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무속신앙과 기독교
제1절 무속신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1. 신앙 생활에 미친 영향
(1)기복적 신앙
(2) 비윤리적 현실 생활
(3)강신(降神) 위주의 신앙
(4) 감각적 체험 생활
2. 교회에 미친 영향
(1) 「굿」화한 교회
(2)교회에 대한 신당 개념
(3)무속화된 부흥사
(4) 물량주의적 가치
3. 예배 의식에 미친 영5
(1)과열된 예배
(2)방관자로서의 예배
(3)기복적인 예배
1. 세계적인 신비주의적 종교현상
2. 한국 사회의 불안정
3. 교회 내의 구조적인 문제
4. 오순절주의의 영향
5. 적극적 사고 방식의 영향
6. 교회 성장 신학의 영향
제3절 초대기독교인들의 기독교 수용 형태
제4절 무속과 기독교의 차이
1. 기도와 축원
2. 설교와 공수
3. 찬송과 가무
제5절 무속현상에 대한 목회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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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나라 여러세상
◈ 무속신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산골 딱다구리
2015. 2. 17.
한국 종교사상 재래의 신앙전통에 대해 기독교만큼 배타성을 가진 외래종교도 없을 것이다. 십계명
에,“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며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
에 있는 것에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거기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론에서 지적한 샤머니즘적 요소와 그 경향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이라는
영역 안에서의 종교풍토의 색채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앞서 지적했듯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한
국에 전래된 불교, 도교, 유교의 오래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도교의 경우 한국에 전래된 후
무속에 흡수되어 이제는 그 형태마저 따로 찾아볼 수 없는 채 무속 속에 겨우 잔재해 보일 뿐이다.
이러한 여러 외래종교에 있어서의 무속적 요소는 한국민족이 원래 가지고 있는 무속적 기반 위에 뿌
리를 박아야만이 자라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 보여진다.
앞서 말한 어떤 외래종교보다도 재래 신앙에 대하여 배타적인 기독교가 무속적 요소를 내포하게 되고
주술적 신비성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역시 한국이라는 영역 안에서는 한국민족의 재래 신앙기반
이 되는 무속이 이면에서 작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서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토양과 기후조
건이 맞아야만 싹이 터서 그 흙 속에 뿌리를 박고 물과 양분을 빨아올려 성장하며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는 것처럼 한국 기독교를 이와 같은 식물에 비해 볼 때 한국이라는 풍토를 떠나서는 한국
기독교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교가 짧은 역사 속에서도 오늘날과 같은 교
세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무속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반면에 강력한 조직력과 그 많
은 재정을 뒷받침으로 한 기독교가 이와 같은 조건에 비해 이처럼 분진 상태에 있는 것 또한 무속의
영향인 것이니, 기독교는 그 자신이 ‘한국’이라는 것에 대한 분석, 고찰이 없어 너무나 백안시해 왔다
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제 무속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 우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비중을 두도록
하겠다.
제1절 무속신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1. 신앙 생활에 미친 영향
무속신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중에는 생활로서 우리에게 미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무속은 곧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생활의 저변에는 물론 심성이 바탕이 되고 있음은 주지(周知)
의 사실이다.
(1)기복적 신앙
무속신앙의 기복 사상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정신적인 복의 개념이 그들에게는 없다. 이
런 기복주의 신앙이 기독교 신앙을 저질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속적인 기복 사상은 내면의
복이나, 9정신적인4복보다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강조한다. 무병 장수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며,
德 田 의 문 화 일 기.
죽어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무속이 추구하는 복의 내용이다. 한국인들 만큼 복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복을 좋아하는 한국 땅에 전파된 기독교 복음은, “예수 믿고 복 받으라.”는 전도 구호가 기독
교 신앙과 교리를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복이 무엇인지, 참된 복음의 내용을 전
파할 겨를도 없이 무속적인 복을, 기독교를 통해서 받으려는 사람들로 교회는 채워지게 되었고, 수적
이고 물량적인 성장을 교회 부흥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정한수를 놓았던
자리에 십자가를 갖다 놓고, 천지 신명을 부르는 대신 주님을 부르면서 모든 재앙과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 입명(安心立命)하고 복된 생활을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이용물이 되어 버렸다. 바울 사도
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
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는 고백을 했건만, 오늘날 무속화된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주님은 뒷전에 있고 자신이 앞장서 나간다. 또한 기복 사상에 물든 기독교인들은 헌금의 동기
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복채를 바치듯이 복을 염두에 둔 재물이며, 바친
것 이상으로 더 돌려받기를 원한다. 어디 그것 뿐인가? 교회를 위한 봉사나 교역자 접대 그리고 교회
의 출석도 받은 은혜에 대한 자발적인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더 받기 위한 씨뿌
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경이 물량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모두 배격하는 것은 절대 아니
다.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거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큰 부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현세적인 복은 “하
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선물이요, “더하여 주시는 은혜”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비윤리적 현실 생활
무속에는 가치나 윤리성이 거의 없다. 가치의 기준이 있다면 “다다익선”(多多益善)이야말로 무속의
가치개념이다. 물론 소박한 권선징악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영귀를 두려워하는 무속의 태도에서
사람을 원통하게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이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들의 神觀에 의하면 善神은 사람에게 福을 주고 惡神은 재앙을 준다고 믿
는다. 그런데 선신이라도 잘 대접하지 않으면 재앙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여기서는 선
신과 악신의 구별이 아주 모호하기 때문에 선과 악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가 없다. 또한 善과 惡
은 윤리적 규범이 못되고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본다. 이처럼 무속에는 윤리적 요소가 결
핍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윤리적이고 역사 참여가 없는 무속의 영향으로 신앙과 생활의 분리가 일어났다. 무속은 엑
스타시(ecstasy)와 강신(降神) 체험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기독교에 젖어들어 신비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굿판에서 노래하고 춤추듯이, 열광적인 광신주의나 감각적
인 체험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굿이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듯이 신앙적
인 열정이 생활로 나타나지 않는 ‘예배당 교인’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무속신앙에서는 세상이 어떻
게 돌아가든 그것은 신의 뜻에 달린 것이며, 인간은 그저 화(禍)만 면하고 오늘의 복만 있으면 되는 것
이기에, 한 개인의 행복이나 자기가 소속한 집단의 행복만이 관심이 된다. 따라서 역사 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이 우리 기독교에 침입하여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부조리는 신앙
과 관계없다는 이원론적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사회악’에 대하여 항거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기독교
인을 양산하고 말았다.
(3)강신(9降神) 위4주의 신앙
德 田 의 문 화 일 기.
강신(降神) 체험과 엑스타시(ecstasy)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무속적 신앙 상태는 기독교 안에서도
신비 체험과 엑스타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있어야만 옳은
교회요, 성령 받은 신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과 은사도 오해되어 무당의 강신 체
험이나 엑스타시 비슷한 체험의 간증이 교회에서 환영받게 되는 이상 풍조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김태곤은 기독교의 성령 체험을 무속의 입신 현상과 비교해 조사한 것을 살펴보면 성령 체험자 거의
모두가 성령 체험의 증거로 손 끝이 떨리고, 진동이 오고, 몸에 화끈하는 불이 느끼고, 방언을 말하며,
환상과 환청을 체험하는 등 모두가 외형적인 것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당이 될 때나 굿을 함으로 신탁(信託)을 할 때 영계와 교통하며 몰아입신(沒我入神)의 삼매경(三
昧境)으로 들어가서 탈아상태(脫我狀態)와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상태가 생길 수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 신비주의 속에 나타나서 이런 체험이 있어야 은혜받는 것이며, 감각적인 느낌을 가져야 성령
을 체험한 것으로 인정을하여 입신‧환상‧방언‧기적‧체험 등 신비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비복음
적 신앙이 만연하고 있는데, 이는 무속의 종교적 심성과 강하게 유합된 것이다.
