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사 1 - 일본이 말하는 일본 제국사, 1926~1945 전전편戰前篇
한도 가즈토시 (지은이),박현미 (옮긴이)루비박스201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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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책.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목차
1권
추천사 · 9
서장 · 13
쇼와사의 뿌리에는 ‘붉은 석양의 만주’가 있다.
러일전쟁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
국가 흥망의 40년 / 국방의 최전선인 만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지나유기》에서
정세가 악화된 쇼와 시대의 개막
1장 · 29
쇼와는 ‘음모’와 ‘마법의 지팡이’로 막을 열었다
장작림폭살사건과 통수권 간범
장작림폭살사건의 범인은? / 천황이 격노하다 / 태도를 바꾼 원로 사이온지
통수권 간범이란 무엇인가? / 군사에 관해서는 기타 잇키
2장 · 49
쇼와를 엉망으로 만든 출발점은 만주사변
관동군의 야망인 만주국의 건국
천황의 간신이라 불린 사람들 / 천재 전략가, 이시하라 간지의 등장
사이온지가 천황을 견제하다 / 나무젓가락은 오른쪽으로 굴렀지만…
신문들은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3장 · 75
만주국은 일본을 ‘영광스러운 고립’으로 이끌었다
5·15사건에서부터 국제연맹 탈퇴까지
전쟁을 선동하는 신문사 /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황군이 입성 / 혹독해진 세계의 여론
상해사변을 뒤로하고 정전으로 /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될 것이다’ ‘문답무용’
리튼 조사단이 본 것 / 42 대 1의 결의
4장 · 103
군국주의를 향한 길은 이렇게 정비되어갔다
육군의 파벌싸움, 천황기관설
소란스러운 방공대연습 / 육군에 대한 최후의 저항 / 군정의 에이스와 작전의 귀신
중국일격론이 통하다 / 천황기관설의 목적은? / 만세일계의 천황의 통치
5장 · 125
2·26사건의 주안점은 궁성점거계획이었다
전쟁체제로 성큼 내딛다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 문화의 어머니 / 용감한 부인들 / 천황을 제압한다는 의미
삼전우표는 동료라는 부호 / 우리는 성공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히로타 내각이 남긴 것
6장 · 153
중일전쟁, 깃발행렬과 제등행렬의 파도는 계속되는데…
노구교사건, 남경사건
중시되지 않았던 서안사건 / 7월 7일 오전10시 넘어 / 연대장이 독단전행으로 내린
명령 / 제3자의 음모가 있었다 / 남경학살은 있긴 했지만… / 수렁에 빠져버린 전쟁
장개석을 상대하지 않은 치명타
7장 · 181
정부와 군부는 모두 강경 노선만을 고집, 그리고 노몬한
군축 탈퇴 , 국가총동원법
해군 중견 클래스의 강경론 / 초대전함을 건조해야 한다
국가총동원상 필요가 있을 때 / 스탈린처럼 대담하게 / 노몬한의 비극
전쟁은 의지가 강한 쪽이 이긴다
8장 · 205
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모든 문제들을 날려버렸다
영미와는 대립, 독일에는 접근
양식 있는 해군 3인방의 고군분투 / 유서를 쓴 야마모토 이소로쿠
강경해지기 시작한 미국 / 파마를 금지시키다 / 스탈린의 악마적인 결단
이제부터는 일개 병사로서 싸운다
9장 · 231
왜 해군은 삼국동맹을 받아들였을까?
군사국가의 길로 치닫다
사치는가장 큰 적 / 떠나는 버스를 놓치지 마라 / 최후의 방파제가 무너졌을 때
돈 때문에 영혼을 판다? / 피와 고생과 눈물, 그리고 땀
10장 · 257
독소의 정략에 휘둘리는 와중에 남진론을 제창
독일의 소련 진공
북부 인도차이나에 감행한 무력 진주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 / 전쟁으로 내달리기
시작한 해군 중앙 / 기원2600년… / 마쓰오카 외상의 유럽여행
히틀러의 악마적인 유혹 / 기분이 좋아진 스탈린 / 영웅은 머리를 전향한다
11장 · 285
네 번의 어전회의, 이렇게 전쟁은 결단되었다
태평양전쟁 개전의 전야
외무성 내의 대미영 강경파 / 깨끗하게 사라진 미일 양해안 / 대미영 결전을
포기하지 않고 / 의욕이 충만했던 ‘관특연’ / 전쟁을 그만두지 않을 것을 결의하다
오케하자마와 히요도리고에와 가와나카지마 / 기회는 이제 오지 않는다!
대미 전투를 결의하다 / 니이타카 산에 올라가라 1208
12장 · 323
영광에서 비참으로, 그 역전은 너무나도 빨랐다
한순간의 전승
전쟁 통고는 틀림없이 있었다 /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오로지 대승리에 취한 일본 국민 / 미드웨이의 지는 해
13장 · 345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과달카날, 임팔, 사이판의 비극에서 특공대 출격으로
과달카날을 빼앗기다 / 야마모토 장관의 전사 소식 발표 / 호우 속의 임팔가도
사이판 탈환은 불가능 / 특별공격은 모든 해군의 뜻?
14장 · 369
일본 항복을 앞에 두고 권모술수가 극에 달한 미국과 소련
얄타회담, 도쿄대공습, 오키나와 본섬 결전, 그리고 독일 항복
너무나 위험한 소이탄 / 일본 가옥은 나무와 종이다 / 지는 벚꽃과 남은 벚꽃도
모두 흩날리다 / 쇼와천황이 쓰러진 날 / 질질 끈 대답
원자폭탄과 포츠담 선언의 묵살
15장 · 397
견디기 힘든 감내, 참기 힘든 인내
포츠담 선언 수락, 그리고 종전
히로시마 사자의 행렬 /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기란 불가능 / 첫 번째의 성단
예속과 제재하에서 / 두 번째의 성단에 따라서 / 항복한다는 것의 어려움
종장 · 419
310만 명의 사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은?
쇼와사 20년의 교훈
못 다한 이야기 · 425
노몬한사건으로부터 배운 것
환상, 독선 그리고 당황스러움 / 시바 료타로에 대해서
대장이 보내온 한 통의 편지 / 사건의 시작은 국경 침범
연구위원회가 내린 결론 / 정보는 천황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핫토리 참모와 쓰지 참모 / 남진론을 부르는 대합창 / 노몬한사건의 교훈
일본인의 결점을 여실히 기록
맺음말 · 447
참고문헌 · 450
주요 인명, 지명, 사건 · 451
2권
추천사
서장. 천황과 맥아더의 회담으로 전후가 시작되다
- 패전과 일억 총참회
ㆍ일억의 눈물바다
ㆍ평화는 역시 좋은 것이다
ㆍ맥아더가 왔다
ㆍ자유와 관용과 정의의 이름으로
ㆍ교수형에 처해져도 상관없다
ㆍ헬로 헤드 바우
1장. 가혹한 점령정책과 대책 없는 정부
- GHQ에 의한 군국주의 해체
ㆍ암시장의 번성
ㆍ극한의 기아
ㆍ계속 전개되는 점령정책
ㆍGHQ에 휘둘리는 대책 없는 일본
ㆍ평화국가를 향한 길
ㆍ전쟁의 책임을 추궁당하다
2장. 기아로 인해 넋이 나간 일본인
- 정당과 저널리즘의 부활
ㆍ사과의 노래와 페니실린
ㆍ변화무쌍한 평화의 가격
ㆍ정당과 저널리즘이 부활하다
ㆍ미국의 다양한 사상개조
3장. 헌법개정문제를 둘러싼 일대 혼란
- 마쓰모토 위원회의 모색
ㆍ포츠담 선언은 무조건 항복인가?
ㆍ무시당한 국체 보호의 조건
ㆍ엇갈린 고노에와 맥아더의 회담
ㆍ마쓰모토 위원회의 발족
ㆍ백열하는 헌법초안노의
ㆍ걱정스런 천황제의 앞날
ㆍ꽁무니를 빼는 사람들
4장. 인간 선언, 공직추방 그리고 전쟁 포기
- 공산당의 인기, 평화헌법의 맹아
ㆍ천황페하, 인간이 되다
ㆍ사랑받는 공산당
ㆍ맥아더를 움직인 일본인의 편지
ㆍ이제는 평화로운 일본으로
5장. 두 번째 성단, 나는 상징이어도 좋다
- GHQ의 헌법초안을 받아들이다
ㆍ이상이 결여된 헌법초안
ㆍ일본인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다
ㆍ충격적인 GHQ안
ㆍ극단적인 인플레 치료
ㆍ48시간 이내로 답을 달라
ㆍ드디어 완성된 신헌법
6장. 도쿄재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 냉전 속에서 철저하게 재판 받은 일본 현대사
ㆍ냉전의 시작
ㆍ사회당 내각의 성립
ㆍ격변하는 세계정세
ㆍA급 전범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ㆍ도쿄재판은 무엇이었나?
ㆍ천황은 소추할 수 없다
ㆍ익살극에 적군과 아군 모두 땀을 흘리다
ㆍ한숨만 나오는 비화들
ㆍ판결이 내려지다
ㆍ씁쓸한 뒷맛
7장. 공포와 같은 GHQ의 우선회
- 개혁보다는 부흥, 덧지라인의 공과 죄
ㆍ미소 대립의 격화
ㆍ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이용되는 일본
ㆍGHQ내부 대립
ㆍ개혁보다 경제부흥을
ㆍ연이어 터지는 기이한 사건들
8장. 한국전쟁은 신풍이었나?
- 거칠게 불어닥친 레드퍼지와 특수 폭풍
ㆍ돈줄이 막히다
ㆍ적색은 모두 추방하라
ㆍ아프레게르의 폭주
ㆍ한국전쟁으로 특수가 들끓다
ㆍ굿바이, 맥아더
9장. 새로운 독립국 일본의 출항
- 강화조약을 모색
ㆍ반미 무드에 조바심이 난 미국
ㆍ전면 강화인가, 단독 강화인가
ㆍ요시다 VS 델레스의 공방
ㆍ군대의 씨앗인 경찰예비대의 편성
ㆍ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의 두가지 문제점
ㆍ천황 퇴위 발언을 하는 자는 비국민이다
10장. 혼미한 세상, 여러 가지 사건들
- 기지문제, 핵실험에 대한 저항
ㆍ사라져가는 점령의 그림자
ㆍ돈은 1년, 땅은 만년
ㆍ<도쿄이야기>가 그려낸 전 후 풍경
ㆍ개헌과 재군비론을 낳은 복고의 파도
ㆍ고정되지 않은 목표에 표류하는 일본인
11장. 55년 체제가 만들어진 날
- 요시다 독트린에서 안보합동으로
ㆍ요시다 1인 장기정권
ㆍ하토야마 파의 반항으로 자유당이 반으로 갈라지다
ㆍ사상 최대의 정변, 드디어 무너진 요시다 내각
ㆍ가까스로 보수합동을 만들다
12장.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 개헌과 재군비라는 강경노선을 향해
ㆍ헌법개정과 재군비의 실패
ㆍ소련과의 국교가 회복되다
ㆍ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ㆍ안타깝게 단명한 야인 수상
ㆍ불안을 퍼트린 강경노선
ㆍ근평문제와 경직법
13장. 60년 안보투쟁 이후에 온 것
- 미치 붐, 그리고 정치투쟁의 종막
ㆍ미치 붐이 가져온 것은?
ㆍ안보개정의 시동
ㆍ데모로 해는 저물고
ㆍ지긋지긋한 정치, 이제는 경제다
ㆍ월급이 배로 오르다
14장. 폭풍같은 고도경제성장
- 올림픽과 신칸센
ㆍ열심히 일하는 일본
ㆍ대중소비시대의 도래 - 소니와 혼다
ㆍ일본의 풍경은 바뀌었다
ㆍ머니빌딩이 세워지다
ㆍ생활을 바꾼 세 가지 물건
ㆍ선망의 대상, 공단주택
ㆍ냉전의 격화, 긴장하는 세계
ㆍ저널리즘은 혹한의 동절기
ㆍ알고는 있지만 무책임한 시대
ㆍ여전히 외교가 없는 일본
ㆍ케네디 암살이 가져다준 것은
ㆍ올림픽과 신칸센
15장. 쇼와 겐쿠로의 통고
- 단카이 파워의 분출과 미시마 사건
ㆍ사토 에이사쿠의 등장과 쇼와 겐쿠로
ㆍ기대 받는 인간상과 비틀즈
ㆍ격동하는 세계정세
ㆍ베이비붐 세대의 반역
ㆍ도쿄대 야스다 강당의 함락
ㆍ만국박람회와 미시마사건
ㆍ오키나와 반환으로 전후가 완결되다
종장.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전후사의 교훈
ㆍ현대사까지
ㆍ전후란 무엇인가 - 현재를 돌아보며
ㆍ그 이후의 전후
ㆍ앞으로 일본은
여담. 쇼와 천황과 맥아더 회담의 비화
ㆍ맥아더의 감동
ㆍ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ㆍ두 번째 회담 - 화제의 중심은 도쿄재판?
ㆍ세 번째 회담 - 신헌법과 맥아더의 예언
ㆍ네 번째 회담 - 실체가 드러난 안전보장
ㆍ다섯 번째 회담 - 천황의 진의
ㆍ여덟 번째 회담 - 흔들리는 일본의 치안
ㆍ아홉 번째 회담 - 국제정세에 대한 우려
ㆍ열 번째 회담 - 드디어 강화문제로
ㆍ열한 번째 회담 - 작별인사
ㆍ천황과 맥아더의 회담을 안다는 것의 의미
맺음말
참고문헌
주요 인명, 지명, 사건
접기
책속에서
P. 41-42 입헌군주제에서는 국무(정치)와 통수(군)의 최상위자가 완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아서 천황에게 알린 일은 설령 군주 자신이 내심으로는 찬성하지 않아도 재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중략) 쇼와사의 출발점에 벌어진 이 사건(장작림폭살사건과 내각총사직)의 의미는 사건 그 자체의 크기보다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쇼와천황은 이후에는 내각이나 군부가 일치해서 정한 일에 ‘노’라고 말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관철합니다. 즉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입헌군주국에서 군주의 존재방식이라고 깨달은 것 같습니다. 쇼와사는 항상 이 점에서 출발하고 이후 일본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전전편 p41~42) 접기
P. 64-72 이타가키가 “이렇게 된 바에야 운을 하늘에 맡기고 나무젓가락을 세워서 정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습니다. 오른쪽으로 구르면 중지, 왼쪽으로 구르면 결행이라고 정한 뒤 젓가락을 굴려보았더니 오른쪽으로 굴렀던 것 같습니다. 그럼 중지를 해야 될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미나미가 그의 평소 성격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조선군은 국경을 넘어서 만주로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부분이 쇼와사의 병폐, 또는 한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자 와카쓰키 수상이 “뭐라고? 이미 만주로 들어갔단 말이지. 그렇담 어쩔 수 없군.”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육군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중략) 23일 조간 신문은 ‘조선군의 만주 출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쇼와 7년 3월에는 만주국이 건설되었고, (중략) 본래 대원수의 명령 없이 전쟁을 시작한 중죄인으로 육군 형법에 따르면 사형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출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쇼와가 엉망이 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전전편 p.64~72) 접기
P. 169-170 남경에서 일본군에 의해 대량학살과 각종의 비행사건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라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국민에게 마음속 깊이 사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도쿄재판에서 말했던 것처럼 30만 명을 죽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경 시민을 소개疏開한 상태라 시민이 30만 명이나 남아 있지 않았고, 군대도 그렇게 많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일본군은 칭찬을 받을 만한 군대가 아닙니다. 쇼와 14년 2월에 일본 육군성이 몰래 만든 <비밀문서 제404호>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중략)
“어느 중대장은 (중략) 강간을 한 뒤의 처리방식까지 가르쳐주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하나하나 조사했더니 모두 강도 살인, 강도 강간의 범죄자들뿐이다.” (전전편 p.169~170) 접기
P. 99-101 정식으로는 2월 24일, 국제연맹은 총회에서 일본군의 만주철수권고안을 42 대 1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일본만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중략) 확실히 연맹 탈퇴는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썼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신문은 42 대 1이 멋지다는 칭찬 일색이었고 마쓰오카에 대해서도 기특하다는 듯 ‘오늘날 일본에 이런 영웅은 없다’며 치켜세웠습니다. (중략) 일본 국민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는 것이 이후 일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고립’을 택했다는 말을 마구 써대니 일본 국민은 점점 고립감과 세계에 대한 배척감이 강해져 전 세계를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 후 고립화된 일본은 점점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고, 배외주의적인 양이사상에 압도된 국민적 열광에 힘입어 전쟁의 길로 돌진하게 됩니다. (전전편 p.99~101) 접기
P. 297-298 바로 그때입니다. 8월 1일 미국은 석유의 대일본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고 통고합니다. 이 이후 일본은 미국에서 석유 한 방울도 받지 못하게 되는 긴급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해군 중 몇 명은“뭐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정부나 군부는 미국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나가노 총장은 7월 29일 천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물자가 없어지고 점차 곤궁해질 텐데 어차피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쟁을) 빨리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천황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일전쟁 때의 해전과 같은 대승을 거두긴 힘들겠지?”
