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Ⅱ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0회
법률방송
14,189 views Nov 12, 2025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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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일본의 랴오둥반도 할양을 막고 나선 삼국간섭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처음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던 독일은 왜 러시아와 함께 일본에 간섭하기 시작했는지, 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간섭에 대해 일본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따져보고 이 사건이 근대 동북아시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또 이 사건에 현대 한국 사회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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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enerated video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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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은 삼국간섭이 진행되는 긴박한 외교 과정과 일본 지도부가 위기 속에서 취한 대응 전략을 상세히 분석합니다. 또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당시 조선의 운명과 메이지 정부가 겪은 내부적 갈등을 역사적 기록을 통해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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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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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이어서 삼국 간섭에 대해서 말씀을 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삼국 간섭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게 너무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시 어
일본이 어떻게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가?
그리고 그 결과가 저렇게 놀랍게 당시 열광들과
어 맞서서 국익을 관철시키는 협상들을 끊임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는 참 놀라웠을 거고요. 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참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 과정에서 독일이 도대체 어떻게
삼국 간섭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리고 결국은 실제로 삼국
간섭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일본이 일본의 국민들이 어떤 것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을 하기 시작했는지 그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는 것을 반대 어 하기로 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혼자서 반대를 했다가는 일본을 완전히 적으로 돌려 놓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맞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열강들을 설득해서 같이 간섭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러니까 로바노회상이
사르 니콜라이한테도 그렇게 상주를 했었고 니콜라이도 그래 다른 열강들하고 어떻게든지 손을 잡아서
같이 하자. 이렇게 얘기를 했던 겁니다. 근데 이제 여기서 당연히 제일 중요한 것은 영국.
둘째가 독일입니다.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이니까 당연히 중요했는데
영국은 처음부터 자기는 간섭을 안 한다라는 것을 분명히 했었습니다. 따라서 그다음에는 독일입니다. 타이서
빌레 1세 지금 빌레름 2세 아버지 때부터 비스마르크의 지도하의
유럽 대륙의 최강 국으로 부상을 했고 중국에 있어서도 중국에서 무역으로
봤을 때에 영국당으로 가장 많은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어
독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도 어 중국에서 어 아주 큰 어 이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독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처음부터 청일 전쟁 초기부터 1번 편이었었습니다. 청일 전쟁 개전
초기부터 독일은 어 열강들이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그랬었습니다. 심지 독일의 외무차관 어 로텐은
당시 주독일 러시아 대리공사했던 찰리커프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요.
유럽인들이 동양인들 사이의 전쟁으로부터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 무기를 파는 것밖에
없다. 그러면서 청일 전쟁은 그냥 우리 유럽에서는 다 관망을 하고
양쪽에 무기는 필요할테니까 그 무기나 팔아서 이윤이나 보자. 이런 정도로 방관을 하고 절대 우리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봤던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뭡니까? 일본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승리를 해서 심지어는
베이징까지 점령을 하려고 그지경까지 갈 거라고 아무도 생각을 못 했고
대충 둘이서 싸우다 지지쳐서 나가 떨어지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이제 일본이 파죽 지세로
베이징을 향해서 가니까 갑자기 계산들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독일의 카이저 빌레 이세도 전쟁 초기에는 야 용맹한 외놈들 플cky
little j스라고 그러면서 일본군들이 너무 용맹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참 경의를 표하고 전쟁에서
부상당한 일본 병사들 그리고 어 청의 장교와 병사들이 독일이 일본에서
운영하고 있는 해군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하게 배려를 하고
그럽니다. 그럴만큼 일본한테 굉장히 호위적이었던게 독일의 카이더 빌렐름 이세였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1894년 11월 15일에 5일에도 빌레미 이세가 아홉기 주 독일 일본 공사를 저치
불러서 다른 열강들이 여기에 개입하는 거를 전쟁에 개입권을 자기가 막왔다
그러면서 이제 막 자화자찬을 하고서 어 그런 그러는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일본 공사였던 그러니까 주독일 일본 공사 아홉개의 슈조는
어우 독일은 완전히 우리 편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은 이기적인 의도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다
라면서 무스에게 독일 정부에게는 일본의 평화 조건을 미리 알려 줄 거라 알려주라. 그러니까 요동반도를
활량받겠다고 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그냥 독일은 워낙 우리 편이니까 알려주자 이렇게까지 자기 외모 대신
무수한테 권고를 하는 보고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자, 그럼 아웃기 슈소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드릴게요.
아홉키 슈조는 조슈 사무라이입니다. 그러니까는 지금 야마구찌 현이죠. 그중에서 이제 의사 사무라입니다.
