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 |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1
서중석 (지은이)역사비평사2007-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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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개항기 이후 1987년까지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대중역사서를 지향하면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펴낸 '20세기 근현대 한국사' 시리즈 중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 시기를 다룬 책. 특히 이승만 정권의 출범과 몰락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쓴 서중석 교수가 집필을 맡았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북협상과 5.10선거 부터 4월 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기까지 이승만 정권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한채 서술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교하고 있으며, 주요 사건 일지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목차
책머리에- 이승만 시대를 다시 조명하며
1장 출범하자 시련 맞은 이승만 정부
남북협상과 5·10선거
대한민국 정부 만들기
소장파 전성시대의 반민법과 농지개혁법
핏빛으로 변한 평화의 섬
국가보안법 시대의 개막
일민주의와 ‘두령국가’
2장 이승만 정권의 6월공세와 5·30선거
1949년 6월 첫 공세
조작 여부로 논란 많은 국회프락치 사건
김구 살해
감옥소는 ‘빨갱이’로 초만원
최초의 선거 바람 5·30선거
3장 개헌 또 개헌, 영구집권을 향하여
명의를 도용한 최초의 여당, 자유당
포성 속의 대권 싸움, 부산정치파동
유권자가 모르는 부통령 당선자
족청계를 제거하라!
이승만 후기체제의 구축
이승만 권력 강화의 비결
〈스페셜 테마〉 ‘한강 기적’ 일군 한글세대 대량 탄생
4장 1956년 5·15정부통령 선거
새 야당 탄생? 민주당과 진보당추진위
“못살겠다 갈아보자!”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지고
상처 입은 대통령
‘장면 부통령 죽이기’
조봉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다
자유당, 5·2총선에 총력 돌입하다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향해
여성들 경제 제1선에 나서다
〈스페셜 테마〉 성 모럴의 변화와 ‘자유부인’
5장 아! 4월혁명, 백색독재 무너뜨리다
최인규, 부정선거를 기획하다
학생들 시위에 나서다
제2차 마산항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 맞아
‘피의 화요일’ 4·19
대학교수 시위로 학생·시민항쟁 다시 불붙어
‘승리의 화요일’
글을 맺으며- 왜 이승만 권력은 쉽게 무너졌나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이승만 권력과 박정희 권력의 유사성과 상이점
이승만 정권은 왜 쉽게 무너졌나
부록: 주요 사건 일지
참고문헌
이 책에 쓰인 사진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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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부와 긴밀한 관련이 있으나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해 만들어지지 않은, 그래서 반관반민단체라 불렸고 반관반민단체답게 그다지 견고하지도 않았던 동원단체들은 정부와 함께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여 통합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삼중사중으로 여러 형태의 국민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종의 '두령국가'를 지향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과 파시즘적 두령체제의 동침이었는데, 그것이 이승만 반공공화국의 초기 모습이었다.-p57 중에서
1950, 1960년대 여성의 경제활동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계였다. 농촌여성들도 행상들도 서민 주부들도 너 나 없이 하나 내지 둘 이상의 계에 들었다. 계는 때때로 가정 풍파를 불러왔고, 광주계 소동 같은 사회적 물의도 몰고 왔으나, 당시에는 여성이 목돈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계는 특권층, 부유층 부인들이 극성맞게 했다. 이들은 학교 등에서 치맛바람을 일으켜 눈총을 받았다.-p199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서중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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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농촌·노동문제 및 민주화운동을 취재했다. 특히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2,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 『남·북협상―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비극의 현대 지도자』(일본어역),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영역),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로 번역),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전20권), 『민족주의와 역사교육』(정현백 공저), 『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6월 민주항쟁> … 총 86종 (모두보기)
서중석(지은이)의 말
정치사 연구가 답보 상태인 것은 '담화'로 대표되는 이승만의 언술에 대한 분석이 어렵기 때문인 점도 있다. 이승만의 담화는 문장이 맞지 않고, 한 문장의 앞과 뒤가 상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구어 투인 데다 꼬여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승만 담화는 그의 우민관을 잘 보여준다. 그는 국민을 기만이나 협박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켜 발췌개헌을 하고는 8.5정부통령 선고에 입후하지 않겠다거나, 사사오입개헌을 하고는 5.15정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겠다는 담화는 우민정치의 표본감이다. 그렇지만 두 선과와 관련된 담화들이 치밀히 분석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학계의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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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역사비평 155호>,<상놈과 국왕>,<경계를 건너다>등 총 301종
대표분야 : 역사 12위 (브랜드 지수 357,48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20세기는 한국역사의 격동기였다. 개항 이후 일제의 폭압을 경험했고, 해방과 더불어 한국전쟁이란 민족의 비극을 맞았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참회는 다시 독재의 암흑시대를 낳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는 결코 좌절되지 않았다.
