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1

[ytzsche님의 서재] : 알라딘 서평

[ytzsche님의 서재]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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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작성일

모래사나이, 샌드아트의 혼몽한 세계 속으로. (공감0 댓글0 먼댓글0)
<모래 사나이> 2020-05-21
'네번째 원고', 논픽션 글쓰기의 아트. (공감0 댓글0 먼댓글0)
<네 번째 원고> 2020-05-02
인생의 특별한 관문, 미국의 오랜 학력 테스트 와중에 바라는 대학의 모습 (공감1 댓글0 먼댓글0)
<인생의 특별한 관문> 2020-04-21
이 책은 ‘기생충‘에서 은유되던 가난의 모습에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실감을 더해넣는다. 쪽방촌, 국가의 정책이나 관리에서도 빗겨난 그곳은 어쩔 수 없는 빈곤의 냄새가 가득한 지하 관짝과도 같은 공간인 거다. 단편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던 그곳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이 책을 내민다. (공감7 댓글0 먼댓글0)
<착취도시, 서울> 2020-02-13
2017년 현재 베트남=호치민을 보는 맑시즘적 해석에 대한 정리. (공감1 댓글0 먼댓글0)
<현대사상 제18호 : 호치민> 2019-10-12
한 인물과 한 나라의 역사가 이토록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은. (공감1 댓글0 먼댓글0)
<호치민 평전> 2019-10-12

어정쩡한 리버럴, 음흉한 역사수정주의자에 팩트의 칼날을 내리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2019-10-12
[타인은놀이공원이다] 인터뷰이와 독자가 함께 뛰놀도록 해주는 놀이터 마스터, 지승호. (공감0 댓글0 먼댓글0)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2019-10-12
조심스럽게 열린 와중에 서늘하게 드러나는 날카로움. (공감0 댓글0 먼댓글0)
<장수 고양이의 비밀> 2019-08-12
마침내 오고야 말 붕괴, 그에 이르는 여정 하나. (공감0 댓글0 먼댓글0)
<익사 (무선)> 2019-08-12
플랫폼 장사꾼들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유효한 경고. (공감2 댓글0 먼댓글0)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2019-08-12
시니컬하고 천연덕스러운 농담. (공감0 댓글0 먼댓글0)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2019-08-12
식물의 일생을 그림으로 담아낸다는 것. (공감0 댓글0 먼댓글0)
<식물 산책 (봄꽃 에디션 한정 판매)> 2019-08-12
국제정치와 세계를 바라보는 겹눈을 훈련하기 (공감2 댓글0 먼댓글0)
<결정의 본질> 2019-08-12
이야기가 담긴 위스키 한잔이 땡기는 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2019-08-12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 (공감0 댓글0 먼댓글0)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019-08-12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 (공감0 댓글0 먼댓글0)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019-08-12
바움가르텐, 미학의 거대한 숲을 예비하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미학> 2019-08-12
만일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19-08-12
바움가르텐, 미학의 시작.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19-08-12
'장수 고양이의 비밀', 조심스럽지만 근성있게 궁시렁대는 하루키.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19-06-03
한국 현대사를 문학작품의 추이로 꿰어보는 시도. (공감1 댓글0 먼댓글0)
<한국인의 발견> 2018-10-12
민족 코드에 갇히지 않는 윤동주의 전체. (공감0 댓글0 먼댓글0)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018-10-12
한국인의 탄생, 소설읽기를 통한 사상의 탐구. (공감2 댓글0 먼댓글0)
<한국인의 탄생> 2018-10-12
박유하의 반대편엔 누가 서 있는 걸까. (공감22 댓글0 먼댓글0)
<제국의 위안부> 2018-08-06

이틀동안 국악을 들으며 발효되는 한국과자가 있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2018-07-24
이런 가이드북은 없었다, 진부하지만 사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오로지 일본의 맛> 2018-07-19
북유럽, 이 막연한 덩어리를 분별시켜주는 여행뽐뿌책. (공감0 댓글0 먼댓글0)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2018-07-19
포크너의 곰,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의 삶과 변화. (공감0 댓글0 먼댓글0)
<곰 (무선)> 2018-06-21
백분지일에도 못미치는 짧은 단상, 자해와 관음에 대한. (공감0 댓글0 먼댓글0)
<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2018-05-27
키플링의 세상에서 키플링의 시각으로. (공감2 댓글0 먼댓글0)
<킴 (무선)> 2018-05-06
전쟁의 전후, 소설의 안팎, 그 혼몽한 위로. (공감1 댓글0 먼댓글0)
<제5도살장 (무선)> 2018-04-25
우화등선, 트랜스휴머니즘의 오랜 꿈. (공감4 댓글0 먼댓글0)
<트랜스휴머니즘> 2018-04-18
고문서를 찾고 읽고 해석하는 보물찾기. (공감3 댓글0 먼댓글0)
<고문서 반납 여행> 2018-04-13

어쨌거나 우리는 만나야 한다. (공감3 댓글0 먼댓글0)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 2018-04-13
용의자의야간열차, 생활인의 무거움과 여행자의 비애 사이에. (공감0 댓글0 먼댓글0)
<용의자의 야간열차 (무선)> 2018-03-25
이인, 뫼르소가 읽은 신문기사라는 프랙탈. (공감0 댓글0 먼댓글0)
<이인 (무선)> 2018-03-24
순교자,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목사의 고백. (공감0 댓글0 먼댓글0)
<순교자 (무선)> 2018-03-23
거꾸로보는고대사, 신채호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거꾸로 보는 고대사> 2018-03-23
1984, 지배계급의 '영구혁명'이 진행되는 세상, 1984 혹은 현재. (공감1 댓글0 먼댓글0)
<1984 (무선)> 2018-03-23
자유죽음, 자살할 자유를 허하라. (공감2 댓글0 먼댓글0)
<자유죽음> 2018-03-23
민중에서시민으로, '대한민국'은 좀더 갈갈이 찢어져야 한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민중에서 시민으로> 2018-03-23

경쟁에반대한다, 당신의 실패가 나의 성공, 그리고 대부분 실패하는 세상. (공감0 댓글0 먼댓글0)
<경쟁에 반대한다> 2018-03-23
1Q84, 삶에 대한 '방법적 회의'의 밑장, 그리고 '리틀 피플'의 공갈협박. (공감0 댓글0 먼댓글0)
<1Q84 1> 2018-03-23
분노하라, 푸랑스의 레지스탕스가 한국의 레지스탕스들에게. (공감1 댓글0 먼댓글0)
<분노하라> 2018-03-23
소금꽃나무, 거북선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공감1 댓글0 먼댓글0)
<소금꽃나무> 2018-03-23
설득, 뒤늦게 도착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답안 하나. (공감0 댓글0 먼댓글0)
<설득 (무선)> 2018-03-23
긍정의배신, '긍정적'이란 말이 좋단 뜻은 아니다. (공감2 댓글0 먼댓글0)
<긍정의 배신> 2018-03-23
부의미래, 시간, 공간 그리고 지식의 혁신 (공감0 댓글0 먼댓글0)
<부의 미래> 2018-03-23
스티브잡스, 아이폰은 좋지만 당신 삶엔 관심없어요. (공감0 댓글0 먼댓글0)
<Steve Jobs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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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왜 불안감이 찾아드는지에 대한 진단. (공감1 댓글0 먼댓글0)
<불안> 2018-03-23
맹신자들, 새삼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은 의심하라. (공감3 댓글0 먼댓글0)
<맹신자들> 2018-03-23
멋진신세계, 우리는 어떤 비인간을 껴안고 살고 있을까. (공감0 댓글0 먼댓글0)
<멋진 신세계> 2018-03-23

2030크로스, 손쉬운 세대론을 거부하는 세대론 이야기.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30 크로스> 2018-03-23
경청, 그 소통이 우릴 어디로 데려갈까. (공감0 댓글0 먼댓글0)
<경청> 2018-03-21
제비뽑기, 손에 잡힐 듯한 분위기. (공감0 댓글0 먼댓글0)
<제비뽑기> 2018-03-21
절망, 나른함과 시니컬함의 어지러운 이중주. (공감0 댓글0 먼댓글0)
<절망 (양장)> 2018-03-21
석별, 오사무의 실망과 허무주의. (공감0 댓글0 먼댓글0)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 (무선)> 2018-03-21
모더니티읽기, 모던을 사는 이의 모더니티 탐구. (공감0 댓글0 먼댓글0)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2018-03-21

롤리타, 지대넓얕 말고 제대로 마주해보기. (공감1 댓글0 먼댓글0)
<롤리타 (무선)> 2018-03-21
현의노래, 전체보단 부분의 아름다움. (공감0 댓글0 먼댓글0)
<현의 노래> 2018-03-21
한밤의아이들, 격동의 인도현대사 30년 (공감0 댓글0 먼댓글0)
<한밤의 아이들 1 (무선)> 2018-03-21

황제의코담뱃갑, 대청소 직후의 후련함. (공감0 댓글0 먼댓글0)
<황제의 코담뱃갑> 2018-03-21
2015젊은작가수상작품집, 좋은 소설이란 뭘까.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8-03-21
대성당, 더이상 세계는 평화롭지 않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대성당 (무선)> 2018-03-21
좌우파사전,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내용들. (공감0 댓글0 먼댓글0)
<좌우파 사전> 2018-03-21

최선의삶, 읽기 힘든 소설이라는 칭찬. (공감0 댓글0 먼댓글0)
<최선의 삶> 2018-03-21
실낙원, 의외로 매력적인 전시용 고전. (공감0 댓글0 먼댓글0)
<실낙원 2 (무선)> 2018-03-21
실낙원, 의외로 매력적인 전시용 고전. (공감3 댓글0 먼댓글0)
<실낙원 1 (무선)> 2018-03-21
면도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에 대란 면도날 질문. (공감0 댓글0 먼댓글0)
<면도날> 2018-03-21
아무도모르는사이에죽다,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 정말로. (공감0 댓글0 먼댓글0)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2018-03-21
유전자세포뇌, 이기적유전자의 망령을 벗어나기. (공감1 댓글1 먼댓글0)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 2018-03-21
대한민국은왜, 어디서부터 돌아봐야 할까. (공감0 댓글0 먼댓글0)
<대한민국은 왜?> 2018-03-21
소각의여왕, 승리후의 항복이란 아이러니. (공감0 댓글0 먼댓글0)
<소각의 여왕> 2018-03-21
불안, 자리뺏기싸움이 문제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불안> 2018-03-21
5월의파리를사랑해,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 내 사랑. (공감0 댓글0 먼댓글0)
<5월의 파리를 사랑해> 2018-03-21
네가누구든얼마나외롭든, 별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는 소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018-03-21
강의, 모든 사상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강의> 2018-03-21

독재자를무너뜨리는법, 책 제목이 아쉽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2018-03-21
두얼굴의조선사, 헐겁고 엉성한 그물질. (공감2 댓글1 먼댓글0)
<두 얼굴의 조선사> 2018-03-21
프루스트를좋아하세요, 매순간 충만한 삶의 조각들. (공감0 댓글0 먼댓글0)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2018-03-21
우리는서로조심하라고말하며걸었다, 제목부터 너무. (공감0 댓글0 먼댓글0)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2018-03-21
너무한낮의연애, 지금 이순간은 사랑해. (공감0 댓글0 먼댓글0)
<너무 한낮의 연애> 2018-03-21
엄마를요리하고싶었던남자, 총천연색의 풀컬러 세상을 만나보자. (공감0 댓글0 먼댓글0)
<엄마를 요리하고 싶었던 남자> 2018-03-21
0년, 지금의 세계가 만들어진 그 해. (공감1 댓글0 먼댓글0)
<0년> 2018-03-21
아내를모자로착각한남자, 복잡하고 통합적인 뇌의 작동방식. (공감0 댓글0 먼댓글0)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18-03-21