“그때와 같은 대승리는커녕 이길지 어떨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전편 p.297~298) 접기
P. 366-367 “일본도 이제 끝장이다. 나와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려 하다니…. 그러나 명령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중략)
세키 대위는 10월 25일 기지를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0월 28일, 해군은 가미카제특별공격대를‘명령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중략) 가미카제특공대나 나중에 나온 가이텐특공대도 모두 병사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서는 해군 리더들의 자신감이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덕성은 그림자조차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전편 p.366~367) 접기
P. 401 일본은 그런 경위를 알지 못합니다. 초강력 폭탄이 떨어졌다고 하니 이것이 원자폭탄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에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8월 7일, 신문과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一. 지난 8월 6일 히로시마 시는 적B29 여러 기의 공격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一. 적은 이번 공격에 신형폭탄을 사용한 것 같은데 상세한 것은 현재 조사 중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이때까지 원자폭탄이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신형폭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전전편 p.401) 접기
P. 424 결론은 일본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 없는 자기 과신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책임함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인에도 이와 같은 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역사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역사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전전편 p.424)
P. 14-15 한참 후에는 전쟁이 끝나서 정말 잘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극히 소수만이 정말로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당시 제 감정을 말씀드리자면, (중략)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커다란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애의 눈물인지 후회의 눈물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일억 인구는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략) 당시 일기를 쓰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으니 (중략) 몇 개를 읽어 보겠습니다.
“천황폐하의 목소리는 녹음된 것이었는데 전쟁을 종결한다는 조서다. 뜨거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이 쏟아지는 눈물은 대체 무슨 눈물인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전후편 p.14~15) 접기
P. 18-19 그때까지 우리는 미군이 와서 점령한다면 남쪽 섬이나 어딘가로 끌려가 평생 노예가 될 거라고 배웠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거라면 그 전에 빨리 이것저것 다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방공호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습니다. 무슨 맛인지 전혀 몰랐지만 불량스러운 동급생들과 뻐끔뻐끔 피워대면서 “맛있지?” “어, 진짜 맛있다.”라고 (중략)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기억합니다. (전후편 p.18~19)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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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에 대한 일본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킨 책이다. 평론가이자 역사소설가로 유명한 지은이는 일본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대부분의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솔직하게 대변한다. (중략) 한국 근현대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일본 근현대사. 이 시기에 우리는 식민 지배를 겪었고, 냉전을 공유했으며, 탈식민지 국가 재건과정을 겪었다. 번영과 몰락을 반복한 쇼와 시대의 일본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뒤돌아보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서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아시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소개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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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도 가즈토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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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수필가. 역사소설가. 《쇼와사》출간 후 일본에서 크게 유명세를 탔으며, 일본 근현대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양식 있는 지성,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유명하다.
1930년 도쿄에서 출생해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 입사한 후 <주간문춘>, <문예춘추>의 편집장, 이사를 거쳤다. 1965년 오야 소이치의 이름으로 《일본의 가장 긴 하루-운명의 8월 15일》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서로는《어쩌면, 소세키 선생》,《노몬한의 여름》,《막부 말기사》,《스미다 강의 건너편, 나의 쇼와사》 등 다수가 있다. 1993년 《어쩌면 소세키 선생》으로 닛타지로 문학상, 1998년 《노몬한의 여름》으로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 2006년 《쇼와사》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 군부와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합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호헌파이다. 접기
최근작 : <쇼와사 1>
박현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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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한국해양연구소, 세종연구소 등에서 번역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옮긴 책으로 『루이와 3A3 로봇』 『걱정 많이 걱정인 걱정 대장 호리』 『식빵을 버리려다』 등이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외면했던 일본의 근현대사를 이제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다!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쇼와사>를 읽는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다른 나라, 경제적.정치적 위치에서 영원한 동반자이자 라이벌인 일본의 근현대사를 일본인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은 물론,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에 무게를 둔 국가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지금, 일본은 전쟁을 해야만 한다!
독일이 소련을 진공하며 태평양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린다. 1941년 8월 1일, 일본에게 독이일 삼국동맹에서 빠질 것을 강하게 요구하던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 “2년도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끌수록 일본의 물자과 병력은 떨어지고 적은 강력해진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본 내 전쟁 강경파와 반대파들이 대격론을 벌이는 동안, 신문은 날마다 ‘대동아공영권의 최단거리’, 즉 전쟁을 선동한다. 결국 주전론자인 도조 히데키 내각이 발동하고 미국이 교섭에서 강경하게 나오면서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쇼와사>에서 일본이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은 자세하고도 긴박감이 넘친다. 그동안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일본의 전쟁을 일으킨 속사정, 최악의 선택으로 일본을 몰고 간 장본인들의 대책 없는 모습과 그 속에 숨겨진 비화들을 만날 수 있다.
영광에서 비참으로, 패전국 일본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속에 진주만 공격은 대승을 거두고, 그 후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일본은 대동아신진서 건설, 제국 영토 확장을 꿈꾼다. 그러나 하와이 공격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려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암호가 해독되어 적에게 작전을 읽히고, 과달카날, 인도의 임팔가도, 사이판에서 연이어 완패하고,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돌진하는 특별공격까지 실행하고 만다. 당시 해군은 가미카제특공대는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1945년, 극도로 염세적이고 불안한 분위기의 일본에 도쿄대공습이 가해지고 오키나와에서 전함 야마토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마침내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는 최악의 궁지에 몰린다. 그리고 8월 15일, 소위 천황의 ‘성단’에 의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패전국 일본의 운명은 맥아더를 대원수로 하는 연합국(GHQ)의 점령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스스로 미국을 위한 ‘위안부’를 만들었다?
저자는 전후 일본이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연합군 앞에서 순종적인 아이처럼 ‘변신’했던 역사에 대해 자성적인 비판을 던진다. 한 예로 종전 3일 후, 지도층은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의 일환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설치하고 1억 엔의 예산을 마련해 위안부 1300여명을 모집한다. 그리고서는 ‘평범한 일본 여성의 순결의 값으로 1억의 비용이면 싸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통해, 강자 앞에서 한순간에 비굴해지는 일본인에 대해 지적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후 일본은 연합군이 지시하는 대로 토지개혁과 산업기술, 경제정책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는 데 성공하나, 연합국의 뜻에 따라 ‘천황은 상징이다’라는 방향을 공표하고 미국이 쥐어준 초안대로 신헌법(현재의 평화헌법 제9조를 포함)이 세워져 현재까지도 시끄러운 문제를 남기게 된다. 이후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일본은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는 국가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지금의 일본의 형태로 향해 간다.
한국전쟁 특수는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신풍’이었다!
<쇼와사>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별수요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후 일본은 극도의 가난을 겪으며 ‘1천만 아사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대기업이 해체되고 산업의 제재를 받으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완전히 달라진다. 유엔군의 전진보급기지가 되어 단번에 모든 물자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이때 일본인은 미국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동시에 대량생산방식과 품질관리를 습득했다. 그 결과 3년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고 규모도 크게 확대되어, 그 흐름을 타고 발전을 거듭하여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도요타, 혼다, 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의 토대도 이때 이루어졌다. 연간 300대의 트럭을 생산하던 도요타가 월 1500대까지 늘려도 수요를 쫒아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문예춘추>의 기자였던 저자는 혼다 사장을 인터뷰한 후 감사의 표시로 주식을 받을 뻔 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주식이 몇 백배나 뛰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워 과거를 딛고 일어난 일본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일본을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고민을 잊은 채 물질주의에만 빠져들었던 역사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근현대사
지금까지 쇼와 시대의 역사와 일본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여럿 있었으나, 한도 가즈토시의 <쇼와사>는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일본 근현대사를 종합적으로 완결한 책으로 부를 만하다. 1960년대부터 조금씩 개정되며 영미권에서 일본근현대사의 기본 텍스트로 읽혀온 <일본 근현대사>(w.비즐리,2004개정)와 달리 동양의 역사를 보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성의 눈으로 본 책이며,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2005)보다 방대한 자료 전개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 외 일본인의 저서로 <히로히토와 맥아더>(도요시타 나라히코,2009), <천황과 도쿄대>(다치바나 다카시,2008), <쇼와천황과 일본 패전>(고케츠아츠시,2010)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들은 일본 근현대사를 특정 사상이나 사건, 인물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려는 시도로 쓰여진 데 의의가 있었다. 정치에 국한되거나 폭넓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쇼와사>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양상, 패전 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변화, 나아가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폭넓은 일본근현대사 통사라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도서들과 단연 차별화되는 책이다.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의 쇼와사’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지금 눈앞에서 사건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에다 다양한 사료와 직간접적 경험을 적재적소에 곁들여서 잘 버무려냈기 때문이다. 어전회의에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대화체로 재연하거나, 유행어나 유행가를 들어 설명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신문, 라디오, 일기 등의 기록을 비교해 놓은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또한 현대사로 가면서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을 통해 일본과 우리의 사회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올림픽과 만국박람회로 떠들썩한 일본, ‘단카이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와 기성세대와의 갈등 등이 등장한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묘사되어 있어 ‘역사의 기본은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쓰오카는 쵸슈 출신으로 천황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 ‘기골이 단단한 메이지의 남자들로, 점령군 따위는 난 모른다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일본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 등 현재로 정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스스로의 역사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저자의 역사 서술 능력은 일본내 ‘탁월한 역사 선생’이라는 평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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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쉽게 읽히지만, 천황의 전쟁책임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개인의 마음까지 소설처럼 묘사하는 건 역사라고 할 수 없다.
madwife 2018-03-1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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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이 한국에서 고작 2쇄밖에 찍어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닥스훈트 2019-12-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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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무지의 시대
한국 최초의 대체역사 소설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이라 할 수 있다.
대체역사 장르는 항상 'What if'란 가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령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치독일이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식이다.
'비명을 찾아서'의 what if는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중상만 입고 살아남은 이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복거일은 1980년대 서울을 그리고 잇다.
그가 그리는 서울은 소설의 부제 '경성, 쇼와 62년'이 말하듯 일본의 식민지 상태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덕분에 그때까지도 조선과 만주를 영토로 갖고 있다. 그리고 경성 즉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일본어를 쓰고(조선어가 있었다는 것도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일본식 이름을 쓰며 명절에는 남산의 신사를 참배한다.
이 모든 것이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그런 큰 차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
이책의 저자가 그리는 전전 일본의 역사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가였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정치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메이지 세대의 죽음이었다.
'울지 않으면 죽여 버려라, 소쩍새'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어라, 소쩍새'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소쩍새'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들 아는 말일 것이다. 메이지 세대 정치가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가까웠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신중함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그들의 정치는 유도에 가까웟다. 그들의 정치는 억지로 무엇을 하려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때 그때 대세를 지켜보다 일이 대세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국내와 국외의 흐름에 민감햇고 때를 기다리다 때가 왔을 때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 냈다.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은 그런 정치가들의 퇴장을 알리는 사건이었고 일본 정치 엘리트들의 세대교체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들은 이전 세대가 물려준 유산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메이지 유신 이래 러일전쟁까지 40년이 걸려 만들어진 일본은 러일전쟁 후 4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대구법과 같은 결과가 만들어졌다. 쇼와사는 너무나 허무한 역사처럼 보인다. 러일전쟁 직전의, 아니 청일전쟁 전의 일본으로 돌아갔으니 50년간의 길고 긴 고통은 무위로 돌아갔다. 쇼와사란 그처럼 무위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1926년부터 1945년까지를 다루는 1권의 결론이다. 이책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다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이지 세대를 이은 쇼와 세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였다는 것이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쇼와 세대는 오다 노부나가의 의지만 닮았을 뿐 그의 천재성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제국의 몰락은 만주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만주는 '일본의 생명선'이라 불렸고 그렇게 불린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을 일본이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은 '일본을 겨누는 비수'였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말이다. 조선을 차지한 후 이번엔 만주가 문제였다.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조선을 지키려면 만주는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최대한의 방위선이었다.
둘째는 영국과 미국에 자원을 의존하던 일본은 의존에서 벗어나 다른 열강과 동등한 힘을 갖기 위해 자원공급지로서 만주가 필요했다.
이후 모든 문제는 만주를 차지하고 지키려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만주를 지키기 위해 중국과 싸운 것이 꼬였고 중일전쟁은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과 영국과의 갈등을 일으켰고 영미와의 갈등은 태평양전쟁으로 커졌다.
1945년 일본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쇼와사는 작은 전쟁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으로 자체증식하는 과정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전전은 물론 전후 일본인들의 심정을 보통 '피해자 의식'이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는데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몰아갔다.
전후 도쿄 전범재판에 대해 일본인들은 속으로 냉소적이었다. 우리는 침략자가 되려고 된 것이 아니다. 환경이 그렇게 몰아갔고 그렇게 우리를 몰아간 것은 바로 재판관 자리에 앉아있는 당신들이다.
전후 일본의 리더들이 전전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려 하는 심리의 내면에는 그러한 피해자 의식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다일까? 저자는 그렇게 묻는다. 만주가 목적이었으면 그후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의 확전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까지 확대되는 쇼와 연간의 사건들을 추적하면서 내리는 결론은 어디까지나 문제는 일본의 엘리트들의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내리는 죄명은 '오만한 무지'이다.
