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 있는 무속신앙(巫俗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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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9.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 있는 무속신앙(巫俗信仰)
1, 들어가는 말
한국의 무속신앙(巫俗信仰)의 특징을 살펴보면 외래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에 전래된 외래종교 내 면속으로 숨어버린 무속신앙은 소멸되지 않고 내면에 살아있어 돌연변이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속신앙의 토양에서 성장않은 채 기독교를 수용한 것입니다. 혹, 한국 교회 안에 무속신앙적인 요소들이 있을까 하는 했던 한국 기독교는 혼합주의의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무속신앙을 포기하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국 전래된 외래 종교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한 시대에도 무속신앙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의 정서적 깊은 곳에는 무속신앙적인 세계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한국 종교역사와 문화라고 생각하면서. 한국교회는 무속신앙화에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2, 한국 교회 안에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영향들
최근 한국 사회는 전통문화로의 복귀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토불이를 주장한다든지 우리 것을 찾자는 구호아래 사라져 버린 전통무속적인 요소를 찾는 것이 문화를 사랑하는 애국심인향 미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마다 전통문화(傳統文化) 행사를 앞 다투어 열며 이것을 추구하는 동아리도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제는 관선단체까지도 이런 행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바는 전통이란 미명 아래 우상숭배문화가 범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무속신앙(샤먼)문화인 것입니다. 전통문화가 발흥한다는 것은 곧 전통종교가 부흥한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유동식 교수는 한국인의 사상을 비빔밥 철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 음식 가운데 전형적인 것이 비빔밥인데. 한국 전통 종교를 비빔밥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한국 사상의 밑바닥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토속신앙, 곧 무속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 일천 여 년에 걸친 불교(佛敎)사상이 얹혀있고 또 그 위에는 오백 년의 유교(儒敎)사상이 얹혀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지금은 기독교(基督敎)와 서구의 사상들이 표면을 덮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한국의 종교를 설명하기 위해 흔히 말하는 '유불선' 혹은 '유불도'라는 '공식'은 잘못이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 종교의 공식은 토착 신앙인 무교를 포함한 '무불유'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고대 한국인들이 신봉했던 종교는 샤머니즘, 즉 무교 이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무속신앙은 특성은 왜래 종교와 혼합 현상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혼합현상은 무속신앙의 변질이라기보다는 왜래 종교를 무속신앙화 하는 강한 용해력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에 들어온 불교, 유교, 기독교는 무속신앙을 개혁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수용하여 불교, 유교, 기독교 안에 무속신앙의 요소들이 들어 있으며, 그 요소가 이 세 종교를 변질시켰습니다.
필자는 한국 교회의 신앙행태를 보면 생각은 불교적(佛敎的)으로 하고 생활은 유교적(儒敎的)으로 살고, 신앙은 무속(巫俗)(샤먼)적으로 믿는 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무속신앙이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혼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정서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필자는 기독교 목사로서 몇 년 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돈을 내고 점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인구의 38%나 되는데, 그 가운데 30%는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최근의 어느 무속관련 신문에서 발표한 것과도 같은 수치입니다. 서울의 신촌이나 미아리 등지의 점쟁이들은 고객 관리 명단 가운데 ‘기독교인’이라고 적힌 것을 별도로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몇년 전 저의 집에 한 무속신앙인 역술인이 신문에 삽입한 전단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 비밀 절대보장, ○○철학관. 이렇게 기독교인들만 전문적으로 봐주는 점집도 있다고 하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속 신앙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는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즉“세시풍속”, “통과의례” “가택신앙과 마을신앙” 이 한국 교회 미친 영향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1)세시풍속(歲時風俗)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그믐까지의 일 년 동안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맞추어 동일한 양식의 관습적 의례가 매년 되풀이되는 전통문화(傳統文化)가 두루 포함된 복합적인 문화풍속 현상을 말합니다. 세시풍속의 분류는 4절기로서 음력 정월을 시작으로 3개월 단위로 춘, 하, 추, 동의 4계절로 나누어 여기에 따르는 농, 어업의 활동과 변화가 적응되어 온 4절기 민속의례입니다.
또한 24절기로서 한국과 중국 등에서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으로 계절을 조절해 가기 위해 마련한 황도상의 표준이 되는 24개의 점, 1년의 길이를 동지에서 시작하여 24등분하고 각 분점을 태양이 통과할 때의 시후를 나타내는 명칭을 붙여 24절기라 합니다. 이들 절기에 따라 민속(民俗)의례가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꾸준히 진행되어 오는 것을 세시풍속이라고 합니다.
(1)동지(冬至)의 풍속
시골교회 권사님이 동지 날 팥죽을 온 집안에 뿌리고 있는 것을 친구목사님이 시골목회하면서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지(冬至)는 어디까지나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불러오고자 하는 세시풍속(歲時風俗)입니다. 동지를 작은설이라 한 것은 설날에 떡국을 먹듯이 팥죽을 먹어야만 액땜을 한다고 믿는 풍속입니다. 예전에는 동지(冬至)차례를 먼저 사당에서 팥죽으로 차례를 지내고 그 후 장독과 마루와 광과 헛간에 한 그릇씩 떠다놓고 가신에게 고사를 지냈습니다. 팥죽에는 찹쌀로 경단을 넣기도 하는데 이를 새알심 또는 옹심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동지차례가 사라졌으며 팥죽제사 역시 퇴색되어 순전히 팥죽 쑤어 먹는 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팥죽을 쑤어 집안의 액살이 출입한다는 대문에 뿌려 액(厄)을 막는다고 나이든 어른들이 계시는 집에서는 팥죽을 뿌리는 집들이 있습니다. 이 풍습은 팥이 액(厄)을 막고 잡귀(雜鬼)를 없애 준다는 미신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동짓날의 팥죽은 반드시 붉은 팥으로 만들어야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동지의 팥죽 속에 들어 있는 옹심이로 점을 쳐서 태아의 성별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옹심이를 꺼내 화롯불에 놓으면 그 열에 의해서 모양이 달라집니다. 이 때 옹심이가 길게 늘어나면 아들을 낳고 동그랗게 오그라들면 딸을 낳는다고 믿었습니다. 동지는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과정에 잡귀와 재액(災厄)을 멀리 하고 복을 구하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옛날의 세시풍속의 구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쓸데없는 미신에 사로잡혀 조상 제사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의 이름을 짓기 위하여 성명작명소를 드나들기도 합니다. 새해가 되면 점치는 골목을 기웃거리고 자녀들의 결혼을 앞두고 사주와 택일을 놓고 고심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집안에 장례가 나면 명당자리 운운하는 안타까운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2)새해 동해안 해맞이
새해가 되면 동해에 자리 잡은 각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해맞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홍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매년 새해가 밝아오면 신년 정월 초하루 날에 동해바다로 해맞이를 하기 위하여 저마다 소원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고생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새해 해맞이는 음양오행(陰陽五行)사상에서 태양은 양(陽)으로 새해 첫 새벽에 태양을 맞이하므로 한해의 무사태평(無事泰平)과 소원을 태양신에게 소망을 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새해 해맞이가 과연 옳은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이 아직도 이 땅에는 무속신앙이 한국교회 안에 성도들의 심령과 가정에 남아 있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로 보고 있읍니다.
