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 이승만 (엮은이),김용삼,류석춘,김효선 (옮긴이)2015-03-26


책소개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번역총서 4권. <청일전기(淸日戰記)>는 청일전쟁이 종료된 후 5년이 지난 1900년, 만 25세의 나이가 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순 한글로 원고를 마무리한 책이다. 이승만은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한성감옥에 투옥 중이었다. 결국 출판은 1917년 하와이 태평양잡지사에서 이루어졌다.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은 2014년 청일전쟁 120주년을 맞아 이승만의 <청일전기>를 현대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한문으로 된 원 저작을 축약하고 또 한글로 바꾼 이승만의 옥중 노고가 60간지를 두 바퀴 돌아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2014년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읽을 수 있는 현대 한국어로 원고가 마무리되었다. 이듬해인 2015년 우남 이승만 140주년 탄신일(3월 26일)에 맞추어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가 출간되었다.
목차
간행사-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 (류석춘)
제1부 청일전기
1917년 서문 (이승만)
1900년 서문 (이승만)
01. 전쟁 전 청국과 일본 간에 오고 간 외교 공문 9점 (1894.6.6. ~ 7.14)
02. 청일전쟁의 원인 (이승만)
03. 청국 관보(官報)에 반포한 조칙 21건 (1894.8.2.~1895.12.3.)
04. 청일전쟁 전후(前後) 세계 각국이 주고받은 전보
05. 일본 메이지 천황의 선전포고문
06. 조선 난리의 역사적 기록 (제 1부터 제 12까지) (알렌)
07. 시모노세키 조약 막전 막후
(1) 시모노세키 강화회담장에서 양국 대표들이 주고받은 대화
(2) 이홍장(李鴻章) 피격 사건
(3) 시모노세키 회담에서 이홍장이 일본 전권대표들과 주고받은 외교 공문
(4) 이토 히로부미의 답신 외교 공문 (청국 측 의견에 대한 일본 측 입장)
(5) 이홍장이 수정해서 보낸 외교 공문
(6) 시모노세키 평화조약 초본
(7) 이토 히로부미가 이홍장에게 1895년 4월 11일 보낸 최후 의견
(8) 이홍장이 이토 히로부미의 답신을 보고 4월 12일 보낸 회답
(9) 이토 히로부미가 4월 13일 (음력 3.19) 다시 보낸 외교 공문
(10) 이홍장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4월 14일 (음력 3.20) 보낸 편지
(11) 강화회담장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이 주고받은 대화
(12) 시모노세키 평화조약 최종 내용
(13) 평화조약에 첨부한 조항
(14)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맺은 휴전조약
(15) 평화조약 체결 후 일본이 점령했던 청국 봉천(奉天·펑톈)성 남쪽지역 반환 조약
(16) 일본 천황의 평화조약 체결 관련 담화문
08. 일본이 요동반도를 청국에 반환한 후 발표한 담화문
09.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임시조약
10. 청국 북양함대 제독 정여창의 최후
(1)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가 정여창에게 보낸 항복 권유 편지
(2) 정여창이 이토 스케유키 사령관에게 보낸 답신
(3) 이토 스케유키 사령관이 정여창 제독에게 다시 보낸 편지
(4) 정여창 제독이 이토 스케유키 사령관에게 다시 회답한 편지
11. 청일전쟁 전후의 동북아 정세 분석
(1) 조선 대군주(고종) 폐하께서 종묘에 맹서하며 고하신 글 (홍범 14조)
(2) 한.청.일(韓淸日) 3국 전쟁의 원인에 대한 분석 (알렌·채이강)
(3) 청.일 양국의 정치가 서로 다른 이유 (알렌)
(4) 아시아 상황을 종합한 논의 (알렌·채이강)
(5) 러시아에 대하여 (알렌·채이강)
(6) 청일전쟁 참전기: 북양함대 지휘관으로 황해해전에 참가한 미국인 필로 맥기핀의 회고
12. 청일전쟁 이후 동북아 주변국들이 체결한 비밀조약
(1) 청.러시아 비밀조약
(2) 청.러시아 특별조약
(3) 전보 (1896.1~1897.10)
(4) 한성조약
(5) 모스크바 조약 (로마노프.야마가타 협정)
13. 청일전쟁의 교훈
(1) 조선 사신 민영환의 어록
(2) 청국 황제의 국서
(3) 영국 의회의 외교론 (알렌·채이강)
14. 권고하는 글 (이승만)
제2부 청일전쟁 이해에 필요한 배경지식 (김용삼. 김효선)
01. 청일전쟁 전후 조선의 정황
02. 동학과 대원군 그리고 청일전쟁
03. 일본군의 조선 파병 과정
04. 청일전쟁의 주요 전투 설명
05. 황해 해전의 교훈
06. 일본이 청국에 제시한 시모노세키 평화조약 초안(1895. 4. 1)
이승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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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6 1917년 출판된 『청일전기』 서문에서 이승만은 “만일 한인들이 오늘날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이나 대만(臺灣·타이완) 인종들의 지위를 차지하고 말 것 같으면 이 전쟁의 역사를 알아도 쓸데없고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나을 터이지만, 우리는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여 태평양이 마르고 히말라야가 평지가 될 지라도 우리 대조선 독립은 우리 한인의 손으로 회복하고야 말 터인즉 우리 한인이 갑오전쟁(청일전쟁)의 역사를 모르고 지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접기
