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8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6회 2차 갑오경장과 홍범14조

2차 갑오경장과 홍범14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6회 - YouTube

2차 갑오경장과 홍범14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6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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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근대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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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청일전쟁을 치르는 중에도 일본이 추진했던 조선의 개혁인 2차 갑오경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축 중의 하나였던 이노우에 가오루는 일본공사로 자원해 조선에 들어와 내정 개혁안을 제시하는데요. 그의 근대식 내정 개혁 방안을 토대로 조선은 본격적인 개혁에 들어가게 되고, 갑신정변에 실패해 물러났던 개화파는 10년 만에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이노우에와 개화파 세력이 추구한 조선의 개혁은 어떤 모습일까요? 또 새로 추진되는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노력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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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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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어 오늘은 이제 본격적으로 제2차
갑경에 대해서 어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인노에 가우르라는 일본 정계의 최대 거물 메이지 의신을
주도했던 그 형 그야말로 핵심 혁명 세력 중에 한 사람이고 그리고
처음부터 강화도 조약부터도 조선 문제를 사실 전담하다시피 해왔던
그 정개 거물을 조선에 파견해서 가보 경장을 다시 시도를 합니다. 대원군
갖고 안 돼서 이번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어 2차 갑장을
추진합니다. 갑보 경장을 이노에는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려 그랬었고
실제이 사람들이 달성하려고 했던 목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자세히
살펴보고 물론 아울러서 그 일환으로 나오는 홍범 14조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제2차 동학난을 진압하고 대원근과 민료와 하여금
국정에서 손을 떼게 한 이노의 가오루가 이번에는 자기가 손수
개혁의 목표를 정리를 해서 내정 개혁한 20개 조목을 만들어서 그거를
고종과 민비 그리고 대신들 앞에서 그거를 말하자면 강연을 합니다. 그
내용을 우리가 같이 살펴보면요. 그 전까지 조선의
정부라는 것이 어땠었고 갑장을 통해서 이루려는 개혁이 어떤 면에서
근대적이고 합리적인가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하게이
내정 개혁 안 20 조목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11월
20일 경복궁 함화당에서 이노의 가오로가이
강연을 합니다. 자, 내용이 이렇습니다. 1.
정권은 모두 한 곳에서 나오게 하여야 한다. 고정이 절대군주이지만 사실은
정부의 여러 가지 조직상으로 보면 모든 중요한 결정이 딱 고정을
통해서만 나오게끔 그렇게 돼 있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결정들이 국정의 결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기도 하고 서로가 모순되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하고이 이랬던 거죠. 그러니까 국정이라는 것은 일목 요학이
한 군데로부터 나와야 된다. 모든 권력은 여긴 당연히 이제 군주제니까 왕으로부터 나온 거다. 그것조차도
명확하지가 않았으니까 그것부터 이제 명확히 하는 겁니다.이 대군주에게는 정무를 직접 결제할
권한이 있고 또 법령을 지킬 의무가 있다. 왕은 고종은
모든 거를 결제할 수 있는 권한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대신
뭡니까? 군주도 왕도 법률을 지켜야 된다. 왕은 법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죠? 고종 당신도 국법을 지켜야 됩니다. 나라의 법을 지켜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3. 왕실의 사무는 나라의 정사와
분리시켜야 한다. 왕실과 국가의 정치는 완전히 다른 거죠.
근데 조선에서선 이거를 완전히 혼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재정적으로도 왕실에서 쓰는 것과
국가의 재정이 구분이 안 됐었던 거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영국의 영국의 왕실을 보면 왕실이
쓰는 예산은 국가가 딱 배정해서 정해 주는 거고 그건 왕실이 하는 일과
정부가 하는 일은 전혀 별개입니다. 그니까 물론 연결은 돼야 되고 뭐 형식적으로 왕한테 가서 재가를 받고
이런 것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들은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정부는 왕실과
모든 면에서 분리돼서 총리가 주도하는 정부는 따로 있는 거죠.
근데 그 구분이 지금 조선은 안 돼 있었던 거를 여기서 이제 그걸 명시를 하는 겁니다. 일본에 메이지가
천왕이고 천왕부가 있지만 황실이 있지만 지금 이또가 됐든 이노가
이노회가 됐든 이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정부 내각하고는 분명하게 분리를 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4. 왕실의 조직을 정해야 한다.
왕실이라는게 종친부 뭐 해갖고 여러 가지가 있고이 사람이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세금을 걷고
그러거든요. 따로따로 각자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구를 포함해서 어떻게 된게 왕실 조직이다라는 거를 명확하게
하자. 왜냐면 그래야지 정부라 정부로부터 왕실을 또 구분을 할 수가 있으니까. 그니까 너무나도 기초적인
얘기부터 지금 하는 겁니다. 왕실의 조직을 정해야 한다. 그다음 5.
의정부와 각 아암문의 직무와 권한을 정해야 한다. 각 정부 부처가 뭐를
하는데 담당하는 영역이 뭐고 그리고 거기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뭔지를
명확하게 명시를 하라는 거죠. 육조가 있고 의정부가 있고 그렇지만은 그게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어디서 명령 체계가 어떻게 돼 있고 이런 거를 좀
명확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6. 조세는 탁문에서 통일하게 하고 또 백성들에게 부거하는
조세는 일정한 비율로 하는 외에는 어떤 명목과 방법을 물러하고 징수하지
않는다. 세금은 딱 몇% 몇 퍼센트다. 계율이
얼마다라는 걸 정해 놓고 탁지부에서만 세금을 걷게 하는 거고 다른 데서는
세금을 거둘 수가 없고 거둘 때마다 비율이 세율이 달라지고 이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일도 당연한 거 같죠? 이런 거에서부터 시작하는게 갑옷 개혁입니다. 7.