(3)신년 점괘(占卦),
토정비결을 MBC에서 서울에 사는 인구 1000명에게 “토정비결(土亭秘訣) 보았습니까?” 라는 조사에서 65%가 보았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신년주일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는데 아파트 정문에서 토정비결 보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자기도 모르게 토정비결을 보았는데 금년에 신수가 대통인데 10월에 액운(厄運)이 있는 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일주일간 고민 하다가 다음 주일 교회 가서 “하나님 올해는 신수가 좋다는 10월에 액운이 있다는데 이 액을 모면하게 해주세요”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4)삼복(三伏)의 풍속
“저희 교회 고등부 부장 장로님께서 삼복(三伏)인 초복(初伏)날이라고 교사들을 초청하여 영양탕을 사 주셨습니다. 건강은 좋은 것은 알지만 삼복 날 왜 영양탕을 먹는 풍습이 생겼는지 알고 싶습니다.”이렇게 질문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삼복(三伏)에서 복(伏)자가 ‘사람 인’변(人)에 개견(犬) 자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복날 개를 삶아 먹는 것은 더위를 잊는 것뿐만 아니라 보신과 액(厄)을 물리치는 일까지 결부되어 보신탕으로도 불립니다, 전통적으로 제사음식에 개고기가 올라 가지 못한 것도 벽사(辟邪)의미 입니다, . 복날과 관계있는 속신(俗神)으로 “복날에 시내와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것이며 이러한 속신 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삼복의 음식으로는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내는 시절음식으로 개장국을 즐겨 먹었습니다. 개장국은 더위로 인해 허약해진 기력을 충전시켜 주는 음식으로 개고기가 주원료입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개장국을 먹으며 땀을 흘리면 더위를 물리쳐 몸을 보 한다”는 기록이 있고 또 열양세기에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보양 한다”고 했습니다. 농가월령가에 “황구의 고기가 사람을 보한다고 하여 황구를 일등품으로 여기고”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러한 여러 문헌을 통해서 볼 때 개장국은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여름철 건강식으로 널리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년 중 삼복은 가장 더운 기간으로 “삼복더위”라 합니다. 이 때 먹는 개고기는 일반적으로 벽사(辟邪)적 기능이 있어서 제사음식에 제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개고기는 귀신이 싫어하므로 개고기가 있으면 귀신이 오지 않는다고 믿고,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삼복 때 보신탕은 영양 섭취에 그 의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붉은 팥죽과 마찬가지로 애초에는 벽사적인 의의가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름 더위에 몸을 해치는 재액(災厄)을 추방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과일 중 복숭아가 제사상에 제물이 되지 못한 것도 벽사 기능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역과 가문에 따라서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금하기도 하므로 이런 이유로 개장국을 대신하여 삼계탕으로 대신합니다. 삼계탕은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와 찹쌀을 넣고 푹 삶는 것으로 원기를 회복하고자 할 때 삼복 날 삼계탕을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초복에서 말복까지 먹는 풍속이 있습니다. 팥죽은 벽사의 효험을 가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더운 복중에 악귀(惡鬼)를 쫓고 무병 하려는 뜻에서 나온 세시풍속입니다 또한 개고기는 귀신(鬼神)을 내쫓는 벽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고기를 먹으면 상가 집이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5)윤달의 풍습
필자의 교회 나이가 많은 권사님이 약 3년마다 돌아오는 윤달(閏月·5월)을 맞아 동대문 시장에서 삼베를 사와서 수의를 손수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 1백 50년쯤 전에 9개의 세시풍속을 집대성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마지막 장에 “윤월(閏月)에는 액운(厄運)이 없는 달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음력으로 윤달이 있는 해는 1년이 13개월이 되는 셈이지요. 즉 음력은 1년에 11일이 부족하여 계절과 맞지 않기 때문에 3년에 윤달이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윤달을 공달로 생각하고 궂은일을 하면 차후 3~4년까지의 액(厄)땜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방세계의 속신들입니다, 윤달에 궂은일을 하면 전혀 해(액운)를 입지 않는다고 믿어 집을 짓는 일과 결혼을 하면 귀신이 샘을 부리지 않는다 하여 길한 날로 보았으며 이때 수의를 해놓으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모님이 더 건강하게 장수한다고 믿었습니다. 필자가 몇년전 음력 구정 다음 주간에 경북 영양군 한 교회 집회 인도하는 중 한국 문화가 “기독교 교회에 끼친 영향”이란 주제로 증거 하는 중에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금년 2월 윤달에 너도나도 집을 짓겠다고 하므로 건축비가 평당 70만 원이 올랐다고 합니다. 세시풍속에 성도들이 잘 모르는 가운데 영향력을 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액운(厄運)이 없는 2월 윤달에 집을 짓는다고 성도들도 덩달아 윤달에 귀신(鬼神)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세시풍속을 수긍하여 집을 건축하는 것은 그 동기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통과의례(通過儀禮)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의 전통적으로 시행하는 통과의례는 출생, 백일, 첫돌, 관례, 혼례, 회갑, 상례, 제례 등입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무속신앙과 풍속이 외래종교인 불교를 영합하여 토착화된 불교의례 의식을 낳았고, 그 후에 고려 말에 주자학이 조선조 통치이념이 되고 그 후 조선조에 전래된 기독교와 서양사상은 역사적으로 확립된 전통 고유 통과의례 의식 절차에 직접, 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전통 통과의례가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본인은 한국 통과의례 속에 의미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무속적인 것, 우상사상, 조상숭배를, 고찰하므로 기독교적인 통과의례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재정립하였으면 합니다.