P. 47 청국이 1894년에 자기들보다 국력이 약한 일본에게 여지없이 패하고도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하는 이유는 자기들의 힘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각국이 서로 세력을 다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을 우리가 자세히 알아서 기회를 잃지 말고 외교와 내치를 잘하면 남들이 우리를 넘겨다보는 행위가 다 막힐 것이다. 그럼에도 천하를 반대하여 여러 나라가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니, 나라 하나 망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거니와 동서양에 큰 난리를 자기들 손으로 만들어 놓으니 어찌 애달프지 않겠는가. 접기
P. 377-378 조선 정부로부터 기한 내에 답이 오지 않자 일본은 7월 23일 새벽 4시, 경복궁을 점령하여 조선 정부를 붕괴시키고 대원군을 앞세워 친일 괴뢰정권을 출범시켰다.
일본 각료회의에서 조선 파병을 결정했을 때 일본 해군 함정들은 태평양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즉시 사세보(佐世保)로 집결하라”는 긴급 명령을 받았다. 함정들이 사세보로 집결한 것은 각료회의에서 파병을 결정한 후 1개월 반이 지난 7월 19일이었다. 대본영은 먼저 도착한 함정들로 함대를 편성하고 해군 중장 이토 스케유키를 사령장관으로 임명한 다음 “연합함대를 지휘하여 조선국 서안의 해안을 제압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함대 명칭이 연합함대로 정해졌다. 다음날인 7월 20일 대본영은 조선에 파병된 혼성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에게 “적이 증가하기 전에 주력부대로 전면의 적을 격파하라”는 명을 내렸다.
일본군은 7월 23일 새벽 경복궁을 공격하여 조선군을 무장 해제하고 친일 괴뢰내각을 조직한 다음 대원군을 섭정으로 앉혔다. 이것이 청일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이 조선군을 공격한 첫 전투였다.
7월 23일 오전 연합함대의 선발대가 사세보항을 출항했고, 7월 25일 서해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을 공격하여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8월 1일 청국에 선전포고를 했으니,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을 공격한 것은 선전포고 전의 공격행위에 해당하므로 국제법 위반이다. 이토 히로부미 수상과 육군 대신 오야마 이와오는 현 단계에서는 청국과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했다. 반면에 참모본부의 가와카미 소로쿠와 무쓰 무네미쓰는 일본군이 조선에 파병된 이상 어떤 트집을 잡아서라도 청국과 전쟁을 일으켜 일본의 영향력을 동양에서 확대하고자 했다. 접기
P. 400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과정에서도 청에 대한 일본의 배상요구는 지나친 측면이 있었다. 국제법상 승전국이 패전국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에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데, 일본은 전례가 없는 가혹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 중 대만과 팽호열도 및 주변 도서를 할양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심각한 영토(영해)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센가쿠 제도(중국명 釣魚島)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승만 (엮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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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 현대사에 획을 그은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요, 정치가의 면모를 갖춘 그는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중 하나로, 프린스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재임 당시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었는데 이때 그는 국가의 존립과 자유를 지켜냈고 전쟁 후에는 국가의 재건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정치적 억압이나 선거 조작 같은 논란이 4‧19혁명으로 비화되자 그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떠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은 한국의 정치‧사회 및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귀감이 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이승만 스피치 1950>,<리승만박사 휘호집>,<독립정신> … 총 34종 (모두보기)
김용삼 (옮긴이)
1958년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고,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경남대 북한대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 기자, 시사월간지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펜앤드마이크 대기자로 활동 중이다.
