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순•웨이하이웨이 전투와 북양함대의 종말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7회
법률방송
19,345 views Oct 1, 2025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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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청일전쟁을 결정지은 뤼순 전투와 웨이하이웨이 전투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1894년 조선의 청군 개입 요청을 빌미로 군을 일으킨 일본은 조선에서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청 본토까지 진격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데요. 그중에서도 청의 마지막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뤼순과 웨이하이웨이를 함락하면서 동북아시아 최초의 근대 전쟁은 마무리되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청군의 상징과도 같았던 북양함대는 어떻게 패배하게 되었는지, 또 이것이 근대사적으로는 어떤 함의를 갖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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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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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 시간입니다. 어, 오늘은 어, 그
청일 전쟁에 글쎄 하이라이트라 그럴까요? 가장 큰
전투 그리고 가장 드라마틱한 두 전투. 어 사실상으로는 마지막
전투라고 볼 수 있는 루이션 전투하고 웨하이웨이 두 전투에 대해서 어 좀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류신전투는 요동반도를 결국은 일본이 공략을 하고
어 류순을 함락시키고 그러므 북양함대가 거기서 피신을 해서 웨이
하이웨이로 갔고 그다음에 웨하이웨전트는 결국은 또 일본군이 산동반도에 있는 외하이웨에 상륙해서
그 국양 함대를 개묘시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특히 그 외하이웨이 전투에서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이때 숙기가 어 북양함대 사령관인 정여창한테
항복을 권하는 어 편지를 보내고 그거에 대해서 답신을 하면서 주고받는게 있습니다. 비록 적이지만
어 전장에서 만난 두 장수들이 서로에
대한 존경 어 그리고 어떻게든지 상대방을 어 살려 주고 싶은 어 그런
마음에서 주구받는 서신 대화가 있습니다. 어, 어떻게
보면 참 그 잔인하기만 하고 난폭하기만 한 그런 전쟁일 것도
같은데 처음이 장면을 보면 굉장히 감동스럽습니다. 오늘 그 장면이 또
스키기 어 사령관하고 정여창 주고받은 그 서신 내용을 함께 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청일 전쟁이 이제 막바지로 치닫기 시작을 했습니다. 어 평양 전투에서
어 승리함으로써 일본군이 천군을 완전히 한반도에서 어 몰아내고 그리고
결국은 어 황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재해권도 잡고 그리고 이제 2군을 또
편성을 해서 2군을 어 대련만에다가 상륙을 시킴으로써 루신을 함락을
시키고 그러면서 이제 결국은 외하외까지 합락시킬 계획 계획을 짭니다.
여러분이 계획을 지도상으로 한번 보시면요. 지난 시간에도 보여 드렸던
지도지만 이렇습니다. 완전히 베이징이 도관에든 쥐가 되는 겁니다.이
주도상에서 보시면은 요동반도의 끝에 있는 대련고 옆에
있는 류신 그다음에 거의 남쪽으로 그대로 내려가면은 그게
이제 산동반도죠. 산동반도 끝에 있는 웨이하이 두 기지를 점령을 하면
함락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배들이 베이징과 천진으로가 사실
어 중국을 완전히 진압 제압하게 되는 겁니다.이 전력을 어 그 지금 중
일본이 전개하고 있습니다. 일본 대본영은요. 어
황해전 탓세 후인 9월 2일 날 제2군 동원령을 내립니다. 이구는 총
2만에서 27천 병력으로 어 해서 어 그 오야마 이아오 원수의 지위하에
보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출발을 해서 어 재물포를 거쳐서 대련만 내
있는 그 피스코 피코라는 그 조그만 때입니다. 거기에 상륙을 시킵니다.
사실 여기는 완전히 뻘받치고 우리 서회가 다 그렇듯이 거기도 이제
뻘받라서 굉장히 상륙하기가 어려운데도 거기에 부교를 놓고 그러면서 놀랍게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본군이 상륙을 합니다. 청구는 역시 이때에도 상륙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면은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는데 또 그 기회를 놓치고
1번군이 1번 2군이 상륙을 합니다. 그러니까 1군는 평양에서부터 계속해서
쳐 올라오고 있고 2군은 아예 요동반도에 상륙을 해 버리는 거고 두 군대가 이제 합치면서 어 그 루션을
공략을 하려고 하는 그런 계획입니다. 11월 6일 날 진조 금주 금주가
함락이 됩니다. 금주는 어 지도상으로 보시면은 요동반도 북쪽에 있습니다.
