰 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원세계 얘기입니다. 원세계는 지금 26살짜리가 와 갖고 있으면서이 큰 공을 세우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뭐 갑신정변 진압하는 데서 큰 공을 세웠지만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던 원세계입니다. 나중에 중국의 황제까지 되고 바로 그 원세계죠. 그러니까 공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손수 중국인 경찰과 상인들을 이끌고 난을 평정하러 갈러 갈 생각도 했다.
그는 조선군을 돕고자 청의 전남들을 빌려 주었다.
5월 9일 홍개훈의 조선병사 800명은 청의 전함 한 척과 두 척의 조선배에 올라 군산으로
향했다.이 당시 청의 군함에는 청의 군사들도 승선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청에 어 부양하는데 그 전함을 타고 그 조선군이 갔다라는 바로 그 얘기입니다.
거기에 청군도 있었을 거. 뭐 당연히 그 배를 움직이는 수군들은 있었겠죠.
근데 거기에 추가로 천군 육군 병사들까지 있었는지는 스기무라가 자기는 확인할 방법은 없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어쨌든 청이 본격적으로 개입한다라는 것은 이제 분명히 스기무라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5월 22일자 보고서를 본국 자기 외무성에 보냅니다. 만일 지나병 중국 그러니까 진하라는게
여러분 여기서 잠깐 우리는 중국이라 그럽니다. 우리는 중국이라 그러고 어
뭐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중국이라 그랬죠.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전으로 해서 벌써 중국을 더 이상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냐면 중국을 중국이라 그러면 나머지는 변방이
되거든요. 그러니까는 일본에서는 지나라 그럽니다.
그럼 지나가 뭡니까? 차이나 그죠. 진나라의 진을 서양 사람들이 차이나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그 차이나를 음역을 해서 지나라고 하는 거죠. 그냥 여러 나라 중에 한 나라지 중국이 아니라고 하는 얘기를 일본 사람들이 일찍감치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벌써 여기에서부터 중국 중심의 중화 중심 중화질서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만일 진하병이 들어온다면 조선의 장례 형세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당장 우리 관민을 보호하고 일청 양국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밀란이 진정돼서 청병이 철근할 때까지 공사관 호위 명분으로 구약에 의거해서
군대를 보낼지 아니면 청병이 들어오더라도 우리 정부는 별도로 파병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인지이는 매우 시기상조인 것 같지만 반드시 미리 결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구약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구약이 뭡니까? 구약이 바로 텐진 협약이죠.
1885년에 그니까 갑신정변이 일어나서 조선에서 천군하고 일본군이 한번 부딪힐 뻔했고 실제로 교전도 했었습니다. 그 지경까지 가니까 그다음에는 이또가 텐진으로 가서
이용장하고 만나 갖고 텐진 협약을 맺죠. 근데 그 협약 중에서
첫째 조선에 있는 모든 군대를 양측히 모두 철수한다.
둘째 조선의 군사를 훈련하는 것은 더 이상 일본 장교도 안 되고 청장교도 안 되고 제3국의 장교를 고용하도록 한다.
셋째, 만일에 한쪽이 무슨 일 때문에 출을 한다면 다른 쪽에도 분명히 알려야 된다라는
그 세 가지 협약을 했죠.
그 협약에 따라서 쓰기 모르가 하는 얘기가 협약에 따라서 그러면 저쪽에서 철 불이 출을 할텐데 우리도 그럼 출을 해야 된다.
아니면 아 하더라도 그럼 그 그 체진 협약을 우리가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그냥 안 할 것인지 조금 이름감이 없지 없지 않지만 높은 분들께서 이거 빨리 미리 상의를 해 놓으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스기무라 일기 대리공사가 저렇게 벌써 국가의 정책을 해서 보낸 겁니다.
5월 22일이면요. 여러분 청일 전쟁내기 한 달 반 전입니다. 대가 돌아가는 것을 하급 관리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자기네 정부한테 선택지를 정확하게 정책의 선택지까지도 제시를 해 줍니다.
다시 스기무라 일기로 돌아갑니다.
한양에서 출발한 조선군은 동학군에게 패했다.
소문에 의하면 조선군의 절반은 교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자 5월 23일 400명의 추가 병력을 조선배에 태워보냈다. 그러나 이들이 진압에 성공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청나라에 의존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선의 외무 대신에게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외국 군대에 의존하는 것은 안 좋다고 하였다.