왕실과 각 아문의 비용을 미리 정해야 한다. 계산이란 걸 편성해야 된다. 이런 거
정부가 써야 될 돈, 왕시 써야 될 돈을 세금을 걷어서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얼마를 쓴다. 그래서 예산을 배정을
하고 뭐 모자러면 적자 예산을 편성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예산이라는
걸 정해놓 이런 거조차도 없었던 거죠. 8. 군사에 관한 정물을 정해야
한다. 군사를 도대체 누가 통소를 할 거고 어떤 편제를 가지고 명령 체계가
이렇게 되는 거고 이런게 전혀 안 되는 거예. 무슨 청 무슨 청 했고 여러 가지
다른 군대들이 여러 개가 있고 상하로 어떻게 조직이 돼 있는 건지 명령 체계가 뭔지 이런 것부터도 다시
군제를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하는 겁니다. 9. 모든 일에서 허식을 없애고 사치한 패단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게 실제로 나라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뭐를 하는 거야지 그냥 홈잡고
괜히 멋부리고 이런 쓸데없는 일들을 하는 관청이 관리가 국가가 그런 거
하는 거 다 없어야 된다. 역시 너무나도 기초적인 얘긴지만 필요했기
때문에 얘기를 하는 거예. 10. 확률을 제정해야 된다. 형법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거죠.
대명률 이런게 있지만은 이제부터 근대 국가에서 뭐 고문을
해서도 안 되고 이제는 그랬을 때에 범죄자를 어떻게 처벌할 건가 이런 문제도
제제도를 정해야 된다. 11. 경찰권은 한 곳에서 행사해야 된다.
경찰청이라는게 따로 있어서 경찰이 한 군데 딱 조직된 상하 명령 체계가
명확한 경찰이 제도가 만들어져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12. 관리의 본무
교육을 세워 일을 엄격히 집행해야 된다.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고
그렇죠. 어느 부처에 사람이 뭐가 있고 하루에 몇 시간씩 일을 하고 그 뭐 9시부터 11시까지 12시까지
일하고 그다음에 점심 시간 한시간 있고 퇴근 시간이 5시고 6시고 이런게 다 정해져 있고 1년 동안
휴가는 매칠를 가고 뭐 하여튼 등등등 이런 당연히 있어야 되는 이런 복무
규정들이 없습니다. 그 본무 규정부터 세우자 얘기를 하는
겁니다. 13. 지방관의 권한을 제한하여 이것을 중앙정부에서 장악하여야 된다. 지방관들이 뭐를
하는지 중앙정부에서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조병갑이
백성들을 착취해서 부정 비리를 저지르고 있으면은 자기가 아는 자기
뒤를 봐주는 중앙부처에 어떤 사람한테 돈만 갖다 바치고 그러면은 중앙
정부는이 사람을 감찰하고 감시할 때 내용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도적인 것도 없고 그렇습니다. 암행어사라는게
있었다고 그러지만은 그건 진짜 가물의 콩낮이 있는 거고 있어 봐야 다
부패에서 소형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지방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당연히 중앙부처가 그걸 장악을 하고 있고 알아야 된다. 효율성을 위해서 그리고 올바른 정치를 펴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14. 관리를 등용하고 파면하는 규정을
만들어 개인의 의사로 등용하거나 파면시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관리를 등용할 때는 무슨 무슨 무슨 규정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찾는 사람이 이러 이러 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되고 공표를 우리는 당연히
하죠. 그거는 그 조직이 해야 되는 거고 공무원을 뽑으면 나라에서
정부에서 하는 거고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해야 되는 거고 이런 것이
안 돼 있고 뭡니까? 그냥 개인이 높은 사람이 영의정이면 아유 내 내
조카문 갖다 쓸게. 그럼 그냥 정부 와서 일을 하는 겁니다. 이런 일 개인이 관리를 뽑아서 마음대로시켜
갖고 관리 노릇을 하게 하는 그런 일 없어야 된다. 그 얘기가
14번째입니다. 15번째. 권세를 다투거나 또는 남을 시기하거나 이관시키는 나쁜 패단을 철저히 없애고
정치상 복수하는 관념을 가지지 않게 하야 됩니다. 고종과 민비 그다음에
대원군 뭐 개화당 끊임없이 싸우고 정권을
잡으면 피해 복수를 합니다. 이거 고만 좀 하자.라고
라고 지금 인노의 가오르가 조선 정부의 왕과 왕비와 관려들을 앉혀
놓고 하는 얘기입니다. 16. 공무암무는
아직 필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도로 짓고 항만 짓고 여러 가지 그
기관 산업 만들고 하는 이런 거를 해야 되는데 사실은 지금 조선 정부는 그런 걸 아예 할 그게 없습니다.
정부 조직 자체가 아무것도 안 돼 있으니까 공부는 조금 나중에 얘기를 하겠다. 밀어두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17. 군 기무소의 기구와 권한을 개정해야 된다. 즉 대원군이
군국 김무초를 통해서 1차 갑역을 갑옷 경장을 했었는데 그게 이제
실패로 돌아갔다는 거를 인식을 하는 거죠. 그래서 뭡니까? 군국 김무철를
폐지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내각제로 이제 가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근대적
내각제로 가기 시작하는게 2차보 경장입니다. 18. 노련한 고문관을
각 아문에 초빙하여 써야 한다. 자문할 수 있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해야 된다. 조선의 각 부처에서 전문성이 있는 일본의 관리가 됐던
누구를 불러서 그 사람을 고문관으로 임명을 해서 이제 이런 거를 일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된다. 그래서 고문관 제도를 두자. 이제 얘기입니다.
19. 유학생을 일본에 파견해야 한다. 빨리 일본에 가서 더 배워라.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는 거고 하는이
근대 교육을 좀 받도록 하니까 빨리 유학생들을 일본에라도 보내라. 그
얘기고 마지막 20번 국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 필요다. 건국인이기도 하고
그 체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 그 체제가 그리는 이상향이 뭔지 이런
거를 좀 명확히 하자. 국시를 정하자라는 얘기가
20번입니다. 20번째 내정 개혁안입니다. 인노회가
고종 내외하고 대신들 안쳐 놓고 내내 이거를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20일 날 11월 20일 날 내내 하는데도 이게 설명이 안 끝나요.