채식주의자, 망연함이 글이 되었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채식주의자> 2018-03-21
슬픈미나마타, 차라리 소설로 읽혀야 할. (공감0 댓글0 먼댓글0)
<슬픈 미나마타> 2018-03-21
우리의민주주의거든, 지배 대상이나 한낱표가 아니라. (공감0 댓글0 먼댓글0)
<우리의 민주주의거든> 2018-03-21
박완서산문집, 이야깃꾼 할머니의 무릎베개. (공감0 댓글0 먼댓글0)
<박완서 산문집 세트 - 전7권> 2018-03-21
예술과경제를움직이는다섯가지힘, 경제를 말하기 위해 예술을 갖다쓰는 책. (공감0 댓글0 먼댓글0)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2018-03-21
우리는어떻게괴물이되어가는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책. (공감0 댓글0 먼댓글0)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2018-03-21
군자를버린논어, 공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군자를 버린 논어> 2018-03-21

어두운상점들의거리, 결국 모두 사라진다는 것. (공감0 댓글0 먼댓글0)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2018-03-21
나는단순하게살기로했다, 후쿠시마 이후의 디지털 노마드 인생. (공감0 댓글0 먼댓글0)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2018-03-21
히틀러의비밀서재, 책과 서재는 그 사람을 말한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히틀러의 비밀 서재> 2018-03-21
햄릿, 죽느냐사느냐의 질문을 넘어. (공감1 댓글0 먼댓글0)
<햄릿 (무선)> 2018-03-21
인생따위엿이나먹어라, 두번 먹어라. (공감0 댓글0 먼댓글0)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2018-03-21
템페스트, 셰익스피어의 밝고 긍정적인 면. (공감1 댓글0 먼댓글0)
<템페스트 (무선)> 2018-03-21
환상통, 씨발 죽어도 좋아. (공감1 댓글0 먼댓글0)
<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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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그이웃나라들, 참 잘 돌아다니던 그녀. (공감2 댓글0 먼댓글0)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2018-03-21

쿨하고와일드한백일몽, 후후 역시 하루키군요. (공감0 댓글0 먼댓글0)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2018-03-21
어디갔어버나뎃, 재치 가득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소설. (공감0 댓글0 먼댓글0)
<어디 갔어, 버나뎃> 2018-03-21
코스모스, '과학하기'의 힘을 보여주는 고전. (공감2 댓글0 먼댓글0)
<코스모스> 2018-03-21
스파링, 세상에 대한 분노로 내닫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스파링> 2018-03-21
개인주의자선언, 이런 말랑하고 통찰력있는 아저씨라니. (공감3 댓글0 먼댓글0)
<개인주의자 선언> 2018-03-21
불평등의대가, 지대추구행위를 제한하라. (공감1 댓글0 먼댓글0)
<불평등의 대가> 2018-03-21
미스함무라비, 판사가 본 법원24시. (공감1 댓글0 먼댓글0)
<미스 함무라비> 2018-03-21
고로나는존재하는고양이, 인간화된 고양이 말고. (공감0 댓글0 먼댓글0)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2018-03-21
디어라이프, 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는 재미. (공감1 댓글0 먼댓글0)
<디어 라이프 (무선)> 2018-03-21
미각의비밀, 혀의 맛지도는 가짜였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미각의 비밀> 2018-03-21
권력과인간,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환타지를 걷어내고. (공감0 댓글0 먼댓글0)
<권력과 인간> 2018-03-21
언데드다루는법, 여리고 약한 좀비의 탄생. (공감0 댓글0 먼댓글0)
<언데드 다루는 법> 2018-03-21
나의친애하는적, 자기연민과 자기위안과 꼰대의 사잇길. (공감2 댓글0 먼댓글0)
<나의 친애하는 적> 2018-03-21
모두를위한페미니즘, 페미니즘이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공감3 댓글0 먼댓글0)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2018-03-21

미국의반지성주의, 여전히 지식인이 문제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미국의 반지성주의> 2018-03-21
쇼와육군, 승자의 기록에 편승한 가벼움을 되짚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쇼와 육군> 2018-03-21

서푼짜리오페라, 현실에서 눈돌리지 말라는 집요한 요청 (공감0 댓글0 먼댓글0)
<서푼짜리 오페라> 2018-03-21
보이지않는영향력, 이런 책은 피하는 게 좋겠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보이지 않는 영향력> 2018-03-21
페스트, 작은 인간 실험에 대한 보고서. (공감0 댓글0 먼댓글0)
<페스트 (무선)> 2018-03-21
권위에대한복종, 나무랄데없는 마음의 한 종착점. (공감0 댓글0 먼댓글0)
<권위에 대한 복종> 2018-03-21
전쟁기획자들, 한국 전쟁사에 대한 경제적 접근 (공감0 댓글0 먼댓글0)
<전쟁기획자들> 2018-03-21
정의란무엇인가, 쉼없이 부딪히는 현실의 난제들. (공감1 댓글0 먼댓글0)
<정의란 무엇인가> 2018-03-21
증오의세계화, 이스라엘이란 나라, 그리고 사람의 문제. (공감0 댓글0 먼댓글0)
<증오의 세계화> 2018-03-21

콜럼바인, 전모를 밝힌단 표현의 진수. (공감2 댓글0 먼댓글0)
<콜럼바인> 2018-03-21
소주클럽, 외국인이 지어낸 낯선 한국의 매력. (공감0 댓글0 먼댓글0)
<소주 클럽> 2018-03-21
야망의시대, 중국의 도금시대. (공감0 댓글0 먼댓글0)
<야망의 시대> 2018-03-21
알제리의유령들, 너와 나의 세계가 담고 있는 빈틈과 차이. (공감0 댓글0 먼댓글0)
<알제리의 유령들> 2018-03-21

과학자는전쟁에서무엇을했나, 온건하고 뜨뜻미지근한 입장의 바름. (공감1 댓글0 먼댓글0)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2018-03-21
길위의철학자, 비틀어진 반지성주의의 냄새. (공감0 댓글0 먼댓글0)
<길 위의 철학자> 2018-03-21
받아쓰기, 언어에 민감한 이들의 불편한 언어생활. (공감0 댓글0 먼댓글0)
<받아쓰기> 2018-03-21
비러비드, 노예였던 삶들의 진득한 푸닥거리. (공감1 댓글0 먼댓글0)
<빌러비드> 2018-03-21
카오스, 세상을 꿰뚫는 하나의 지혜라는 야심. (공감0 댓글0 먼댓글0)
<카오스> 2018-03-21
먼북으로가는좁은길, 다정한 지옥도에 관하여. (공감1 댓글0 먼댓글0)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2018-03-21
죽음의집의기록, '그러나'의 향연 속에 깊어지는 속내들. (공감2 댓글0 먼댓글0)
<죽음의 집의 기록> 2018-03-21
마음, 깨어질지언정 더럽혀지고 싶지는 않아. (공감0 댓글0 먼댓글0)
<마음 (무선)> 2018-03-21
햇볕장마당법치, 지속가능하고 불가역한 변화 만들기. (공감0 댓글0 먼댓글0)
<햇볕 장마당 법치> 2018-03-21
굴드의 물고기책, 문장은 만연하고 묘사는 몽롱하다. (공감1 댓글0 먼댓글0)
<굴드의 물고기 책> 2018-03-21
슬픈 인간, 일본 현대사의 병풍 앞 일본작가들. (공감5 댓글0 먼댓글0)
<슬픈 인간> 2018-03-21

강남의 탄생, 강남집값에는 이유가 있다. (공감0 댓글0 먼댓글0)
<강남의 탄생> 2018-03-21
거실의 사자, 먹이사슬의 맨꼭대기 고양이. (공감0 댓글0 먼댓글0)
<거실의 사자> 2018-03-21
'모방범', 타인을 이해하기엔 너무 거대해진 세계. (공감1 댓글0 먼댓글0)
<모방범 1> 2011-05-02
왜근데 벌써 이리 후려쳐서 파는 곳이 많은 건지..ㅡㅜ (공감10 댓글1 먼댓글0)
<Blue Note The Collector's Edition [25CD Box Set][하드패키지 제작 재발매]> 2010-03-15
삼성을 생각하려면, 광고 한 줄 못 타는 이 사회의 분위기를 먼저 생각할 수 밖에.. (공감3 댓글0 먼댓글0)
<삼성을 생각한다> 2010-03-15
와인을 첨 접하는 사람에게 부담없으면서도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 (공감1 댓글1 먼댓글0)
<올 댓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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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육군, 승자의 기록에 편승한 가벼움을 되짚다.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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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26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535



쇼와 육군 -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평점 :




#쇼와육군 #글항아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일본 #전쟁 #쇼와 #육군 #위안부 #박유하 #제국

저명한 르포르타주 작가이자 '자성사관'의 주창자인 저자는 일본 제국주의시대, 그중에서도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견인한 세력이 누구이며 어떤 관점과 목적을 갖고 있었는지에 천착한다. 그저 '일본이 나빴다'거나 도조히데키 개새기,라는 두루뭉술한 선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며, 여전히 피가 흐르는 동시대사를 갈무리된 역사로 넘기기 위해서도 구체적이고 자세한 검증이 필요하단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일본의 정치와 전쟁을 줄곧 주도해온 세력을 육군, 그중에서도 대본영 육군부(참모본부)의 엘리트 군관료집단이라 본다. 군대에 대한 통수권이 국민에 대한 통치권보다 우위를 점한 채 전혀 간섭받거나 통제되지 않던 시대. 육군은 오로지 천황의 재가에 따라 움직이는 황군이라지만, 천황이 허울뿐인 총괄을 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변과 사건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은 육군 엘리트들은 군대조직의 본능에 따라 계속해서 자존 자위를 말하며, 그에 따른 안보선은 넓어지기만 할 뿐이다. 내지를 보전하기 위한 중국 침략, 중국을 보전하기 위한 러시아 견제 혹은 동남아 침략, 급기야 미국에 대한 침략으로. 그렇지만 빈약한 정보와 준비되지 않은 병참, 무엇보다 국가총동원체제로 치뤄지는 전쟁에서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기엔 정신력과 충성심만으로는 중과부적.

책을 덮으며, 그간 우리는 승자의 기록에 손쉽게 편승하고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해방이라는 혜택을 입은 이해당사자로서(얼마나 다행인가, 일본이 폭주하여 스스로 자멸했단 건!), 엄밀하고 냉정한 분석을 필요로 한 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41년말 진주만폭격으로 시작된 미일전쟁, 그리고 그전의 독이일 삼국동맹과 연합국간 다툼을 두고 단순히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대결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나 제국주의 시대였고, 일본은 뒤늦게 시장쟁탈전쟁에 가담한 국가 중의 하나였을 뿐. 미국이 주창한 민족자결과 자유민주의 원칙들은 기실 타국의 대외정책을 견제하고 자국의 통상이익을 수호하는 국익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증거로 뒤늦게 제출되었지 않나.