알로 태어나서 하기에 있는 명륜관 메리관이라는 그 명륜관이라는
학교에서 그리고 나가사기에서 서양과학과 난구 그죠. 난학을 그 네덜랜드 학을
어 공부를 합니다. 1868년에는 조주번의 장학생으로
어 법을 공부하라고 독일에 파견이 됩니다. 근데 법만 공부하는게 아니라 서양의 의학, 정치학, 군사학,
경제학 등 답면으로 공부를 하고 무슨 농사 짓는 법부터 시작해서 정말로
호기심이 많았고 어 공부를 열심히 어 했던 인물입니다. 1873년에 이제
귀국을 해서 외무성에 입사를 하고 독일, 네덜랜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공사관하고 안에서 건물을 하고
외무상까지도 어 여김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미국
어 영국 독일의 유명한 학자들을 전부 다일본 정부의 고문으로서 전부 다
초빙을 해 갖고 어 그 고용 외국인이라는 아예 그 카테고리가 그때
있었을 정도로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역할도 아홉기 수저가 어
합니다. 나중에 1번이 갑경장을 통해서 일본의 수많은
고문들을 조선 정부 내에 임명하도록 해서 하는 것. 그게 뭐냐면 자기네가
일본이 서양으로부터 수많은 고문들을 불러 불러 갖고 각 정부처, 각 군
데마다 다 배치시켜 가지고 선진 문물을 배우려고 했던 바로 그 똑같은 방식을 조선에도 이제 일본의 그
전문가들을 보냈었던 거죠. 그 모델이 지금 아홉키 슈저가 먼저 일본에 어
적용시켰던 바로 고형 외국인 그 모델입니다. 아웃키 슈는요. 1877년에는
독일의 플러시아 출신 귀족 엘리자베스 폰 라데라는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국제 결혼을 독일 레면에서 합니다. 그래서 189 79년에 딸을 낳는데
그 딸은 독일 식으로 완전히 독일의 자작 자귀가 있는 어 아홉기
하나꽃라고 애칭이 하나거였었는데 여기 사진에도 있습니다. 부인 사진하고
그다음에 거기서 낳은 어 딸 사진이 있습니다.이 딸은 또 나중에 또 독일의 유명한
귀족 집안하고 결혼을 해서요. 지금이 사진을 보시는 아홉 개의 딸 하나와
폰 하스펠트 백작의 결혼식 사진입니다. 한 가운데
아홉 개 딸 하나 하나거가 있고 어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진짜로
국제화가 돼 있고 어 세계화가 돼 있는 일본의 한 또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 일본의 외교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까지는 독일이 완전히 1번
편이었었는데 그런데 이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지금 카이저 빌름이
갑자기 이제 무슨 생각이 들기 시작하냐면 청일 전쟁이 계속 되니까 어 뭐 일본이 이기고 있고 뭐 이런
거는 다 영맹하게 잘 싸고 있고 이런 건 좋은데 근데 여기서 지금 영국은 뭘 하고 있지?이 전쟁을 통해서
영국은 무슨 이득을 보지? 이제 이런 걱정을 또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카이저가
11월 17일 자기 수상한테 코엘로의 후작한테 전문을 하나 보냅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요. 그러니까
영국이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크에 있는
그 함대가 암대로 나다넬즈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고 한 그 전까지 영국이 그걸 꼭 막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거를 통과하도록 했다.
그리고 상하이를 비롯해서 어 여러 가지 중국에 있는 전략적 요충들을
영국이 차지하려고 그런다. 따라서 러시아와 프랑스도 분명히
중국의 여러 요지들을 차지할 것이다. 그래서 독일도 이때를 절대 놓쳐서 안
된다. 그러면서 일본과 독일이 비밀 협약을 맺어서 대만을 독일의 해양
기지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더군다나 프랑스가 뭐 대만을 눈독을 뜨
있으니까 빨리 일본과 협상을 하라 이런 황당한 전문을 보냅니다.
그러니까는 아버지 때 빌레럼 1세가 어 비스마르크를 고용을 수십년 동안을
고용을 해서 비스마르크의 그 놀라운 수환을 이용해서 독일을 통일을 하고
유럽의 최강 국가로 부상을 했는데이 아들 빌름 이세가
엉뚱한 사람이 이제 그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미스마르 쫓아내고 그때부터 이제 외교를 마음대로 하기
시작하는 거고이 사람이 결국은 독일을 1차 세계 대전 이끌어가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이때에 벌써이 전문에서 볼 수 있는게 빌레미 2세가
세상을 보는 국제정세를 보는 눈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러시아
함대가 마음대로 나다엘스를 통과하도록 영국이 그걸 허락을 하고 상해를
비롯한 중국의 모든 요청을 영국이 차지하려 그러고 프랑스도 뭐 차지하려
그러고 우리는 그러니까 일본과 잘 협상을 해서 대만을 우리 걸로 만들어야 된다라는 아이 황당한 전문을
자기 수상한테 보냅니다. 자, 그러니까 그 수상이 외상 마르샤한테
아니, 우리 황제께서 이런 전문을 보내오셨는데이 내용 중에 이게 맞는 거냐? 그랬더니 말살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없습니다. 영국이 러시아 함대가 다르다네즈를 통과하게 내버렸다. 그 말도 안 되니까 전혀
엉뚱한 얘기를 딴 얘기를 지금 듣고서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중국이야말로
아무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면서 개항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온갖 이득을 보고
있는 영국이 자기네가 갑자기 들어가서 상해부터 시작해서 일방적으로 그런 거를
차지하고 앉아 갖고 그런 일을 할 일이 전혀 없다. 그걸 위해서 뭐
빨리 정전쟁을 종결시 청일 전쟁을 종결시켜 갖고 계을 하고 그럴 일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무슨