해가질 때까지 절반도 설명하지 못했다.이 노회가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날인
21일에도 다시 또 입걸해서 왜이 20스가지 안이 필요하냐,
개혁이 필요하냐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정부란 작로 기본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운영하는 겁니다라는 강연을 그 내외와 대신들을 앉혀 놓고
강연을 하고 이틀에 걸쳐서 강연을 합니다. 그다음에 자 이제 대원군을
쫓아냈습니다. 이제 다시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러면 이거를 누구한테이
개혁을 맡기느냐 아는 자기가 만들었지만 저기가 일본 공사가 와 가지고 조선의 내정을
주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 실질적으로 뒤에서는 뭘 하더라도 어쨌든 겉으로는 그걸 할 수가 없죠.
그럼 이제 다른 열강들이나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뭐라 그럽니까?
결국은 박영효를 들여야 된다는 거죠. 다시. 그니까 이게 지금 11월
20일인데 3월 달에 김옥균이 암살당하고 상해에서홍종한테
암살 당하고 거의 같은 때에 같은 날 일본에 아직 머물고 있던 박영도
또 이일찍이 죽이려고 했었는데 실패를 했던 거죠. 그래서 그 박영효가
어쨌든 나중에 다시 대원군의 초청으로 귀국을 했던 거고 그렇지만 귀국을
해서 아무 일을 못 하고 있었던 거죠. 갑신정변 때
그 피를 보게 하고 민시들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그렇죠. 그러고 나서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피신했던 사람이고 역적이기 때문에이 사람을
다시 데리고 와서 조선의 국정 개혁을 맡긴다라는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인호의 가오르의 입장에서는 대안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박영을 다시
데려오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박영를 데려오고 오면서 박영가 고정하고
민비하고 화해를 하도록 그러면서 이노에는이
그랬던답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보신 전쟁
같은 걸 치르면서 혁명의 가담했던 측과 반대 튼측과 전쟁까지 치르고 그죠. 수많은 살상이
일어나고 그럽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일본의 A주신을 일으킨 사람들은 한때
원수였던 사람들까지도 전부 다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서 애조공학이라
공화국이라는 걸 세워서 끝까지 메이지 정보에 반대했던 에노모또 이런 사람들을 전부 다 나중에 다시 구제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다 같이 정부에 간여를 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조선에서도
나라의 개혁을 위해서 진정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아무리 서로 전에는 싸웠던 정적들이라도 분명히 우리 같이
화해를 하면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개혁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니까 나라를 살리려면
그래서 힘을 합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11월 30일
이노의 가오르가 총리 대신 외무 대신한테 박영효
서광범을 사면해 달라 그럽니다. 허광범도 미국에 있었는데 대원군이 편지를 보내서 초청을 했고 일본이
돈을 대서 일본에까지는 건너와 있었고 다만 귀국은 못 하고 있죠. 왜?
서광몸도 역적이었으니까. 갑신 정면을 일으켰다 실패한 역적이니까. 그러니까는 지금 이노혜 가오르가 조선
정부한테 가서 우선 박영하고 서광범을 사면시켜 달라. 그 사면을 해 달라고
고종한테 알려해 달라. 이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왜 사면해 줘야 되는지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생각해 볼 때
박씨와 서씨 및 모든 사람들은 지난 갑심년에 내정 이혁을 꾀하다가 불행이
중도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만 그분들의 뜻을 살펴보면 세도를 부리며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척신들의 패단을 일소하여 그 정권을 왕실로 돌아가게
하고 아울로 국가독립의 기초를 공고해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행동 거지를 말하더라도 비록 평온한 국면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국가를
생각하는 간절한 뜻을 돌이켜 볼 때 차라리 가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언정 큰 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금년 7월에 귀정부에서 구습을 일소하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할 정치를 시행하여 박영효 서광범 이하의 모든 사람들과 능력이
있어 그 잘못을 용서하여 기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소환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귀국을 위하여 경사스러운 일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후
귀정부에서는이 두 사람을 어디에 쓰려는지 아무런 소문도 없었고 또 요즘 추세를 보면
사면을 해 줄 듯하면서도 사면을 해 주지 않으므로 필시이 두 사람을 유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지없이 한심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일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귀국의 정치는 공무에 전력하여 중흥의 대업을 이륙할 때임이므로 이런 일까지 돌아볼 수
없다니 매우 서글니다. 그러므로 본 공사는 귀신께
간청한 후 그 사유를 구비하여 대군주 폐하 앞에서 은지를 내려 주시도록
아뢰겠습니다. 그리하여 갑신에 죄를 지었던 박영효 소강범 그리고 그와
같이 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특사의 은전을 인류적으로 시행하여 그들로 하여금 본래의 품계와 직위를 되찾게
하고 또 기용할 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그 제지를 헤아려서 알맞은
일을 맡긴 다음 그들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게 하여 중흥의 대업을 돕게 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본사도 귀국을 위하여 경화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특별히 흉금을 털어놓고 감히 귀신에게 아뢰오니
명백하게 살펴 주시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삼가 이만 줄이며 많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김홍집
총리 대신하고 김윤식 외모 대신한테 이노의 가오르가이 글을 올렸다.
그런데 12월 1일 날 답이 옵니다. 아직은 박영와 석강검을 사면하게
이르다는 답이 옵니다. 이번에 받은 유지에 지금은 인심이 안정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런 사람들을 갑자기 사면할 수 없다는 것이 성상의
뜻이었습니다라고 김홍집하고 김윤식이 이노한테 답을
합니다. 결국 이노회가 고종을 만나서 직접 설득을 하고 협상을 합니다.