나의 말은 고정과 조정 대신 거의 모두에게 전해졌고 일부 대신 몇 명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견해에 동의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스기문화라가 어우 이건 내정 문제 때문에 청병까지 청하게 되면은 사실 텐진 협약도 있고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라고 그 모든 얘기를 고정을 비롯해서 조전에 조종의 관료들한테도 다 얘기를 한 거죠.
그러니까 사실 그걸 알아들었던 거 같다는 거죠.이 이 사람들이 몇 명 즉 민영익과 민시척 몇 명은 어쨌든 자기네 권력을 유지하고 자기네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이거 동학부터 진압을 해야 되고 그걸 위해서는 뭐 텐진 협약이고 뭐관에 청권을 데려오자고 이제 이러는 거였고 그렇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유 그래도 훨씬 더 냉정한 머리로 아 이거 이것까지 해야 되는가라고 그 굉장히 곤란함을 표오면서 스기무라의 의견을 오히려 듣는게 다수였던 거 같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전주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구는 그동안 청병 파병까지 요청하는 거는 무리다라고 했던 조종의 내부에 여론이 청병을 요청을 해야 되겠다라는 의견으로 바뀝니다.
다시 스키브라의 일기입니다.
그러나 31일 전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들은 조선 조종은 논란 나머지 청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6월 1일 원세계에게 공식적인 원병 요청을 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들 때문에
원병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것이 지연되어 6월 3일에나 보내졌다고 들었다라고 괄호 속에 이제 스기무라가 하고 그 일기를 마칩니다. 자, 그러니까 이때에 스기무라가 보냈던 전문 때문에 일본에서는 1번 조정이 확 결정을 합니다. 파병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6월 1일 날 벌써 군사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여기에서 지금 스기모라가 얘기했듯이 청병 요청을 하하자라는 결정은 6월 1일 날 조선 정부가 내려고 사실 원세계도 그 자리였기 때문에 알았지만 그게 공식적으로 조선 정부의 문서가 청나라 조종에 전달되는 거는 원세계한테 주는 거였겠죠. 그건 6월 3일에나 접수가 되고 그 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정부 내에서 어 파병을 결정을 합니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로 김옥균
암살 사건을 다룰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일본 내에서는 지금 야당에서 야당에서 일본 정부 메이지 정부를 공격하는 가장 좋은 그 이슈가 뭐였냐면은 대회정책에서 메이지 정부가 너무 약하다. 어떻게 저렇게 우리와 같이 어 근대 혁명을 꿈꾸던 김옥균 그런 위대한 사람이 일본의 망명을
와서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저렇게 꼬임을 당해 가지고 상해에 가서 개조금을 당하게 하고 그리고도 그것도 뒷수습을 제대로 못 하고 저 김옥균의 시신과 김옥균을 암살한 그 나쁜 놈을 다 중국 군남에 태워서 보내가고 상을 받게 하고 일본 정부는 이게 뭐 하는 정부냐 그러면서 연일 신문에서 대서 서
특필하면서이 문제로 일본 여론이 겨강이 되고 일본 정부에 대해서 반대 여론이 아주 급등을 하거니까 그 선거를 하는 나라니까 또 내각이 흔들리게 되고 그러니까는 이미 쓰기무라의 전문을 받아놓고 고민을 하고 있던 딱 그 정부에서 전주성이 완전히 함락돼서 이제는 청나라가 들어오는 것이
확실하게 된다. 그러니까는 그때에 딱 의회를 해산을 시켜 버립니다. 이또가
의회를 내가 의회를 해산을 시켜 버리고 전쟁 준비를 한다라고 들어갑니다.
