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 - 개정판 | 이만열의 삶과 생각 1
이만열 (지은이)새물결플러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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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가 신앙과 민족과 역사에 대해 눈떠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주일학교에서 신앙의 눈을 뜨고 이후 민족과 역사에 대해 차례로 열려가는 과정의 이만열 교수를 본문에서 만날 수 있다. 신군부에 의해 해직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40여 년 동안 꾸준히 매일 밤 그날의 일기를 쓴다는 저자의 오랜 습관은 성실한 기록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실감케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젊은 시절의 그 세밀한 기억과 기록의 산물이다.
역사학자 이만열의 첫 산문집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의 개정판인 이 책은 1990년대 중반까지의 그의 '삶과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1장 "내가 자라고 공부해온 길"은 이번에 새로 썼다. 이 책의 출간 계기가 된 해직 이야기 2장 "쑥스러운 이야기"는 그대로 두었고, 이만열 교수의 생각의 일면을 보여주는 3-4장 "병을 만든 시대"와 "빈방의 불을 끄고" 부분은 그 무렵 KBS와 CBS에서 방송한 칼럼 몇 개를 추가했다.
평소 존경하는 분들에 대해 쓴 5장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학술논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박은식과 신채호는 제외하고 그 시기에 영향을 받은 몇 분을 더 추가했다. 이만열 교수의 책에는 그와 인생 여정을 같이한 동시대인들의 교우기가 증언 삼아 실리는데, 이번에는 복음주의권에서 30여 년 이상 뜻을 같이한 강경민 목사가 나섰다.
이 시대의 스승으로 존경받기에 충분한 학자 이만열의 인생 전반부를 자전적으로 다룬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는 신앙, 역사, 민족이다. 독자들은 이 세 가지 화두를 배경으로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신뢰, 수많은 인간관계에 대한 애정,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소망과 신념 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의 삶과 생각을 통해 한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의 기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1장. 내가 자라고 공부해온 길
소 먹이던 시절: 초등학교 시절
고향을 떠나다: 중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진출하다: 초기 대학 생활
2장. 쑥스러운 이야기
신군부의 등장, 그리고 해직
4년간의 외출
사람, 사람, 사람들
외부 지원으로 계속된 연구 생활
용기가 필요한 시대
합동신학교에서 공부하다
두 차례의 미국행
하나됨의 열매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해직 4년 1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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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병을 만든 시대
내가 겪은 1984년
4·19와 5공 비리, 훼절이 난무한 시대
민주화 과정,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
없앨 관행과 세워야 할 정의
악순환의 고리
이제 분노를 삭이고
잠잠할 때와 말할 때
‘핵 카드’에 대한 투명성 논란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병역 기피
4장. 빈방의 불을 끄고
땀 흘리지 않은 소득
천년제국 로마를 삼킨 퇴폐·향락 문화
지금 자본주의 얼굴은?
빈방의 전등을 끄는 마음
절제하는 삶
결혼 풍속도, 이래도 좋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민본정신
통일 베트남의 교훈과 지도자 호찌민
IMF 위기를 초래한 책임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
‘금모으기 운동’을 보면서
자본주의 정신의 산업화
5장. 내가 만난 사람들
역사의식과 살아 있는 사람
단군 문제를 다시 생각하다
깊은 사랑을 ‘엄격함’으로 표현한 아버지
등잔불 밑에서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
민족주의의 씨앗을 심어준 스승, 문성주
시골교회를 섬긴 학자풍의 유봉춘 목사
민족의 큰 스승, 백범 김구
미국 속의 한국인과 다민족 사회, 그리고 안창호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 선견자, 유일한
한 역사학도가 만난 함석헌 선생
분단의 아픔을 짊어지고 간 장기려 박사
한석희 선생 추도사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새 장을 마련해준 어른, 한영제 장로
고영근 목사님의 자료 간행에 부쳐
‘삶의 현장’을 직시토록 안내한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
교우기
접기
책속에서
그해 여름방학 동안 학교에서는 퇴비 증산을 위해 풀을 쌓아 썩혀 거름을 만드는 시합을 각 동리 대항으로 진행했다. 8월 초까지 우리 동네 학생들이 가장 큰 풀더미를 만들어 개학하면 우리가 단연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8월 초 어느 날 우리 동네 앞 큰 개울가에 미군이 부산스럽게 포대를 쌓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승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우리는 미군의 부산한 움직임에 호기심을 품었다. 멀리서 ‘쿠웅쿵’ 하는 대포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내게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의령의 자형 집으로 피난을 가라고 당부했다. 갑작스럽게 피난길에 오른 우리는 그날 군북-의령 간 도로에서 국군 패잔병들이 대오도 없이 하나둘 총을 거꾸로 메고 남인수의 <아 신라의 달밤>을 처량하게 부르면서 퇴각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시작된 피난 생활은 의령군, 진양군, 함안군 지역을 돌아다니며 9월 말까지 계속되었다.
