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름 부르기
입력2026.07.05.
| 김성경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이미 10년은 훌쩍 넘은 이야기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이 해외 조선식당을 자유롭게 방문하던 시기였다. 접대원에게 ‘북한’이라는 호칭을 썼다가 멋쩍은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다. 조선 사람을 만난 것에 흥분했던 나는 ‘북한’ 호칭을 되풀이했다. 참다못한 접대원은 얼굴이 굳은 채 힘주어 “북조선입니다”라고 정색을 했고, 순간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깟 이름 하나로 일행들 앞에서 무안을 주다니. 하지만 곧이어 상대방 이름조차 멋대로 부른 나의 무지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돌이켜보니 ‘조선’이 아니라 스스로를 ‘북조선’으로 지칭했던 그때가 그나마 좋았던 시기인 것 같아 착잡하기까지 하다.
2023년 말 조선은 ‘북조선과 남조선’으로 대변되는 남북관계의 종언을 고했다. 고조선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민족의 통일이라는 목표 아래 스스로를 ‘북조선’으로 칭했던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남조선’과의 통일을 지향하는 ‘북조선’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오롯이 존재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북조선과 남조선’의 남북관계가 현실적이지 않아서다. 한국이 조선을 향한 적대를 멈추지 않았고, 앞에서는 상호 존중하는 통일을 내세웠지만 흡수통일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갑작스러운 조선의 ‘선언’을 해석하는 데 한국은 2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조선 특유의 전략이라는 주장부터, 체제 위기의 심화라는 조선 붕괴론의 레퍼토리가 반복되기도 했다. 우왕좌왕하는 한국에 보여주기라도 하듯 조선은 헌법에서 통일·민족 관련 조항을 삭제했고, 대한민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음을 명기한 영토 조항까지 신설했다. 비로소 전혀 다른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마주해야만 하는 사실이 된 것이다. 즉, 지난 수십년간 통용된 ‘남한과 북한’이라는 관계를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전혀 다른 남북관계를 고안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우리 앞에 있다는 의미다.
아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것이다. 분단된 민족과 군사적 긴장이라는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을 ‘조선’으로 바꿔 부르는 것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못하는 상대와 민족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갈 묘책은 없다. 우리가 ‘남조선’이라는 이름 앞에서 어색함과 폭력성을 느꼈다면 조선도 ‘북한’이라는 호칭 앞에서 모멸감과 위협감을 감지했을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북조선’으로‘도’ 존재하지 않기로 한 조선이 ‘북한’의 자리에서 우리와 평화할 리가 없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조금씩 ‘조선’과의 관계를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며칠 전 종교계 원로들이 서로의 이름을 존중하는 것에서 평화가 시작된다는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선 문제만 나오면 정치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의견이 모아져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북한’과 ‘남조선’은 단순한 이름이 아닌 지난 남북관계의 습성이 응축되어 있기에 해체돼야만 하는 언어임에 분명하다. 상대방을 제대로 불러준다는 것은 실패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한반도의 미래를 평화와 공존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결단의 시작일 것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이름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성경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김성경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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