책의 한계 하나, 저자는 대동아공영권이란 이데올로기가 허위적이고 가식적으로 쓰였음을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그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중립적이거나 혹은 호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아시아와 서양을 대비시키며, 식민지 지배자와 해방자를 대비시키는 구도는 너무 단순하고 나이브하지 않나. 게다가 동남아 전선에 버려진 수천의 무명용사들이 각국의 해방전쟁에 자의로 가담했음을 근거로 대동아공영권의 가치가 살아있음을 말하는 건 비약이다. 그들의 의도와 맥락에 대한 분석없는 점프의 결과는 보편적인 인류애나 가치관이 아닌, 인종과 지역을 근거로 한 대동아공영권 아이디어 자체가 복권될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두번째 한계를 굳이 더하자면, 천백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월간지에 연재된 원고를 근간으로 쓰여지다보니 압축적이지 못하다. 관련자에 대한 심층취재의 생생함을 더하려 했다 해도 겹치는 내용과 장면이 많아, 예컨대 위안부나 전후배상 문제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간 부분이 아쉽다. 전시는 평시와는 다른 가치관과 결정을 필요로 하며 또 당대는 지금과 다른 감각으로 위안부 정책 등이 수행되었다, 는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부분들이 뭉뚱그려졌다. 저자 말대로 이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철저한 연구조사가 선행되어야 그에 따른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가능한 부분일 텐데, 1991년에 씌여진 이 책의 문제의식은 이후 그다지 계승되지 못한 듯 하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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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의 반대편엔 누가 서 있는 걸까.마이리뷰
ytzsche l 2018-08-06 10:53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0262149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인 위안부는 누구인가. 조선인 위안부가 누구인지 중요한 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의 단초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 대한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말이다. 한국의 소녀상으로 대변되는 일제에 납치된 어린 성노예, 아니면 일본 우익이 말하는 자발적이고 직업적인 매춘부. 한일간엔 극단적인 관점의 차이가 점점 공고해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이 우익화된다 비난하고, 일본은 혐한류가 치솟는 게 현재의 상황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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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라는 단어의 스펙트럼을 일회성 강간, 납치성 성폭력, 관리매춘까지 넓히곤, 중요한 것은 식민지지배와 전쟁수행 구조 하에서 그것은 결국 모두 일본의 잘못이자 책임임을 말한다. 굳이 꽃다운 소녀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고도, 군대 주변에 자연스레 형성된 성매매업소 종사자들조차 궁극적으로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비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일본이 위안부 설치와 이용에 대한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선명하다. 항간의 이야기와는 달리 그의 주장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또 근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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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상한 점들은 꽤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중 정대협에 합류하지 않은 이들도 꽤 된다. 일본의 위로금을 거부한 분들 만큼이나 수락한 분들 숫자가 있다. 전쟁 말기 10대 소녀까지 동원해 근로봉사시키는 정신대와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위안부가 헷갈려서 빚어졌던 오류들은 왜 제대로 교정되지 않을까. 정대협이 원하는 해결책은 더이상 법적책임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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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근거들이 반복해서 제시된다. 아울러, 일본인, 조선인과 대만인, 네덜란드인 등이 망라된 위안부조직 내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갖는 특이한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제국의 2등국민으로서 전쟁을 함께 수행하는 여성전투원으로, 조선인 위안부들이 개별적으로 겪었던 상황들의 개인차와 다면성을 풍부하게 드러내려 애쓴다. 일본군이 마냥 짐승같지만도 않았고, 위안부들이 마냥 지옥같은 삶만 산 것도 아니며, 그저 희생자인 것만도 아니고, 그들이 미워하는 게 꼭 일본인 한정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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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박유하는 하나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민족주의라는 프레임으로 가둔 채 항일투쟁에 써먹고 있는 건 아닌가. 그들을 정말 지원하고자 한다면 각자 원하는 방식의 보상과 화해를 얻어내는 것으로도 충분할 텐데, 절반 가까운 분들의 목소리를 지워내며 끝내 비타협적으로 일본 천황의 무릎을 꿇리겠다는 분들만 남기는 건 무슨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사회운동의 지향이 주가 되고 현장의 사람들은 그저 동력이나 땔감이 되어버리는 본말전도의 현상, 그렇게 할머니들을 항일 민족주의의 전사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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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군데를 삭제하고 재출간할 정도로 굉장히 논쟁적인 책이지만, 딱히 합리적인 사유에서 벗어난 부분을 찾기도 어렵다. 평면적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인 위안부의 다면성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사례 수집과 인용에 대한 검증이야 학자들의 몫이니 차치하기로 하고. 다만 아쉬운 건 두가지 정도, 그가 부정적으로 자주 쓰는 '진보좌파'라는 단어가 너무 뭉툭하고 한국엔 특히 부정확해보인단 점이다. 일본과 한국의 진보좌파세력을 한묶음으로 보는데, 반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기치로 한 이상 둘의 차이는 작지 않을 거다. 게다가 한국에서 민족주의 세력을 진보좌파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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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평택 미군 위안부'라는 호칭과 관련한 기사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감히 위안부라는 이름을 윤락 여성에 쓸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이 있었다는데, 박유하의 말대로 군대 주변 기지촌 여성들 역시 국가주의와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빚어진 일이니만치 정부의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이 일본 나쁜놈, 한국 착한놈 따위 나이브한 관점에 비해 세상을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될 뿐더러 사람을 훨씬 더 사람답게 만든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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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한 리버럴, 음흉한 역사수정주의자에 팩트의 칼날을 내리다.마이리뷰
ytzsche l 2019-10-12 21:54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1185117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 지음, 임경화 옮김, 박노자 해제 / 푸른역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대개 그런 주장들은 양립가능하며, 하나의 관점으로는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사건들과 의미를 퍼올려내어 입체적이고 세밀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거다. 미소 냉전이나 한국전쟁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경합하면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더욱 풍성해진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해석도, 경제사적인 해석도 그럴 수 있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근거가 되는 사료나 1차 자료들에 대한 성실한 발굴과 합리적인 해석,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 성과들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계승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엄밀한 주장을 쌓아올리기 위해 개념들을 적확하게 정의내리고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주장의 근거를 왜곡하거나 편의적으로 발췌하는 식으로 독자를 우롱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그 책을 읽는 일반 대중이 그런 팩트체크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건 악의적인 지적사기에 가깝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학문적 엄밀함과 성실성을 결여하고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굉장히 방대한 1차 사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객관적이려 애쓰면서도, 행간에 흐르는 뜨거운 분노가 읽힌다. 과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었던가. 과연 당시 일본정부는 위안부 모집과 관리에 책임이 없었던가. 과연 현재까지 일본은 충분한 사과를 했는가. 아니다. 아니다. 모두 아니다. 결국 저자는 한일 양국으로부터의 빼곡한 증거와 최근 연구 성과를 업데이트함으로써, 기존에 선언적인 수준으로 엉성하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 '일제가 위안부를 끌고 갔다'를 탄탄하게 지지한다. (박유하에 논쟁을 청했으나 거부당했단 것도 킬링포인트)

박유하의 주장과 관점을 저자의 목소리로 요약하면 그렇다. 애초 한국병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으니 일본과 한국이 자연스레 한몸인 것처럼 해석되고, 그래선 조선인이자 일본인인 위안부가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 매춘부에 지나지 않게 된다. 피식민지역에 대한 강제적이거나 구조적인 압박은 보이지 않는 거다. 대신 책임은 모호하게도 '제국'으로 한정된다. 일본과 한국과 대만으로 이루어진 대일본제국의 책임, 그건 사실상 우리모두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와중에 위안부 중에서도 일부 강경파와 정대협이 일본에 끊임없이 사과를 떼쓰고 있다는 게 박유하의 시각이다.

이영훈이나 박유하로 대표되는 이들의 역사인식은 사실 이 지점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건 아닐까 싶다. 일제가 한국을 병합한 것에 대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인식한다. 이영훈은 그래서 식민지배는 한국에 도움이 되었다고 가지를 쳐나가고,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배의 폭력성과 불법성이 아니라 '모든 국가권력이란 나쁜 거야'라거나 '군인의 성욕은 본능이니 인간을 탓해'류의 원죄설로 치환시킨다. 
스스로 반성할 부분도 있다. 리버럴함이라는 거, 그저 얘도 옳을 수 있고 쟤도 옳을 수 있어, 같은 다원주의랑은 다른 건데. 날카롭게 대척하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 사이에서 원만하고 온건한 종합으로 받아들였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그러다가 박유하에 손을 잠시나마 들어주고 말았다. 
일제의 한국 병탄과 식민지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선명한 입장이 필요하다.

#누구를위한화해인가 #정영환 #푸른역사 #박유하 #이영훈 #제국의위안부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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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착취도시, 서울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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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20-02-13 02:04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1499737
착취도시, 서울 -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2월
평점 :


이 책은 ‘기생충‘에서 은유되던 가난의 모습에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실감을 더해넣는다. 쪽방촌, 국가의 정책이나 관리에서도 빗겨난 그곳은 어쩔 수 없는 빈곤의 냄새가 가득한 지하 관짝과도 같은 공간인 거다. 단편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던 그곳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이 책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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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과 한 나라의 역사가 이토록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은.마이리뷰
ytzsche l 2019-10-12 21:56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1185122

호치민 평전
찰스 펜 지음, 김기태 옮김 / 자인 / 2001년 5월
평점 :
#호치민 #평전 #찰스펜 #현대사상 #베트남 #책스타그램

호치민을 다룬 두 권의 서로 다른 책에 대한 소감, 한권은 베트남전쟁의 막바지 통일 베트남의 출현 직전이자 호치민 사후 4년만인 73년에 씌여진 그의 평전, 또 한권은 약 사십년을 뛰어넘어 2017년 현대사상연구소가 대체로 맑시즘적 시각에서 정리한 호치민과 베트남에 대한 논문집이다. 호치민과 베트남,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대체로 미국의 시각 혹은 '자유 진영'의 시각에 잡힌 단편들 뿐이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학사논문을 쓸 때도 미국 반전여론의 추이만 살폈을 뿐 베트남인들에게 이 전쟁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심밖이었더랬다.

그런데 이 호아저씨, 엄청나다. 소박하고 사심없는 정치지도자이자 수십년의 무력항쟁을 앞장서 이끈 전사, 게다가 민족해방과 사회주의혁명을 조화시키려는 혁명가로 한평생을 살았다. 체게바라를 찜쪄먹을 수준의 공력이자 삶이다. 게다가 수개 국어를 구사하며 아시아와 유럽, 소련과 미주를 넘나들며 베트남 해방과 세계혁명을 위해 코민테른을 움직이다니, 이정도 급의 인물이 마오 빼고 아시아에 몇이나 될까.

그의 삶이 곧 베트남 현대사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를 극복한 인도차이나전쟁의 승리를 만끽하기도 잠시, 바야흐로 시작된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은 베트남을 강제 분할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호치민은 그리고,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유일한 승리를 얻어낸다. 직접적인 군사력과 전술 이외에도 인류 보편의 가치와 정서에 호소하는 이데올로기전에서의 승리가 주효했다면, 그건 고스란히 그의 인격과 철학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를 맑시스트로 해석할지, 혹은 민족주의자로 해석할지는 이론적 정합성이나 철저함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화두다. 그리고 오늘날 하노이에 미이라로 우상화된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개혁개방 이후 베트남이 추구하는 시장경제와 부수하는 가치들이 호치민이 그렸던 베트남의 미래와 이어져 있을까. 민족해방후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하려했던 혁명가 호치민과 그의 베트남은, 어디쯤에서 세계혁명의 깃발을 꺾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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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재 베트남=호치민을 보는 맑시즘적 해석에 대한 정리.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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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9-10-12 21:58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1185124



현대사상 제18호 : 호치민
현대사상연구소 편집부 지음 / 현대사상연구소 / 2017년 7월
평점 :




#호치민 #평전 #찰스펜 #현대사상 #베트남 #책스타그램

호치민을 다룬 두 권의 서로 다른 책에 대한 소감, 한권은 베트남전쟁의 막바지 통일 베트남의 출현 직전이자 호치민 사후 4년만인 73년에 씌여진 그의 평전, 또 한권은 약 사십년을 뛰어넘어 2017년 현대사상연구소가 대체로 맑시즘적 시각에서 정리한 호치민과 베트남에 대한 논문집이다. 호치민과 베트남,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대체로 미국의 시각 혹은 '자유 진영'의 시각에 잡힌 단편들 뿐이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학사논문을 쓸 때도 미국 반전여론의 추이만 살폈을 뿐 베트남인들에게 이 전쟁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심밖이었더랬다.

