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

Re: [조선의 귀신] 원주민들은 spirit (영)이라는 시각으로 종교, 의료, 문화를 접했을 것 같은데

ChatGPT -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Re: [조선의 귀신 | 무라야마 지쥰 1929 -- 7. 식민지 조사라는 결정적 한계 

그러나 이 책을 순수한 한국 민속학 저술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조선총독부의 조사사업으로 만들어졌다. 식민통치자는 피지배 사회의 종교와 관습을 파악함으로써 주민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도 이 조사가 조선의 사회와 문화에 뿌리내린 민간신앙을 파악하려는 작업인 동시에 식민정책을 위한 자료 제공이라는 목적을 가졌다고 지적한다. 자료 수집에 지방 경찰과 행정관리가 동원되었다는 사실도 문제다. 조사자들이 민간신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질문했을 가능성이 있고, 주민들이 권력기관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수집된 사례의 정확성과 대표성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무라야마의 해석이다. 그는 조선 문화의 밑바탕에 귀신 신앙이 있으며, 그것이 조선인을 소극적이고 운명론적인 존재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일부 연구는 그가 조선인의 민간신앙을 원시적이고 폐해가 큰 것으로 규정하고, 조선인을 혈연 중심적이며 소극적인 민족으로 일반화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해석은 식민주의의 전형적인 논리를 따른다. 식민지의 문화를 미신과 정체의 산물로 묘사한 뒤, 일본의 지배와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방식이다. 조선의 귀신 신앙이 왜 지속되었는지를 전쟁, 빈곤, 높은 유아 사망률, 의료 부족, 여성 억압 같은 사회적 조건에서 설명하기보다 ‘조선인의 민족성’으로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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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지 일본도 근대화되어간 지역이나 문화와 그렇지 않은 지역이나 문화가 있었을테니, 전통적인 곳을 본다면 식민지가 아니더라도 조선에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내부 식민화의 시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여러 곳의 원주민들은 비슷하게 여러 종류의 spirit (영)이라는 시각으로 종교, 의료, 문화를 접했을 것 같은데, 귀신도 같은 카테고리라고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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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제시해주신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권력의 내부 시선과 인류학적 관점에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하겠습니다. 본문은 지침에 따라 <해라> 체를 사용하여 작성했습니다.

1] 메이지 일본의 내부 근대화와 '내부 식민화(Internal Colonialism)'의 시각

제시문에서 지적한 무라야마 지준의 비판—즉, 조선의 민간신앙을 '원시적 미신'으로 규정하고 조선인을 '소극적·운명론적 민족'으로 일반화한 태도—은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지적하신 대로, 이러한 시선은 제국이 식민지를 바라볼 때만 작동한 것이 아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를 추진하던 일본 지배층이 정작 일본 내부의 낙후된 농촌 지역이나 소외된 소수자(오키나와, 홋카이도 아이누 등)를 바라보던 시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를 '내부 식민화(Internal Colonialism)'의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메이지 정부의 '국가신도(國家神道)' 확립과 민간 신앙 탄압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수천 년간 내려오던 불교와 신토의 혼합 신앙을 강제로 분리(신불분리)하고, 중앙 집권적인 국가신도를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지방 농촌에 남아 있던 수많은 토착 신앙, 음양도, 주술적 민속(예: 요괴 전승, 부락의 고유 축제 등)은 조선의 민간신앙과 마찬가지로 '근대 국가에 방해되는 추잡한 미신'으로 규정되어 전방위적인 탄압을 받았다.

둘째, 일본 민속학의 개척자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國男)의 작업이 이를 방증한다. 그는 20세기 초 일본 토노(遠野) 지역의 괴담과 전승을 모아 <토노모노가타리(遠野物語), 1910>를 저술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산의 정령이나 요괴, 유령의 전승은 무라야마 지준이 채록한 조선의 귀신 이야기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메이지 정부의 엘리트들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서구화된 '근대 일본'을 표준으로 삼고, 동북 지방(도호쿠) 등 낙후된 농촌 지역의 주민들을 '비합리적이고 미신에 얽매인 타자'로 보았다.