타이완을 탐낸다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지금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를 갖다가 차지하려고 지금
온갖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러면서 마르샤이 황제께서 말씀하시면 다 어원이 없는
얘기입니다라면서 전부 다 반박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군다나 뭐 독일이 대만을 눈을 돌리고 그걸
차지하려 그런다. 그거는 지금 다른 열광들의 의심만 사고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황제께서 말씀하신
거 다 틀렸습니다. 듣지 마십시오라고 이제 자기 수상한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빌렐룸 이세가 너무나
엉뚱한 상상을 해 가지고 조사를 시킨 거지만 아무튼이 과정을
통해서 독일 외무성도 뭔가 우리가 여기에 개입해야 될
여지가 있다. 이거를 다시 검토해 봐야 될 여지가 있다라는 생각을 점점 점점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주영 독일 대사 어 파스펠트가 비스마르크 때부터 독일의
외교를 쭉 헤오던 홀스단이라는 정치국이라는게 어 그 정치국장이라는게 따로
있었습니다. 그 사람한테 어 편지를 전문을 보내서 지금 일본이 베이징을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데이 진격을 멈추게 해야 된다. 베이징이 함락되기
전에 정전쟁을 종식시켜야 되는데 그걸 위해서 영국, 러시아, 프랑스 대입을
해야 되는 거고 그걸 하기 위해서 강화 조약을 어떻게 넣는지 체결하도록 영국 저 일본하고 청에 압력을 넣어야
된다. 일본의 특기 압력을 넣야 되는데 이제 그런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다른 열강들이 개입하기
전에 우리가 독일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본이 메이징 차지하기 전에
종격을 전쟁을 종결시키는 역할을 독일이 해야지만 나중에 청이나 이런 데로부터 여러 가지 이권을 얻어낼
여지가 있다. 그러면서 개입을 해야 된다라는 전문도 보냅니다. 즉 독일은
처음에는 청하고 일본이 싸우는 거 우리가 개입할 일이 전혀 없다. 무기나
팔아서 돈이나 벌자 이랬던 독일의 입장이 점점 점점 다른
나라들이 간섭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간섭을 해 갖고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적극적인
간섭 정책으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류신을 한량받을 경우에는 극동의 평화는 연구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일본 정부의
공동으로 여러 나라가 같이 조회를 하자 즉 간섭을 하자라는 쪽으로 그
제안을 하면서 마르샬 외무 외모 대신이 그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기로 결정을 하고 빌레 이세의 제가를 받아냅니다. 같은 날 러시아
정부에 또 독일 정부가 전문을 보내서 일본에 있는
독일 공사한테 일본에 있는 러시아 공사 함께 일본 정부에 가서 안
된다라고 간섭을 하도록 하겠다고 러시아의 정부에다가도 일본 저 독일 외무상이
알리는 겁니다. 사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들하고 공동 보조를 맞춰서 일본이 여동반도를
차지하는 거를 막아야 되겠다 하고 있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간섭할 기밀를 안 보이던 독일이
카이더 빌레의 이상한 상상력이 발동이 돼서이 문제를 더 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독일의 전략가들의 공통적인 결론이 뭐였냐면
아 우리가 간섭을 해야 돼. 개입을 해야 되는 거구나. 청이 무너지는 거를 우선 살리는 것이 유럽
열강들한테는 도움이 되는 거고 특히 독일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고 그리고 기왕의 전쟁을 종식시킬 거면은 빨리
종식시켜야 되고 독일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수록 종전이 된 후에 중국으로부터 얻어낼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독일이 오히려 거꾸로 러시아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간섭으로
돌아서 시작합니다. 프랑스 역시 적극적으로 동의동의를 합니다. 파노트
프랑스 외상은 우리는 남만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이러는가 사실 우리한테 아무 상관이 없다. 왜? 프랑스는
뭡니까? 어디까지나 안남. 지금 원남을 통해서 인도, 차이나 반도를 거기를 차지하는 거죠. 그러니까
프랑스 입권은 저 남쪽에 있었습니다. 중국의 남쪽.이 동북아시아 이쪽 요동반도 이쪽은 거기에는 프랑스
입장에서 아무런 자기권하고 관계된게 없었던 거죠. 그런데 어쨌든 그
당시에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맹국이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맹국의 보조를 맞춰야만 된다라고 생각을
했었고 프랑스하고 러시아가 동맹을 맺은 거는 영국도 견제를 해야 되기면
독일도 견제를 해야 되는 거였거든요. 독일이 들어가고 그러는데 여기에 프랑스 입장에서 러시아하고 적극
보조를 맞춰야 된다. 이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영국은 사실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참참 참여하기 전까지도 혹시 자기네도 간섭을 할까
말까를 조금 망설렸었는데 이제 프랑스가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완전히 발을 빼버립니다. 사실 영국은요.