「월간조선」 기자 시절 황장엽 망명 사건 특종 보도로 제1회 대한민국 언론대상 수상(1997), 해양사상 보급에 공헌한 공로로 장보고대상을 수상(2008)했다.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우수상(2013),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수상(공동, 2015)했다.
주요 저서로는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 『박정희 혁명』(상·하), 『김일성 신화의 진실』,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전 7권)를 발간했다. 공저로는 『반일종족주의』,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반일종족의 역사내란』 등을 출간했다. 접기
최근작 : <제5공화국 전두환 시대 2>,<제5공화국 전두환 시대 1>,<반일 종족의 역사 내란> … 총 55종 (모두보기)
류석춘 (옮긴이)
1955년 출생으로 2020년 연세대에서 정년을 맞았다. 연세대 사회학과 1975년 입학, 1981년 졸업,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rbana) 1983년 사회학 석사, 1986년 사회학 박사다.
1987년부터 2020년까지 연세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일했다. 전공 분야는 발전사회학, 경제사회학, 동남아시아 연구 등이다. 〈한국사회학〉 및 〈동남아시아연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St. Anthony College), 1999년 쿄토 동지사대학교, 2002년 필리핀국립대학교(Diliman), 2009년 호주국립대학교(Canberra) 및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San Diego) 교환 교수를 지냈다.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2010~2015) 그리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박정희연구회 회장(2016~2017)을 역임했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2017) 및 자유통일당 광화문연구소 소장(2022~2023)으로도 일했다.
대표적 연구 업적은 The Korean Economic Developmental Path: Confucian Tradition, Affective Network(Palgrave, 2013),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기파랑, 2018), 《유교와 연고》(북앤피플, 2020)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 3>,<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 2>,<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 1> … 총 21종 (모두보기)
김효선 (옮긴이)
이승만 연구가, 올인코리아 논설위원. 한국논단 편집위원
최근작 : <독립정신>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청일전기(淸日戰記)』는 청일전쟁(1894~1895)이 종료된 후 5년이 지난 1900년, 만 25세의 나이가 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이 한성감옥에서 순 한글로 원고를 마무리한 책이다. 이승만은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한성감옥에 투옥 중이었다. 결국 출판은 1917년 하와이 태평양잡지사에서 이루어졌다.
옥중에서 이승만은 청일전쟁에 관한 중국책 『중동전기본말(中東戰紀本末)』(1897)을 발췌 및 번역하고 그에 더해 “전쟁의 원인” 그리고 “권고하는 글”이라는 논설을 덧붙여 원고를 완성했다. 『중동전기본말』은 당시 중국에서 선교사 겸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알렌(Young J. Allen, 林樂知, 1836~1907)과 중국 언론인 채이강(蔡爾康, 1852~1921)이 공동으로 편저해 1897년 전체 18권(전편 8권, 속편 4권, 3편 4권, 부록 2권)으로 출판한 청일전쟁에 관한 역사책이다. 중국(中國)과 동영(東瀛, 바다의 동쪽 나라 즉 일본)의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언론인 유근(柳瑾, 1861~1921)이 돕고 사학자 현채(玄采, 1856~1925)가 발췌 및 정리하고 국한문으로 번역해 두 권의 책으로 묶어 1899년 『중동전기(中東戰記)』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출판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1900년 청일전기 서문에서 이승만은 이 번역본을 참고하여 원고를 썼다고 밝히고 있다.
1917년 출판된 『청일전기』 서문에서 이승만은 “만일 한인들이 오늘날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이나 대만(臺灣·타이완) 인종들의 지위를 차지하고 말 것 같으면 이 전쟁의 역사를 알아도 쓸데없고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나을 터이지만, 우리는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여 태평양이 마르고 히말라야가 평지가 될 지라도 우리 대조선 독립은 우리 한인의 손으로 회복하고야 말 터인즉 우리 한인이 갑오전쟁(청일전쟁)의 역사를 모르고 지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이 책에는 당시 전쟁을 전후해 청국과 일본 사이에 오고 간 외교공문을 비롯한 역사적 기록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청국 황제 광서제의 선전포고 조칙, 일본 천황의 선전포고문, 청국 대표 이홍장과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의 시모노세키 강화회담 대화록, 전쟁에 패배한 청국의 슬픈 운명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시모노세키 최종 조약문 등은 물론 이홍장과 로마노프 간에 체결된 ‘청러밀약문’과 청국과 일본 간 조선 문제를 두고 서울에서 조인한 ‘한성조약문’ 등이 그 예다.