나치의 등장을 집단 정신병리현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군국주의 역시 그와 맞먹는 정신병리현상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거창한 설명이 필요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단지 무능과 무지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을 요약해보자.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인 사망자의 합계는 260만명이라고 했는데 최근의 조사에선 310만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만큼의 사망자가 20년 쇼와사의 결론이다.
그 결론이 가르쳐주는 교훈은 첫째 국민적 열광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대의 기운에 제멋대로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열광 그 자체가 권위를 가지기 시작하여 사람들을 이끌어 가고 휩쓸어 버렸다.
대미 전쟁으로 갈 것을 알면서도 별 생각 없이 삼국동맹을 맺었다. 양식 있는 해군 군인은 대부분 반대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찬성으로 바뀐 것은 정말로 시대의 기운이었다. 쇼와 천황은 '독백록'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노'라고 말했다면 아마 유폐되거나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둘째 이성적인 방법론을 전혀 검토하려 하지 않았다. 먼저 희망사항을 만들고 이어 능숙한 작문으로 장대한 공중누각을 쌓는 것이 일본인의 특기인 것같다. 모든 일이 희망하는 대로 움직일 거라 생각한다.
소련이 만주를 공격해 올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지금 공격하면 곤란하다', '아니 공격해 오지 않는다', '괜찮다. 소련은 마지막까지 중립을 지켜줄 것이다'라는 식으로 합리화해버린다.
물론 '곤란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황군은 러일전쟁 이래 불패했다. 져본 적이 없었기에 정신력만 가지면 어떤 막강한 화력에도 대등하게 대항할 수 잇다고 믿었다.
그리고 불패신화에 어긋나는 정보는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결국 오만한 무지라는 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셋째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관적 사고에 의한 독선에 계속 빠져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시간적, 공간적인 대국관이 전혀 없었다.
쇼와사 전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의 지도자들이 아무런 근거 없는 자기 과신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괜찮다, 이길 수 있다." "괜찮다, 미국은 합의를 해줄 것이다'라는 말들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결론이 어긋났을 때의 태도는 끝을 알 수 없는 무책임함이었다.
근거 없는 자기 과신, 교만스러울 정도의 무지함, 끝을 알 수 없는 무책임. 저자의 쇼와사에 대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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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lu 2010-10-2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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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말하는 일본 제국사(1926~1945)
쇼와는 우리식한문으로 표현하면 "소화"이고,일본천황이름인 "히로히토"의 연호이다.우리나라에도 일제시대 "소화다리"같은것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한마디로 히로히토천황시기의 역사서라고 보면 될듯하다.양심적인 일본 지식인이 쓴 역사서이다.강연했던것을 옮겨놓은 것이라 읽기는 편하다.이시기의 일본역사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우리가 일제식민지시기중 가장 참혹한 시기를 보낸 시기이며,수많은 조선 청년들이,처녀들이 전쟁터로, 공장으로,광산으로 병사로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거친 시기이기 때문이며,이시기 일본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복무했던 군인,경찰,공무원들이 해방후 남한의 주축세력이 되어 일제식민지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고,지금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도대체 일본의 지도자들은 무슨생각으로 만주로,동남아시아로,진주만으로,남태평양으로 전선을 넓혀갔으며,"옥쇄","가미카제특공대"라는 극단적 자결방식으로 전쟁수행을 했는지 궁금해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청일전쟁"과"러일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불패,무적"의 신화를 자랑하게 되었고,러일전쟁의 승리로 얻은 중국의 여순과 대련을 중심으로한 관동군을 만주전역으로 확대하여 제일의 가상적국인 소련에 대항하는 이중방어선(만주-조선-일본)을 만들고자 하였다.괴뢰정권인 "만주국"을 세워 막대한 천연자원을 획득하고 야심을 중국본토로 넓혀 "지나사변"을 일으켜 중국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야욕도 있었다.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영국을 몰아붙이자 인도차이나의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를 공략하고 그들이 외처던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하고자 하였다.군국주의화 되어가면서 군부의 목소리가 모든것을 제압하였고,"2.26쿠테타"의 영향으로 정치인들과 천왕조차 언제또 쿠테타가 일어날까 두려워 군부의 힘을 억제하지 못했다.일부 양심있는 군인들은 미국과의 전쟁은 승산이 없다고 주장하였음에도 브레이크없는 기차처럼 군부의 야욕을 멈출자가 없었다.
저자는 천황은 군부의 힘에 어쩔수없이 끌려다녔고,조선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것에 대해 섭섭하긴 하지만,당시 일본의 관심은 만주와 중국본토에 크게 두고 있었지,조선반도는 이미 손에 넣은 떡이라 생각했는지 별 언급이 없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도시락폭탄을 던져 죽게한 "시라카와대장"이란 사람이다.이사람은 전쟁광이 아니어서 천황이 특별히 불러 상해로 일본군이 진주했을때 전선을 확대하지 말라는 명령을 충실히 지켰던 사람인데,엉뚱하게 폭탄사건으로 죽는바람에 그후 일본군이 상해를 거쳐 남경등 중국전역으로 전선을 확대하게 된다.역사의 아이러니라 할수 있겠다.물론,임시정부입장에서는 상해까지 일본군이 점령하자 크게 위기의식을 느꼈을것이어서 거사를 단행한거겠지만..,
조선반도에 38선이 그어지게 된 사정도 대략 짐작할수 있다.포츠담선언에서 소련의 참여를 요청했던 미국은 원자폭탄투하이후 갑작스런 일본의 항복으로 굳이 소련의 도움이 필요없어졌음에도 소련의 빠른 남하로 만주와 조선반도전체를 다 차지하게 생겼으니 일본본토와 직접 맞닿는 것보다는 조선반도를 반이라도 차지해 일본의 방어선으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반으로 나눈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된 것이고..,
군국주의화된 일본은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자국국민뿐만 아니라 식민지조선과 대만,중국등 주변국가들에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했다.그리고,반성할줄 모른다.
해방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제식민지의 악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한사회는 잘못된 일제의 잔재들을 하나씩 청산해 나가야 한다.그리고 잘못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무고한 생명들이 전쟁광들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이끌려 전쟁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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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016-09-0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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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말하는 일본 제국사 [쇼와사]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어서, 가까이 있는 나라임에도 참 낯설게 느껴진다. "일본"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일본 문화가 그나마 이 정도로 개방된 것도 불과 십여년 안팎의 일이고, 일본의 역사는 임진왜란을 배우면서 잠시,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를 겪어야 했던 36년간의 치욕적인 근대사를 배우면서 접한 것이 거의 전부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낯설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다.
일본이란 나라가 참 궁금했다. 우리 입장에서 본 일본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참 궁금했다. 두 권짜리, 900여쪽을 훨씬 넘는 분량임에도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인이 쓴 일본 역사. "일본이 말하는 일본 제국사"가 부제인 [쇼와사 昭和史]. "'쇼와'란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로서 쇼와사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단순히 시기를 구분 짓는 의미를 넘어 시대의 상징적`문화적인 코드까지 함축하고 있다." 고 한다. 이 시기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당한 시대와도 일정부분이 겹치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까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선뜻 펴든 책이기도 하다.
[쇼와사昭和史]를 쓴 이는, 한도 가즈토시. "작가이자 수필가, 역사소설가. [쇼와사] 출간 후 일본에서 크게 유명세를 탔으며, 일본 근현대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양식있는 지성, 영향력있는 논객으로 유명하다."(책앞날개)는... 1930년생인 글쓴이는 자신의 삶의 궤적과도 상당부분 일치하는 쇼와사를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전체 두 권으로, 1권에서는 1926년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선언까지, 2권에서는 1945년 이후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정치사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학교에서 쇼와사를 거의 배우지 못했습니다."(1권 p447)는 편집자의 설득으로 쇼와사 강의를 위한 교습소를 열어 진행한 수업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1권,2권 각각 15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으며, 2권에서는 1989년까지의 쇼와사 전부가 아니라, 1973년정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권 전전편은, 사실 읽기가 어려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일본근현대사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이리라. 1권에서는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대내외적인 전쟁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내겐 낯선 인명과 지명, 사건의 연속이라 낯설기도 하고 너무 지엽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본인이라면 자국의 역사니까 이 정도면 입문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외국인 독자를 상대로 기획된 책이 아니니까 말이다. "지은이 한도 가즈토시는 일본의 영향력 있는 논객이자 작가로서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일본인이 일반적으로 가진 역사의식을 솔직하게 객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본래의 의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다소 우리의 시각이나 의식과 다르더라도 가능한 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 오히려 일본인의 역사의식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는 일러두기 그대로이다. 이 책을 펼쳐들면서 나는, 일본의 역사도 궁금했지만 일본의 지식인이 당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가 무척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야속하다 싶을만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2권 전후편은 1권에 비해서 쉽게 잘 읽혀나갔다. 1권에서처럼 전쟁이나 내겐 낯선 일본 정치인들의 인명이 많이 나열되어 있지 않기도 했고, 일기나 신문, 자서전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일본의 전후 역사를 생생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후 폐허가 된 일본. GHQ 점령하의 일본인들이 겪었던 패배감. 그렇지만 한국전쟁이라는 "신풍神風"을 통해 경제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되는 이야기며 눈부신 경제성장에 관한 이야기까지..
일본은 이런 시대를 살아왔구나.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이 책의 전부를 내 것으로 소화시키진 못했지만, 가까운 나라 일본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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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fo 2010-09-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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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사 2 - 일본이 말하는 일본 현대사, 1945-1989 전후편戰後篇
한도 가즈토시 (지은이),박현미 (옮긴이)루비박스2010-08-15






























미리보기
책소개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책.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목차
1권
추천사 · 9
서장 · 13
쇼와사의 뿌리에는 ‘붉은 석양의 만주’가 있다.
러일전쟁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
국가 흥망의 40년 / 국방의 최전선인 만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지나유기》에서
정세가 악화된 쇼와 시대의 개막
1장 · 29
쇼와는 ‘음모’와 ‘마법의 지팡이’로 막을 열었다
장작림폭살사건과 통수권 간범
장작림폭살사건의 범인은? / 천황이 격노하다 / 태도를 바꾼 원로 사이온지
통수권 간범이란 무엇인가? / 군사에 관해서는 기타 잇키
2장 · 49
쇼와를 엉망으로 만든 출발점은 만주사변
관동군의 야망인 만주국의 건국
천황의 간신이라 불린 사람들 / 천재 전략가, 이시하라 간지의 등장
사이온지가 천황을 견제하다 / 나무젓가락은 오른쪽으로 굴렀지만…
신문들은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3장 · 75
만주국은 일본을 ‘영광스러운 고립’으로 이끌었다
5·15사건에서부터 국제연맹 탈퇴까지
전쟁을 선동하는 신문사 /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황군이 입성 / 혹독해진 세계의 여론
상해사변을 뒤로하고 정전으로 /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될 것이다’ ‘문답무용’
리튼 조사단이 본 것 / 42 대 1의 결의
4장 · 103
군국주의를 향한 길은 이렇게 정비되어갔다
육군의 파벌싸움, 천황기관설
소란스러운 방공대연습 / 육군에 대한 최후의 저항 / 군정의 에이스와 작전의 귀신
중국일격론이 통하다 / 천황기관설의 목적은? / 만세일계의 천황의 통치
5장 · 125
2·26사건의 주안점은 궁성점거계획이었다
전쟁체제로 성큼 내딛다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 문화의 어머니 / 용감한 부인들 / 천황을 제압한다는 의미
삼전우표는 동료라는 부호 / 우리는 성공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히로타 내각이 남긴 것
6장 · 153
중일전쟁, 깃발행렬과 제등행렬의 파도는 계속되는데…
노구교사건, 남경사건
중시되지 않았던 서안사건 / 7월 7일 오전10시 넘어 / 연대장이 독단전행으로 내린
명령 / 제3자의 음모가 있었다 / 남경학살은 있긴 했지만… / 수렁에 빠져버린 전쟁
장개석을 상대하지 않은 치명타
7장 · 181
정부와 군부는 모두 강경 노선만을 고집, 그리고 노몬한
군축 탈퇴 , 국가총동원법
해군 중견 클래스의 강경론 / 초대전함을 건조해야 한다
국가총동원상 필요가 있을 때 / 스탈린처럼 대담하게 / 노몬한의 비극
전쟁은 의지가 강한 쪽이 이긴다
8장 · 205
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모든 문제들을 날려버렸다
영미와는 대립, 독일에는 접근
양식 있는 해군 3인방의 고군분투 / 유서를 쓴 야마모토 이소로쿠
강경해지기 시작한 미국 / 파마를 금지시키다 / 스탈린의 악마적인 결단
이제부터는 일개 병사로서 싸운다
9장 · 231
왜 해군은 삼국동맹을 받아들였을까?
군사국가의 길로 치닫다
사치는가장 큰 적 / 떠나는 버스를 놓치지 마라 / 최후의 방파제가 무너졌을 때
돈 때문에 영혼을 판다? / 피와 고생과 눈물, 그리고 땀
10장 · 257
독소의 정략에 휘둘리는 와중에 남진론을 제창
독일의 소련 진공
북부 인도차이나에 감행한 무력 진주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 / 전쟁으로 내달리기
시작한 해군 중앙 / 기원2600년… / 마쓰오카 외상의 유럽여행
히틀러의 악마적인 유혹 / 기분이 좋아진 스탈린 / 영웅은 머리를 전향한다
11장 · 285
네 번의 어전회의, 이렇게 전쟁은 결단되었다
태평양전쟁 개전의 전야
외무성 내의 대미영 강경파 / 깨끗하게 사라진 미일 양해안 / 대미영 결전을
포기하지 않고 / 의욕이 충만했던 ‘관특연’ / 전쟁을 그만두지 않을 것을 결의하다
오케하자마와 히요도리고에와 가와나카지마 / 기회는 이제 오지 않는다!
대미 전투를 결의하다 / 니이타카 산에 올라가라 1208
12장 · 323
영광에서 비참으로, 그 역전은 너무나도 빨랐다
한순간의 전승
전쟁 통고는 틀림없이 있었다 /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오로지 대승리에 취한 일본 국민 / 미드웨이의 지는 해
13장 · 345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과달카날, 임팔, 사이판의 비극에서 특공대 출격으로
과달카날을 빼앗기다 / 야마모토 장관의 전사 소식 발표 / 호우 속의 임팔가도
사이판 탈환은 불가능 / 특별공격은 모든 해군의 뜻?
14장 · 369
일본 항복을 앞에 두고 권모술수가 극에 달한 미국과 소련
얄타회담, 도쿄대공습, 오키나와 본섬 결전, 그리고 독일 항복
너무나 위험한 소이탄 / 일본 가옥은 나무와 종이다 / 지는 벚꽃과 남은 벚꽃도
모두 흩날리다 / 쇼와천황이 쓰러진 날 / 질질 끈 대답
원자폭탄과 포츠담 선언의 묵살
15장 · 397
견디기 힘든 감내, 참기 힘든 인내
포츠담 선언 수락, 그리고 종전
히로시마 사자의 행렬 /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기란 불가능 / 첫 번째의 성단
예속과 제재하에서 / 두 번째의 성단에 따라서 / 항복한다는 것의 어려움
종장 · 419
310만 명의 사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은?
