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1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김호기의 시대 읽기]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김호기의 시대 읽기]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김호기의 시대 읽기]
입력2026.06.29. 

생명 존엄성·민족정신, 다채로운 삶의 서사
대하소설 ‘토지’가 일궈낸 두 문학적 성취
21세기 현재에 던지는 의미 성찰해 봐야

편집자주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지구적·한국적 차원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흐름을 읽어보려고 한다. 우리 시대에 대한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진단에 기반하여 우리 사회의 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통영에 자리한 박경리기념관. 토지문화재단 제공

청춘의 시절, 내게 시대 읽기의 스승은 작가들이었다.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의 비극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포스트모던 세계의 개화를 일러줬다. 이제 노년의 시절, 문학의 힘이 옛날 같지 않다. 내겐 여전히 인문의 집을 지키는 오래되고 지혜로운 주인이지만 말이다.

올해는 작가 박경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박경리는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단편 '불신시대'와 장편 '김약국의 딸들' 등을 발표해 광복 이후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19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해 1994년에 완간했다. 강원도 원주로 이사해 창작 활동에 전념하다가 2008년 세상을 떠났다.

'토지'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집 3대가 살아온 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룬다. 소설의 무대는 만주, 서울, 일본으로 확장된다. 개인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에 식민 지배와 민족 독립이라는 사회의 역사가 덧대진다. '토지'는 20세기 전반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하고 또 상상하게 한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토지'의 성취를 고평한 이는 국문학자 최유찬이다. 그는 '토지'의 창조성을 내용과 형식으로 나눠 살펴봤다. 내용의 측면에선 인간 탐구, 생명의 연민과 사랑, 한민족 세계관을 담고 있고, 형식의 측면에선 전통과 현대의 조화, 입체감과 생동감의 형상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거였다. '토지'의 한계를 주목한 이는 국문학자 김윤식과 정호웅이다. 이들은 역사가 개인에게 강제하는 힘을 박경리가 가볍게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토지'에는 윤리적·심리적·운명론적 세계관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거였다.

내가 박경리의 '토지'를 불러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토지'의 사회학적 함의다. '토지'는 무수한 실존적 생명들이 갖는 존엄성을 부각시킨다. 이 존엄성의 옹호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정신의 구현으로 나아간다. 21세기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일국적 각자도생(各自圖生)'과 '지구적 각국도생(各國圖生)'이다. 이 '이중적 도생 시대'에 생명의 무한한 존엄성과 국익 우선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시대 가치라 할 만하다.

다른 하나는 K컬처의 미래다. K컬처의 힘은 K콘텐츠의 힘이다. K콘텐츠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견뎌온 슬픔과 좌절은 물론 간직해온 희망과 열정을 풍부하게 담아내 보편적 공감을 모아 왔다. 21세기는 욕망이 이성을 지배하고,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고, 전쟁이 평화를 위협하는 시대다. K컬처가 계속 지구적 공감을 얻으려면 이런 시대 풍경 속에 놓인 삶들을 다채로운 서사로 형상화해야 한다. '토지'는 이러한 서사의 개인적·가족적·민족적 원형을 선사한다.

‌지난 18일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2026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열었다. 문학제에서 박경리의 '토지' 역시 다뤄졌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올바른 과거 이해 없이 객관적인 현재 진단과 소망스러운 미래 전망은 없다. '토지'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의 역사적 과거의 문을 열게 한다. 시대정신을 탐구하는 사회학자로서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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