일본에서는 그것 때문에 그동안 정한론 이후에 완전히 갈라졌던 그 메이지의 지도부 메이지를 같이 했던 그 엘리트들끼리 서로가 갈라져서 하나님 야당이 돼서 민권 운동을 하면서 정부를 공격을 하면서 뭐 헌법을 만들라 뭐를 하라 그러고 오사과 사건까지 일으켜서 그중에 일부 민운동파들은 자기 내가 군대를 일으켜 갖고 아예 조선에 쳐들어가겠다 이런 얘기까지 하고 이런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드디어 일본 정부가 조정이 그러니까 이또 야마갔다 그 마스카다 이런 그 그 당시에 메이지 정부를
이끌고 있던 리더십이 아 이제는 우리가 중국하고 한번 본격적으로 전쟁을 해 볼 만한 실력이 됐다. 왜? 이미 갑신정님 10년이란 세월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10년이란 세월 동안에 일본은 헌법 만들고 징병제를 통해 갖고 프라시아의 군관들을 초초빙을 해 갖고 육군사관학교 만고 참모학교를
만들고 대규모 독일식 훈련들을 다 하고 교육부를 만들어 갖고 대학들을 다 만들고 고시를 통해 갖고 엘리트 관려들을 선발을 하기 시작하고 경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모든 준비를 다 갖춘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는 드디어 그때까지 텐진 협약을 통해서 이홍장하고 약속을 하고 야 우리 다 조선에서 순 뛴다. 그리고 실제로 김옥준, 박용, 서재필 이런 분들이 갑신정병 끝나고 간신히 몸을 피해서 일본으로 갔더니 일본 정보가 완전히 무시해 버린 거 아닙니까? 김옥주는 아예 시끄럽다고 귀안까지 보내 버리고 바로 그 정보입니다. 그 이도입니다. 그 이도가 딱 10년이 지나고 나라가 준비가 되니까 뭐라 그럽니까?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우리도 한다
그러면서 의회 해산 우리 전쟁 들어간다 이러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때까지 반대하던 야당들도 할 말이 없어졌죠. 강경 대회 정책으로 나가서 중국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나와 버리니까 오히려 전부 다 정부를 중심으로 모여 들어갔고 전쟁하자라고 똘똘이 뭉치면서 청일 전쟁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청일 전쟁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죠. 1번이 아 갑신정변 때도 그랬고 이거
조선의 내정을 개혁을 해야 된다. 이렇게 민시 촉적이 이렇게 전행을 하고 앉아 있고 이렇게 경제를 못 해 갖고 민심이 도탄에 빠져서 아니 동학난이라는게 일어난다는게 말이 됐냐 지금? 그리고 그 동학란을 관군을 보냈는데 그 관군이 죽창 용민군한테 연전 연전 연패를 해 갖고 태조 이성계의 본 자기 고향이에요. 전주 전주 이씨 그 도성이 동학군에 농민군에 함락됐다라는 거 이거는 이건 모든 차원에서 조선을
완전히 개혁을 해야 된다. 개화파가 그죠. 독립당이 그렇게 하고자 했던 개혁을 정말 이전는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일본이 갑경장도 동시에 일으킵니다. 한쪽에서는 청나라를 몰아내고 민 그 척쪽
세력들을 몰아내 친청파를 몰아내고 조선을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한 근대 계혁 자기네가 메이지 유신을 한 거 같이 그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그게 갑어 경장입니다. 그러면서 어 조선이 완전히 근대 국가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 대내외적인 혁명적인 변화가 어 일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우리가 세시간에 걸쳐서 어 동학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동학이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 사람들은 동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떻게 이해했고 어떻게 대응하려고 했었는가를 살펴봤고요. 그리고는 동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교주의 순교 이후에 다시 일어나기 시작을 했고 다시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래도 완전히 교세를 확장해서 특히 어 삼남 지방에서는 큰 세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거를 통 그 세를 바탕으로 자기네 교조 신원 운동 영예 회복 포교의 자유를 요구 요구하기 시작을 했고 그것이 조선 정부하고 결국은 어떻게 충돌에 이르게 됐고 조선 조정이 그거를 어떻게 처음에는 잘 회유를 해보려고 했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그리고 고부기까지도 일어나게 되면서 결국은 어 무력 항쟁으로 동학이 변하니까 관군을 파견을 하지만 그 관견이 관군이 계속해서 패배를 하고 결국은 전주성이 함락되는 데까지 거기까지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어 그것을 통해서 동학이 결코 조선의 대뇌 문제가 아닌 완전히 국제적인 문제로
전환이 되면서 일본하고 청이 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가를 쭉 한번 어 살펴봤습니다.
모든 역사는 이렇게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가지고 전혀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1860년에 경주에서 동학을 창시할 때에 그 일이 24년 후에 청일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는 어떻게 상상을 했겠습니까? 역사가 그렇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러면 청일 전쟁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파병이 어떻게 일어났고 첫 전투인 풍도회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고 성환 전투가 어떻게 일어나고 그리고 평양 전투
동시에 동시에 그 와중에 1번이 어떻게 갑경장이라는 걸 일으키는 거
특히 대원군을 다시 복권시키면서 대원군을 통해 갖고 추진하려고 하는 그 시도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고해 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여기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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