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이노우에의 조선 파견과 대원군의 실각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5회 - YouTube

이노우에의 조선 파견과 대원군의 실각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5회 - YouTube

이노우에의 조선 파견과 대원군의 실각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5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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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4 views  Sep 3, 2025

이번 시간에는 청일전쟁 중에 조선 조정에 불어닥친 변화를 알아봅니다. 일본이 대원군을 복귀시킨 뒤 진행한 개혁인 ‘갑오경장’이 역설적으로 대원군에 의해 지지부진해지자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하나인 이노우에 가오루가 직접 나서게 되는데요. 일본공사로 조선에 들어온 이노우에의 목적은 무엇이었고,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결국 대원군의 실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의 진짜 의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동시에 대원군과 민씨 척족의 문제점 또한 짚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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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음악] 안녕하십니까. 어,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은 일본이 청일 전쟁을 시작하고 그리고
동시에 갑장을 일으키기 시작을 한 와중에 가장 첫
번째 큰 전투였던 평양 전투를 통해서 어, 우선 청을 조선 반도에서 완전히
축출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다음 전투를 기획하는 와중에 갑경장이 너무
지지부진해서 그 갑경장을 다시 힘을 실어 주고 그리고 더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위해서 유신을 주도했던 가장 핵심 세력 중에 한
사람인 그 인호의 가오로를 조선의 일본 공사로 파견을 합니다. 얼마나
일본 입장에서는 어 갑경장을 성공시킨 것이 중요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면 어 이노의 가오루가 어 어떤 경의로 해서 결국은
조선의 공사로 부임을 하게 되고 2차 갑보장을 어떻게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대원군을 어떻게 실각시키는지 역사의 또 중요한 장면을
오늘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청일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어 사실
갑경에 그만큼 일본으로서는 어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죠. 어 그러면서
점점점 이제 개혁이 지지부진해집니다. 그니까 한쪽에서는 그
어 성환 전투 어 이런 데서 폐쇄한 그 청군이 이제 평양에 집결하고 또
일본의 대군이 어 또 조선의 전개가 되고 이러는 상황에서 조선의 대부분의
그 보수 그 사대부들이나 이런 사람들은이 갑 자체를 굉장히 반대를
하고 자꾸 멈추려고 하고 근데이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직 일본이 확실히
이길 건지에 대한 그 자신도 없고 확신도 없었죠. 보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청이이기는 것이 맞는데 중국이이기는 것이 맞는데 아무튼 딱요
상황에서 평양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그 상황에서는 굉장히 그 보수 파에서 그 개혁에
대한 반대가 이제 심해지기 어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토리 공사가
무스무네미스 일본 외무 대신한테 보낸 전문에 대원군에 대해서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에게 9월 21일자 전문입니다. 대원군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는 권력에만 관심이 있고
유교적 체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자들은 사제의 축적에만 관심
있는 기회주의자들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 일본이 들어와서
경복을 장학을 하고 점령을 하고 대원군을 보 복권을 시켜 가지고
권력을 다시 주고 그리고 가보장을 추진하라고 해서 군국 기무처도 만들고 그랬는데
결국은 군국 기무처에서 어 개혁을 추진하는 극히 일부
급진 개화파 몇 사람들 빼놓고는 도대체가 개혁을 하려 그러질
이 기회에 재산이나 축적하려고 어 그러는 그러는 관려들 아니면은 이제
개혁에 반대하는 관려들만 있습니다. 특히 그 우두머린 대원군은 이제 전혀
개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일본이 이제 정확하게 간파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일본에서는 일본에서는 우리가 저렇게까지 군대를 보내서 관리들을 보내서 뭐를 한다 그러는데 왜
아무것도 안 되느냐? 도대체 뭐를 당신들은 하고 있느냐라면서 그러니까 갑보 경장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
정부, 일본 관리들에 대한 일본에서의이 비난이 비판이 이제
쏟아져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이거 그냥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개혁을
대원군을한테 맡겨서 내버려뒀다가는 안 되겠다. 뭔가 완전히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다라는 이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투구사와의 기치가 그러니까 이제 문명화라는
개념을 만들고 일본 내에서의 문명 개화를 주도하고 하는 사상가였고 개화파들 김옥균, 박용이 사람들을
키워서 갑신정변 때도 적극 지원을 했었던 그 후구사와 유기치가 그때에
이제 자기 신문지지 신보에다가 대원군을 맹렬히 비난하는 기사를
씁니다. 조소는 문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야만국이며 오직 협박을
통해서만 고집을 꺾을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그 고집을 꺾 꺾을 수 있다라고 한 건 사실은
대원군을 지목한 거였습니다. 대원군이 지금 문제다라는 것을 후구자가 지적을
한 겁니다. 그 그리고 이제 일본의 외무성 특히 외무 대신 무스
문네미스는 걱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걱정이냐? 일본이 승승장고 매
전투마다 다 지금 승리를 하면서 나갑니다. 그러면은이 사람들이 뭐를 걱정하느냐 하면은 다른
열강이 개입할 거를 걱정을 하는 거죠. 전쟁이라는게 청하고 일본이 비등해서 한번지고 한번 이기고 하면
이게 그냥 오래 갈 거고 자기네들끼리 결론이 나겠지 하고 내버려 두겠지만 지금 사실 일본이 파죽 지세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그래서 청이 무너져 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무스 같은 정말 국제정세나이 세력 균형 이런 거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네 군대가 계속해서 너무이기는 거가 걱정이 됩니다.이 이렇게 되어 버리면
분명히 어느 열강인가 개입을 할 거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나중에 일본이 완전히 청일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그때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힘을 합쳐서 삼국
간섭이라는 걸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때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서
전류품으로 중국 보고 내놓으라고 했던 그 요동반도 요동 반도를 다시
뱉어내라고 그렇게 열강이 결국은 간섭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
훨씬 전이지만 전이지만 전쟁 초기부터
루트는 그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됐을 때에
열강이 만일에 개입을 한다. 그랬을 때에는 조선의 일본 대표가 누군가가가
있어서 개입하려는 열강들하고 맞서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할 굉장히 강한
인물이 필요했던 거죠. 그러니까 옷돌이 공사 정도의 직업 직업 외교관
갖고는 될 일이 아니고 훨씬 더 일본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진 그런 인물이 필요했었던 겁니다.
