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명 1
바실리 그로스만 (지은이), 최선 (옮긴이) 창비 2024-06-28
종이책
17,500원, 10% 할인
9.9
100자평 5편
리뷰 13편
책소개
2차대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예리한 시선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전쟁과 이데올로기,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전3권)이 창비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2012년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세대를 넘나드는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들 다수를 펴내며 지평을 넓혀온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는 『삶과 운명』의 출간으로 100번을 맞이했다. 2차대전에서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장편 『삶과 운명』은 전쟁 당시의 소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체제와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긴 작품으로 이 작품이 국내에서 번역되길 오랫동안 기다렸던 많은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작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전쟁의 참극에서 전체주의 체제 자체와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독일과 소련 사회 내부의 모순과 비리를 냉정하게 포착하며 두 국가의 근본적 동질성을 발견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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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발간사
책속에서
첫문장
대지 위에 안개가 자욱했다.
P.127~128
잠에서 깨어 천장이 보이면 문득 우리의 땅에 독일인들이 있고 내가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라는 사실이 떠오르는데, 그러면 내가 깨어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잠이 들어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 하지만 잠시 뒤 우물에 누가 갈 차례인지 다투는 알랴와 류바의 목소리가, 아니면 밤사이 이웃 거리에서 독일인들이 한 노인의 머리를 깨부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 내가 아는 어느 사범학교 여대생이 환자를 봐달라고 왕진을 청했어. (…) 그 청년이 전투와 우리 군의 패주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정말 슬퍼지더구나. 그는 안정을 찾은 뒤 전선을 넘어갈 계획이야. 몇몇 청년들이 그와 함께 간다는데 내 제자도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지. 아, 비쩬까, 내가 그들과 함께 갈 수만 있다면! 어쨌든 그 청년에게 도움을 주어 난 무척 기뻤다. 마치 내가 파시즘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한 듯한 기분이었어. 다른 사람들도 그에게 감자며 빵이며 강낭콩을 가져다주었고, 어떤 아낙네는 털양말을 떠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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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0
모스똡스꼬이와 논쟁을 벌이면서 그는 커다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 히틀러의 수용소에서는 그가 빠리의 아파트에서 수백번 발음했던 단어들이 모두 거짓되고 무의미하게 울렸던 것이다. 수용소 수감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스딸린그라드’라는 이름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이름에 세계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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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P.43섬세한_펭귄
최전방에 전사자들이 매장되었다. 이들은 그 영원한 잠의 첫날을, 그들의 동지들이 편지를 쓰고 면도를 하고 빵을 먹고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벙커와 은신처 바로 곁에서 보냈다.
P.124김민성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
P.425은하수
˝아, 동지들,˝ 마지야로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언론의 자유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시오, 전쟁이 끝나고 어느날 아침 신문을 펼쳐보니 노동자들이 위대한 스딸린에게 보내는 편지 대신에, 최고 소비에뜨위원 선거를 기념해 철강 노동자 연대가 추가 작업을 했다는 소식 대신에, 미합중국의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실업과 빈곤의 우울한 상황 속에 신년을 맞이했다는 소식 대신에 …………… 다름 아닌 ‘정보‘가 실려 있다고 말이오! 정보를 주는 신문이라니, 상상이 되오?
P.426은하수
신문에서 뚜르스끄 지역의 흉작을, 부띠르 감옥의 수감 상황에대한 감사 보고를, 백해-발트해 운하의 필요성과 관련한 논쟁을 골로뿌조프라는 노동자가 새로운 국채 발행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읽는 거요.
P.426은하수
한마디로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해서 알게 되는 거지.
수확과 흉작, 시민의 열광이 향하는 곳, 강도질, 탄광의 조업과 붕괴, 몰로또프와 말렌꼬프 사이의 불화에 대해서 말이오. 공장장이 일흔 먹은 화공 기술자를 모욕하여 파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또 처칠과 블룸의 연설문을 직접 읽게 되는 거라고. ‘그들이 이러저러한 의견을 피력했다‘라는 식으로 요약한 내용 대신 말이오.
영국 하원의 부패에 대해서 읽게 되고, 어제 모스끄바에서 몇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었는지, 교통사고를 당한 이들이 몇명이나 스끌리포솝스끼로 이송됐는지도 알게 되는 거요. 따슈껜뜨에서 모스끄바로 첫 딸기가 공급되었다는 소식이 아니라 왜 메밀쌀이 부족한지 알게 되는 거요. 집단농장의 노동 일당으로 빵을 몇 그램이나 받는지, 이젠 시골에서 모스끄바로 빵을 사러 왔다는 건물 청소부 여자의 조카딸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문에서 알게 되는 거요. 그래그래, 이 모든 게 가능할 때 우린 온전히 소비에뜨 시민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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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2024년 7월 12일자 '책&생각'
저자 소개
지은이: 바실리 그로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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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삶과 운명 3>,<삶과 운명 2>,<삶과 운명 1> … 총 7종 (모두보기)
우끄라이나의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모스끄바 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34년 첫 단편을 발표하며 고리끼, 불가꼬프 등 이름난 작가들의 주목과 격려를 받았고 1937년 첫 소설집 『단편집』을 출간했다. 스딸린의 숙청에 희생된 정치인, 작가 들의 구명에 참여하여 스딸린상에 지명되었으나 스딸린에 의해 거부되는 등 평생 검열과 압제에 시달렸다.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로 어머니가, 폭탄 폭발로 큰아들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로스만은 1천일 이상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소련 최초의 홀로코스트 보고서 『트레블린카의 지옥』(1945)을 집필했고 이는 전후 전범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었다. 『스쩨빤 꼴추긴』(1940) 『인민은 죽지 않는다』(1942)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1952) 『모든 것은 흐른다』(1963) 등의 소설은 스딸린 치하 반유대주의 정책과 함께 2차대전 및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세계 독자의 관심을 받았으나 소련 정부와의 갈등으로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1942~43년 독소전쟁 시기 한 물리학자 가족을 중심으로 전쟁과 전체주의라는 이중고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헤친 대작 『삶과 운명』역시 1959년 집필을 마쳤으나 작품의 반스딸린주의 경향으로 인해 1980년 스위스에서 처음 출간되고 1989년에야 러시아 국내에서 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작가의 경험에 인류 최대의 참상 속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더해 현대적 문체로 형상화한 『삶과 운명』은 “2차대전판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평을 받으며 영국과 러시아에서 라디오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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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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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푸슈킨과 오페라>,<유럽문학 속 푸슈킨 연구>,<20세기 러시아 노래시 연구> … 총 42종 (모두보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노문학과 명예교수이다. 『러시아 시 연구』 『20세기 러시아 노래시 연구』 『유럽문학 속 푸슈킨 연구』 『푸슈킨과 오페라』등의 저서가 있고, 『벨킨 이야기·스페이드 여왕』 『보리스 고두노프』 『예브게니 오네긴』등 뿌시낀의 작품을 비롯해 『안나 까레니나』 등 여러 러시아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20세기의 어둠을 심판하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의 걸작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평범한 이들의 고귀한 친절과 강인한 희망
2차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 - 『뉴욕 타임스』
철저한 사실주의와 선구적인 도덕적 강렬함,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 업적 중 하나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전쟁의 혼란 속에 국가와 가족의 운명을 그려낸 서사적 걸작 - BBC Radio4
2차대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예리한 시선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전쟁과 이데올로기,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전3권)이 창비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2012년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세대를 넘나드는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들 다수를 펴내며 지평을 넓혀온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는 『삶과 운명』의 출간으로 100번을 맞이했다. 2차대전에서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장편 『삶과 운명』은 전쟁 당시의 소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체제와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긴 작품으로 이 작품이 국내에서 번역되길 오랫동안 기다렸던 많은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작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전쟁의 참극에서 전체주의 체제 자체와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독일과 소련 사회 내부의 모순과 비리를 냉정하게 포착하며 두 국가의 근본적 동질성을 발견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삶과 운명』은 1959년 완성되었으나, 작품이 가진 반스딸린주의적 면모로 인해 당대 여러 작품들처럼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작가가 스딸린 사후 해빙 무드에 걸었던 기대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출간 불허 판정을 받고 당국에 압수되었고, 친지가 작품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밀반출해 1980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래 지속적인 삭제와 수정을 거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이 출간된 이후 러시아에서는 뻬레스뜨로이까 이후 1989년에 출간될 수 있었다. 인간의 선함에 대한 치열한 논쟁 속에서 작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친절을 발견하고 긍정하는 과정은 전쟁의 비극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오늘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의 모든 것,
삶을 파괴하는 억압과 체제에 대한 치열한 보고
『삶과 운명』이 “2차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뉴욕 타임스』)이라 불리며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 작품이 지닌 총체성 덕분이다. 소설은 1942년 가을부터 1943년 봄까지 약 반년 동안을 배경으로 모스끄바에서 까잔으로 피난 온 물리학자 시뜨룸과 그 가족, 스딸린그라드 공방전,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를 세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여기서 전쟁은 하나가 아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전선의 전쟁이 있고, 극한의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는 후방의 전쟁, 절멸이 기정사실인 수용소의 전쟁, 그리고 숙청 속에 당파성을 증명해야 하는 충성 전쟁이 있다. 작가는 후방의 시민과 전선의 병사, 수용소의 수감자부터 장군들, 히틀러와 스딸린 같은 수뇌부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인물을 소환하고 이 겹겹의 전쟁 속에 일어날 만한 모든 문제를 다룬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과 현실을 칼로 도려낸 듯 예리한 사실주의는 이 총체성을 거대한 벽화로 완성한다.