그런데 이 호아저씨, 엄청나다. 소박하고 사심없는 정치지도자이자 수십년의 무력항쟁을 앞장서 이끈 전사, 게다가 민족해방과 사회주의혁명을 조화시키려는 혁명가로 한평생을 살았다. 체게바라를 찜쪄먹을 수준의 공력이자 삶이다. 게다가 수개 국어를 구사하며 아시아와 유럽, 소련과 미주를 넘나들며 베트남 해방과 세계혁명을 위해 코민테른을 움직이다니, 이정도 급의 인물이 마오 빼고 아시아에 몇이나 될까.

그의 삶이 곧 베트남 현대사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를 극복한 인도차이나전쟁의 승리를 만끽하기도 잠시, 바야흐로 시작된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은 베트남을 강제 분할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호치민은 그리고,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유일한 승리를 얻어낸다. 직접적인 군사력과 전술 이외에도 인류 보편의 가치와 정서에 호소하는 이데올로기전에서의 승리가 주효했다면, 그건 고스란히 그의 인격과 철학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를 맑시스트로 해석할지, 혹은 민족주의자로 해석할지는 이론적 정합성이나 철저함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화두다. 그리고 오늘날 하노이에 미이라로 우상화된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개혁개방 이후 베트남이 추구하는 시장경제와 부수하는 가치들이 호치민이 그렸던 베트남의 미래와 이어져 있을까. 민족해방후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하려했던 혁명가 호치민과 그의 베트남은, 어디쯤에서 세계혁명의 깃발을 꺾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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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문학작품의 추이로 꿰어보는 시도.마이리뷰
ytzsche l 2018-10-12 10:11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0396207
한국인의 발견 -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서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지난 '한국인의 탄생'에서 다뤄진 근대사에 뒤이어 문학작품에 반영된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역시나 문학을 통해 시대정신과 한국인의 변화되는 모습을 읽어내는 건 흥미로웠다. 현대로 넘어올수록 선택된 소설이 좀 억지스럽다거나 의아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전작에 비해 현대사가 워낙 인화성 높고 정돈되지 않은 이슈들이 많다 보니 더 재미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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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도발적인 해석들도 여럿 눈에 띄었는데, 그중에서도 419와 516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419 이후의 짧은 제2공화국은 사실 도시 빈민의 폭동이었으나 지식인계층이 적극적으로 대학생 주도의 독재타도운동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순치했다는 거나, 516쿠데타를 불가결했던 혁명이었다며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거다. 게다가 516은 419와는 전혀 무관한, 미리 준비된 독립적인 사건이었단 주장이니,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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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으로 '혁명'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자칫 그 단어를 516에 붙였단 것 자체로 역정을 낼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뉴라이트류의 정파적 이해에 갖다붙이기 쉬운 인화성 높은 포인트였다. 전체적인 논지와 흐름을 고려하자면 충분히 쓸 수 있는 표현이고 설득력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전체적인 흐름과 문학에서 빌어온 그 근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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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인지 연관관계인지, 그야말로 조응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을 가진 당대 사회현실과 선택된 문학작품 속 현실묘사에 기대어 역사를 문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의심이 드는 것이다. 저자의 역사관에 따른 국면을 미리 정해두고 그에 걸맞는 작품들을 골라 그 방향으로 해석한 건 아닌가. 두가지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당대 시대정신의 반영이라 선택할지, 각 작품이 보여주는 스냅샷들을 엮어서 어떻게 이야기할 건지. .
한국 현대사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한 메타포로 문학작품을 취사선택해 끌어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학 작품은 뒤로 물러난다. 사실 동일 시기의 작품이라도 작가에 따라 구현하는 인물상이 다르다. 그중에 어떤 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상으로 세우고 어떤 것을 기각할 건가. 작가들은 시대를 실제 살아갈법한 인물을 포착한 건지,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물을 주조해낸 건지에 대해서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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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더해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엘리티시즘과 안이한 역사 인식을 짚어둔다. 지식인의 역할과 역사의 주체에 대한 고전적인 이야기를 더하고 싶진 않지만, 한국 현대사가 작가를 포함한 지식인 집단의 거대한 기획이자 작품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손쉽게 조선시대를 정체의 시기로 간주하는 안이함이라니. 1960년대 중반에야 16세기 이래 최초로 희망이란 걸 가졌다는 과다한 표현은 '단군 이래 어쩌구'라는 식의 호들갑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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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소설읽기를 통한 사상의 탐구.마이리뷰
ytzsche l 2018-10-12 10:07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0396196

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한국, 그리고 한국인은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일까. 일본이나 중국 같은 주변국가와 견주어 볼 때라거나 한국의 독특한 발전경로와 그 부작용들을 따져볼 때 부딪히게 되는 궁금증이다. 조센징은 매가 약이라느니 헬조선은 답이 없단 식의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단 식의 간지러운 상찬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늘 막연하게 그쯤에서 멈춰버린다. 답은 전혀 찾지 못한 채 경악과 감탄과 의문이 반복될 뿐이란 거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역사적 궤적을 좇아보려 한다. 조선이 망할 즈음, 그리고 망한 후에 어떤 집단적인 고민과 자기규정을 통해 근대 한국인이 탄생했는지 되짚기란 쉽지 않다. 이를 확인할 사료도 부족하고 사상적인 원류라 할 사상가도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고민이다. 그 결과 주목하는 것이 소설.

근대소설의 등장인물의 생각과 말,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상에 대한 묘사와 논평을 빌어 당대 지식인들인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거다. 초기의 근대소설 주인공인 파우스트, 돈키호테, 로빈슨크루소 등이 중세와 결별하며 새로운 근대적 인간상을 서구에서 확립한 것과 같이, 한국의 초기 근대소설도 조선이 망한 자리에서 새롭게 불려나와야 할 근대 한국인상을 주조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핵심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접근법이 너무 참신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이광수, 신채호, 이상, 홍명희 등이 쓴 소설들로부터 그들이 현실진단과 한국인이 갖추어야 할 바를 추출해내는 점이 그렇고, 그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한국인 근대화 프로젝트'를 읽어낸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저자는 춘원의 소설 '무정', '유정'의 주인공과 벽초의 임꺽정을 대비시키며 당대 좌우파가 담아내려한 한국인의 원형적인 정체성에 도달한다.
소설로 우회한다는 접근법의 한계로 정밀하거나 쫀득한 느낌은 떨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을 그대로 한국인의 원형으로 상정하는 것도 리스키하다.

더 아쉬운 점은 우선 지식인 중심의 접근으로 놓친 부분들에 대한 것이다. 지식인 작가의 소설이 얻은 인기가 당대 민중의 반향을 시사하는 바로미터일 수도 있겠지만, 지식인 계층이 아닌 자들에게도 직접 목소리를 추출했다면 더 좋았겠다. 그래서 두번째 아쉬운 점, 당대 지식인이 전부 개화민족주의자 아니면 저항민족주의자였던 것처럼 단순화됐다. 요컨대 이광수는 한결같이 개화민족주의자로서 그의 소설에 일관된 문제의식을 녹였다고 봐도 될까.

마지막으로 계속 정리못하고 자문하게 되는 질문. 앞선 서양의 근대소설이 자본주의 시대 인간상을 먼저 그려냈다고 해서, 주변부 한국의 근대소설 역시 같은 역할을 기대해도 되는 건지. 개인주의화된 인간이 주체로 선 근대에 새삼 서양과 한국, 각국에 각기 다른 국적의 근대인이 디자인될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적 특수성 이상을 말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조금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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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조선사, 헐겁고 엉성한 그물질.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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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4:14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61



두 얼굴의 조선사 -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 년 ㅣ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1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6년 2월
평점 :




#두얼굴의조선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시종일관 평면적이고 단순한 구도, 나쁜 양반 지배층과 수탈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채 말줄임표와 느낌표가 난무한다.

이렇게 헐겁고 엉성한 접근으로는 결국 조선 혹은 조선의 국가시스템이 어떻게 다른 나라와 다른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500년이나 버텼는지 캐내지 못한다. 아마도 이 책의 결론인 듯한 '고려와 조선을 경과하여 존재하였던 특권 지배층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주장의 근거나 단단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점에선 로스차일드가 운운하는 '화폐전쟁'과 같은 류의 음모론으로까지 비화하는 모습도 보인다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 지배계급의 악의와 교활함은 마치 상수와 같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명철하게 꿰뚫고 늘 관철시키는 것처럼 간주하는 태도라니, 너무나도 나이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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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 2018-04-1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을 이렇게도 읽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점을 알게 해주어 ‘독해의 다양성과 그 해독’이란 사안에 새삼 눈뜨게 되었습니다. 한 책을 읽고 비판하고 감상을 전달하는 방법이 너무 다르니, ytzsche님의 리뷰가 한 책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적나라하게(당사자에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제겐 그렇게 읽힙니다) 밝혔듯이 저 또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님의 리뷰를 읽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님의 리뷰를 대상으로 의사를 밝혀봅니다. 가능하면 적나라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적나라하다’는 말이 꺼림칙하다면 달리 표현해 ”비판적 읽기와 과감하고 직선적인 감상전달“이라 해도 좋을 겁니다. 우리에겐 그런 비판의 자유가 있으니, 이 댓글 또한 악의를 가진 댓글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이하에서는 높임말을 쓰지 않으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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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조선사”에 대한 ytzsche님의
헐겁고 엉성한 비판과 의도가 느껴지는 감상전달에 대한 한 마디

이 책을 두고 “시종일관 평면적이고 단순한 구도”라 했는데, ytzsche님의 리뷰가 시종일관 평면적이고 단순한 구도에 입각해 이 책을 꼬집고, 또한 부정적 잣대만을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 책의 “단순한 구도”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평면적”이라는 데는 마음이 걸린다. 평면적 구도가 아니라면 입체적 구도를 말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 예의 하나를 들자면, 지배층의 시각, 이도 저도 아닌 중간자의 시각 등등을 보여야 할 것인데(사실 현실에선 이런 식의 입체적 책을 쓰는 건 거의 힘들다. 그건 책이라기보다는 관련된 모든 정보와 지식을 끌어모아 정비한 편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이 책을 시작한다. 저자가 양해를 구한 사안을 들어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 책이(혹은 이 책을 쓸 때의 저자가) “나쁜 양반 지배층과 수탈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고 표현했는데, 그 전달법에 있어서는 악의마저 엿보인다. 이러한 점은 이 책의 머리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조선 지배층이 어떤 지배전략으로 어떤 통치방식을 활용해 조선사회를 지배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지배-피지배라는 관점과 통치 전략적 틀”이란 방식으로 이를 드러내려 한다고 말한다. ”기개의 선비“나 ”꼬장꼬장한 경세가“,
”군주를 보필하는 사림관료“ 등 다른 시각과 틀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이익과 욕망에 충실한 지배자“를 그리겠다고 아예 처음부터 양해를 구한다. 그러니 ”프레임에 갇힌 채“라기 보다는 ”프레임으로“라고 하는 게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표현이다. ”갇혔다“는 단어는 ”속이 좁다“, ”다른 것은 모른다“ 등등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유발하는 표현법이다. 표현한 이의 의도가 뭔지 의심스럽다.