여기에 벌써 조선에서는 다시 동화이 천군도 들어가고 일본군도 하고 그러니까 이제
결국은 해산을 했었는데 동학이 다시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거죠. 대원군이
열심히 그죠. 사람들을 보내서 동학을 자극을 시켜 가지고 그 청군하고
동학이 협공을 해서 일본을 몰아내자. 이제 이런 계획을 하고 있으니까
삼남에 있는 동학이 다시 움직이는 것도 보이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제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국하고 싸우는데
청하고 싸우는데 정신이 없는데 조선 내보에도 동학이 또 동료를 하기
시작하지. 그러니까 이거 자칫했다가는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갈 수 있다 생각을 해서
그때 무츠가 내가 그럽니다. 누군가 최고의
실력 있고 평판 있고 존경받고 그런 사람을 보내야 됩니다. 그렇게
합니다. 누구를 그러면 도대체 오토리 공사 대신에 조선이 누구를 보내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가 있을까? 열강의 간섭도 맞고 어 그 다시
봉기하려는 동학도 맞고 그리고 특히 대원군 때문에지지 지지부진한 그 그
개혁을 다시 주도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영향을 갖고 있는 그런 인무를 지금 찾겠다 그럽니다. 그때에 어
무스가 이노에 가오루랑 얘기를 해 보니까 이노웨가 자기가 가겠다 그럽니다. 그니까
인호의 가오루는 누구냐면요. 이또히로부이 야마가리 또모이
사람들하고 같이 그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인물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노웨하고이는
미항을 해서 영국에 가서 유니버시티컬지 런던에 가서 공부까지
하고 오는 바로 그런 인물이고 와서 외모 대신을 이미 일본의 외모 대신을
여임했던 인물입니다.뿐만 아니라 인노에는 조선하고의 관계가
아주 각별합니다. 1876년에 일본이 운여 사건을 일으켜서 그리고
이제 조선하고 강화도 조약을 체결해서 조선을 열려고 그때 구로다 기호닷가
함대를 입고 갔을 때 그때 부관으로 그때 같이 간게 또 인호회입니다. 그러니까 강화도 조약을 통해서 조선을
여는 그 현장에 인호회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다음에 김기수,
김홍집 이런 수신사들이 갈 때에 일본에 건너갈 때에 그때마다이
조선에서 온 수신사를 맞는게 누구냐면 인호예요. 가오로호였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조선이 개혁을 해야 된다라는 걸 끊임없이 강 저 강조를 하고 설득을
하고 어 여기저기 구경시키고 외국 사람도 소개시키려 그러고 그런 모든
노력을 기울렸던게 사실 인노의 가오로였습니다. 그리고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그다음에 후속 조치를
하는데 있어서 전부 다 이노웨가 어 들어와서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었던 핵심 세력
중에 조선 문제를 처음부터 주관하던 그러한 핵심 인물이죠.
그러니까 이노웨가 역시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가는 것이 필요하다 해서
가겠다 그럽니다. 그런데 그때 무츠 무네미츠는 오히려 외무 대신이지만은
이노회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는 사원일 사람이죠. 그래서
인노회를 갖다가 그냥 옷돌이 공사 후임으로 보내는 거를 어 그
못 하겠다. 그래서 독판 변리사라는
특별한 지위를 줘서 가십시오 이럽니다. 그랬더니 이노회가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이 노회가 안 된다. 내가 굉장히 특별한 대단히
높은 직함을 받아 갖고 가면은 이건 분명히 다른 열감들이 의심할 거다.
일본이 조선에 대해서 뭔가 굉장히 큰 음모를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구나.