무슨 협상을 하느냐? 이때만 하더라도 고종은 누군가가 자기를 끊임없이
폐위시키려고 한다라는 그 불안에 떠는 사람입니다. 그니까 실제로 뭐 뭐 대원은 노골적으로 고정의 조카
이준영을 어 왕자에다 안치겠다라고 했었던 사람이고 갑신 정변도 겪어봤고 이제 이러니까 고정은 끊임없이 자기의
지위에 대해서 이제 불안해 하는 거죠. 그걸 이용해서 이노회가 가서 확인을 시켜 주는 겁니다. 만일에
민비가 정말로 자기가 말했듯이 모든 정치에서 손을 뛰게 한다면은 일본
정부가 그죠. 자기 인호의 가오루가 고정을 지키겠고 민비를 지키겠고
그리고 왕세자를 지키겠다. 지켜 주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 약속을 하고서는함으로써 박용효에 대한 그들의 의구심을
해속했다 이럽니다. 그리고 박영효를 다시 정부에서 받아들이도록 고정을
설득합니다. 12월 9일 고정은 갑신정변 주모자들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대사연령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이노에는 이때에이
상황을 무스 외모 대신한테 전하면서 그래서 이제 소강범도 일본에서 건너올
수 있습니다. 조선으로 다시 입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10년 망명하고 있다가 1번까지 와 있다가
막상 건너오지 귀국하지 못하고 있던 서광범이 12월 13일 날 재물포에 도착하고 14일 날 한양에 도착을
합니다. 그러니까 갑신 정변 일으킨지 딱 10년 만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어 그 재밌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은 동학군을 토벌하던 일본군이 옥천에 갔을 때
옥천에서 동학군을 토벌하러 갔을 때 거기에서 우연히 김옥균의
부인과 딸을 찾습니다. 10년 전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간 이후이
부인과 딸들은 몰래 숨어 살았던 거죠. 그 숨어 살던 사람들을
일본군이 해피면 찾아냅니다. 그래서 비록 김옥규는 그전 3월에 암살돼서
없었지만은이 모녀를 서울로 불러서 다시 서광범을
만나게 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옥균 부인하고 딸은 자기 남편의
생사도 모르고 있다가 동료였던 서광범을 10년 만에 일으나게
됩니다. 그 보고서를 이노회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 후 3일이지나
12월 13일 서광범 일행이 인천에 도착하고 다음날인 14일 입경하였는데
이날 우연히 김옥균의 처와 딸이 충청도 옥천에서 호송되어 경성에 도착하였습니다. 당초의 김옥균의 처와
딸에 대해서는 금년 봄 일에 누차 이들을 찾아내려 힘썼지만 혹은 생존에
있다고도 하고 혹은 살해되었다고도 해서 그 설이 한결 같지 않았는데 이번 동학당을 토벌하는 일본 군대가
옥천 근방에서 수괴를 수색하던 중 뜻밖에도 위에 모녀 이인을
찾아냈으므로 일본 군대에 소속되어 있는 조선 통변 박윤영으로 하여금 그
보호를 담당하게 하여 경성으로 호송. 현재 박서 두 사람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이 두 사람은 옥천에서 극히 불쌍한 모습으로 살아왔으며 경성에
도착하기까지는 김옥균이 사려된 사실마저 확실히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 역사의 슬픈 슬픈 장면입니다. 그
후에 이제이 김옥균의 부인과 딸이 어떻게 됐는지는 뭐 기록이 없지만은
어쨌든 가보 갑신 정변이 일어는지 10년 후에도 처참하게 상해 암살된
어 김옥균의 부인과 딸이 살아서 가장 친했던 동료였던 박영효와 서광범이
어떻게 보면 금미 환양이죠. 10년 만에 역적용을 벗고 돌아오게 되는데
비록 자신의 아버지 김옥교는 죽었지만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그때 같이 김옥균 박영호 성범이 꿈꾸던 그런 개혁을 다시 추진할 수
있게 된 참 어 놀라운 또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12월 17일
군국 지무처가 폐지가 되고 근대식 내각이 설치가 됩니다. 그래서
박용현은 내무 대신에 서광범은 법부 대신에 임명이 됩니다. 그래서
서광범이 그때에 법부 대신이 되면서 법관 양송서라는 조선 최초의 근대
법률 법학 로스쿨도 만들고 2차 동학란에서 결국은 체포돼서 압된
전봉준 녹두장군 전봉준을 취조하는 것도 소방법이 2차 가보 현장은
이들에 의해서 시작이 됩니다. 12월 20일 이노에는 무스 대신한테 새
내각을 이제 출범시키고 나서 이러한 보고서를 올립니다. 금년 7월 사변 이후이 나라 정부는 오로지
개혁당으로서 조직되었는 바 대원군의 전행이 점점 증대됨에 따라 차례로
경질되어 반언 수급파를 혼성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본관이 부임한 후이 나라 총리, 외무,
탁지, 재대신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구왕전학께서도 박영 서광범 등을
영입하여 강려로 삼으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17일에
별기의 인명과 같이 신내각이 조직되고 동시에 공문식 정전시사 조례 및 병권
통일 등에 관하여 수통의 측령을 발표하였습니다. 따라서 결제에 네각원
인명 공문식 정전시사 조례를 첨부하여이 점 말씀드립니다. 근데
거기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총리 대신 김홍집, 내무 대신 박영효 외무 대신 김윤식, 탁지 대신 어윤중,
학부 대신 박정, 군부 대신 조희현, 법부 대신 서광범, 복무 대신
신기선, 농상대신 엄세영 이렇게 되면서 박영효는 내무 대신이지만
사실은 실질적인 권력은 박영가 잡습니다.
[음악]
12월 21일이 노예는 일본의 내무대신 비서관인
노무라 야스씨한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냅니다. 내정 개혁에 관하여 종묘에 맹세하는
일은 드디어 내일 거행하기로 결정되었다.이 이 의식에는 국왕은 물론 왕비와 대원군도 참리할 예정이며
국왕과 왕비 모두 우리에게 매우 의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왕비는 이미
우리 수중의 사람이 되었다. 또 박영와 국광 왕비 간의 극히 친밀감을
가지고 상대하도록 만들었다. 대원군은 여전히 노회한 언행을 고치지 않아
조금도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드디어 내정 개혁 실시에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러면서 여기서 종묘에 가서 맹세하는
식을 거행하겠다. 그게 바로 홍범 14조를 발표하겠다를
하는 겁니다. 이게 지금 1번이 메이신을 통해 갖고 오계조 서문이라는
거를 천왕으로 하여금 메이지로 하여금 발표하게함으로써 본건제를 철패하고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 매주신의 신호탄 같은 그식이 있었습니다. 오겠죠. 서문식.