이제 100년에 걸친 한국역사의 역동적인 드라마 속에서 오로지 자유와 진실의 힘을 믿고 힘차게 걸어온 한국인의 발자취를 정직하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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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읽다가 몇번이나 집어던지려는 걸 말린 책.
꼭꼭 2010-06-23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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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을 두고 이 책을 본다면 약간 실망스럽다.
이승만에 대한 천착이라면 추천할 만한 내용.
더불어 ˝조병옥, 홍진기˝라는 인물도 참 흥미롭다...
그 시절의 인간군상들은 다 그런것인가?
요즘 부대끼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기시감이 든다.
그 시절도 지금도 모두 똑같구나...
rushfire 2019-02-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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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제1공화국이 더 복잡해졌다.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해졌다.
yiwoogi 2008-06-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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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은 멀고도 험하다.
호~~잇! 2023-02-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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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이승만`이라는 헛소리에 대한 일침.
notluck 2015-09-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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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역사서술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현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수반한다. 따라서 오로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현재의 정치적 맥락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시각에서 파악하자면 객관적 서술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이 책도 사실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견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분명 저자의 특정한 시각이나 해설이 주를 이루는 책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였고 발간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해석은 가능한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이런면에서 보자면 분명히 객관적인 서술이라는 장점을 내세울만 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에서 특히 근, 현대사를 말 그대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행위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입맞에 맞는 역사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반공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이나 한국전쟁에 대한 전향적인 해석을 독재정권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으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말 그대로 객관적인 서술은 사실은 역사에 대한 가장 주관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권으로 기획된 한국사 시리즈의 첫번재인 이 책은 이승만과 제1공화국을 다루고 있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책인 만큼 특정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보다는 대상이 되는 시대의 정치사, 사회사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동시에 우리가 잘 모랐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승만의 독재정권과 가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의외로 진보당의 당수인 조봉암이 국가행정권을 장악한 이승만을 상대로 워협적일 정도의 선거결과를 보였다는 사실은 이 시대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4.19혁명에 대한 부분에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지만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주체인 민중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있는 이승만 시대와 박정희 시대의 비교연구는 이승만과 그의 제1공화국의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나게 해준다.
현대사는 현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역사로서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대사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앞으로 나올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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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인 2007-09-13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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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소금뿌리기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전 서울대 교수는 이광수에 대해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라 했던가. 서중석 교수의 <이승만과 제1공화국>을 읽고난 느낌이 꼭 그러했다. 이 책이 반추한, 이승만이 주도한 한국 초기 정치사, 아니 정치가 이승만은 잔인함과 비열함, 뻔뻔함 그 자체다. 이 책을 읽으면 당혹스럽고 아픈 마음을 피할 길이 없다. 이승만의 잔인하고 비열한 행태를 새삼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우리가 지금도 그런 이승만밖에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48년 5.10선거에서 1960년 4.26 이승만의 하야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기획한 20세기 한국사 전20권의 하나다. 이승만 집권기 중의 한국전쟁은 별도의 책에서 다룬다고 한다. 저자 서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최초로 현대사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알고 있다. 현대사 분야 연구자의 좌장격이랄까. 그런 인물이 쓴, 야심찬 기획물의 하나기에 기대를 품고 책을 펼쳤다.
책을 덮고난 느낌은 착잡하다. 잔인하고 비열한 우리의 정치사를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고, 또 이 책에서는 그것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분단정부 수립을 반대한 김구의 읍소로 시작한다. "자기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일 것이다." 그 뒤는 당연히 분단의 원흉 이승만(물론 김일성이라는 파트너도 있다)이 전민족을 이 '극악극흉의 위험'에 어떻게 빠트렸던가가 꼼꼼이 쓰여 있다.
오늘날의 이 문명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자행되었다. 정적은 암살하거나 각본이 정해진 재판에 걸어 사형시키고, 그 수하 인물들도 고문과 폭행으로 없애버렸다. 선거를 하긴 하는데, 반대파는 입후보등록하기도 어려웠다. 등록서류를 뺏기기도 하고 갑자기 ~법 위반죄로 무자격자가 되고, 심지어는 암살되었다.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니 시위대에는 총을 쏴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러다가 결국 총으로 망했다.