-1장 “내가 자라고 공부해온 길”에서 접기
1980년 7월부터 1984년 8월까지 나는 교수직을 사임한 채 소위 ‘해직교수’로 있었다. ‘해직’ 당한 이유는 아직도 분명히 모른다. 당시 사직서를 강요했던 치안 본부의 한 수사관이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옆에서 날아온 영문 모를 돌멩이를 맞았다고 생각하세요.”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어떤 형편상 불특정한 몇 사람에게 사표를 강요하여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음을 우회적으로 암시한 말이다. 이런 암시를 근거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내 해직에 정도 이상의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전 해(1979년) 10월 26일 유신정권의 대명사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후 신군부가 정권을 가로채려는 공작을 노골화하고 있는 정황 속에서 해직되었다는 것이다.
-2장 “쑥쓰러운 이야기”에서 접기
6월 중순에 해직교수 복직 조치가 발표되었다. 1980년 7월에 해직된 이래 만 4년 만이었다. 늘 기도하던 문제였으나, 막상 부닥치고 나니 오히려 담담한 심경이었다. 옆에서 축하해주는 소리가 이상하게 들릴 정도였다. 많은 분이 해직교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느꼈고, 고마움과 함께 ‘해직과 고난은 우리만 당한 것이 아니구나. 우리의 고통에 동참해주신 분들이 많았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내 인생의 폭과 깊이,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던 때였음이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이 고난마저도 나에게 축복으로 주셨음을 깊이 알 수 있었다. 고난의 참 의미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기간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 한국교회사 관련 기본 자료를 섭렵하게 해주셨고, 이로 인해 앞으로의 학문 연구 방향에 새 지평을 열어주셨다. 84년 여름, 성서공회의 일로 미국에 다시 갔다. 그때는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 많은 분께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 이 역시 ‘해직’이 가져다준 보잘것없는 보상이라 생각한다.
-3장 “병을 만든 시대”에서 접기
절제를 거론하면서 간과하기 쉬운 점은, 절제를 언어·행동·물질과 관련시키기는 해도 시간과 정력의 절제와 관련시키지 않는다
는 점이다. 시간과 정력은 곧 인간의 생명이다. 생명은 시간과 힘으로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정력의 낭비는 곧 생명의 낭비라고 할 수 있기에 시간과 정력의 관리는 절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것을 선한 의지의 실현과 봉사와 희생, 자신과 사회의 성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가진 그 힘을 절제한다면 얼마나 추앙받을까. 절제는 자신의 야망과 힘을 다 써버리지 않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백(여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절제는 내가 세울 수 있는 공도 다른 사람의 몫으로 남겨놓을 줄 안다. 우리 세대가 응당 개발할 수 있는 산천도 후손들의 삶의 터로, 창의의 시험장으로 유보해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또한 현재를 절제할 줄 아는 미덕이다.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바로 그 산천이 공해와 환경파괴의 희생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 주범은 향락과 사치, 무절제와 낭비로 표현되는 과소비다. 공해와 환경파괴로부터 삶의 터와 후손들의 보금자리를 보호하는 길은 자원절약이라는 ‘절제’의 묘약밖에는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현재 결론이다.