영국은 전쟁이 계속되면서 일본이 너무 일방적으로 있으니까
중국이 정말로 붕괴할 거라는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제일 사실
영국이야말로 중국 내 사정을 제일 잘합니다. 주진공사 주텐진 영국 영사 브리스가
군기처에 대해서 체진에 있는 고의 천국 관려들이 군기처가 얼마나 무지한
놈들이고 그리고 우리 지금 체제가 잘못돼서 황제한테 모든 것이 모든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그러면서 중국의 청의 체제에 대한 내부의
비판이 마고 일어나고 그 비판을 외국 사람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도 들으면서
어, 이거는 심각한 지금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거를 영국이 가장
먼저 압니다. 그리고 또 영국은 사실은 일본이 끝까지 강화조약의 조건을 안
밝히려고 하는 거에 대해서도 영심 의심이 가고이 왜이 사람들이 이러지
그러면서 갓또 일본 영 그 공사한테도 영국 외무성에서는 아니 이렇게 자꾸
질질 끌어 오히려 열강들이 개입발할 빌미를 줄 거라 그러면서 빨리 밝히고
오히려 그럽니다. 그런 그럴만큼 영국은 더 중국의 사정을 걱정을 하고
있고 일본이 일방적으로이기는 것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조건을 공개하하니까
요동반도를 내놓라고 하겠다라는 그 조건을 공개를 하고 나니까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한다고 해서 영국한테 그렇게 큰 불이익이 올 것 같지 않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개입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사실 어떻게 생각 그렇죠? 지금 영국하고 가장 큰 라이벌이 러시아인데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거는 만주를 관통하는 시베리아 황단 철도를 놓고 동보가를 재패하려는
러시아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거지 영국으로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거죠. 이미 뭐 장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서 계획을 더나 안 합니다. 그리고 사실 뭐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열강들이 저런 얘 간섭을 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들을까 하는 의구심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어쨌든 영국은 청이 아무리 와서 중제를 해 달라 그러고 간섭을 해 달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일본이 요동반도 못 갖게 보조 좀 맞춰 달라는 러시아의
청도 다 거절을 합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전쟁에서 완패를 해 버리고 내
정도 완전히 마비가 돼 버린 청한테 일본의 강화 조약을
거부하라고 우리가 얘기할 그러한 근거가 전혀 없다라고 결론을
내버리면서 영국은 간섭을 안 합니다. 영국이 이때 간섭을 안 하는 것은
나중에러 전쟁 때에 일본하고 영국이
동맹을 맺고 일본이 러시아를 깨뜨리는데 일본이 영국의 1조를 어 그 하게
되는 그런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때 영국의 영국 사람으로서
청의 해관, 청황실의 해관장을 지내던 그 로버트 하트. 그니까 누구보다도
중국을 잘 알고 있었고 서양 열강들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때에 그
로버트하트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음모가 난무하는구나 라면서 청은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리고 서양 열강은 청을 돕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열강이
걱정하는 것은 1번이다. 어 만일 청이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만주도 저
요동도량을 하고 뭐 대만도 하고 그런다면은 그 일단 그렇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토구 열강들이 일본으로부터 그걸 다시 뺏어 갈 것이다라고 하트는
예언을 합니다. [음악]
결국은 러시아하고 독일,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간섭을 할 거라는 것가 어 이제 밝혀지면서 4월 23일 날 어
츠는 러시아에 있는 일본 공사 니시한테 전문을 보내서 독일 정부가
교육에 대한 황당한 질투심 때문에 그리고 일본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다른 유럽 열강들을 부추여서 일본에 대한 모종의 외교적 업무를 획하고 있다고
막 분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니시에게 러시아 정부가 독일의 부추임에
넘어갔는지 좀 알아보라라고 전문을 보낸 겁니다. 그리고 주형 일본 공사
다가 닷가키에게도 보낸 전문에서는 가급적이면 비밀 이에 몰래 영국 정부한테 영국
정부의 전 진짜 입장이 뭐냐 간섭하는 거에 대해서. 그리고 영국이 간섭을
안 한다 그러면은 혹시 일본 편에서이 다른 나라의 간섭, 3삼국의 간섭을
막아줄 의향이나 방법은 없겠냐라고 또 타진을 해 보라 그러면서 이제 간섭을
할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 무스는 이제 백방으로 뛰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이
무스 무네미스는 또 누구냐? 무스는 1844년에
기슈번 번사 예. 그 사무라이의 어
육남으로 이제 태어납니다. 1858년에는 에도로 나와서 도사번에 사과또리오마