그뿐이다. 이 책은 야만의 정치사만을 다루고 있다. 왜 그런 인물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는지(그 시대의 한국인들은 바보인가,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게), 그는 전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넣은 일외에는 한 일이 없었는지, 또 정치사외에 다른 일들이 없었는지,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신생 대한민국은 그런 야만상태에서 그래도 어떻게 성장하고 있었는지 등을 알 수가 없다. 20세기 한국사의 한 책으로서 이승만시대를 다룬다면서 그 야만의 정치사만을 논한다면 너무나 일면적이다. 상처에 소금뿌려서 다시 뼛속까지 아리게 만들 뿐이다. 저자는 '야만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성장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데, 너무나 단순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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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2007-11-04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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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제1공화국
1948년
4월 남북협상
6월 제주 4.3항쟁 발잘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 선포식
9월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
10월 여순사건 발발
1949년
6월 반민특위 습격 사건
6월 국회프락치 사건 발발
6월26일 백범 김구 피살
1950년
6월 한국전쟁발발
1951년
2월 거창 양민학살 사건
5월 이시영 부통령 사임
1952년
5월 부산정치파동 시작
5월 국제공산당 사건 발표
7월 발췌개헌안 기립 표결 통과
1953년
3월 이승만, 휴전반대 성명 발표
4월 휴전회담반대 궐기대회
6월 국회, 북진통일 결의
7월 휴전협정 조인
1954년
3월 뉴델리 밀회 사건
11월 사사오입개헌
1955년
9월 통합 보수야당 민주당 창당
1956년
5월 신익회 민주당 대통령 후보 급서
5월 5.15정부통령 선거(내생일이닷)
8월 지방자치 선거
9월 장면 부통령 저격미수 사건
1957년
5월 장충동 야당 집회 정치깡패 난동 사건
1958년
1월 조봉암, 진보당 사건
12월 신국가보안법 파동
1959년
4월 경향신문 폐간조치
7월 조봉암 사형
1960년
2월 부정선거 반대 대구 경북고 학생시위
3월 제4대 정부통령선거(3,15 부정선거)
4월 김주열의 죽음으로 제2차 마산 시위
4월 4월혁명 발발
4월 대학교수단 시위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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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헤드 2015-04-1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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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제1공화국
지난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현대 사회의 흐름과 구조를 파악할 수가 있다.나아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을 수가 있을 것이다.길게는 조선시대의 유교체제와 봉건적인 사회상 그리고 무능력하고 앞을 내다볼 줄 몰랐던 구한말 위정자들의 안이한 자세와 태도가 국권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던 아픈 역사가 있었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의연히 일어선 의용군,독립운동가,뜻있는 인사들이 자주적인 독립을 원했건만 약한 국력 앞에 강대국들은 또 한 번 이나라를 어두컴컴한 터널로 몰고 가고 말았던 것이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였을 뿐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이념과 사상의 종속국가로 몰락하면서 뜻있는 인사들은 신탁통치를 분연히 반대하면서 자주독립국가의 실현을 위해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이승만정권과 김구는 한 판 승부를 벌이지만 이승만정권의 비호하에 김구는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아울러 이승만은 5.10선거를 앞두고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술수에 불과했다.나아가 1948년 제주도에선 군.경에 의한 남로당 계열과 무고한 주민들이 대량 학살되고 여.순반란 사건까지 번져 나간다.이를 기화로 정권유지용으로 국가보안법의 서막이 이루어지면서 국가체제에 반하는 자들은 무조건 잡아 들여 무참히 인권탄압을 자행한다.
이 글이 1945년 해방무렵부터 1960년 4.19에 이르기까지의 불행하고 굴곡진 이승만 정권의 실상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서중석저자는 해방 50주년을 맞이하여 갑자기 정부에서 '이승만 살리기'를 접하면서 극우반공세력,극좌혁명세력,중도합작세력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3년 동안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연구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를 출판한 이후 조봉암과 4월혁명에 관한 자료를 모은던 중 이승만 정권에 초점을 맞춰 논문과 저서를 준비하여 이 도서의 집필에 착수했다고 한다.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승만 정권을 매도하던 언론세력들이 이제는 이승만,박정희 신드롬을 추켜 세우고 있다고 하니 과연 이 나라에 정치민주화란 무엇인가가 허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을 등에 업고 탄생한 이승만정권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추한 한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권에 방해되는 세력은 가차없이 학살을 저지른 짐승만도 못한 추악한 인물이다.제주 4.3사건,여수반란사건,지리산 빨치산 사건,보도연맹사건 모두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였다.그런데 이러한 인물을 미화하고 추켜 세우려고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나아가 1956년 5.15정부통령 선거에서 장면부통령 죽이기,진보당 조봉암 죽이기,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획책한 3.15 부정선거가 1960년 마산에서 김주열의 죽음으로 4.19의 도화선이 된다.파죽지세로 몰려 오는 학생과 군중의 위세에 눌린 이승만은 불안한 상황에서 깃발을 내려야만 했다.
한국현대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권력욕이 강했던 이승만,박정희 정권 모두 장기 독재정권을 탐하려다 끝내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던 인물들이다.그들을 미화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인권을 유린하고 자주독립,민주화의 요구를 묵살하고 권력에만 혈안이 되었던 그들의 종말은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역사 바로 세우기는 끝난 것이 아닌 진행형이기에 국가와 민족,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설익은 상태로 끝내서는 안될 것이다.확고한 의지와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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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2013-05-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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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다시 본다
반세기 가까이 이 땅을 좌지우지하며 기득권을 움켜쥐었던 극우세력을 등에 업은 일부 언론은 "이승만 살리기" 를 추진하고 있다. 오늘에 있어 이승만의 "공" 과 "과" 는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정치사를 중심으로 본 이승만 집권기 개설서이다. 선거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적고 있다. 이승만 정권의 수립 - 김구 선생 암살 - 개헌 - 조봉암 사형 - 4월 혁명 - 이승만 정권 붕괴 우리의 근대사를 알기쉽게 쓴 좋은 책이다.