거를 그대로 참조를 해서 조선에서도 드디어 국왕과 왕비와 모든 대신들이 종묘에 가서 그
앞에서 우리가 이제 드디어 근대 국가로 새롭게 출범을 합니다. 그리고
근대 국가라는 것은 자고로 이러 이러 이러한 국실을 따르는 나라입니다라는
거를 그 예식을 선포하도록 다 결정을 했했습니다라는 것까지 일본 정부의
본국 정부의 인호회가 보고서를 올립니다. 그런데 그 홍범 14조의
원래 날짜가 원래 1월 22일 날 곧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정
내외가 감기가 됩니다. 그래서 그게 연기가 돼서 실제로는 홍범 14조
선포하는시기 1895년 1월 7일
거행이 됩니다. 그래서 이때에 고정은 이노의 가오르와 네무대신 박용효
그러니까 일본의 메이지신을 잘 아는 박용효 그죠. 그리고 실제로 메이지신을 이끌었던 인노의 가오르가
다 연출을 해주고 그 충고에 따라서 대원군 왕세자 종친 및 군신을
거느리고 고정이 종묘에 나가서 독립서검문
그리고 홍범 14조를 선포합니다. 일주일 후인 1월 14일에는 사직단에
도가서 홍범 14조를 순한글 순한문 국한문 혼용채로 작성하여서
선포합니다. 독립서검문 이렇게 내용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제차 계국 503년 12월 12일에 조선시왕은 감소 고우 황조성의 신령께
전하노니 소자 짐이 어려서부터 역대 조상님들의 지대한 기업을 받들어 지킨
지까지 31년 항상 하늘을 두렵게 섬겨 왔습니다. 역대 조상님들께서
도와주신 덕에 여러 번 어려운 일을 만났으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그치지 아니했으니이 어찌 소자,
짐이, 천심을 받들어 된 것이라 하겠습니까? 역대 조상님들의 신령이 권유하고 붙드신 까닭기입니다. 우리
조상께서 국가 기업을 날로 더 번창하게 하시고 우리 뒷사람을 도우시어 503년을 지내고 짐의 대에
이르러 시운이 변하고 문화와 문물이 열려 이웃 나라가 이끌어 주었습니다.
조종의 의견이 합쳐져서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워 우리 국가를 영원히 굳게
지키고자 합니다. 짐 소자 감히 하늘이 주는 좋은 기회를 따라 역대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보전할 것이며 더욱 분발하여 선인의 공덕을
빚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나라의 기운이 융성하며 신민이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누려서 자주 독립의
기초를 완전하게 하고자 합니다. 과거의 관습에 구해받지 않고 편안한
방법에 빠지지 않으면서 역대 조상님들의 뒤를 입고 세상 형편을 살펴 내정을 고치고 회단을 바로잡기
위해 짐소자가 홍범 14조를 들어 하늘에 계신 우리 조상님들의 신령께
맹세하여 알립니다. 역대 조상님들이 주신 큰 공에 힘입어 감히 어기지
말고 능히 공을 세우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지켜봐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홍보실 사조가 나옵니다.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1번이 주도한 거고 역시 개화파 박영효
서광범이 주도하기 때문에 뭡니까? 중국의 속방 지위로부터 벗어나야겠다라는 얘기죠.
그래서 청에 의존하지 않는다. 청의 속방 아니다. 조공 받치지 않는다. 얘기를
하는 겁니다. 왕실 전범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아까 이노웨이가 말했던 그 20개 개혁관에 따라서
왕실의 범위가 뭐고 외척은 도대체 뭐고 이런 거를 명확히 해서 서로가 겹치지 않게
명확하게 분리를 한다 얘기를 하는 겁니다. 3.이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치 않는다. 그죠? 무슨 안동김 씨가 됐든 어 풍양조
씨가 됐든 여흥민 씨가 됐 외척들은 절대 국정에 간섭하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왕실 따로 있고 국가 따로 있다.
그죠? 정부 따로 있다.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5. 의정부 및 각 아문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 아문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하고 이로써 각 암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구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회를 연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그 이노의 가오르가 했던 20개 내정 개혁 거의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청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 독립 국가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이 독립 국가라는 것을 선포하는 선언문이었었습니다.
왕위 계승의 법칙을 따로 만든다. 새로 만든다. 그건 뭡니까?
청의 책봉 받지 않겠다는 얘기. 왕과 세자의 정통성은
청나라의 책봉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우리 자체적으로 갖는다. 청속방의
지위 이제 영원히 끊는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종친
외척의 내정 간섭 못 한다. 그건 이제 민비 대원군의 내정 관습을
맡겠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형식 자체가 참 재밌습니다. 그니까 홍범 14조가 종묘 사직에 나가서 이런
거를 발표하는 거는 사실은 뭡니까? 지극히 유교적인 질서이고 지극히
중화질서의 맥락에서 하는 일이죠. 임금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는
것이 종묘와 사직에 가서 하는 거였는데 그 유교적인 지극히 본건적인 형식을 빌어서 뭐를 하는 겁니까?