입신이나 방언은 대개 부흥회 때 많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신앙이 깊을수록 그 도가 깊다는 것이다.
입신은 입신기도(入神祈禱)를 열렬히 하는 도중 최면 상태에 들어가 영묘(靈妙)한 경지에 달한다는
것으로서 이 때에 천당이나 지옥 등의 영계(靈界)를 가볼 수 있다는 것이니, 그 원리야 어떻든간에 육
체와 영혼을 이원화로 하는 샤머니즘의 애니미즘적 해석인 것이다. 물론 열렬한 기도로서 입신 상태
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신 현상으로 심령이 통하는 것이나, 이것을 굳이 샤머니즘적 사고단계의 상태
에서 설명해야만 그 신비감이 길어진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방언의 경우, 구약시대부터 있
었던 것으로 방언기도로서 황홀한 상태에 들어도 전연 알수 없는 외국어를 흥분한 상태로 마구 지껄
이는 것인데, 이는 샤머니즘의 도무강신(跳舞降神)에서 신의를 전달하는 공수(巫覡이 직접 신격화하
여 신령으로서 인간에게 하는 말로 절대적 명령권이 있다)와 유사한 예일 것이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원리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입신이나 방언을 잘하는 전도자 또는 신도일수록 그 신비성이
영력을 인정 받게 되어 한국인 본래의 심중에 잠재된 샤머니즘적 신비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을 말한다.
(4) 감각적 체험 생활
오늘날 한국 기독인들은 기독교의 체험을 너무 강조한다. 근원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
지 않을 것이 없건마는 이들은 주로 감각적인 체험과 기적을 갈망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성령 체험
이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한국 무속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가무에 있다. 노래하며 춤추며 박수치는 가운데 신령과 교통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이 관념이 일반 기독인의 신앙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열광하며 찬송하고, 박수치며, 북
을 치고 춤을 추는 곳에 성령은 교통하고, 역사한다고 믿는 풍조이다. 부흥회나 기도원을 자주 찾는
성도들은 으레히 목히 쉬도록 노래하고, 몸이 나른하도록 춤을 추며, 박수치며 땀을 흘려야만이 은혜
를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이는 무당의굿놀이를 연상케 한다. 일부에서는 예배나 부흥회 때 추는 춤을
미화하여 “은혜의 춤”이라고한다. 이런 류의 춤과 열광은 기독교의 사이비종파 사이에서 더욱 유행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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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 田 의 문 화 일 기.
2. 교회에 미친 영향
지금까지 무속이 한국 기독교인의 심성과 신앙 생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기독교 교
회 내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굿」화한 교회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
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말씀을 배우고 전하며, 주 안에서 지체된 성도들 간에 교제를 나누며, 주의 일
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의 예배는 ‘굿거리’ 마당이 되고 목회자는 무당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
다. 무속화된 기독교인들은 예배를 ‘굿’에 참여한 구경꾼의 심정으로 관람한다. 교인들은 교회의 목사
가 신령한 무당이 되어 재난과 불행을 추방하고 복을 빌어 주기만을 기대한다. 또한 그들은 무당이 단
골 가정들을 방문하듯이, 목회자가 자기들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악귀를 추방하고 화를 면하
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방을 고대한다. 뿐만 아니라 ‘굿’판이 크면 클수록 좋듯이 교회도 크
고 웅장해져야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생각하여 ‘교인 뺏기 놀음’을 서슴치 않는다. 이
제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개종 신자는 없고 이동하는 신자만 있는 시대
를 맞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오직 큰 ‘굿’판을 사모하듯 물량화된 교회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교회에 대한 신당 개념
어느 민족이든지 그 문화 속에서 신을 숭배하고 신앙하는 행위를 가능케 하는 의식들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종교적 의식을 수행하는 장소가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신을 섬기고 신앙행위를 하며 신
을 경험하는 장소를 신당(神堂)이라 하였고 특별히 성역화하였다.
한국인들은 특히 신을 가까이 한 민족으로서 신당과 신당을 대신하며 상징적 기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단적인 현상이 모든 삶의 주변에 신을 모시는 처소들을 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
엌에도, 우물에도, 변소에도, 안방 천정이나 골방이도, 길가에도 신이 있을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마루 대들보에는 성주님을, 뒷들에다가는 터줏대감을, 안방에는 제석단지를 모시고 있는 전형적인 가
택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성주는 집 주인의 수호신이요, 집안 전체의 평안을 관장하는 천신(天神)
이다. 터주는 지신(地神)이요, 주부의 수호신인 동시에 생산을 관장하는 제복신이다. 제석단지는 삼
신이라고도 하는 자손의 수호신이며 수명과 복을 주관하는 신이다.이와 같이 신의 처소를 상징하는
것들을 넓은 의미에서 신당의 개념에 포함된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이와 같은 신당개념이 자리하고 있으며, 항시 신을 섬기며 신에 대한 신앙의식
을 행하여 왔다.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 속에 이러한 신당의 개념을 가지고 교회를 인식하
는 한국문화 구조가 다분히 자리잡고 있다. 신자들의 교회의 강단과 성구들을 신성시하고 교회를 성
역의 장소로 규정하는 것과 기독교적 상징성을 지닌 십자가나 단 등을 각별히 취급하는 심성은 바로
이런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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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당은 제의(祭儀)의 공간이다. 제의를 행하는 공간은 금(禁)줄을 치고 새 황토를 펴서 사람들
의 출입이 금지되는 곳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현실의 생활공간과는 엄격히 구별되는 것이다. 금기의
표시로 치는 금줄로는 오른 새끼줄이 아니고 왼쪽으로 꼰 왼 새끼줄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적이 아님
을 강조한 것이다. 또 황토를 펴는 것도 새 흙으로 선명하게 구별되는 붉은 것으로 제의의 공간을 성
역화하는 작업이었으며 이러한 제의 공간의 성역화 의식은 한국인의 종교성에 포함되어 있다.
한국교회의 건물 구조는 “본당”이라는 대표적 예배 장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곳은 교회의 어
떤 공간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의적 공간이다. 특별히 강단을 구별되게 배치하고 거기에 기
독교적 상징을 나타내는 기구들을 중점적으로 장식한다. 그리고 그 곳은 접근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등단자를 제한하는 태도는 예의를 초월한 제의의 공간으로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화 속의 신당은 신을 경험하는 장소로 신적 능력을 경험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참여하는 신의
속성이 임재할 수 이는 성역으로서 한국인의 정신적 기원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문화구조가 지적, 실천적, 공동체적 구조로 전승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경험의 상징인
표상적 실체는 보다 직접적인 삶의 세계와의 상응 속에서 변모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적이고 미신적인 자신의 문화를 경계하였고, 그 형식들을 철저하게 거부하여 왔
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우리 문화의 형식을 찾아볼 수 없고 교회의 모양도 철저한 서구식 건축 양식
을 모방하였다. 예배의식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교회를 이해
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신당의 개념에 바탕하여 교회를 보는, 한국인의 문화적 구조에 머물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3)무속화된 부흥사
오늘날 한국 교회는 목회자의 기능을 무당의 기능과 혼동하면서 무당의 역할을 목회자에게 기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본래 무당의 기능은 영매 기능과 길흉 화복을 예언하는 기능, 그리고 병과 불행을 추
방하는 기능인데, “예언의 은사가 있고 병을 치유하는 은사가 있으며, 하나님과의 중재를 감당해 주
는 신령한 사람”이 훌륭한 목회자라는 일반적인 생각은 분명 무속의 영향인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목회자 스스로 자신을 무속의 강신무(降神舞)로 착각하면서, 교인들 앞에서 신
적 권위를 가지고 복종을 강요하며, 물량주의적 가치를 부추기고 있는 점이다. 또한 무당화한 부흥사
들이 있어서 피안적(彼岸的)이요 현실 부정적인 신앙이념을 강조하기 때문에 육신‧물질‧세상을
모두 죄악시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위기‧실망‧허무‧염세의 위치에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일을 중
요시 하고 있다.