2차대전을 다룬 다른 작품과 『삶과 운명』을 구별 짓는 점 역시 이 치열한 사실주의와 객관적 시선에서 나온다. 소설은 익히 알려진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소련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와 흑색선전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붉은군대 내에서 병사들은 유대인을 조롱하고,(1권 245면) 시뜨룸의 연구소 내 모스끄바 귀환자 명단에서는 유대인만 누락된다.(2권 64면) 스딸린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따따르인, 깔미끄인, 체첸인, 발까르인 등 타 민족에 대한 편견을 자신의 통치 전략에 이용한다. “인민의 스딸린그라드 승리 10주년 기념일에 스딸린은 히틀러의 손에서 낚아챈 말살의 칼을 그들의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3권 62면) 또한 병사를 숫자로 환원해 희생에 아랑곳없이 무모한 진격을 명령하는 장군이나 이에 지혜롭게 맞서 전차 공격을 성공시킨 지휘관 노비꼬프가 명령 불복종으로 재판에 소환되는 상황, 백전노장인 견결한 공산주의자 끄리모프가 스딸린 치하 군 숙청의 일환으로 조작된 혐의를 받고 투옥되거나, 시뜨룸의 엄청난 수학적 발견을 무시하고 자아비판을 요구하던 연구소 동료들이 스딸린의 전화 한통에 돌변해 시뜨룸을 영웅 취급하는 상황 등은 당시 권력층의 비리와 함께 스딸린 치하 전체주의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차가운 시대의 절망 속에서 인간 본성이 발견해낸 소중한 가치
『삶과 운명』에서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 묘사는 3권 전체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수용소 울타리에서 시작하는 1권이 44장에서 포로수용소 소련 포로들의 생활을 정밀하게 그린다면, 2권 29장은 나치 장교 리스의 시선으로 절멸수용소의 가스실 설계와 건설 과정을 보여준다. 이 독일인 장교는 더 효율적인 ‘특별 구조물’(가스실) 건설을 점검하기 위해 떠났던 출장에 대해 “즐거웠다. 여행이 기분을 많이 풀어주었다.”(2권 241면)고 말한다. 소설은 수감자들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관리자, 병사 들의 내면 또한 재현한다. 점검창으로 가스실을 감시하는 독일 병사 로제는 몸부림치는 유대인들을 보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명백한 이득과 은밀한 이득 모두를 잘” 알았고 “히틀러 정치의 유익한 효과를 느꼈다. 그 또한 작은 인간, 약한 인간이었고, 이제 그와 가족의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하고 좋아졌으므로.”(2권 333면)
이 천박한 무감함이 전대미문의 폭력을 낳았지만, 리스는 열혈 공산주의자 포로 모스똡스꼬이 앞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당과 국가에 충성하는 “우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소! (…)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두 일당주의 국가요.”(2권 132면) 나치 장교의 입으로 두 전체주의 국가의 동질성을 말하는 2권 15장 전체는 작가가 유대 지식인으로서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내며 얻어낸 진실의 표현이다.
“삶은 곧 자유야. 삶의 기본 원칙은 자유야.”
체제를 수호하려 싸우는 이들과 함께 소설은 전쟁과 파시즘이 가하는 폭력 앞에 몸을 사리고, 친구를 배신하고, 작은 이익에 목매는 보통 사람들을 그린다. 이와 동시에, 같은 폭력과 고통 앞에서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선함을 보여준다. 군의관 소피야 오시뽀브나 레빈똔은 의사로서 이용가치가 있으니 살려주겠다는 나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수송열차에서 인연을 맺은 고아 다비드와 함께 가스실로 향한다. 학살을 앞두고 게토에 갇혀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침을 뱉는 상황에서도 애써 감자 한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1권 18장) 우끄라이나 노파는 우연히 자신의 집에 기어든 죽기 직전의 포로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살펴 살려낸다.(2권 51장) 다른 언어를 쓰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도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들의 가차 없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2권 370면)
압도적 악의와 공포 속에서도 본능처럼 흘러나오는 이 선의는 『삶과 운명』이 작품 전체에 걸쳐 탐색하는 주제의 하나다. 포로수용소의 기인(奇人) 수감자 이꼰니꼬프는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는 인물로, 2권 16장의 기록은 그의 사회적, 종교적 선이 아닌 인간의 선에 대한 생각을 집약한다. “이것, 이 바보 같은 선의야말로 인간 속에 있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 아직 인간 속의 인간적인 것이 말살되지 않았다면, 악은 이미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삶과 운명』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무명의 세입자 부부는 이 끝내 부서지지 않는 작은 선의들 속에서 살아남은 누군가이다. 그들은 봄의 숲속에서 “삶의 맹렬한 기쁨”을 느낀다.(3권 404면)
바실리 그로스만은 작품의 전편을 이루는 1952년작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Za pravoe delo)와 1963년작 『모든 것은 흐른다』(Vsyo techyot)와 함께 『삶과 운명』을 통해 2차대전과 전체주의 사회의 실상을 속속들이 조명했다. 작가는 『삶과 운명』에서 총 3부 201장의 분량으로 다양한 인간상과 주제를 포괄하는 대서사를 완성하였지만, 지난한 출간 과정으로 인해 살아 생전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는 작품이 지닌 선구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출간 이후 『삶과 운명』은 연극과 TV 드라마 시리즈 등으로 각색되며 작품성을 더욱 널리 알렸다.
뿌시낀 문학의 권위자 최선(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은 최신판인 2017년 러시아어본을 저본으로 원작의 사실적인 문체와 깊은 통찰을 치밀하고 섬세한 번역으로 살려냈다. 2차대전을 조명한 무수한 문학작품과 러시아문학의 전통 가운데서 『삶과 운명』이 가지는 독보적 의미와 작품이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환기하는 새로움을 풍성하게 짚은 「작품해설」은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더한다.