충무공 이순신의 말씀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120년 전 갑오년은 우리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은 1998년 펴낸 『우남 이승만문서 동문편』 제2권에서 1917년 하와이에서 간행된 『청일전기』를 영인하여 출판하였다. 또한 송복 교수가 2011년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학술총서 15권으로 출간한 책 『저서를 통해 본 이승만의 정치사상과 현실인식』에 포함된 오영섭 박사의 논문이 『청일전기』를 해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은 2014년 청일전쟁 120주년을 맞아 이승만의 『청일전기』를 현대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한문으로 된 원 저작을 축약하고 또 한글로 바꾼 이승만의 옥중 노고가 60간지를 두 바퀴 돌아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2014년에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읽을 수 있는 현대 한국어로 원고가 마무리되었다. 이듬해인 2015년 우남 이승만 140주년 탄신일(3월 26일)에 맞추어 마침내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가 출판된다는 사실에 호국 영령이 되어 하늘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실 건국 대통령도 기뻐할 터이다.
책의 구성이 워낙 입체적이라 책을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에 대해 원저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국가를 대표한 인물이 서명한 조약문이나 조칙 그리고 대화록 등과 같은 공식 기록이야 저자를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통신사 전보나 언론사 보도에 기초한 부분 역시 저자를 밝힐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조선 난리의 역사적 기록 제1부터 제12까지”와 같은 해설은 마침 알렌이 썼다는 사실을 원본에서 밝히고 있었다. 따라서 책 본문을 구성하는 각각의 꼭지가 본래 누구에 의해 쓰여 진 글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는 글의 제목과 함께 원저자의 이름을 괄호 속에 넣어 밝혔다. 다만 저자를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해설 꼭지는 알렌과 채이강의 공동 저술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청일전기』 원본에는 목차가 없어 내용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승만연구원에서 임의로 목차를 만들어 붙였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청일전쟁 전후의 조선 정황, 동학과 청일전쟁, 일본군의 조선 파병 과정, 청일전쟁의 주요 전투 설명, 황해해전의 교훈 등을 책의 제2부에 소개했다.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정세가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일본이라는 오늘날의 상황이 120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라는 한민족 내부의 변수가 러시아는 물론 미국을 여전히 한반도에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간행사 중에서 접기
이승만의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김용삼, 류석춘, 김효선 옮김)에 대한 요약과 평론
요약
이 책은 이승만이 옥중에서 저술한 <청일전기>를 현대 한국어로 쉽게 풀어서 다시 엮은 책이다. 원작인 <청일전기>는 청일전쟁의 경과와 그 결과가 동아시아 및 대한제국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기록한 서적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주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쟁의 개요, 각 해전과 육전의 경과, 그리고 청나라의 패배와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판도의 변화다. 이승만은 청일전쟁을 단순한 두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유교적 전통 질서에 매여 있던 청나라와 서구적 근대화를 적극 수용한 일본의 문명적 충돌로 바라본다.
이승만은 조선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자립하지 못하고 부패와 분열로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던 점을 경고한다. 그는 세계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남아 있다가 강대국의 전장이 되어버린 조선의 비극적 현실을 고발하며, 국민의 계몽과 근대적 개혁, 그리고 자주국방과 외교적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평론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는 20세기 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당대 지식인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료이자 시사적인 고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청일전쟁이라는 사건을 조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근대화의 당위성을 설파했다는 점에 있다. 이승만은 청나라의 패배를 개혁 부재와 구시대적 사상의 한계 때문으로 보았으며, 일본의 승리를 근대적제도와 문물의 수용 결과로 평가했다. 이는 당시 옥중에 있던 청년 이승만이 가졌던 문명개화론적 시각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강대국의 파워 게임 속에서 힘없는 국가가 어떤 비극을 겪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조선이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타국의 전쟁터로 전락했던 역사는, 오늘날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전달한다.
