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교보문고 | 손창섭, 잊혀진 문제작가를 찾아서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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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 잊혀진 문제작가를 찾아서
2010.09.03 . 4500






얼마 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뒤늦게 한 소설가의 죽음이 전해졌다. 『잉여인간』『비 오는 날』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전후(前後) 한국문단이 낳은 최고의 문제작가 손창섭이 지난 6월23일 일본 도쿄 근교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두 달이 지난 8월 말에야 모국에 알려졌다. 향년 88세. 지병이었던 폐질환의 악화가 원인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이름,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해야만 할 이름, 잊혀진 문제작가 손창섭을 다시 조명해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민의 삶




손창섭은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후 어머니마저 재혼을 하면서 그는 할머니의 손에서 어렵게 자라야 했다. 열 네 살이 되던 1935년 만주로 떠나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그는,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찬가지로 신문 배달, 잡역부 등으로 일하며 고학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한 때 니혼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대학은 마치지 못하고 중퇴하였다) 그러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10년 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평양으로 귀국한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와는 사상적으로 맞지 않았다. 손창섭은 1948년 월남하여 피난민의 삶을 경험하며 그의 문학적 배경으로 삼게 된다. 어찌 보면 그는 끝없이 전쟁을 피해 쫓겨 다니는 피난민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식민지 현실에서 태어나 10대 때는 중일 전쟁(1937년)을 겪고, 20대 때는 태평양전쟁(1941년)을, 그리고 30대 때는 한국전쟁(1950년)을 경험했다. 이 전쟁의 기억들은 그의 작품들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비정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구의 인간들 – 단편 소설




손창섭은 1949년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궃은 비」를 연재하면서 집필생활을 시작하여 1952~1953년에 문예지 《문예》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됨으로써 정식으로 등단하게 된다. 1955년에는 「혈서」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주로 가난하고, 비뚤어지고, 아프고, 정신적 신체적 결함을 겪는다. 그가 묘사하는 공간들 또한 마찬가지다. 피난민들이 머물던 좁고 지저분한 판자촌, 어둡고 낡은 집, 음습한 골목 등이 그가 주로 그려낸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대개 비가 오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피난지 부산을 배경으로, 어둡고 비정상적인 동욱과 동옥 남매를 통해 전후의 암울함과 무기력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그의 대표작인 「잉여인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인물인 치과의사 서만기의 시선을 통해서 선량하지만 경제적 능력은 없고, 또 현실과 타협하여 적응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하여 외면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요즘 시각으로는 참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다 싶겠지만, 그것이 전쟁 직후의 현실이었다. 그 현실에는 어디에도 희망이 없었다. 손창섭은 그런 희망 없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냉소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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