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 - 1930년대 서울의 혁명운동
김경일 (지은이)푸른역사2007-01-15


책소개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1930년대 민족혁명의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 이재유. 1944년 일제 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조선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당대 최고의 혁명가", "30년대 좌익운동의 신화"라는 헌사를 받은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이재유는 일본에서 합법, 비합법적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 4차 공산당 사건의 관계자로 조선에서 호송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은 그는 1932년 말에 출옥한 이후 1936년 말 일제에 의해 체포되기까지 이 시기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으며, 체포된 이후에도 옥중에서 죽을 때까지 혁명가로서의 삶과 민족혁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추격, 고문, 학살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민족혁명을 실천해 갔던 이 시기의 대표적 혁명가로서, 혁명적인만큼 민족적이었고, 민족적인만큼 민중적인 삶을 살았던 이재유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개정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이재유
이재유 연보
1930년대 운동가들
제1부 출생과 성장, 운동의 시작
출생과 성장, 민족의식의 형성
일본에서의 생활과 경성형무소, 공산주의자로의 성장
과거 운동의 비판과 운동 방침의 모색
제2부 경성 트로이카 시기 - 제1기
출옥과 운동방침의 수립
트로이카 조직의 실체와 특성
트로이카의 조직 과정
노동운동의 전개 과정
학생운동의 전개 과정
출판물의 간행 활동
혁명의 이론과 방침
정태식, 미야케 교수와의 제휴
제3부 트로이카 시기 다른 계열의 운동
김형선 그룹의 운동
권영태 그룹의 운동
신갑범 그룹의 운동
제4부 경성재건그룹 시기 - 제2기
검거와 탈주, 은신
박진홍과 신당동에서의 생활
경성재건그룹의 형성
경성재건그룹의 조직 내용
출판 활동
제2기 운동 내용의 평가
제5부 재건그룹 시기 다른 계열의 운동
제6부 경성준비그룹 시기 - 제3기
공덕리에서 이관술과의 생활
운동방침의 수립과 운동자의 획득
운동선의 통일
경성준비그룹의 결성
출판활동과 <적기>의 발행
제3기 운동 내용의 평가
운동 노선과 당면 임무 및 반파쇼운동
최후의 검거
구속, 공판과 감옥에서의 생활 및 죽음
제7부 준비그룹 시기 다른 계열의 운동
권우성.정재철.김승훈 등의 운동
안승락의 운동
김희성의 운동
이규섭의 운동
제8부 이재유 이후의 운동
제9부 이재유와 일제하 변혁운동
민족문제와 계급문제
국내주의와 국제주의
전위와 대중
이론과 실천의 통일
미래의 사회를 향하여
자료1 <적기> 제1호(1936년 10월 20일)
자료2 금강산인, 조선민족해방 영웅적 투사 이재유 탈출기
자료3 이재유 공판 관련 기록
참고문헌
주석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한국 근대사에서 1920~30년대는 반세기 정도를 사이에 둔 1980~90년대와 비슷한 격동의 시기였다. 특히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전반기에 국내에서는 1929년의 원산총파업이나 1930년의 평양 고무공장 총파업에서 보듯이 일본의 식민 지배에 반대하고 식민지 민중의 해방을 지향하는 대중운동이 폭발적으로 고양하였으며, 곧이어 이는 진보적 지식인과 사회운동가들이 주도하는 비합법의 혁명적 노동, 농민운동으로 이행하였다. '당대 최고의 혁명가', 혹은 '1930년대 좌익운동의 신화' 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이재유는 이러한 흐름의 한 가운데에서 그것을 주도함으로써 이 시기의 상징이 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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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경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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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에서 정년을 맞았다. 뉴욕주립대(빙햄턴)와 파리 인간과학연구소(Maison des Sciences de L’Homme)에서 수학했고(박사후과정), 도쿄대학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과 워싱턴대학 교류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일제 하 노동운동사』, 『이재유 연구』, 『지역 연구의 역...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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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감탄, 당대 최고의 혁명가
말로만 들은 적이 있을 뿐인, 1930년대 ‘경성트로이카’ 운동의 리더인 공산주의자 이재유 선생의 헌신적이고 뛰어난 민족독립과 계급해방을 위한 활동에 관한 치밀한 논문같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몇 주전에, 황석영 선생의 <철도원 삼대>를 읽었는데, 그 책의 상당부분이,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절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으며, 주된 등장인물이 이재유 선생이고, 그 분을 둘러싼 여러 사건이 나와 더 궁금해지던 차에,
출판사인 푸른역사의 대표님이 올리신 한 페이스북 메시지에 근 15년전에 출간하신 이 책이 소개되었기에 잘 되었다 싶어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다분히 일제 시대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혁명운동에 대한 전문 연구자나 전문적인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매우 유익할 논문같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일반인(?)이 곧바로 이 책을 본다면, 조금은 힘들거나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철도원 삼대>를 통해 1930년대 일제하 이재유 선생과 같은 분이 중핵적인 역할을 한 노동운동을 소설을 통해 알아본 후에, <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을 읽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이 책의 본문부터 읽기보다는 부록에 있는 <자료 2. 금강산인, 조선민족해방 영웅적 투사 이재유 탈출기>와 <자료 3. 이재유 공판 관련 기록>부터 읽은 후에 본문을 읽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철도원 삼대>나 이 책의 부록에 있는 자료들을 읽다보면,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 활약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고, 그러면 이 책의 본문에 있는 내용이 쉽게 다가올 듯합니다.