(1)백일(百日)의 의의 백일이라 함은 출생 후 100일이 되는 날로 이날 아기를 위하여 베풀어주는 잔치를 백일잔치라고 합니다, 백(百)이라는 숫자에는 완전, 성숙 등의 이념이 있으므로 아기가 백일이란 단계를 무사히 넘기게 되었음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출산에서 삼칠일까지의 모든 행사는 아기보다 산모의 건강회복을 위주로 한 것이라면 ,백일은 순전히 갓난아기만을 중심으로 한 아기 본위의 첫 경축행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백일 찬치는 아기의 무사함을 축복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복록(福祿)을 바라며 아기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재액(災厄)을 막는 주술행위가 주목적입니다.
백일은 출산의례 중 해산 이후에 행해지는 것이라 하여 “산후의례”라고 합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면 고개를 이기고 앉을 수 있게 되고 웃으며 재롱을 부려 귀여움을 받게 되는데 유아 사망률이 높은 옛날에는 아기가 백일이 지나면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하여 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한자 문화권인 일본 대만 중국에 없는 백일잔치를 이어령 전집에서는 단군 신화에서 천제인 환인이라는 아들인 환웅이가 이 세상에 내려와 태백산 신단수 아래서 세상을 다스릴 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원해서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하는데, 호랑이는 인내하지 못해서 사람이 되지 못 했으니 죽음을 의미하고 곰은 굴속에서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백일잔치는 단군신화에서 온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곰은 백일동안 참고 이기어 웅녀(熊女)가 되어서 환웅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이라고 단군신화는 전하고 있습니다, 백일에는 백설기 수수팥떡 인절미를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고 이웃에게 나누어줍니다. 이 떡을 받은 사람들은 아기가 장수할 것을 기원하여 긴 실을 답례로 선물합니다. 특히 귀한 집 아기의 경우와 어렵게 해서 얻은 아기는 떡을 백 개 만들어 이것을 길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 백 명에게 나누어주어 아기의 생명을 길게 될 것을 소망했습니다. 흰 백설기는 성결함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백설을 연상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붉은“수수경단”은 잡귀를 멀리하는 부적과 같은 의미로 예로부터 붉은 색은 액운(厄運)을 피하게 하는 색으로 무속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2)작명(作名)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
작명(作名)은 이름을 짓는 성명학이라고도 합니다. 성명학이란 자기가 갖고 타고난 사주팔자 운명에 부족한 부분과 조건을 보완하는 것과 좋은 이름으로 흉한 것을 제거하고 좋은 것으로 유도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타고난 운명(運命)을 후천적으로 조정하여 좋게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법원에 개명 신청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주(四柱)에 맞추어 성공, 출세, 건강, 부귀, 다복을 위한 맞춤 이름을 원하는 요행심리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작명가의 이론은 인간의 운명을 역학(易學)을 바탕으로 개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면 사주팔자 65%, 이름 15% 정도의 영향을 준다고 하며 그 나머지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도 이름을 바꾼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이름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동양사상(東洋思想) 주역인 사주팔자(四柱八字)에 근거한 무속신앙 영향입니다. 필자가 주례한 가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결혼을 하고 애기를 출산했는데 시부모님이 교회 시무장로님이시고 시어머니는 집사님이신데 손녀와 손자이름을 오랜단골 즉 남편이름지어준 작명소에서 많은 돈을 주고 지어와서 그이름을 싫다고도 할 수없어 상담해준 사례가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부모님이 교회중직인데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오는 것을 보고 이해가 안간다고 속상해하면서 갈등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3) 관상(觀相)의 의미
권사님이 돌잔치 때 저의 아들을 보시더니 “고놈 관상 한번 잘 생겼구나” 하셨습니다, 란 질문을 밭았습니다. 관상은 사람의 손과 발 얼굴 등의 신체 부위와 전체적인 생김새를 통틀어 보고 그 사람의 재수 운이나 운명(運命) 등을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얼굴의 모양만으로 관상이라 생각하지만, 사람의 손과 발등의 신체부위를 전체적인 생김새를 통틀어 보고 그 사람의 재수나 운명 등을 판단하는 일을 관상(觀相)이라고 합니다.
관상이 좋다, 나쁘다는 말도 그 사람의 재수가 좋다 나쁘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상은 그 사람의 지금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상황 그리고 미래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점을 예지(叡智)하는 점술(占術)입니다. 한국 최고 그룹의 회장이 생존해 계실 때 간부를 채용할 때는 반드시 관상전문가를 대동하여 입사 지원자들을 면접할 때 최종합격 여부를 관상을 보고 결정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소 우리 기독교의 정서와는 부합되지는 않지만. 관상은 한국인의 생활문화로서 한의학에서도 몸의 생김새에 따라 병이 온다는 사상체질의학도 관상에 기초로 하고 있고 또한 동-식물을 고르는데 있어도 관상의미가 합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사님께서는 돌맞이한 아이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관상한번 잘생겼다 하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의 언어적인 사고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전통문화(傳統文化)란 나무의 나이테와 같고 사람 몸의 살과 피와 같은 정신적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전통문화의 일체 거부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전통 한국문화를 계승할 것과 버리고 비판 할 것을, 물고기를 그물에서 가려내는 어부처럼 말씀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복음은 문화를 창조적으로 변형 시키면서 밀가루 반죽과 같은 전통문화 속에 누룩처럼 스며들어간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밀가루 반죽을 변화 시킬 수 있겠습니다. 말씀이 누룩처럼 “관상(觀相)이니”, “사주팔자(四柱八字)니”하는 우리 심령을 믿음으로 변형을 가져와야 권사님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되리라고 봅니다.