결국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에서 행한 분류와 비하는, 메이지 일본이 자국 내에서 서구적 근대화를 밀어붙이며 자국 민중을 향해 행했던 '내부 식민화'의 인식론을 그대로 확장하여 식민지 조선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 지배 권력의 눈에는 근대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모든 전통문화가 국경과 민족을 막론하고 똑같이 '청산해야 할 미신'으로 보였던 것이다.

2] 전 세계 원주민의 '영(Spirit)' 관념과 조선 '귀신'의 인류학적 범주 비교

인류학 및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원주민(Indigenous peoples) 사회가 지녔던 종교, 의료, 문화적 세계관은 조선의 '귀신' 관념과 정확히 같은 카테고리(범주)에 속한다. 인류학에서는 이를 주로 애니미즘(Animism, 정령신앙)과 샤머니즘(Shamanism)으로 분류한다.

첫째, 종교와 의료, 문화의 일체화 구조이다. 근대 이전의 원주민 사회나 조선 사회에서 자연물(산, 강, 나무)과 인간의 주변 공간(집안의 방, 부엌, 문)에는 모두 고유의 '영(Spirit)' 혹은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어졌다. 이 세계관 속에서 질병이나 기근, 재앙은 단순히 생물학적·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이러한 영적 존재들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발생하는 신호였다. 따라서 치료(의료)는 주술사나 무당(샤먼)이 영과 소통하여 그들의 분노를 달래거나 쫓아내는 종교적 의례(문화)와 분리될 수 없었다. 조선의 '구병시식(귀신을 먹여 보내 병을 고치는 의례)'이나 무당의 굿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 시베리아 부족들이 행하던 영적 치유 의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카테고리다.

둘째, 영(Spirit)의 도덕적 양면성이다. 서양 기독교의 악마(Demon)는 절대적이고 순수한 악이지만, 원주민들의 영(Spirit)과 조선의 귀신은 대부분 양면성을 지닌다. 집을 지키는 성주신이나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Spirit)은 인간이 정성을 다해 대접하면 복을 주지만, 소홀히 하거나 노하게 하면 재앙을 내리는 존재(귀신)로 변한다. 즉, 영적 존재의 성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성'에 따라 결정된다.

셋째, '원혼(조상 영)'의 존재 방식이다. 많은 원주민 사회에서 죽은 조상의 영혼은 온전히 저세상으로 가기 전까지 산 자의 세계 주변을 맴돌며 영향을 미친다. 억울하게 죽거나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영혼이 이승을 떠돌며 해를 끼친다는 관념은 호주 원주민(애보리진), 아메리카 인디언 전승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조선의 귀신 신앙은 일제가 주장한 것처럼 '조선 민족만의 특수한 열등성이나 운명론의 증거'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근대 과학 문명을 이룩하기 전, 전 세계 모든 원주민 공동체가 자연 및 죽음과 관계를 맺고 삶의 위기(질병, 재앙)를 해석하던 보편적인 인류학적 세계관의 한 형태이다. 무라야마 지준은 인류의 보편적 정신 유산을 식민지 지배라는 좁은 틀 속에 가두어 왜곡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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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질문 모두 핵심을 정확히 짚습니다. 무라야마의 저술을 비판할 때 단순히 <일본인은 근대적이고 조선인은 미신적이라고 보았다>고 정리하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다음 세 층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일본 내부의 근대적 중심이 일본 내부의 주변부를 보는 시선>,
<일본 제국이 식민지 조선을 보는 시선>,
<근대 학문 자체가 비근대적 종교세계를 분류하는 시선>입니다.

1. 메이지 일본의 전통사회도 조선과 비슷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일본의 농촌과 어촌, 산간지역, 도서지역을 조사했다면 조선에서 발견된 것과 상당히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빠르게 산업화하고 중앙집권화했지만, 일본 사회 전체가 갑자기 합리주의적·세속적 사회로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을마다 산신·수신·농경신·역신·조상령을 모셨고, 무녀·수행자·점복가·주술적 치료자가 활동했습니다. 여우 들림, 원령, 요괴, 신벌, 신내림과 같은 관념도 널리 남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귀신신앙 자체를 일본과 구별되는 특수한 후진성으로 보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의 무당과 일본의 미코·이타코·유타, 한국의 원귀와 일본의 온료, 한국의 마을굿과 일본의 마쓰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도 있지만 구조적인 유사성이 많습니다.