신흥동 2009-04-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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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탄생과 몰락
이승만 정권은 1948년 8월 15일에 출범하자마자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처음으로 국회 의원을 뽑은 5·10 총선을 전후하여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이 잇달아 터졌습니다. 불길한 출발이었습니다. 정부를 수립한 지 2년도 채 안 돼 터진 한국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때까지 '북진 통일'을 외쳤던 정부는 정작 전쟁이 벌어지자 나흘 만에 서울을 잃었고, 한강 철교를 끊고 야반도주한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대통령이었음에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이승만이 실정을 거듭하는 가운데 정권이 들어설 무렵부터 정부 형태와 국무총리 지명을 둘러싸고 그와 관계가 험악해진 민주국민당(한국민주당의 후신이자 민주당의 전신)은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 책임제로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야당의 움직임을 알아챈 이승만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부산정치파동으로 맞받아쳤습니다. 이태 뒤인 1954년에는 삼선을 위한 개헌안이 한 표 차이로 부결되자 이승만은 '사사오입(반올림)'이라는 기적의 논리를 들고나와 끝내 자기 뜻대로 헌법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이승만은 권좌를 위협하는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기며 불굴의 권력 의지를 드러냈는데, 운도 따랐습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맞붙었던 민주당의 신익희(申翼熙)가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갑자기 죽는 바람에 이승만은 힘들이지 않고 경쟁자를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쟁자인 조봉암(曺奉巖, 1898~1959)이 뜻밖의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하면서 이승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투표에 지고 개표에 이겨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승만은 이때의 '수모'를 잊지 않고, 뒷날 진보당 사건을 조작해 조봉암을 법살(法殺)하였습니다.
4월 혁명 이후 시민들이 끌어내린 이승만 동상(시사저널)
그렇지만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이승만과 자유당의 권세는 하루아침에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장기 집권을 꾀한 이승만 정권은 1960년 제4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3·15 정부통령 선거에서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는데, 거기에 반대하는 시위가 마산을 기점으로 하여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그로부터 달포가 지나서 시민의 저항을 견디지 못한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바 4월 혁명이었습니다.
이승만과 대권을 다툰 민주당의 조병옥(趙炳玉)이 4년 전 신익희처럼 선거를 앞두고 급사했고, 조봉암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일어난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단단해 보였던 이승만 정권은 왜 그토록 쉽게 무너졌을까요? 서중석 교수는 『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에서 언론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설명합니다.
"3~4월 항쟁에서 언론이 학생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정권과 박 정권은 언론 포섭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정권은 야당보다도 언론으로부터 더욱 시달렸다. 기실 야당이 여당을 공격하는 데는 언론의 뒷받침이 컸다.
(중략) 1950년대는 신문의 시대였다. 라디오 보급률이 낮았고, 그나마 유행가나 만담, 연속극에 귀 기울이는 정도였다. 정보와 판단의 기준은 대부분 신문에 의존했는데, 해방 직후 좌우 싸움의 선봉장으로 극렬한 논조를 폈던 신문은 불평불만이 많은 도시 중산층과 서민을 주된 구독자로 하고 있어서 야당 성향이 강했다. 무엇보다도 정부·여당이 비리·부정·부패가 많았기 때문에 정치면 위주였던 당시 신문은 주로 그런 기사를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승만 국부론을 펼치는 『조선일보』가 이승만이 하야하자 1960년 4월 26일 자 석간 1면에 큼지막하게 '만세! 민권은 이겼다!'라는 제목을 새겨 넣으며 감격했을 정도니 당시 언론이 얼마나 이승만 정권을 적대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물론 『경향신문』을 강제로 폐간한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승만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만히 둘 리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승만 정권의 언론 탄압은 어수룩한 면이 있어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언론 탄압에 견주면 매우 '소박한' 수준이었습니다. 언론계 내부를 갈라놓은 후대의 언론 탄압과 달리 이승만 정권이 언론을 탄압하면 탄압할수록 언론인들은 더 똘똘 뭉쳤고, 독자들은 권력에 맞서는 언론에 성원을 보냈습니다. 결국 『경향신문』 폐간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또 이승만 정권은 시위를 대처하는 능력이 모자랐으며, 군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군인들이 중립을 지키고, 사태를 지켜보던 미국마저 자기를 지지하지 않으니 이승만이 기댈 곳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권력욕이 센 이승만이라고 하더라도 버틸 수 없었지요.