이 책에 대한 ytzsche님의 헐겁고 엉성한 접근으로는 이 책의 내용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아니, 이 리뷰는 전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보인 접근법은 ”헐겁고 엉성한 접근“이 아니라 조선사회를 보는 여러 시각과 방법 중 하나이며 그것은 나름의 가치와 의의가 있다. 물론 그 시각엔 긍정적인 요인만이 있는 건 아닐 것이고, 그건 다른 여러 시각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조선 혹은 조선의 국가시스템이 어떻게 다른 나라와 다른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500년이나 버텼는지 캐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런 단정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 어떤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면 조선이 500년을 버틴 이유를 알 수 있는가? 님은 그걸 어떻게 이렇게 확정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조선사회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절대 지식의 소유자인가. 님의 이런 발언은 마치 종교계에서의 ”신의 시각과 자세“를 연상하게 한다. 모든 것을 재단해버리는 절대 판관 말이다. 이 책의 접근법은 ”헐겁고 엉성“하지 않을뿐더러 ”조선의 500년 버티기“에 대한 나름의 배경과 이유를 근거와 사례를 들어 밝히고 있다. 비록 그게 절대적이고 모두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또한 평자가 아무리 비판적 입장을 취하더라도, 아니면 아무리 책의 내용과 주제가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가치는 남겨두어야 하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아래로 낮춰 잡더라도 이 책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진 않는다. 무서운 독선이다. 이게 바로 편협이며 옹졸이다. 최소한 이 책의 지은이가 서문에서 밝히는 방법과 유사하게 ”이 책에는 이런 저런 면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이런 면만 잡아서 비판하고 질타하겠다“고 밝히기라도 했으면... ˝
‘고려와 조선을 경과하여 존재하였던 특권 지배층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주장의 근거나 단단함은 말할 것도 없다.“라고 했는데, ”말할 것도 없다“가 정확히 무얼 지칭하는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특권 지배층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주장에 근거나 단단함이 약하다는 건지, 아니면 아예 근거가 없다는 뜻인지. 그도 아니면 현재 사회에는 ”그런 특권 지배층“이 없다는 속내를 여러 겹 포장해 어지럽게 표현한 것인지. 님의 적나라한 비판 방법에 맞추어 주장을 적나라하게 내보였으면 한다. 님이 해체하고 재조합해 만든 위의 그 인용문을 통해 이 책의 저자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조선시대 지배층이 행한 여러 지배전략과 유사한 성격과 패턴, 지향점을 가진 통치술을 행하는 지배 계층(이 말이 지나치다면 통치 계층으로 해두자)이 있다. 피로 이어진 혈육의 후예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자기 이익과 욕망에 충실한 힘 있는 세력, 곧 지배층이 있다. 저자의 주장이 이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게 근거가 없거나 약하다고 하는 것인지. 설령 그렇다 해도 이 책에서 그 근거까지 제시하고 논증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다른 책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할 문제다. 님의 장점인 적나라한 표현을 따르자면, ”현재 사회에는 그런 지배층은 없다“는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표현한 것인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화폐전쟁‘과 같은 류의 음모론으로까지 비화“ 운운했는데, 님이 이 책을 두고 행한 비판과 감상전달에 ”음모“가 개재된 것 같아 보여 안타깝다. 이 책은 님이 주장하듯이 ”지배계급의 악의와 교활함은 마치 상수와 같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명철하게 꿰뚫고 늘 관철시키는 것처럼 간주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는 사실과 어긋난다. 책을 제대로 독해하고 독자로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면 님의 주장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조선 지배층은 큰 흐름에서 보면 다방면에서 자기 이익 우선의 정책을 입안하고 통치를 행했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관철시키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여러 방식의 술수와 포장으로 그 속내와 의도를 가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또한 ”악의“, ”교활함“이란 단어는 과도하거나 뒤틀려진 표현이고, 그걸 상수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지배층이 가진 여러 측면 중 그런 면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면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는 게 정확해 보인다. 머리말에서도 밝히지 않았는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저자의 시각과 접근방식, 책의 내용 등을 교묘한 수사와 표현법으로 윤색하고 과장하고 뒤틀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 책의(혹은 이 책 저자의) 태도를 ”너무나도 나이브하다“고 했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나이브하다“가 ”소박하고 천진하다“로 나온다. 님의 비평(이걸 비평이라 한다면)과 감상전달이야말로 참으로 나이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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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님의 리뷰에 대한 지금까지의 언급 또한 헐겁고 엉성하다고 재반박할 수 있을 것인데, 어쩌겠습니까. 각자 시각에 따라 각자 주장을 펼치고 사는 것을.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 말줄임표와 느낌표가 어지러운 세상에 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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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등선, 트랜스휴머니즘의 오랜 꿈.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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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4-18 19:15
https://blog.aladin.co.kr/778844186/10034958



트랜스휴머니즘 - 기술공상가, 억만장자, 괴짜가 만들어낼 테크노퓨처
마크 오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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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의 기본전제는 우리 모두가 고쳐져야 할 대상이고, 인간의 몸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장애라는 인식이다. 생각해 보면 노화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근본적인 질곡이 되었는지. 인류는 태곳적부터 종교나 도교식 연단술, 연금술류 유사과학의 힘을 빌어 죽음을 피하려 했으니, 어떤 점에선 낯선 단어의 느낌과는 달리 인간 존재만큼이나 오래고 끈질긴 관점인지 모른다.

변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이제 기계와 생명공학은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할 만큼의 진전을 성취했고, 해당 개념의 주인인 레이 커즈와일은 죽음과 노화는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라고 장담한다. 이제 AI는 인간의 뇌를 대체하거나 디지털 공간에 옮겨놓을 방법을 찾기 직전이고, 노화와 죽음 역시 과격하게도 '늙어서 죽기 전 기술발전으로 이를 추월해 탈출한다'는 수명탈출속도를 가속화해 해결한다는 투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뇌나 몸뚱아리는 사실 참 제약이 크고 불현한 게 맞다. 뇌란 놈은 갈수록 잘 까먹고, 단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그나마 써먹기까지의 부팅시간과 성능 업스레이드에 십여년이 필요하고, 그래봐야 그다지 이성적이지도 빠르지도 않다. 몸뚱이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성능은 보잘 것 없고 내구성도 약하다.

몸을 기계화한다거나 디지털 공간으로 전이시키는 등의 과격한 비전에 대해 왠지 모르게 갖게 되는 불편함과 거부감만 빼면, 대체 이런 트랜스휴머니즘의 조류에 반대할 꼬투리는 딱히 없다. 지팡이에 짚신이 전동식 휠체어와 에어조단으로 바뀌어 왔고, 양피지와 깃털펜이 스마트폰과 터치로 바뀌어 왔지 않은가. 문명의 발달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류의 수명과 체형이 바뀌어 온 건 또 어떤가.

문제는 죽음에 대한 태도, 그래서 삶에 대한 태도일지 모르겠다. 이 책의 뒷편으로 넘어갈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짙어지는 이유도 실은 그런 탓일 게다. 죽음은 해결되어 퇴치해야 할 문제인 걸까. 끝내 무덤을 박차고 죽음에 맞서 승리하리라던 종교적 이상에 대해,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이 말했듯 사실 죽음을 파는 상인들이라는 독설이 필요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에 짓눌려 살지 않고, 삶과 죽음의 한쌍을 그대로 인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엄연히 다른 한축을 차지해왔다.

실리콘밸리와 굴지의 IT기업들의 서포트를 받는 지금의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가진 기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낙관주의는 또 별개의 이야기다. 인간의 뇌와 몸뚱이는 그저 기술 발전을 체현하는 단말기에 불과한 걸까. 인간의 이성은 뇌의 문제해결능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까. 이성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조율하고 북돋는 역할도 맡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들의 눈에 비효율과 저성능으로 보이는 부분은 분명 다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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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위한페미니즘, 페미니즘이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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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29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540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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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착취나 억압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서, 혹은 그에 저항한다고 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심지어 남성들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것이 트렌드라곤 하지만, 페미니즘이 무엇이며 어떤 문제의식과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차분한 이야기를 나누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저자는 명료하게 말한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고. 남성을 여자 아래로 끌어내리고 여성을 남자 위에 세워올리는 게 아니다. 남성과 여성간의 젠더 전쟁을 벌이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바꿔나간다는 건 그저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 남성'에 분노한다는 것 이상을 말함이다.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선 내면의 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스스로 바뀌기 위한 진단과 공부가 필요한 거다. 자신과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 하나하나 철저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여성 내부에 체화된 가부장제적인 감수성과 인종적, 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고서는 기득권에 편승중이라며 공격받는 남성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종, 계급, 민족 등 스스로가 놓인 지형에 대한 성찰과 고민없는 일부 얼치기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기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수혜자들인 남성과 얼마나 닮았던가. 강자와 약자가 그대로 온존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로라면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개인의 출세와 자기만족을 위한 하나의 발판처럼 쓰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단 페미니즘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런 '미러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 페미니즘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조심스레 따라가볼 필요가 있는 거다.

#모두를위한페미니즘 #페미니즘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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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에서시민으로, '대한민국'은 좀더 갈갈이 찢어져야 한다.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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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3 11:11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9693



민중에서 시민으로 -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 ㅣ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4
최장집 지음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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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읽고 나면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사방팔방으로 울림이 번져나가는 책, 그게 소설이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되었던, 들불처럼 사방으로 번질 수 있는 의미의 갈래들을 하나씩 새겨보고, 그게 어떤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읽는 것 자체와는 또다른 큰 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런 책들에서 자신이 애써 고삐를 추스려 잡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 중의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뭐, 고작해야 학사 나부랭이인 내 수준에서 그렇단 얘기다.

최장집 교수의 이 책, 그의 다른 책들처럼 굉장한 책이다. 나는 그저, 내 나름의 맥락에서 그 중 일부를 떼어서 조금이나마 사고를 자극하고 정렬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일종의 발제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전제로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두 개의 집단이 맞서고, 두 집단은 모종의 타협이나 정치적 과정을 거쳐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런 무조건적인 통합의 메시지는 국가주의나 집단주의를 초혼할 뿐이다.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국회는 안건을 갖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게 당연하고, 시민들 역시 떠들어댈 광장이 필요하며, 시스템이 안배한 통로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은 초법적 수단조차 동원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갈등선'이 비로소 그어지는 거다.


갈등을 부정하고 묵살하는 사회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갈등'에 대해 그 존재부터 부정하고, 묵살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시스템 내의 '갈등 발견&해소 프로그램'은 협소하고 취약하기 짝이 없어서, 모든 갈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결국 사교육비 많이 부담하라는 교육문제, 애기 외롭지 않게 키우라는 출산율문제, 손 많이 씻고 쇠고기는 알아서 골라 먹으라는 보건문제, 우유 많이 먹고 성형외과 찾아가라는 젠더문제, 눈높이를 낮추고 기술을 배우라는 취업문제. 사실은 사회 문제, 즉 사회적인 갈등선을 빚어내는 문제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소하도록 종용되고 있다.