다만, 당대 시대적 한계로 인해 일본의 근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후일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일본 Imperialism의 침략적 본질을 완벽하게 예견하거나 비판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안목을 갖고 국가의 자주성과 개혁을 강조한 이승만의 통찰은 한국 근현대 지성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용삼, 류석춘, 김효선 등의 번역진은 원문의 한문 투와 고어 표현을 현대적 감각으로 가다듬어, 일반 독자들도 청일전쟁의 시말과 당대 지식인의 고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 — 청일전쟁을 통해 국가의 운명을 묻다
이승만 엮음, 김용삼·류석춘·김효선 옮김, 2015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는 이승만이 1900년 한성감옥에서 완성한 『청일전기』를 현대 독자가 읽기 쉽게 다시 옮긴 책이다. 『청일전기』는 이승만이 청일전쟁을 직접 연구하여 새롭게 집필한 순수한 창작 역사서는 아니다. 중국인 학자 채이강이 편찬한 18권 분량의 『중동전기본말』과, 이를 유근과 현채가 국한문으로 축약·번역한 『중동전기』를 바탕으로 삼아 내용을 선별하고 순한글로 풀어 쓴 편역서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의 중요성은 원자료의 독창성보다는, 25세의 조선 청년 이승만이 청일전쟁을 어떤 문제의식으로 읽고 조선인들에게 전달하려 했는가에 있다. 이승만은 1900년 원고를 완성했으나 당시에는 출판하지 못했고, 1917년 하와이에서 책을 간행했다. 따라서 책에는 1900년과 1917년에 쓰인 두 종류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 청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청일전쟁은 1894년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전쟁을 직접적인 계기로 시작되었다. 조선 정부가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자, 일본도 톈진조약을 근거로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전쟁의 근본 원인은 동학농민전쟁에 있지 않았다. 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조선을 둘러싸고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청나라는 조선을 전통적인 속방으로 간주했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군대와 국가기구를 정비하면서 조선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편입하려 했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내세웠지만,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조선을 진정한 자주국가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조선을 청나라의 영향권에서 떼어낸 뒤 일본의 지배 아래 두려는 전략이었다.
『청일전기』는 청과 일본 사이에 오간 외교문서와 선전포고문을 상세히 제시한다. 청의 광서제가 발표한 선전조칙, 일본 천황의 선전포고문,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의 강화회담 기록, 시모노세키조약, 청러밀약 등 당시의 주요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전투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전쟁소설이라기보다, 전쟁을 둘러싼 외교와 국가 전략을 문서를 통해 설명하는 기록집의 성격이 강하다.
- 일본의 준비와 청나라의 무능
책의 중심적인 대비는 준비된 일본과 부패한 청나라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의 군사제도, 교육, 산업, 행정조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근대식 육군과 해군을 건설하고, 철도와 통신망을 확충하며, 국가 전체를 전쟁 수행이 가능한 체제로 개편했다.
이에 비해 청나라는 겉으로는 거대한 제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군대는 낡았고, 지휘체계는 혼란스러웠으며, 관료들은 국가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웠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북양함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군비로 사용해야 할 자금이 다른 곳으로 전용되었고, 장비와 탄약의 보급도 부실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러한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본군은 평양전투에서 청군을 물리치고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진격했다. 황해해전에서는 일본 해군이 청의 북양함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어 뤼순과 웨이하이웨이가 함락되고 북양함대가 붕괴하면서 전쟁의 승패는 사실상 결정되었다.
이승만이 여기에서 발견한 교훈은 단순했다. 나라의 크기, 인구, 역사만으로는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제도가 부패하고 국민이 무지하며 지도자가 무능하면, 거대한 나라도 작은 신흥국가에 패할 수 있다. 이승만에게 청나라의 패배는 곧 조선이 맞이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경고였다.
- 전쟁의 종결과 일본의 승리
1895년 청나라는 일본과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청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인정하고, 타이완과 펑후제도, 랴오둥반도를 일본에 넘기며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이른바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에 랴오둥반도의 반환을 요구했다. 일본은 군사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은 일본에 두 가지 교훈을 주었다. 하나는 청나라를 이기는 것만으로는 동아시아의 패권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서양 열강과 맞서기 위해 더 강한 군사력과 산업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군비와 중공업에 투입했고, 10년 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와 싸울 기반을 마련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청일전쟁은 해방전쟁이 아니었다. 조선은 청의 종속적 영향력에서 벗어났지만 일본의 압력 아래 들어갔다.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 정부를 장악했으며, 갑오개혁을 강요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따라서 청일전쟁은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 전쟁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된 전쟁이었다.