그 어 전략적 요청이니까 요동반도를 함락시키려면 우선 찐조 금주를
합락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진조를 함락시키고 11월 7일 날 대련을 함락시키고
대련의 일장기가 헐러이기 시작을 하고 그래서 대련까지 일본군이 쳐들어오니까
바로 옆에 있는 류순 그 한구에 정박하고 있던 북양함대가 몰래
빠져나갑니다. 사실 이때 어 그 일본군의 큰 실책이었었습니다.
어 그 정탐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루의 정박해 있는 북양함들을
괴멸시키는 것이 일본군의 목표였었는데 정여창이 부양함대를 이끌고 몰래 어
루션을 빠져나와서 티엔진을 거쳐서 웨이 하이웨이로 갑니다. 이거를
알고서 일본군이 굉장히 실망을 어 저기 실망을 했었다고 어 그럽니다.
아무튼 그러고 나서 이제 류신을 합락시키로 류신 전투를 버립니다. 류
전투는 11월 21일에서 24일 그러니까 4흘 동안이나 벌어지는
대대적인 전투였습니다. 그 전에 전투들은 사실 거의 다 하루 만에 그냥 어 하루 이틀 만에 끝났는데이
전투는 굉장히 오래 걸리는 어 전투였었습니다. 그리고이
전투에서 승리해서 결국은 루션을 한 낚시입니다. 루슨이란 도시는 포터라고
해서 그게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만든 한구죠. 최첨단
어 해군 항이었었습니다. 대련이라는 한구가 옆에 있었지만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엄청난 한구를 사실 어 짓는데 도움을 주고 독일 사람들도 도움을
주고 그래서 큰 한구를 지어놓고 그거를 이제 어 부양함대에 기항으로
어 모항으로 이제 썼었던 거죠. 근데 이제 그거를 결국은 어 일본이 합락을
시킵니다. 이때에 이때에 루슨 학살 사건이 벌어집니다.
포터 메세커라고 어 그렇게 보통 역사에 알려져 있는데요.
이게 무슨 사건이었냐면은 일본군이 이제 대련을 함락시키고
일부는 대련해 그 루시으로 치고 내려가고 다른
부대들은 이제 말씀드린 북쪽에서 금주를 함락시키고 이제 요동반도를 따라서 내려와서 쳐내려옵니다. 그래서
루을 이제 합락을 시키는데이 과정에서
어 아주 작은 전투에서 일본군 몇백 명이
포로로 잡힙니다. 청군한테. 그러니까 일본군이 패 패배한 전투가 없는데
전혀 예측을 못 하고 있었다가 기습을 당해서 일본군 몇백명이 포로로 잡히는
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루에 입성을 할 때 이제 다
천군들이 도망가고 빈 도시를 이제 점령하러 일본군이 들어가는데 뭐를
발견하냐면은 그때 포로로 잡혔던 일본 병사들이 자혹하게 고문을 당하고
그렇죠. 그러니까 능지 그야말로 포를 뜬다 그러는데 회 뜨듯이 그렇게
했는데 그리고 전부 다 목을 잘라서 매달아 놓고 이제 이런 광경들을
일본군이 목격을 하고는 일본군이 완전히 광기에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4흘 동안 루에서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을
합니다.
