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개신교, 만남과 갈등의 역사…선교 초기부터 해방, 산업화·민주화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홍승표 목사, <뉴스앤조이>에 '태극기와 한국교회' 연재
기자명 강동석
승인 2020.01.28
매주 토요일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반정부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에는 태극기가 휘날린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몇 년 전부터 '태극기'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시위하는 극우 개신교 세력을 떠올리게 됐다. 사실 태극기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교회와 친밀했다. 태극기가 민족 상징으로 자리 잡는 데 개신교가 적지 않게 기여했다. 태극기와 한국교회는 시대마다 만남과 갈
<뉴스앤조이>는 태극기와 한국교회 사이에 있었던 만남과 갈등의 역사를 정리하는 연재를 진행하기로 했다. NCCK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연구원 홍승표 목사가 2월 둘째 주부터 격주 간격으로 '태극기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돌아볼 예정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인 홍승표 목사는 연세대 대학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역사 연구가다. 그는 한국교회사 관련 연구와 저술 활동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부설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채현석 원장) 연구원으로서 매년 '기독교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 과정'을 진행한다. 기독교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직접 인솔하면서 해설한다.
한국교회사와 대중문화 콘텐츠를 연결하고 현장과 연구를 연결하는 데 관심이 많아, 2017년부터 팟빵에서 한국교회사 전문 팟캐스트 방송 '한국 기독교사 톺아보기'도 진행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장으로도 일한 바 있다. 2018년 <뉴스앤조이>에 '일본 기독교 현장에서'를 연재한 일본 선교사 홍이표 목사 동생이기도 하다.
여러 활동 가운데 홍승표 목사가 주력하는 일은 NCCK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 100년 발자취와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의 사료와 역사를 정리하는 사업이다. 그는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연구·생산하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홍 목사는 태극기와 한국교회의 관계를 시기별로 살펴보면 오늘날 태극기 현상을 진단·대응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내비쳤다. 1월 23일 한국기독교회관 NCCK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번 연재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NCCK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사무실에서 홍승표 목사를 인터뷰했다. 홍 목사는 2월 6일 첫 글을 시작으로, '태극기와 한국교회' 연재를 이어 갈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주력하는 일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NCCK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연구원이다. 지난해부터 교회협 100주년을 맞는 2024년까지, 교회협 역사와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를 정리하는 연구 프로젝트다. 해방 전후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영인影印하면서 분야별 역사를 정리하고, 추후 기독교 사회운동사 역사자료실이나 기념관을 만드는 것까지 구상하고 있다.
연구 기초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라, 교파 간 연합 운동, 사회운동 역사 자료를 스캔해 하나로 묶어 일반에 보급하는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연세대 국학자료실 협조로 해방 이전 창설된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1918)와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1924) 회의록을 제공받아 자료로 펴냈다. 해방 이후 교회협 관련 회의록 및 보고 자료, 기독교 사회운동사 관련 영인 사료집을 단계적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 관련 주제로 출판된 단행본, 학술 논문, 학위논문 등 연구 현황을 정리한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 관련 문헌 해제>도 펴냈다. 이 자료를 통해 관심 있는 대중과 학자들이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연구 동향을 이해하고, 수월하게 자료에 접근해 연구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초 연구 자료를 쉽게 열람할 수 있게 수집·정리, 영인·보급하는 작업을 이어 갈 것이다.
한국교회사에서 교회 제도·체제, 신학·사상 등 한국교회 내부 역사는 연구와 관심이 이어져 왔다.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교회와 사회가 어떻게 상응하고 호흡했는지 다루는 교회 바깥 문제에 관한 연구는 가치와 중요성에 비해 미진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기독교 사회운동의 중요한 사실들과 역사적 유산들이 새롭게 발굴되고 재조명되는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 '태극기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뉴스앤조이>에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어떤 내용을 다룰 생각인가.
대학원 시절 교회가 국가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공부하면서 해방 후 국기배례, 태극기 문제가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생각했다. 한국은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시점과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춰 가는 시기가 겹친다. 십자가·비둘기·어린양·물고기·장미·백합 등 다양한 상징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기독교 전통에 따라, 한국교회는 민족 신앙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태극기를 적극 수용했다.
개신교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선교 현장에 들어와 신앙 운동을 펼치면서, 태극기·무궁화 등 새로운 민족 정체성이 담긴 상징을 보급·확산했다. 새로운 이미지가 한국인을 상징하는 보편적 이미지로 각인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해방 이전에는 초기 선교사들부터 한국인 개종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태극기를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저항했던 역사가 있다. 해방 이후에는 태극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인식이 분화해, 분단과 좌우 분열을 겪으며 새롭게 해석 지평을 열어 갔다.
지금까지 역사학이나 교회사 분야에서 태극기와 한국교회의 관계를 시기별로 개관하며 분석을 시도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촛불 혁명 이후로 태극기 이미지가 특정 정치 세력의 전유물처럼 돼 버려서, 지금은 태극기에 대한 혐오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현재 벌어지는 표피적 현상만으로 태극기와 기독교 신앙의 긴밀한 결합을 혐오·비판하는 단편적 현상도 보게 된다.
