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2

· [1906년경 지방의 공개 집단 교수형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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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ok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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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경 지방의 공개 집단 교수형 장소]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도 일본이 개입된 것이라는 설이 나돈다.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입증되었다. 다만 시기도 어느 정도 특정되었으나 여전히 장소를 알 수 없다.
사진 하단의 설명(caption)에서 뭔가를 포착할 수 있다. 조선의 ‘남서부지방’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 일본의 탄압...교수형 전경에는 무스메(일본 젊은 여성)들의 양산과 일본식 모자들이 보인다. -여러 지역, 특히 남서부 지방에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본 당국과 탐욕스럽고 잔인한 침략자들에 맞서 봉기가 일어나고 있지만, 처벌은 곧바로 내려졌다.”
“EN 1906 : RÉPRESSIONS JAPONAISES. — LA PENDAISONAu premier plan, ombrelles de mousmés et chapeaux japonais. — Dans plusieurs régions, et notamment dans les provinces du sud-ouest, des soulèvements éclatent contre l'autorité japonaise trop sévère et les envahisseurs rapaces et brutaux..., mais le châtiment ne tarde guère.”
나카하시 마사요시(中橋政吉)가 저술한 “구시대 조선의 형정(朝鮮舊時の刑政)”에는 대구(감옥)에서 교수형 집행은 통나무(丸太) 세 개를 삼각대 형태로 짜 맞추고 그 중앙 상부에 밧줄을 매달아 집행했다고 기술하고 있다(199쪽).
수원감옥, 해주감옥, 평양감옥과 달리 대구감옥에서는 통나무를 사용한 간이 처형대를 사용했던 것이다. 지역을 대구로 본다면 이 사진에 찍힌 장소는 서문시장이 될 것이다.




조선의 법률체계상 지방에서 일반인 대상의 사형집행은 쉽지 않습니다.
조선은 3심제이고 최종심은 서울에서 합니다. 을사조약 이후로 뭐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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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인경 갑오개혁 이후 기유각서 체결 아전까지 지방재판소 단위로 교수형의 집행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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