-4장 “빈방의 불을 끄고”에서 접기
한국교회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가령 인권과 소외, 핵무기, 자본과 노동, 노사 관계, 결혼과 성차별, 동성애와 낙태, 전쟁과 폭력, 군부독재와 민주화, 사회적 부패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눈을 감고 있었고, 젊은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교회 젊은이들의 문제의식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나는 존 스토트의 『현대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이란 책을 접했다. 이 책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의식이 새롭게 개안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 지성인들이 의식적으로 눈감아버렸던 문제들에 대해서 존 스토트는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정면 대결로 수용하여 성경과 역사에 근거하여 고민하고 씨름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 뒤에도 존 스토트의 이런저런 저술들을 읽었지만 나는 『현대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 하나만으로도 그에게 큰 빚을 진 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5장 “내가 만난 사람들”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만열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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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및 이사장,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희년선교회 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상지대학교 이사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민모임 독립의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한국기독교와 민족통일운동』, 『삼국시대사』,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한국기독교의료사』 등이 있으며, ... 더보기
최근작 : <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원로 역사학자들의 학문과 기억>,<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이> … 총 4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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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가 신앙과 민족과 역사에 대해 눈떠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주일학교에서 신앙의 눈을 뜨고 이후 민족과 역사에 대해 차례로 열려가는 과정의 이만열 교수를 본문에서 만날 수 있다. 신군부에 의해 해직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40여 년 동안 꾸준히 매일 밤 그날의 일기를 쓴다는 저자의 오랜 습관은 성실한 기록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실감케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젊은 시절의 그 세밀한 기억과 기록의 산물이다.
역사학자 이만열의 첫 산문집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의 개정판인 이 책은 1990년대 중반까지의 그의 ‘삶과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1장 “내가 자라고 공부해온 길”은 이번에 새로 썼다. 이 책의 출간 계기가 된 해직 이야기 2장 “쑥스러운 이야기”는 그대로 두었고, 이만열 교수의 생각의 일면을 보여주는 3-4장 “병을 만든 시대”와 “빈방의 불을 끄고” 부분은 그 무렵 KBS와 CBS에서 방송한 칼럼 몇 개를 추가했다. 평소 존경하는 분들에 대해 쓴 5장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학술논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박은식과 신채호는 제외하고 그 시기에 영향을 받은 몇 분을 더 추가했다. 이만열 교수의 책에는 그와 인생 여정을 같이한 동시대인들의 교우기가 증언 삼아 실리는데, 이번에는 복음주의권에서 30여 년 이상 뜻을 같이한 강경민 목사가 나섰다. 이 시대의 스승으로 존경받기에 충분한 학자 이만열의 인생 전반부를 자전적으로 다룬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는 신앙, 역사, 민족이다. 독자들은 이 세 가지 화두를 배경으로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신뢰, 수많은 인간관계에 대한 애정,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소망과 신념 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의 삶과 생각을 통해 한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의 기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 (2020년 개정판) 요약 및 평론
1. 도서 요약
역사학자 이만열이 1996년 처음 세상에 내놓았던 자전적 회고록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는 2020년, 저자의 서문과 함께 그간의 세월을 보완한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은 경남 함안의 농촌 마을에서 자란 한 순박한 소년이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학문적 양심을 지킨 역사학자로,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한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은 의식의 성장기이다.
책의 전개는 저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 크게 세 단계의 영적·지적 각성을 보여준다.
첫째, 농촌에서의 유년기와 기독교 신앙과의 만남이다. 저자는 자신이 나고 자란 함안의 시골 정취와 유교적 학풍이 남아 있던 집안의 내력을 담담하게 복기한다. 가난하지만 정직했던 농촌 공동체의 정서는 훗날 그의 역사관에 깊은 밑거름이 된다. 특히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구적인 기독교 신앙을 접하게 되면서, 저자는 맹목적인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영적 안목을 갖추기 시작한다.