? 작품해설에서
2차대전을 사실주의적이고 예리하게 파헤친 이 소설이 스딸린 사후 1960년대 소련의 해빙 무드에도 불구하고 출판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이 소설이 소련 체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국이 금기시하는 제반 문제를 다루었고 전시 소련 장성들 및 정치가들의 비리는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전쟁의 실상을 그대로 그리며 소련이 내세우는 애국전쟁을 포함해 전쟁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 이 소설은 소련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색, 러시아 문학·미술·학문·무기·전투 상황, 나치 독일의 포로수용소 및 유대인 수용소, 유대인 절멸을 위한 가스실, 스딸린 시대의 숙청 및 소련의 노동교화수용소를 자세히 보여주며, 히틀러와 스딸린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에 굴종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부터 히틀러와 스딸린의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 이 소설에서 그로스만은 인간의 승리는 모든 거대한 것, 추상적인 것을 이기는 구체적인 것, 개인적인 것에 있으며, 집단주의 및 획일화, 편견, 오만, 악의, 폭력, 전쟁의 대척점에 개인주의 및 다양성, 공감, 배려, 선의, 비폭력, 평화가 자리하고, 절망, 체념, 증오, 죽음, 부자유의 반대편에 희망, 저항, 사랑, 삶, 자유가 자리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설득해냈다.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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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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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그로스만의 이 대작이 드디어 출간된다니 믿을 수가 없다. 떨리는 손구락으로 일단 1권 주문.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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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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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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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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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신간이 바실리 그로스만이라니!! 얼른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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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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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2월 12일에 러시아 제국 영토이었던 우크라이나 베르디치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이오시프 솔로모노비치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태어난 바실리 그로스만은 어린 시절 유모가 젖 아들인 그를 요샤Yossya(Vasily의 애칭)로 부르기 시작해 온 가족이 ‘바실리’라는 이름을 공유하게 된 재미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세묜 오시포비치 그로스만은 화학자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바실리의 부칭은 솔로모노비치가 아니라 셰묘노비치가 되어야 마땅할 터. 조금 의문이 들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아버지 역시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며 당연히 러시아 혁명에 가담을 했으나 불행하게도 멘셰비키에 가담을 한 바람에 훗날 아들한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머니 예카테리나 사벨리예브나는 남편과 별거해 아들 바실리와 함께 제네바에서 몇 년 동안 함께 살았던 적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에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베르디치프에서 탈출하지 못한 어머니는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2~3만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처형을 당했다. 이 정경은 <삶과 운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이론 물리학자 빅또르 빠블로비치 시뜨룸의 어머니 안나 세묘노브나의 일화로 등장한다. 바실리 그로스만이 국립 모스크바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으며 대단한 공부벌레였다고 한다. 딸을 하나 얻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절친한 친구 보리스 구버의 아내 올가와 정분이 나 그들이 이혼을 한 1936년에 재혼한다.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하여 대규모 숙청이 일어났을 때 보리스 구버가 체포되고, 올가도 인민의 적을 고발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자, 이혼과 재혼 시기였을 때라서 무죄일 수밖에 없다며, 당시엔 아주 이례적인 경우로 감히 상부조직에 의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결국 석방을 시킨 대담한 성격을 지녔다. 하물며 감히 멘셰비키 족속의 아들이 말이지. 친구 아내와의 연정도 작품 속에 작가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나온다. 하긴 작품 속에 자신의 경험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바실리 그로스만은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원을 해 입대하고자 해서 붉은 군대 신문인 “붉은 별” 종군기자로 1천 일을 넘게 복무한다. 이 동안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와 베를린 전투의 참상을 목격하고 기록한다. 이 가운데 2차 세계대전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삶과 운명>의 주요 장면이다. 독일의 파울루스 장군은 1942년 7월에 돈강의 지류인 치르강에 도착해 붉은 군대를 공격하고 급기야 돈강을 건넌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서 한 걸음도 퇴각하지 말 것을 명령하지만 한 달이 채 못 되어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 접근해 도시를 고립시킨다. 이 즈음 해서 <삶과 운명>은 시작한다. 영화 <스탈린그라드>를 보신 분은 이 작품의 비극적 전쟁 장면을 이해하실 수 있을 터. 도시는 거의 폐허가 된 와중에 붉은 군대와 제국군대가 약 3백 미터의 간격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데, 한 시절 고급 저택이었던 ‘6동 1호’ 건물의 지하실에서는 실제로 총 24명의 붉은 군사들이 58일 동안 독일의 격렬한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로스만은 이 부대에 집중해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을 그리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외곽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던 전차군단은 깔미끄 족 출신 대령 노비꼬푸가 군단장을 맡아 훗날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 무기가 될 T34 탱크로 무장한 채 만반의 준비를 기하고 있었다. 전시에 대령이 군단장을 한다고? 그렇다. 노비꼬프의 출중한 전쟁 수행능력을 눈여겨본 예료멘꼬 사령관은 정보부 출신 네우도브노프 장군조차 노비꼬프의 지휘를 받게 만들었다. 이렇게 전투는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는 (지휘관이라 불리기 원하지 않는)그레꼬프가 관리인을 지칭하는 6동 1호의 극렬한 전투장면과 노비꼬프를 필두로 하는 무적의 붉은 전차군에 의한 우크라이나 수복까지 그리고 있다. 이 전투에서 각각 끄리모프와 노비꼬프, 두 명의 장교가 특별한 역할을 하지만 승리가 확정된 순간 이들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두 명의 주인공이 공유점은 대단한 미인인 예브게니아 니꼴라예브나 샤뽀시니꼬바의 전남편과 약혼자라는 것.
<삶과 운명>이 전쟁 소설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이것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첨부해야 마땅하다. 하나는 나치에 의하여 저질러진 유대인 학살. 그로스만이 종군기자 생활을 하면서 폴란드 지역에 설치했던 절멸수용소 두 곳, 트레블린카와 마이다네크를 직접 목격했고, 트레블린카에서는 유대인 수감자로 구성되었으며 오직 조금 더 생존하기 위하여 같은 유대인의 희생자 처리 일을 했던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를 취재한 전력이 있다. 어머니가 절멸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하기도 했으니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역사를 건너 뛸 수는 없었을 터이다. 다만 작품의 첫 장면이 독일의 강제수용소인데 분명히 주인공 급으로 보이는 노 혁명가 미하일 시도로비치 모스똡스꼬이에 대하여 별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간략하게 각주를 통해 “이 소설의 전편인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에서 모스똡스꼬이는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침공되자 그곳에서 빠져나왔다.”라고만 한다. 물론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레닌과 함께 혁명을 하고, 내전을 겪은 골수 볼셰비키이자 레닌주의자이다. 그가 왜 독일 수용소에 들어왔는지, 유대인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공산주의자라서였는지 도통 독자는 알 길이 없다. 1,36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야 작품해설을 통해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는 모스똡스꼬이가 아그리삐나와 운전사 세묘노프, 의사 레빈똔과 함꼐 8월 어느날 스딸린그라드 부근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편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이 인물들은 모두 친숙하다. 전편 소설을 모르면 이 운전사가 모스똡스꼬이의 운전사라고 여길 수 있는데, 여기서 세묘노프는 모스똡스꼬이의 오랜 지기이자 혁명 동지인 끄리모프, 이 소설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샤뽀시니꼬프 가족의 막내딸 제냐의 전남편이자 당시 꼬미사르로 활동 중인 그의 운전병 세묘노프를 말한다.”
1952년에 출간한 전편 소설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는 시간적으로 1942년 4월 29일부터 노비꼬프가 우랄지역에서 전차군단을 정비하는 시점까지라고 하나, 아쉽게도 이 전편소설을 읽어보고 싶어도 번역 출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독자는 <삶과 운명>을 읽는 내내 난데없이 등장하는 거물급 인물들의 정체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상태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모스똡스꼬이가 제일 앞에 등장하는 문제의 인물이다. 독일 수용소 장면에서는 독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경우가 다 등장한다. 수용소 내 공산주의 파벌 갈등,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과 좀머코만도스의 갈등, 소련 포로와 누구인지 모를 스파이 간의 갈등, 그리고 여태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나치 추종자 지휘관과 볼셰비즘 찬양자 사이의 사상적 겨룸. 여기에 독일 수용소 장면에서 역시 처음 읽게 되는 탈출 모의까지. 윌리엄 홀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제17 포로수용소>는 보셨으리라. 그들이 수용소에서 탈출해 과연 안전지대까지 갈 수 있었을까? <삶과 운명>에서는 수용소 위치가 이들에게 익숙한 폴란드, 우크라이나 지역이고 언어까지 탈출자들과 통해서 가능했을 수도 있을 터였다.
<삶과 운명>은 여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1954년에 스탈린이 죽고, 1956년에 흐루쇼프에 의하여 스탈린 우상화는 끝을 본다. 그리고 3년이 더 흐른 1959년에 바실리 그로스만은 <삶과 운명>을 출판한다. 하지만 KGB는 곧바로 그로스만의 집을 가택수색했고, 그의 사무실과 은행 금고까지 털었으며, 작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원고와 심지어 타이프라이터에 걸린 잉크 테이프까지 걷어갔다.