복불복 마인드로 순치되어 버린 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조용한 사회. 누군가 '노'라고 이야기하면-갈등을 말하려 하면-사회 불만세력, 반정부세력, 심지어는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조장하는 매국노로까지 매도당한다. 지금의 비정규직 정책에 반대한다, 한미FTA에 반대한다, 재개발 정책에 반대한다, 등등 이어지는 '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무조건적인 사회 통합의 강요, 국가발전 한길로 매진해야 할 시기에 힘 빼지 말자는 국가주의적 교시였다. '노'라고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적 안배나 기제가 없는 상황에서 번번이 '불법'으로 밀려나는 최악의 상황에선, 1박2일식 '복불복 마인드', '나만 아니면 돼'라는 파편화된 개인들은 그러한 무서운 국가 앞에 무력할 뿐이다.


똘레랑스는 갈등 인정 이후의 문제다

그게 민주주의일까. 황장엽이 말하고 보수세력들이 떠드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그런 거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 혹은 다른 무엇이다. 민주주의는 최장집의 표현을 고대로 빌건대 "폭력을 배제한 갈등과 타협에 기초한 정치체제"에 가까운 무엇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똘레랑스는 고사하고 갈등 자체를 터부시하고 있는 거다. 시끄러운 국회가 싫다, 시끄러운 광장이 싫다, 결국 '시끄러운 게 싫다'란 정도로 요약될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한 혐오나 염증이 문제다. "정치인 아저씨들은 왜 맨날 싸워요?"라고 묻는 어린애의 똘망한 눈망울 앞에 무조건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적인 갈등을 대체하는 추상적 전선(戰線)

혹은 갈등을 묵살하고 없는 것 취급하는 것과 동시에, 추상적인 양극 구도로 몰아간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평화개혁세력 대 냉전수구세력' 따위의 갈등선은 뭔가 선명하고 뚜렷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이상 내용도 없고 실천적 의미 또한 던져주지 못하는 죽어버린 그림이 아닐까. 87년을 기점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나서, '민주', '진보', '개혁' 따위의 단어로 지시되는 내용은 그때그때 바뀌어 버렸다. 이미 갈등선이 그 고도로 추상화된,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쉬운 단어의 세계를 넘어서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로 넘어온 거다.


'부러지지 않는 쌍쌍바', 자잘한 균열선들의 긍정적 역할

두 개의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쌍쌍바 여러개를 고르게 포개어 쪼개는 그림, 그리고 쌍쌍바 여러개를 무질서하게 포개어 부러뜨리는 그림. 첫번째 그림에서 쉽게 부러질 쌍쌍바가 '민주 대 반민주'니 '진보 대 보수'니 따위의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갈등선으로 일관하는 사회의 파국 혹은 불건전성을 의미한다면, 둘째 그림에서 좀처럼 부러지지 않을 쌍쌍바들은 예컨대 '동성애 찬성 대 반대', '증세 찬성 대 반대', '등록금 무료 찬성 대 반대', '모병제 찬성 대 반대' 따위 수많은 이슈에 대한 자잘한 갈등선을 품어내는 사회의 건전성을 의미한다. 최장집은 정당정치가 그러한 자잘한 갈등선을 반영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부재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정당 정치는 마비되었고, 광장 정치(광장 민주주의라 높이 평가되기도 한)는고양되지 못한 채 배설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근대 정치에 걸맞는 '자유주의적 인간형'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거대한 국가와 동등한 계약관계로 묶인(혹은 묶였다고 상정되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인간, '시민' 대신에 NL(민족민주)이니 PD(민중민주)니 통일조국, 민주국가건설을 위한 '민중'만이 화석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광기에 가까운 월드컵 응원 열기, 골프와 피겨, 축구 선수에 대한 과도한 국가적 상징화, 새롭게는 '국격'이니 '국위 선양'이니 따위의 국가주의적 수사에 푹 절어 있는 것이 하나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네티즌 수사대'가 몰려들어와 융단폭격을 하는 원시적/집단주의적 작태가 다른 하나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바꿔내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

최장집이 이른바 386세대, 운동권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세력, 구조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서 스스로를 형상화하고 안티화해내면 되었을 뿐인, 역사적인 한계기도 하지만 능력 부족이기도 했던 부분이다. '민중'이란 불분명한 역사적 집단에 기대어 '역사의 정방향으로의 발전'을 믿었던, 지금과는 정반대의 뒤집어진 세상만 꿈꾸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불철저했던 문제의식은 곧 김대중/노무현 두 자칭 '진보성향' 정권의 실패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은 동일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혹은 이명박은 10년 '좌파 정부'의 예정된 귀결이었다고 판단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을 박제화한 '민중'의 배신은 당연하다

과연 그런 걸까. 판단은 유보하되 의견을 말해 보자면,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죽음에 비통해 하던 이들은 '민중'이었지 '시민'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세속된' 이해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갈등을 시스템 내에서
해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또 이명박이 퇴행시켰거나 노출시킨 허술한 민주주의에 놀란 상태에서 '민주 대 반민주'라는 손쉬운 갈등선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한 '민중'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명박 덕분에 갑자기 '민주'의 화신, 실패한 영웅으로 부활했지만, 사실 그들은 재임 중 수많은 이슈에 대해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도 시스템 내로 그런 이슈, 갈등을 들고 들어와 해결하는 기제를 마련치 않았다. 그 결과다. '민중'은 속되고 삿되다 하여 정치권에서 다루지 않는 온갖 생활 밀착형 이슈들, 부동산과 주식과 교육과 취업과 세금의 문제에서 또다시 '김대중과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고 있다. 이명박의 지지율을 보면 알 일이다.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 10년을 날려버린 정치권의 실패다. 그들은 "샐러리맨 세금낮추기 정당", "공휴일에 지하철 막차시간 연장하기 정당", "대학생 일자리 보장 정당" 따위, 좀더 세분화되고 생활에 발딛고 있는 이슈로 자잘한 찬/반 균열을 그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이슈들의 묶음으로 커다란 '진보'를 형상화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곧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라는 구호의 함의였을 거다.

사실 국가 발전을 위해 다른 갈등들을 묵살하는 기득권 세력의 몸짓은 지금의 '운동권' 세력에게도 여기저기 발견된다. 조직 내 성추행 사건을 덮는다거나, 전경과 대치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동원되는 '사수대'의 군대식 규율,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도덕률과 사명감의 차원으로 모든 것을 치환해 버리는 방만함까지.


자잘한 이슈들을 그어내고 반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좀더 갈갈이, 중층적으로 찢겨야 한다. 무슨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반공이니, 신자유주의니, 혹은 친미/반미니, 심지어는 희화화된 형태의 '보수꼴통'과 '친북좌파'의 굵고도 무식하며 무시무시한 일도양단식 균열말고. 그런 세속화되고 일상적인 형태의 자잘한 균열들이 좀더 촘촘하게 그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고착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구처럼 국가 이전에 '시민'이 먼저 형성되는 것이 실패하였다 치더라도, 이제라도 강력한 국가 앞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시민'을 불러내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분열을 말할 때다. 지금처럼 인터넷 상에서 서로 ^^해가며 좌빨이니 우빨이니 맞지 않는 화살만 잔뜩 주고 받는 소모적인 이야기로 분열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입장이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분열 말이다.



덧댐.

어쩌면, 이명박을 뽑은 국민들이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는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경제발전'에 대한 감수성과 비판의식을 키워내야겠지만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에 대한 디테일과 방법론이 경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진보'를 자처한 진영이 그 이슈를 송두리째 방기했음을 반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의 삶의 부유함을, 어떻게 창출할 건지에 대한 미시적 수준의 갈등선을 역시 그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역시 이명박의 집권이 김대중/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운동권 세력이 정치적 발전에 소홀했던 덕택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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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왜, 어디서부터 돌아봐야 할까.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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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4:22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97



대한민국은 왜? - 1945 ~ 2015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은왜 #김동춘 #사계절 #책스타그램

지금의 체제가 구축된 배경을 찾는데 5년을 되짚어 볼 수도, 100년을 되짚어 볼 수도 있다. 정밀하지만 호흡이 짧은 5년의 분석과 매크로하지만 골간을 짚어낼 수 있을 100년의 분석은 아마도 보완관계여야 한다. 100년간의 역사, 해방에 대한 자족적인 평가와 의미부여를 떠나 어떠한 '앙시앙 레짐'들이 이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이, 건국절 운운하는 그들의 사상적/물적 연원을 밝히고 또한 극복하는 첫단계가 되어야 할 거다. 일제시대와 이후의 독재정권들, 그리고 기업독재가 도래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각자가 맡은 역할과 주어진 도그마들은 어찌 그리도 유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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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모든 사상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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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4:16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75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강의 #신영복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필리버스터 좌초 정국이 모두를 욕구불만 상태로 밀어버린 즈음, 모든 사상은 시대의 과제나 근본모순을 인식/해결하려는 관점의 차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란 부제를 달고서 노골적으로 본인의 관점임을 천명한 글. 곳곳에서 오랜 옥살이 경험과 맑시즘 등 변혁이론에 대한 애정과 당파성이 읽힌다.

일테면 이 문단을 발췌한 사진에서 드러나는 세상은 무려 세 겹의 필터를 거쳐 해석된 세상이다. 당대의 문제를 인식, 해결하려는 묵자의 해석, 묵자의 해석들을 이리저리 꿰어 자신의 문제의식과 관점에 맞춰 현재에 유의미한 내용으로 재구성한 신영복의 해석, 그리고 신영복이 취한 내용 중에서 우연찮게 욕구불만 상태의 내게 필터링된 문구나 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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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씨발 죽어도 좋아.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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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50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07



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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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문학동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아이돌 #덕통사고

연예인 뒷꽁무니 쫓아다니는 일, 빠순이, 팬질, 덕통사고 운운. 그걸 가리키는 단어들은 대개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 짝사랑, 롤리타 콤플렉스, 세렌디피티, 종소리가 뎅뎅뎅.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자연스런 끌림에서 출발한다는 점까지, 일반인의 일반인에 대한 사랑을 묘사하는 단어들과 다를 바 없는데도.

그러게. 왜 그렇게 그녀들은 매도당했던 걸까. 힘없고 어린 여성집단에 대해 함부로 훈수두고 딱지붙이는 주류 남성문화의 비열함일 수도, 왜 현실적인 짝짓기 대신 생산적이지 못한데 에너지를 낭비하냐는 효율지상주의적인 안타까움일 수도, 혹은 아이돌 옆에선 그저 오징어일 뿐인 일반 남성 스스로의 열등감과 위기감이 촉발한 공격성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그녀들도 안다. 한번의 아이컨택을 위해 하루를 고스란히 내바치는 비효율. 갖고 있는 가장 비싼 것을 전부 내다팔아도 이뤄질리 없는 관계. 그저 자신은 아이돌에 기억되기는 커녕 그런 사람이 존재한단 것조차 알려질 수 없는 사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어질 가능성이 0으로 수렴하는 그것은 관계란 단어조차 과하다.