쇼와사 20년의 교훈
못 다한 이야기 · 425
노몬한사건으로부터 배운 것
환상, 독선 그리고 당황스러움 / 시바 료타로에 대해서
대장이 보내온 한 통의 편지 / 사건의 시작은 국경 침범
연구위원회가 내린 결론 / 정보는 천황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핫토리 참모와 쓰지 참모 / 남진론을 부르는 대합창 / 노몬한사건의 교훈
일본인의 결점을 여실히 기록
맺음말 · 447
참고문헌 · 450
주요 인명, 지명, 사건 · 451
2권
추천사
서장. 천황과 맥아더의 회담으로 전후가 시작되다
- 패전과 일억 총참회
ㆍ일억의 눈물바다
ㆍ평화는 역시 좋은 것이다
ㆍ맥아더가 왔다
ㆍ자유와 관용과 정의의 이름으로
ㆍ교수형에 처해져도 상관없다
ㆍ헬로 헤드 바우
1장. 가혹한 점령정책과 대책 없는 정부
- GHQ에 의한 군국주의 해체
ㆍ암시장의 번성
ㆍ극한의 기아
ㆍ계속 전개되는 점령정책
ㆍGHQ에 휘둘리는 대책 없는 일본
ㆍ평화국가를 향한 길
ㆍ전쟁의 책임을 추궁당하다
2장. 기아로 인해 넋이 나간 일본인
- 정당과 저널리즘의 부활
ㆍ사과의 노래와 페니실린
ㆍ변화무쌍한 평화의 가격
ㆍ정당과 저널리즘이 부활하다
ㆍ미국의 다양한 사상개조
3장. 헌법개정문제를 둘러싼 일대 혼란
- 마쓰모토 위원회의 모색
ㆍ포츠담 선언은 무조건 항복인가?
ㆍ무시당한 국체 보호의 조건
ㆍ엇갈린 고노에와 맥아더의 회담
ㆍ마쓰모토 위원회의 발족
ㆍ백열하는 헌법초안노의
ㆍ걱정스런 천황제의 앞날
ㆍ꽁무니를 빼는 사람들
4장. 인간 선언, 공직추방 그리고 전쟁 포기
- 공산당의 인기, 평화헌법의 맹아
ㆍ천황페하, 인간이 되다
ㆍ사랑받는 공산당
ㆍ맥아더를 움직인 일본인의 편지
ㆍ이제는 평화로운 일본으로
5장. 두 번째 성단, 나는 상징이어도 좋다
- GHQ의 헌법초안을 받아들이다
ㆍ이상이 결여된 헌법초안
ㆍ일본인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다
ㆍ충격적인 GHQ안
ㆍ극단적인 인플레 치료
ㆍ48시간 이내로 답을 달라
ㆍ드디어 완성된 신헌법
6장. 도쿄재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 냉전 속에서 철저하게 재판 받은 일본 현대사
ㆍ냉전의 시작
ㆍ사회당 내각의 성립
ㆍ격변하는 세계정세
ㆍA급 전범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ㆍ도쿄재판은 무엇이었나?
ㆍ천황은 소추할 수 없다
ㆍ익살극에 적군과 아군 모두 땀을 흘리다
ㆍ한숨만 나오는 비화들
ㆍ판결이 내려지다
ㆍ씁쓸한 뒷맛
7장. 공포와 같은 GHQ의 우선회
- 개혁보다는 부흥, 덧지라인의 공과 죄
ㆍ미소 대립의 격화
ㆍ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이용되는 일본
ㆍGHQ내부 대립
ㆍ개혁보다 경제부흥을
ㆍ연이어 터지는 기이한 사건들
8장. 한국전쟁은 신풍이었나?
- 거칠게 불어닥친 레드퍼지와 특수 폭풍
ㆍ돈줄이 막히다
ㆍ적색은 모두 추방하라
ㆍ아프레게르의 폭주
ㆍ한국전쟁으로 특수가 들끓다
ㆍ굿바이, 맥아더
9장. 새로운 독립국 일본의 출항
- 강화조약을 모색
ㆍ반미 무드에 조바심이 난 미국
ㆍ전면 강화인가, 단독 강화인가
ㆍ요시다 VS 델레스의 공방
ㆍ군대의 씨앗인 경찰예비대의 편성
ㆍ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의 두가지 문제점
ㆍ천황 퇴위 발언을 하는 자는 비국민이다
10장. 혼미한 세상, 여러 가지 사건들
- 기지문제, 핵실험에 대한 저항
ㆍ사라져가는 점령의 그림자
ㆍ돈은 1년, 땅은 만년
ㆍ<도쿄이야기>가 그려낸 전 후 풍경
ㆍ개헌과 재군비론을 낳은 복고의 파도
ㆍ고정되지 않은 목표에 표류하는 일본인
11장. 55년 체제가 만들어진 날
- 요시다 독트린에서 안보합동으로
ㆍ요시다 1인 장기정권
ㆍ하토야마 파의 반항으로 자유당이 반으로 갈라지다
ㆍ사상 최대의 정변, 드디어 무너진 요시다 내각
ㆍ가까스로 보수합동을 만들다
12장.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 개헌과 재군비라는 강경노선을 향해
ㆍ헌법개정과 재군비의 실패
ㆍ소련과의 국교가 회복되다
ㆍ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ㆍ안타깝게 단명한 야인 수상
ㆍ불안을 퍼트린 강경노선
ㆍ근평문제와 경직법
13장. 60년 안보투쟁 이후에 온 것
- 미치 붐, 그리고 정치투쟁의 종막
ㆍ미치 붐이 가져온 것은?
ㆍ안보개정의 시동
ㆍ데모로 해는 저물고
ㆍ지긋지긋한 정치, 이제는 경제다
ㆍ월급이 배로 오르다
14장. 폭풍같은 고도경제성장
- 올림픽과 신칸센
ㆍ열심히 일하는 일본
ㆍ대중소비시대의 도래 - 소니와 혼다
ㆍ일본의 풍경은 바뀌었다
ㆍ머니빌딩이 세워지다
ㆍ생활을 바꾼 세 가지 물건
ㆍ선망의 대상, 공단주택
ㆍ냉전의 격화, 긴장하는 세계
ㆍ저널리즘은 혹한의 동절기
ㆍ알고는 있지만 무책임한 시대
ㆍ여전히 외교가 없는 일본
ㆍ케네디 암살이 가져다준 것은
ㆍ올림픽과 신칸센
15장. 쇼와 겐쿠로의 통고
- 단카이 파워의 분출과 미시마 사건
ㆍ사토 에이사쿠의 등장과 쇼와 겐쿠로
ㆍ기대 받는 인간상과 비틀즈
ㆍ격동하는 세계정세
ㆍ베이비붐 세대의 반역
ㆍ도쿄대 야스다 강당의 함락
ㆍ만국박람회와 미시마사건
ㆍ오키나와 반환으로 전후가 완결되다
종장.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전후사의 교훈
ㆍ현대사까지
ㆍ전후란 무엇인가 - 현재를 돌아보며
ㆍ그 이후의 전후
ㆍ앞으로 일본은
여담. 쇼와 천황과 맥아더 회담의 비화
ㆍ맥아더의 감동
ㆍ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ㆍ두 번째 회담 - 화제의 중심은 도쿄재판?
ㆍ세 번째 회담 - 신헌법과 맥아더의 예언
ㆍ네 번째 회담 - 실체가 드러난 안전보장
ㆍ다섯 번째 회담 - 천황의 진의
ㆍ여덟 번째 회담 - 흔들리는 일본의 치안
ㆍ아홉 번째 회담 - 국제정세에 대한 우려
ㆍ열 번째 회담 - 드디어 강화문제로
ㆍ열한 번째 회담 - 작별인사
ㆍ천황과 맥아더의 회담을 안다는 것의 의미
맺음말
참고문헌
주요 인명, 지명, 사건
접기
책속에서
P. 41-42 입헌군주제에서는 국무(정치)와 통수(군)의 최상위자가 완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아서 천황에게 알린 일은 설령 군주 자신이 내심으로는 찬성하지 않아도 재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중략) 쇼와사의 출발점에 벌어진 이 사건(장작림폭살사건과 내각총사직)의 의미는 사건 그 자체의 크기보다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쇼와천황은 이후에는 내각이나 군부가 일치해서 정한 일에 ‘노’라고 말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관철합니다. 즉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입헌군주국에서 군주의 존재방식이라고 깨달은 것 같습니다. 쇼와사는 항상 이 점에서 출발하고 이후 일본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전전편 p41~42) 접기
P. 64-72 이타가키가 “이렇게 된 바에야 운을 하늘에 맡기고 나무젓가락을 세워서 정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습니다. 오른쪽으로 구르면 중지, 왼쪽으로 구르면 결행이라고 정한 뒤 젓가락을 굴려보았더니 오른쪽으로 굴렀던 것 같습니다. 그럼 중지를 해야 될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미나미가 그의 평소 성격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조선군은 국경을 넘어서 만주로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부분이 쇼와사의 병폐, 또는 한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자 와카쓰키 수상이 “뭐라고? 이미 만주로 들어갔단 말이지. 그렇담 어쩔 수 없군.”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육군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중략) 23일 조간 신문은 ‘조선군의 만주 출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쇼와 7년 3월에는 만주국이 건설되었고, (중략) 본래 대원수의 명령 없이 전쟁을 시작한 중죄인으로 육군 형법에 따르면 사형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출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쇼와가 엉망이 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전전편 p.64~72) 접기
P. 169-170 남경에서 일본군에 의해 대량학살과 각종의 비행사건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라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국민에게 마음속 깊이 사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도쿄재판에서 말했던 것처럼 30만 명을 죽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경 시민을 소개疏開한 상태라 시민이 30만 명이나 남아 있지 않았고, 군대도 그렇게 많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일본군은 칭찬을 받을 만한 군대가 아닙니다. 쇼와 14년 2월에 일본 육군성이 몰래 만든 <비밀문서 제404호>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중략)
“어느 중대장은 (중략) 강간을 한 뒤의 처리방식까지 가르쳐주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하나하나 조사했더니 모두 강도 살인, 강도 강간의 범죄자들뿐이다.” (전전편 p.169~170) 접기
P. 99-101 정식으로는 2월 24일, 국제연맹은 총회에서 일본군의 만주철수권고안을 42 대 1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일본만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중략) 확실히 연맹 탈퇴는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썼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신문은 42 대 1이 멋지다는 칭찬 일색이었고 마쓰오카에 대해서도 기특하다는 듯 ‘오늘날 일본에 이런 영웅은 없다’며 치켜세웠습니다. (중략) 일본 국민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는 것이 이후 일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고립’을 택했다는 말을 마구 써대니 일본 국민은 점점 고립감과 세계에 대한 배척감이 강해져 전 세계를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 후 고립화된 일본은 점점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고, 배외주의적인 양이사상에 압도된 국민적 열광에 힘입어 전쟁의 길로 돌진하게 됩니다. (전전편 p.99~101) 접기
P. 297-298 바로 그때입니다. 8월 1일 미국은 석유의 대일본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고 통고합니다. 이 이후 일본은 미국에서 석유 한 방울도 받지 못하게 되는 긴급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해군 중 몇 명은“뭐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정부나 군부는 미국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나가노 총장은 7월 29일 천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물자가 없어지고 점차 곤궁해질 텐데 어차피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쟁을) 빨리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천황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일전쟁 때의 해전과 같은 대승을 거두긴 힘들겠지?”
“그때와 같은 대승리는커녕 이길지 어떨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전편 p.297~298) 접기
P. 366-367 “일본도 이제 끝장이다. 나와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려 하다니…. 그러나 명령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중략)
세키 대위는 10월 25일 기지를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0월 28일, 해군은 가미카제특별공격대를‘명령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중략) 가미카제특공대나 나중에 나온 가이텐특공대도 모두 병사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서는 해군 리더들의 자신감이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덕성은 그림자조차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전편 p.366~367) 접기
P. 401 일본은 그런 경위를 알지 못합니다. 초강력 폭탄이 떨어졌다고 하니 이것이 원자폭탄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에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8월 7일, 신문과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一. 지난 8월 6일 히로시마 시는 적B29 여러 기의 공격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一. 적은 이번 공격에 신형폭탄을 사용한 것 같은데 상세한 것은 현재 조사 중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이때까지 원자폭탄이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신형폭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전전편 p.401) 접기
P. 424 결론은 일본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 없는 자기 과신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책임함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인에도 이와 같은 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역사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역사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전전편 p.424)
P. 14-15 한참 후에는 전쟁이 끝나서 정말 잘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극히 소수만이 정말로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당시 제 감정을 말씀드리자면, (중략)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커다란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애의 눈물인지 후회의 눈물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일억 인구는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략) 당시 일기를 쓰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으니 (중략) 몇 개를 읽어 보겠습니다.
“천황폐하의 목소리는 녹음된 것이었는데 전쟁을 종결한다는 조서다. 뜨거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이 쏟아지는 눈물은 대체 무슨 눈물인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전후편 p.14~15) 접기
P. 18-19 그때까지 우리는 미군이 와서 점령한다면 남쪽 섬이나 어딘가로 끌려가 평생 노예가 될 거라고 배웠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거라면 그 전에 빨리 이것저것 다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방공호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습니다. 무슨 맛인지 전혀 몰랐지만 불량스러운 동급생들과 뻐끔뻐끔 피워대면서 “맛있지?” “어, 진짜 맛있다.”라고 (중략)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기억합니다. (전후편 p.18~19) 접기
P. 26-27 그리고 미국의 1진이 상류한 날인 28일, 히가시쿠니노미야 수상이 기자회견을 열어 그 유명한 일억 총참회라는 말을 합니다. (중략) 일억 총참회론이 신문에 등장하자 어제까지 국민들을 격려했던 선생들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우리도 잘못했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국민을 패망으로 이끈 책임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민족의 정신이나 투쟁심이 나쁘다면 나쁠 수도 있지만 전쟁으로 치달을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결단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이 순간에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일본인들은 여기서 제대로 역사를 인식하고 역사를 통해 배우고 일본의 주장, 일본인이 저질렀던 일들과 마주하고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과거의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자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전부 부정하고 맙니다. 일본도 심각한 패전 콤플렉스에 빠졌습니다. (전후편 p.26~86) 접기
P. 112-113 그리고 12월 22일, 마쓰모토 위원회는 총회를 열었습니다. 이때의 논의가 좀 재미있습니다. 고지마 노보루가 저서《사록 일본국헌법》에서 소개한 것과 다른 사료를 참고해서 재현해 보았습니다. 우선 미노베 다쓰키치 선생의 제안입니다.