둘째, 서울대학교 사학과 진학 이후 역사학자로서의 정체성 확립이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 청년기에 목도한 정치적 격변은 그에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의 엄중함을 깨닫게 했다. 저자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강단 사학에서 벗어나, 한말 구한말의 민족 운동과 독립운동사, 그리고 한국 기독교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이를 통해 역사란 현재의 모순을 바로잡고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민족사학>의 기틀을 다진다.
셋째, 독재 정권에 맞선 저항과 해직, 그리고 사회적 실천의 시기이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저자는 학자의 안위를 버리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다. 이 과정에서 교수직을 박탈당하는 해직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지식인의 양심을 굽히지 않고 지식인 사회와 교계 안팎에서 인권 운동과 통일 운동에 앞장선다. 2020년 개정판에서는 이러한 격동의 세월을 거쳐 노학자가 된 저자가 지난날을 반추하며, 한국 사회와 교계가 나아가야 할 평화와 화해의 길을 추가적인 성찰로 덧붙인다.
2. 비평적 평론
이만열의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 2020년 개정판은 한 지식인의 과거 회고를 넘어, 복잡다단한 현대사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민들에게 지적·도덕적 나침반을 제공하는 텍스트이다. 본 서평에서는 이 작품이 지닌 핵심 가치를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 <눈뜸(각성)>의 점진성과 주체성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가 자신을 태생적인 영웅이나 선각자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목에 명시된 <시골뜨기>라는 표현처럼, 저자는 자신이 시대의 모순과 역사의 진실을 아주 천천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솔직한 서사는 독자에게 깊은 유대감을 주며, 진정한 지성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배움을 통해 주체적으로 길러지는 것임을 역설한다.
둘째, 신앙의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공의의 실현이다. 기독교 신앙은 저자의 삶과 학문을 지탱한 가장 큰 기둥이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개인의 기복이나 내세의 구원에 갇혀 있지 않았다. 저자는 성서가 말하는 공의를 역사적 현실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으며, 이는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과 해직 교수로서의 고난을 감내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학문적 엄밀성과 종교적 신념, 그리고 사회적 실천이 어떻게 삼위일체를 이룰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 그의 삶은 지식인의 타락과 종교의 세속화가 심화된 현대 사회에 강력한 경종을 울린다.
셋째, 개정판이 지닌 통시적 성찰의 깊이이다. 1996년 첫 출간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나온 2020년 개정판은, 청년과 장년기를 지나 노년에 이른 사학자의 완성된 안목을 보여준다. 격렬했던 투쟁의 시기를 지나온 저자는 이제 증오와 대립을 넘어선 평화 통일, 그리고 역사적 화해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과거의 기억 속에 갇힌 박제된 회고록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재진형형의 역사 철학서로서 이 책의 가치를 한 단계 격상시킨다.
결론적으로 이만열의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는 무지에서 지식으로, 지식에서 실천으로, 그리고 실천에서 지혜로 나아간 한 인간의 위대한 정신적 여정이다. 2020년 개정판은 시대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올바른 삶의 이정표를, 기성세대에게는 지적·도덕적 책무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
이만열 지음, 2020년 개정판 - 요약·평론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는 역사학자 이만열이 경남 함안의 농촌 소년에서 한국근현대사와 한국기독교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삶과 생각을 기록한 자전적 산문집이다. 1996년 처음 출간된 책을 2020년에 크게 보완한 개정판으로, 초판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 어린 시절과 학업 과정이 새로 추가되었다. 책은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개인의 성장담과 함께 해방, 한국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운동을 겪은 한국 지식인의 정신사를 보여준다.