(3)돌잔치의 의미
돌은 아기의 첫 생일입니다. 한국인은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을 “귀빠진 날”이라 하는데 생일 중에 태어나서 처음 맞는 첫 돌과 환갑은 잔치를 베풀어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돌잔치는 아기가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는 생일에 행합니다. 옛날에는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유아의 사망률이 매우 높고 질병이 많았기 때문에 아기가 돌을 맞이한 것은 어려운 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뜻에서 축하하는 날이 첫돌입니다.
돌잔치 상에는 돌잡이를 위한 “쌀과, 붓과, 책과, 활과, 돈,” 등의 여러 가지 물건을 진열하여 아이로 하여금 돌상에 차려진 물건을 선택하게 하여 그 아이의 장래를 점(占)쳐 보기도 합니다. 활을 잡으면 무인이 될 것이고 국수와 실을 집으면 수명이 길 것이라 하고 대추를 집으면 자손이 번창 한다하고 문구류를 집으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 하고 쌀을 집으면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다고 흐뭇해했습니다. 자와 바늘을 집으면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하는 등 이렇게 첫 돌날의 모든 음식과 풍속은 무병장수와 장래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기원하는 기복과 재액을 두려워하는 내용이 그 대부분입니다. 교회차원에서 돌찬지를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전통적(傳統的)인 습관이나 미신적인 행위를 위한 상차림과 돌잡이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의 장례를 점(占)치는 미신적 행위입니다.
성경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무리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도 삼가 해야 합니다. 다만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지난 1년 동안 은혜로 보호 하셔서 무럭무럭 자라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예배를 드렸으면 합니다. 누가복음 2장40절에는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2절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의 축복을 바라지 않는 전통적(傳統的)인 돌찬지 관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3)결혼 후 폐백(幣帛) 때 밤을 던지는 것은
우리나라에 기독교(基督敎)가 들어 온 지도 125년이 넘었지만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대해서 기독교적이라고 확실하게 정립된 것이 없습니다. 유교적인 것을 적당히 기독교 의식으로 바꾸어 얼버무리고 지나가는 것이 많습니다. 폐백(幣帛)은 한국의 전통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시부모님께 정식으로 첫 인사를 올리는 의식입니다.
신부는 신행하여 신랑 집에서 첫날밤을 자고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시부모님께 처음으로 큰절을 올렸습니다. 이를 “허구례” 또는 “현구고례”라고 합니다. 신부는 이 예를 올리기 위해서 시부모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해서 가는데 이를 폐백이라고 합니다. 불교, 천주교, 유교, 기독교 결혼(結婚)예식은 다르지만 결혼예식 후 폐백(幣帛)을 드리면서 대추와 밤을 던져주는 것은 같습니다. 폐백(幣帛)에서 밤과 대추를 던지는 의미를 말씀 하고자 합니다.
폐백 때 밤을 던져 주는 것은 조상을 잘 섬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문(家門)이나 성씨(姓氏)와 사람으로서의 본(本)을 떨쳐버리지 말고 조상을 잘 섬겨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는 뜻에서 밤을 던져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을 던져주는 것이 아들과 딸을 많이 낳으라는 다산(多産)으로 생각하고 던지지만 실제는 조상(祖上)을 잘 섬기라는 뜻입니다.
밤나무의 특성을 보면 밤나무는 묘목 생산과정을 보면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첫 씨앗은 땅속에서 썩어 없어져 버리지만, 밤은 땅 속의 씨 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맺어도 씨 밤이 뿌리 속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밤은 자기와 조상(祖上)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하므로 신주(神主)를 밤나무로 깎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밤은 조상 섬김과 연관되어 있기에 조상(祖上)의 보살핌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고 신부에게 던져줍니다. 밤나무는 10년, 100년 세월이 지나도 뿌리를 캐내어 탈탈 흙을 털어 보면 “씨밤”인 밤알의 본(本)이 썩지도 않고 그대로 탱탱하게 살아서 밤나무뿌리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밤나무 묘목을 살 때에는 반드시 ‘씨밤’의 밤알에 본(本)이 본안(本案)처럼 탱탱하게 잘 매달려있는 그런 밤나무를 골라 심어야 죽지 않고 밤이 많이 열립니다. 밤나무를 셀 때에는 한 그루 두 구루 하지 않고, 반드시 한 본(本), 두 본 하는 식으로 본(本)으로 밤나무 숫자를 계산합니다. 한국인들이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인사를 할 때 “나는 본(本)이 어디 어디요” 하고 자신에 성씨(姓氏)의 본(本)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폐백 때 밤을 던지는 것은 다산의 의미보다 조상숭배(祖上崇拜)인 “조상과 연결”하여, 가문과 연결하는 신접으로 조상을 잘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대추는 꽃이 핀 곳엔 반드시 열매가 맺고 그 후에 꽃이 떨어진다는 특성과 같이 결혼했으니 대추와 같이 자손의 번창을 뜻합니다. 또한 대추씨는 통 씨이기에 순수한 조상의 혈통, 가문, 그리고 출산(出産)을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대추에는 다산(多産)의미와 함께 조상숭배(祖上崇拜)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대추나무의 특징을 보면 다른 나무 열매들은 암꽃 숫자만큼 열매를 맺고, 숫꽃 숫자만큼은 꽃이 떨어지는데 대추나무는 암꽃 숫꽃 가릴 것 없이 꽃이 핀 곳엔 반드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아서 자손의 번성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대추를 던지는 데에는 또한 악귀(惡鬼)를 추방하는 부적의 의미도 있습니다. 대추는 팥같이 붉은 색인데, 이 같은 붉은 색을 귀신이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속에서는 귀신(鬼神)을 쫓은 축귀에 고사용 시루떡과 백일 수수경단에 붉은 팥과 붉은 수수경단을 사용합니다. 불교(佛敎)에서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卍(만)“자 부적을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면 불치병이 낫고, 우환이 물러가고 악귀(惡鬼)가 물러가는 등 기적을 일으킨다하여 그런 부적의 가격이 몇 천 만원에 이르기도 합니다. 지금은 중국에서 수입하여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가짜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 목걸이를 몇 천원 또는 몇 만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대추나무도 복숭아나무와 같이 악귀(惡鬼)를 쫓는 주술 도구로 무속 풍습에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폐백에서 대추를 던지는 것은 다산의 의미도 있지만 귀신을 추방하는 벽사(辟邪)기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 환갑(還甲)상의 의미는 살아 있는 산제사.