이러한 이승만의 몰락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권력 유지와 관련하여 이승만 정권의 문제점을 자세히 검토했습니다. 사찰 경찰만으로는 정부 비판 세력과 언론 등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여긴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여야 정치인부터 학생·언론 등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비판하고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회유하고 분열시키고 감시했으며, 수사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후기에 깡패를 자주 동원해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켰는데, 박 정권은 그것도 제도 속으로 끌어들였다. 중앙정보부에 끌려온 사람은 얼마나 당할지 두려워했고, 밖에 나가서 그곳에서 당한 일을 감히 발설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정보정치에 의존했고, 그래서 중앙정보부장은 대개 권력에서 제2인자라는 말을 들었다. 박정희는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도 이승만 정권과는 비교가 안 되게 큰 규모로 강화해 통제정치, 밀실정치를 펴나갔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강력한 일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정권도 이승만 정권처럼 몰락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에 이어서 등장한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4월 혁명이 뿌린 자유의 씨앗은 독재의 시련에도 잠들지 않고 깨어나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습니다.
- 2016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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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明 2018-04-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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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화국
이승만의 1공화국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해부.
검은불길 2018-03-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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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서중석의 <이승만과 제1공화국>(2007년 역사비평사)에 대한 요약
요약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원로 사학자 서중석 교수가 해방 이후부터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퇴진하기까지,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정치적 형성 과정과 몰락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역사서이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기획한 <20세기 한국사> 시리즈의 제1권으로,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책의 주된 내용은 1945년 8·15 해방 직후의 정치적 혼란, 남북협상과 5·10 단독선거를 거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 그리고 전쟁 전후로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 감행한 각종 정치적 사건들을 다룬다. 특히 발췌개헌,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진보당 조봉암 처형 사건 등 제1공화국기 민주주의의 파행과 권력 재편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핵심 동력을 <극렬한 반공주의>와 <관제 민족주의>로 파악한다. 정권의 정통성 부재와 친일파 세력의 흡수로 인한 도덕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보안법과 백색테러, 경찰력을 동원한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를 구축했음을 밝힌다.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와 이에 맞선 피의 화요일 4·19 혁명으로 이승만 권력이 와해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이 정권의 몰락이 외세의 개입이나 외부적 요인이 아닌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주의적 자각과 저항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평론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해방 정국과 제1공화국에 대한 실증적·비판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 정치사의 기틀이 어떻게 왜곡되고 형성되었는지를 명확한 필치로 파헤친 학술적 교양서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제1공화국을 단순한 <과거의 독재 시대>로 치부하는 것을 넘어,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통치 메커니즘을 작동시켰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했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이승만 개인의 독선적 리더십과 무책임한 국정 운영 방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경찰력과 관제 단체들의 구조적 폭력을 객관적 사료에 기반하여 검증한다.
또한 이 책은 역사적 대중서로서의 객관적 균형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자극적인 비난이나 과도한 감정적 서술을 지양하고, 일화와 선거 데이터, 법안 처리 과정 등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fact)을 담담하게 배열하여 독자 스스로가 제1공화국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승만 권력의 와해 과정을 다루면서 4·19 혁명이 지닌 민주화 운동사적 이정표로서의 의미를 부각한 점도 돋보인다.
다만, 이 저작은 정치사와 정권의 권력 다툼 및 독재화 과정에 서술의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 이승만 정부 시기 추진되었던 농지개혁의 역사적 의의나, 초등 의무교육 제도의 도입,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대한민국 국가 기틀 형성에 기여한 제도적·정책적 치적에 대한 다각도적 평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생략되었다. 이로 인해 인물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독재 대 민주>라는 정치 대립 구도로 일원화되어 읽힐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해방 후 한국 현대사가 직면했던 비극과 시련,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적 자각의 역사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뛰어난 현대사 입문서이다. 이승만 정권을 미화하거나 폄하하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 사실에 기반하여 한국 근현대사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반추하는 데 귀중한 사료적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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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제1공화국> — 건국의 제도와 반공독재가 함께 형성된 시대
서중석 지음
- 책의 성격과 문제의식
서중석의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1960년 4월혁명까지의 정치를 이승만 개인과 제1공화국의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설명한 현대사 개설서다. 선거, 정당, 개헌, 반공정책과 민주화운동을 따라가면서 제1공화국이 어떻게 성립하고 강화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왜 급속히 붕괴했는지를 분석한다. 책의 주요 구성도 정부 수립, 극우반공체제의 형성, 5·30선거, 부산정치파동, 자유당 체제, 조봉암 처형, 3·15 부정선거와 4월혁명의 순서로 짜여 있다.