개혁을 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구나 하면서 의심을 할 거라. 그래서 다 필요 없다. 나는 그냥 일반 공사로
그냥 임명해서 보내라. 그래야지 내가 가서 운신의 폭이 생긴다 이러면서
전임 옷떨리와 똑같은 공사의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인노회가
조선으로 건너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에 일본에서 나오는 영자 신문인
The Japan Weekly메이라는 신문에서 1894년 10월 26일 날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조선의 개혁 문제에 대해서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지난 14년 동안 조손의 애국 지사들은 몇 차례 개혁에 대한 의지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은 너무나도 조선 특유의 배신과 잔인함을 동반하였기에 개혁의 실패는
항상 명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람 중에 진정으로 개혁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5명과 5점을 남긴 사람들 뿐이다. 일본이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이들과 협제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당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들과 연관된 개혁들은 곧바로 강한 반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보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정확하게 상황을 보는 거죠. 그러니까 김옥균, 박영, 서재필이
사람들이 개혁을 위해서 정변을 일으켰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거죠. 민씨들이 다 죽고 이러면서 그야말로이 원수들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지금도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에 가서 개혁을
하려면은 같이 손잡고 개혁을 할 수 있는 세력은 누구냐면은 바로 그
갑신정변에서 실패해서 왕실과 지금의 민시 척적들과 다 원수를 진 그
사람들하고 다시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때 그 개화파한테 당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봐서는
절대로 못 봐겠다. 다 싫다라고 반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거를 이재현 위클리가 정확히 분석을
하는 거죠. 개혁을 하는데 일본 모델을 갖고 일본의 힘을 빌어서
조선을 근대화시키려는 개혁을 하는데 그게 이제 갑신정이고
갑옷 경장이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쌓였던 원한들
때문에 사실은 일본의 힘을 빌어서 조선을 개혁한다라는 거에 대한 굉장히
많은 반대가 조선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보 경장이 안고 가야 될 굉장히 큰
짐이고 어떻게 보면 결국은 그 짐을 극복을 못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갑보장마저도 시를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을 지금 재판 우클리 기자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한편
인호의 공사는 이제 조선에 부임을 해서 조선에 있는 주조선 영국 공사
힐리와 10월 29일 날 만나서 이제 대화하는 중에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나는 단도 직입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조선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오랜 변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조선은 병자입니다. 문제는 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약을 줘서 몸의 건강을 회복하게 하느냐입니다. 환자는
약의 맛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지만 환자의 회복을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조소는 병 들어 있다. 환자들은 약 먹고 먹기 싫어한다.
근데 그 병에 나려면 약을 먹어야 된다는 그 비유를 쓰면서 억지로라도 조선이 근대화 개화의 약을 먹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이 이 문제를 이렇게 보면서 어 개혁을 추진하겠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때에 이제 2차 동학란이 일어나는
거죠. 대원군이 사람들을 보내 가지고 남쪽에 있는 동학을 부추여서
일으켜라. 일으켜라 그러면서 북쪽에서는 청과 힘을 합쳐서 같이 쳐내려갈테니까 그렇게 해서 이번을
쫓아내자. 그러니까 이제 동학이 어 다시 봉기를 합니다. 2차 봉기입니다. 자, 그런데이
동학을 누가 어떻게 진압을 하느냐 실제 기록을 찾아보면요. 그때
일본군이 2차 동학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파견한
군대는 3계 중대였습니다. 근데이 3대
중대마저도 세계 중대마저도 예비군입니다. 있는 군데 다 동원을 해 갖고 지금
어딜가 있습니까? 평양 가서 싸우고 있고 바다에서 싸우고 있고 그다음에 평양에서이긴 다음부터 이제 로션으로
진격을 해 가고 있고 거기에 지금 온갖 군대를 쏟아붓고 있는데 지금 동학을 갖다가 진압하기 위해서 대규모
군대를 보낼 수가 없는 상황죠. 그래서 그 3계 중대가 와서 동학을 지납니다. 그래서 11월 10일 날
삼계 중대가 도착을 해서 세 갈래로 나눠져서 남화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때
왔던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 어 미남미 고시로라는
장교의 보고서입니다. 공학당은 일종의 난민으로서 대개는 양민과 혼합 앞에
있어 그중에서 동학당을 판별해내는 것이 정토군으로서는 제일 곤란한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도처에서 기포하여 그 무리를 모으고 군대에
저항함으로 한번 싸워이를 격파하면 즉시 흩어져 인민이 되고 혹은 현감,
군수, 부사 등에게 다그쳐 동학당이 아니라는 증서를 요구한다. 그럴 때는
지방관이 양민과 약한 자의 차별 없이 그들의 요청대로 증서를 내준다. 그
그러함므로 동학당이 되어 정토군에게 저항했던 자도 양민을 가장하게 되었다. 이런 일로 현감, 군수,
부사 등에게 묻하면 그 대답이 MMO에서 종잡을 수 없다. 갑이라는
곳에서 물어보면 을이라는 곳의 인민은 모두 동학도라고 하지만 을이라는 곳에서 물어보면 갑이라는 곳의 인민이
모두 동학당이라고 한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다시 일어날 후환이 생길지도 모르므로 할 수 없이 며칠간
한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지방 관리는 단순히 그 사람수만 채우고 있을뿐 동학도의 세력이 왕성할 때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군대가 가면 군대를 편드는 것 같이 주선하고
그리고 군대가 떠나려고 하면 또다시 동학도에게 공략당할 것을 겁내 한사코
군대를 멈추어 두기를 바란다. 이러므로 작전 수행이 몹이 늦어졌다.