그게 루신 학살 사건입니다. 이때에 일본군은 원래부터 원래부터 외국의
수많은 기자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영어로 인베듯 그러니까 기자단을
아예 일부러 데리고 다닌 거죠. 자기 홍보용으로 자기네가 얼마나 신사적으로
싸우고 뭐 문명화된 군인이기 때문에 민간인들도 탁살하지 않고 적군이라도
부상병들을 어 다 그 보살펴 주고 한다. 뭐 이제 이런 거를 알리기
위해서 수많은 외국 그 기자단들을 사실 일부러 끌고 다녔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때에이 학사를 수많은 외국의 기자들이 전부 다 목격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기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
월드지라는 신문이 있었는데 그 신문에 제임스 크렐라는 유명한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 기자가 신문에 이렇게
기사를 씁니다. 일본군은 11월 21일 루춘시에
진입하여 거의 전 주민을 냉혹하게 학살하였다.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고
무기도 없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 안에서 도살당하였고 그들의 시신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게 훼손당했다. 사흘간 곧 비풀린 살인의 잔혹상이
계속되었다. 시 전체가 경악할 만행으로 약탈당했다.이는
일본 문명의 첫 오점이다. 이번 경우에는 일본이 다시 야만으로 되돌아갔다. 상황 때문에 만행이
불가피했다는 모든 핑계는 거짓말이다. 문명 세계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면
경악할 것이다. 외국인 특파원들은이 참상을 목격하고 모두 함께 일본군
진영을 떠났다. 사진에 보시는게 이게 그 크릴만 어
기자고 그리고 그 당시에 이제 다른 신문들에 났던 서양 기자들이
그렸던 루살 그 사파입니다.이
이 루 학살의 어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때에 얼마나
세계가 경악을 했냐면 특히 미국이 미국 상원이 그 당시에 미일 수호
조약을 그러니까 어 54년에 맺고 74년에 맺었고 94년에 또 연장을
하는 그 논의를 미국 상원이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건 당연히 자동으로
연장이 됐어야 되는 건데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사원들이 경악을 하고는 그 논의를 중단을 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일본이 그때에 급히이 문제를 덮기 위해서 온갖
홍보전을 버리고 외교전을 버리면서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예정대로 어
그 미수호통상조약 연장을 비준을 하지 않고 몇 달 후에나 비준을 해
줍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 큰 세계적으로 큰 뉴스였고 사실 그때까지
보여줬던 일본군의 어떠한 그 행태 어에 비해서 아주 큰 오점을 남기는
큰 사건이었습니다.이 지도를 제가 보여 드리는 이유가요.
한번 보세요.이 지도를 보시면은 지금이 소위 발해만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죠.이 이 바레만이라는 것이 평양하고 단동하고 의주죠. 그다음에
대련하고 웨이하이 텐진
그다음에 베이징 얼마나 가까운 거가 보이시죠?
이게 전부 다 같은지도 안에 아주 작게 들어옵니다. 우리가 항상 지도를
볼 때 보통 그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보고 그래 갖고 중국 따로 보고 일본 보고 따로 보고 아니면 뭐 대한
해협쪽만 주로 본다라든가 이렇게 하는데 이렇게 지도를 보시면요.이 이
동북아시아가 이게 한국하고 중국이 얼마나 밀접한하고
정말로 같은 생활권이고 그리고 여기에서 어이 요동반도하고
산동반도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얼 얼마나 절대 절명의 요지인지 지켜야만
되면 되고 일본으로선이 두 기지만 함락시키면은 완전히 중국을 제압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포아 그렇게 루신이 중요한 거고 그렇게 웨하이가 어
중요합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어 청일 전쟁 끝난 다음에도 웨이하이를 누가
점령을 하느냐? 영국이 결국 점령을 하게 되고 그리고 루슈는 일본이 한
낙락시켰다가 나중에 러일 전쟁 때 또 러시아가 그거를 차지하게 되고이 모든
거를 보시면이 두 한구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일본은 지금 그 두구를 다 어 공략을 하고
결국은 합락을 시킵니다. 자, 그래서 루을 합략시키자마자
곧바로 오야마이와의 이구는 곧바로 다시 어 배를 타고 수송전들을 타고
웨하이로 내려옵니다. 산동반도로 내려와서 산동본 반도에서
그 롱정 어롱 용정이죠. 용정만의 상륙을 하면서 어 웨하이를 어 공격을
합니다.이 외하이의 공격 작전은 1월 20일에 1895년이죠. 이제 해가
바뀝니다. 1894년 7월에 전전쟁이 시작이 됐고 8월 1일 날 공식 어
그 선전 포고를 했고 양쪽이 양측이 그리고 이제 해가 바뀌어 가지고
1895년 1월 20일부터 2월 12일까지 외하외의 공략 전투가 어
공성전이 어 벌어집니다. 외하웨이의 지도를 한번 보시면요.