이 책은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처럼 이승만의 전 생애를 추적하는 인물평전은 아니다. 주된 관심은 대통령 개인의 성격보다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치체제다. 서중석은 이승만의 권력욕만으로 제1공화국을 설명하지 않는다. 냉전과 분단,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식민지 경찰과 관료의 존속, 우익단체의 동원, 미국과의 관계가 결합하여 권위주의적 반공국가를 형성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한 대한민국에서 왜 그토록 빠르게 독재체제가 자라났는가. 선거와 국회가 존재했는데도 왜 대통령의 권력은 계속 강화되었는가. 그리고 강력해 보였던 이승만 정권은 왜 1960년 학생과 시민의 저항 앞에서 쉽게 무너졌는가.
- 정부 수립의 명암
서중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의미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1948년 5·10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선거에 의해 대통령과 정부가 만들어졌다. 그는 제헌국회가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과 농지개혁법을 추진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대한민국의 초기 정치에는 보수적인 이승만 정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고 사회를 개혁하려는 소장파 의원과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존재했다. 책의 목차가 정부 수립 직후 반민법과 농지개혁법을 함께 다루는 것도 이러한 복합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남과 북에는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었고, 제주4·3과 여순사건을 비롯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미국 군정기에 형성된 경찰과 행정조직은 일제강점기의 인력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 세력과 좌익운동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식민지 경찰 출신을 적극 활용했다.
서중석에게 이 과정은 단순한 국가건설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을 결정한 선택이었다. 새 헌법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약속했지만 실제 국가기관은 반공과 치안을 우선했다. 국민의 권리보다 국가안보가 앞섰으며, 정치적 반대자와 좌익세력의 구별도 점차 흐려졌다.
이승만을 옹호하는 시각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활동과 북한 정권의 위협 속에서 강력한 치안정책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서중석도 공산주의의 위협 자체를 허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위협의 존재가 무제한적인 탄압과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 극우반공체제의 형성
이 책의 핵심 개념은 ‘극우반공체제’다. 서중석은 1948년부터 1950년 사이 이승만이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차례로 약화시키면서 반공을 중심으로 한 권력체제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먼저 반민특위가 무력화되었다. 친일경찰과 관료는 이승만 정부의 중요한 기반이었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은 정부 내부의 권력구조와 충돌했다.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특위 활동이 좌절되면서 식민지 통치기관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새로운 국가의 경찰과 행정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국회 소장파도 약화되었다. 이들은 반민법과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려 했지만, 국회프락치 사건을 계기로 주요 의원들이 체포되었다. 서중석은 이 사건을 단순한 간첩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국회세력을 제거하는 정치적 효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본다.
1949년 김구가 암살되면서 이승만에 맞설 수 있는 대표적인 민족주의 지도자도 사라졌다. 김구의 죽음, 반민특위 해체, 국회 소장파의 몰락은 서로 분리된 사건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이승만의 권력 강화로 이어졌다.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활용해 좌익뿐 아니라 정권 비판세력까지 광범위하게 통제했다. 국민보도연맹과 각종 청년단체, 학도호국단도 국민을 국가의 반공정책 아래 조직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서중석의 연구를 정리한 한국사 연구사에서도 그가 김구의 죽음, 반민법 무력화, 소장파 약화, 국가보안법과 국민보도연맹을 극우반공체제 형성의 주요 과정으로 분석했다고 설명한다.
이 체제에서는 반공이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정당성을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었다. 정부에 반대하면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을 수 있었고,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되었다.
- 이승만의 ‘두령국가’
서중석은 이승만 체제를 ‘두령국가’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이는 제도와 정당보다 최고지도자의 개인적 권위와 판단이 국가를 움직이는 체제를 뜻한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었지만 강력한 대중정당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국회와 정당이 자신의 권력을 제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 관료, 우익청년단체, 지역 유지와 친정부 언론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 대통령은 정당 위에 군림하면서 필요할 때 조직을 만들고, 쓸모가 없어지면 약화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승만은 자신을 단순한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독립운동과 건국을 대표하는 민족지도자로 생각했다. 국가와 대통령, 반공과 애국이 하나로 결합되면서 대통령에 대한 반대는 곧 국가에 대한 반대로 간주되기 쉬웠다.
그러나 제1공화국은 완전한 전체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국회와 야당, 언론과 선거가 존재했고,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도 활동했다. 1950년 5·30총선에서는 이승만을 지지하지 않는 무소속과 야당계 후보가 대거 당선되었다. 이는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유권자가 독자적인 판단을 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승만은 선거와 의회를 폐지하는 대신 이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중석이 제1공화국을 ‘백색독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산당의 일당독재와는 달리 형식적 민주제도를 유지하면서 경찰력, 행정력과 선거부정을 통해 권력을 독점한 우익독재였다는 뜻이다.