“국가의 칭호인 대일본제국에 대해서 말인데, 패전국이 ‘대’라는 글자를 쓰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국이란 말도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냥 일본국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요? (중략) 그리고 제4조의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에서 ‘원수로서’를 삭제하는 것이 어떨까요?” (중략)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할 거라면 제1조에 ‘통치는 신민의 보익을 받아 행한다’라는 말을 보충해서 민주주의를 표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아니, 신민이라는 단어에는 봉건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국민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노베 다쓰키치 선생은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신민은 신민으로 좋지 않습니까? 조칙에는 ‘그대들 신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략)
“저도 신민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도 국왕에 대한 subjects, 즉 신민이라고 합니다. 국민에 상응하는 단어는 시티즌이지만 시티즌은 공화국민을 의미합니다.” (중략)
……마지막 단계에서 이런 것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일본인의 손으로 헌법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후편 p.112~113) 접기
범인은 맨 처음에는 굵직한 것이 많아도 심의를 하는 과정에서 점점 자세한 부분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돈벌이가 되는 법안을 관료가 만들어 여당이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큰 이익을 버는 업계가 생기고, 그 업계가 기쁜 마음으로여당에게 헌금을 한다. 그 돈이 새어서 관료에게도 흘러가고 낙하산 인사같은 이을 얻는다. 이런 식의 흐름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수송선단 방식입니다. 독립한 일본이 활동하기 시작한 때 만들어진 이 방식은 그 후에도 쭉 이어됩니다. 접기
천황의 인간선언과 더불어서, 이로 인해 연합국을 비롯한 세계의 국가들이 일본이 전전의 군국주의를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하려 한다고 이해한것처럼,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이라는 국가를 만들어 온 국체는 여기서 완전히 부정됩니다. 다시 말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신앙처럼 일본인을 지탱해 왔던 정신구조는 전부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신에 무엇이 일본인의 정신을 지탱해 온 것일까요? 그것은 미국식민주주의일 것입니다. 그때부터의 일본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의해 재건되어야만 했습니다. 접기
쇼와사 - 피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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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에 대한 일본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킨 책이다. 평론가이자 역사소설가로 유명한 지은이는 일본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대부분의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솔직하게 대변한다. (중략) 한국 근현대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일본 근현대사. 이 시기에 우리는 식민 지배를 겪었고, 냉전을 공유했으며, 탈식민지 국가 재건과정을 겪었다. 번영과 몰락을 반복한 쇼와 시대의 일본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뒤돌아보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서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아시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소개해줄 것이라 믿는다.
- 박상미 (와세다대학교 고등연구소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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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도 가즈토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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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수필가. 역사소설가. 《쇼와사》출간 후 일본에서 크게 유명세를 탔으며, 일본 근현대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양식 있는 지성,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유명하다.
1930년 도쿄에서 출생해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 입사한 후 <주간문춘>, <문예춘추>의 편집장, 이사를 거쳤다. 1965년 오야 소이치의 이름으로 《일본의 가장 긴 하루-운명의 8월 15일》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서로는《어쩌면, 소세키 선생》,《노몬한의 여름》,《막부 말기사》,《스미다 강의 건너편... 더보기
최근작 : <쇼와사 1>
박현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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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한국해양연구소, 세종연구소 등에서 번역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옮긴 책으로 『루이와 3A3 로봇』 『걱정 많이 걱정인 걱정 대장 호리』 『식빵을 버리려다』 등이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외면했던 일본의 근현대사를 이제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다!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쇼와사>를 읽는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다른 나라, 경제적.정치적 위치에서 영원한 동반자이자 라이벌인 일본의 근현대사를 일본인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은 물론,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에 무게를 둔 국가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지금, 일본은 전쟁을 해야만 한다!
독일이 소련을 진공하며 태평양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린다. 1941년 8월 1일, 일본에게 독이일 삼국동맹에서 빠질 것을 강하게 요구하던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 “2년도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끌수록 일본의 물자과 병력은 떨어지고 적은 강력해진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본 내 전쟁 강경파와 반대파들이 대격론을 벌이는 동안, 신문은 날마다 ‘대동아공영권의 최단거리’, 즉 전쟁을 선동한다. 결국 주전론자인 도조 히데키 내각이 발동하고 미국이 교섭에서 강경하게 나오면서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쇼와사>에서 일본이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은 자세하고도 긴박감이 넘친다. 그동안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일본의 전쟁을 일으킨 속사정, 최악의 선택으로 일본을 몰고 간 장본인들의 대책 없는 모습과 그 속에 숨겨진 비화들을 만날 수 있다.
영광에서 비참으로, 패전국 일본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속에 진주만 공격은 대승을 거두고, 그 후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일본은 대동아신진서 건설, 제국 영토 확장을 꿈꾼다. 그러나 하와이 공격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려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암호가 해독되어 적에게 작전을 읽히고, 과달카날, 인도의 임팔가도, 사이판에서 연이어 완패하고,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돌진하는 특별공격까지 실행하고 만다. 당시 해군은 가미카제특공대는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1945년, 극도로 염세적이고 불안한 분위기의 일본에 도쿄대공습이 가해지고 오키나와에서 전함 야마토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마침내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는 최악의 궁지에 몰린다. 그리고 8월 15일, 소위 천황의 ‘성단’에 의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패전국 일본의 운명은 맥아더를 대원수로 하는 연합국(GHQ)의 점령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스스로 미국을 위한 ‘위안부’를 만들었다?
저자는 전후 일본이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연합군 앞에서 순종적인 아이처럼 ‘변신’했던 역사에 대해 자성적인 비판을 던진다. 한 예로 종전 3일 후, 지도층은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의 일환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설치하고 1억 엔의 예산을 마련해 위안부 1300여명을 모집한다. 그리고서는 ‘평범한 일본 여성의 순결의 값으로 1억의 비용이면 싸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통해, 강자 앞에서 한순간에 비굴해지는 일본인에 대해 지적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후 일본은 연합군이 지시하는 대로 토지개혁과 산업기술, 경제정책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는 데 성공하나, 연합국의 뜻에 따라 ‘천황은 상징이다’라는 방향을 공표하고 미국이 쥐어준 초안대로 신헌법(현재의 평화헌법 제9조를 포함)이 세워져 현재까지도 시끄러운 문제를 남기게 된다. 이후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일본은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는 국가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지금의 일본의 형태로 향해 간다.
한국전쟁 특수는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신풍’이었다!
<쇼와사>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별수요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후 일본은 극도의 가난을 겪으며 ‘1천만 아사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대기업이 해체되고 산업의 제재를 받으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완전히 달라진다. 유엔군의 전진보급기지가 되어 단번에 모든 물자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이때 일본인은 미국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동시에 대량생산방식과 품질관리를 습득했다. 그 결과 3년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고 규모도 크게 확대되어, 그 흐름을 타고 발전을 거듭하여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도요타, 혼다, 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의 토대도 이때 이루어졌다. 연간 300대의 트럭을 생산하던 도요타가 월 1500대까지 늘려도 수요를 쫒아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문예춘추>의 기자였던 저자는 혼다 사장을 인터뷰한 후 감사의 표시로 주식을 받을 뻔 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주식이 몇 백배나 뛰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워 과거를 딛고 일어난 일본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일본을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고민을 잊은 채 물질주의에만 빠져들었던 역사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근현대사
지금까지 쇼와 시대의 역사와 일본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여럿 있었으나, 한도 가즈토시의 <쇼와사>는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일본 근현대사를 종합적으로 완결한 책으로 부를 만하다. 1960년대부터 조금씩 개정되며 영미권에서 일본근현대사의 기본 텍스트로 읽혀온 <일본 근현대사>(w.비즐리,2004개정)와 달리 동양의 역사를 보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성의 눈으로 본 책이며,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2005)보다 방대한 자료 전개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 외 일본인의 저서로 <히로히토와 맥아더>(도요시타 나라히코,2009), <천황과 도쿄대>(다치바나 다카시,2008), <쇼와천황과 일본 패전>(고케츠아츠시,2010)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들은 일본 근현대사를 특정 사상이나 사건, 인물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려는 시도로 쓰여진 데 의의가 있었다. 정치에 국한되거나 폭넓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쇼와사>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양상, 패전 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변화, 나아가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폭넓은 일본근현대사 통사라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도서들과 단연 차별화되는 책이다.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의 쇼와사’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지금 눈앞에서 사건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에다 다양한 사료와 직간접적 경험을 적재적소에 곁들여서 잘 버무려냈기 때문이다. 어전회의에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대화체로 재연하거나, 유행어나 유행가를 들어 설명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신문, 라디오, 일기 등의 기록을 비교해 놓은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또한 현대사로 가면서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을 통해 일본과 우리의 사회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올림픽과 만국박람회로 떠들썩한 일본, ‘단카이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와 기성세대와의 갈등 등이 등장한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묘사되어 있어 ‘역사의 기본은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쓰오카는 쵸슈 출신으로 천황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 ‘기골이 단단한 메이지의 남자들로, 점령군 따위는 난 모른다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일본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 등 현재로 정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스스로의 역사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저자의 역사 서술 능력은 일본내 ‘탁월한 역사 선생’이라는 평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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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라 읽는 재미는 없지만...그래도.
알케 2010-12-3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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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벚꽃처럼 지다
맥아더: 전쟁 책임을 질 것인가?
천황: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할 이야기가 있다.
맥: 좋다. 말해라.
천: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하건 상관없다. 나는 모든 책임을 지겟다. 당신이 대표하는 연합국의 결정에 나를 맡기기 위해 찾아왔다. 나를 교수형에 처해도 상관없다(You may hang me).
그러나 나는 전쟁을 바란 적은 없다. 왜냐면 나는 전쟁에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군부에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으며 일본 국민의 리더로서 신민이 취한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질 생각이다.
“맥아더는 이때 매우 놀랐으며 감동했다. 전쟁에 패한 나라의 원수가 직접 찾아와 ‘나에게 책임이 있으니 처분을 받겠다’고 말한 것이니까. 역사를 살펴보면 대개 망명이나 목숨을 구걸하거나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버티지 스스로 ‘You may hang me’라고 말한 예는 없는 것 같다. 맥아더는 천황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록’에도 적었고 자기 입으로도 자주 이야기했다.”
천황에 대해 감동한 것은 맥아더 뿐만이 아니었다. 1945년 8월 10일 일본정부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고 연합국에 통보했다. 단 연합국이 요구하는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건다: 천황제의 보호를 보증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전보를 받은 미국은 무척 곤란해한 것 같앗다. 육군장관인 스팀슨은 ‘일본인은 어찌 되었든 끝까지 천황을 좋아하는구나’라며 말할 수 없이 감동했다고 나중에 글을 남겼다.”
천황과 첫만남에서 “맥아더는 처음에 아주 거만하게도 천황을 맞으러 나오지도 않았지만 돌아갈 때는 현관 입구까지 배웅을 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후 맥아더는 천황을 목 매달라는 연합국들의 여론에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맥아더가 보호한 것은 ‘천황’이지 ‘천황제’는 아니었다. 미국의 일본점령 정책의 목표는 군국주의의 해체였고 다시는 군국주의가 부활하지 않도록 일본의 체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군국주의의 해체에는 천황제도 포함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천황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인간선언을 한다. 이후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신앙처럼 일본인을 지탱해왔던 정신구조는 전부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러면 그 대신에 무엇이 일본인의 정신을 지탱해 온 것일까? 그것은 미국식 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때부터 일본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의해 재건되어야만 했다.”
이후 미국이 만든 소위 ‘평화헌법’에서도 여전히 천황은 국가원수였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과 달리 국가의 주권은 천황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었고 천황은 정치에 관여할 권한이 없는 상징에 불과하게 되었다.
천황이 국가의 상징이라는 것은 미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이후 1958년 미치코가 황태자비로 간택되었을 때의 ‘미치붐’과 국가적 행사로 성대하게 치뤄진 황태자의 결혼식 때 천황의 지위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결론이 난다. 천황제를 상징으로 만들고 그를 계속 중요한 존재로 떠받든다는 것이 결혼식을 둘러싼 열광으로 사실상 합의된 것이다.
천황은 상징으로 군림할 뿐 지배하지 않는 국민주권의 원칙이 만들어지면서 민주주의는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군국주의의 기둥들을 없애야 햇다.
GHQ는 가장 먼저 군대를 해체했다. 그리고 재벌도 해체되었다. “GHQ의 주장은 ‘일본의 산업은 일본의 지지를 받았고 그 덕분에 소수의 강화된 재벌의 지배하에 있었다. 산업지배권의 집중은 독립 기업가의 창업을 방해하고 일본의 중산계급의 진흥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려면 경제도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지주들도 없어져야 햇다. “이 농지개혁이 성공한 덕분에 일본의 농촌이 어느 정도 빈곤에서 해방이 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일본이 만들어졋다.”
그리고 자본가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노조를 만들었다.
전전 일본의 시스템은 국가의 주권을 가진 천황을 정점으로 군부와 재벌, (정치 엘리트를 배출하는) 지주계급이 떠받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천황은 허수아비가 되고 군부와 재벌 그리고 지주계급이 거세되었으며 전전의 정치인들 역시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정치권이 진공상태가 된 것이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천황의 ‘관료’들이었다. 그리고 그 관료들을 이끈 것은 요시다 시게루 수상이었다. 전직 외교관 요시다 시게루는 전전에 태평양전쟁을 반대한 것이 훈장이 되어 공직추방에서 제외되었다. 전전의 거물 정치가들이 공직추방을 당해 진공상태가 된 정치권을 장악한 요시다 수상은 관료출신들을 문하생으로 키워 후에 자민당 ‘보수본류’를 만들었고 전후 일본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의 비전을 보통 ‘요시다 독트린’이라 부른다.
전후 일본의 원형을 결정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방침은 비군사화, 민주화였고 미국이 떠난 후에도 ‘평화와 민주주의’란 원칙으로 일본의 방향이 된다.
그러나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는 슬로건일 뿐이다. 슬로건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 해석에 따라 일본이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는 4가지 견해가 있었다고 저자는 정리한다.
“첫째는 전쟁 전과 같이 천황을 제일 윗자리에 앉혀 육해군을 정비한 이른바 ‘보통 국가’가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좌익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세번째는 경무장을 한 통상무역국가이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풍요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선택지이다. 그리고 네번째는 소일본이다. 분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문화국가로 동양의 스위가 되는 것이다.”
요시다 독트린은 세번째를 말한다. 그러나 1949년 공직추방이 해제되면서 복귀한 전전의 정치가들은 요시다 독트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보통국가였다. 이후 요시다 독트린과 보통국가론이 자민당 내에서 충돌한다.
요시다 독트린은 ‘군비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를 다시 부흥시켜 무역국가로 살아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인 국가인가? 국가도 사람처럼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군대도 없이 집 지키는 일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하라는 대로 뭐든 하는 자존심도 긍지도 없는 나라가 제대로 된 국가인가? 보통국가론자들의 질문이다.
같은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 1970년 자위대 건물에서 할복자살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이다. “경제는 부흥했을지 몰라도 패전으로 상실한 일본인의 전통적인 문화와 정신은 전혀 부흥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에만 만족하겠는가? 모두 그렇게 얼빠져 있어도 좋은가?”
“’나는 코를 막고 전후를 살아왔다.’고 말하며 이런 전후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던 미시마 유키오는 자위대의 이치가야 주둔지에서 연설을 한다. 11월 25일의 일이다. ‘자위대 제군들이여, 한심한 정부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켜라. 일본의 정신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라고 외치고 헌법개정, 천황친정의 부활을 큰소리로 호소랬지만 아무도 박수를 보내는 이가 없고 단지 어안이 벙벙해져서 바라만 볼 뿐이엇다. 미시마는 처음부터 예상을 하고 있었고 죽을 생각으로 들어왔으니 자기가 할 말을 다 하고 할복자살을 하고 만다. 이것은 텔레비전을 통해 전 일본에 중계되었다.”