무당 굿하듯 부흥사를 불러다가 복가치며 입신‧도약‧박수‧무란 등이 밤이 다하도록 “주여 주여”
하며 기를 쓰고 소리쳐야만 믿는 것 같고, 시원하며, 그래야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하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분명히 무속의 기질에서 주어진 영향이다. 이것은 “기독교 푸닥거리”요
복음적인 집회라고 볼 수가 없다. 이들은 대개 「불의 사자」, 「은사의 종」, 「신유의 종」, 「영력의 종」,
「말세의 종」,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예언자」 등으로 불리운다.
부흥회의 메시지가 회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축복에 있으며, 부흥회의 회개 목적이 회개 운동
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건축 등 타 목적에 이용됨은 무속의 심성을 이용한 교회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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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회개가 없는 감정적 집회는 모두가 굿판과 흡사하다.
(4) 물량주의적 가치
무속의 가치의 기준은 질(質)적인 것이 아니라 양(量)적인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요, 많이 소유
하는 것이 복이다.
이 개념이 한국 교회 풍토 속에 나타나 많은 교역자와 교회들이 크게 부흥되어야 은혜스러운 교회로
인식하고 맘모스 교회를 꿈꾸며, 이를 위해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린다. 질적인 성숙은 배제되고 양적인
성장만이 진리라는 가치 기준이 교회에 만연함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인데, 이도 무속적인 사상에서 기
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예배 의식에 미친 영향
(1)과열된 예배
바울이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한 것은 열중한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사도 요한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열심을 내라(계3:19)고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충성없이 무관심
한 태도에서 돌아설 것을 권면하는 것이지 열광적으로 이끌어가는 열광적인 흥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속이 노래와 춤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것은 “신을 내려오게”하고 인간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경지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인데, 무속의 노래와 춤은 엑스타시로 이끌어가는 현상임을 볼 수가 있다. 열광적
인 흥분에 도취하면 예배의 질서가 문란하게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바울은 교회의 공중 예배에 대해
논하면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인들의 상당수는 지나친 감정주의의 함정 속에 빠지곤 한다. 그들은 함께 모여 열광적
인 흥분상태에 이르기를 열망한다. 이러한 흥분상태는 황홀경이나 무아경(ecstasy)으로 이끌어 주어
서 일시적인 감정 발산으로 끌나거나 긴장완화를 위한 과열된 예배로 빠지게 한다.
마리안 믹스(Marianne H. Micks)는 그의 책 「예배의 기쁨」(the Joy of Worship)에서 예배의 세
가지 위험성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것은 ①우상 숭배자, ②미온적인 예배자, ③과열하는 예배자이
다. 한국인들은 이 세 가지 유형 중에서 과열하는 예배자로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부흥사가 너
무 자신이 하나님과 만난 경험을 강조하다 보니까 하나님은 빠져버리고 결국 자기의 희한한 경험에만
도취되어서 교인들을 방언이라든가 기적에로 끌고 가는데, 그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매개로 끝나지
않고 복음의 내용이 되기까지 한다. 복음의 내용이 없는 열광적인 예배는 그 생활에 변화를 가져다 주
지 못하고, 황홀경에 빠져서 일시적 망아경에 들어갔다가 깨어나는 감정 발산의 시간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2)방관자로서의 예배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고(요4:23~24, 벧전2:5) 우리 자신의 전체, 즉 우리의 지
성‧감성9‧태도‧소4 유를 드리는 것인데(롬12:1), 한국 교회의 예배는 목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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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교인들은 구경꾼으로 모여드는 부흥회 형태가 인기를 끈다. 예배는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야 되는데 관람객이 되면 그 예배는 형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배를 본다”, “예배를 보러 간
다”는 말 자체가 목사가 예배를 연출하는 것을 가서 본다는 뜻인데, 그냥 가서 보고 오는 것이다. 기도
하는 것, 설교하는 것, 성가대가 노래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가대의 찬양도 교인
들의 감상용으로 전락해 버릴 수밖에 없다.
굿은 언제나 무당이 하고 거기 운집한 남녀노소는 모두 구경꾼에 지나지 않듯이, 한국 교회는 이러한
체질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일체의 예배 의식과 기도를 일임해 버리고 구경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이
다.
한국 교회의 예배 출석 상황은 양호한 편이긴 하나 지각생이 많아 예배 출석 행렬은 예배가 끝날 때까
지 꼬리를 물고, 또한 설교가 끝나기 바쁘게 나가 버리는 조퇴 신자도 있다. 이것을 보면 예배의 중요
성을 느끼고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한다는 생각이 희박한 편이다. 더욱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는 설교 중심이 예배이기 때문에 설교 이전의 순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설교파 교인”도
있다. 예배드리는 것 자체를 구경하듯이 하는 사람에게 생활의 문제는 역시 예배와 일치시키려고 생
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형식과, 체면의 바탕에서 체질이 자라온 한국 교인들이 이 형식적인 제사, 내용도 없고 빈 껍질만 있
는 제사, 구경꾼과 방청객들만 모여서 “보고”있는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하나님께는 아무 의미가 없
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배는 “회중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회중의 예배”이다. 예배를 능동적인 참여
와 행위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관람실에 앉은 피동적 자세로 드릴 때, 그것은 하나의 修養이나 修身
풀이의 의미밖에 갖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100년 동안 자라오면서 눈과 귀만 자랐다. 교
회에 와서도 찾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 아무에게 더 관심이 많다.
예배를 관람객으로 참여하여 봤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보고난 후 처럼 그 예배의 메시지와 내용과 요
청이 우리 생활과는 동떨어져 유리하고 있는 것이다.
(3)기복적인 예배
한국인 신도들의 현세적 기복신앙은 오랫동안 지탄받아 온 부분중의 하나이다. “주여, 저에게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우리를 축복하소서”하며 기도하는 기복적 태도는 다분히 이기적이요 무속신앙의
잘못된 영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비난받아 왔다. 특히 예배의 동기(動機)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은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것이어야 하는데, 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
강단의 설교에 있어서도 기복적 신앙이 일반화됨에 따라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강해 설교 보다는 돈
벌고 병낫고 축복받는다는 신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설교가 교인들로부터 더 환영을 받고, 또 설교자
는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기복 설교를 많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복”이란 장수(long life), 부귀(wealth), 평안(peace), 명예로운 죽음(death with hon
or)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전통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렇지
만 기독교가 말하는 복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자
녀로서 충성을 다하면서 하나님만 신뢰, 사랑, 친교의 경험 속에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복
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복된 생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원을 가지고 사
는 생활이9 요, 동시4에 인간의 요구들을 채워주시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생활이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
德 田 의 문 화 일 기.