글쎄요. 어떻게 보면 게릴라 정법 같기도 하지만은 뭐냐면은 일본군에서는 예비군
3계 중대만 보내서 동학을 진압을 할 수가 있을 거죠. 실제 전황이라는
거는이 보고서에서도 나오듯이 지금 어디까지가 양민이고 어디까지가
동학도고 정부의 관리들이 과연 그러면이 진압하는 거를 도와주느냐면
정부 관리 입장에서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고 생각같이 그렇게 명확하게
누가 동학이고 아니고 해서 어떻게 전투를 해서 선멸하고 이런게 없이 그냥 홀난 중에서 또 무슨 전투가
일어나면은 했다가 또 그냥 금방 해산 되고 흩어지고 숨어들어 버리면 또
지지부진해지는 거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동학을 어 일본군이 진압을 해
나갑니다. 자 그러면 한쪽에서는 일본 예비군을 동원해서 동학을 2차
동학란을 진압을 하는 그런 상황인데 대원군은 지금 청나라
군사하고한테 편지를 보내고 친서를 보내고 동학을
자극을 해서 나한을 일으키게 한 것에 모잘라서 지금 정부 내에서 자기 편이 아닌
특히 개혁을 급히 추진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제거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10월 31일에는 아예 자객을 보냅니다. 자을 보내서
법무함은 협무부 차관이죠. 협김하구를
암살시킵니다. 그러니깐 이런 일까지 벌어지고 나니까 이제 인노의 가오르가
이거 더 이상은 대원 놔두면 안 되겠다.
11월 8일 날 이어회가 김홍집 총리 대신 김윤식
외무 대신 어윤중 탁지 대신이 사람들을 자기의 공간으로 초청을 해서
그때에이 사람들한테 뭐를 보여 주느냐? 일본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키면서
청군이 미쳐 처리를 못 하고 소각도 못 시키고 그냥 남겨두고 간 편지 즉
고종 이름으로 대원군의 이름으로 청나라 장수한테 보냈던 그 편지들
그렇죠. 그러니까 일본군이 그걸 입수를 했었했고 그 입수한게 야마가 또뭐 원수가 가서 그걸 입수를 했고
그거를 이노 가오로한테 전해 줬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노웨가 그 편지들을 가지고 조선에 부임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걸 쥐고 있다가 지금 동학란도 일어나고 있고 이게 점점점 대원군이 뒤에서 일을 조장한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고 그것도 모잘라서 김하구까지 개화파까지 암사라는 것까지 보고는
드디어 이호이가 그 편지를 끌어듭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즉 개화 그래도 개혁을 하려는 적극적으로 가보경장을 같이
밀어붙이려는 그 사람들을 불러서 대원군하고 고종이 이러한 편지까지
청나라 장수한테 보냈다. 더 이상 이거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대원군을 쫓아내야겠다라는 거를 김홍집하고이 어 김윤식하고 어윤종 대신들한테
통지를 합니다.이 당시 상황을이 당시 상황을 이노웨가 이제 츠
뮤미츠 그 외모 대신한테 이제 그 상황을 보고를 그니까 그 보고서
내용들이 있습니다.이 이 보고서 내용을 보시면은 한쪽으로는 대원군을
제거를 해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비도 그러니까 대원군하고 민비간의
싸움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안 일어나고 있는이 상황 이걸 알면서 대원군도 제거하고 사실 민비도
정개에서 더 이상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라는 자기의 그 계획을 어 그
적어서 보냅니다. 그 보고서 내용이 다음 거 같습니다. 제가 이미 먼저 보낸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여왕 즉 민비 대원군 이준용은 조선의 내정 개혁을
집행하는데 장애물들입니다.이 장애물들의 영향력을 제어하지 않고 개혁을 시작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곳에 도착하는 즉시 우선적으로이 장애물들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원군과 이준영 그리고 이들을 추정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이 우리 일본에 대해
음모를 획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중상 모략가들이며 자신들과 일본을
이간질하는 무리들이라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개화파로 하여금 일본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도록 협박하였으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음모를 감췄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호로부터
대원군과 그의 추종자들이 평양의 청군 장수들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하면서
이들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되었고 사실들을 밝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편지들 중에는 고종이 청측에 자신의
진정한 희망과 발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준영이 부하들을 시켜 동학
지도자들에게 보내 그들을 자극하려 한 비밀 편지도 11월 8일 저희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증거들로 무장한 저희는 공식적으로 비판하면서 그들이
뻔뻔하게 모든 문제를 일본의 손에 맡기고 조선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동학을 진해 진압해 달라고 하였고
우리와 동맹을 맺어 천군을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구라고 하면서 조정 대신들이 모두 존경하고 두려워해
마지 않는 대원군과 그의 애손이 청의 장군들과
동학과 음모를 꾸며 우리 군대를 조선에서부터 몰아내려는 음를 꾸몄습니다. 일본은 더 이상 조선의
편의를 제공할 수 없다고 우리는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선을 지원하고 독립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세 명은이 말을 듣고는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러면서이 노예는이 세 사람한테 조선 정부가 지금 일본
몰래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라고 이제이 사람들을 비판을 하하면서 사실은 더 중요한게 누니까 이제
대원군이 문제죠. 그래서 같은 날이 노에는 대원군한테 사람을 보냅니다.