아무리 스탈린이 죽었고, 그에 대한 우상화가 마감을 했다 해도, 소비에트 연방에 의하여 저질러진 집단 농장화와 1937년의 대대적 피의 숙청을 대놓고 질타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을 터이다. 집단 농장을 만들며 숱한 소수민족을 한겨울의 황야에 내팽개쳐 정말인지 과장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수천만 명이 아사, 동사하게 만들었고, ‘편지교류 없는 10년 유형’이라는 독특한 총살형 및 교수형 선고는 소비에트 전 지역을 대화 없는 동토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도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를 경험했던 바,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끔찍한 수준으로 입조심을 하게 만들었다. 술김에, 농담으로 한 마디 했다가, 그 말이 비단 스탈린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의미가 아니었더라도, 들은 자가 스탈린과 볼셰비키 독재를 부정, 반대, 비방했다고 주장하며 당국에 고발하면 “의학이 허락하는 한” 모진 고문을 거쳐 결국 체제 전복을 꾀했다는 자필 서류에 서명을 한 다음 “편지교류 없는 10년 유형”을 선고 받아야 했던 시절을 강력하게, 아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1959년 이후 소비에트에서 다시는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렸고, 1980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친지가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한 원고를 스위스에서 다시 타이핑해 출판할 수 있었다. 5년이 더 흐른 1985년에 영어번역본이 나왔으며, 이전에 84년엔 독일어로 부분 번역 되었다고 한다. 체제 경쟁이 한창일 1980년대 초였다면 서구 반공권 입장에서 이 작품의 번역에 게으를 필요가 없었을 듯한데, 소련 사람이 쓴 작품이라서 그랬나 좀 아쉽다. 내가 반공주의자라서 아쉽다고 한 게 아니다. 이 책은 전쟁과 독일 수용소와 소비에트의 일인 독재만 다루지 않는다. 저 멀리 러시아 시절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러시아를 소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세심한 심리묘사 역시 대단하다. 전쟁을 포함한 세계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시 사람이다.
즐거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진짜 리얼리즘 소설.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이 소설을 “진짜”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겠다. 스탈린이 죽었다고 해도 아직 공기 중에 소비에트 일당독재의 기압이 팽만해 있어 여전히 볼셰비키와 레닌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작가의 눈에 뜨인 문제점을 과감하게 드러냈다는 것만 가지고도 이 작품을 높은 위치에 놓아야 할 것이다. 이 때 말하고자 하는 “문제점”이 비단 체제나 체제의 운영에 대한 문제점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쓸려가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그로스만은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예를 들어, 전차군단장 노비꼬프는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끄렘린에서 직접 시달한 명령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군단에 총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지금 위대한 무기 T38을 몰고 포화가 한창인 지역으로 돌진하면 말 그대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 자폭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무려 8분 동안이나 스탈린의 명령을 뭉개버린다. 이윽고 포격을 멈추자 누구보다 서둘러 크고 큰 외침으로 돌격을 지시한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꼬미사르(정치위원) 게뜨마노프는 노비꼬프의 절묘하고 냉정한 결정에 감격해 키스를 날린다. 전차가 웅장한 굉음과 함께 진격을 하고, 게뜨마노프는 생각한다. “그래도 스딸린의 명령을 8분동안이나 지연시켰잖아. 그건 보고하지 않을 수 없지.”
다 마찬가지다. 핵의 척력과 인력에 관한 혁명적인 연구를 발표한 유대인 과학자에 쏟아지는 질투와 마타도어. 인류와 소비에트에 크게 공헌할 지도 모르는 연구를 볼셰비즘과 소비에트의 개념과 상충하는 개인적 관심사라고 혹평하는 것도 모자라 최소한 해임, 적어도 체포, 심하면 영구 퇴출하게 만들고자 하는 어제까지의 찬양자들. 언제 그들이 바라는 대로 비밀경찰이 문을 두드릴까, 밤과 낮이 없이 아무 죄 없이 노심초사하는 빅또르 빠블로비치 시뜨룸 등등.
이 책을 읽으며, 여차하면 <삶과 운명>이 폴로네이즈를 생략한 <전쟁과 평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양하고 재미있다. 책 세 권을 다 읽고 역자해설을 훑으면서 역자 최선 선생도 똘스또이를 거론하는 걸 보며 은근히 어깨가 으쓱거리니 아직 나는 한참 멀었다. 하긴 어디 가려고 책 읽는 거 아니니까 멀었으면 어떠랴, 그냥 안 가면 되는 것이지. 하여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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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sis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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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을 다룬 작품들을 읽은 후 떠오른 질문들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인간 문명 따위 무슨 소용인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전체주의 권력이 할 줄 아는 건 최저질 농담 같은 장면을 제조하거나 최악의 비극을 초래하는 것일 뿐인가.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2차 대전을 기록한 기자가 소설의 형식으로만 전할 수 있었던 비극의 심연과 질문들을 드디어 3권의 한국어 번역본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예 상태가 되는 인간은 운명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지 그 본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비극과 폭력과 마주할 때마다 낯 뜨거운 인간의 면면을 다룬 책을 계속 하염없이 읽고 싶어질 줄은 몰랐다.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책들 중에는 꾸역꾸역 기진해가며 읽은 책도 있다는 점에서 - 물론 이유는 책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 이 책은 가독성에서는 단연 최고다. #강추
기자가 소설을 이렇게 잘 쓰는 건, 리얼리티가 리얼리즘을 이겨먹는 현실을 직접 관찰했기 때문일까. 안 그래도 문학을 논픽션으로 읽는 버릇이 강한 나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와 전개를 르포 기사처럼 흥미롭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게 전쟁과 희생자들은 숫자가 아닌 실체가 된다. 넘어져 다친 피부처럼 자주 기분은 쓰라렸지만, 기진하거나 힘이 들지 않아서 세 권이나 되는 분량을 아까워하며 넘겼다.
“비쩬까, 내가 철조망 뒤에서 뭘 느꼈는지 넌 알까? (...) 이 짐승 우리에서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어. (...) 그건 주위에 온통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이야. 게토에선 말처럼 차도로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악의에 찬 시선도 없었기 때문이야.”
“이들은 좋은 사람이어서, 또 나쁜 사람이어서 나를 놀라게 한단다. 모두 동일한 운명을 겪고 있는데 각각 다르다니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 나는 사람들이 낙관적이면 낙관적일수록 더 작은 것에 연연하며 이기적으로 구는 모습을 본다.”
책소개로 미진한 글쓰기일 것이나, 내용 소개를 생략한 감상과 단상을 이어나가보기로 한다. 글은 딱히 내용 구분이 없는 1, 2, 3권 분절로 이어질 듯하다. 한 가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메모해 두는 편이 좋다. 소련(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는 (적어도 내게는)필수다.
잘 읽힌다고 - 심지어 속도감과 재미도 적지 않다 - 는 했지만, 사람을 효율적으로 잘 죽이겠다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늘 역겹다. 그 길로 향하는 온갖 착각이 애통하다. 기분이 아니라 매번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고유하다. (...) 삶은 그 고유성과 독특성을 폭력으로 지워 없애려는 곳에서 고사枯死한다.”
“영혼은 기나긴 고통을 겪는다. 수년을, 가끔은 수십년을, 돌 하나하나를 쌓아 제 무덤의 봉분을 만들 때까지, 스스로 영원한 상실의 감정에 도달하기까지. 일어난 일의 힘 앞에 굴복할 때까지.”
작가는 대비와 대조를 부각하는 논쟁 대신, 인간 유형들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관찰 기록과 같은 문장들로 소개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이를 마주한 듯 때론 섬뜩했지만, 어떤 시스템의 강제 하에서 살아가느냐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생각하니, 삶과 운명을 결정지은 그 순간들만이 비릿하다.
“경험으로 확인된바, 이런 캠페인에서 주민의 대다수는 최면술에 걸린 듯 권력의 모든 지시에 복종하게 된다. 주민 집단 속에는 캠페인의 분위기를 만드는 소수가 있다. (...) 남의 불행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자들이다.”