서의 참된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이 하나님과 연합하고, 그 연합 속에서 치유와 온전함
을 얻어서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과 남을 위해 사는 사람과 신앙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개념에서 볼 때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요, 예배를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이며, 하나님
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여기 내포된 뜻을 생각해 보면 예배드리는 기독교인은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참 가족적 구성원이요, 그의 몸의 지체로서 연합된
삶을 살아 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제2절 무속적 신앙이 일어나는 이유
한국인 종교의식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무교적 심성인 바, 이것에 외래적인 충격과 대내적인 불안이
그 무속적 발로를 충동하고 있다. 왜 초현대적인 이 때에도 무속 신앙이 문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사
회학적 분석은 사회의 불안에 대한 자기 정체화의 이론으로 해석하고, 교회론적 분석은 무속적 종교
혼합으로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세계적인 신비적 종교 현상과 한국 사회의 불안, 교회 자
체의 문제, 외래적 신학의 충격을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세계적인 신비주의적 종교 현상
Kurt Kock는 현대의 증가일로에 있는 신비적 종교 현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①자연 과학 분야에서는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성이야 말로 모든 것을 재는 척도라고 본다. ②
인간의 영혼 속에 찾아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갈증으로 인하여 갖가지 형태의 신비주의, 신령주의 및
음악적 황홀경에 빠져드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③비이성적 요소들을 강조한 나머지 마술과 영
매성 시술을 생장시켜가고 있다. ④우리 시대의 영적 필요성을 고조시킨 결과 소위 카리스카 운동과
극단적 종파의 출현을 고무시켰다. ⑤금세기의 대혼란상을 세계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며 이후죽순처
럼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를 배반한 자, 신령술 및 사탄 따위를 숭배하는 영역에서 가장 현저하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여파는 기독교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 비이성적, 감각적, 경험적 신앙 상태
를 고무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2. 한국 사회의 불안정
역사적으로 무속 신앙은 나라가 불안하고 사회 기강이 어지러울 때 성행했다. 무속 신앙의 목적인 신
령의 힘을 빌어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마을의 풍요스런 안정을 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가 불안
하고 기강이 해이해질수록 심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연산군 때는 성숙청을 세우고 국무를
배치하여 국가의 길흉을 다루게 하였고, 도무녀에게 조무를 두게하여 잡역을 면케 하였으며, 명성왕
후 민비는 이 무녀를 진영군으로 봉하여 국정에까지 관여케 하였던 것이다. 나라가 위태롭고 사회가
불안하게 될 수록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무당에게서 위로와 평정을 기대하기 때문에 취해진 조처였던
것으로 사려된다.
60년대 이후 한국의 사회적 격동과 변화는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며 무교적 민중들로 하여
금 안정 지향의 욕구를 종교적 양식으로 표출하도록 자극하였던 것이다.
3. 교회 내9 의 구조4적인 문제
德 田 의 문 화 일 기.
오늘날 성령 운동은 한국 교회를 포함하여 ‘신령없는 하나님’, 정체적이고, 폐쇄적이며, 율법적인 교
회 신앙에 대한 일종의 반항 운동이라 하겠다. 격식화하고, 형식화, 관료화 되어가는 폐쇄적인 교회
기구와 구조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몸부림이 ‘성령 운동’으로 파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날 ‘성령 운동’은 반체제, 반교회, 반권위, 반형식주의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교회의 교리적 기반이 약화되었다는 데서 이러한 현상이 반동적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도 있다.
복음 진리가 삶의 상황 속에서 설득력 있게 선포되지 못하고, 교회가 생명력 있는 복음에 대한 이해라
는 구조를 갖추지 못할 때, 그 빈 공간에 ‘성령 운동’의 형식으로 욕구 충족적인 무속적 신앙이 표출되
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구원 진리에 대한 몰이해가 교회의 저변을 형성하게 된 셈이다. 때문에 한
국 교회 대다수 평신도의 수준은 복음 진리를 피상적이고, 주관적이며, 체험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4. 오순절주의의 영향
오순절주의는 잠재적인 무속성을 자극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오순절주의는 성령 세례를 중생(Born A
gain)과 별개의 것으로 강조하며, 특히 방언을 고집하는 근본주의(根本主義)의 한 종파라고 할 수 있
다.
오순절주의자들은 고린도전서 12장 8절에서 10절 까지에 기록된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恩賜)가 현
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존재함을 믿으며, 특히 신유의 은사가 존재함을 믿는다. 이러한 오순절주의는
20세기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유주의와 세속주의, 물질주의 등에 오염되어 너무나 믿음의 열기가
없는 형식적이고 이지적이며 기업적인 단체로 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교회에 대한 반작용 내
지는 강한 반동으로 주효하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실재와 그 활동의 증거로서의 방언이라든지 신유의 겸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초자연적
인 감격과 활홀감에 익숙하게 했다. 이러한 태도는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이적주의, 주관적인 경험주
의, 통속적인 반이성주의를 부추겼으며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좋아하는 기복 신앙과 성령보
다는 성령의 은사들을 더 열망하는 은사주의를 낳게 하였다. 따라서 현대 교회의 성령 운동과 특히 오
순절주의로 이어지는 현대 오순절주의가 현금 기독교계와 일반 사회에서 까지 누리고 있는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을 하나님의 구원 계시의 서책인 성경보다 높이 평가하는 경험주의적
신앙 때문에 성경적 기독교의 바른 신앙과 신학을 변질시키고 있다.
이러한 물결이 경직된 한국 교회의 무속적 종교 의식을 바탕하고 있는 대다수 평신도들의 갈증을 해
소하는 청량제 구실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오순절 주의는 한국의 무속적 종교성을 만족시키면
서 동시에 기독교적 합법성을 제공해 줌으로써 한국에서 폭발적인 숫적 증가를 이룰 수 있었다고 분
석한다. 오순절 주의는 한국 교회의 무속적 신앙을 나름대로 수용하면서 그들에게 종교적 만족과 함
께 완전 구원 즉 영적 구원, 물질적 구원, 육체적 구원을 보장하는 기독교의 제3세력으로 등장하고 있
다.
5. 적극적 사고 방식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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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 田 의 문 화 일 기.
한국 교회가 최근에 대중적 부흥과 급성장에 깊은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순복
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에 의해 채용되고 보급된 슐러주의라고 하겠다.
로버트 슐러(R. Schuller)는 노르만 빈센트. 필(N.V.Peale)의 「적극적 사고 방식」을 이용하여 대중
적 부흥 운동과 교회 성장 원리를 개발시켰는데,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 절대 의존 주의에 근거되기
보다는 적극적 또는 가능적 사고, 환상 또는 상상 그리고 심리적 또는 상업적 기술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하면 된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에서 위대한 힘이 생긴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을 ‘하
면 된다’는 의욕과 희망의 종교로 바꾸고, 설교자는 항상 사랑, 기쁨, 화평, 친절, 소망 등 사람의 긍정
적인 정서를 자극케하는 낙관주의적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적극적 사고는 한국 교회 뿐 아니라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안, 불만,
불안정에 처해 있었던 사람들에게 자기 정체의식을 제공해 주었다. 그의 이와 같은 영향은 한국의 강
단을 심리적 불안 극복, 안정 유지와 자기 성취의 축복 신학이 판치게 하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
다. 슐러주의에서 조용기 목사의 「용기주의」로 이어지는 적극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심리적, 비신학
적, 상업적 목회 방법은 한국 교인들의 물질지향적인 무속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회 성장 모델로 받아들여졌다. 적극적 사로의 자기 성취 강조는 지나치게 외형적 성공주의 사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인의 심성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무속적인 안정 욕구와 기복 욕구를 부추겼으며 그것과
쉽게 결합하는 것이 가능했다. 따라서 한국인의 무속적 기복심성과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적극적 사
고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조용기 목사의 「용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슐러 목사의 적극적 사
고가 한국인의 무속적 심성에 조용기 목사의 육신적,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설교와 함께 전파되었
을 때 자기 정체와 자기 성취에 대한 확신 속에서 철저한 자기 내면 성찰이나 고급한 종교윤리 의식은
생략되고, 안정과 성취, 축복된 상태만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용기주의」에 와서는 정신적 가치,
영적 가치는 곧 물질적 가치로 환산되어 현실 속에서 나타내는 모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곧 3박자 축복이 그것이다. 결국 3박자 축복 이론은 민간의 압력에 복음을 재해석하여 결합시킨 한국
형 신앙 모델이라고 보여진다. 곧 3박자 축복 신학은 기독교 내 무속적 종교 습합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6. 교회 성장 신학의 영향
교회 성장 신학은 맥가브란(McGavran) 교수를 중심으로 훌러(Fuller) 신학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교
회 성장에 대한 이론적 모델이다. 긍정적인 면에서 교회 성장 신학은 교회의 잠재 능력을 총동원할 수
있게 하고 전도에 열심이게 했지만, 역으로 한국 교회에 적극적 사고 방식과 물량주의라는 부정적 영
향도 미쳤다. 교회 성장 학파는 확장 성장, 연장 성장, 내적 성장, 가교 성장(선교)을 말하지만 많은 사
람들이 비평한 것 같이 숫적 성장에 치중함으로 성장의 개념에서 균형을 상실하였다.