그러면서에 오가모도라는 사람을 보냅니다. 대원군이 굉장히 그 저 믿었던
사람이죠. 그리고 특히 일본이 경복공을 장악하면서 그때 대원군을
앞세워서 갈 때 그 대원군이 나서지 않는 거를 끝까지 설득했던 사람이
바로 그 오까모도입니다. 그 오가모도를 다시 대원군한테 보내서 대원군한테
정확하게 항의를 하라.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있다라는 것을 정확게
전달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오카모토가 대원군한테 전합니다. 우리가 저하를
믿었기에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저하께서 국정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인호의 공사가 증거물을
보여줄 때까지 저는 저학께서 어떤 음모를 꾸미고 계셨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대원군과 그의
애손이 일본을 상대로 음모를 꾸밀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아니 놀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저하와 저하의 추정자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11월 11일 고종은 김몽집을
일본 공사관한테 보내서 보내서 사과를 합니다. 우리가 총군한테 편지 보낸
거 잘못했다라고 사과를 하도록 합니다. 11월 13일에는
대원군이 직접 일본 공사관을 찾아가서 또 사과를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국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라고 이제 그렇게 맹세를 한다라고 이제 얘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이준용도 그니까
대원군의 손주죠. 그니까 항상 고종을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앉치려는 그 그
자기 손주 이준영 이준영 역시 13일 일본 공사관을 방문해서 자신이 시골
사람들과 부주의한 접촉을 했다. 이거를 시인하고 그러니까 동학과에 접촉했음을 시인을 하고 사과를
합니다. 결국은 11월 22일 고종의 전교가 내려집니다. 전교의 내용은
내용은 태공 즉 흥손 대원근의 뜻을 받들었으니 금년 6월 22일에 내린
모든 사무와 군사 업무를 태공 깨가 아래도록 하라고 한 전교를 다시
거두어 드리라. 더 이상 대원구는 이제 국정에 간여하지 않는다라고
고종의 이름을 전교를 내려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대원군은 또다시 정개에서
제출됩니다. 자, 그리고이 노예가 민비에 대해서도 이렇게 보고를
합니다. 민비도 대원군과 마찬가지로 내정 개혁의 장애물입니다. 우리가
대원군의 폭정만 제어하고 민비가 정부를 장악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한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는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동종 요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저희는
대원군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제어하는 한편 동시에 그를 이용하여 궁중에서 민비의 행동을
제어하게함으로써 시류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하고 내정 개혁으로
가는 길을 연는 서로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개화파와 보수파가 상대방에
대한심을 적 접고 내정 개혁에 동참함으로써 조선의 독립을 공고해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동참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이
시기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조선 국정의 난맥상 즉 대원군과
민시 척적들과의 그 싸움입니다. 그 와중에 개혁은 온데 간데가 없고
개혁은 조선의 국정 과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원군이 민시 척적을 제어하려 제거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거꾸로 민시 척적들이 대원군을 제어 제거하려고 하는데 그 개혁이 쓸모가
있을 때에는 개혁을 하겠다 그러지만 그냥 나라를 위해서 개혁을 해야 된다라고 해서 밀어붙이는 그런 세력은
당시 조선에 없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오히려 일본이 이노의
과우르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틈바구니에서라도 조선을 개혁을 해야 되냐 그러면 결국은 뭐냐 처음엔
대원군한테 혹시나 맡겨 봤는데 안 된다. 그럼 대원군을 퇴출시켜라. 근데 그렇다고 민민비쪽으로
민시 쪽으로 제일 권력이 넘어가게 하면 그 사람들 또 개혁에 반대니까
안 된다. 둘 다 제거하고 다시 다른 세력을 데려와서 진정화를 개혁을
원하는 세력을 데려와서 그럼 개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2차 갑을
시작하는데 그 개혁을 누구한테 맡기냐면 일본에서 데려온 박영,
미국에서 데려온 소방범 그렇죠? 이런 사람들한테 맡깁니다. 무슨 말씀이냐?