그 유명한 사건모도리오마 조슈반에 가스라코고로 이또스켓 이런 젊은
화학급 사무라이들 지사들하고 교류를 어 쌓습니다. 1863년에는
갓수가이슈의 고배 해군 조련서에 들어가서 그러니까 네덜랜드로부터 군함을 받고 네덜랜드의 해병 수병들이
와서 막부의 해군을 길러 주는 거 그 훈련 과정을 가스가이슈가 주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밑에 들어가 갖고 같이 서양의 해군 방법, 전술 이런 거를
배우면서 1867년에는 사건 오토리오마의 카이앤타이에 동참을
합니다. 여러분 해원대 카이엔타인 해원대가 뭐냐면 사까모두료 료마가
만드는 일본 최초의 주식 회사입니다. 장사를 하는 그 해안선에 그 배를
띄워 가지고 장사를 하는 거를 최초로 서양식 주식 회사를 만드는 그게
카이엔타입니다. 지금 일본의 손종이 회장 소프트뱅크의 손종이 회장의
영웅이까도렴하고 손종이 회장의 소프트뱅크의 그 로고가
바로 화가모토레 요마의 그 카이엔타의로 로고를 그대로 따와
따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지금 무스무의 미스도 거기에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는 1877년에 결국은 세인안 전쟁이 일어나서 사이고닷가
모리가 반란을 일으켜 갖고 사스마 반란이라고도 하죠. 그때에 사이고 다크머리의 무추관 또
그 편을 듭니다. 그랬다가 잡혀서 5년간이나 투억이 됩니다. 그런데요. 그 투억되
있는 5년 동안에 수많은 서양 책들을 번역을 하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의 그 유명한
공리주의 유틸리테리아니즘이라는 그 책을 번역을 했는 것이 또 무수 은행이 있습니다. 1884년에는
유럽의 유학을 떠납니다. 바로이 무스가 또 나중에 돌아와서
하야식 다다오 도구가와 막부 편에 끝까지 들었다가 투억됐던 영어 잘하는
하이시 다오를 끄집어내서 자기 밑에 차관으로 두게 되는 바로 그 무스 본인도 사실은 사스마란 때는 메이지
정부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이죠. 그러니깐 메이지 정부에서는 무스가 됐든 하야시가 됐든 능력이 있고
필요한 인자라 그러면 어떻게서든지 자기 편으로 다시 끌어들려 갖고 중책을 맡깁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의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던 사회고 편에 들었던 무수는 청일 전쟁 당시의
외무상이고 그리고 독구가 편을 들어서 들었던 하야는 이때 당시 무수 밑에서
또 차관을 여김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무스가 이렇게
어 지금 뭐 여기저기에 전문을 보내면서 어떻게 좀 막아 봐라. 영국 공사보고도 야, 좀 영국이 저렇게
어떻게 어디까지 우리를 도와줄 건지 알아보라라고 등등등 해서 계속해서
전문을 보내고 그러는데 바로 그때에 4월 23일입니다. 그날 그날 러시아
프랑스 독일 공사가 도쿄의 외무성에 나타나서 하야시타다스 차관과의 연담을
요청을 합니다. 당시 루스는 지병이 있었습니다. 그 결액이 있었습니다.
고배의 휴양지 마이코라는데 머물고 있었고 그래서 외무성이 없어서
하야시가 대신 그 차관이 이제이 삼국 공사를 맞이하는 거죠. 그러면서
외무성에 동시에 도착을 하지만 한 사람씩 하야시를
만나러 면담하러 들어갑니다. 가장 먼저 하야시를 면담한 것이 러시아의
공사 히트로버였습니다. 히트로버는 짜를 니콜라의 말이다.
말씀입니다라면서 일본이 청에 요구한 조건들을 검토해 본 결과 일본이 라오동 반도를
차지하게 되면 중국의 수도인 메이징에 대한 연구적인 위협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은 사실은 조선의 독립이라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왜냐면
중국도 일본 것이 되고 그러면 중국의 속방이라고 하는 조선은 당연히 일본 것이 된다. 그래서 조선의 독립도
무임해진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극동의 연구적인 평화는 물건너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따라서 요동을 차지하는 것은 안 되겠다라고 니콜라
이세 우리 황제께서 일본 정부에 전해 달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전합니다. 따라서 짜르는
천황 일본 천왕의 진정한 친구 입장에서 일본이 야우동반도를 포기할
것을 종영을 합니다. 이때 히트로버가
하야시에게 전달한 조회폐하의
정부는 일본에서 천국에 요구한 강화 조건을 연람하고 레오똥 반도를 일본이
소유하는 것은 늘 천국 정부를 위협하게 될뿐만 아니라 조선국의 독립을 유명 무실하게 하는 것으로
장례 극동의 연관 평화에 대해 장애를 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는 일본 황제 폐하의 정부에 거듭 성실한 우의를 표하기 위해 여기에서
일본 정부에게 권고하건데 레오똥반도를 영유하려는 의도를 확실히 포기하기
바랍니다. 디트로버가 나오니까 그다음 프랑스의 아르만 공사가 들어갑니다.
그도 역시 야오동반도를 포기하라는 충고를 하면서 그렇지만 이것은 어떻게
우적인 입장에서 하는 얘기다라는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옵니다. 히트로브하고 아르망은
하야시하고 불어로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국제 외교 언어가 불어였었고 하야시 같은
사람들은 당연히 불어를 유창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모든 조약들은 웬만하면 프랑스로 다 조약을
맺고 그렇지 않습니까? 뭐 심어는 새끼 조약이고 모든 것이 다 프랑스가 외교적 언어였기 때문에 이제 그랬던
거죠. 그래서 이제 대화도 그렇게 됐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야시를 만난 것이 이제 독일의
구투미트 공사였습니다. 근데 그투 시민트는 프랑스도 능했고 능통했고 영어에도
능통했습니다. 그런데도 독일어로 간섭을
통보하면서 그 독일어로 된 전문을 그냥
일본 발음으로 표기한 일본 번역서만 건냅니다.