“무덤가에 서 있는 인간들의 낙관주의가 얼마나 강한지 놀랄 많하다. 미친, 때로는 불결하고 때로는 비열한 희망의 기반 위에서 이 희망에 상응하는 복종, 때로는 가련하고 때로는 비열한 복종이 생겨났다.”
파시즘(전체주의)에 관한 경고는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왔다. 이 책 역시 ‘삶과 생존’의 차이만큼 극명한 세계의 차이를 그려낸다. 파시즘이 승리한 세계에 저항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파시즘이 주적인 ‘인간’, 특히 어린이와 여자들과 노인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몹시 따갑지만 견딜만한 글이다. 2권으로 간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거부하지 못한다. 폭력을 포기하면 전체주의는 파멸한다. (...) 초강도 폭력이 전체주의의 근간이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결론 속에 우리 시대의 빛, 미래의 빛이 있다.”
barion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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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전쟁을 겪지 않은 시간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 흐른 시간의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을 정도다. 명목상일 뿐이지만 한국이 현재 전쟁 중인 국가라는 점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을 잊고 산다. 바로 옆에서 총알이 날아다니고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기 때문일까?
<삶과 운명>은 세 권의 방대한 분량에 걸쳐 독소전쟁이 진행 중이던 1942년에서 1943년의 광경을 그린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 나이에 참전한 독일 병사의 고뇌를 조명했다면, 이 작품은 동부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포탄을 쏘는 병사들뿐만 아니라 카잔으로 피신한 평범한 가족도, 수용소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똑같이 전쟁을 겪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작품이 국가주의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다. 1권에서는 나치의 수용소 - 즉 유대인 학살소 - 를 현실적으로,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용소를 짓고 관리하고 시체를 태우는 일을 맡은 사람들까지도 포착함으로써 이 잔인한 행위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휴전으로 끝난 상황을 상정한 로버트 해리스의 대체역사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떠오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이니 이곳에서 서술하진 않겠다!)
2권에 이르러서 작품은 스탈린 치하 소련도 나치 독일과 다르지 않은 국가폭력을 저지르고 있음을 고발한다. 1937년부터 전쟁 직전까지 이어졌던 스탈린의 대숙청은 어떠한가? 스탈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군부에서부터 시작된 대숙청이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리스의 말 그대로 '우리의 손도 당신네 손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일을 사랑하며, 더러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제2부 121p)
작가가 만든 약어 '고스스뜨라흐(Госстрах)'는 국가를 뜻하는 '고수다르스트보государство'와 공포라는 뜻의 '스트라흐страх'를 합친 단어다. 말 그대로 국가에 대한 공포라는 뜻이다.
인간은 공포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깜깜한 곳으로 들어가고, 병사들은 전투에 나가고, 젊은이는 낙하산을 메고 한발짝 내디뎌 낭떠러지로 뛰어내린다.
그러나 이 공포는 특별한, 힘겨운, 수백만 사람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공포다. 이 공포는 모스끄바의 납 같은 잿빛 겨울 하늘에 불길한 붉은 글씨로 울긋불긋하게 적힌 그것, '고스스뜨라흐'다. (제2부 325p)
모스똡스꼬이가 2권에서 마주했던 친위대 장교 리스가 그의 '해부용 거울'인 것처럼,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나치의 전체주의/파시즘 국가폭력은 계속해서 병치되며 등장한다. 대숙청 당시 한번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히면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웠다. 고문 끝에 목숨을 잃거나 시베리아의 노동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밀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숙청되지 않고 굴라크에 끌려가는 것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무죄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아마 이 점을 신랄하게 꼬집고, 나아가 러시아를 미국과 겨룰 만한 강대국으로 만든 이른바 '대조국전쟁'의 당위성을 비판했기 때문에 이 책이 소련에서 출간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전쟁 중에도 학교는 문을 열고 사람들은 길을 거닌다고 했다. 잔혹함 속에서도 크고 작은 선의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고스스뜨라흐가 그랬듯이 이것 또한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어쩌면 숫자조차 되지 못했을 죽음들 반면에 수용소에서 곁을 지키고, 음식을 나누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숨겨 죽음의 위기에서부터 구해내는 장면들이 있었다. 한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 아닐지도 명확하지 않은 행동에서 얼마나 큰 인간의 선의를 읽을 수 있는지, 국가를 기준으로 나뉜 적과 아군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돌아오는 감정을 느끼며 감동을 받기도 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불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일어나는 전쟁 범죄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전쟁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통렬하게 실감한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의 바탕이 된 실화가 그랬듯이, <삶과 운명>이 믿는 '공포 앞의 선의'가 정말 이 어둠을 헤쳐나갈 힘을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마냥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전쟁에 분노하고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있음을 실감할 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은 고스스뜨라흐를 이겨낼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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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aeho2000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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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전쟁과 평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읽기 시작한 <전쟁과 평화>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 마음 한편을 차지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푸틴은 도대체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던 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핵무기와 냉전을 보며 푸틴은 ‘조국전쟁’ 즉, 모스크바 전투를 강조했다.
러시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막아낸 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부르며 러시아 민족이 파시즘을 막아냈다고 자부한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은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참혹하고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스탈린그란드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과 평화’와 같은 작품이다. 이 도서는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을 가진다. 종군기자 출신인 바실리 그로스만은 실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현장에 있었던 기록을 바탕으로 유대계 소련인이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독일 파시즘의 절멸 대상이 되었고, 소련 공산주의의 눈엣가시였던 유대인은 두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였다.
전쟁은 인간이 행하는 가장 참혹한 행위이다. 독일이 저지른 만행뿐만 아니라 소련군이 저지른 만행까지 모두 지켜본 그로스만은 자신의 작품에 이를 녹여냈고, 소련 당국은 그의 소설을 출판 금지했다. 모두 압수된 줄 알았던 원고의 사본을 가졌던 지인이 넘긴 마이크로필름 덕분에 작가의 사후 10년이 지나 1980년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출간하게 되었고, 창비의 세계문학 시리즈 100번으로 선정되어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참혹했던 이유는 히틀러, 스탈린에 의한 10년간의 독소불가침 조약을 믿었던 소련은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한 독일군에 밀리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전투로 소련의 저항에 가로막힌 독일군은 보급을 위해 캅카스 일대의 유전지역으로 향하게 되고 도중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인 스탈린그라드는 이름에서 풍기듯 히틀러의 눈에든 먹잇감이었다.
Unsplash의Museums Victoria
스탈린그라드 전쟁 초반, 독일 공군의 강하 폭격으로 도시는 황폐해졌고, 독일 제6군은 도시를 쉽게 점령할 거로 생각했다. 스탈린은 지령을 내려 스탈린그라드를 절대 수성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소련이 아닌 과거 러시아의 정체성을 불러일으켜 스탈린그라드로 군인,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전선에 투입한다. 불타는 볼가강을 넘어 새롭게 충원되는 신병들은 생존율이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했다. 도시의 90%가 적군에 넘어갔지만, 마지막 남은 트렉터 공장을 지켜내기 위해 소련군은 끝까지 저항했고 마침내 독일 6군을 포위하여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삶과 운명’은 스탈린그라드 과학 연구소에서 두각을 나타낸 주인공 시뜨롬 가족을 중심으로 그의 아내 류드밀라와 처제 예브게니아를 축으로 전개된다. 예브게니아의 두 연인 트로츠키 노선을 추종한 사회주의자 끄리모프와 소련 제62군 사령관 추이코프의 전차부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노리꼬프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독일 6군의 파울루스 장군과 그의 참모장 슈미트, 이에 대적하는 추이코프 장군 휘하의 전차부대를 한 축으로 부대 지휘부의 갈등과 주변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소설은 소비에트 탄생으로 발생한 맑스와 바쿠닌,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치적인 노선이 정해지고, 여러 민족의 민족주의를 추종하는 이들이 노선에 의해 등장인물의 삶과 운명이 갈라지고 결정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 축은 주인공 시뜨롬을 중심으로 한 과학 연구소 구성원들의 갈등과 이해관계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절멸하려는 계획을 실행한 사실을 잘 알려졌지만, 스탈린 역시 유대인을 구속 및 추방하며 탄압했다. 시뜨롬은 주위 유대인 동료들이 수용소로 잡혀가고 자신이 이룩한 과학 업적에도 불구하고 평소 했었던 언행으로 자아비판을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독일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최근 보았던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존더코만도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로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삶과 운명’은 수용소 내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의해 삶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이들을 주목한다.