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조상(祖上)이 되는 시작점을 환갑(還甲)부터입니다. 큰아들 집에서 사는 부모 세대가 세월이 흐르면 살림살이 권한을 아들부부에게 하나 둘씩 넘기면서 사랑방으로 은퇴하는데. 그 의식을 상장으로 표현한 것이 환갑(還甲) 의례입니다. 언뜻 보기에 환갑의례는 조상숭배의 일부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 평택에서는 환갑을 일컬어 “산제사(祭祀)”라고 불렀습니다. 곧 환갑부터 죽음까지는 “살아 있지만 죽은 조상(祖上)”의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한국 복음화를 위해서는 한국인의 조상에 대한 의례 행위를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조상은 죽었지만 자손들과는 단절되는 문화가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죽은 조상들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죽은 조상들이 산 자손들의 복(福)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조상과 자손을 동일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친족 관계가 발달하여 친척들의 환갑, 결혼, 제사 등은 꼭 참여하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친족을 굶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자손이 없는 근친이 있을 경우 보살피는 것처럼, 죽은 큰아버지나 삼촌의 자손이 없을 경우 조카가 제사를 지내 주는 것입니다. 죽은 조상이 굶게 되면 그해가 자손 친족에게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갑상에는 모든 친족들이 참석하여 “산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환갑에는 환갑상을 받는 것이 보통인데, 환갑상은 교자상에 밤, 대추, 곶감, 과자, 강정, 다식, 약과, 떡 등과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놓습니다. 환갑이 되면 남의 사람의 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몫은 다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환갑상은 살아있는 사람의 제사(祭祀)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환갑상에 차리는 음식은 제사상처럼 차립니다. 다만 살아 있는 사람이므로 제사상의 음식 차리는 순서와 방향은 반대로 합니다. 환갑을 맞는 어른 부부가 상 앞에 앉으면, 맨 먼저 큰아들 내외부터 큰절을 하고, 잔을 올리는데, 이를 헌수(獻壽)라고 합니다. 헌수는 절부터 하고 잔을 올리고, 제사 때에는 잔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절은 반드시 아버지 몫, 어머니 몫을 따로 합니다. 큰절을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을 하게 되는데, 지금은 대체로 한 번으로 끝냅니다. 그러므로 환갑잔치의 상차림은 제사상과 같이 차립니다. 자손들의 배례(拜禮)는 제사할 때와 거의 일치하게 합니다. 환갑 상 앞에 앉은 당사자 부부는 위패나 신주나 지방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상 맞은편에 있는 자손들이 차례로 잔을 올리고 배례를 하는 것은 살아있는 조상에 대한 제사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술이 중요한 의례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제사(祭祀)와 상통합니다. 환갑에서 술이 중요한 의례 음식이라는 점은 술이 제사 의례용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이 귀신과 인간이 접신 하는 상징으로 술이 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갑잔치에서 절하는 것은 신년 하례의 세배에 준한다고 하겠지만 환갑잔치에서 자손들이 죽은 자에 대한 배례(제사)와 비슷한 제례를 올리는 것은 바로 산 자에 대한 최대의 경배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숭배를 포함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환갑의례 때 같이 여자는 4배 남자는 2배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환갑(還甲) 상차림은 제사상(祭祀床)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격식을 갖추어 차립니다. 자손들이 잔을 올릴 때 권주가를 부르는데 이것은 축문과 같으며 또한 환갑잔치에서 자손들이 하는 배례(절)는 죽은 조상에게 숭배하는 뜻으로 제사할 때와 같이 큰 절로 여자는 4배, 남자는 2배를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설날에 하는 세배는 한 번 입니다. 한국의 정통적인 의례에서 두 번 이상 의 배례는 귀신에게 하는 절입니다. 환갑을 맞아 차려 놓은 상이 죽은 조상 대한 제사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는 것은 “오늘부터 살아 계신 조상(祖上)귀신으로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5)필자의 친척이 돌아 가셔서 입관예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친척께서 수의 속에 노자 돈을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6) 쌍춘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해에 결혼한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쌍춘년이란 입춘이 두 번 들어있는 해를 말합니다. 음력의 규칙에 의하면 윤달이 있는 해가 해당됩니다. 가령 올 2월4일과 내년 2월4일이 절기상 입춘이 되어 이렇게 입춘이 2개가 있어서 쌍춘년이라 부릅니다. 2006년에는 쌍춘년 대 소동은 기원전 221년부터 서기 2100년까지 2300여 년 동안 불과 12년에 불과하다는 쌍춘년으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음력 1년이 385일인 해로 쌍춘년에 포함되는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7)필자가 부산에 집회를 인도하면서 말띠와 쥐띠는 서로 불화 있는 궁합이라고 했더니 앞에 있는 권사님이 맞어! 맞어! 했습니다.
(8)필자가 집회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이 젊은 교인들에게 ‘내년 해는 말띠 해니까 애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여자 말띠는 사주팔자가 쎄기 때문에 잘 못하면 아들 잡아먹는다고 결혼을 피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무속적인 생각입니다.”
3) 가택신앙과 마을신앙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1)무속 음악인 무가(巫歌)
필자가 어느 교회 노인 대학을 강의를 갔더니 ‘성주풀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성주는 가택 신앙에서 최고 어른 신(神)인 ‘성주 신’을 말하는 것인데도 그걸 교회에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 천 년을 이어온 무속신앙이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떡 버티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2)손(損) 없는 날
이사하는 성도들이 일진과 방위동서남북를 보아 이사 날짜를 정하고 길일을 택해 이사를 합니다. 사업장을 개업할 때나 결혼할 날을 정할 때도 손(損) 없는 날을 택일 합니다. ‘손(損)’이란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에게 해코지한다는 귀신을 뜻하는 말로 ‘손님’을 줄여 부르는 것입니다. 귀신(鬼神)이 움직이지 않는 날을 ‘손(損) 없는 날’이라고 해서 손해를 보지 않는 날로 각종 택일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사한 후에도 고물로 만든 시루떡을 해 먹는다. 붉은 팥의 주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재액(災厄)을 몰아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기복신앙인 셈입니다.