교회 성장학은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의 결과라고 한다. 맥가브란은 「남은 자의 신학」에 대해 소수로
만족하려는 경향을 띤 것이라고 비판하는데, 이 점에서는 로버트 슐러도 같은 입장이다. 이것은 잘못
된 Minority Complex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 성장학은 대교회주의를 찬양하며 숫적 성장에
지나친 낙관적 태도를 취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피상적인 평가이며, 외형적인 성장과 대
교회에 대한 지나친 찬양, 성공주의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9 4
德 田 의 문 화 일 기.
교회 성장 운동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평도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 벹 카일 교수는 교회 성장학이
수에 치중치는 미국적 실용주의(Pragmatism)이며, 동질 단위 원리는 보편적 교회 개념과 상치(相
馳)되고, 인간을 영적 차원과 사회 정치적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런던 대학의 그리피스 교수도 은혜 중심보다 방법 중심이며 성공 위주이며, 신학이 결여되었고, 프로
그램 중심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교회 성장학의 성장 모델은 한국 교회의 물질적 안정 욕구와 외형적 규모주의에 이론적 배경
을 주게 되었으나 반면 신앙의 질적 요소를 경시하게 하였으며, 교회를 외면적 규모와 통계적 수치로
폐단을 낳았다. 이 점은 한국 교회의 무속적 기복성이 추구하는 물질적 종교 심성과 잘 조화될 수 있
는 것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면을 결과적으로 야기시킨 셈이다.
제3절 초대기독교인들의 기독교 수용 형태
한국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심성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어떠한 형태로
수용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특히 개신교가 이 땅에 수용된 형태는 크게 정치적 형
태와 종교적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개신교의 선교는 천주교가 도입된 지 1세기 후인 1884년에 시작되었다. 이 때는 천주교 선교 초기와
는 사회 정치적 정황이 완전히 달랐었다. 이미 한국은 서방국가에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정부에 아직도 보수세력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으나 대체로 이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개화를 진행
시키느냐가 문제였다. “개화”를 한말의 숙명적 과제로 생각했던 급진적 진보파들은 기독교 복음자체
에 대한 관심보다는 서구 문명자체의 수용을 위해 동분서주한 지성인 그룹이었다.
갑신정변(1884년)을 주도했던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그리고 서재필 등이 중심으로 된 개화파는 일
본의 경우를 범례로 삼아 근대국가를 정초해 보려는 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으로써 서구문명과 함께 들
어온 기독교 종교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를 그 종교적 측면에
서 관심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숨겨진 개혁 및 개화에로의 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개화파들은 점
차 전통문화 및 종교에 대한 폐기, 곧 유교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중국이 어디 있느냐, 저리 돌리면 미국이 중국이 되며, 이리 돌리면 조선이 중국이 되어 어느
나라든지 中으로 돌리면 중국이 되나니 어디 定한 중국이 있으랴” 이러한 본문 속에서 우리는 유교
종주국가인 중국과 그들의 중화적 세계관 자체의 부정은 물론 전통사회를 결속시켜왔던 가치체계로
써의 유교의 무용론, 즉 유교적 문화 전반에 대한 부정을 읽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
개화파는 퇴조하고 있는 정통유학을 대신하여 개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정신적 가치, 곧 실용적 대안
종교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화파들의 이러한 기독교 수용 입장을 혹자는 민족주의자와
기독교 휴머니즘간의 갈등없는 제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전통종교 및 문화의 부정을
전제로하여 기독교 종교 및 서구문명과 조우하려고 했던 개화파의 입장은 개화에서 독립으로 그 선교
적 주체가 바뀌어진 상황 하에서 신민회를 중심으로 한 탈교회적 민족운동으로 전개되었고 그리고 역
시 민족 및 계급운동이 심각하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종교, 반전통을 기저로 하고 진보적 정치신
학 및 민중신학의 중심 에토스로써 이어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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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형태로는 유교적 형태와 무교적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中體西用에 입각하여 補儒的
입장을 취한 東道西器의 수용형태를 들 수 있다. 동도서기란 형이상학적으로는 유교의 도를 고수하
고 형이하로써는 서구적 문명을 수용하고자 하는 입장인 바,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우리
는 김윤식, 김홍집 등을 들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은 개화의 필연성 앞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서구문
명 전반을 수용하긴 하되, 어디가지나 자신의 유교적 주체성, 곧 東道의 입장에서만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도서기의 태도는 결국 그의 새로운 면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에 있어서
는 수구파들과 같은 폐쇄주의(exclusivism)를 저면에 깔고 있는 것으로써 이것이 대외적으로 작용할
때는 언제나 민족 우월주의 및 항거주의에로 변질되어 질 우려가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동도서기와는 새로운 입장이 나타나지게 되었음을 주목하게 된다. 특별히 유길
준은 갑신전변의 주역 김옥균 등이 서구의 器를 존중하는 나머지 유교적 인륜을 소홀히 여기고 서양
의 도를 가지고 공맹의 道와 바꾸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급진 개화파들과 같
은 실용적 종교관의 반열에 서 있지 않았고 더욱 西器의 정신적 근거가 되는 기독교 종교의 수용을
말함으로써 유교적 진리와 기독교를 상호 모순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東道西法의 입장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배타성과 폐쇄주의의 극복은 물론
오히려 민족적 주체성(정체성)하에서 기독교 진리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적 개방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신교를 받아들인 또 하나의 형태는 퇴화된 불교나 샤머니즘적 배경에서 수입된 것이다. 종교적인
면에서 볼 때에 유교적인 수용형태보다는 이 세력이 보다 더 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國內外的으로
과격한 변환기에 처해 있었던 당시의 한국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새로 도입된 개신교가 그런 개인영혼
의 안위와 타계적 신앙형태로 받아들여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동안 정권의
부패와 이로 인한 압박과 착취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일반대중들은 자연히 염세적이거나 도피적인 신앙
형태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희망없는 이 세상에서보다는 다른 세상이나 새로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구원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개인구원에 열중하게 되었다.