- 이승만이 이 책을 쓴 목적
이승만은 『청일전기』를 통해 단순히 전쟁의 경과를 소개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청일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야 국가 발전과 독립의 기초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서문 사이에는 17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국가의 흥망 원인을 밝히고 국민을 깨우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1900년의 이승만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국민의 무지였다. 그는 국가의 운명이 임금과 대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책임이라고 보았다. 백성이 세계정세를 알지 못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외국이 나라를 침략하더라도 그 원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책을 순한글로 작성했다. 당시 지식인들의 저술은 대개 한문이나 국한문으로 쓰였기 때문에 일반 백성이 읽기 어려웠다. 순한글로 국제전쟁과 외교문서를 소개한 것은 지식을 소수 양반의 전유물로 두지 않고 일반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계몽적 실천이었다.
이 점에서 『청일전기』는 이승만의 또 다른 옥중 저술인 『독립정신』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다. 두 책 모두 세계정세를 이해하고 국민의 정치적 각성을 촉구한다. 또한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교육, 법치, 제도개혁, 국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 책의 역사적 가치
『청일전기』의 첫 번째 가치는 개화기 조선인이 청일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청일전쟁은 조선의 땅에서 시작되었지만 조선은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청과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했고, 조선 정부와 국민은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이승만은 이러한 현실을 국가적 수치이자 생존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두 번째 가치는 한국어 계몽서로서의 의미다. 이승만은 외교문서와 국제정세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겼다. 이는 국민이 국가 문제를 판단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근대적 시민교육의 발상과 연결된다.
세 번째 가치는 이승만의 초기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훗날 대통령이 된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그러나 『청일전기』에서는 아직 권력자가 되기 전, 약소국의 독립과 생존을 고민하는 청년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강한 현실주의,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 교육과 국민계몽의 강조, 국가의 자주독립에 대한 집착이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어 있었다.
- 책의 한계
그러나 『청일전기』를 그대로 객관적인 청일전쟁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 우선 이 책은 중국 측 기록인 『중동전기본말』과 그 번역본에 크게 의존한다. 이승만이 내용을 선택하고 순한글로 옮겼지만, 자료의 시각과 사실관계는 원저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이승만은 일본의 승리를 근대화와 준비의 결과로, 청의 패배를 부패와 무지의 결과로 설명한다. 이 분석에는 상당한 진실이 있지만,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이다. 청나라 내부의 정치·재정구조,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영국을 비롯한 서양 세력의 이해관계, 세계 자본주의와 군사기술의 변화 등 더 복잡한 구조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본의 근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룰 위험이 있다. 일본은 단지 부지런히 개혁하여 승리한 모범국가가 아니었다. 조선의 정치적 혼란을 이용하고 궁궐을 군사적으로 점령했으며, 조선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을 수행한 침략국이었다.
2015년 현대어판의 해설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번역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으며, 번역자들의 해설은 이승만을 선각자와 건국 지도자로 평가하는 관점이 강하다. 그러므로 원문 자체와 현대 해설을 구분하여 읽어야 한다. 이승만의 계몽적 문제의식과 역사적 공헌은 인정하되, 그것을 훗날 이승만의 모든 정치적 선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 종합평가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는 청일전쟁을 가장 자세하고 균형 있게 설명하는 현대 역사서는 아니다. 오늘날 청일전쟁을 연구하려면 일본의 제국주의, 조선의 정치구조, 동학농민전쟁, 청나라의 개혁, 서양 열강의 동아시아 정책을 함께 다루는 연구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역사자료다. 청일전쟁이 끝난 지 불과 5년 뒤, 한 조선 청년이 그 전쟁을 국가 멸망의 경고로 읽고 국민에게 전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가 던진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어떤 나라는 강해지고 어떤 나라는 무너지는가. 왜 조선은 자기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주인이 되지 못했는가.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승만의 답은 근대적 교육, 국민의 각성, 제도개혁, 세계정세에 대한 이해, 강력한 자주국가의 건설이었다. 그의 답에는 근대주의적 한계와 강국 중심의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을 통치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국민이 국제정치와 역사에 눈을 떠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선구적이었다.