역사 연구자로서 한발 물러나 긴 호흡으로 보면, 태극기와 기독교의 조우와 동거는 선교 초기부터 존재하던,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연재를 통해 선교 초기 태극기와 기독교가 만나고 친밀해지는 과정을 보면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시기별 역사적 콘텍스트가 상이하기에 태극기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저마다의 풍경을 입체적·차별적으로 온전히 바라보고 제대로 인식하는 안목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오늘날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사회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극기와 한국교회의 관계에 담긴 복합성을 살피면서 성숙하고 여유 있게 오늘의 현상을 진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홍승표 목사는 긴 호흡으로 태극기 현상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한편, 경계하는 것은 연재로 소개되는 콘텐츠를 태극기 부대에서 자의적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초기 평양신학교 재학생들이 선교사들과 찍은 단체 사진을 보면, 한석진 목사가 태극기를 들고 있다. 선교 초기 개종한 한국인 민족 지도자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의 역사적 무게감과 가치를 태극기 부대가 흔드는 태극기와 동일시하면서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확대해석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초기 신앙 선배들의 태극기 사랑과 애민 애족 신앙이 당파성이나 정치적 구호에 오염된 편협한 인식의 볼모가 되도록 좌시해서는 안 된다. 연재를 통해 한국 기독교 신앙 선배들이 보여 준 태극기 신앙의 보편성과 개방성, 그 상징에 담긴 진보적 신앙과 예언자적 성격을 선명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겸허히 수용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현시대에 적용 가능한 시대정신으로 명쾌히 해석할 것인지 모색해야 한다. 선교 초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현대 산업화·민주화 과정 등에서 항상 존재해 왔던 태극기가 그때그때 어떤 역할을 했고,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수용해 왔는지 정밀하게 살펴보려 한다.
- 연재를 통해 기대하는 지점이 있다면.
이번 연재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늘 관심은 있었지만, 생업에 쫓겨 제대로 연구를 심화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격주마다 마감에 쫓기며 그동안 막연하게 구상하고 있던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조금씩 완성해 나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글을 써 나갈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연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료들을 어김없이 계속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연재 제안을 받고 추가로 자료를 훑어봤더니,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료와 사실들이 툭툭 튀어나오더라. 자료들을 심층적으로 읽어 나가다 보면,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분석과 사료 발굴이 보너스처럼 주어질 것 같다.
2012년 관련 주제로 <기독교사상>에 글을 쓴 적 있다. 그때는 선교 초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태극기와 한국교회'가 관계 맺어 온 과정을 글 한 편에 담았다. 함축적으로 개관하는 방식으로 썼다. 이번에는 시기별로나 주제별로나 세분화해서 다룰 것이다.
예전에는 망원경으로 전체를 조망했다면, 이제는 현미경으로 한 시기 한 시기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셈이다. 태극기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분석해 보며 나 자신에게도 많은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극우적 집회 현장에 태극기·성조기·이스라엘기, 심지어 일장기까지 나부끼는 몰역사적 행태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태극기의 홍역은 다른 의미로는 한국교회에 백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백신주사를 맞으면 잠깐 열이 오르지만, 극복하고 나면 더 강한 바이러스가 와도 견딜 수 있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지 않나.
어떤 역사적 연원이 있는지 관련성을 긴 호흡으로 보면서 성숙하게 현상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한발 더 나아가, 세계 교회를 향해 활동 무대를 넓혀야 한다. 편협하고 배타적인 민족 교회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애민 애족 정신을 바탕으로 자긍심을 갖는 중요한 코드로 태극기를 내재화하고 수용해 왔다. 이제는 태극기를 사랑한 한국교회의 신앙 유산이 보편적 세계 교회로 나가는 방향으로 새롭게 재해석·재창출·재조명할 수 있는 촉매가 됐으면 좋겠다.
이번 연재가 위와 같은 성숙한 역사의식을 갖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바랄 게 없겠다. 더 보편적인 가치들, 인류 사회가 고민하고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의 보편적 지평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앞으로의 계획은.
연구하고 싶은 개인적 과제는 아나키즘과 기독교의 관계성이다. 한국교회사적으로 이를 탐색하고 싶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 이데올로기로 아나키즘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한국교회사에서 아나키즘과 기독교가 실제로 어떤 교섭 과정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싶다.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의 이상과 비전에 담긴 대안적 가치를 아나키즘적으로 재조명해 봤으면 한다.
현재 홍이표 박사가 일본에서 일본 신도와 국가 상징으로 대표되는 국화 문양, 일장기, 욱일기 등의 상징체계가 동양사와 한국사, 한국교회사 속에서 어떻게 이입·수용되고 저항·갈등되었는지 연구하고 있다. 홍이표 박사와 협력해 동아시아 교회사 속에서 '국가 상징과 기독교'의 역사를 미시적으로 정리해 나가려는 계획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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