종교적인 문제를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무속신앙은 그 속에 공동체 개념이 희박하고
대인관계를 규정하는 윤리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 즉 개인주의적, 비공동체적, 무윤리적인 것이 그
특색이다. 이런 무속적인 요소와 퇴화된 불교가 혼합되어 대중 속에 일반적 종교적 심성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런 바탕에서 개신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형태의 개신교 수용형태는 유교적 전통에서
개신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경우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 후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면서부터 개신교의 이런 경향성은 점점 심해져서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개신
교를 지배하게 된다. 길선주, 이용도 등을 중심한 심령부흥회가 화산처럼 확산되어 초기의 사회참여
의 신학은 그 모습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초기에 지배적이었던 사회참여의 신앙형태는 선교사들의
신앙형태에 구애됨이 없이 자율적으로 택한 결과였고 이제 사회‧정치적 정황이 돌변하자 이번에는
자율적인 입장에서 타계주의적인 기독교를 택한 것이다. 도피적이고 타계적인 신앙형태는 일제의 핍
박이 증가함에 따라 더욱더 견고해 가기만 하였다. 사회‧정치적 형태로 개신교를 받아들였던 사람
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지하로 들어가거나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권력 밑에 굴복하기도 하였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일제말기에 이르러 신사참배를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하자 그래도 끝까지 이에 굴
복하지 않고 순교적 태도로 임한 것은 유교적 배경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타계적
형태의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신앙적 지조가 강했던 탓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신앙적 형태에서 말한다면 그들에게는 타계적으로나마 이 사상을 초월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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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신앙적 형태가 오랜 세월을 두고 핍박과 고난 속에서 살아야 했던 기독교
인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일반대중 속에는 강력하게 작용해 왔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 개인들의 종교적 요청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사
회‧정치적 불안과 혼란이 이런 형태의 기독교를 발전하게 하는 사회적 요인이 되었고 오늘날에 있
어서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런 개신교의 두 가지 신앙 형태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반복되어 왔고 특히 사회적, 정치적
여건에 따라 어느 한편이 지배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에는 사회‧정치적 참여를 앞세우는 좌파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는 이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개인
의 영혼구원과 기복사상에 젖은 일반대중들이 있고 그 사이에 철저한 보수신앙을 전통주의에서 고집
하는 좌파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려면 기독교 또는 기독교 문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에 한국 문화와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이만열 교수는 니버, 그리고 웨버의 견해에 유의하면서 나름대로의 한국문화와 기독교의 접촉에
서 일어난 반응을 정리하였다. 그는 한국문화와 기독교의 접촉에서 일어난 반응을 적응형, 충돌형 및
몰입형(沒入)형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 적응형의 경우이다. 이 경우는,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물질 문화와 한국 문화와의 관계에서 두
드러지게 나타났다. 사실 기독교는 초기에 서구 문화의 한 실체로서 한국에 도입되었다. 그 점은 개화
파 인사들이 한국에 부국강병의 한 방편으로 기독교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던 점에서나, 초기 선교
사의 한국 입국에서 다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감리교의 맥클레이(R. S. Maclay)가 1884년 6월 한
국을 방문, 미 북감리교가 한국에서 의료‧교육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갔고, 이에 따라 그
이듬해 아펜젤러(교육)와 스크랜튼(의료)이 1884년 9월 미국 공사관의 의사 자격으로 입국하였고,
그 이듬해 복음 선교사 언더우드가 새로 개설될 서양식 병원의 교사 자격으로 입국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때 도입된 문화를 흔히 기독교 문화라 하지만, 오히려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서구 문화라 하는 것
이 더 적절할 성싶다. 서구 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온 기독교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상당한 시간이 경
과된 후였다. 그러므로 초기의 선교 사업이란 ‘선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서구 문화 도입의 과정 그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때 서양의 의술과 교육을 비롯하여 출판 사업과 국문 보급,
서양 음악과 문명 기기, 각종 운동의 도입이 선교 사업으로 혹은 기독교 기관의 활동에 의해 이뤄졌
다. 이것들을 주로 물질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아무런 마찰 없이 한국에 이식‧정착될 수 있었다. 실
용성과 효용성을 특징으로 하는 물질‧기술 문화는 이데올로기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
국에 대한 기독교의 문화적 공헌은 주로 이 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는 충돌형이다. 이것은 행동 문화의 경우에 많이 보인다. 한국의 습관‧제도와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들은 끽연‧음주 및 제사 문제 등으로 대표된다. 특히 제사 문제는 조선 후기부터 교조성(敎條
性)이 강한 한국 유교의 전례(典禮) 사상과 기독교의 비타협적인 배타성이 강하게 부딪친 부분이다.
그러나 처음에 강하게 부딪쳤다 하더라도 두 사상이 갖는 효(孝)의 최대공약수를 발견하면서부터는
서로 상보(相補)적으로 기능했던 점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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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몰입형이다. 기독교 자체가 정신 문화를 의미하고 있지만, 재래의 한국 문화와의 접촉에서 기
독교적 인간관과 가치관 등은 그 독자성을 상실하고 도리어 점차 한국 문화에 몰입되어 갔던 것으로
느껴진다. 언뜻 보면 이 부문에서 기독교가 한국 문화를 변혁한 것으로 파악하기 쉽지만, 자세히 음미
해 보면 그 반대라 생각된다. 이 점은 현재 한국 기독교의 인간관과 가치관 등에서는 성서 본위의 기
독교 본래의 성격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히 이런 점들 때문에
한국에서 기독교 문화의 성장이 크게 문제된다고 생각된다. 기독교 문화를 건설함에 있어서 가장 중
요한 핵심이 이 부분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정신 문화 부문에 속하는 기독교적 인간관과 가치관 등
이 제대로 살아 있어서 활성화되어야 기독교적 문화의 창건과 가치 문화의 기독교화가 가능할 터인데
불행히도 한국 기독교의 전반적인 신앙의 형태에서 우리는 그 점을 볼 수 없다.
제4절 무속과 기독교의 차이
무속과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를 살피기 위해서 우선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신앙의 바탕이
되는 신도들, 둘째, 이를 지도하는 사제자, 셋째, 신앙과 의례이다.
첫째, 신도는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민중 또는 대중을 주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도 일치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경중심으로 문자를 아는 사람, 즉 지식대중인 데 반하여 무속은 구전에 의한
무식대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천주교가 처음에 실학자에 의해 학문적인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는 것은 한국기독교의 지식대중의 신앙이라는 특징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속은 집이나
마을이라는 생활공동체를 중심으로 토착화되어 있으나 기독교는 개인의 집합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것은 생활공동체를 직접 대상으로 선교하기 어려웠던 토착화의 과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교
회를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적 신앙단위를 형성해 가는 것은 기독교도 무속과 다를 바가 없다.
둘째, 사제자에게 기독교와 무속의 차이를 뚜렷이 한다. 그것은 종교사제자와 신과의 관계에서 설명
될 수 있다. 무속의 사제자라 할 수 있는 무당(샤먼)은 신에 의해 피택(무병을 앓는다)된 자로서 무속
종교를 통해 초인적인 능력으로 인간의 생사화복을 관여하는 존재이다. 기독교의 종교사제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기독교를 통해 인간적 능력으로 인간의 생사화복에 관여하는 존재이다. 모두 인간의
생사화복에 관한 것, 즉 종교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같은 종교인이면서 무속의 ‘신의 의지’, 기독교의
‘인간의 의지’, 무속의 ‘초인간적’, 기독교의 ‘인간적’인 대조가 보인다. 이것은 무속에서는 신과의 관
계가 보다 밀접되어 있다는 것과 직접적이라는 것이며, 기독교는 신과 사제자의 관계가 간접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무속사회에서는 소위 세습무(世襲巫)라 할 수 있는 기독교 사제자의 기능과 유사한 것
도 있어서 기독교와 완전히 다른 풍토는 아니다. 또 기독교 사제자라고 하여도 모두 신과의 간접적인
거리를 둔 관계만이 아니고 때로는(흔히) 사제자가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선언하거나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신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이다.
신이 내리는 것(무속)이나 성령이 재림, 임재하는 것(기독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신이 내리는 강신
(降神)은 인간(무당)의 의지를 최소화하거나 변질시킨다고 믿는 것이고, 신의 임재는 인간(사제자)의
의지와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속의 강신과는 다르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제 가운데는 강신에 가
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시되는 일이 있다. 무속의 사제자적 존재나 기독교의 강신적 존
재에 있어서 두 종교는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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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무속의 의례인 ‘굿’과 기독교의식인 ‘예배’가 서로 대응한다. 어느 것이나 의례의 형식을 갖추
고 있는 점은 공통된다. 이러한 형식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형식 자체가 의미
를 갖는다.