여기에 자세 이게 아 아주 자세한 그다 그 당시에 이제 썼던 그 지도들인데 보시면은이
정말 천해의 기지입니다.요 속 들어가 있는 그 안이 지금 외하의 북양함대
기지고 그 앞에 보시면 어 유공독공따라는
섬이 아예 가로막 반쯤 입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니까 거기에도 엄청난 포대가 있고 그리고 산 위에
돌아가면서 전부 다 포대들이 있고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이 지도상에서 지금 보이신지 몰라도 그
요공도에서 이렇게 까만 점선이 쭉 내려오는게 있습니다. 정확하게
남쪽으로. 근데 그게 뭐냐면은 중국군이 북양군이 거기에다가 쇠사슬
거대한 쇠사슬 끈을 만들어서 그 한구 입구를 막어 버린 거죠. 그니까
요공따에서부터 그 반대 해안까지. 그래서 사실은 여기 들어올 수가 없게끔 만들어
놓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지키고 북양함대가 지금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결국은 사슬의
일부분이 끊어진 한쪽 부분을 찾아내 가지고 어래 정도를 보내서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그리고 이제 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은 기지를 지키려고 산 뒤에
설치했던 그 포대들 이거를 전부 다 일본군이 공략을 해서 자기네가 차지를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높은 산 뒤에서 천군이 설치한 포들을
이용해서 저 밑에 있는 외하에 있는 어 청의 부양함들을 공격합니다. 그
당시에 그 일본군이 일본의 측에서 그렸던
그림에서도 어 그 외하이로 진격해 가는 군사 들 그리고 이제 그 산
정상에서 어 저 밑에 있는 북양함들을 포격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결국은 결국은 북양함대는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괴멸될 입장이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한 항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항복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는 걸
이제 양측이 서로 알게 되고 근데 그때에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이또
스케육기가 청북함대 사령관 정의여창한테 서신을
보냅니다. 왜 보냈느냐? 이또 스케우키의 생각에도
이렇게 큰 어 전쟁에서 완전히 북양함대가 괴멸될
정도의 그러한 실패한 폐장으로서
정여창이 자결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자기 같았어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이또가 정의창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이
편지를 영어로 작성해서 보낸 이유는
정여창 옆에 있는 많은 외국인 고문들도 같이 그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영어를 해 영어로 해서 1월 23일 날 편지를
어 정여창에 보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일본군 해군 총사령관
중장 입도스케기는 대천국 북양해군 제독 정여창 장군에게
삼가 편지를 보냅니다. 세상의 운세가 변하여 제가 각하와
전쟁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의 일은 나라와
관련된 문제일뿐 개인적인 감정에 얽힌 싸움이 아니라는 점은 각학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은 전과 다를 바가 없이
뜨겁다는 점을 전합니다. 그러므로이 글이 제가 각하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사실 이하고 정여창은 그전에 만났었습니다.
언제 만났느냐? 정여창이 서양에 가서 북양함대의 전함들
그거는 중국이 청이 건조한 것들이 아닙니다. 사온 겁니다. 영국하고 독일에가 갖고
그 저남들을 사서 오는 길에 나가게 들립니다. 거기에 들려서
정여창이 그 전함들을 과실을 합니다. 아직 일본하고 사이 좋을 때였죠.
그걸 다 과시하고 거기서 며칠 동안 머물다가 수리도 하고 배고픔도 받아 갖고 그렇게 갑니다. 그때에 이제
이또스케오기하고 정의아청이 만났던 적이죠. 거대한 저남들을 일부러 보여
주기 위해서 왔었던 거죠. 그러니까 사실 일본은 청일 전쟁 내내 갖고
있던 배들이 천군이 갖고 있던 부양함대가 갖고 있던 저들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톤수의 배들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배들이 조금
빨랐다는 것뿐이지 모든 면에 있어서 배의 그 크기나 그
철갑을 두는 강도나 이런 거에 있어서 아예 비교할 바가 없었던 거죠. 그거를 중국이 한번 일본한테 과실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도가 정의 창보고 우리가 우정을 얘기하고 하는 것은 바로 그때 만났었던 거에
대한 그런 얘기입니다. 자, 다시 편지를 더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라는 것이 항상 직접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오히려
실정이 어둡다고 일을 당한 자의 의견이 판 밖에서 보는 자의 생각만
못한 법이라 생각됩니다. 내가 감히 성심으로 한 마디 좋은을 드리니
각하께서 깊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천국 해군과 육군이
교전할 때마다 연전 연패하여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은 카카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이 과거의 법과 제도만 굳게 지키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근로만 과거를 보아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대신과 조종의 모든 관리들은 모두 문학에만
힘쓴 사람들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학 기술이라든가 국가운영에 필요한 실사 구시의 학문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해군 제독이 청의 해군