문제는 귀신을 믿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가 누구의 믿음을 미신으로 규정할 권력을 가졌는가>입니다.

일본 내부의 ‘문명’과 ‘미개’ 구분

메이지 국가는 도쿄를 중심으로 표준교육, 표준어, 근대의학, 경찰행정, 국가신도를 확산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의 민간신앙과 종교 실천은 종종 다음과 같이 분류되었습니다.

  • 무지한 농민의 미신
  • 근대의학을 방해하는 주술
  • 공공질서를 해치는 기괴한 풍습
  • 통제되지 않은 민간 종교
  • 국가가 정비해야 할 지역 관습

이런 점에서는 말씀하신 <내부 식민화>라는 개념이 유효합니다. 중앙의 관료·의사·교육자·학자가 지방 주민을 조사하고, 분류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대 국민국가는 대체로 자국 내부에서도 주변부의 언어·종교·생활양식을 표준화합니다.

아이누와 류큐인의 경우에는 내부 식민화라는 표현이 특히 적절합니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류큐를 국가 영토에 편입하면서 그 주민의 언어, 토지제도, 종교의례와 생활양식을 후진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일본 국민으로 동화시키려 했습니다. 아이누가 일본 국가 안에서 ‘제2등 주민’으로 편입되었다는 연구도 이 점을 지적합니다.

다만 일본 농촌 전체를 아이누·류큐·조선과 똑같은 의미의 식민지로 부르는 데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부 식민화는 유용한 분석 개념이지만, 법적 주권 박탈과 민족적 차별, 토지수탈, 언어 억압, 경찰 강제력이 결합된 해외 식민지배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일본 내부와 조선의 결정적 차이

일본의 중앙정부가 자국 농촌의 미신을 비판했을 때도 권력 불균형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 불균형에 몇 가지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첫째, 조선인은 일본 제국의 정치적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민이었습니다.

둘째, 조사 결과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통치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문화적 차이가 단순한 지역 차이가 아니라 민족적 위계로 해석되었습니다.

넷째, 일본의 비슷한 풍습은 ‘고유민속’이나 ‘국민문화’로 보존하면서, 조선의 풍습은 ‘미신’과 ‘민족성의 결함’으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조선인은 조사자와 분류자보다는 조사받고 분류되는 위치에 놓였습니다.

일본 제국의 종교·민속 연구는 종족마다 고유한 종교적 성격이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제국질서 안에 배치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식민지 민족지학은 단순히 다른 문화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제국이 피지배 집단을 이해하고 통치하는 지식체계였습니다.

따라서 무라야마의 문제는 조선에서 귀신신앙을 발견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와 유사한 현상이 일본에도 있었음에도, 조선의 사례를 조선인의 본질적·민족적 성격과 연결하고 식민통치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무라야마의 연구를 이렇게 고쳐 읽어야 한다

무라야마식 질문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조선인은 왜 이렇게 귀신을 많이 믿는가?

비교민속학적으로 더 적절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대 이전과 근대 이행기의 동아시아 사회들은 질병·죽음·불운·재난을 어떤 영적 존재와 의례를 통해 이해했는가?

첫 번째 질문은 조선인의 특수성과 후진성을 전제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조선과 일본을 함께 비교하면서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차이를 살핍니다.

또 다른 질문도 가능합니다.

왜 일본 근대국가는 일본과 조선에 존재한 비슷한 종교현상을 서로 다르게 명명하고 처리했는가?

이 질문으로 옮겨가면 연구대상은 조선의 귀신뿐 아니라, 그것을 ‘귀신’과 ‘미신’으로 분류한 일본 제국의 지식체계가 됩니다.


2. 원주민 사회의 여러 spirit와 조선의 귀신을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는가

넓은 의미에서는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이라는 한국어 한 단어로 세계 각지의 spirit 개념을 번역하면 많은 차이가 사라집니다.