후의 미시마처럼 국가의 자존심을 외치는 보통국가주의자들이 권력투쟁에서 이긴 후 50년대 후반은 보통국가론자들이 정치를 장악한다. 요시다 내각을 무너트리고 수상이 된 (전전의 거물) 하토야마는 선거에서 ‘헌법개정, 재군비, 공산권과의 외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까지처럼 미국이 시키는 대로 공산권 국가와는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우리는 독립국이므로 일본의 자주적인 외교정책으로 공산권과도 외교 관계를 맺자는 말이었다.”
문제는 보통국가론이 전후의 대원칙인 평화와 민주주의에서 평화를 깨는 것으로 들렸다는 것이다. 아직 그때만 해도 일본인들에게 만주사변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15년 전쟁’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었다. 그런데 전전에 그 전쟁을 일으켰던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보통국가론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자는 말로 들렸다. 이후 평화란 슬로건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 총대를 맨 것이 사회당이다. 전쟁포기를 명기한 ‘평화헌법’ 수호 단 한가지가 사회당의 존재이유가 된다. 사회당의 존재는 헌법개정을 불가능하게 했고 하토야마 내각 출범한 3쇼와 30년부터 쇼와 31년(1956)까지 평화운동을 명분으로 한 유혈사태가 종종 일어난다.
헌법개정과 재군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토야마에게 남은 것은 자주외교 한 가지였다. 그는 소련과의 국교정상화에 매달린다. 소련과 국교가 회복된 후 일본은 UN 가맹국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하토야마는 할 일을 다했다며 물러난다.
하토야마의 퇴진 후 역시 기시가 수상이 된다(1957). 그 역시 하토야마 이상으로 강경한 헌법개정과 재군비론자였다. 그러나 평화주의가 강력한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기시는 안보조약 개정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다. 그가 말하는 안보조약 개정은 미국과 일본이 대등해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기지를 빌려간 이상 미국은 제대로 일본의 방위를 할 의무가 있고 대신에 일본도 전면적으로 협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반대할 것이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극동의 국제평화 및 안전 유지를 위해 일본은 협력한다’는 부분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일본을 반공의 성채에 지나지 않았던 단계에서 이제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유력한 동맹으로 인정해달라는 말이다. 일본은 미국과 하나가 되어 열심히 싸울 테니 미국은 일본을 제대로 그리고 의무적으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계약을” 하자는 말이다.
미국으로선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지긋지긋한 전쟁의 악몽을 떠올렸다. “전후 일본에서는 미국이 강요한 것라고는 하지만 신헌법에서 정해놓은 대로 평화주의적인 국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때 나온 안보개정이 개헌, 재군비로 이어지지 않을까 의심햇고 국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시는 강행돌파했다.
“이후 약 1개월은 정말로 끊임없이 데모가 벌어졌으니 매일매일 데모와 함께 시작해 데모로 끝났다. 경찰과의 싸움도 더욱 험악해졌다. 절정은 (1960년) 6월 15일 밤이엇다. 데모대가 의사당 문을 부수고 안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데모대를 습격하였으니 수만 명의 대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날 오후 7시 도쿄대생이었던 간바 미치코가 사람들에게 짓밟혀 사망했다. 사망 후에도 불을 피우고 라이트가 비춰져 하룻밤 내내 전쟁과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후에 소방청이 발표하길 중상 43명을 포함하여 589명이 부상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좀 더 많았을 것같다.”
그러나 기시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임시각료회의에서 치안을 이유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일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데모는 계속 이어져 조약 개정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6월 19일이 왔다. 시각이 12시를 지나자 그 순간 국회를 둘러싼 35만명의 데모대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고 한다.
기시는 그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관을 덮으면 모든 일이 가라앉을 것이다.’ 자신이 죽고 나면 이해해줄 것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출처는 중국의 ‘진서’라고 한다. 그런 말을 남기고 관저를 나와 사저로 돌아갔다. 이렇게 기시 내각의 사명이엇던 안보조약 개정이 성립되었다.”
“이들은 백지상태에서 전전의 군국주의, 대일본제국시대에 대한 혐오감과 반발심을 계속 주입받으면서 자랐다. 그러니 그토록 혐오스러운 도조 내각의 각료였고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던 기시가 군사화 노선으로 달려가는 법안을 강행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보파동은 군사대국 일본에 대한 결별이자 평화국가 일본에 대한 강한 기원을 의미했다.
소동은 기시가 퇴진하는 순간에 놀랍게도 뚝 끝나고 말앗다. 쇼와 3년에는 ‘더 이상 전쟁이 아니다’가 유행어가 되었다. 일본이 정말로 전후 기분을 졸업한 것은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안보소동은 전후의 불만을 전부 날려버린 이른바 가스 빼기라고 할 수 있으며 ‘전후 일본의 장례식(다나카 미치타로가 한 말)이었다.”
그 후 자민당은 다시 요시다 독트린으로 복귀했고 요시다 문하생들이 연이어 수상이 되었다.이후 보통국가론은 쇼와 연간에 다시는 제기되지 않았다. 저자는 안보파동 이후를 요약하는 말로 당시 유행했던 ‘데모는 끝났다. 이제 취직이다’를 내세운다.
기시의 뒤를 이은 요시다의 우등생 이케다 수상은 “일본 국민의 소득은 미국인의 1/8, 서독의 1/3입니다. 이 소득을 두 배로 만들겠습니다. 즉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월급을 두 배로 만들겠습니다.”고 선언한다. 소득배증운동 또는 ‘월급 두배론’이다.
“실제 쇼와 30년부터 35년까지 5년간 GNP 연평균 성장률은 8.8%를 상회하여 연간 10.4%로 성장하였으니 한 사람당 급료가 2.7배가 될 정도였다. 일본인의 생활면에서는 쇼화 20년대의 전후사가 여기서 일단 마무리되고 쇼와 30년대 이후의 진정한 전후사가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이때부터 일본의 고도성장이 개막되었고 국민들은 이때를 출발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쇼와 39년(1964)엔 신칸센이 개통되었다.
“지금도 때때로 도쿄역에서 도카이도 신칸센을 탈 때 18번과 19번 선 계단 밑의 막다른 벽에 구리판으로 새겨진 문구를 읽곤 한다.
도카이도 신칸센
이 철도는 일본 국민의 지혜와 노력에 의해 완성되었다.
도쿄와 신 오사카 간 515킬로미터
기공 1959년 4월 20일
운행개시 1964년 10월 1일
허황됨이나 교만함, 흥분을 배제한 산뜻하고 깔끔한 문장이다. 운송대신이나 국철총재의 이름 따윈 없다. 일본 국민 모두가 만들었다고 적혀있을 뿐이다.”
그리고 도쿄 올림픽이 그해에 있었다. “당시 일본인이 마음속으로 느낀 것은 ‘이걸로 겨우 패전국에서 빠져나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선진국의 일원이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은 일본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햇다.
올림픽은 전후 국가건설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를 이룬 중간지점이 되엇다. 점령으로 한번 전환이 찾아왔었고 안보소동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이제 다시 올림픽으로 한 획을 긋게 되었으니 여기서 다시 한 번 또 다른 전후가 시작되었다.”
올림픽 폐막식이 치러진 후 암으로 투병하던 이케다는 은퇴하고 역시 요시다 우등생인 (그리고 기시의 동생인) 사토내각이 성립한다.
“이케다는 드골이 ‘트랜지스터 라디오 세일즈맨’이라고 비웃을 정도로 경제성장에 전력을 다햇지만 정치적 외교적 문제에는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사토는 정치적 문제에도 맞대응할 각오를 한다.” 사토는 “오키나와가 조국으로 복귀하지 않는 한 전후는 끝난 것이 아니다’며 오키나와 문제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다.
“생각해보면 전후 일본의 내각은 각각 자신이 수상이 되기만 하면 ‘이것만은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라는 커다란 명제를 안고서 그걸 달성하는 형태를 계승했다. 요시다 시게루는 (재군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었지만) 강화조약을 맺엇고 하토야마는 소련과의 국교를 회복했다. 기시는 맹렬한 반대에도 미일이 비교적 평등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안보조약의 개정을 이뤄냈다. 이케다는 고도성장을 실현시켰다. 그러므로 사토는 자신이 이룰 대사업으로 오키나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것같다.”
요시다 독트린이 부활한 이 시절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전체적으로 살기 좋은 시절이엇다. 이 시절을 에도 중기의 번영기에 빗대어 ‘쇼와 겐로쿠’리 한다.
그러나 풍요와 함께 체제가 굳어졌고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은 그 굳어져 버린 체제의 어디에도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같다. 혼돈의 시기는 매우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빈부의 차가 뚜렷해졌으며 세상은 완성되어 버렸다. 남은 것은 폐쇄감뿐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반역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68세대의 시작이엇다. “의기소침해 있었던 일본의 학생들이 쇼와 43년 가을 무렵부터 힘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 힘의 중심을 이룬 것은 단카이 세대이다. 쇼와 22-25년 사이에 태어난 약 7백만의 베이비부머들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늘 경쟁을 해야 했다. 이들보다 조금 전인 쇼와 21년(1946)에 태어난 마쓰모토 겐이치는 자신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1학년이 4개였는데 다음 해는 8개가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10개반이 되었다고 했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아 한 명 한 명의 개인은 소홀하게 취급받았다. 모두 평등하게 그런 취급을 받았다면 몰라도 차별을 받게 되었으니 차별은 바로 불만이나 갈등으로 이어지고 반발심이 생겨 금방 화를 내는 성격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것이다. 마침 그때 수업료 인상 문제로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는 쇼와 겐로쿠로 만사태평하게 지내온 교수들이 빛바랜 30년 전의 노트로 강의를 하고 잇었다. 몇 년전의 노트를 빌렸는데 ‘여기서 교수가 농담을 했다’는 메모가 적힌 곳에서 그대로 농담을 들여주는 강의도 있었다. 그런 일을 포함해 이 상황을 용서할 수 엇다는 생각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를 굳이 들자면 단카이 세대는 고도성장기에 철이 들었을 테니 치열한 경쟁을 겪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 지그시 뭘 참은 적이 없었다. 자신들의 생활이 풍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부족한 건 참을 수 없다는 의식이 근저에 깔여 있었다.
한편으로는 단카이 세대의 아버지들은 정말로 열심히 일했고 게다가 조직에 소속되어 관리를 받고 잇었다. 회사중심의 회사 봉건 시대라 할 수 있다. 당시 자주 하던 말 중에 쇼와의 전쟁 때는 군국 봉건주의 시대였고 전후는 회사 봉건주의 시대라는 말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그런 관리 사회에 대한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대학수업은 지겹기만 했다. 공해나 환경문제, 세계각지의 혁명과 학생운동, 그런 것이 겹쳐져 세상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이 증대되어 반역이 시작되엇다.”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은 전체의 2할 정도엿다고 한다. 6할은 무관심햇다. 그러나 베이비부머의 2할이면 상당한 숫자엿다.
경찰 기동대와 학생 시위대의 난투가 일상이 되어가는 와중에 클라이막스인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사건이 일어난다. 야스다 강당이 전쟁터가 된 후 “묘하게도 수많은 일반 학생이 투입되었던 대대적인 학생운동은 마치 자취를 감춘 것처럼 조용해졋다.” 이후 요도호 납치사건, 아사마 산장 농성, 텔아비브 공항 난사사건이 있었지만 신좌익은 고립되고 갈수록 소수가 되엇다.
1972년 오키나와가 반환된다. 저자는 오키나와 반환으로 일본의 전후는 일단 끝났다고 말하며 이책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1989년 쇼와 천황이 죽기까지의 나머지 쇼와사를 간략하게 돌아보면 이렇게 결론으르내린다.
“쇼와 천황이 사망한 그해의 12월29일 경제대국 일본은 최고로 빛나는 날을 맞이했다. 도쿄 증권 거래소의 평균주가가 3만 8915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아니 영원히 나올 것같지 않은 사상 최대의 기록이었다. 이 기록이 나온 때가 쇼와 천황이 사망한 해였다는 점이 아이러니처럼 느껴지지만 전후 일본이 만들어온 경무장 경제제일의 통상국가가 이때 완성되었고 최고로 빛났던 순간이엇다.
그리고 쇼와 시대가 막을 닫는 것을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세계정세가 격변했다. 냉전의 종결은 일본의 버블을 터트렷다. 큰 번영도 일장춘몽이 되어 버렸다. 정말로 허망한 거품이엇다.
40년마다 일본이란 국가는 변해왔다. 전후 일본은 쇼와 27년(1952)에 독립국으로 발족한지 40년이라면 1992년인데 이 전년에 버블이 붕괴되었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 놓은 전후 일본은 40년 후에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하고 세계 2위를 자랑할 정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열심이엇던 일본이 러일전쟁에 이겨(1905) 국가건설에 성공하자 우쭐해진 나머지 점점 국제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결국에는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국가를 멸망시킨 것이 40년 후의 일이었다. 이것과 똑같았다. 전후 일본도 독립해서 국가건설을 시작한 후 40년 만에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커다란 번영을 구가하여 다시 의기양양해 하더니 버블이 붕괴되어 우스운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 이후의 일본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어떤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조차 없이 부유ㅗ하고 있으니 다시 멸망의 40년이 시작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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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lu 2010-10-2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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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되고나서 책되팔이들의 작업으로 인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1~2권 모두 단한권 인쇄 부탁드립니다 caesar117ㅣ 2023-04-29
쇼와사2 kyj1727ㅣ 2023-04-12
1권은 아직 팔리는데 2권은 왜 절판되었는지... 중고가가 너무 비싸요. 혹시나 해서 부탁드립니다!!! Abradcabraㅣ 2023-04-09
전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1권은 지금도 재고가 있는데, 2권이 절판되어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나오길 바라는 책입니다. Critiasㅣ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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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 가즈토시
한도 가즈토시 半藤 一利 | |
|---|---|
| 출생 | 1930년 5월 21일 |
| 사망 | 2021년 1월 12일 |
| 성별 | 남성 |
| 국적 | 일본 |
| 직업 | 언론인, 전쟁사 연구자, 작가 |
한도 가즈토시(半藤 一利, 1930년(쇼와 5년) 5월 21일~2021년 1월 12일)는 일본의 언론인, 전쟁사 연구자 그리고 작가이다. 일본의 근현대사, 특히 쇼와(昭和) 시대의 역사에 관한 인물론 ・ 사론(史論)을 대담(対談) ・ 좌담(座談)을 포함해 많이 간행하였다. 그의 저서 가운데 《쇼와사》(昭和史)가 2010년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내력
한도의 선조는 나가오카 번사로 그는 도쿄부 도쿄시 무코지마구(向島区, 지금의 도쿄도 스미다구)에서 태어났다. 한도의 아버지는 운송업과 구의원을 맡기도 하였다. 인근에 어린 시절의 오 사다하루가 살고 있어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1] 도쿄부립 제7중학교(東京府立第七中学校)에 입학하였으며, 1945년 3월에 도쿄 대공습 당시 피난 와중에 나카가와(中川)를 표류하며 죽을 뻔하기도 했다.[2] 이바라키현의 현립 시모쓰마 중학교(県立下妻中学校)를 거쳐 아버지의 생가가 있는 니가타현 나가오카시로 소개(疎開)하여 현립 나가오카 중학교(県立長岡中学校) 3년차에 일본은 패전과 함께 종전을 맞이하였다. 한도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 도쿄로 돌아왔다.[3] 우라와 고등학교(浦和高等学校, 구제. 학제개혁으로 1년간 수료)를 거쳐서 도쿄 대학에 진학하였다. 대학에서는 보트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2][4] 도쿄 대학 문학부(文学部) 국문과(国文科)를 졸업하였다.