그렇지만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 '씨발, 죽어도 좋아'랄 만큼의 고양감을 주는 건 그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고 열렬하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죽은 단어들이 그를 표현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하루의 기억과 기록이 온통 그와 나만의 암호문이 되어버리고, 기다리는 시간조차 데이트의 일부인 행복한 시간이 되는 일. 대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어쩌면 그들은 그만큼 마음 계산에 밝지 않아서, 대책없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서, 비극으로 끝날 아픈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만 이들인 거다. 사랑이란 감정에 충실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어쩌구저쩌구' 정의 그대로의 사랑을 그대로 구현하는 사랑꾼들. 소설은 그런 입덕한 자들의 사랑이 일반인의 사랑과 같거나 혹은 더 순도높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부러움 한 조각. 일본만화 H2에 나왔던 저 멋진 대사와 정서가 유효할 수 있는 기간이 내겐 얼마나 길었더라 싶어서. 기다림이 설렘으로 충만할 수 있는 기간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게 덕질이구나 싶어서. 아이돌, 나만의 신을 세우고 사랑하는 건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구나 하는 조그만 부러움과 질투. (그렇지만 역시 난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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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인간, 일본 현대사의 병풍 앞 일본작가들.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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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2:59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458



슬픈 인간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정수윤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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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인간 #책스타그램 #봄날의책

나쓰메 소세키에서 미야자와 겐지, 다자이 오사무 같은 알만한 작가들 외에도 총 25명의 대표적인 현대 일본작가들의 산문이 엮인 책이다. 관동대지진에서 태평양전쟁, 히로시마 피폭에 이은 패전후 일본의 모습까지 병풍처럼 늘어선 곳에, 제각기의 삶과 글을 써내리던 이들이 간단한 연보와 함께 비석처럼 촘촘히 자리잡았다.

제법 재기발랄하고 익살스런 소세키의 문체는 어쩌면 탈아입구의 선진대열로 매진하던 20세기 초 일본의 분위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차츰 어둡고 무거워지다가 끝내 삶의 허무와 염세에 빠져드는 그 이후 작가들의 문체 역시, 개인과 예술이 어디까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진부한 물음을 되새기게 한다. 아무리 밝은 소재여도, 아무리 긍정적이려 해도 배어나는 짙은 회한. 마치 불투명수채화의 찐득하고 텁텁한 뒷맛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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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단순하게살기로했다, 후쿠시마 이후의 디지털 노마드 인생.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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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56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17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나는단순하게살기로했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미니멀리즘 #대지진 #일본

저자가 말하는 단순한 삶을 설명하는 글과 논리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도무지 사기만 하고 버리지는 않는, 청소나 정리 따위 하지 않고 쟁여두기만 하는 창고형 인간이라니, 이런 인간형이 흔할까 싶어서 공감도 떨어진다. 선이니 미니멀리즘같은 단어로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잡스와 마더테레사와 간디를 운운하고 인간 정신과 역사를 들어 정신사납게 쓰고 있는데, 결국 '미니멀하게 말하자면' 내가 파악한 키워드는 두 가지다.

디지탈로의 이동(digitalization), 그리고 우선순위 정하기(prioritization). 일본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했던 기똥찬 발명품, 호이포이캡슐. 집이던 차던 수십톤의 물이던 전부 조그마한 캡슐 안에 집어넣었다가 꺼냈다가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었더랬다. 아마 그걸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게 디지털로의 이동 아닐까. 무게도 부피도 없어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든 꺼내어 보고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컨텐츠의 물성. 저자가 말하는 지독히 단순화된 '물건구매-만족-익숙해짐-싫증'의 무한루프가 실제로 존재하며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가 제안하는 미니멀한 삶에서조차 이 루프는 사실 끊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체 그가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어 남겼다며 예찬해 마지않는 애플의 고성능 컴퓨터/스마트폰 속 데이터는 얼마나 빠르게 소비되고 쌓이고 있을까. 현실세계의 물건들을 처분하고 사진파일로 옮겨둔 그 디지털 세계, 씨디와 책 대신 인터넷 속 온갖 컨텐츠와 정보로 갈음하는 그 세계 속에서 그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부질없다거나 기만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주변정리의 차원에서, 무한욕구의 궤도에서 탈출해 보다 자족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는 나름 의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깐. 우선순위를 정하고 핵심이 아닌 것들을 지워내보자는, 너무도 담백하고 당연한 이야기라서 김이 좀 빠지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같이 극단적인, '지저분한 방 출신의' 인간 말고 좀더 평균적인 인간을 들어 말해보자면, 평소 하듯 오래되었거나 낡았거나 안 쓰는 물건은 버리던 팔던 하자는 거다. 그렇게 물건들이 들고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것들, 그런 것들은 꼭 필요한 것들이니 잘 챙기고, 나머지는 그보다 덜 중요한 것들이니 과감하게 덜어내어 버리던 혹은 마음만 덜어내던 그러자는 거다. 뻔하다고? 어디 이런 류의 책이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 하던가.

결론적으로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짊어지기엔, 저자가 펼치는 철학은 그다지 근본적이거나 철저하지 못하며 차라리 극단적인 버전의 집정리 스킬에 가깝다. 그런데 외려 내 흥미를 끈 건 이 부분이었다. 아날로그 물건들의 디지털로의 피난, 그건 저자가 의식한 것 이상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후과인지도 모른다. 대지진이 터지고 방사능이 만연해도 아날로그 세상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이들이 준비하는 신천지 디지털로의 노마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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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새삼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은 의심하라.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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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3 10:34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9614



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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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네줄 요약)

객관을 빙자한 '반공주의자', '극렬 개인주의자'의 악의적인 프로파간다, 사회주의와 전체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자유세계(1세계) 예찬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에 더해 사회 비판의 목소리들에 '니 마음이 병들어서 그래'라고 묵살할 수 있는 그럴 듯한 근거와 '단상'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대중 운동' 자체를 냉소적이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만 보고 있으니, 이 책이 갖고 있는 날카로움은 대체로 (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의) 반공보수세력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될 거다.



사람들의 불만, 현실을 타파하려는 열정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구체적인 불편함과 고단함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에, 멘토를 자처한 자들의 성공담과 정서적인 위무에 녹아내리거나 혹은 앞장선 누군가의 손가락질과 돌팔매질을 따라 피아식별 따위 없이 만만한 마녀를 사냥하며 '자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은 지금도 그런 모습들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맹신자들'이란 제목이 뭔가 힌트를 줄 거 같은 기대감을 던졌다.

사실 에릭 호퍼의 이 책은 그런 내 나름의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저자는 이른바 '대중운동의 역동기', 맹신자들이 형성되고 사태를 압도하는 시기의 동학을 살피고 그들 내부의 심리를 분석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전제는 간명하다 못해 저열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중운동의 역동적 단계에는 맹신자들이 위세를 떨치며, 그들은 주로 좌절한 채 증오와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는 대중 운동의 비전이나 내용엔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일반적인 양태와 동력원를 분석하려 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일견 굉장히 야심차 보인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어느 순간 사회를 들썩이는 무정향의 대중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원천에 대해 설명을 해보려는 거다. 무엇을 주장하고 요구하던 간에, 어느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간에 중요한 것은 그런 움직임 뒤에 숨어있는 에너지 덩어리이며, 그건 시공간을 초월한 일종의 규칙과 단계를 따른다는 가설. 촛불집회가 되었건, 황우석 사태가 되었건, 87년 민주화항쟁이건 아니면 광주항쟁이던 간에 그 기저엔 같은 게 있단 이야기다.

문제는 여러가지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왜 새삼 '맹신자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친 이시대의 고전'이란 카피를 달고 나왔는지, 그리고 조선이니 동아 따위 보수언론에서 이 책을 화제의 신간으로 내세웠는지 의심하고 있을 정도다. 그들이 이 책을 앞세워 말하려는 맹신자들은 누구일까, '대중 운동' 자체에 대한 불편부당한 인식을 강조함에도 종내 '대중 운동'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득 드러내는 '개인주의적 반공주의자' 에릭 호퍼의 반세기전 저작이 새삼 고전으로 떠받들릴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저자가 '대중 운동'의 정의조차 없이 글을 열며 '좌절한', '광신', '맹신' 따위 모호하고 무책임한 용어를 남발하는 건 참는다 치자. 우선 개인의 병리적 심리에 대한 통찰은 제법 날카로우나 이를 사회의 동학에 그대로 이입하고 충분한 근거없이 일반적인 동력으로 단정짓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또 하나, 저자가 살던 냉전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채 반공 이데올로기와 오리엔탈리즘 따위의 편향된 사고 프레임에 기반한 편견들을 근거라고 제시하고 있단 점이다. 근거박약한, 응집력없는 조각난 '단상'들일 뿐이다.

결국 그는 '대중 운동'을 암묵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율적이고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자주적인 사람'은 대중 운동을 조장하고 독려하는 일부 음모가, 불평분자에 넘어가지 않으나 심리적으로 공허하거나 불안정한 사람, 소위 좌절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 운동이 촉발되고 진행된다는 식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심리 문제와 트라우마, 불만족스러움이 어떤 식으로던 현실을 타파하고 조직적 가치와 지향에 스스로를 투신하려는 자기 희생 의지를 낳는다는 거다.

저자는 사회 변화 혹은 소란의 원인과 에너지원을 개인에서 찾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그들이 어떻게 양산되고 있는지, 개인의 도덕성이나 참을성 이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지 않을까. 예외적으로 생겨난 불평분자가 아니라 특정 계층과 그룹에서 공통된 지반을 갖춘 불만과 좌절이 형성되고 있다면, 역시 구조적인 문제 혹은 모순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저자는 그들을 그저 문제 해결의 의지나 탐색 노력은 없이 어떤 방향으로던 불만을 터뜨려 버리겠다는 마음만 가득한 '맹신자', 혹은 '광신자'라 일컫지만 말이다.

저자의 성찰 역시 견고하진 않으며, 그의 단호한 어조를 뒷받침할 사례들 역시 빈약하긴 매한가지다. 냉전기 전형적인 체제경쟁과 상호비방의 '자유진영' 논리와 어투를 그대로 가져다 쓴 소련 공산주의 비판에서는 레드 콤플렉스의 시대적 한계와 이에 편승한 저자의 몰역사적 인식이 드러나고, 중국이나 아시아에 대한 언급들은 이들 지역이 오랜 기간 역사적 저발전 단계에 있었던 것처럼 보는 오리엔탈리즘이 묻어난다. 그가 드는 사례들 역시, 단편적이고 편의적인 취사선택을 거쳐 주워섬길 뿐이다.

그저 당대의 믿음과 당대의 '상식'에 기댄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다.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승전국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진영'이 공산주의 혹은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냉전을 새롭게 시작한 시점에 인간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자유세계 이데올로그의 냄새가 너무 난다. 저자도 수차례 '악마'라 지칭하고 있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그리고 '광신자'로 싸잡아 묘사되는 '대중운동가', '사회 불평분자'에 대한 혐오는 왠지 2010년대 가스통을 들고 있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냄새를 풍긴다.

그럼에도 어떤 점에서 그의 책은 니체의 관점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을 병들게 만드는 목적론과 형이상학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 가족과 부족과 국가와 종교와 같은 특정 조직이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필연적으로 제약하고 억압하게 되는 것에 대한 단호한 거부라는 점에서 니체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니체가 보통 일반인과 초인(ubermensch) 사이의 간극을 말하며 인간의 고양을 말했다면, 이 책의 구도는 굉장히 협소하고 불편하다. 지독한 개인주의적 반공주의자 버전이랄까.

아마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애초 저자의 의도와도 같이 사회 현상에 대한 설명이라거나 '대중 운동' 일반에 대한 해명을 위한 참고 자료로 인용되기보다는, 주로 종교적 광신자나 폭탄테러범의 내면 심리를 읽는데 제한적으로 참조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 책을 지금 한국에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역시 마찬가지 맥락을 짚어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개독인'들이 왜 '개독인'이 되고 말았는지, 라거나 '어버이연합'이 왜 '어버이연합'이 되었는지라거나.