사실은 그 전통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국가임을 선포를 하는 것이
바로 홍범 14조 선언입니다.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뭐냐면은
사실은 박영하고 서강범 개화파들은 아예 종묘 사직에 나가고 이러는 거
하지 말자 그랬었습니다. 아예 그냥 우리 완전히 서양식으로 그대식으로 새롭게 하자 그랬는데 오히려 인노의
가우루가 조선에서 개혁이 성공하려 그러면 너무 그렇게 급진적으로 하지 말자. 내용은 우리가 근대 개혁으로
가더라도 형식은 전통 형식을 빌어야지 오히려 개혁에 대한 저항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인호의 가오루가 우겨서 종묘 사직에 가서 고종이 홍범
14절을 아래게 된 것입니다.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은 뭐
어떻게 해야지 된다라는 그 전략 같은 것도 역시 일본에서 수없는 급진
개혁을 지금 몇십 년째 추진해 오은 유신 세력의 핵심 인물인 이호회가
정확히 오히려 알았던 거죠. 그리고 나서 이제 박영가 네무 대신이 돼서
이제 정권을 장악을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 어떻게 된 겁니까?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완전히 실패하고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가 미국으로 또 건너갔다가 샌프란시스코에다 또 실패하고 돌아와서
고정하고 민비가 보내는 자들 피해 가면서 암살 피해 가면서 개혁을 어떻게 할 건지 청사진을 어 마련해
보고 그런 일들을 계속해서 하면서도 사실 다른 한쪽으로는 은제 박영가
자기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서 자기가 권력을 정권을 잡고서 개혁을
추진하리라고 상상이 이나 했겠습니까? 근데 그런 기적이 벌어진 거죠. 일어난 겁니다.
비록 가장 중요했던 동지 김옥규는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딱 9개월
전에 암살되지만 자신하고 다른 동료들은 지금
드디어 권력을 잡고 실패했던 그 근대 국가로 가는 개혁을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에 박영가 네모함은 훈령이라는 거를 내려서 전국에 배포를
합니다. 이제 나라는 이렇게 되는 것이다라는 새 근대 국가의 모습을
모든 백성들한테 알리기 위해서 네모함은 제1호 훈련이라는 거를
반포하고 하다를 합니다. 지난 12월 12일 양력 1월 7일 우리 성상폐학께서 우리나라의 자주의
기업으로서 종묘에 나아가 서고하였으며 그다음 날에는 대사 사직에 나아갔고
동시에 신민에 포고하는 유능을 내리셨다.이는 우리 대조손 대군주
폐하의 신민은 성의하여도 가하다. 대저우리 대조선국은 본래 당당한 자주
독립국이었으나 중간에 천국의 간섭을 받아 국채를 손상하고 국권을 상처내게
하고 우리 성상 폐하가 운회의 형세를 고찰하여 확연 건단을 흔들며 중흥의
공업을 기도하여 동력의 홍기를하고 천국의 의부하는 구습을 할단하셨다.
국가의 경복과 신민의 영광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국시 이에 따라
또한 일정하게 된다. 그런데 불량 무례의 도당, 국가의 대의를 망각하고
또한 천국을 사모하고 무한의 와언을 만들어 인심을 선동하고 국시를 동역케
하니이는 우리 성상폐하에 대한 불충불경의 심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부류는 붙잡아 불력의
국적으로 처벌해야 되므로 오직 우리 조선구 대소인은 우리 성상태하에
홍공을 흠승하고 심의를 극하여 자주 독립의 새 사업을 공수하여 와원
선동을 하는 국적이 있을 때에는 공공할 것을 발망함. 그니까 박영효는
다시 한번 내모화문 훈련 일호를 통해 가지고 우리는 자주 독립국이다.
청의 속방이라고 하는 자꾸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은 당장 보고해 일망 타진해야 된다. 아직도
조선이 독립 국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리고 실제로 독립국가가
뭐라는 그 개념조차 얻는 사람들이 아직도 대부분이다. 사실은 그런 망발
못 하게 해야 된다. 막아야 된다. 우리는 자주 독립국이다라는 거를 다시
한번 주입시키는 그런 훈령을 박영이가 내립니다. 그리고 나서
고종을 시켜서 교육 입국 조소라는 거를
반포하게끔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짐이 생각하건데 조종께서 업을 시작하시고 통을 이으사 이제
504년이 지났도다.이는 실로 우리 열조의 교화와 덕택이 인심에 졌고
우리 신민이 능히 그 충해를 다한데 있도다. 그러므로 짐이 한량없이 큰이 역사를 이어나가고자 밤낮으로 걱정하는
바는 오직 조종의 주유훈을 받들려는 것이니 너희들 신민은 짐의 마음을
본받을지어다. 너희들 신민의 조선은 곧 우리 조종이 보유한어진 신민이었고
너희들 신민은 또한 조선의 충해를 잘 이었으니 곧 짐이 보유하는어진 신민이로다. 짐과 너희들 신민이 힘을
같이하여 조종의 큰 털을 힘쓰지 아니하면 나라가 공고하기를 바라 심이 어렵도다. 은혜의 형세를 살펴보건데
부강하여 독립하여 웅시하는 모든 나라는 모두 다 그 인민의 지식이
계명하였도다.이 이 지식의 계명은 곧 교육의 선미로 이륙된 것이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라 하리로다. 그러므로 짐은 군사의 자리에 있어 교육에 책임을 지노라.
또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이름과 실제 소형을 먼저 분별하여 하리로다. 독서나 습자로 옛사람의
찌꺼기를 줍기에 몰두하여 시세의 대국에 눈 어두운 자는 비록 그
문장이 고금을 능가할지라도 쓸데없는 서생에 지나지 못하리로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지금 유교 경전 공부하는 거는 이거는 필요 없다라고 고정을 통해서 이걸 반포하게 하는 겁니다.
이제 짐이 교육의 강령을 보이노니 헛 이름을 물리치고 실용을 취할지어다.
곧 덕을 기를지니 오륜의 행실을 닦아 속강을 물란하게 하지 말고 풍교를
세워 인의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킬지어다.