아까 재팬 우클리 기자가 정확하게 분석했듯이 민시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하고 그러고는 도망갔던 사람들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한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적들이었던 사람들하고 밖에는 손잡을 데가 없는 거죠.
일본. 그러니까 그렇게 개혁의 입지가 좁은 상황에서 어떻게든지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2차 갑옷 개혁입니다.
[음악]
평환 전투 어 그다음에 어 평양 전투이 전투들은
조선에 있는 천군을 축출하려는 전투들이었습니다.
근데 일단 평양 전투에서도 이기고 어 그다음부터는 황해회전까지이긴 다음에는
청군을 조선반도에서 이미 축을 했습니다. 그다음 목표는 베이징으로
북경으로의 진격입니다. 임진외란 때도 일본이 평양 전투에서 막혔습니다.
그때 이요송의 명군이 들어와서 평양 전투에서 막혀서 그때부터 이제 지리한
협상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결국은 나중에 정유재란으로 재발이 되지만
평양에서 막 막혔었습니다. 일본이 이번에는 평양을 합락을 시킵니다.
그래서 평양에서 천군을 이깁니다. 그리고는 이제 곧바로 암록강을 넘어서
중국 본토로 일본인군이 진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본토로 진격한다라는 것은
곧 이제는 수도 베이징을 함락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총이 무너지는 겁니다.
아예 청나라가 없어지는 거죠. 일본 군대가 베이징에 입성을 한다. 그럼
진짜 청 청조 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근데 그 가는 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루션입니다.
요동반도 끝에 있는 여순. 요 요동반도와
그 주변의 지도를 한번 보시면요. 우리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는 지도와
요동반도를 딱 가운데 놓고 보는 지도는 굉장히 다릅니다. 요동반도를
중심에 놓는 지도를 보시면요. 정말로 딱 북경하고
평양하고 딱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요동반도만
차지하면은 당연히 북경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다라는 그거를 정확하게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발래만과 서해
이쪽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바로 그 기지 그 지점이 루션입니다.
그리고이 지도를 보시면요. 요동반도가 완전히 발깊숙히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루션하고 그다음에 산동반도에
있는 웨하이웨이 지금 엔타이라고 그러죠. 그 엔타이하고 루을 한번 보세요. 지도로. 얼마나 좁은
병목입니까? 그야말로. 근데 저기만 통과하면은 뭐가 있습니까?
거기만 통과하면은 북경이 있습니다. 물론 북경을 맞는 막 북경을 방어하는
마지막 진지가 티엔진에 있는 그 유명한 따쿠지지만은
사실 루션하고 웨하이웨가 뚫리면은 그다음은
베이징은 방화할 방법이 사실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이 루을
향해서 가기 시작을 합니다. 루슈네는
16년 동안 청이 그 구축한 기지가 있습니다. 놀라운 기지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거기에 거대한 조선서를
만들어서 군남들을 항상 수리할 수 있고 그런 최고의 기지를
만만 만들어만들어 놨습니다. 웨이 하이웨이에도 똑같이 거대한 기지를
만들고 거기에 조선 모든 배를 수리할 수 있고 구남들을 수리할 수 있는 그러한 덕크랑 모든 거를 만들어
놓습니다. 루신하고 웨하이웨이 사이에 거리는 110마일밖에 안 됩니다.
거기만 통과하면은 베이징은 합나게 됩니다. 그래서이 한구들은 정말
천해의 한구들이고 중국을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다 그 뺏어야
되는 그러한 기지들입니다. 뭐 함대가 예를 들어서 발레만 안으로 들어가서 텐진을 공격한다 그러면 웨이하이웨하고
루션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큰일 하죠. 왜냐면 주위에서 공격을 해올 수가 있으니까. 절대적으로이 두 기지를
잡고서 그리고 이제 베이징으로 들어가고 그 대신 그 두 기지만 잡으면 베이징은 북경은 도관에 주가
됩니다. 1894년 9월 초 런던 타임즈는 이렇게 그 당시의 상황을
얘기를 합니다. 따쿠, 티엔진 그리고 베이징으로 가는 발구는 루과
웨이하이웨이 사이에 오면 110마일로 좁혀진다.이 한구들은 자연히 지정해 준 중국 동북 해안의 전략적
요충이다. 발에만늘 들어가는 적군은 측면과 후방에이 두구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루과 웨하이웨이의 전략적 가치는 온전히 청해군의 전투력에
달렸다. 역사를 보면 피신할 수 있는 요새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걱정을
합니다.이 기자들이 걱정을 합니다. 평양도 쉽게 내주고 그리고 그냥 아
우리가 로션 지키면 되지. 이렇게 되는 거죠. 근데 자꾸 그런 그런 일이 천군 측에서 벌어질 거라고 이제
기자가 걱정을 런던 타임스 기자가 걱정을 한 겁니다. 그리고 루슈의 최신 방어진이 대부분 바다를 향해
있음을 또 지적을 합니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 후방의 육지를 향한 마음
어마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적은 그쪽으로
공격해 온다는 것이다. 즉 무슨 말씀이냐면요. 로션도 그렇고 외하이웨이도 그렇고 바다에서 적군이
오는 거를 방어하기 위한 엄청난 포대들을 만들어 놓고 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등 뒤로 그 산으로 진격해
오는 거는 그거를 방어하는 그 방어망은 굉장히 약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1번은 앞에서도 함대들이
공격을 하겠지만 1군과 2군을 파견해서 어떻게 합니까? 육로를 통해 가서 통해서 배후로 가서
남화를 해서 루션을 공략하는 그 전략을 세우는 거죠. 런던 타임스 기자는 그것도 걱정을 합니다.