굿은 보통 열두거리(석)라는 절차로 이루어졌다. 물론 열둘(12)이란 숫자가 반드시 지켜지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대체적인 규모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것은 판소리 ‘열두마당’이니 하는 것
처럼 한국적인 의례형식의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열둘이 1년을 의미하는 달력에서 영향받은 것인지
는 확실히 알 수는 없어도 굿의 규모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에 열둘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굿은 여러 신을 받들어 모시는 의례이다. 그래서 이 많은 신을 모시는 사
람이 무당을 만신(萬神)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 많은 신이 대체로 열두거리에 분류되어 모셔진다는
의미로서 열두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각각의 한 거리는 열둘의 1/12을 형성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만
신의 분류의 하위단위일 뿐 하나의 인격신만을 모시는 거리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 거리는 하나의
신을 모시기 위한 거리가 아니고 많은 신을 세분한 복합적인 신을 모시는 복수의 신을 위하는 거리라
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산신거리는 산신과 복합된 여러 신을 모시는 거리이다. 남부무속에서는 비교적 한 거리
의 독립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중부이북의 무속과 다를 바 없다. ‘거리’는 신을 청배하고
가무, 신탁 그리고 신을 보내는 과정으로 되어 있어서 하나의 의례로서 독립성을 가진다. 따라서 무속
의례를 기독교의 예배에 비긴다면 예배는 굿의 ‘거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배’와 ‘거리’를 대
응시킬 때 굿의 일부와 예배의 전체를 대응시키는 것이 된다. 물론 최근에는 굿의 절차가 간략하게 되
고 시간이 단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굿의 전체라고 하더라도 예배에 비길 만큼 축소된 형태로서
도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굿의 전체의 축소이지 분화된 일부는 결코 아니다. 또 기독교의 부흥회와 같
이 예배의 형식이나 기도회의 연장이 마치 굿처럼 길어지고 커지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예배의 연장 또는 확대이지 굿처럼 복합적인 확대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굿의 일부와 예배의
전체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굿의 일부인 거리의 하나로서 예배를 넣어도 형식상 아무런 이상
이 없다. 결국 무속에서 예배를 볼 때 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이것은 무속구조와 유
일신적 기독교의 갈등구조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무속의 포용성과 기독교의 배타성의 만남이라 하
겠다. 흔히 말하기를 토착종교가 외래종교를 배타한다고 믿고 있으나 기독교와의 만남은 이런 점에서
상식에 어긋난다. 기독교의 급속한 토착화는 기독교 자신의 선교정책 때문이라 하기보다는 무속적‧
민간신앙적 구조에서 연유한다고 보는 것이다.
굿(거리)과 예배는 형식에서도 몇 가지 대응된다. 예배는 크게 기도, 찬송,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기
도와 설교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산문이고 찬송은 음악적으로 구성된 운문이다. 이에 비해
굿에서 행해지는 것은 청배, 타령, 공수, 넋두리, 축원, 덕담 등 무가라 불리는 것은 운문이나 준운문
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긴 서사무가를 창할 때도 최소한 장고로 반주하는 형식으로 설화된다. 심지
어는 신과 신자의 대화라 할 수 있는 ‘공수’마저도 일정한 운문적 리듬을 가진 말로 행해진다. 기원적
으로 운문이 먼저냐 산문이 먼저냐 하는 논란이 있으나 무속의 의례는 운문적 특성이 예배에 비해 훨
씬 높다고 하겠다. 천주교나 성공회의 미사에서는 리드미컬한 기도문이 낭독되지만 무속에 비하면 그
래도 훨씬 운문적 요소가 약하다. 굿의 리듬적 요소와 기독교의 해설적 성격이 대조된다. 굿의 리듬적
요소를 가장 두드러지게 표출하는 것이 춤이다. 춤은 노래와 복합되어 행해진다. 가무(歌舞)가 고대
제천의식에서 널리 행해졌던 것은 무속의 구조와 일치한다. 에배형식에 굿의 형식을 대응시켜 대비하
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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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와 축원
기도와 축원은 모두 인간의 마음으로 신에게 간구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도나 무속의 축원처럼 일
정한 종교형태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민간에는 이러한 원초적 양식이 있다. 흔히 일반 주부가 신에게
염원하고자 냉수와 떡 따위의 제물을 간단하게 차려놓고 손을 비비면서 비는 일이 있다. 손을 비비기
때문에, ‘손비빔’ 또는 ‘손빔’이라 하고, 그냥 ‘빌다’, ‘빌기’라 하기도 한다. 손을 비비는 것은 ‘빌다’를
상징하는 행위이다. ‘빌기’는 잘못이나 용서를 비는 소극적 의미를 가진 말로서 금기를 어겼거나 잘못
(종교‧신앙적)을 저질렀을 때 신에게 비는 뜻이다. 그런데 ‘빌기’가 반드시 소극적인 것만을 의미하
는 것은 아니다.
가령 신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병이 났을 경우 병을 치료하고자 신에게 용서를 빌어 보는 것뿐만 아니
라 나아가서 보다 적극적으로 신에게 인간의 소원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비는 행위는 소극
적‧적극적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다. 무속에서는
무당이 신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로 신자의 기도를 받는 입장에 선다. 따라서 신자가 무당의 신탁
인 공수를 받거나 대할 때 손을 비비면서 비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신자가 무녀를 향해 비는 형식으
로, 비는 사람에 대해 무녀가 응답자가 된다.
무녀 자신이 비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완전히 신이 내린 상태가 아니거나 기도자의 입장에
서 대행하듯 하는 때에 한할 뿐이다. 그것이 구두로 신에게 비는 ‘축원’의 형태이다. 즉 비는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무당이 신에게 비는 것이 축원이다. 손으로 비는 행위를 하지 않
고 구두로 비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기도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기도와 축원은 행해지는
상황이 다르다. 동해안 지방의 무속의 축원을 보면, 먼저 신을 부르는 무가의 춤, 신의 행위 및 구연 -
축원 - 수부의 순서로 진행된다. 적어도 무녀의 축원은 강신과 굿거리의 결말이 것이다. 기독교의 기
도도 예배 중이나 의례 중에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반드시 예배나 의례 중이란 한정적인 것은 아
니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기도생활을 권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김동리의 「무녀도」에서 모화가 욱이
의 식사 전 기도를 보고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적인 상태에서 중얼거리는 것은 귀신들
린 사람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기도’의 일상성과 ‘축원’의 비일상성이 대립되지만 기본
적으로는 신에게 비는 형식(구연)이나 내용에서 공통된다고 하겠다.
2. 설교와 공수
설교는 종교적 교의(敎義)를 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교자의 입장이나 능력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거기서 오는 혼란을 막고자 성경을 중심으로 신학이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설교는 종교사
적‧종교사회학적 산물이며 설교자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당이 전하는 메시지는 공수라는
형태를 취하여 행해진다. 공수는 신의 말을 무당의 입을 빌려서 신 자신이 직접 설화하는 것이다. 공
수는 주로 중부이북 무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다른 지방에서는 그렇게 현재화되어 있지 않거나 간
접적인 요소가 강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신이 일인칭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설교가 종교적
의미 등을 설명하는 것이 많지만 공수는 신의 직접적인 선언이나 대화를 통해서 관계를 진행할 뿐 어
떤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수는 神意를 빙자하여 멋대로 행해지는 자의적인 것이 되기
쉽다. 그9러나 완전4히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강신된 신의 인격을 알리는 말과 신의 위엄을 알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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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복과 예언적인 말, 도와주겠다는 약속의 말 등의 일정한 유형이 있다. 따라서 이런 유형을 무시하고
말하면 신자로부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설교는 체계적인 말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지적‧정적 전달방법이지만,
공수는 대화의 성격을 강하게 유지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직접적이고 감정적이다. ‘빌기’와 ‘축원’의
응답으로서 공수가 상호 관련된다. 즉, “바랍니다”, “○○을 해주십시오”에 대해 공수는 “해주마”,
“도와주겠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기도도 전혀 응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응답이라 해도 간접적인 결과로서 나타날 뿐 자신이 의식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흔하
다. 그러나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에서는 직접 신의 의지를 알아보는 일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신대를 내려서 동전을 던져 보거나 쌀을 소반에 던져 보아서 신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무당이 말로 신의 의사를 전하는 것이 공수이다. 그러므로 공수는 신의 응답의 상
징이라 할 수 있다. 상량문(上梁文) 가운데의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
五福)의 문구나 축문 등에 ‘응감’(應感), 그리고 빌기와 축원 등에서 신의 응답을 원하는 것에 대한 응
답의 상징이 무속의 공수에 응축되어 상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직접적 응답
이 아니거나 그것이 아주 약하다고 느껴진다. 근본적으로 공수느 일방적이고 설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에 대한 감정적 호소력은 무속이 강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식에 호소하여 ‘깨달음’을
자극하는 것은 설교가 강점을 가진다고 하겠다.