보트부의 영화 로케에서 알게 된 지기(知己)인 다카미 준(高見順)의 추천으로 1953년 문예춘추신사(文藝春秋新社)에 입사하였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인물로 다나카 겐고(田中健五)가 있었다.[5] 당시 유행 작가였던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의 원고 담당 기자로 사카구치로부터 '절대란 없는 것'(絶対はないこと)이라는 역사를 추리한다는 발상을 익혔으며, 사카구치의 제자로 들어갔다고 칭하였다. 이어 당시 『연합함대의 최후』(連合艦隊の最後) 등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던 군사 부문 기자 이토 마사노리(伊藤正徳)의 담당이 되어 일본 국내의 전쟁 체험자들에 대한 취재에 분주하였으며, 『주간문춘』(週刊文春)에 무명으로 「인물 태평양 전쟁」(人物太平洋戦争)을 연재하였다. 이때에 역사의 당사자는 거짓을 말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이러한 경험들이 훗날 쇼와 시절의 일본 군부(軍部) 그린 작품을 써내는 토양이 되었다.[2][3]
회사 내에서 「태평양전쟁을 공부하는 모임」(太平洋戦争を勉強する会)을 주재하고, 전쟁 체험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모임을 개최하였다. 여기서부터 생겨난 기획이 『문예춘추』 1963년 8월호에 게재되었던 28인에 의한 좌담회 「일본의 가장 긴 하루」(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이다. 한도는 좌담회의 사회를 맡았다. 나아가 취재를 통해 1965년에 단행본 『일본의 가장 긴 하루 - 운명의 8월 15일』(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運命の八月十五日)을 집필하였다. 책을 팔기 위한 상업상의 방침으로 평론가 오오야 소이치(大宅壮一)의 이름을 빌려서 '오오야 소이치 편집'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단행본은 20만 부, 가도카와 문고화(角川文庫化)되어 25만 부가 팔려 나갔다.[3][1][6] 이밖에도 30대 전반은 편집자 생활을 병행해가면서 태평양전쟁 관계 저작을 몇 권이나 집필하였다.[1]
『만화독본』(漫画読本)의 편집장으로 취임하여 1970년대에 휴간을 맞이한 뒤, 『증간문예춘추』(増刊文藝春秋) 편집장이 되었다. 무크지 「한 눈에 보는 태평양 시리즈」(目で見る太平洋シリーズ), 「일본의 작가 100인」(日本の作家百人), 「일본종신(日本縦断) ・ 만요(万葉)의 성(城)」(日本縦断・万葉の城) 등을 손수 제작하였다. 다음으로 『주간문춘』(週刊文春)의 편집장이 되어 록히드 사건의 취재를 진두지휘하였다.[2] 1977년 4월에 『문예춘추』 편집장 다나카 겐고와 교체되는 형태로 다나카가 『주간문춘』 편집장으로, 한도가 『문예춘추』 편집장으로 취임하였다. 신문광고나 전차의 벽면 광고에서 「편집장이 바뀌었습니다」(編集長が代わりました)라고 한 선전이 먹혀들어 화제를 모았다.[7] 1980년대에는 계간지 『구리마』(くりま)의 창간 편집장이 되었으나, 잡지는 2년 뒤에 제9호로 휴간하였다.[2][8] 이 편집장 시대 13년은 한도의 본직인 편집에 전념하기 위해 저술 활동은 잠시 그쳐 있었다.[1]
1993년 『소세키 선생, 저기요』(漱石先生ぞな、もし)로 닛타 지로 문학상(新田次郎文学賞)을 수상하였다.
출판 책임자로써 「개정 논픽션」(書き下ろしノンフィクション) 시리즈를 손수 제작하였으며, 1988년에 전3권으로 『「문예춘추」로 보는 쇼와사』(「文芸春秋」にみる昭和史)의 감수를 맡았다. 전무 이사를 맡은 뒤, 1995년 문예춘추를 퇴사하고[2]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업하였다. 근대 이후의 일본의 역사를 쇼와 시기를 중심으로 집필하였으며, 스스로를 「역사탐정」(歴史探偵)이라 자칭하였다.[1] 활동의 무대를 텔레비전으로도 넓혔으며, 일본 NHK 역사 다큐멘터리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その時歴史が動いた) 등과 역사 관련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였다.
1998년 『노몬한의 여름』(ノモンハンの夏)으로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山本七平賞)을, 2006년 『쇼와사』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毎日出版文化賞特別賞)을 각각 수상하였다.
2006년 7월 20일에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経済新聞)이 「쇼와 천황(昭和天皇)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昭和天皇が靖国神社A級戦犯合祀に不快感)이라고 보도하였는데, 그 원사료가 된 궁내청(宮内庁) 장관을 지낸 도미타 아사히코(富田朝彦)의 일기 메모, 일명 「도미타 메모」(富田メモ)를, 니혼게이자이신문사의 기사화 전에 하타 아사히코(秦郁彦) 등과 함께 감정하고, 이것이 진품이라고 감정하였다.
2009년에는 개정 출판한 『쇼와사 1926-1945』(昭和史 1926-1945), 『쇼와사 전후편 1945-1989』(昭和史 戦後篇 1945-1989)이 단행본으로 45만 부, 헤이본샤(平凡社) 라이브러리로는 23만 부가 팔렸다.[9] 본서는 2010년에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된다.
2015년 제63회 기쿠치 간상(菊池寛賞)을 수상하였다.[10]
2018년 상황 아키히토의 추천으로 아키시노노미야 히사히토 친왕에게 제왕학의 일부인 태평양 전쟁 강연하였다.
2021년 1월 12일 오후, 도쿄 도(東京都) 세타가야 구(世田谷区)의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그의 사망이 확인되었다.[11] 사인은 노쇠였다. 향년 90세.
인물
문예춘추사 내에서 『제군!』(諸君!)을 창간하여 매파 스캔들 노선(タカ派 スキャンダル路線)으로 불리던 다나카 겐고와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5] 원자력발전소에 대해서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것이라고 하여 우려해 왔다.[12] 태평양 전쟁(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군부(특히 일본 육군) 및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에 있어 A급 전범들에 대한 합사에 대해 매우 비판하였다. 쇼와 천황에 대해서는 당시의 군부에 있어서 군부의 폭주를 눌러서 말리려 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호헌파(護憲派)로써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일본의 전쟁 포기를 명시한 일본 헌법 9조(일명 '평화헌법)에 대하여 「헌법 9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키워야 한다」(憲法9条を守るのではなく育てる)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당시 문예춘추사 사내에서는 쇼와사와 태평양전쟁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드물어서, 한도를 두고 「너는 한도(半藤)가 아니라 반동(反動)이다」(お前は『半藤』ではなく『反動』だ)[주석 1]라는 소리도 있었다고 한다.[6] 자신은 그 말을 「역사에 역행한다」(歴史に逆行する), 「앞뒤 꽉 막힌 반근대주의자」(分からず屋の反近代主義者)라는 의미의 비판으로 인식하였으며, 자신이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13]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와는 한도가 『문예춘추』의 편집자 시대 때부터 친분이 깊었으며, 시바 료타로가 사망한 뒤 관련 논고 ・ 저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도는 시바가 쓰려고 했으나 쓰지 못했던 노몬한 전투를 다룬 『노몬한의 여름』(ノモンハンの夏)을 집필하였다. 역시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하타 아사히코(秦郁彦)나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와의 공저도 많았다.
일본의 근대사의 역사관에 있어서 한도는 「40년 사관」(40年史観)이라는 것을 제창하였다.[13] 이 주장은 메이지(明治) 이후의 일본은 40년을 주기로 흥망을 거듭하였으며, 메이지 신정부 수립으로부터 40년 뒤에 러일전쟁으로 군사대국화되었고, 그 40년 뒤인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대패하고 나아가 40년 뒤에는 버블 경제로 일본의 경제가 정점을 향하였으나 버블이 붕괴 후 40년 후에는 다시 몰락할 것이라는 예측이다.[14] 그러한 이유로써 전쟁의 비참함을 겪은 해당 세대가 교체되기까지는 40년이 걸린다는 것을 들고 있다.[14]
《문예춘추》 비주얼판 「B급 미식가」(B級グルメ) 시리즈에서도 기사를 집필하고 있었다.
수상 이력
저작
단행본
- 『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運命の八月十五日』(당초 명의는 오야케 소이치 편집, 문예춘추신사, 1965년/角川文庫, 1980년)
- 『決定版 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문예춘추, 1995년/文春文庫, 2006년)
- 『人物・太平洋海戦』(オリオン出版社, 1969년)
- 『魚雷戦第二水雷戦隊』(R出版, 1970년/改題「ルンガ沖魚雷戦」 朝日ソノラマ[航空戦史文庫], 1984년)
- 改題『ルンガ沖夜戦』(PHP研究所, 2000년/PHP文庫, 2003년)
- 『日本海軍を動かした人びと--勝海舟から山本五十六まで』(力富書房[リキトミブックス], 1983년)
- 改題 『日本海軍の栄光と挫折--列伝で読む組織の盛衰』(PHP研究所, 1994년)
- 改訂・改題 『日本海軍の興亡』 (PHP文庫, 1999년/PHP研究所, 2008년)
- 『聖断--天皇と鈴木貫太郎』(문예춘추, 1985년/文春文庫, 1988년/PHP研究所, 2003년/PHP文庫, 2006년)
- 『山本五十六の無念』(恒文社, 1986년)
- 増訂版 『山本五十六』(平凡社, 2007년/平凡社ライブラリー, 2011년)
- 『昭和史の転回点』(図書出版社, 1987년/改題「ドキュメント太平洋戦争への道」 PHP文庫, 1999년)
- 『コンビの研究--昭和史のなかの指揮官と参謀』(문예춘추, 1988년)
- 改題 『指揮官と参謀 コンビの研究』(文春文庫, 1992년)
- 『日本参謀論』(図書出版社, 1989년)
- 『山縣有朋』(PHP研究所「幕末・維新の群像 第9巻」, 1990년/PHP文庫, 1996년/ちくま文庫, 2009년)
- 『大相撲こてんごてん』(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1991년/文春文庫, 1994년)
- 改題 『大相撲人間おもしろ画鑑』 (小学館文庫, 2008년)
- 『歴史探偵 昭和史をゆく』(PHP研究所, 1992년/PHP文庫, 1995년)
- 『漱石先生ぞな、もし』(문예춘추, 1992년/文春文庫, 1996년)
- 『続 漱石先生ぞな、もし』(문예춘추, 1993년/文春文庫, 1996년)
- 『列伝・太平洋戦争』(上・下、PHP文庫, 1995년)
- 『完本 列伝・太平洋戦争--戦場を駆けた男たちのドラマ』(PHP研究所, 2000년)
- 『戦士の遺書--太平洋戦争に散った勇者たちの叫び』(文春ネスコ, 1995년/文春文庫, 1997년)
- 『戦う石橋湛山--昭和史に異彩を放つ屈伏なき言論』(東洋経済新報社, 1995年、新装版2001年、2008년/中公文庫, 1999년)
- 『荷風さんと「昭和」を歩く』(プレジデント社, 1995년/「永井荷風の昭和」 文春文庫, 2000년/「荷風さんの昭和」 ちくま文庫, 2012년)
- 『歴史探偵の愉しみ』(PHP研究所, 1996년/「歴史探偵 近代史をゆく」 PHP文庫, 2013년)
- 『歴史探偵かんじん帳』(毎日新聞社, 1996년)
- 『漱石先生大いに笑う』(講談社, 1996년/ちくま文庫, 2000년)
- 『漱石先生がやって来た』(日本放送出版協会, 1996년/学陽書房[人物文庫], 2000년)ちくま文庫、2017
- 『漱石俳句を愉しむ』(PHP研究所[PHP新書], 1997년)
- 『幕末辰五郎伝』(日本放送出版協会, 1997년/ちくま文庫, 2001년)
- 『ノモンハンの夏』(문예춘추, 1998년/文春文庫, 2001년)
- 『漱石俳句探偵帖』 (角川選書, 1999년/文春文庫, 2011년)『漱石先生、探偵ぞなもし』PHP文庫、2016
- 『レイテ沖海戦』(PHP研究所, 1999년/文春文庫, 2001년)
- 『소련이 만주에 침공한 여름』(ソ連が満洲に侵攻した夏, 문예춘추, 1999년/文春文庫, 2002년)
- 『一茶俳句と遊ぶ』(PHP研究所[PHP新書], 1999년)
- 『徹底分析 川中島合戦』(PHP研究所, 2000년/PHP文庫, 2002년)
- 『手紙のなかの日本人』(文春新書, 2000년)
- 『歴史をあるく、文学をゆく』(平凡社, 2001년/文春文庫, 2004년)
- 『「真珠湾」の日』(문예춘추, 2001년/文春文庫, 2003년)
- 『清張さんと司馬さん--昭和の巨人を語る』(日本放送出版協会, 2001년/文春文庫, 2005년)
- 『風の名前 風の四季』(平凡社新書, 2001년)
- 『この国のことば』(平凡社, 2002년)