제목의 ‘시골뜨기’는 저자의 출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말이지만, 단순한 겸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만열은 자신을 처음부터 뛰어난 역사학자나 정의로운 지식인이었던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좁은 농촌 세계에서 출발해 교회와 학교, 스승과 동료, 사회적 사건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새로운 현실에 눈떠간 사람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따라서 이 책의 중심은 성공이 아니라 각성이다. ‘눈떴다’가 아니라 ‘눈떠간다’고 표현한 것도 인간의 성숙이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임을 뜻한다.
개정판에서 새로 보강된 첫 부분은 함안의 농촌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학창 생활을 다룬다. 그는 가난한 농촌에서 소를 먹이고 집안일을 돕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의 세계는 좁았지만, 교회와 학교는 그에게 바깥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이 되었다. 교회에서는 성경과 찬송, 공동체 생활을 배웠고, 학교에서는 글과 역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마을보다 훨씬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첫 번째 각성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접한 기독교는 그에게 개인의 도덕성과 성실함을 가르쳤다. 그는 한때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품었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신학교 진학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초기 신앙은 주로 개인의 구원과 경건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적 불의와 민족의 고난에 응답하는 신앙으로 발전하기까지는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째 각성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통해 찾아왔다. 저자는 어린 시절 전쟁을 겪으며 이념과 국가권력이 평범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목격했다. 전쟁은 교과서 속 사건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 죽고 공동체가 갈라지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기억은 훗날 그가 민족과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된다. 그는 분단을 남과 북의 체제 경쟁만으로 보지 않고, 식민지배와 냉전, 외세와 내부 정치가 복합적으로 낳은 민족사의 비극으로 이해한다.
세 번째 각성은 역사학과의 만남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사학과에 들어갔지만 처음부터 한국사를 자신의 학문적 소명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목회자가 되는 길과 서양사 연구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군복무 중 한국사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경험이 큰 충격을 주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그를 한국사 연구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김철준과 한우근 같은 역사학자들에게 배우고, 신채호의 민족주의 역사학을 접하면서 역사를 민족의 현실과 연결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자에게 역사학은 과거의 사실을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국가와 사회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밝히는 비판적 학문이다. 그는 역사가 권력의 정당성을 꾸미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역사학자는 국가가 요구하는 공식적 기억에 순응하기보다, 권력에 의해 억압되거나 잊힌 사람들의 경험을 복원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관은 이후 그의 민주화운동 참여와 한국기독교사 연구에 공통된 기반이 된다.
책의 중요한 부분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직된 경험을 기록한 <쑥스러운 이야기>다. 그는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대학에서 쫓겨났다. 해직은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학교 제도 밖에서 자신의 학문과 신앙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료와 제자, 교회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한국기독교사 자료를 조사하면서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을 독재정권에 맞선 영웅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해직 기간에 자신이 받은 도움을 상세히 기록한다. 자신이 혼자 견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우정과 연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제목을 <쑥스러운 이야기>라고 붙인 것도 자신의 고난이나 용기를 과장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은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다. 저자는 자기 삶을 자랑하기보다 자신을 형성한 관계와 은혜를 기억한다.
그의 신앙도 해직과 사회참여를 거치며 변화한다. 초기의 개인적 신앙은 점차 민족과 사회에 책임을 지는 공적 신앙으로 발전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기여했지만, 해방 후에는 권력에 협조하거나 사회적 불의에 침묵한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한다. 교회가 성장과 전도만을 강조하면서 독재와 빈곤, 분단과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면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이 문제의식은 그의 한국기독교사 연구로 이어진다. 그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단순한 선교사와 교단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 기독교가 민족운동, 교육, 의료, 사회개혁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으며, 반대로 식민권력과 독재정권에 어떻게 순응했는지를 함께 살핀다. 교회사를 신앙 공동체의 성공담으로 만드는 대신, 역사적 책임을 묻는 비판적 학문으로 전환하려 한 것이다.