넓은 비교 범주로서는 가능하다

인류학적으로 spirit는 대체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 동물, 자연, 질병, 장소, 죽음, 공동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인격적 또는 준인격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 넓은 뜻에서는 다음을 함께 비교할 수 있습니다.

  • 죽은 조상의 영
  •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혼
  • 산·강·숲·바다·바위의 주인
  • 동물의 영
  • 출산과 질병에 관련된 존재
  • 마을이나 씨족의 수호령
  • 샤먼에게 내려오는 신령
  • 사람에게 빙의하는 영
  • 사냥감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존재

조선의 귀신신앙도 이 넓은 <영적 존재의 세계> 안에 들어갑니다. 무당이 신령과 죽은 자를 매개하고, 질병과 가족 문제를 영적 관계의 이상으로 해석하며, 굿을 통해 관계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세계 여러 샤머니즘 전통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영과의 접촉이 의료·종교·사회관계의 경계를 가로지른다는 점도 공통적입니다. 북수단의 자르 영빙의에 관한 연구도 영적 진단과 치유가 개인의 질병만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긴장을 다루는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귀신’과 spirit는 정확히 같은 말이 아니다

한국어의 ‘귀신’에는 흔히 죽은 사람의 혼령, 해로운 존재, 무서운 유령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러나 여러 원주민 사회에서 spirit는 반드시 죽은 인간도 아니고, 악하거나 두려운 존재도 아닙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산과 강이 단순히 영이 ‘사는’ 장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격적 존재입니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의식과 의지를 가진 사회적 상대일 수 있습니다. 사냥은 자원을 획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동물 주인과 관계를 맺고 허락을 받는 행위가 됩니다.

이런 세계관에서 spirit는 한국의 ‘귀신’보다는 다음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범주에 가깝습니다.

  • 신령
  • 조상
  • 혼령
  • 자연의 주인
  • 수호자
  • 위험한 존재
  • 비인간 인격체

따라서 <귀신도 spirit의 한 종류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모든 spirit가 귀신이다>라고 말하면 부정확합니다.

‘애니미즘’이라는 옛 분류의 문제

19세기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는 여러 민족의 영혼과 정령에 대한 믿음을 ‘애니미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를 종교의 가장 초기 단계로 보았습니다. 이런 분류는 다양한 사회를 비교할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럽 기독교를 발전된 종교로, 원주민의 영적 세계를 원시적 종교로 배열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라야마가 조선의 귀신신앙을 원시적 단계로 본 것과 비슷한 진화론적 구조입니다.

현대 인류학에서는 애니미즘을 단순히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잘못 믿는 미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서로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지는 하나의 존재론 또는 세계 이해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말 영을 보았는가>를 외부인이 판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 사회에서 인간은 누구인가?
  • 동물·식물·산·강은 어떤 존재인가?
  • 질병은 몸 안의 생물학적 고장인가, 관계의 파괴인가?
  • 죽은 자는 공동체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가?
  • 치유란 증상을 없애는 것인가, 관계를 복구하는 것인가?

근대 서양의 ‘종교’, ‘의료’, ‘법’, ‘자연’이라는 구분 자체가 모든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 범주가 아니라는 비판도 중요합니다. 현대 인류학은 외부 연구자가 자신의 ‘종교’와 ‘의학’ 개념을 다른 문화에 투사할 때 생기는 문제를 점점 더 강조합니다.

기독교 선교가 spirit를 ‘악령’으로 번역한 문제

원주민 사회에 기독교가 들어갈 때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다양한 영들이 하나의 범주로 재분류된 것입니다.

원래는 조상, 산의 주인, 물의 영, 수호령, 질병을 일으키는 존재가 각각 다른 성격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 토착의 최고신 → 기독교의 하나님과 연결
  • 선하거나 중립적인 영 → 천사 또는 허구
  • 조상령과 자연령 → 악령 또는 우상
  • 샤먼의 신령 → 악마
  • 치유의례 → 마술 또는 미신

이 과정에서 토착종교의 복잡한 영적 세계가 <하나님 대 악마>라는 이원론으로 단순화되었습니다.