사야시는 영화하고 프랑스는 능통했지만 독일어는 할 줄 몰랐었죠. 그래서
그투시미트가 하는 독일 말로 하는 거를 통역관을 통해서 들으면서 이제 알아들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면서
이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선언은이 구트 슈미트가 전하는 말이 하야시아에게는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은 굿투 시미트는 히트로보나 러시아 히트로보나 프랑스의 아르만과
달리 본국에서 온 전보를 전문 내용을 자기가 소화를 해서 자기의 말로 잘
해서 그거를 제시를 한게 아니라 본국 정부가 보낸 독일로 된 전문 내용을
거의 그대로 그냥 전달을 해 버립니다. 문제는 뭐냐면요. 구트 시미트한테 독일 정부가 보냈던 전문은
굉장히 간결하죠. 전문학 간단 명료해야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거 이거를
외교적인 수사로 바꾸지 않고 그냥 지격을 해 버릴 경우에는 사실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다라는 걸 고추 몰랐습니다. 원래 의도했던 거보다 훨씬 더
강압적이고 위협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트로보나 아르망이 전했던 프랑스로
된 전문에는 예를 들어서 선해는 거기에는 그 요동반들을 포기하라는
충고를 하는데 그 충고에대를 안 받아들이고 거기에다 저항을 한다라거나 그러면 쓸 때 레지스를
한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독일의 독일 문과에는 컴프 히틀러가 마인컴프 나의
투쟁이라는 거지 그 컴프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니까는
일본이 투쟁할 경우 3국은 필요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일본이 싸우는 것은 무망하다. 이렇게 그냥 시민트 본인만 보라고 보낸
전문을 그대로 지역을 해서 그냥 보내는 거예. 하야시는 시미트가 야
우리가 말을 안 걸으면 3국이 무력을 행사하겠다라고 하는 말에 완전히 충격을 받습니다. 하도 충격을
받으니까 굿투 시미트가 오히려 당황을 해 가지고
내가 한 말이 러시아나 프랑스 공사들의 말보다 좀 더 직설적이었다면이는 독일 정부가 정부의 의사를 보다 그냥
분명히 전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사실 독일 정부도 똑같이 러시아나 프랑스 정부 같이 굉장히
우호적인 입장에서 친구 입장에서 전하는 겁니다라고 오히려 거꾸로 이제 하야시를 진정시키려고 굉장히 애를
씁니다. 얼마나 하야 씨가 거기서 충격을 받고 놀랐다는 것을 이제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제
결국은 다시 삼국 공사를까 다 들어온 다음에 하야 씨가 상국공사한테 물어봅니다. 청이 전쟁 배상금을 다
몰 때까지만이라도 그러면 일본군이 야오등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거는
그거는 괜찮겠냐 그랬더니 그거에 대해서는 이제 3국 봉사들이 답을 못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얼마 무려
버립니다. 그래서 같은 4월 23일 날 같은 날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지금 한쪽에서는 이러고 있는데 이렇게 삼국 간섭을 당하고 있는데 그날 바로 메이지가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면서 제가 지진한 시간에 끝에 읽어 드린
메이지가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경화한다, 경축한다. 그지? 우리 겸손하게
살자라고 하는 그 축하의 그 측령이 바로 그때에 반포가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조금이에도 간섭이 일찍 일어나서 일본이 미연의 여동반도를 포기한다
그랬었으면은 천왕이 측령을 통해서 우리가 이런 것까지도 얻었다라는 얘기를 할 필요가
없고 측령 자체가 물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 돼 버릴 거 아닙니까? 그 자체가 일본은 엄청난
굴욕이었는데 그 굴력을 또 방지하지 못하고 결국은 천왕은 승전했다고
축하하는 측령을 반포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삼국 간섭을 통해서 결국은
그 승전의 가장 핵심적인 전류품이었던 요동반들은 일본이 다시 뱉어낼 수밖에
없다라는 그러한 어군이 없는 구력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무스는이 삼국 공사가 공사들이 하야시를 만난 날 이제 도쿄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이 삼국군사가 공사가 23일 날 이제 하야씨를 보러 올
거라는 거는 미리 통보를 했었기 때문에 루스가 요양하고 있었던
마이코의 전보를 미리 설치를 해 놓습니다. 그리고이는 대본영에가 있고 아직도 전쟁 중이게 대본영에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도 이제 전보로 전보로 연결돼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하야 씨가 삼국 공사에 방문을 바꿔서 삼국
간섭이 이렇게 들어왔습니다라는 얘기는 곧바로 무수한테도 전보를 보내고 이또한테도 히로시마이 이또한테도
전보를 보냅니다. 무츠는 분명히 어떤 종류의 간섭이든 들어올
거라고 예측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이또도 그랬었던 거고요. 그래서 삼국 간섭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하야시의 보고를 듣자마자 곧바로 이또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냅니다. 아오기 주독일 공사,
니시주러 일본 공사 등 두 공사의 전부에 의하면 유럽의 각 열강들로부터의 강력한 간섭을 면하기
어려울 듯한데이는 아마도 우리가 처음부터 유럽 열강들에게 천국에 요구할 조건을 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천국으로부터 듣고는 비로소 확연히 알게 된 모양으로 이에 대한 항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그 잘못됨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으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 정부가 당초에 유럽 열강에 우리의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면 그때 일어날 문제가
지금이어야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지금 호랑이 등에 탄듯한 세력이므로 어떠한
의이 있어도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고 일보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이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줄 압니다. 이에 대해 귀대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음속에 간칙하고
계신 말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걸 우리가 자기가 전에도 얘기했듯이 혹시
미리 알려 주는게 낫지 않겠냐 했었는데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까 그 대신 우리 입장만 경고하게 유지를 끝까지 유지하
하면 되겠다고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무스는 걱정하는 것이 이게 외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국내적인 국내 정책 밑을 파장에 대해서 걱정을 하면서 다음 같은 일기를 씁니다. 작년일에 우리
유회군은 피 흘리며 백전 백승의 군공을 쌓았다. 또 우리 정부도
참담마리만큼의 고심을 참아가며 전력 전심을 다해 외교상의 절충을 거듭하여
얻은 결과에 대해 내외 국민들이 매우 칭송에 맞지 않고 있다. 그런데
황상의 비준도 이미 끝난 조약 중 일부를 헛되히 양보한다는 것은 가령
당국자인 우리들이 국가의 장례를 위하여 가슴속 깊이 염미어오는 고통을
참고 장례의 난국을 피하려고 일보 양보하는 것은 각오할 수는 있었다지만
이러한 소식이 한번 표면화되면 우리 육회군은 얼마나 격동할 것이고 우리
일반 국민들은 또한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외부로부터의 화를 초래한 것은
경감할 수 있다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동은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
내외적인 어려운 상황에 틈박니에서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무스는 회고를 합니다.