- 『遠い島ガダルカナル』(PHP研究所, 2003년/PHP文庫, 2005년)
- 『漱石先生お久しぶりです』(平凡社, 2003년/文春文庫, 2007년)
- 『日本国憲法の二〇〇日』(プレジデント社, 2003년/文春文庫, 2008년)
- 『それからの海舟』(筑摩書房, 2003년/ちくま文庫, 2008년)
- ●『昭和史 1926-1945』(平凡社, 2004년/平凡社ライブラリー, 2009년)
- 『恋の手紙 愛の手紙』(文春新書, 2006년)
- 『昭和天皇ご自身による「天皇論」』(五月書房, 2006년/講談社文庫, 2007년)
- ●『昭和史 戦後編 1945-1989』(平凡社, 2006년/平凡社ライブラリー, 2009년)
- 『荷風さんの戦後』(筑摩書房, 2006년/ちくま文庫, 2009년)
- 『其角俳句と江戸の春』(平凡社, 2006년) 『其角と楽しむ江戸俳句』平凡社ライブラリー、2017
- 『昭和史探索 1926-46』(全6巻、ちくま文庫, 2006-07년)
- 『昭和史残日録 1926-45』(ちくま文庫, 2007년)
- 『昭和史残日録 戦後篇』 (ちくま文庫, 2007년)
- ●『幕末史』(新潮社, 2008년/新潮文庫, 2012년)
- 『坂口安吾と太平洋戦争』(PHP研究所, 2009년/「安吾さんの太平洋戦争」 PHP文庫, 2013년)
- 『隅田川の向う側 私の昭和史』(創元社, 2009년/ちくま文庫, 2013년)
- 『昭和・戦争・失敗の本質』 (新講社, 2009년)。「昭和と日本人 失敗の本質」 (同選書版, 2011년)中経の文庫、2015
- 『15歳の東京大空襲』ちくまプリマー新書 2010년)
- 『漱石・明治・日本の青春』(新講社, 2010년)。(同選書判, 2011년)
- 『ぶらり日本史散策』(문예춘추, 2010년/文春文庫, 2012년)
- 『名言で楽しむ日本史』(平凡社ライブラリー, 2010년)
- 『世界はまわり舞台』(創元社, 2010년)
- 『あの戦争と日本人』(문예춘추, 2011년/文春文庫, 2013년)
- 『墨子よみがえる』(平凡社新書, 2011년)
- 『聯合艦隊司令長官 山本五十六』(문예춘추, 2011년/文春文庫, 2014년)
- ●『日露戦争史』全3巻(平凡社, 2012-14년)平凡社ライブラリー、2016
- 『若い読者のための日本近代史 私が読んできた本』(PHP文庫, 2014년)
- 『昭和史をどう生きたか 半藤一利対談』(東京書籍, 2014년)
- 『「昭和天皇実録」にみる開戦と終戦』岩波ブックレット、2015
- 『老骨の悠々閑々』ポプラ社 2015
- 『もう一つの「幕末史」』三笠書房 2015
- 『「昭和史」を歩きながら考える』PHP文庫 2015
- 『万葉集と日本の夜明け』PHP文庫 2016
- 『マッカーサーと日本占領』PHP研究所 2016
- ●『B面昭和史 1926-1945』平凡社 2016
- 『文士の遺言 なつかしき作家たちと昭和史』講談社 2017
- 『歴史に「何を」学ぶのか』ちくまプリマー新書 2017
- ●『語り継ぐこの国のかたち』大和書房 2018
- ●『半藤一利 橋をつくる人 のこす言葉』平凡社 2019
공저 ・ 원작
- (吉田俊雄) 『全軍突撃-レイテ沖海戦』(オリオン出版社, 1970년)
- 改題『レイテ沖海戦』(上・下、朝日ソノラマ〈航空戦史文庫〉, 1984년)
- (戦史研究会編)『原爆の落ちた日』(文藝春秋, 1972年/改題「原爆投下前夜」 角川文庫, 1985년)
- (湯川豊) 改題『原爆が落とされた日』(PHP文庫, 1994년)改題『原爆の落ちた日』2015
- (荒川博・イラスト谷井建三)『風・船のじてん』(蒼洋社, 1987년)
- (江坂彰) 『撤退戦の研究--日本人は、なぜ同じ失敗を繰り返すのか』(光文社, 2000年/光文社知恵の森文庫, 2006년)『撤退戦の研究』青春新書インテリジェンス、2015
- (秦郁彦 ・ 横山恵一) 『太平洋戦争-日本海軍戦場の教訓』(PHP研究所, 2001年/PHP文庫, 2003년)
- (戸高一成) 『日本海海戦かく勝てり』(PHP研究所, 2004年、PHP文庫, 2012년)
- (吉岡忍 등)『司馬遼太郎がゆく「知の巨人」が示した「良き日本」への道標』(プレジデント社, 2001년)
- (荒川博)『風の名前 風の四季』(平凡社新書, 2001년)
- (阿川弘之) 『日本海軍、錨揚ゲ!』(PHP研究所, 2003年/PHP文庫, 2005년)
- (秦郁彦・横山恵一・戸高一成)『歴代海軍大将全覧』(中公新書ラクレ, 2005년)
- (保阪正康 ・ 松本健一 ・ 原武史 ・ 冨森叡児) 『昭和-戦争と天皇と三島由紀夫』(朝日新聞社, 2005年/朝日文庫, 2008년)
- (井筒和幸 ・ 井上ひさし ・ 香山リカ ・ 姜尚中 ・ 木村裕一 ・ 黒柳徹子 ・ 猿谷要 ・ 品川正治 ・ 辛酸なめ子 ・ 田島征三 ・ 中村哲 ・ ピーコ ・ 松本侑子 ・ 美輪明宏 ・ 森永卓郎 ・ 吉永小百合 ・ 渡辺えり子) 『憲法を変えて戦争へ行こう という世の中にしないための18人の発言』(岩波書店[岩波ブックレット],2005년) 、ISBN 4000093576
- (保阪正康・中西輝政・戸高一成・福田和也 ・ 加藤陽子) 『あの戦争になぜ負けたのか』(文春新書, 2006년)
- (童門冬二 ・ 松岡正剛ほか)『勝者の決断-指揮官と参謀の戦略思考』(ダイヤモンド社, 2006년)
- (戸高一成)『愛国者の条件』(ダイヤモンド社, 2006年/「日本人と愛国心 昭和史が語るもの」 PHP文庫, 2014년)
- (山根基世ほか)『いま、子どもが危ない!-子どもを救う「言葉の力」』(五月書房,2007년)
- (平間洋一 ・ 戸部良一ほか)『昭和陸海軍の失敗-彼らはなぜ国家を破滅の淵に追いやったのか』(文春新書,2007년)
- (御厨貴 ・ 原武史) 『卜部日記 ・ 富田メモで読む人間・昭和天皇』(朝日新聞出版,2008년)
- (保阪正康)『昭和の名将と愚将』(文春新書,2008년)
- (保阪正康)『「昭和」を点検する』(講談社現代新書,2008년)
- 絵本『焼けあとのちかい』(大月書店,2019) 그림 ・ 쓰카모토 야스시(塚本やすし)
- (秦郁彦・前間孝則)『零戦と戦艦大和』(文春新書,2008년)
- (藤原正彦 등)『父が子に教える昭和史―あの戦争36のなぜ?』(文春新書, 2009년)
- (鴨下信一 ・ 磯田道史) 『司馬遼太郎 リーダーの条件』(文春新書, 2009년)
- (安野光雅) 『三国志談義』(平凡社, 2009년)文春文庫、2015
- (横山恵一・秦郁彦・原剛) 『歴代陸軍大将全覧 明治編』(中公新書ラクレ, 2009년)
- (横山恵一・秦郁彦・原剛)『歴代陸軍大将全覧 大正編』(中公新書ラクレ, 2009년)
- (横山恵一・秦郁彦・原剛)『歴代陸軍大将全覧 昭和篇 太平洋戦争期』(中公新書ラクレ, 2010년)
- (横山恵一・秦郁彦・原剛)『歴代陸軍大将全覧 昭和篇 満州事変・支那事変期』(中公新書ラクレ, 2010년)
- (保阪正康・竹内修司)『占領下日本』(筑摩書房,2009年/ちくま文庫(上下), 2012년)
- (保阪正康・井上亮)『「東京裁判」を読む』(日本経済新聞出版社, 2009年/日経ビジネス人文庫, 2012년)
- (秦郁彦・保阪正康・井上亮)『「BC級裁判」を読む』(日本経済新聞出版社, 2010년) 日経ビジネス人文庫、2015
- 『いま戦争と平和を語る』井上亮編(日本経済新聞出版社, 2010년) 日経ビジネス人文庫、2016
- (保阪正康)『「戦後」を点検する 』(講談社現代新書, 2010년)
- (安野光雅・中村愿)『『史記』と日本人』(平凡社, 2011년)
- (金子兜太) 『今、日本人に知ってもらいたいこと』(ベストセラーズ, 2011년)
- (加藤陽子) 『昭和史裁判』(文藝春秋, 2011年/文春文庫, 2014년) ISBN 978-4-16-790038-0
- (秦郁彦・原剛・松本健一・戸高一成) 『徹底検証 日清・日露戦争』(文春新書, 2011년)
- (秦郁彦・戸高一成)『連合艦隊・戦艦12隻を探偵する』(PHP研究所, 2011년)
- (澤地久枝・戸高一成)『日本海軍はなぜ過ったか 海軍反省会四〇〇時間の証言より』(岩波書店, 2011년) 岩波現代文庫、2015
- (保阪正康・立花隆・田城明)『体験から歴史へ 〈昭和〉の教訓を未来への指針に』(講談社, 2013년)
- (竹内修司・保阪正康。松本健一)『戦後日本の「独立」』(筑摩書房, 2013년)
- (宮崎駿) 『腰ぬけ愛国談義』(文藝春秋〈文春ジブリ文庫〉, 2013년)
- (保阪正康)『そして、メディアは日本を戦争に導いた』(東洋経済新報社, 2013년) 文春文庫、2016
- (保阪正康)『総点検・日本海軍と昭和史』(毎日新聞社, 2014년)
- (磯田道史)『勝ち上がりの条件 軍師・参謀の作法』ポプラ新書 2014년)
- 『日中韓を振り回すナショナリズムの正体』保阪正康 공저(東洋経済新報社 2014 『ナショナリズムの正体』 文春文庫、2017
- 『賊軍の昭和史』保阪正康 공저 東洋経済新報社 2015
- 『「昭和天皇実録」の謎を解く』保阪正康, 御厨貴, 磯田道史 공저 文春新書 2015
- 『昭和史の10大事件』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공저 東京書籍 2015
- 『世界史としての日本史』出口治明 공저 小学館新書 2016
- 『21世紀の戦争論 昭和史から考える』佐藤優 (作家)|佐藤優 공저 文春新書 2016
- (能條純一) 「昭和天皇物語」(『昭和史』를 토대로 그린 만화로 『ビッグコミックオリジナル』 2017년 9호부터 연재중)
- 『昭和の男』阿川佐和子 공저 東京書籍 2017
- 『仁義なき幕末維新 われら賊軍の子孫』菅原文太 공저 文春文庫 2017
- ●『明治維新とは何だったのか 世界史から考える』出口治明 공저 祥伝社 2018
- ●『平成と天皇』保坂正康・井上亨 공저 大和書房 2019
- 『令和を生きる 平成の失敗を超えて』池上彰 공저 幻冬舎文庫 2019
편저
- 『太平洋戦争 日本軍艦戦記』(文春文庫ビジュアル版, 1985년/文春文庫plus, 2005년)
- 『昭和史の家』(写真 垂見健吾 、文藝春秋, 1989년)-해설 담당
- 『夏目漱石青春の旅』(文春文庫ビジュアル版, 1994년)
- 『「昭和」を振り回した男たち』(東洋経済新報社 , 1996년)
- 『昭和を振り回した6人の男たち』に改題 (小学館文庫, 2003년)
- 『日本史が楽しい--歴史探偵団がゆく』(文藝春秋, 1997년/文春文庫, 2000년)-座談集
- 『昭和史が面白い-- 歴史探偵団がゆく』(文藝春秋, 1997년/文春文庫, 2000년)-座談集
- 大宅壮一 『昭和の企業』(編・解説、ちくま文庫, 2000년)
- 『21世紀への伝言--名言にみる「日本と世界」の100年』(文藝春秋, 2000년)
- 『栗林忠道 硫黄島からの手紙』(文藝春秋, 2006年/文春文庫, 2009년)
- 『私の昭和の戦争』(アスコム, 2007년)
- 『敗戦国ニッポンの記録 - 米国国立公文書館 所蔵写真集』(上・下、アーカイブス出版, 2007년)
- 『일본의 가장 길었던 여름 』(日本のいちばん長い夏, 文春新書, 2007년) - 대담의 사회자
- 『知識ゼロからの太平洋戦争入門』(幻冬舎, 2009년)、감수
- 『日本史はこんなに面白い』(文藝春秋, 2008年/文春文庫, 2010년) - 대담집
- 『日米開戦と真珠湾攻撃秘話』(秦郁彦・横山恵一共編/中公文庫, 2013년)
- 『十二月八日と八月十五日』文春文庫 2015
- 『なぜ必敗の戦争を始めたのかー陸軍エリート将校反省会議』(解説)文春新書 2019
음성
- 『完全版昭和史』(日本音声保存 CD6枚組+テキスト、2005年)
- 『完全版昭和史 戦後篇』(日本音声保存 CD6枚組+テキスト、2006年)
- 『半藤一利「完全版昭和史」』(日本音声保存 CD15枚組、2009年)
- 『半藤一利「完全版幕末史」』(日本音声保存 CD15枚組、2010年)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 《일본의 가장 긴 하루》 - 1999년 한국의 도서출판 가람기획에서 번역. 옮긴이는 이정현이다.
- 『쇼와사 1926-1945』, 『쇼와사 전후편 1945-1989』 - 2010년 한국의 루비박스에서 《쇼와사:일본이 말하는 일본제국사》(전2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는 박현미.
출연
각주
내용주
출처주
- 「Book Trends 『隅田川の向う側』を書いた半島一利氏に聞く」『週刊東洋経済』2009年4月18日号、pp.142-143
- 「歴史家の顔を持つ、多芸多才な"奇人"」『時代を創った編集者101』寺田博編、新書館、2003年、pp.218-219
- 半藤一利「幕末史と日本人」『オール讀物』2009年4月号、pp.194-197
- ^ 半藤一利. “東京大学漕艇部 昭和20年代概観 (PDF)”. 東京大学運動会漕艇部. 2014年1월 8일 시점의 오리지날에서 아카이브. 2019年7月2日閲覧。
- 篠田博之「文藝春秋vs新潮社 ライバル出版社の新戦略」『創』1988年10月号、p.52
- 「阿川佐和子のこの人に会いたい 第837回 作家 半藤一利」『週刊文春』2010年8月5日号、pp.126-130
- 尾崎秀樹、宗武朝子『雑誌の時代 その興亡のドラマ』主婦の友社、1979年、p.54
- 篠田博之「文藝春秋vs新潮社 ライバル出版社の新戦略」『創』1988年10月号、p.56
- 「著者インタビュー 次のベストセラー作家を探せ! 半藤一利」『宝島』2009年12月号、p.124
- “吉永小百合さんに菊池寛賞 半藤一利さん、国枝慎吾さんらも”. 日本経済新聞. (2015年10月14日)
- “作家の半藤一利さん死去 90歳 보관됨 2021-01-18 - 웨이백 머신”. NHK. 2021年1月12日閲覧。
- 「続3・11後の私 半藤一利 『ソ連対日参戦は絶対ない』 日本人は戦争中から進歩なし」『サンデー毎日』2011年9月11日号、p.128
- 半藤 2017, pp. 131 - 132.
- 半藤 2017, pp. 147-165.
- "新田次郎文学賞受賞作一覧1-38回". 文学賞の世界. 2019年7月2日閲覧。
- "山本七平賞受賞作品一覧". PHP研究所. 2019年7月2日閲覧。
- "毎日出版文化賞受賞作・候補作一覧1-72回". 文学賞の世界. 2019年7月2日閲覧。
- “菊池寛賞受賞者一覧”. 公益財団法人日本文学振興会. 2019年7月2日閲覧。
- “半藤一利が語る「昭和史」”. ヒストリーチャンネル. 2017年6月30日時点の오리지날로부터 아카이브. 2019年7月2日閲覧。
- “ヒストリーチャンネルオリジナル制作番組 過去放送分”. ヒストリーチャンネル. 2013년 8월 8일 시점의 오리지널로부터 아카이브. 2019年7月2日閲覧。
- “NHKネットクラブ 番組詳細 SWITCHインタビュー 達人達(たち)「宮崎駿×半藤一利」”. NHK. 2014年1月8日時点のオリジナル으로부터 아카이브. 2019年7月2日閲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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