(3)한국교회의 대형집회와 부흥회
한국 샤머니즘의 마을신앙인 “부락제” 내지는 무당의 “단골판”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락제는 천지신명에게 국가나 부락의 수호와 농사의 풍작을 비는 제사의식 인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공동의식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동네 사람들이 재난을 피하고 풍작과 마을의 평안을 빌기 위해 공동으로 천지신명에게 소원 성취를 비는 향토적인 연중행사였습니다. 한국교회도 봄과 가을 부흥회를 연중행사로 했습니다. 무당이 굿하듯이 부흥사를 불러다가 광신적인 집회를 여는 것은 “기독교적 푸닥거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흥회의 메시지가 회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축복에 있으며, 부흥회의 목적이 교회건축 등 타목적에 이용됨은 샤머니즘의 기복신앙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4)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한국 샤머니즘에 큰 비중을 차지하여 무속신앙과 함께 한국교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는 인생의 운명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것이 천지에 있는 생기 즉 음양오행이라고 말하는데, 산수, 방위를 잡고 땅속을 흐르고 있는 생기를 타서 묘를 쓰면 자손이 번성하고 출세한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많은 무속적인 풍수지리설이 혼합되어 있기도 합니다. 필자가 하관 장례예식인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묘지 자리가 풍수지리설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터 자리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명당(明堂)문화권에서 한국 기독교가 자유롭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목회 주위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명당을 의식한 묘지 이장을 한식에 지관장이를 초빙한 가운데 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기독교식 장례를 하면서도 특정시간에 하관예배를 세속풍습에 맞추려는 사고, 또한 묘지를 선정할 때도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地官)들을 불러다가 명당(明堂)을 운운 한다든가,등은 불교, 유교와의 혼합된 장례의식이라고 지적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세속적인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미풍양속으로 여겨질지라도 복음진리에서 철저하게 배제해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명당을 무시하고도 우리나라보다 잘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풍수지리설에 혼취해서 명당 찾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제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이런 명당사상을 청산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한국 교회는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 국토 면적에 비하면 95배가 넘는 큰 나라인데 그들은 국토를 아끼기 위하여 땅 한 평에 3구를 장례하다가 지금은 그것도 넓다고 하여 관을 세워서 매장하므로 1평당 9구의 시체를 매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묘역이 10평도 넘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미신행위와 무속행위를 엄히 비판하기보다 성도들의 묘지가 이방인들에게 위기감을 주는 교회묘지가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무속신앙(巫俗信仰)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수 천 년을 이어온 무속신앙이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떡 버티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 기독교인의 생각과 삶에서, 가정과 일터와 이 땅에서 무속 신앙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기복신앙.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교회가 기복사상의 늪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기복사상은 무속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입니다. 한국 무속신앙의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기복사상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영적인 복의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팔복은 없습니다. 저승보다 이승 좋다는 사상이 바로 한국교회 안에 많이 있다고 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빌어 구원 얻는 진리를 전하고 있지 세상에서 번영하는 비결을 말하거나 축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과 또한 바울 사도가 그토록 성도들에게 당부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말씀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과 강북 한 교회씩 52주 설교제목을 연구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강남교회는 축복설교가 77.7% 강북교회는 55.2% 주님 재림설교는 강남교회는 1,87% 강북교회는 5.6%로서 무속신앙의 기복신앙이 한국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2)비윤리성
무속신앙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가운데 또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비윤리성입니다. 한국 무속신앙에는 한 마디로 말해 가치나 윤리성이 없습니다. 한 가지 가치의 기준이 있다면 다 악선 뿐이라는 것이 무속신앙을 연구한 학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무속신앙에서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존재하는데 선한신은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신은 재앙을 준다고 믿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선신이라도 대접을 잘하지 않으면 재액(災厄)을 줄 수도 있고, 악신이라도 잘만 대접하면 복(福)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선악은 윤리적인 규범이 되지 못하고 다만 물질적인 축복이 선과 악을 구분할 뿐입니다. 기독교와 같은 계명이나 경전이 없습니다.
서구의 문화 구석구석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 가르침은 윤리적입니다. 한국의 문화는 구석구석에 무속적인 비윤리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정을 중요시 않고 결과를 중요시 하는 문화가 한국교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주님의 교회 안에서, 그것도 성직자들이 부정직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교회와 지도자의 발언을 신임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기도할 때 늘상 하는 말 중에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해 달라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설교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무속신앙 비윤리성의 영향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3)일진운세 일진운세 따지는 기독교인이 의외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진과 방위(동서남북)를 보아 이사 날짜를 정하고 길일을 택해 이사를 합니다. 사업장을 개업할 때나 결혼할 날을 정할 때도 손 없는 날을 택일 합니다. ‘손’이란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에게 해코지한다는 귀신을 뜻하는 말로 ‘손님’을 줄여 부르는 것이다. 귀신이 움직이지 않는 날을 ‘손(損) 없는 날’이라고 해서 손해를 보지 않는 날로 각종 택일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사한 후에도 고물로 만든 시루떡을 해 먹습니다. 붉은 팥의 주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재앙을 몰아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도 개업식에는 붉은 팥으로 만든 시루떡은 꼭 빠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일종의 무속적인 신앙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 뉴스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서울 시장이 어느 교회 집사님 이였습니다. 그런데 수서사건으로 시장 직을 시작한지 6일 만에 그만 두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자 앞에서 XXX집사님 참으로 관운이 없습니다. 하는 것 이였습니다.
5) 점술(占術)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
한국교회의 비기독교적 요소 중에 주목해야 할 것은 무당이 예언을 하듯 한국교회 내에서도 이러한 점술화 되어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기독교 예언기도입니다.