제도한테 하는 얘기입니다. 근대문명이 뭐고 왜 그거를 어떻게 자기내가
받아들여서 이렇게 강해졌다라는 것을 정확하게 설명을 하면서 정여야창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 나라 당신 지도자들의 잘못이다.이 빨리 근대
서양의이 모든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사서경만 있고 과거나 치고
있는 그 지도자들 때문에 당신들은 처질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거를 지금
설명을 합니다. 아마 이또가 조선한테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뭐 오히려 더 어떻게 보면
참 당연하지만 아픈 내용.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도 해군 제독들끼리도
이런 문명사에 대해서 특히 이도가 그런 거를 논한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시 편지로 돌아가겠습니다. 불과 30년 전에는 우리나라도 오늘의
천국 비슷하게 위태로웠던 형편이었음을 각학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일본은 과거의 제도를 모두 뜯어고치고 새로운 법을 받아들여
오늘날 부강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귀국도 하루빨리 과거의 제도와 습속을
버리고 새로운 문물과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조속한 시일 내에 변역을
이루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개전하기 전부터 이미 귀국이
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근대문명을 받아들이고 산업화를 하고 과학 기술을 받아들인 나라의 입장에서는 안 받아들인 나라하고
전쟁을 한다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자기네 입장에서는 쉽고 당연히이기는
거라는 거를 알고 있었다라는 거죠. 이또가 지금 그 말을 정여창한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하가 되어 나라의 운명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끝끝내 고집하며 목숨을 버리면 나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겠습니까? 제가 각하를 위해 감히 한 말씀드리면 잠시 우리나라에
항복했다가 앞으로 귀국이 중할 때를 기다려 진충 보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귀국의 역사 기록 중에도 잠시 수치를 참았다가 나중에 큰 뜻을
이루어 국가의 치욕을 씻고 명예를 되찾는데 공을 세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전 대통령 마크마옹이 독일에
항복했다가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정부를 도와서 정치를 개혁하자 프랑스
백성들이 수치로 여기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새 대통령으로 받들었습니다.
터키의 우스만 파샤는 프레브나 전투에서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얼마
후 본국에 돌아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어 군사 제도를 고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각학께서 뜻을 굽혀 일본으로 오시면 우리 대황제 폐학께서 넓은 도량으로
각하를 지극히 무대하실 것입니다. 우리 황제폐하는 신민 중에 반역을
꾀한 자도 죄를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해군 중장 에노모터 다아키와
춤밀론 고문관 오토리 게이스케 등 여러 신화는 다 그 제주를 높이
평가하고 관리에 임명하여 공신이 된 사람들입니다.이
이 사람들이 누구냐면 애조공학을 만들어서 그죠 끝까지 도구가와 편에 들어서 지금 천왕
군대에 저 조슈하고 사스마에 저항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에너모또 답기를
죽이 죽이긴 커녕 나중에 중영을 하는 거죠. 어떠 게이스케
지금 조선에 와서 공사로 와서 바로 그 개혁을
추진하는 그 하던 그 옷돌이도 전부 다 반대편에
지금 메이지 유신 정부 입장에서 보면은 끝까지 메이지 유신에 저항했던
덕구가 편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전부 다 제주가 있다. 그래서
다 중용을 합니다. 지금 이또가 그 얘기를 정여창한테 하는 겁니다.
더욱이 각한는 일본의 신민도 아니요. 또 명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이니
극진하게 예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제도께서 급히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과거의 전통과 인습과 제도에 얽매어
있다가 점점 나약해져 결국 스스로 죽음에이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힘을 비축하여 토일의 큰 뜻을 이룰 것인가입니다. 제가 보내는이 편지는 우리의 우정을
생각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의 정성을 받아들여 자세한 회신을 주시면 뜻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메이지 28년 1월 23일 이또
스케유키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장수가 자기하고 끝까지 싸웠던
장수의 그 영맹과 그리고 처지를 어 그 알고서 수치스럽때도 잠시 목숨을
보전해서 항복하고 목숨을 보전해서 오히려 훗날을 기억하라. 훗날 나라에
더 큰 기여를 해라라는 편지를 씁니다.
[음악]
물론 정역창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이죠. 그 또한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여창이 2월 12일 날 이또의 편지에 대해서 답신을 이렇게 합니다.