다음은 몸을 기를지니 근로와 역행을 주로 하며 게으음과 평안함을 탐하지
말고 괴롭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말며 너희의 근육을 굳게 하고 뼈를 튼튼히
하여 강장하고 병없는 낙을 누려받을지어다. 다음은 치을 기를지니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추음함으로써 지을 닫고 성을 일하고 아름답고 미운
것과 옳고 그은 것과 길고 짧은 데서 나와 남의 구역을 세우지 말고 정밀히
연구하고 널리 통하기를 힘쓸지어다. 그리고 한 몸에 사를 꾀하지 말고
공중의 이익을 도모할지어다.이 세 가지는 교육의 관계이니라. 짐은 정부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너희들 신민의 학식으로서 국가중공의 대공을 세우게
하려 하노니 너희들 신민은 충분하고 위국하는 마음으로 너희의 덕과
몸과지를 기를지어다.이 나라의 분한을 대적할이 오직 너희들 신민이요 국가의 모욕을
막을리 오직 너희들 신민이니 이것은 다 너희들 신민의 본분이로다. 학식의 등급으로 그 공효의 고화를 아뢰되
이러한 일로 사항을 줬다가 사소한 결단이 있더라도 너희들 신민은 또한
이것이 너희들의 교육이 밝지 못한 탓이라고 말할지어다. 상하가 마음을 같이 하기를 힘쓸지어다. 너희들
신민의 마음이 곧 짐의 마음이니 힘쓸지어다. 진실로 이와 같을진데 짐은 조종의 덕광을 사방에 날릴
것이요. 너희들 신민 또는 너희들 선조의어진 자식과 착한 손자가 될
것이니 힘쓸지어다. 전통과 현대가
계속해서 섞여 있죠. 그러니까 전부 다 전통적인 윤리도 얘기 같으면서도
집어넣는게 실용. 서양의 과학 같은 걸 제대로 끝까지
공부해야 되 공부를 해야 된다라는 거를 집어넣는 거죠.이 이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사실은
힘들고 특히 몇 번이나 이런 거를 했다가 실패했고 실제로 지배 계층인
사대부들은 원하지 않는 그런 개혁을 지금 굳이 추진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여러 가지 전통과 현대를 혼합시켜 갖고 중도적이고 어떻게 보면 타협적인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개혁을 뿌리내리려고 애를 수는 모습이
영역히 보입니다. 자, 그래서 인호의 가오로건 들어와서 2차 동학란을
진압을 하고 대원군을 정기에서 물러나게 하고 민비가 정부에 개입하지 못하게 그렇게
하고 그리고 갑신정변의 실패해서 역으로 쫓겨나 있던 박영하고 서광범을
다시 데려와서 고종하고 민비하고 화해를 시켜서 박영하고 서광범한테 새
정부를 맡겨서 내각제라는 서양 식 근대식 정부 조직까지도 새로 만들어서
그거를 맡겨서 제2차 갑을 시작을 합니다.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힘들고 했는지 감히 상상이 갑니다. 자, 그런데
어떻게 보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 거예요. 뭐냐면 탁지부가 나가서 그럼 세금을 걷둬야 되고 그러면 이게 다
뭐가 필요합니까? 재정이 필요하죠. 근데 조선에 돈이 있습니까?
완전히 지금 재정이 바닥이 나 있는 나라입니다. 진짜 본격적으로 개혁을 할 수 있겠다 싶게 됐는데 딱
동착하는 것이 재정 문제입니다. 그래서 1월 8일 날 그러니까 2차
갑보장 박용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무스 무네미스 외무 대신한테 이노의
가우루가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냅니다. 저는 명목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확립하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독립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돈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네 개의 독립된
단위로 나누어져 있었던 육부는 모두 병부를 중심으로 재조직되었습니다. 이제 병부 산하의 새 조직들을 만들고
인력과 물자를 모두 보강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인력을 내보내고 보다 좋은
사람들을 뽑아야 합니다.이를 이를 위해서는 지난 5개월간 지불하지 못한 월급을 주어야 하지만
돈이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이를 위해 필요한 30만 엔만 엔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조선 정부의 공채를 발행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은행가들로 하여금 투자를 하도록 하는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정부가 국방비에서
500만의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이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의회에서는 사후에 추인을 받으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노의 가오로 역시 막강한 인물이죠. 그러니까 외무 대신한테 자기네 국방비로
해 놓은 그 예산 중에서 그냥 500만엔 우선 우리한테 보내라.
조선에 갑옷 경장 2차 갑장 하려면 엄청난 돈이데 우선 갖다 쓰자. 그거
나중에 그냥 의회에서 추인을 받자 이렇게 이제 하는 거죠.
무츠가 답신을 합니다. 1월 10일자 답신입니다. 조선 차관
문제는 현재 주요 은행들과 협의 중이며 성공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총리 대신과 대장성 대신
역시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들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경해 161호 전보 내용에 대한
정부의 결정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총리 대신과 협의한
것입니다. 총리 대신이 이또 이런 부분입니다. 군대 우리 군대에다 쓰라고 해 놓은 500만을 갖다 쓰는
건 아예 언급도 안 하죠.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얘기를 한 거 그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면서 아 지금 총리
대신도 그렇고 대장성 대신도 그렇고 전부 다 열심히 은행들을 설득하고 해 갖고 당신이 원하는 돈을 마련해
보고자 하고 있으니까 일단 노력하고 있다는 거 알고 기다려 봐라. 그러면서 뭐라 그 합니까? 그때 이또
여러분이 총리되셔 논이 한 거야.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호회가 별다른 말을 못 하도록.