이러한 기념비적인 작품인 <삶과 운명>에도 몇 가지 어려움은 있다. 러시아 문학을 감상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성명에 대한 것이다. ‘이름+부친이름+ 성’으로 이루어진 러시아 이름이 불리는 방식에 따라 이름과 부친이름, 성, 별칭, 애칭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응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식 표기가 아닌 창비와 번역을 담당한 최선 교수님은 러시아식 표기를 선택했다. 따라서 익숙한 노피코프가 아니라 노비꼬프, 파리가 아니라 빠리, 모스크바 대신 모스끄바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어려운 시간이 지나면 그로스만의 기념비적인 작품 ‘삶과 운명’을 통해 우리는 치열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장과 당대의 소련 상황을 내밀하게 경험할 수 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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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4시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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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 소련과 독일의 전쟁터 그 한 복판인 스딸린그라드 전투의 현장에 우리를 던져 놓는다. 총탄과 폭격이 이루어지는 현장과 이념의 싸움이 처절한 장소, 민족주의의 다툼으로 하나의 민족 말살이 이루어지는 가스실의 잔혹한 곳으로 던져진 우리들은 전쟁을 그대로 경험하며 그 어떠한 근거의 전쟁이라도 일어나서는 안됨을, 전쟁으로 생명이 희생되어서는 안됨을 알게 된다.
전쟁의 장소, 전쟁의 시간.
전쟁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으로 이끄는 운명. 꿈이나 한 순간의 장난으로 넘겨버릴 수 없는 그 참혹함 앞에 우리는 과거의 전쟁을 돌아보고 미래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긴 이름과 애칭이 러시아 문학의 특징이라면서 조심하라는 경고를 가볍게 넘긴 탓에 고전하고 있다.
소설을 읽을 때 인물관계가 잘 들어와야 읽기 쉬울텐데...'잘못했다', '정리 좀 하면서...'등을 생각하지만 읽으면서 찾아보자.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읽기를 마친다.
전쟁..
일상에서도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진짜 전쟁의 시간이 수많은 사람의 평범했던 일상을 무너뜨리고 원하지 않는 삶의 시간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 치열한 생사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인간의 강인함 그리고 연약함
사상, 자유, 진리, 삶, 사랑, 가족...그렇게 하나씩 존재하고 섞여서 한 덩어리로 녹아 내리는 전쟁의 시간
그 시간은 걸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헤쳐가는 시간이다.
전쟁은 계속 된다.
얼어붙은 땅에
불붙은 대지에
차갑게 부는 바람에
뜨거운 심장에
삶은 계속 된다.
혹독한 죽음의 시간 속에
멈출 수 없는 걸음 속에
쓰러져 숨죽여 엎드린 땅에
얼어붙은 강에
운명은 누가 결정하는가?
농민이었던
주부였던
학생이었던
학자였던
전쟁 이전에 있던 모든 것이
전쟁이라는 사건 앞에
모든 운명을 사상으로 뒤엎는 운명
단혹한 전쟁의 현실이 인간의 운명을 뒤흔다
그러나 뒤흔들리는 운명을 따라 삶은 계속 되고 있다.
시작할 때 어려웠다 집중도 어려웠고 이름도 어려웠고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제 조금씩 보인다.
사람이 보이고 관계가 보이고 내용이 보이고
전쟁이 보이고 무엇보다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의 고통이 인류의 고통이 남겨진다.
(124) 속에 지닌 슬픔이 크면 클수록, 생존의 희망이 작으면 적을수록 더 마음이 넓고, 더 선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더라.
2부에서 리스가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아이히만의 뒷모습을 보며 긴 혼자만의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은 소설을 빌려 저자가 전하고 싶은 인간 지도자의 범주에 대하여 그리고 반유대주의의 등장과 그 형태 그리고 유대인 말살이라는 실행의 단계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화자가 리스에서 나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또한 인간이 갖게 되는 공포의 감정에 작가는 고스스뜨라흐(국가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약어, 작가가 만든 신조어)라는 새로운 언어로 표현한다.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국가가 만들어내는 공포.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공포이며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전 국가적 행위의 공포
그 공포에 일체화 되는 인간과 그 공포에 밀려 쓰러지는 인간의 갈등은 전쟁이라는 배경이 아니어도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제2차세계대전의 한 면을 돋보기를 이용하여 보듯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하고 슬쩍 묻어갔던 아픔을 가슴에 핏물로 새겨놓는 소설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 땅의 젊은 세대가 읽어보면 좋겠다. 그저 영화나 게임에서의 전쟁으로 흥미와 재미로 봐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이 소설을 통해 바뀔 것이며 당연하게도 전쟁 반대의 목소리로 남겨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남기는 개인적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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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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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는 행위가 내게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세계의 확장이다. 책에 쓰인 내용으로 새롭게 알게되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책들은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켜 보다 적극적인 독서를 하게 만든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3부작 역시 그랬다. <삶과 운명>은 종군기자였던 바실리 그로스만이, 독소 전쟁이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들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사실적으로 다룬 이야기이다. 특히 소련인들의 입장에서 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라든지 스탈린 치하의 독재와 같은 이념과 정치를 다루고 있고 수많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다보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사실 처음에는 부족한 배경지식과 낯선 인명과 지명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이 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자주 들었다. 아마 도서관에서 빌려왔더라면, 진작에 반납했을지도 🫠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들의 삶을 더욱 더 잘 이해하고 싶어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아가며 독서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삶과 운명> 속 인물들의 삶을 한발짝 더 다가가 공감할 수 있었고, 독소전쟁 당시의 상황에 대한 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럭키비키 🍀).
고통과 즐거움 속에서 20일 가량 <삶과 운명> 속 세계에 빠져들어 지내면서, 전쟁 그리고 이념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느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전쟁, 그리고 유대인에게 가해진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일상적인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막연히 상황을 상상해보면 전쟁 자체로 파괴된 일상, 지난한 피난이나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게다가 수용소 마을에 감금되었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피폐해질 것만 같다. 그러나 1부에서 안나 세묘노브나가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일인들은 점령한 소련의 도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게토로 강제 이주를 시키고, 안나 역시 게토로 이주하게 된다. 안나는 편지에서 자신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삶을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모두 마음 한켠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고. 게토 안에서도 그들은 의사, 난로공, 미용사로서의 직업을 이어가며 일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냉정하게 보면 아마 음악가도, 제화공도, 재단사도 그 어떤 직업도 미래도 가지지 못할 어린 아이들은 그곳에서도 학교를 다닌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나’를 유지하고 지킬 수 있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124p).'라는 안나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비논리적이고 허황되어 보이는 희망이 또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인간에게는 그런 힘이 늘 숨겨져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광복절, 본능적으로 희망을 찾아 치열하게 싸워주신 분들 덕분에 나는 시원한 방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비슷한 시기에 쓰였던 자들의 희망에 감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2부와 3부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의 ’선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로를 증오하며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의 시대에도 남아있는 ’선의‘. 자신의 가족을 죽인 독일 군인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기회를 틈타 그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살릴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 마음. 명백한 악의를 선택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음에도, 또는 양심을 버리면 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먼길을 돌아가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고 어려운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삶과 운명>이 읽기 쉽고 편한 책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정말 어렵고 부담스러운 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1권을 다 읽고 나면 나머지 2,3권은 읽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독소전쟁이 배경이지만, 어쨌든 잦은 전쟁과 정치적인 신념으로 탄압 받은 이들이 많은 우리나라 사회를 떠올린다면 시대적 배경도 물리적 배경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게 바로 이야기가 주는 힘 아닐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뿌듯하고 보람있던 시리즈로 인정한다.