저자 김경일 선생은 이재유 선생을 민족의 독립과 계급혁명 사이의 균형을 잡은 일제 시대 드문 혁명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현실에 뿌리를 두고, 국제적 연대와 교류에도 열렸있던 인물로서, 해외의 사조나 리더의 지도를 권위의 원천으로 삼지 않은 국내주의자이면서도 진정한 국제주의자라고 평가하는데, 두 가지 모두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재유 선생이 본격적으로 혁명운동을 한 시기는 1932년 이후 1936년말까지로 짧지만, “지도하면서 지도받겠다”는 정신에 바탕을 둔 운동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트로이카’라는 방식을 내세우며, ‘경성트로이카’를 역사에 남긴 인물이신데,
그 "트로이카 방식"은 지금도 매우 유효하고 영원히 유효한 가르침이 되지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재유 선생을 비롯해, 그와 함께 한 이관술, 그 외 수많은 인물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엄청난 고문과 고난을 겪은 다음에도, 탈출하거나 또는 석방된 후에도 다시 민족해방과 계급혁명을 위해 멈추지 않은 점은, 뭐라 말하기도 어려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혁명운동에 많은 여성노동자나 운동가들이 있었음도 배웠습니다.
또한 그 5년의 짧은 기간에도 객관적인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하며, 반성과 변화를 거부하지 않은 점에서도, 비록 짧은 기간 불꽃같이 살다가셨지만, 이재유 선생을 “당대 최고의 혁명가”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덧붙임.
이 책을 통해, 이재유 선생께서 동지들과 만나 혁명과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러 접선 장소중에,
우이천의 제2우이교, 또는 우이2교가 많이 나옵니다.
몇달전 자전거로 우이천을 달린적이 있는데 앞으로 그 쪽을 가게 되면,
엄혹한 1930년대 중반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엄청난 긴장감속에 동지들을 만났을 그 분을 생각할 듯 합니다.
- 접기
준선아빠 2022-03-2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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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유
이재유 李載裕 | |
|---|---|
| 출생 | 1905년 8월 28일 |
| 사망 | 1944년 10월 26일 |
| 성별 | 남성 |
| 국적 | 한국 |
| 직업 | 독립운동가, 공산주의 운동가 |
| 활동 기간 | 일제 강점기 |
이재유(李載裕, 1905년 8월 28일~1944년 10월 26일)는 한국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공산주의 운동가이다.[1]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생애
함경남도 삼수군 별동면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유년 시절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삼수의 공립 보통학교 5학년에 보결 입학하였으나, 4개월 만에 퇴학하였다. 1922년 무렵 상경하여, 1924년 4월 보성 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 시험을 쳐서 입학하였다가 3개월 만에 월사금 미납과 아버지 사망으로 퇴학하였다. 이때 그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고 민족주의 사상을 싹 틔우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개성 송도 고등 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 시험을 쳐서 합격하였다. 송도 고등 보통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기 시작하여,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사회 과학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또한 반종교 투쟁에도 적극 나서며 동맹 휴학을 주도하다가 1926년 11월 기독교 계열이었던 송도 고등 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1926년 12월 일본 도쿄로 유학하여 니혼 대학 전문부 사회과에 학적을 두고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후보 회원이 되었데, 학비 때문에 다시 퇴학하였다. 1928년에는 조선공산당 일본 총국 위원이 되었다가,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경성 형무소에서 3여 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면서 공산주의자로 성장하였다. 1929년 안병춘, 변홍대, 이형상 등과 조직을 만들어 동맹파업 등과 같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이끌며 일제에 저항하였다. 또 여러가지 출판물을 간행하여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도 했다. 1933년 이순금과 비밀리에 결혼했다. 1934년 1월 22일 서대문 경찰서에서 체포되었으나 1934년 4월 13일에 천황제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사상을 가졌던 모리다란 경찰이 탈출을 도와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이재유가 탈출한 지 30여 분이 지나서야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 탈출 후에도 이재유는 이관술, 박영출 등과 함께 조직을 결성하고 기관지를 간행하는 등 학생운동과 출판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해 12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서 1944년 청주 교도소에서 옥사를 하였다.[2]
가계
상훈
2006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1]
각주
- 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 - 이재유
- 중앙연구원 <인물 사전 II>-한눈에 보는 역사 속 위인들 [개항기~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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