그랬더니 이노회가 1월 11일 날 당장 답신합니다. 경해 195호 전보
수신하였음. 30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 시부사와 대장성장이 함께
제안을 받아들이고 곧바로이를 이행할 것을 강하게 권고합니다. 시부사와 H라는 사람이 일본의 일본 최초의
근대 기업가라고 일본 사람이 추항하는 일본 집회에 나오는 바로 그 시부사에 있습니다.이 사람들한테 이제 돈을
꾸자이는 거죠. 시부사와 대장 성장이 함께 제한을 받아들이고 곧바로이를
이행할 것을 강하게 공고함. 그렇지 않다면 조선 정부가 올해를 넘기는 것이 불가능함 이러한 내용을 다이지
은행으로 하여금 시부사에게 직접 전보를 보내도록 하였음. 내가 161호 전부에 보낸 내용을 즉각
내각회에 상정할 것. 경의 은행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 중에도 조선의 군대는 내 제한에 따라 재편되고
있으며 이제는 조선측이 계속해서 차관이 실현되도록 압력을 놓고 있음.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음. 확실한 답이 없이 내가 이곳에 더 있다는 것은 불가능함. 은행가들과의 협상이 진행 중이라도
내가 제안한 방안을네 각이 승인한다면 곧바로 채택할 것. 돈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나에게는 상관이 없음. 내가
원하는 것은 빠른 결론임. 따라서 은행가들과 협상을 하는 중에도 내
각으로 하여금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종영하고 가부간에 곧바로 나에게
알릴 것. 이노웨하고 무스무네미스의이
논쟁 계속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 정부로서는
청나라하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이고 그 와중에 이노의 가오로는
조선의 개혁을 위해서 엄청난 돈을 써야 되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 정부로서는
옆에 나라의 개혁을 위해서 그 돈을 쓴다라는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근데 인노의 가오루는 나를 여기까지 보내서 이걸 하라고 했으니까 이거를 해야지 지금 개혁을 해 갖고 나갈 수
있을 거 아니냐라면서 그 돈을 계속 결국은이
대화가 자기도 사람을 만나 갖고 은행가들을 만나 갖고 정부가 없이
자기가 직접 어떻게 정부 이름을 팔아서도 돈을 빌려보려 그러고 별 일을 다 합니다. 나중엔 그러다가
이제 화가 나 가지고는 막 무스 무네미스를 닭달을 합니다. 돈 좀 어떻게 쓴지
마련해라. 나한테 돈을 보내라. 조선 개혁을 해야 되면 돈이 필요하다. 이제 그 얘기를 계속해서
3월 2일 날 이노회가 또 보낸 전문이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1894년
12월 27일 제2차 갑보 경장이 시작이 되고 나서 일주일 후에 곧바로
인호회가 정부에 돈 보내 달라. 돈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꺼낸지 지금
두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실제로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것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이것을 안 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핵에게 차가운 문제를 속히 해결해 달라고 종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속히 해 줄 수 없겠습니까? 아니라면 얘기를 해 주기
바랍니다. 이노회가 대안을 해놓습니다. 이노회는요. 조선의 빛이
빚이 얼마고 일본이 조선의 세네 개 도의 세출을 담보로 조선의 500만
내지 600만 N을 빌려 주는 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조선의 재정부의
1번 관리를 파견을 하고 지방의 세금 징수 팀에도 1번 관리들 파견해서
이게 제대로 세금이 거치도록 해서 1번이 어떻게든지 그 돈을 돌려받도록 할테니까
이거 일단 돈 좀 빌려내라. 그래서 20년에 걸쳐서 상환을 하고 원금은
600 뭐 36만 5천엔 뭐 이렇게 하고 이자는 9%로 하겠다 이렇게 해
갖고 냅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거절하고 드디어 3월 3일 날
이또히로 총리 대신이 답신을 보냅니다. 지난 6월 7일 동학란이
일어나 이로 인하여 우리 정부는 군대를 보내기로 하였고 갑자기 일계 여단을 한양에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조선 개혁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리고는 청일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1년이
거의지나 우리는 거의 모든 전투를 이겼고 이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조선에 대한 정책을 명확히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로이 두
세 개의 강대국이 이제 조선과 더 가까운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청은 더 이상 개입할 수 없지만 영국과
러시아는 개입하기가 더 쉬워졌고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1번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조선의
독립을 보호한다면 아무 나라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일 우리의
조선 정책이 실패한다면이 대국들이 우리를 비판하기 시작할 것이고 조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경은 올바른 정책을 위반하였고 개혁의
원칙을 확립하였습니다.이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한
가지는 전쟁이 끝난 후 재정적인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일 개혁에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 재정 상황은 악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악순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의 정책을 주시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가 돈을 빌려 주데 있어서는 국제법을
따라야 하고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자세한 사항은 스에마츠에게 설명해 놨으니 그로부터
드리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런 큰
돈을 조선 정부한테 빌려서 개혁을 추진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전쟁을 이겨가고 있고 그래서 더욱더 열강들은 우리이 사태를 주시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개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라는 사실이 바깥으로 완전히 드러나기 시작하면 다른
열광들의 개입을 불러올 것이고 청나라고 이렇게 피흘리면서 전쟁을 해온 그 모든 결과가 또 무산이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더군다나 돈을 빌려 주려면은 국제법에 따라서 다 누가
보더라도 말이 되는 조건에 따라서 해야 되는데 지금 그게 안 되니까 그냥 우리 아는 인맥 통해 갖고 대충
이렇게 해 갖고 돈 빌려 달라 자꾸 그러는데 당신도 알지 않어 우리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차관을 제공하는 것에 것을 거절을
합니다. 이노의 가오르의 좌절이 여기에서 오는 겁니다. 2차 갑옷 경장의 좌절이
여기에서 오는 겁니다. 사실은 정치적으로 틀은 다 만들어 놓고 그리고 전쟁은 이기고 있고 그러니까
이게 덜 될 거 같았는데 거기에 필요한 그 엄청난 돈을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지는 거고 그 조달할 유일한 방법은 외세의 간섭을 불러드릴 수밖에 없는
그런 역설적인 결과만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이노우의 조선 개혁의 꿈이
무너지는 거고 2차 갑경도 한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여기서 보시면
일본의자들이 얼마나 모든 문제를 치밀하게 다면적으로 보고 고려하고
생각하고 동료들끼리 대등한 입장에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고 그러면서 국정을 논의해 나가고 결정해 나가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네. 오늘은 인노에 가오르의 어 조선공사 부임으로 시작된
2차 가보 경장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조선 정부를 어떻게 개 개하려고 했었든지 그 청사진이
모였는지 우리가 정확히 살펴봤고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에 결국은 봉착을
하면서 어 개혁이 추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까지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일본 군는 루은 루슨을
함락시켜서 요동반도를 취하고 그리고 외하이웨이로 건너가서 외하이웨이에
정박해 있던 마지막까지 피하고 있던 북양함대를 괴멸시키면서 전쟁을 종결로
이끄는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음악]
[음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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