바다에서 오는 적을 방어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방어망을 만들어 놨는데 육로로 진격해 오는 적군에 대한 방어망은
너무 약한 거 같다라고 걱정을 합니다. 따라서 루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다로부터 공격해 오는 일본 해군이 아니라 일본 육군이 상륙하여 루신의
후방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 이것이다라고 지적을 합니다. 그러면서 기사는 류항의 동쪽에 대규모
군대를 상륙시키는 고난도 작전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안 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 평양 전투에서 이겨서 암록강을
건너서 이렇게 오는 군데도 있고 그렇지만은 일본이 빨리 루션을
합락하려면 그 군대만 갖고 안 되니까 다른 대규묘 군대를 분명히 루션 옆에
있는 어디 요동반도하고 조선반도 중간에 있는 어느 지점에 분명히
군대를 상륙시킬 것이다. 그러니까 청의 입장에서는 그 해안선만 제대로
방어를 하면은 육군이 상륙을 못 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니까 이렇게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고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지금 그거를 청이 지금 알고서 그거를 방어하려
그러는 건지조차도 모르겠다라면서 오히려 또 청을 걱정을 해 줍니다.
그 일본은 세갈래로 이제 베이징을 향해진을 합니다. 구는 평양을 어
함락시키고 계속 북진을 해서 암록강을 건너서 이제 육로를 통해서 만주를 관통해서 이제 그 루션으로 요동반도로
가는 거고 제2구는 바다를 통해서 조선반도 야우동반도 사이로 상륙을
해서 야동반도 뒤로 돌아서 위쪽으로 해서 또 남아를 하는 거. 그리고
나머지 일군의 병력은 청황실의 고향. 그렇죠. 청조가 만주에서 나지
않습니까? 시양에서 그 시양 청황실의 고향인 시양을 또 공격을 하는 그렇게
세갈래로 일본군이 어 중국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그러면서 만일에 어 이군이 상륙에 성공을 해서
루션을 점령을 하면은 뒤에서 오고 있는 일군은 계속해서 만주에서 전투를
벌리고 심향을 점령을 하고 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구는 다시 배를 타고
곧바로 외하이웨이로 가서 외하이웨이를까지도 점령을 하겠다. 합락을 시키겠다.
이제 그런 전략을 짭니다. 그래서 만일에 진짜 성공을 하면 국경은
말씀드렸듯이 도관에 든쥐가 됩니다. 이러는 와중에 일본은
삼군도 제3군도 히로시마에서 편성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이 3는
나중에 필요하면은 티엔진에 그러니까 외하에 외하고 루션을 다 함락시키면은
그다음에 티엔진이 열렸을테니까 티엔진에 상륙해서 메이징으로 향하게 하는 그 삼군을 또 어 그 육성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청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연전 연패를 하니까 이용장을 결국은
문책을 하는 거죠. 그래서이 황마괴이
황마괴라는게 뭐냐면이 그 황색 그 저거리입니다. 근데이 황색 저거리는
사실은 황실밖에 입으면 안 됩니다. 근데 그거를 이용한테 입힌다라는 것은
그거는 정말 청황실 신하로서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그 옷을
그렇게 어 자랑스럽게 어 그 이용자가는 늘 입고 다녔고이 사진에서도 보시는 바로 그 돌입니다.
