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왜 썼을까?
: '영웅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 '영웅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1805년부터 1820년까지 다루고 있다. 톨스토이의 본래 구상은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앤드류 노먼 월슨이 쓴 톨이토이 전기에도 자세하게 나와 있다. 데카리스트 봉기는 1825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12월에 일어난 사건이라 데카리스트 봉기라고 한다. 12월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거사에 참여했던 러시아 청년 장교들 상당수가 1812년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세대다.
1812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1814년에 알렉산드 1세가 파리까지 가서 항복 서약을 받아내게 된다. 이때 승전국의 젊은 장교들이 파리에 같이 가는데 여기서 충격을 받는다. 아주 낙후된 러시아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롭게 발전된 젊은 프랑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 격차에 젊은 러시아 장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승전국 장교로서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조국 러사아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러시아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러사아는 바뀌어야 된다' 라는 생각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비밀결사를 만들게 했고 이 결사조직이 나중에 '데카브리스트'라고 불리게 된다. 톨스토이는 삶의 전반부 동안 이 12월당원의 봉기에 대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깊이 연구했다. 그는 자신이 그 봉기 후에 태어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것은 그 봉기가 성공했더라면 러시아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톨스토이는 이 봉기와 자신 가문의 운명 그리고 러시아의 운명을 같이 놓고 생각했으며 이것은 톨스토이 문학을 창조하는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인물상으로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나타샤의 두 남자 안드레이와 피에르가 있다. 안드레이와 약혼했다가 피에르와 결혼하게 된다. 중간에 아나톨이라는 날바람둥이가 있는데 이게 나타샤의 시련이다. 나타샤의 성숙이라는 것은 아나톨의 유혹을 이겨낸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귀향소설이다. 귀향소설이라는 것은 아픈 만큼 또는 시련을 겪은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즉 성숙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게 <안나 카레니나>와의 차이점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 와서는 작가적 시선이 좀 달라진 것이다. <전쟁과 평화>까지는 실수라든가 어떤 착오라든가 이런 것이 다 성장의 계기가 된다.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이 60년대 까지의 톨스토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타샤에게 두 남자가 있었다면 피에르에게도 두 여자가 있었다. 피에르도 시행착오 끝에 더 나은 선택을 한다. 나타샤도 그렇다. 여기서는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평생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없다. 인생에 반전의 기회가 있다. 그게 귀향소설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실패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게 그리고 있지 않다. 안나는 한 번 탈선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죽음밖에 없다. 작가 세계관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전쟁과 평화>에서는 삶에 대한 변증법식 인식이 들어가 있었다. 나타샤, 피에르에서 볼 수 있듯이 순진한 상태였다가 타락했다가 회복하는 것이다. 젊은 톨스토이는 이런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 청년기 대표작이다. <전쟁과 평화>에서 보여준 삶에 대한 예찬은 이런 세계관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반대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막 작품<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젊은 시절 가졌던 변증법적 세계관 또는 인식을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막 작품에서 보여준다.
그런데 후기 톨스토이 즉 <안나 카레니나> 이후로는 이런 성장이 없다. 정반합적 이행이나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으로 톨스토이 후기로 가면 장편소설이 나올 수가 없다. 소설이 길어지려고 하면 방황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소설은 모호성의 세계다(밀란 쿤데라). 즉 선과 악의 가치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색해야 된다는 말이다. 소설적 공간에서 주인공들이 찾아가야 한다. 찾는 과정이 소설이다. 후기 톨스토이는 이걸 다 생략한다. <부활> 이 장편이 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비판 할 거리가 많아서다. 그 당시 사법제도도 비판하고 재판도 비판하고, 교회도 비판하고....비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비판이 길어진 것이지 소설적 서사가 길어진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그린 <전쟁과 평화>는 단순한 전쟁소설 혹은 성장소설의 차원을 넘어 '러시아 정체성'을 질문한 소설이다. 그리고 1805년부터 역사를 따라가면서 개인의 이야기에도 상당한 방점을 두고 있다. 이것이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보통은 한쪽만 다룬다. 역사의 사건만 주목하거나 아니면 개인의 사건만 주목하거나. 그런데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적 시간대에 집어 넣고 그리고자 했던 것이 <전쟁과 평화>의 중요한 포지션이다. 그래서 양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부분이 그 당시 작가나 현대의 작가들이 톨스토이를 따라잡기 힘든 부분이다. 역사와 개인 이 두 가지를 다 다룬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1878)을 끝낸 후 젊은 시절부터 고민하던 근본적인 문제로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그 고민과정을 <고백론> (1880)으로 발표한 뒤, 문학가가 아닌 도덕 사상가이자 설교자, 교육자이자 빈민운동가로 변신한다. 더이상 문학으로 고통받는 러시아 농민들을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톨스토이는 상류사회의 모든 것을 폭로하면서 그것들과의 결별을 말한다. 그리고 약 10년간의 노력 끝인 1890년 드디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한다. 이 책에서 그는 사실상 예술을 부정한다. 후기 톨스토이의 결단은 이런 예술과 가정 모두와 결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톨스토이는 집을 나와 어느 시골 역에서 혼자 죽는다. 톨스토이의 이런 모습이 당시 많은 문학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했음은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미르'는 중의적이다. 미르는 평화라는 뜻도 있고 농민공동체를 가르키는 말이기도 하다. 농민, 민중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럼 이 소설은 '전쟁과 민중'이 되기도 한다. 또 전쟁과 삶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주제는 문학의 영원한 화두다. 톨스토이는 청년기부터 이 화두와 대결했다. 결혼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작품을 쓰면서 점점 더 민중에게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 희생되는 수많은 농민들을 보면서 이런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왜 이렇게 되는가를 알고 싶어서 <전쟁과 평화>를 썼고, 나중에는 그런 문학마저 삶의 고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기만이라고 생각했기에 버렸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표에 바친 공헌을 고려하는 역사가에게는 영웅이 존재한다. 그러나 삶의 모든 측면과 이 사람의 관련성을 고려하는 예술가에게 영웅은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예술가에게는 인간만이 존재해야 한다.' - 전쟁과 평화 4권 6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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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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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규
전쟁과 평화에서의 여주인공인 나타샤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한때 바람둥이 아나톨에 빠져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안드레이와 결합하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는 도덕적인 범주를 너무 지나쳐서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 것이죠. 톨스토이의 한계라기 보다는 안나의 탈선이 그 시대의 도덕적 잣대로는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하면서 지켜야 할 선은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19세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안나의 일탈적 행동은 현대의 잣대로 봤을때도 넘어서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조동연 스토리가 세간에 시끄러울때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와 토스토옙스키의 소네티카가 떠올랐습니다. 조동연은 그도저도 아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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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규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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