3. 찬송과 가무
교회 예배의식애서 찬송은 3요소 중에 하나라 할 만큼 중요하다. 찬송은 가사와 곡이 있는 출악이다.
그것은 작은 예배나 큰 예배에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부를 수 있다. 교회에서는 찬양대를 조직하
여 운영하고 있다. 찬송은 종교출악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고전출악 발생의 기원이 되는 출악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출악도 종교적 출악에서 기원하였다는 데는 異論이 없다.
판소리나 노래가락 등이 무속음악에서 나온 것은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적 사
실이 기독교와 무속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 의미가 같은 것은 아니다. 무속에서의 노래는 사설이나 가
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인 것이다. 이들 무가(巫歌)를 문자화하였을 때는 종교적 감정
전달은 무효화된다. 비논리적이고 즉흥적인 가사이지만 정해진 출악에 얹어서 전달될 때 무가로서 의
미를 가진다. 찬송가에도 가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가처럼 가사가 중시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무가연구라하여 가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국문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러한 가사적
의미가 실제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사만으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곡조와 리
듬을 가질 때 종교적 효과를 가진다. 그래도 찬송가만큼 출악적 효과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교회출악
은 다양하지만 무속출악은 일률적으로 단조롭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무가는 기원, 축원, 공수,
수부 등 정해진 선율에 따라서 행해진다. 즉, 찬송가는 출악을 강조하는 데 반하여 무가는 가사를 중
시한다.
무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노래로만 불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춤을 조화함으로써 비로소 무속의 현저
한 특징을 다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춤은 노래와 일치를 이룬
다. 그래서 가무(歌舞)를 하나의 복합체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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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속은 한국인의 춤의 잠재력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무속의 춤은 인간(무당)이 신이 되는 인격
전환의 과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무속의 춤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춤에서 보이는 것처
럼 무당이 신격(神格)으로 전환하는 기능이 있다.
굿은 대표적인 무속의례인데, 주로 노래와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강신무(降神舞)에는 소위
신격전환이라는 트란스(trance), 또는 엑스타시(ecstasy)가 있다. 춤으로 흥분상태를 일으키고 어는
순간에 신으로 전환하게 된다.
여기서의 춤은 신에의 접근의 상징이다. 그저 일상적으로 뛰는 행동과는 달리 무악에 맞추어 노래와
춤으로써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신의 경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춤의 속도는 빨라진다. 그
래서 정신이 말똥말똥한 정상적인 상황에서 멀어지고 자기 정신을 잃고 신에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
다. 그러므로 춤은 신에 접근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속은 춤의 종교성을 가장 깊게 간
직하면서 기본적인 요건으로 삼고 있다. 예배의식에서 춤이 배제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굿에서는 춤이
기본적 요건이 되어 있다.
제5절 무속현상에 대한 목회적 대응
무속 신앙이 물들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늘의 기독교는 한국의 재래 종교에 잠식당한 채
병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와 성도들의 의식 속에 스며든 무속적인 현상을 극복하기 위
해 우리는 무슨 노력을 해야 하겠는가?
첫째, 무엇보다도 교회 지도자들의 올바른 교회관 확립과 지도력 회복이 필요하다. 결국 기독교 신앙
의 변질은 성도들보다는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을 잃지 말아야 하며,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명성과 인기를
추구하려는 세속적인 욕망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한 이기적인 교회관을
초월하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우주적인 교회관을 가지고 사역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속 현상
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지도력이 성서적이어야만 한다. 흔히들 카리스마적 권위를 사모하며
위압적이고 공포를 주는 지도력을 갖기 원하나, 현대는 그러한 권위가 통하지 세대다. 목회자들이 사
랑의 권위, 섬김과 나눔의 카리스마를 가지고서 주님처럼 희생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는 영웅형 목사나 거물형 목사 또는 기업가형 목사가 아닌, 무명의
한 영혼을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목회자일 것이다. 또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한국 최고, 동양 제일, 세계 최대의 교회가 아니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일 것이다. “목회자가 가는 대로 교회가 가고 신학이 가는 대로 교역자가 간다.”고
한다. 언제나 문제점 많은 교회를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나, 사실은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교역자 자신
이 문제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둘째, 복음을 바로 가르치고 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성서를 통해 계시하는 복이 무엇인지를 밝히 드
러내야 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있음을 경고했다(히5:12). 교회 안의 영적 무지에서 오는 왜곡된 신앙, 그것은 교회 밖에서 오
는 박해의 세력보다도 더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다. 성서적인 ‘복’은 현세적인 만사 형통의 복이나 물
량적인 복이 아님을 알아야 하며, 그렇다고 ‘죽어 천당’식의 타계 신앙도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
당 종교의9 복은 쾌4락주의, 요행주의, 물질주의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德 田 의 문 화 일 기.
이루어지는 것과 공동체와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 또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임마누엘로 인
한 평안 등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값싼 은혜, 값싼 축복만을 추구하는 교인이 나오지 않도록 성서 연
구에 대한 진지한 열풍이 불어야 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여 영적인 복, 구속사적인 복을
받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셋째, 생활 신앙인을 많이 배출하여 삶의 현장애서 재래 종교에 물든 문화를 극복하고 세상에서 존경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날마다
구원받는 수가 더해 가는 교회였다(행2:47). 그런데 한국 교회는 ‘맹목적인 믿음’을 너무나 강조한 결
과로 윤리성과 도덕성이 함양되지 못했고 삶의 적용이 무뎌졌다. 또한 무속의 영향으로 개인주의 신
앙과 물량주의 신앙, 그리고 배금주의 신앙과 비윤리적인 신앙관이 형성되어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인수가 늘어나고 교회는 많아졌어도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지
못하여, 사회가 점점 악해져가고 퇴폐와 무질서로 물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생활 신앙인의 육성을 통
해 무속의 특성인 비윤리성을 극복하고, 역사 참여의 종교로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넷째, 한국적인 기도교 문화의 창달을 위해 힘쓰는 것이 무속 신앙을 극복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기
독교 문화 형성이 없는 민족 복음화는 외형적인 전도에 불과할 뿐, 민족의 심층에 들어가 민족혼을 변
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지난 110년의 역사를 통해 교인 수 늘리고, 교회 크게 짓고,
선교의 지평을 세계로 넓혀 가는 일을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기독교 문화 창조를 위한 노
력은 매우 등한히 했다. 그 결과 교회는 다니지만 생각은 불교적으로 하고, 살기는 유교적으로 살며,
믿기는 무속적으로 신앙하는 신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리처드 니버(H.Richard Niebuhr)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문화에 대한 다섯 가지 태도
를 논하였다. ①문화에 반대하는 그리스도, ②문화의 그리스도, ③문화 위의 그리스도, ④역설적인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 ⑤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 형성이 성공하려면 문화와의 타협이나 혼합이 아닌, 니버의 주장처럼 변혁주의
(transformationism)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다. 물론 기독교적인 문화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복
음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문화는 종교의 외적인 형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문화가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할지라도 그림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를
얼마나 기독교적으로 변혁시켜 나갈 수 있으며, 또 한국교회의 문화의 창달을 위해 얼마나 큰 관심과
열정을 갖게 될 것인지가 무속적인 신앙 형태를 극복하는 관건이라 확신한다.
~ 金靖植 님의 牧會學博士學位論文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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