근데 그거를 황실이 뺏어 버립니다. 계속해서 지니까. 근데 문제는
뭡니까? 근데 지금 일본하고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군대는
이홍장의 북양군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뭐 황막개를 박탈를 했다가도 그다도
또 시켜야 되고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끝에 맨 마지막에 가서 평화 협정 항복을 하고 평화 협정을
조인하는 것까지도 이용장한테 밖에 맡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보시면요. 일본은
그니까 아까 우리가 갑경장 조선의 개혁 문제에서도 보였듯이 일본에는
여러 모양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군인도 있고 외교관들도 있고 대단한
정치가들 있고 그래서 누구는 조선을 가서 개혁하는데 맡기고 누구는 뭐
어딜 가서 영국을 설득하는데 시키고 누구는 군대를 맡겨서 양속
군대를 육성화도 시키고 인적 자원이 놀랍게 많습니다. 일본은 그 인적
자원을 정말 그 당시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키워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적 자원을 어떻게 개발하고 어떻게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을 발굴하느냐의 문젠인데 청나라는 그냥 이홍장 한 사람이
전쟁도 하고 외교도 하고 내치도 하고 다 그러니까 이길 방법이 사실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결국은 서태후가
청의 그 서태후가 이게 점점점 문제가 심각해진다. 어 이거 군대가 일본군이
베이징으로 진격해 오는구나. 그죠?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서태우는요. 그니까 군대에는 돈을 안 주고 해군
군함을 만드는데 돈을 안 주더라도 자기 환갑 잔치를 위해서 엄청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돈을 비추으라고. 그래서 결국은 사태가 심각해지니까
서태우가 자기가 갖고 있었던 300만 양 자기 잔치 환갑 잔치를 하기
위해서 비축했었던 그 돈을 군대에다가 병부에다가 주면서 좀 싸우라고 제대로
좀 싸워 보라고 그럽니다. 이게 처음으로 서태우나이 청황실에서
문재 심각성을 알아서 이용장한테 모든 걸 맡긴 것이 아니라 맡기지 않고
뭔가 자기네도 기여를 해 보려고 하는 첫 번째 움직임. 청나라는
청구는 아직도 일본이 평양을 함락했지만 압록강을 쉽게 못 건너올
것이다. 그러니까 루신이나 여기를 지금 탁 방어를 빨리 생각하라고 신문
기사들도 나오지만 청약은 거기까지 아직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암록강만
사수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지금 아직도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근데 일본이 오히려 걱정을 합니다. 일본의
정치인들하고 외교관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게 뭐냐면 너무나 일본이 파죽세로 이기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일본의 군부는 전쟁 전투마다 다 이기니까 그리고 드디어
중국의 수도 청의 수도인 베이징을 우리가 함락시킬 수 있다라는 데까지
이제 완전히 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고 전략을 본격적으로 그렇게 짜면서 군대를 양 육성하고 파견하라고
상륙시키고 하면서 베이징을 점령할 기세로 지금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외교관들은 알죠. 그렇게 되면 큰일 난다.
우리가 전력이 모잘라서 베이징을 함락 시키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함락을 시키면 큰 일이다. 거기까지 쳐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소구 열강들이 절대 가만히 안 되죠. 이 중국을 일본 혼자서 다 먹게끔
소구 열강들이 내버려둘 리가 없죠. 중국이라는이
엄청난 무역을 하고 있고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서 투자를 하고 있고 그 독일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다 그러고 가서 있는데 거기를 어느 특정 열강 그것도 일본이 들어가서
그거를 다 점령해 버린다이 수 없는 근데 이거를이 또 히어로이
무스네미스이 사람들이 이걸 알죠 외교관들은 그러니까 거꾸로
계속 군부 보고 일본 군보고 당신도 이러면 안 된다. 베이징
함락은 우리의 목표가 돼서 안 된다라고 적극적으로 제어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쯤 되니까 11월 24일 날 런던 스펙이터라는 친문에 이런
기사가 납니다. 일본인들은 마치 백인이냥해야 한다. 일본은 더 이상 강제할 수도
협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어떤 열강도 유럽에서 전쟁한 것 못지 않는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일본과 전쟁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천군을 무너뜨리는 거를 보면은 어 저
정도의 전력과 저 정도의 전술 이면은 유럽 군 열강에 어느 군대가
들어가더라도 유럽에서 다른 열강들끼리 자기네들끼리 싸울 때 치르는 그 대가
못자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를 해야만 간신히 일본을 하고
맛붙을 수 있라는 거를 이제 알기 시작하라고 그런 기사를 이제 씁니다.
이런 기사가 나오니까 일본 군부는 어떻게 됩니까? 더 기고 만장하는 거죠. 야, 우리가 드디어 도요도미가
꿈꿨던 베이징에 가서 자기 어머니의 뭐 어, 그 생일 잔치를 해
드리겠다라고 그렇게 호원했던 그런 꿈.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일본이 중국의 수도를 공합시킬 수 있다라는
가능성 자체가 제기됐을 때는 이때뿐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군대는 기고만장을 하고 군부는 베이징으로 진정을 하자 거고
외교관들은 일본의 외교관들이나 정치인들은 그걸 막고자 이제 그러한
내부의 또 그 긴장 또는 안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네. 오늘은 어 일본이 이제
본격적으로 평양을 함락시키고 그리고 갑보 경장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인노웨이 가어르를 파견하고 그리고 대원군을 어
몰아내고 밀어내면서 이제 더 본격적인 어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는 그 단계에
대해서 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놀라운 전과가
있기 때문에 전투를 거듭 이기기 때문에 지금 이제 베이징으로 진격해
갈 그런 단계까지 이제 와 와 있게 된 거고 그렇지만 조선의 내부의
개혁은 역설적으로 그 노력은 계속해서 지집은 합니다. 그래서 고정이 방해를
하고 2차 동학난이 일어나고 하는 그 모든 거를 이제 정리를 해 버리고
제대로 된 개을 하자. 그래서 2차 갑보 경장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로 그 2차 갑장의 내용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음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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