+ 이 책을 만약 읽는다면, 초반에는 인물도를 그리거나 짤막한 메모를 하며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러시아식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데 한 인물이 등장할 때 어쩔 때는 풀네임으로 또 애칭으로 혹은 이름이 나올 때가 있어서 정말 헷갈렸다. 물론 저자의 의도나 대화 속 인물들 간의 관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번역이었겠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좀 남는다.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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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z_76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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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중 독일/러시아 간 치열한 전투와 무차별 살상이 벌어진 스탈린그라드를 배경으로 말살되는 인간성과 동료애를 리얼하게 그린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이 출간되었다. 총 3권, 2000여 페이지에 가까운 대작으로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에 포함되었다.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는 이로써 100 번을 맞이했다. '하지만 체호프는 말했네. 신은 좀 비켜서 있으라고, 소위 위대한 진보적 사상들도 좀 비켜서 있으라고.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자고, 인간에게 친절하고 주의를 기울이자고. 그 인간이 누구든, 사제든, 농부든, 수백만 재산을 가진 공장장이든, 사할린의 유형수든, 레스토랑 웨이터든, 인간을 존중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우리 러시아인에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걸세.'_<삶과 운명> 1권, 437p2차 대전의 전투 현장에서 3년 넘게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은 이를 <삶과 운명>에 속속들이 옮겼다.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의 지대지 폭탄 '바뉴세이'의 세례로 도심의 건물이 초토화될 때, 수많은 시민들과 군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죽음의 공포를 견디고 생사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통을 견뎌냈을까? 폭탄의 파편이 끝없이 쏟아지고, 화염이 사그라질 틈이 없는 볼가강 주변 참호에 웅크린 어린 군인들. 불빛 하나 없는 도시 지하 벙커에 숨어 폭탄의 굉음과 진동에 귀를 기울이는 남녀노소 시민들의 눈이 빛난다. 그들은 아비규환의 지옥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노약자 앞에 서서 지하 통로를 개척하고, 지쳐가는 서로를 다독이며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한 인간 본성 앞에서 대다수는 절망하고 낙담했다. 그럼에도 내일을 믿는 자들은 동료애를 발휘하고 사랑을 나누며 정치/예술에 대한 격의 없는 대화를 주저하지 않는다. 허나 바실리 그로스만은 선하고 밝은 면만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유대인을 차별했으며, 소수 민족을 폭압하고 가망 없는 전투의 선봉에 끌어들였다. 스탈린과 정치 경찰의 냉혹한 감시망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했고, 이는 무고한 이들이 외딴 수용소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 끝에 아사하거나 총살 당하는 비극을 양산했다. <삶과 운명>은 당시 러시아의 정치/군사/예술/시민 사회 등 총체적인 면을 드러내 예리한 메스로 그 내면을 낱낱이 해부했다. 공산당 고위층과 수뇌부 장군들의 부패와 위선을 고발하는 한편, 이들로 인해 유능하고 현명한 이들이 숙청 당하고, 수많은 사병들과 노약자들이 포탄에 스러지고 굶어죽는 현장을 생생히 그려냈다. '이제 이 장면이 끝나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될 텐데 어떤 삶이, 어디에서 시작될까 - 시베리아에서, 모스끄바 감옥에서, 수용소 바라끄에서? - 하는 미지 앞의 불안도 그들을 짓눌렀다.'_<삶과 운명> 3권, 287p바실리 그로스만과 <삶과 운명>은 스탈린 주의자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작품은 1959년 완성되었지만, 원고는 당국에 압수되어 빛을 보지 못했다. 어느 친지가 마이크로필름으로 반출한 원고를 바탕으로 1980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후, 9년 후에야 러시아에서 대중들이 자유로이 접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 당시 소련과 스탈린그라드, 수용소의 모든 것, 2차 대전 판 '전쟁과 평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 업적 중 하나..창비 세계문학 시리즈 100번째 작품은 바실리 그로스만 <삶과 운명> 전 3권이다. 러시아 국경과 중동, 대만 등지에서 전쟁 발발 위험이 높아지는 지금.. 혼란한 시대를 관통하는 선구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실주의 러시아 문학을 애정 하는 이들이라면 시간을 두고 꼭 읽어보길 바란다. #서평단 #협찬 #삶과운명 #바실리그로스만 #최선옮김 #창작과비평 #창비세계문학 #러시아문학 #신간추천리뷰 #2차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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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_펭귄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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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서평단으로 무상 제공받았습니다"
🐧 바실리 그로스만과 그의 소설은 현대 러시아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게다가 작가인 그로스만은 2차대전 중에 종군기자로 활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이런 배경들은 굉장히 흥미로웠고, 3권짜리 해외소설이라는 방대한 분량과 무려 러시아 문학이라는 쉽지 않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읽기 시작하였다.
🐧 수용소, 공포, 불안, 총알, 죽음, 괴성. 전시중이라면 너무나 흔해빠진 단어들이라 그런걸까. 아무렇지 않게 놓여지고, 배치된다. 책은 그렇게 소련과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쟁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최전방에 전사자들이 매장되었다. 이들은 그 영원한 잠의 첫날을, 그들의 동지들이 편지를 쓰고 면도를 하고 빵을 먹고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벙커와 은신처 바로 곁에서 보냈다. _1권 43p
🐧 주요 공간은 세 곳으로 나뉜다. 빅토르와 그의 아내 류드밀라가 있는 곳, 스탈린그라드 전쟁, 독일 수용소의 삶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 쉴새없이 쏟아지는 러시아 이름(그리고 애칭)들과 유럽어가 뒤섞이며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솔직히 누가 누구인지, 내가 읽고 있는 게 무엇인지, 주인공은 누구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헷갈린다. 머리가 살짝 지끈하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다.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할 고단한 삶이, 수없이 많은 이의 삶이, 각 챕터 안에 고유하게 살아있다는 생각에 아직 놓지 못하고 읽게 만들었다.
🔖 도시의 잔해에는 삶의 세가지 층, 전쟁 이전의 삶, 전투 시기의 삶, 그리고 현재의 삶이 담겨 있었다._3권 384p
🐧 전쟁 중에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1천일 넘게 참상을 기록한 작가의 지독한 관찰은 그 수많은 삶을 이야기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그저 스쳐가는, 아니 잊혀지기 뻔한 이름들과 지난한 나날들을 전쟁과 삶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함께 책에 담아낸 작가에게 그저 존경을 표한다.
최전방에 전사자들이 매장되었다. 이들은 그 영원한 잠의 첫날을, 그들의 동지들이 편지를 쓰고 면도를 하고 빵을 먹고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벙커와 은신처 바로 곁에서 보냈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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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es06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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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한 바실리 그로스만 작가의 삶과 운명!
이 책의 작가님 이신 바실리 그로스만은 옛 소련(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작가님의 작품은 주로 제2차 세계대전과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인생과 운명》(Life and Fate)은 바실리 그로스만 작가님의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바실리 그로스만 작가님을 설명하기 위해 한 문장을 예로 들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유하다….
삶은 그 고유성과 독특성을 폭력으로 지워 없애려는 곳에서 고사(枯死) 한다.”
바실리 그로스만
이 문장에서 바실리 그로스만 작가님은 생명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지키는 것이 인간 존재의 핵심임을 말하며,
그러한 특성이 폭력이나 억압에 의해 파괴될 때 생명이 고사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 권당 500쪽 내외의 많은 분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량으로 큰 몰입감을 자랑 자지만 단점도 있는데요...
바로 3권 초반을 읽으면 1권 내용이 기억이 안 납니다 ;;
그래서 저는 번갈아 가며 모르는 내용이 있을 때는 그 부분을 찾아가며 읽었답니다~
이 책은 또 창비 세계문학 중 98,99,100 시리즈를 가지고 있는데요,
100번째 책이라니 뭔가 창비도 공들여서 번역한 것처럼 정말 어색한 부분이 없습니다.