개정판의 <병을 만든 시대>와 <빈방의 불을 끄고>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KBS와 CBS 등을 통해 발표한 사회비평적 글들이 실려 있다. 이 글들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정치인의 부패, 사회지도층의 책임 회피, 교회의 현실 침묵,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다룬다.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개정판에는 이 시기의 방송 칼럼들이 추가되었다.
‘병을 만든 시대’라는 표현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을 사회구조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저자의 생각을 압축한다. 부정부패와 기회주의, 권위주의와 복종은 몇몇 나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독재와 경쟁, 불공정한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사회 전체가 병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왜곡된다. 따라서 사회개혁은 개인에게 착하게 살라고 훈계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잘못된 제도와 권력관계를 함께 고쳐야 한다.
‘빈방의 불을 끄고’라는 제목은 사소한 일상적 실천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저자는 거대한 민족과 역사를 말하면서도 작은 생활윤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방의 불을 끄는 행위, 공공재를 아끼는 습관,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민주사회의 기초라고 본다. 사회정의는 거창한 구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남의 몫과 공동체의 자원을 존중하는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
마지막 부분의 <내가 만난 사람들>에서는 저자의 학문과 신앙, 사회참여에 영향을 준 여러 인물을 회고한다. 그는 자신의 성장과 업적을 개인적 능력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스승과 동료, 제자, 목회자와 평신도, 민주화운동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본다. 한 사람의 각성은 고립된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미화를 경계하는 태도다. 많은 자서전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필연적 과정처럼 배열한다. 그러나 이만열은 자신이 무지했고 소극적이었으며 때로는 시대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인정한다. 자신이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고, 사건과 사람을 통해 늦게 깨달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다만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첫째, 여러 시기에 발표된 자전적 기록과 방송 칼럼, 인물 회고를 묶은 산문집이기 때문에 하나의 일관된 자서전처럼 긴밀하게 구성되지는 않는다. 개인 회고에서 사회비평으로, 다시 인물 이야기로 이동하면서 글의 성격이 달라진다. 개정판에서 성장기가 보충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삶은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둘째, 저자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식민지배와 분단, 독재에 저항하는 중요한 힘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민족 내부의 다양한 차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민족’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강조하면 계급과 성별, 지역, 이주와 소수자의 문제가 뒤로 밀릴 수 있다. 저자의 민족주의가 배타적 국가주의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민족과 시민,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더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셋째, 기독교와 민족을 결합하는 그의 관점에는 긴장이 있다. 신앙이 민족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는 주장은 개인구원과 교회성장에 치우친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데 큰 힘을 가진다. 그러나 기독교가 특정 민족의 역사와 지나치게 결합하면 종교의 보편성이 약화되고 민족주의 종교로 변할 위험도 있다. 기독교의 보편적 사랑과 민족적 책임 사이의 균형은 이만열의 사상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계속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 현대 지성사와 한국기독교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록이다. 한 농촌 소년이 신앙에 눈뜨고, 역사에 눈뜨고, 다시 민족과 민주주의, 사회적 책임에 눈떠가는 과정은 개인의 성장사인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그는 지식인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시대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책이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에 눈떠 있으며, 무엇에는 아직 눈을 감고 있는가. 신앙은 현실을 보게 하는가, 아니면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는가. 역사 공부는 사회의 부정의를 비판하는 힘이 되는가, 아니면 자기 집단의 영광을 꾸미는 도구가 되는가.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는 완성된 지식인의 자랑스러운 회고록이라기보다, 평생 자신을 수정하며 살아온 한 역사학자의 자기고백이다. 그가 보여주는 각성은 지식을 쌓는 일이면서 동시에 양심을 넓히는 일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개인 자서전을 넘어 한국의 지식인과 기독교인에게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적 증언이 된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한 시골뜨기가 눈떠가는 이야기>는 시골 소년이 신앙과 역사, 민족과 민주주의에 차례로 눈떠가는 과정을 통해 지식인의 참된 조건은 학식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사회적 책임에 있음을 보여주는 자전적 지성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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