(1)신년 점괘(占卦)가 한국기독교에 끼친 영향
교회 마다 한해를 역사 속으로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예배를 드리며. 새해 한 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하심을 소망하면서 신령과 진정한 예배로 새해를 교회에서 맞이 합니다. 그러데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한국 초대 교회에 없었 던 성구 뽑기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이 아직도 이 땅에는 소위 신년 신수 보는 “토정비결(土亭秘訣)” 신년 운수 점술 영향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점복(占卜)문화가 아직도 한국교회와 기독교 가정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2) 점술(占術)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 필자가 김해시에서 부흥전도 집회를 인도하면서 담임목사님 처형께서 모기도원 원장에게. 집을 팔기 위해서 예언기도를 받았는데, 서쪽에서 오는 사람하고 집 계약을 해야 아무 탈이 없다는 예언 기도를 받고, 집이 팔리기를 바랐는데 서쪽에서 오는 사람은 없고, 남쪽 북쪽 사람만 와서 집은 정상 값에 팔지 못하고 몇 천만 원의 재산상 손해를 보고 말았다고 불평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필자가 또한 기도원 집회인도 초청을 받고 설교를 마치자 원장께서 은사 집회인 예언기도를 하는데 필자가 역술인 집에 왔는지 무당 집에 왔는지 혼돈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는 역술(曆術)인을 찾아가지 않아도 예수 무당들이 교회 주변에 많이 있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행위의 뒤에는 결국 무속신앙의 영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점술에 의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을 하는 자나 무당을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명기18:10-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신명기 18장에는 8가지 이방의 점술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70년대 이후 급성장하면서 신앙과 전통문화생활과 이원화를 미처 막지 못하고, 교회 안의 무속적인 요소를 걸러내지 못한 탓"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승원 나사렛대 교수는 역술이 번성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 했습니다. 성경은 시편 37;5절에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점괘를 의지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27절에“염려한다고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말씀했습니다.
유해룡 장신대 교수는 “점(占)을 보는 행위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보다 우연히 주어지는 행운을 기대하면서 구하는 사행성 심리에 불과하다”고 지적 하고 있습니다.점술가들이 점괘를 보기 위해서는 신접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신접을 명백히 금하는데(신18:11) 그것은 신접의 대상이 잡신, 즉 타락한 천사, 귀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 성도들이 점괘를 봐준다는 것은 성경적인 의미에서 귀신의 역사에 순복하는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3) 무당(巫堂)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
오늘날 일부 교회의 현실이 정통 교회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성도들은 목사가 마치 영험 있는 무당(巫堂)인양 생각하고 재난을 추방하고 복을 빌기를 원합니다. 무속신앙(巫俗信仰)화 된 일부 한국교회 교인들은 일정한 자기 관한권이 있는 지역의 전속 무당인 단골무당이 한 달에 몇 차례씩 자기 단골판 가정을 방문하는 것과 같이 교역자의 심방을 고대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집회한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권사님 집에서 소가 송아지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어가자 목사님께 달려 와서 소에게 ‘안수기도“를 해달라는 것 이였습니다.
필자가 어느 기도원 집회를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낮 집회를 마치고 오후에 운동 삼아 기도원 주위를 돌고 있는데 기도원 원장이 귀신(鬼神)들은 자를 퇴치방법으로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속신앙에서 빙의 들은 자 치료 방법으로 복숭나무 동쪽가지 즉 양기(陽氣)가 있는 가지를 꺾거나 때려서 귀신(鬼神)을 내쫓는 방법입니다.
(4) 굿(㖌)판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이 난다”, “신명 난다”, “신바람“의 ‘신”자는 귀신의 神자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에 의한 혹은 신령의 흥 바람이 신명이고 신바람입니다. 신접(귀신)이 아닌 사람은 귀신에 들리지 않고 신령에 잡히지 않으며 신명도 신바람도 피울 수가 없습니다.
굿(㖌)판에서 무당이 신귀(신접)에 잡혀서 그리고 신귀에 실려서 춤추고 노래(무가)하면서 황홀과 앙분과 격앙과 도취를 번갈아 넘나드는 것이 무당이 신명이고 신바람입니다. 어느 교회의 집회에서 ‘성령 춤’, ‘은혜에 춤’을 추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찬송이 빨라지고 손뼉을 치면서 뒤기 시작하는데 60cm이상 뛰어오르며 몇 시간 이상 지속하면서 ‘아- 신이 난다’. ‘아- 신명 난다’, ‘아 신바람 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속신앙의 세계에서의 신바람에는 감정과 기예와 지능까지 어울려 굿(㖌)장단에 신명의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문화를 예(제례)와 악(음악)의 문화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신명문화는 하나로 어울리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무당의 굿(㖌)판에서도 이 신명바람은 무당에게서 구경꾼들에게 이내 감염되면서. 굿(㖌)판 마당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사람이 무당을 거쳐서 오는 신접바람에 휩쓸리는 현상이 특징입니다. 그 곳에는 울음과 슬픔과 애환이 있고, 입신, 진동, 투시, 치료, 축원이 있는 것이 굿(㖌)판입니다. 그러므로 “굿(㖌)을 보러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한국교회가 흔히 쓰는 “예배 보러간다”라고 하는 것은 무속문화에서 온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는 “굿(㖌)판” 터가 되고 목회자는 무당이 된 곳도 없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적 섭리에 대한 기대보다 그의 영력의 주술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최면술학원의 수강자들 중에 목회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령역사가 아니라 학습무당 같이 최면술학원에서 배운 것을 교회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목회자로 인정 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 나가는 것을“ 예배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굿(㖌)”에 참여한 구경꾼 같은 태도로 예배를 드린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굿판 화한 한국 교회가 그리 적지 않다고 필자도 동의합니다. 무당이 굿(㖌)하거나 무가(巫歌)에 신탁인 공수 신명이 있어야 은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잘못된 의도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되고 바른 신앙과 관계없는 옛 신앙과 옛 사상에 젖은 채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속적인을 것을 벗어버리고 교회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무속(巫俗)적인 것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 교회 생활을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성령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해야 하고 지난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마치 새 빌딩을 짓기 위해서 낡은 집을 헐어버려야 하듯이. 기독교인의 마음과 삶에 주님의 새 집을 짓지 위해서는 지금까지 전통적(傳統的)으로 살아왔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주의 말씀이 기독교인 안에 가득하게 하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5)복채가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
무속신앙(巫俗信仰)은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무당굿에는 봄과 가을에 집안의 복을 비는 재수 굿을 빌어 줍니다. 굿에는 반듯이 복채가 따르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헌금에는 복채(헌금)와 같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복을 받을 것을 기대함도 무속신앙(巫俗信仰)의 무당의 기능과 흡사합니다. 무속신앙의 “굿(㖌)판”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복채가 뒤따릅니다. 그러므로 무당(巫堂) 굿은 거저 해주는 무당은 없습니다. 무당이 모신 신령은 많은 돈을 내놓아야만 굿을 잘해 줍니다.