함대 총사령관 이또 스케웃육기 각하에게 면직을 당하고 아직 사물을 보는
정의창은 이또 스케웃기 사령과 함께 회답합니다. 원래 나의 뜻은 전장에서
함정과 병력이 최후의 한 사람에 이을 때까지 전투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현이 싸웠지만 배가 침몰하고 부하들이 수없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이제 나는 항전을 포기하고 부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투
중지를 요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의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는 전제 아래
즉 중국인과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육군과 해군의 관계된 모든 사람의
목숨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용된다는
전제하에 웨이 하이웨이 한구에 있는 전남과 리오공따우 요새에 있는 포대와
무기 장비를 귀국에게 양도할 것입니다.이 이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영국 해군함대 총사령관이 보인이
될 것입니다. 제한을 제출하며 신속한 회신을 기대합니다. 광서 21년 1월
18일 북양수사 제독 정의여창 당시 전 세계 수많은
군대들이 와서이 전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랑스 플러시아 전쟁을 일본 군인들이 가서 그렇죠. 야마가다리 또 뭐 이와
어 이와오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가서 참을 했듯이 수많은 나라의 그 군인들이 와서
참관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영국의 극동함대 사령관도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이 모든 어 증언 증인을 역할을 할테니까 그 증인을
통해서 앞에서 약속만 해 달라. 모든 나의 부하들과 그리고 모든 외국인
우리 함대에 소속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풀어만 준다면 자기는
나머지 배들과 모든 것을 당신들한테 다 그냥 항복하고 인계를 하겠다.
결국 1895년 2월 12일 아침에 청의 호함 천페이가 흰색 깃발을 달고
어 연합한 데의 기함민스 심마로 옵니다. 그래서 이또 사령관과
오야마이와 원수가 정여창의 공식 항복 서환을 봤습니다. 지금 어 그 웃기의
그 일본 사람들이 그린 그림에 나오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령관들은 전부 다 어 그 이또나 오야마나 이군사령관이 오야마죠.이 이
사람들은 전부 다 어 정여창의 항복 조건에 동의를 합니다. 그러면서
천군의 장교들과 어 일반 군사들의 그
안전을 보장을 합니다. 이때에 이또가 또 정여창한테 편지를 이렇게
보냅니다. 북양함대 총사령관 정여창 각하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각학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투를 중지한다 하셨으니 내일 함정과 무기와
포대, 요새 모든 군수품을 인수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양도 작업이 모두
완료되면 우리가 별도로 함정 한척을 준비하여 귀국의 장교와 병사들을
귀국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점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최근 보냈던 편지에서 삼가 제한한 바와 같이 가카 신상의 안유와
장례 귀국의 이익을 위하여 각카가 잠시 우리나라에 머무르다 훗날 양국이
강화 조약을 체결한 후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카의 명예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항상 존경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각카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영국 해군 총사령관이이 협정의 보증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제안은 전적으로 불하다고 생각합니다. 뜻하신
바를 친히 시행할 것을 요청드립니다. 그대로 하겠다. 영국 사람이 무슨
증언을 쓰고 그럴 필요 없다. 우리 철저하게 내가 약속을 한다. 그렇게
해서 보냅니다. 그랬더니 정여창이 여기에 대해서 또다시 회신을 보냅니다.
총사령관 이또 스케육기 각카학께 각카의 편지 내용 중 내일 무기와
포대와 군함을 다 일본으로 보내라 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실행이 어려울 듯합니다. 음력 정월 22일
양력 2월 16일부터 류공따에 있는 포대와 무기 군함 등을 차례로 해하려
받으시길 원합니다. 각하가 보내준 선물에 대한 감사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국 사이에 전쟁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이를 받아들이기 곤란합니다. 여러 가지 선물도 같이
보낸 거를 정여창은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정여창은 그날 북양함대가
괴멸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시를 짓고 앞편을 마시고 자결을 합니다.
류보선, 함장 등 네, 다섯 명의 천군 장교들 역시 같이 자결을
합니다. 어, 자기가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설득을 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창이 자결을 했다는
소식을들은 이또 사령관은 일본 함대로 하여금
조기를 개향하게 하고 일체의 음악 연주를 금하게 합니다. 정여창을
어떻게 모실 것인지 그 시신을 관을 어떻게 운구를 할 것인지 논의를
합니다. 그래서 어 그런데 일본에 이제 다른 장교들이 어 있더 보고
그냥 그 중국 배 있죠? 그 중국 도담배 같은 정크라고 보통 그런데
거기에 세워서 그냥 바다로 내보낸 것이 어 보내서 그야말로 이제 수장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 그랬더니 이돈은 절대 안 된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항복 조건을 협상하는 청문 장교를 불러갖고 당신 지금 함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배가 어느 배느냐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청장교가 자기네 함대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게 2,명 정도를 보낼 수 있는 강제라고 합니다. 그랬더니이 또가 사령 장관이
거기에다가 너희가 실을 수 있는 모든 보낼 수 있는 장교와 군사들을 실을만큼 다 실어라. 그리고 거기에
내가 그 정여창 장국 그 제독의 관을 모시도록 하겠다. 그래서 잘 모시고
나가라. 그러면서 모든 일본 함대가 조기를 개양하면서
어 모든 예우를 갖춰서 정여창이 시신이 담긴 그 배를 배가 어
웨이하이웨를 빠져나갈 수 있게 그렇게 합니다. 외하이웨이의 공략으로
함락으로 인해서 북양함대는 사라집니다.