무츠는 버티자 그럽니다. 그런데이는 이미 무스가 전문을 보내오기 전에
메이지 천왕이 참석한 회의를 주제를 합니다. 에이지 이또 육군상
에마가따리또모 해군상 사이고 트구미치 그네 명만이 참석한 어전회에서이
또는 삼국 간섭에 대응한 세 가지 방법을 냅니다. 첫째 새로운 적국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여도 3국의 제한을 거부한다. 둘째 열강들의
회의를 열어서 야우뚱 반도 문제를 다루도록 한다. 세 번째 개입하는
제한을 받아들여 관대하게 웃동 반도를 청에 반환한다. 항상이 사람들이 무슨
일이 닥치면은 책임지고 있는 대신이 꼭 대안들을 낸 거예요. 그렇죠.
갑옷 경장을 하기 위해서 일본이 개입을 할 때에도 그때에도 무스가
정리를 합니다. 우리의 조선 정책이 뭐뭐 뭐뭐 뭐뭐가 있고 대안이이 중에 어느 겁니까? 어느 거로 할
것입니까? 라고 꼭 대안들을 냅니다. 대안을 갖고서 회의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명려하고 대안이 뭔지를 명확하게 알면서 명확한
대안들을 놓고서 협의를 하고 토론을 해야지 토론이 되는 겁니다. 4월
25일 새벽에 이돈은 마이고 유 요양 중인 무츠를 찾아갑니다. 그래서
무츠의 병실에서 회의를 또엽니다. 거기에서 대장상 마츠가 마사요 씨 그리고 네마 네무상
노무라야 씨 등을 곁로부터 다 도착해서 동을 합니다.이 메이지신
주류 주주 주도 세력들이 얼마나 모든 거를 철저하게 협의를
하고 그래서 결정을 하는지 너무나 잘 보여 주는 겁니다. 외모 대신이 병상에 있으니까
수상하고 다른 대신들이 그 병상에까지 찾아와서 거기서 또 회의를 하는
겁니다. 이시주 러일본 공사를 통해서 러시아 정부에게 입장을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하도록 합니다. 그래도 만일에 러시아가 입장을 고소한다면
이런 타협안을 제시하고 그 대신 그리고이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웃뚱반도의 연구적인 점령을 포기하기로 한다라고이 회의에서 정합니다. 1번의
조건들은 이거였습니다. 첫 번째 청이 정해진 날짜에 조회약에 조인하고 비준서를 교환할 것.
둘째, 추가 배상금을 지불할 것. 셋째, 일본군이 철군하는 즉시 루신의
요새를 연구히 파괴할 것. 넷째, 청이 배상금을 지불할 때까지 1번이
웃뚱반도를 임시 점령할 것. 다섯째, 야우동반도 점령시 발생하는 비용을
청이 부담할 것. 러시아 보고 우선 제거 좀 해 달라. 야우동반도 하량
반대하는 거를 제거를 해 달라고. 안 들어면이 다섯 가지 조건을내는 겁니다. 그래서이 조건이라도 받아들여
주면 그러면 그래 그럼 우리 야동반도 반환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정말로 일본은 백방으로 un니다. 어떻게든지 그걸 관철시키려고 백방으로 니다. 그 당시에 상황을 무슨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지상과 같이 구미 열강들의 형세는 우리의 재회
공관원들에 의해서 겨우 수일간에 걸쳐 전력을 다해 백방으로 주선한 결과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행적에 대해 말한다 할지라도 이로
인해러 독 프랑스 3국의 간섭 방향을 돌려놓아 혹시라도 그 정도를 약화시킬
수 없었다. 일 성패야 어쨌든 당시 고심과 전력을
기울인 재외 공관원들의 노고는 결코 헛수고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러 독 프랑스 3국의 연합이 어떻게해서 성립되었는가를 알게 됐고 따라서
간섭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를 알 수 있었으며 또 다른 제3자인
열강들이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의향을 갖고 있나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
그들의 실제상의 강력한 원조를 얻지는 못했지만 도상의 성원만큼은 넓히게
되어 은연 중에 러도 프삼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3, 제4 단판도 해보고 배장도 부려보았지만
그들은 완고하여 초지 일관 조금도 우리의 요구를 안 받아들여 주었다.