기독교 성경에는 거저 받은 은혜 거저 주고받는 신앙의 공동체 정신이 샤머니즘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의 기도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욱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되도록 많은 헌금을 요구하는 현상은 무속신앙적인 가치관이나 행동양식과 유사하게 변질되어 가는 기독교문화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필자도 전국 2000여 교회 부흥회를 인도 하면서 무당 굿(㖌)하 듯이 하지 안했나 회개합니다.
3, 나오는 말
한국 교회에는 외적인 면에서는 크게 성장하고, 민족과 문화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냉정히 비판의 눈으로 한국 기독교가 얼마만큼 성경적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무속신앙은 한국 기독교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토착화란 미명 속에 은폐되어서는 안 되고, 교회부흥 수단의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한국의 무속신앙은 한국인의 생활의 뿌리를 형성, 특별한 세시풍속(歲時風俗)(설, 추석, 삼복 날, 단오, 동지), 통과의례(通過儀禮)(출생, 백일, 돌, 결혼, 환갑, 장례), 민간신앙(民間信仰)( 가택신앙, 마을신앙, 고사, 부적, 굿, 점술 풍수지리)의 행태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아 좌지우지합니다. 심지어 옛 관습과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거듭난 크리스천들의 생활 곳곳에도 무속신앙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무의식 속에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세시풍속의 지배를 받는 형태들입니다. 실례로“말띠와 쥐띠는 가정불화가 많아 결혼하면 안 된다”, “이사를 가려면 손(損) 없는 날에 이사를 가야 한다.”, “대학을 붙으려면 어느 쪽 방향의 대학에 지원해야 하나”, “ 시험 볼 때 미역 국 먹지 말아야 한다?”등 기독교인 가정들도 이런 저런 일에는 궁합(宮合)을 보고, 점(占)치고, 날을 택일 해서 이사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크리스천들의 생활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무속행위를 깨끗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특히.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지키고 있는 환갑은 동양사상인 주역에서 인생의 주기를 만 60 세로 본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환갑이 지나면 사주팔자 패가 나오지 않습니다. 환갑은 생일의 마지막 기념일이라는 뜻으로 제사상과 똑같이 차린 것은, 즉 살아있는 조상(祖上)귀신을 모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신앙행태를 보면, 생각은 불교적(佛敎的)으로 하고 생활은 유교적(儒敎的)으로 살고, 신앙은 무속(巫俗)(샤먼)적으로 믿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필자는 무속신앙이 한국 기독교를 병들게 하고 혼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정서를 본서에서 고찰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무속신앙화 하느냐 아니면 무속신앙이 기독교화 하느냐 하는 것이 실로 중대한 일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보수화하느냐 협상{융화}화하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냉철히 반성하고 혹시라도 무속신앙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가는 부분은 없는지 복음의 중심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가지 않는지 깊이 살피고 샤머니즘에 물들어 있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물들지 않는 올바른 복음의 열매가 맺히도록 해야 합니다.
본 기고 글은 승려생활에서 개종한 목사로서 무속신앙이 한국 기독교를 병들게 하고 혼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정서인 교회 안에 무속신앙에서 고찰했습니다. 본 원고는 여러 기독교 신문사에 요청으로 연재한 것을 엮어 "한국교회와 무속신앙 "1,2,3,4,권을 출간 한 "책 내용을 요약 했습니다. 즉 본 강의 안은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무속의 영향이란 주제로 장소; 카톨린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대강당 일시;2010 5. 17일 09;00--18;30분까지 제2회 워크샵 교안입니다.
서재생목사 약력*
.전북 고창 출생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생활에서 개종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총신대학교 목회대학원 졸업
.전국2000여 교회 부흥회 및 전도 집회 인도
.기독교 CBS TV 방송 "새롭게 하소서" 1982년, 2007년 2회 출연
.기독교 CTS TV 방송 "42번가의 기적" 1996년 1,2 부 2회 출연
.미국 LA IBC TV 방송 "새롭게 하소서" 1991년 연속 4주간 25분 씩 출연
.미국 워싱톤 기독교방속 "햇빛되게 하소서 " 1,2 부 2회 출연
.캐나다 토론토 기독교 CBS 방송 2006년 출연
.복음신문 "세시풍속과 기독교" 3년 연재
.복음신문 "불교와 기독교 주제별 비교론" 2년 연재
.현, 여러 기독교 신문에 칼럼 기고
.전, 남서울중앙교회(피종진목사) 부목사 15년 역임
.현, 기독교 개종선교회 회장
.현, 서울대현교회 개척 담임목사
저서
.스님 예수님 믿으면 좋겠어요(1982)
.재생의 길 (1985)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론 (1992)
.목사님 "나무아미타불"이 뭐예요(1995)
.목사님도 모르는 교회안에 무속신앙(2005)
.목사님도 모르는 세시풍속과 통과의례(2005)
.목사님도 모르는 가택신앙과 마을신앙과 동물신앙(2005)
.불교권 선교전략을 위한 불교와 기독교 주제별 비교론(2006)
.목사님도 모르는 교회속 불교,도교 용어들 이것만은 바로잡자(2007)
.논문/ 기독교와 불교의 고난에 대한 비교연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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