어 이홍장이 정말로 어 평생 동안 길렀던 태평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자기의 어 스승
자기 아버지의 친구였던 중국본의 그 지시 권유에 따라서 자기 고향인
안희로 가서 안희에서 어 중국번이 상군을 일으켰듯이 자기는 회군을
일으켜서 결국은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을 하고 그 회군을 계속해서 유지를 하면서 거기에
수군을 만들어서 그 수군이 바로 북양군이 되는 거죠. 북양 함대가
되는 거고 그 회군이 북양군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북양함대가 드디어 어 청일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어 외하의 전투에서 완전히 괴멸되면서
사라집니다. 오늘날 중국이 대양해군을
키우면서 대만 해협을 봉쇄를 하려 그러고 남중 국회를 장악하려고 하면서 하는 그
대양 해군을 키우는 것은 북양함대를 마지막으로 중국은 제대로 된 해군이
없었습니다. 150년 정도 동안 중국은 북양함대의
괴멸 이후로 해군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지금 중국 사람들로
입장에서선 그것이 천추에 아닌 겁니다. 그러면서 100년의 치욕을
100년의 구력을 만해하겠다 그러면서 지금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쏟아부으면서 한국
모함들을 만들고 이제 그런 것이 전부 다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그러한
해군을 만들어 보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이
북양함대 괴멸이었었습니다. 청은 외하이웨 전투에서 전남 한 척,
순양함 두 척, 소형 한 척, 14척의 어래정이 전부 다 격증당고
사실 전남이 두 척이 있었지 않습니까? 근데 또 하나의 그 큰 진원이라는 전함은 자기네끼리 그
안에서 훈련을 하다가 외하에서 훈련을 하다가 암처에 부딪혀서 오두가도
못해서 무용지물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사실 나머지 전남 한 척이
적침 당하는 거고요. 해안 경비 전함, 순양함, 어래정, 여섯척의
포함 이런 거를 전부 다 일본군한테 포획을 당합니다. 청군의 사상자는
2,명에 달했고 포로는 5,200명이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이가
정여창한테 약속했듯이 다 석방을 해 버립니다. 7번군이 북양함대를
괴멸시키고 완전히 재권을 장악하는데 7은 희생은 6군전사명
부상 219명 해군 전사 20명 부상 46명
어래정 두정 격침뿐입니다. 그 어래정이라는게 아까 말씀드린 그 쇠사슬 한쪽이 무너진 거를 틈타서
들어가서 했다가 어 나오지 못하 그 두 척 밖에는 아무 배가 배도 피를
보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양함대가 어 종말을 고하고 결국은 청은 완전히
항복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가 돼 버립니다. 이렇게 북양함대가
괴멸됨으로써 이미 육구는 수많은 전투에서 그죠 평양 전투, 진저우
전투, 대련 전투 그다음에 루신 전투에서 다 패함으로써 육군도 괴멸이
된 상태였었고 이제 남아 있던 해군마저도 괴멸이 되면서
청은 더 이상 저항할 의지도 능력도 없게 됩니다. 어 청하고 일본은
조선을 놓고 끊임없이 다un습니다.