- 한국전쟁과 권력 강화
1950년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한 국가적 재난이었다. 동시에 전쟁은 이승만의 권력구조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
전쟁 초기 정부는 서울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대통령과 정부는 급히 남쪽으로 이동했다. 서울시민에게 정확한 피난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고, 많은 시민이 북한 점령지역에 남겨졌다. 전쟁 중에는 국민보도연맹원과 좌익 혐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도 발생했다.
서중석은 전쟁의 책임이 북한의 남침에 있다는 사실과 남한 정부가 저지른 국가폭력의 책임을 구분한다. 북한의 침략을 인정한다고 해서 남한 정부의 민간인 학살과 인권침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 중 이승만은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재선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직선제 개헌을 추진했다. 1952년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거나 위협한 가운데 발췌개헌이 통과되었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도록 한 제도 자체는 민주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목적은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해 이승만의 재선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서중석에게 부산정치파동은 제1공화국 독재화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대통령이 헌법과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경찰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헌법을 바꿀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자유당과 후기 이승만 체제
이승만은 처음에는 정당정치를 불신했지만, 장기집권을 위해 자유당이라는 여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조직된 근대적 정당이라기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관료, 경찰과 지역 유력자를 결합한 권력조직이었다.
이승만은 자유당을 이용하면서도 당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범석과 족청계가 당내에서 세력을 확대하자 이를 제거했다. 이후 이기붕을 중심으로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1954년 사사오입개헌은 후기 이승만 체제의 성격을 상징한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없애기 위한 개헌안이 필요한 정족수에 미달했음에도 자유당은 반올림 논리를 내세워 가결을 선언했다. 법과 산술까지 권력의 필요에 맞게 변경한 사건이었다.
이후 이승만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지만 체제 내부의 활력은 약해졌다. 정책 토론이나 후계자 경쟁이 차단되었고, 이기붕과 자유당 간부들은 대통령의 권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 지도자 개인의 권위에 지나치게 의존한 체제는 겉으로는 강하지만 지도자의 판단력과 인기가 약화되면 쉽게 흔들리는 구조였다.
- 1956년 선거와 조봉암
1956년 정부통령선거는 이승만 체제가 국민적 지지를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대통령 후보 신익희가 선거운동 중 사망했지만, 조봉암은 평화통일과 사회경제 개혁을 주장하며 상당한 표를 얻었다.
이승만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으나, 야당의 장면이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대통령과 부통령을 별도로 선출했기 때문에 정권과 야당 출신 인물이 함께 당선될 수 있었다. 이는 유권자들이 자유당의 일방적 지배를 견제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조봉암의 약진은 이승만 정권에 더 큰 위협이었다. 조봉암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추구한 진보정치인이었다. 농지개혁에 참여한 경력도 있었고, 평화통일론과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정부는 진보당을 탄압하고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결국 1959년 처형되었다. 서중석은 이를 단순한 안보사건이 아니라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를 사법적으로 제거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사건은 제1공화국 반공체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공산주의의 실제 위협을 막는 데서 출발한 국가보안체제가 합법적인 진보정치와 평화통일론까지 제거하는 도구로 확대된 것이다.
- 3·15 부정선거와 4월혁명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은 야당 후보 조병옥의 사망으로 사실상 경쟁자 없이 당선될 상황이었다. 자유당의 핵심 목표는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정부와 자유당은 공개투표, 집단투표, 투표함 바꿔치기와 개표조작을 조직적으로 시행했다. 부정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선거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항의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했다.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분노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경찰의 발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대학교수단까지 시위에 참여하면서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서중석은 4월혁명을 단순한 학생시위나 미국이 이승만을 포기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1948년 이후 억눌려 온 민주주의의 요구가 학생과 시민의 집단행동을 통해 폭발한 민주혁명으로 해석한다. 그의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승만 재평가 논쟁보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4월혁명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왜 이승만 권력은 쉽게 무너졌는가
책 말미의 중요한 질문은 그토록 강력해 보였던 이승만 정권이 왜 짧은 기간에 붕괴했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이승만 체제는 군부를 독자적인 권력기반으로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경찰과 관료조직에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군은 4월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끝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둘째, 자유당은 이념과 조직적 결속을 갖춘 정당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권위와 관권에 의존했기 때문에 이승만이 하야하자 당도 급속히 붕괴했다.
셋째, 경제적 불만과 부패가 누적되었다. 미국의 원조에 의존한 경제는 일부 회복을 이루었지만 실업과 빈곤은 여전히 심각했다. 자유당 간부와 관료의 부정부패는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넷째, 교육의 확대가 역설적으로 정권에 대한 저항을 키웠다. 제1공화국기 학교교육과 한글 보급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학생·청년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국가가 약속한 자유민주주의를 실제 현실에 적용하여 부정선거와 독재를 비판했다. 책의 목차가 ‘한글세대의 대량 탄생’을 별도의 주제로 다루는 것도 이러한 변화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을 가르쳤지만, 교육받은 젊은 세대는 반공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의 약속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체제가 내세운 이념이 체제를 무너뜨리는 기준이 되었다.