등장인물
비탈리 보르소프
소련군 중령
전투에 참여
전쟁의 참상과 군 생활의 고난 속에서 갈등
남겨진 가족을 걱정
전투와 개인적 문제 사이에서 고민
엘레나 보르소바
비탈리의 어머니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억압을 직접 경험
남겨진 가족을 돌보는 역할
전쟁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가족의 안전을 위해 힘쓰고 있음
러디미라 보르소바
비탈리의 여동생
전쟁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갈등
바실리 스테파노비치
비탈리의 아버지
전쟁의 영향과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가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
나탈리아
비탈리의 아내
전쟁과 가족의 갈등 속에서 비탈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음
안드레이
비탈리의 전우
비탈리의 전투에서의 동료
비탈리와 전쟁의 고난을 함께 겪음
몰로토프
소련 정치인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억압과 전체주의 체제의 상징적인 인물
프라스크
군인
전투와 정치적 억압 속에서 개인적 고난을 겪음
전쟁의 현실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
베르디에프
전쟁의 참상 속에서 개인적 드라마를 겪음
피오도로프
소련의 군인
전투와 전쟁의 고난 속에서 개인적 갈등을 겪음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경험함
이렇게 이 책은 비탈리 보르소프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일반 전쟁소설과는 다른 시선으로 평범했던 가정의 모습을 이 책으로 보여줍니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와 비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전쟁과 평화보다 더욱 우리의 삶과 관련 있는 이 책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하지만 방대한 작품의 내용 때문에 온전히 책에 집중하기는 힘든 것 같다.
조금 분량을 줄여 요약본으로 나온다면 나는 흔쾌히 읽을 것 같다.
전쟁과 평화를 읽은 독자라면 더욱 비교해가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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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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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유하나 전쟁의 폭력이 그 고유성을 지워버린다. 전쟁전에 구가했던 각각의 소중한 일상이 있지만 전쟁은 그들을 비슷한 운명으로 내몰라 비극적으로 만든다. 전쟁 수감자들은 전쟁전의 과거를 한없이 아름답게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 한다.
전쟁을 벌이는 인간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신이 존재할까 의구심이 든다. 신이 있다면 이 끔찍한 모습들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물들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하다고 토론을 한다.
전쟁을 겪는 이들은 과연 당장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공포에 떤다. 그런 공포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다른사람들과 따뜻한 소통을 한다. 수프를 먹고 신발을 고치고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들을 나눈다. 전시의 긴장상태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오로지 내면의 고요와 평온 뿐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평온하고 깊은 내면을 지니지 못하면 전쟁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전쟁의 폭력, 비극, 인간성의 상실 속에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상기하게 된다. 모든 것을 동지에게 내어주고 겨울에는 외투도 벗어주고 빵조각까지 건네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
전시 상황에서는 사소한 일들 조차 할 수 없어서 전쟁을 겪는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일들을 무엇보다 갈망하게 된다. 이를 죽이는 것과, 화물칸 틈새로 가서 숨을 쉬는 것. 소변을 보는 것, 한쪽 발이라도 씻는 것.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 것. 이런 쉬운일들조차 어렵게 만드는 끔찍한 전쟁.
이 작품은 읽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었지만 일단 집중을 하기 시작하니 흡입력있게 빠져들어 갔다. 기자 였단 바실리 그로스만은 전쟁의 참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해서 전쟁의 구체적인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끔찍했다. 특히 엄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비극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아들에 대한 안녕과 사랑은 너무 절절해서 마음을 뭉클해서 만들었고 인간 영혼의 위대함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그 편지는 대단했다. 편지를 반복해서 읽고 싶을 정도였다.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 인간의 인간성 상실. 반면에 인간의 위대함을전쟁을 통해서 본다.
인상적인 구절
-난 그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 내게도 일어나겠구나 하는 마음이었어. 처음에 너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경악스럽고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만나 네 이마와 눈에 키스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지만, 곧 네가 안전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나.
-나를 불평할 수 없게 하는 사람들, 나보다 훨씬 더 끔찍한 처지에 놓은 사람들이 얼마나 진정으로 나를 위로하는지 모른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환자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민중이라는 좋은 의사가 내 영혼을 치유한다고 말이야. 치료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이 내어주는 빵 한조각, 작은 양파 한뿌리, 강낭콩 한줌이 내겐더없는 감동을 준단다.
-수백만년의 진화를 통해 지금의 인간이 되었음에도, 다시금 더럽고 불행하고 이름도 자유도 없는 짐승으로 돌아가기까지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소피야 오시쁘브나로서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파시즘은 수천만의 인간을 말살했다.
-인간들이 다양할 권리, 독특할 권리, 이 세상에서 각장 제 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살 권리를 쟁취하는 것.
-까짜에게 진정 놀라웠던 것은, 인간 영혼의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지 그 앞에서는 심지어 눈앞의 전쟁마저 뒤로 물러난다는 사실이었다.
-체호프는 말했네. 신은 좀 비켜서 있으라고, 소위 위대한 진보적 사상들도 좀 비켜서 있으라고,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자고, 인간에게 친절하고 주의를 기울이자고, 그 인간이 누구든,
인간을 존중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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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8-12메뉴
오늘 출근길에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들고 왔다.
와, 읽는데 너무 좋아.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책이기 때문에 더 잘읽히는 점이 분명히 있다. 어젯밤에도 오리엔탈리즘 들고 괴로워하던 나...오리엔탈리즘 같이 읽는 친구는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그러진 않았는데, 나중에 한 번 더, 두번 더 읽자...하고 읽기 때문에..하여간 어려운데, 한국인이 쓴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왜케 좋아요..
자, 책을 샀다.
책을 샀는데, 책을 받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생일이어서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오호호호 셋트 선물을 받았다.
이건 [문학과 예쑬의 사회사] 전 네권 셋트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금 오리엔탈리즘 같이 읽는 친구와 9,10월에는 이 책을 완독하기로 했다. 이렇게 책 준비를 마치게 되네. 후훗.
또 다른 셋트.
이건 창비 셰계문학의 [삶과 운명] 전3권 셋트다. ㅋ ㅑ ~ 너무 근사하지 않습니까. 러시아 문학 선물받는 나란 사람... 삶과 운명 이라니, 어쩐지 내가 좋아할만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삶과 운명 모두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들이니까. 게다가 러시아 문학이라고? 뭐, 이건 안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볼거다.
내가 책만 선물 받은건 아니다. 알라딘 상품권도 선물 받았다. 꺄울 >.<
나에게 알라딘 상품권을 선물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 아이템이 알라딘 상품권이야" 라고 말했다. 정말이다. 나는 알라딘 상품권을 선물 받으면 너무나 좋다.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살 수 있잖아? 신이시여, 저에게는 아직 상품권 잔액이 남아있습니다...
자, 그래서 내가 산 책들까지 해서 이번주 월요일 책탑은 이렇다.
근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책을 사대니 책을 쌓아둘 데가 정말 없지 않겠나.
내심 오늘부터 여성주의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던 터라, 어젯밤에는 책을 찾아 가방에 넣어두어야 했다.
여기 어디 있을텐데, 하고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찾아보는데 눈에 띄질 않는거다. 아 분명 산 거 아는데, 7월에도 내가 본 것 같은데...하면서 아무리 살펴봐도 책이 보이질 않는 거다. 하는수없이 이 챙뭉탱이 저쪽으로 옮겨보고 저 책뭉탱이 이쪽으로 옮겨보고... 그래도 찾지 못해서 우앙 ㅠㅠ 이러면서 아 이거 찾는 거 넘나 스트레스다, 나 상품권 있어, 그냥 다시 사자! 이랬는데 갑자기, 벼락같이, 저기에서 똭- 읽은 책들 더미에서 갑자기 똭- 보이는게 아닌가. 휴... 상품권 낭비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람들아, 책 정리하고 살자. (나만 하면 되나욤?)
하여간 상품권 만큼만 책 사고 더이상 책 안사겠다는 결심을 한 번 또 해보는 아침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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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4-07-01메뉴
20세기 러시아 작가 바실리 그로스만(1905-1964)의 대작 <삶과 운명>이 번역돼 나왔다. 1959년에 완성된 작품이지만 불온하다는 이유로 출간되지 못하다가 작가 사후 1980년에야 햇빛을 본 작품이다. 제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에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로도 불린다. 아무려나 오랫동안 번역본이 나오길 고대했던 작품이라 반갑다.
˝2차대전에서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장편 <삶과 운명>은 전쟁 당시의 소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체제와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긴 작품으로 이 작품이 국내에서 번역되길 오랫동안 기다렸던 많은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작이다.˝
덕분에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의 필독 작품 하나를 추가한다. 참고할 만한 책으로 평전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등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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