1800 80 2년에 이모군란이 터졌을 때에도
갓 조선하고 수교를 한지 얼마 안 된 일본이
개입을 하려고 하지만 청에 밀려서 결국은 청이 대원군까지 납치해 가면서
일본이 조선에서 손을 un니다. 일본 공사관도 불타고 일본 사람들도 죽지만
거기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나니까
그때 또 일본하고 청의 조선에서 또 한번 부딪칩니다. 그렇지만 역시
일본이 물러납니다. 그리고 텐진 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은 어쨌든 자기네 실력으로는 조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라는 것을 절감을 하고 그때부터 조선 문제에
개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갑신정면에서 실패해서 일본으로 또 만 명을 갔던 김옥균, 박영, 서재필
이런 사람들이 일본이 전혀 도와주지 않고 한 거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을 하고 결국은 어 서제필하고 박영
서광범은 미국으로가 버리는 거고 김옥규는 미국으로 안 가지만 일본
내에서 유배를 당하지 않습니까? 일본 정부로 정부한테 그래서 일본이 완전히
손을 뛰면서 조선 문제에 대해서 우리 더 이상 개입 안 한다. 지금 일본이
대내 개혁을 하고 자을 할 때지 조선 문제 얽혀서 자꾸 중국하고 뭐를 할
계제도 아니고 능력도 안 된다. 그러면서 손을 un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1884년부터 1894년 청일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그 10년
동안 일본은 경제, 정치, 군사, 교육 모든 것을
뜯어고치고 1891년에는 헌법을 만들어서 메이지 헌법을 만들어서 이펀군주제로까지
만들고 본건제도를 완전히 뒤집어서 강력한
중앙직권 적 근대국가 전쟁을 하던 사무라이들 계급을 사무라이 자신들이
없애 버리면서 징병을 통해서 하는
국민 군대를 만들어서 독일로부터 배우고 프랑스로부터 배우고 영국으로부터 배우면서 장비를 도입하고
무기들을 도입하면서 만만의 준비를 갖추고 결국은 1894년에
또 한 번 조선에서 동학난이 일어나 하고 그 동란을
진압하지 못하는 조선 정부가 청의 파병을 요청하는 그거를 빌미로 일본이
개입을 합니다. 이때는 그 10년 전 갑경장 직후에 물러나서 텐진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이 아닙니다. 일본은 오히려 군대를 보내서 한양을 장악하러
가고 경복에 들어가서 고종을 잡고서 개혁을 하라고 요구를 하는 한편
청과의 전면전을 시작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결국은
일본은 청을 조선 반도에서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큰
전투에서 한 번도지지 않으면서 그죠. 연전 연승을 하면서 중국 청의 육군과
해군을 격파해 나가면서 결국은 북양군 북양함대를 괴멸시킵니다.
이럼으로써 일본은 메이지 얼마나
강한 국가를 만들었다는 걸 보여 준 것뿐만 아니라 사실 그 메이지을
통해서 천년 동안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동북가시아를 지배해온 중화질서 동북가의 폐자는 누가 뭐래든 언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중국이었었어. 그런데 그 동부가의 절대적인 폐자였던
중국을 중화질서에서 가장 바깥에 있어서 가장 야만이라고 생각했던
왜라고 멸시를 당했던 그 사람들이 그대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그 문명의 중심부인 중국을 청을 깨뜨리고 도요도미가 꿈꿨던 북경함락을
을 목전에 둔 상태까지 갑니다. 그러니까 일본 중국이 급히 정전
협상을 요청하고 나옵니다.이 과정에서 천년 동안 이어왔던 중국 중심의
동부가 질서가 일본 중심의 근대 국가 질서로 완전히 바뀝니다.
지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세계가 되겠죠. 물론 일본이 결국은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다시 한번 일본 미국한테 패 패망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일어나는
거고 경제대국으로 일어나는 거고 중국은 뒤늦게
굉장히 뒤늦게 등소평 때 1800 1970년대 말부터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근대화 4대 근대화 개혁 이러면서 그때
와서야 비로서 개혁의 가 박찰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보시면은 1868년이 메이지
유신이라고 보시면은 1978년이 등속평이 개혁 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니다. 그러니까 100 10년이 늦은 거죠. 지금도 중국은
그때 일본이 청일 전쟁을 통해서 뒤집어 놓은 그 동부가 질서의 폐자의
위치 인식 그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를
뒷받침하고 있는이 동북 아시아의 국제질서 그거를 뒤집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중국이 중국 몽이라는 걸 통해서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지금 중국이 하고 있는 100년의 수치를 자기네가 씻겠다라고 하는 그
모든 것은 바로 청일 전쟁에 대한 패배에 대한 당했던 그 구력을 씻어
보겠다라는 바로 그런 노력입니다. 네. 오늘은 어 북양함대의 괴멸 어
정여창 제독의 자살 어 그러면서 청일 전쟁이 사실상 어 끝나는 그 마지막
전투들에 대해서 말씀을 어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이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부터 이미 어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인지한 청종에서는
강화 협상을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강화 협상을 외국인한테도 부탁을 해
보고 다른 어 사절단을 보내기도 하는데 일본이 여기에 대서 명확하게
중국 최고의 인물이 와서 전권을 갖고 와서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그걸 전부 다 물리치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이홍장을 보내서 완전히 굴복하게 하는 그러한 전략을
또 어 전개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외교
전략에 능숙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무를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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