『청일전기』가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 이유는 청일전쟁에 관한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책은 국제정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부 개혁에 실패한 국가는 다른 강대국이 결정하는 역사의 대상이 된다는 냉혹한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강한 국가를 만든다는 명분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일본의 사례도 함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의 올바른 독법은 청나라의 실패와 일본의 성공을 단순히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청의 부패, 일본의 침략, 조선의 무능과 민중의 저항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렇게 읽을 때 『청일전기』는 이승만을 찬양하는 책도, 낡은 전쟁기록도 아닌, 동아시아 근대의 비극과 약소국의 생존 문제를 성찰하게 하는 역사적 텍스트가 된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는 청일전쟁의 객관적 전모를 완성한 역사서라기보다, 국가가 왜 망하는지를 조선인에게 설명하고 국민적 각성을 촉구한 이승만의 초기 계몽서다.>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 요약 및 평론
1. 작품 개요 및 배경
<청일전기>는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이자 초대 대통령이 되는 이승만이 한성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1903년에 집필한 서적이다. 당시 청일전쟁(1894~1895)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패권국이었던 청나라가 저물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신흥 강자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은 조선이 세계 정세에 눈을 뜨지 못하고 종래의 사대주의와 패쇄적 사고에 갇혀 있다가 강대국의 전장으로 전락한 비극을 목도하였다. 그는 감옥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를 동포들에게 알리고, 자강(自強)의 필요성을 호소하기 위해 이 책을 엮었다. 김용삼 외 연구자들이 현대어로 쉽게 풀어쓴 버전은 이러한 이승만의 시각과 당시의 역사적 긴박감을 현대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노작이다.
2. 핵심 요약: 청일전쟁의 전개와 동아시아의 지각변동
책의 전개는 크게 청일전쟁의 원인, 전개 과정, 그리고 전쟁이 동아시아 삼국에 남긴 영향으로 나뉜다.
가. 동학농민혁명과 강대국의 개입
1894년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청나라는 군대를 파병하였고, 일본 역시 텐진 조약을 구실로 삼아 지체 없이 대규모 군대를 조선으로 진입시켰다. 조선 정부는 농민군과 전주화약을 맺고 양국의 철군을 요구했으나,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경복궁을 점령하며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다.
나. 육전과 해전에서의 청나라의 완패
전쟁은 대륙과 바다 양쪽에서 전개되었다. 초기 예상과 달리, 근대적 군사 제도를 도입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운 일본군이 승기를 잡았다.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에서 기선을 제압한 일본은 평양 전투에서 청나라 대군을 격파하며 한반도 주도권을 완전히 확보하였다. 이어 벌어진 황해 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는 청나라의 자랑이었던 북양함대를 괴멸시켰으며, 랴오둥반도의 뤼순과 웨이하이웨이까지 점령하였다.
다. 시모노세키 조약과 동아시아 질서의 개편
전쟁에서 완패한 청나라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인정함으로써 기존의 조공-책봉 관계를 공식적으로 종식해야 했다. 또한 랴오둥반도와 타이완을 일본에 할양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였다. 이로써 청나라는 반식민지 상태로 추락하였고, 일본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하였다. 조선은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으나, 곧바로 일본의 강력한 침략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3. 평론: 비극의 역사에서 건져 올린 개화와 자강의 메시지
가. '독립'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통찰
이승만이 감옥에서 <청일전기>를 써 내려간 주된 목적은 단순한 전쟁사 기록이 아니었다. 그는 청나라의 패배를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닌, 문명과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로 보았다. 청나라는 중화사상에 도취하여 근대적 변화를 거부하다가 무너졌고, 일본은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승만은 조선이 청나라에 의존하던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청나라가 물러간 자리에 일본이나 러시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였다. 즉, 이 책에서 말하는 독립은 타의에 의해 얻어진 이름뿐인 독립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키우는 '자강'에 기초한 독립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 당시 시대적 한계와 근대화론의 시각
이승만의 시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화파 지식인들이 공유했던 '문명개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책 전체에는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강한 지향과 함께, 전통적 아시아 질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짙게 깔려 있다. 일부 관점에서는 일본의 근대화와 군사적 승리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선의 철저한 무지와 무능을 경계하기 위한 반면교사적 수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에,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자 했던 청년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다. 현대적 의의: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에 주는 시사점
<쉽게 풀어 쓴 청일전기>는 130여 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강렬한 시사점을 던진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위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강대국의 힘겨루기 속에서 내부적 분열과 정세 판단 착오가 가져오는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이 책은 생생하게 증명한다. 이승만이 집필 당시 갈망했던 국민적覺醒(각성)과 자주적 역량 강화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국가와 민족이 생존하기 위해 어떤 시각과 준비를 가져야 하는지를 역설하는 철학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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