이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들의 권고에 따르겠다고함과 동시에 그 외의 부수적
조건에 대해서까지 그들의 내락을 받으려고 거듭해서 그들에게 통하는
책략은 옳지 않으며 또 미리 그들의 내약과 무기을 얻었는데도 만일 그들이
직게 요동반도의 환부 문제에 대해 어떤 조건도 붙이지 못하게 한다면 이럴 경우 또 이것을 항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삼국에 대한 회답은 깨끗하게 그들이 권고해 온 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내고 요동반도의 환부 조건에 따른 유무는 언급하지
말고 훗날 외교상 자유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말하였다. 사실은 결국은이 사람들이
일본 지도부는 제고를 해보더니 깨끗하게 그냥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래야지 나중에 우리의 입지가
더 강해진다.라고 결정을 내려 버립니다. 그래서 일본
내각은 깨끗하게 요동반도를 돌려 주겠다.라고 결정을 내리고 5월 5일 러시아,
프랑스, 독일 주제, 일본 공사들은 주제국 정부의 일본 정부의 각설를
전합니다.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의 우호적인 충보에 따라 펑티엔 반도 즉 요동반도의 영적인 소유를
포기한다. 깨끗하게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삼국 간섭이 알려지면서 일본은
충격에 빠집니다. 무츠는 자기의 글 건건록이라는 겐로크라는
글에 이렇게 기록을 해 놓습니다. 이때 국내의 일반적인 정황은 정부가 마치 일종의 정치적인 공항에
휩싸이익이라도 한 듯 지금까지의 상황과는 판의하게 다르게 전개되므로
그 놀람이 극게 달아요. 치물한 분위기에 빠져 있는 했고 나아가 나라의 요소 요소에 삼국이 당장
포격이라도 헤오지 않을까는 근심에 떨게 되었다. 일본의 여론은
국내 여론은 3국을 러시아, 독일 프랑스를 탓하면서 와신
상담을 타짐합니다. 이때 메이지가 다시 한번
담아문을 발표합니다. 우리나라가 천국과 평화 조약을 맺을 때 러시아,
프랑스, 독일, 상국 공사가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일본이 야우뚱
반도를 영원히 차지하면 동양의 평화가 유지되지 못할 것이니 신속히 천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생각해보니 짐이 원래부터 평화를
에워하던 터에 이번에 천국과 잠깐 동안 전쟁을 했는데 그 이유는 미래의
평화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권유에 따라
레오등 반도를 천국에 반환하고 우리의 깊은 뜻과 예절을 세상에 알린다.
이로 인해 일청 양국의 관계가 전보다 더욱 친밀해질 것이고 각국 정부와
국민도 짐의 뜻을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일본은
공식 문서에 야우똥을 반환한다라는 공식 문서에
이것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간섭 때문이었음을 명확히 밝힙니다. 네이지
또한 자기네가 반환하는 것은 자기네가 평화를 사랑해서도 그렇고 양국 관계
미래를 생각해서도 그렇지만 어쨌든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간섭 때문이란 것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양보를 하면서 그러니까 10년 후에 10년 후에
러일 전쟁이 일어나는 거죠. 그때에 정확하게 러시아의 간섭 때문에 요동을
일본이 차지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라고 했었는데 1898년에
결국은 러시아가 루을 차지하고 그럴 때에이 모든 기록들이 남아 있고
일본이 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는
입지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결국은 러일 전쟁으로
치닫게 되고 러시아를 격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오늘은 어 지난 시간에이어서 어
삼국 간섭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삼국 간섭은 정말로 여러 가지 차원에서 아 외교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 비록지는 외교라도 이렇게 해야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수가
얘기를 했듯이 우리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렇지만이 과정을 통해서
열강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고 옆에 있는 다른 나라들 입장이 뭐고 세상이 돌아가는이 이치가 뭔지를 우리
모든 외교관들 그렇게 열심히 뛰었던이 무리가 다 뺏긴 것이 아니고 다 이런
것이 아니라 배운 것도 참 많았다라고 얘기를 하면서 와신 상담을
부르짖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외교적인 궁지에 몰려 있고 어떻게
헤어날지 모르게 모르는 상황에 처해했을 때에도 국가의 지소자들이 어떤 자세로 그 문제를
풀어 가려고 해야 되는지 어디까지 국익을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지
비록 목적 달성에 실패한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모습으로 자기한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되는지 너무나 누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이
삼국 간섭에 대해서 두 시간에 걸쳐서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삼국 간섭을 통해서 일본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때부터 고종하고 민비가 갑경을
철저하게 반대를 하고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어 반일
움직임을 주도하는 민비를 이노예의 후임으로 온 미우라고
민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즉 을미 사변입니다. 그리고 을미
사변이 일어나니까 불안했던 고종은 결국은 아관 파천을 단행을 합니다.
일본이 청일 전쟁을 통해서 갑경을 통해서 이루려왔던 모든 개혁은 전부
다 조선에서의 모든 개혁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갑니다. 조선은 고종의
전행하에 완전한 실패 국가로 전락을 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을미사변과 악관 파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고해 보는
한국인의 판생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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