물론 중간에 말했던 내 의심이 유효하다면, 이 책의 얼개를 손쉽게 뒤집어 씌운다면 '멍청하고 좌절한 대중'이 몇몇 선동가의 외침에 놀아나며 '미국산 소고기가 위험하다'느니, '4대강이 무너진다'느니, 'FTA하면 나라 망한다'느니 따위의 선전선동을 '맹신'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가 더욱 간편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금 이런 책을 '고전'이라 상찬하며 서점 책꽂이에 진열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행간을 의심하게 되는 거다. 이 책에 시공간을 넘어설만한 통찰과 혜안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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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를버린논어, 공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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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57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25



군자를 버린 논어
공자 지음, 임자헌 옮김 / 루페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군자를버린논어 #논어 #공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공자를 위시한 유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유가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공자왈맹자왈, 옛 한문을 글자 그대로 암송해야 할 듯한 고루함에 더해 군주-백성의 관계를 다룬 그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지 않으려나. 그래서 어쩌다 그저 한두구절만 떼어 볼지언정 논어를 통으로 읽을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나 획기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한 논어 읽기를 시도한다. 말그대로 '군자'란 표현을 버리고, 대신 지식인/지성인/지도자 등의 현대적인 표현으로 대체한다. 수레를 모는 대신 차를 운전하는 건 애교 수준. 공자가 애정한 안연, 자로 등 제자들의 재미있는 캐릭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그들의 대화가 오늘날의 말글처럼 재연되었기 때문일 거다.

내용면에서는, 역자가 여러모로 공자와 논어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시사적인 이슈와 문제의식을 접목해서 공자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공자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어떻게 달라지고 여전히 같을까, 등등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거다. 글쎄, 다소 인상비평에 그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최소한, 공자가 여전히 현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는 시작점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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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어떻게괴물이되어가는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책.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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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59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27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반비 / 2015년 11월
평점 :




#우리는어떻게괴물이되어가는가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신자유주의인격의탄생

왜 이렇게 '또라이'가 많아진 걸까. 터무니없이 공격적이거나 패배적이고, 온갖 심리장애 증상들은 날로 늘어만 간다고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진단한다. 직장이나 학교의 왕따 문제는 글로벌해진지 오래고, 묻지마범죄에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범죄 등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반적인 사회 풍조,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상식'화된 신념들이 문제인 건 아닐까. 그것들이 사회 안의 인간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윤리체계를 설정해준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이상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건 아닐까. 저자가 책의 절반을 할애해 꽤나 설득력있게 그 연관성을 논하고 있듯이.

그 기반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를 호명하며 저자가 문제삼고자 하는 건 경제 능력주의와 교육 능력주의의 결합이다. 호봉이나 직급이 아닌 능력에 따른 평가를 강조하는 시스템이 초기엔 효율적인 듯 보이나, 이내 숫자로 환산가능한 지표와 결과에만 매몰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체제의 중기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시스템 효율화를 위한 능력주의는 기존의 노동윤리와 공동체윤리를 해체하고, 아무것도 그자리를 대체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깨어진 지점에서 남는 건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모두가 모두에게 늑대일 뿐인(Homo homini lupus est) 계약 이전의 정글상태. 그게 현재 사람들이 병든 이유이며, 신자유주의가 주조하는 인간형이라는 결론이다.

길게 써봤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책이 그렇다. 사회가 정체성과 윤리 체계를 형성한다는 부분에 대한 원론적인 설명은 꽤나 매혹적인데, 이를 신자유주의에 대입하는 과정에서 헛점들이랄까 말해지지 않은 부분들이 보이기 때문일 거다.

우선 신자유주의가 최악인 시스템이란 것에 대한 분석이나 합의가 부재하다. 모든 사회는 나름의 지배사조와 그로부터 주형된 정체성과 윤리체계가 있을 텐데, 신자유주의 하에서 유독 정체성과 윤리체계가 파괴되었다는 진단이 과해보이는 거다. 그래서 또라이가 양산된 현상이 현대 사회에 고유하거나 유별나다는 것에 대해 납득시키지 못했다.

둘째로는, 서유럽에 기반한 분석이 과연 기타 지역, 한국에도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전통적인 노동윤리와 공동체윤리는 서유럽의 그것과 같았던가. 능력주의의 부작용은 공통될 수 있으나 그것이 타파한 과거의 온정주의적 평가는 한국과 서유럽이 같았을까. 등등.

마지막으로, 서유럽의 실업률이 높은 것에 대한 원인을 능력주의와 성공에 대한 환상으로 인한 미스매치로 치부하는 것, 젊은 세대에 대한 능력주의식 교육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은 올바른 분석일까.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교육(과 자기계발열풍)에 미친 영향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젊은이는 자신을 미니 기업으로 보아야 하며, 경제적 의미 차원에서 지식과 능력이 처음이자 마지막 심급이다."같이 잘 정제된, 까기 좋은 언명을 모처럼 잘 골라놓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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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모자로착각한남자, 복잡하고 통합적인 뇌의 작동방식.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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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4:07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48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평점 :




#아내를모자로착각한남자 #올리버색스 #책스타그램

고등학교때였나, 굉장히 기초적인 형태의 뇌신경과학을 접했던 거 같다. 뇌의 특정부위를 절개하면 말을 못하거나 통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운운. 아, 사고를 당해 철근이 머리를 관통했는데도 성격이 조금 바뀌었을 뿐 잘 살아간다던가, 그런 이야기도 티비에서 봤던 거 같다. 그렇게 뇌의 특정 영역은 어딜 담당하고 어떤 기관/기능과 연동되어 있다는 투의 그림그리기는 이제 엄청 식상하고 진부한 소재거리다. 기계적이고 일반화된 1:1 대응.

그런 거 말고. 뇌의 특정부위나 특정작동방식에 에러가 생겼을 때 인지나 기억, 그러니까 사람의 정체성에 변동이 생기는 건 어떨까. 눈앞의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모자로 인식한다거나, 육십년전 라디오방송을 그대로 복원해낸다거나, 혹은 사고로 사라진 본인의 신체 일부를 여전히 감각한다거나. 심지어 아예 사고방식이나 사고능력 자체가 통상 인간의 능력이라 불리는 추상화, 범주화가 불가능해진다거나. 그렇게 개별적이고 유니크한 사례들을 통해서는 앞서말한 그런 기계적인 일반화가 불가능하다.

환자들의 증상도, 그 환자들의 사례도 모두 지극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이다. 증상의 연원부터 발현형태와 대처까지. 이래서야 하나의 학문으로 세우기도 녹록치 않겠다 싶었지만 저자가 '환자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해 신경의학의 주춧돌을 놓은 게 어언 30년전. 그러고 보면 매트릭스니 13층이니 온갖 SF작품들에 구현된 정체성-혹은 영혼이라 불릴 만한-에 대한 이야기들이 멀거나 가깝거나 이로부터 촉발된 건 분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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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요리하고싶었던남자, 총천연색의 풀컬러 세상을 만나보자.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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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4:10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652



엄마를 요리하고 싶었던 남자 - 현대사회가 낳은 불안과 광기에 관한 특별한 관찰기
마갈리 보동 브뤼젤.레지 데코트 지음, 이희정 옮김 / 푸른지식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엄마를요리하고싶었던남자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푸른지식

프랑스의 대표적인 법의학자인 저자가 20년 넘게 만나온 정신질환 범죄자들에 대한 사례집. 반인륜적인 범죄들, 제목 그대로 엄마를 죽여 요리한다거나 연쇄살인을 이어간다거나 여자친구를 토막내는 사람들과의 상담과 치료 이야기가 이어진다.

너무도 흔해진 "사이코패스'란 단어 혹은 보다 통속적이게도 '또라이'란 이름 붙이기는 그들에 대한 불가해함에서 기인한 막막함과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섣부른 편가르기였던 건 아닐까. 그런 뭉툭한 표현으론 잡히지 않는 각기 사례들의 특이성과 백인백색인 발병의 원인과 작동방식들, 그렇게 분별되고 나면 이제 세상은 흑백의 모노톤이 아닌 총천연색의 풀컬러가 된다.

그렇다고 나와 그들의 거리가 휴지 한장의 두께만큼 가깝다거나 '모두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일도 아니다. 분명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상성/비정상성의 경계는 어딘가 있을 텐데, 다만 그 비정상성이란 게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취약한 부분을 사회가 어떻게 인지하고 대응해줘야 할지가 관건이어야 할 거다.

정신질환자들을 외계인 대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로 인정하고 그들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서 복귀, 나름의 제몫을 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시스템의 정비,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인식의 전환. 어쩌면 그건 '병신' '또라이' 같은 전통적인 욕에 자리잡은 뿌리깊은 장애인 멸시의 정서를 줄여나가는 것과 같은 궤의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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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과학하기'의 힘을 보여주는 고전.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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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l 2018-03-21 13:45
https://blog.aladin.co.kr/778844186/9975594



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코스모스 #칼세이건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기념비적인 과학교양서, 라는 말은 다소간의 경계를 요한다. 기념비에 먼지가 채 내려앉기도 전에 속속 밝혀지는 많은 오류와 논쟁중인 해석이 대중화를 위한 설탕옷을 입고 간명한 진실인양 행세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자가 쓰는 비유와 전문영역이 아닌데서 끌어오는 배경지식은 자칫 오해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깐.

그런 점에서 1980년에 첫 출간된 이 고전 역시 비켜갈 수 없는 한계들은 엄존한다. 과학에는 전혀 전문성이 없는 내 눈에도 당장 보이는 건 DNA에 대한 과한 기대감이라거나, 우주공간에서의 핵 사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라거나, 무엇보다 그가 그렸던 수십년 후의 미래를 살고 있는 지금이 그의 상상과는 꽤나 다르다. 인간 이성을 신뢰하고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 공헌할 거라던 그의 신념 혹은 의지는 그다지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책의 주된 메시지는 여전히 엄청나게(!) 유효하다. 과학 자체와 과학의 결과물을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하기'의 과정과 문제의식에 대해 바쳐진 그의 열정과 단호함이 인상적이다. 결론은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관건은 그 결과물이 왜 잘못 해석되었거나 예견되지 못했는지, 그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틀거리를 만들어내는데 있다.

과학 정신을 궁극까지 밀고 나가는 것. 그건 안으로는 인간 내부와 기원을 향하고 밖으로는 지구와 별과 우주로 향하지만, 결국 이는 만나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자 그대로 인간은 우주에서 생겨났으니까. 그런 통찰을 가로막았던 건 지상의 왕들과 신들과 권위자들이었다. 그렇게 기원전 깨인 자들의 탐구 대상이 되었던 우주가 수십세기동안 미신과 미망의 원천으로 전락하고 나서야 다시 인류는 우주에서 코스모스, 질서와 규칙을 찾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초판 내지 개정3판 정도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언젠가 천문대에서 별들을 바라보고 은하계 변방의 작은 티끌의 티끌에 불과한 지구를 실감했던 날의 소름이 오소소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런 보잘것 없는 곳에서 찰나를 살다가는 인류라니. 게다가 난 그 인류의 아주아주 작은 점 하나일 뿐이라니. 그건 일종의 신비체험이기도 했고, 내가 찾아낸 겸손해질 수 있는 가장 그럴 듯한 이유이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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