태평양 지역의 사례에서는 영어 또는 식민지 언어의 ‘devil’이라는 말이 토착 조상령과 기독교 악마를 동시에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는 번역이 단순한 언어교환이 아니라 토착 존재론을 기독교적 범주로 재편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산신, 조상신, 성주신, 원귀, 잡귀처럼 성격이 다른 존재들이 일부 기독교 담론에서는 모두 ‘귀신’ 또는 ‘악령’으로 묶였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달래거나 협상하거나 잘 보내야 할 존재가 기독교 안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추방해야 할 존재가 된 것입니다.


3. 귀신·신령·spirit를 어떻게 분류하면 좋은가

비교를 위해서는 하나의 큰 범주 아래에 몇 가지 유형을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형조선의 예일본의 예다른 원주민 사회의 대응 사례
죽은 조상의 영조상신소레이·조령씨족 조상령
억울한 죽은 자원귀·객귀온료·무엔보토케전쟁·살해 희생자의 영
장소의 영산신·용왕·서낭신야마노카미·미즈노카미숲·강·산의 주인
집과 생활의 수호신성주·조왕·터주가마도신·야시키가미집·화로·밭의 수호령
질병과 재난의 존재역신·두신야쿠진·호소가미전염병·불임 관련 영
샤먼의 보호신몸주신·장군신미코·유타의 신령샤먼의 보조령
동물과 비인간 존재여우·뱀·호랑이 관련 영기쓰네·헤비·오오카미사냥동물의 영과 주인
절대적 악령전통적으로 제한적전통적으로 제한적기독교 유입 뒤 확대

이 표에서 보듯 조선의 ‘귀신’은 하나의 단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신, 혼령, 조상, 자연의 주인, 질병을 일으키는 존재가 겹쳐 있는 집합적 명칭입니다.

무라야마가 사용한 <귀신>이라는 분류도 조선인의 고유한 단일 범주를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지역마다 다른 수많은 존재를 조사자가 하나의 행정적·학술적 항목으로 묶은 측면이 있습니다.


4. 식민지 민속조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식민지 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료가 거짓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자료가 실제로 매우 귀중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분류의 권력>입니다.

무라야마는 다음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 어떤 것을 종교라 부를 것인가
  • 어떤 것을 미신이라 부를 것인가
  • 누구를 무당이라 분류할 것인가
  • 어떤 행위를 의료가 아니라 주술이라 할 것인가
  • 지역적 차이를 조선 민족 전체의 성격으로 일반화할 것인가
  • 어떤 행위를 보존할 민속으로 보고, 어떤 행위를 단속할 폐습으로 볼 것인가

따라서 그의 책은 두 가지를 동시에 기록합니다.

하나는 조선 민중의 영적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본 제국이 조선을 보고 분류한 방식입니다.

이 점에서 무라야마의 책을 읽을 때는 <조선인은 무엇을 믿었는가>와 함께 <일본 제국은 왜 그것을 이런 식으로 묘사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결론

첫째 질문에 대해서는, 메이지·다이쇼기의 일본 지방사회에도 조선과 유사한 귀신·무녀·치병·주술 문화가 널리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민간신앙을 민족적 후진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일본 중앙이 지방을 미신적 주변부로 보는 태도는 내부 식민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선에서는 여기에 주권 박탈, 민족적 위계, 경찰행정과 식민통치라는 차원이 추가되었습니다.

둘째 질문에 대해서는, 조선의 귀신은 세계 여러 원주민 사회의 spirit 개념과 넓은 비교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나 spirit는 귀신보다 훨씬 넓은 개념입니다. 죽은 자뿐 아니라 조상, 동물, 산과 강, 수호자, 장소의 주인, 샤먼의 조력자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적절한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의 귀신은 인류 여러 문화에서 발견되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비가시적 존재들’의 한 역사적 형태이다. 그것은 조선만의 미신도 아니며,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보편적 실체도 아니다.

공통된 인간 경험은 질병, 죽음, 불확실성, 자연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귀신>, <가미>, <조상령>, <악령>, <자연의 주인>, <비인간 인격체> 가운데 무엇으로 이해하느냐는 각 사회의 역사와 권력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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