- 이승만 시대와 박정희 시대
서중석은 이승만 권력과 박정희 권력을 비교한다. 두 체제 모두 반공을 지배이념으로 삼고, 국가기관과 언론을 통제하며, 헌법을 변경해 장기집권을 추구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지도자의 권위를 국가와 동일시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다. 이승만 체제는 경찰, 관료와 지역 유지에 의존한 개인적 권력체제였다. 경제개발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조직이나 강하게 결속된 군부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반면 박정희 체제는 군부, 중앙정보부, 경제관료와 재벌을 결합한 훨씬 조직적인 개발독재였다. 경제성장을 정권의 새로운 정당성으로 활용했고, 국가가 사회와 경제를 더 깊이 통제했다.
이 비교는 제1공화국을 단순히 박정희 독재의 미완성 단계로 보지 않게 한다. 이승만 체제는 그 자체의 역사적 조건과 권력구조를 가진 독재체제였다. 동시에 반공, 국가보안법, 관권선거와 지도자 중심 정치문화 등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활용한 여러 제도를 남겼다.
- 책의 강점
『이승만과 제1공화국』의 가장 큰 장점은 이승만 시대를 개인의 공과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치체제의 형성과 변화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이 이승만의 권력욕과 기회주의를 강조한다면, 서중석은 그러한 개인적 성향이 실제 정치제도와 사회조직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경찰, 국가보안법, 자유당, 청년단체, 선거와 개헌이 결합하면서 독재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제헌국회의 개혁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제헌헌법, 농지개혁과 선거정치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반민특위 해체와 국가폭력, 권위주의가 국가 형성 과정에 함께 존재했다고 본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가 1987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1950년대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견제했고, 야당과 언론은 권력에 저항했으며, 학생과 시민은 4월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렸다. 제1공화국은 독재의 역사인 동시에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였다.
- 책의 한계
그러나 서중석의 해석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는 제1공화국의 권위주의와 국가폭력을 분석하는 데 강점을 갖지만, 대한민국이 처했던 안보위기와 국가건설의 어려움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1948년의 대한민국은 안정된 국가가 아니었다. 북한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정권이 형성되었고, 남한 내부에서는 무장충돌이 계속되었다. 1950년에는 실제로 북한의 전면 남침이 일어났다. 이 조건에서 반공과 국가안보가 단순히 이승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구호만은 아니었다.
국가보안법과 치안기구가 남용되었다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국가가 무장세력과 간첩활동에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이승만의 외교와 국가안보 성과도 상대적으로 짧게 다뤄진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미국의 군사·경제원조 확보, 전쟁 뒤 국가체제의 유지 등은 이승만 정부를 평가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농지개혁과 교육 확대, 한글세대의 형성은 언급되지만, 제1공화국의 사회경제적 변화 전체가 정치사에 비해 충분히 분석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 자체가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개설서이므로 이는 저술 목적에서 비롯된 한계이기도 하다. 출판 소개 역시 이 책을 선거와 주요 정치사건을 중심으로 설명한 정치사 개설서로 규정한다.
- 종합평가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이나 독재자 한 사람으로만 이해하지 않게 해주는 책이다. 서중석은 이승만 개인의 권력욕이 냉전과 분단, 반공주의, 경찰과 관료조직, 자유당과 우익단체를 만나 하나의 정치체제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제1공화국은 서로 모순되는 두 역사가 겹친 시대다. 한편에서는 헌법, 국회, 선거, 농지개혁과 교육 확대가 이루어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경찰이 존속하고 반민특위가 무너졌으며, 국가폭력과 개헌, 야당 탄압과 부정선거가 이어졌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독재는 서로 완전히 분리된 역사도 아니고 동일한 역사도 아니다. 정부 수립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제도적 가능성을 열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그 제도를 자신의 권력 유지에 종속시켰다.
서중석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제1공화국의 민주주의가 전적으로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과 자유당은 선거를 조작했지만 선거 자체를 없애지 못했고, 유권자는 반복해서 야당과 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다. 정권은 언론을 통제했지만 비판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탄압했지만 학생과 시민은 결국 거리로 나와 독재를 무너뜨렸다.
이 때문에 4월혁명은 제1공화국과 단절된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제헌헌법이 약속한 민주주의와 현실의 독재 사이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였다. 국민은 이승만이 젊은 시절 『독립정신』에서 주장했던 국민주권과 자유의 원리를 오히려 이승만 정권을 심판하는 기준으로 사용했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이승만과 제1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제도적 건국과 극우반공체제의 형성, 선거민주주의와 개인독재의 충돌을 함께 추적함으로써 제1공화국을 단순한 건국의 시대나 독재의 시대로 환원하지 않는 뛰어난 정치사 개설서이지만, 이승만의 외교·안보 성과와 당시의 실제 공산주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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