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윤평중의 지천하 12]
[아무튼, 주말]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9.28
철학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젊은 철학도 시절 벼락처럼 다가온 글이 하나 있다. 열암 박종홍(1903~1976) 전집에 실린 짧은 에세이였다. 한국 철학계 1세대 대부였던 열암은 우리 현대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일세를 풍미한 함석헌·양주동 선생이 열암과 평양고등보통학교 동창생이다.
열암은 에세이에서 평양고보 시절의 한 친구에 관한 특별한 기억을 펼쳐놓는다. 학년은 같아도 열암보다 나이가 많고 어른스러웠던 친구는 소년 박종홍에겐 비범한 인물로 비쳤다. 삶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관심에 눈을 떠가던 사춘기 열암에게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독자적인 정신 수련법에 매진하던 그 친구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수련 중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 건강을 잃고 폐인이 되고 만 것이다.
학교를 영영 떠나기 전 그 친구는 열암에게 마지막 충고를 남긴다. ‘혼자 너무 서둘러 달리다가 길을 잃지 말라’는 쓰라린 고백이었다. 박종홍 선생은 이런 교훈을 평생 간직해 진중하고 독실한 철학자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된다.
철학이나 예술, 신앙을 내세워 일상의 삶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도’를 닦는다거나 절대 진리를 탐구한다면서 이 세상의 일들을 낮추어 보곤 한다. 하지만 초월적 시선으로 대중을 내려다보는 자칭 ‘깨달은 자’의 말과 글은 고루하거나 허망하기 일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신산한 일상의 무게가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가 중에도 고답적 자세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 존재의 비밀을 꿰뚫어 본 자신은 세상의 상식과 규칙 따윈 무시해도 된다며 허랑방탕한 삶을 정당화한다. 한때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였던 ‘허무주의 시인’이 대표적이다. 그는 데뷔 초창기 일 년 동안 소주 1000병을 먹으며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자서전에 과시했다. 나중에 자신이 벌이게 될 숱한 반사회적 일탈 행위를 ‘천재 시인’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한 사례다.
시중에선 ‘예술적 천재’에 관한 소문이 상업적으로 윤색돼 잘 팔려나간다. 한 유명 화가는 고가의 위작 여러 점을 자신이 창작한 진품이라고 강변했다. 위조범 일당이 범행 과정 일체를 털어놓은 데다 수사 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모두 위작 판정을 내린 그림들에 대해서였다. 자기 작품 고유의 화법(畫法)과 에너지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고 이 화가는 주장했는데 정작 위조범들은 가장 베끼기 쉬웠다고 자백했다.
1974년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조교 선배가 한 당부가 기억에 선명하다. 학교에 흰 고무신을 신고 오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등교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다른 대학 한 철학도가 한여름에 겨울 외투를 입고 학교에 다녔다는 황당한 소문을 언급한 것이다. 나중에 이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계절의 변화를 잊은 채 철학적 사유에 침잠할 수도 있고 예술적 통찰이 득도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초월적 제스처는 예술과 철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쇼맨십으로 변질된 심오함의 과시는 철학과 예술, 신앙의 진정성을 파괴한다.
아무리 심오한 예술, 학문, 종교도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의 무게보다 지엄할 순 없다. 참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나날의 현실을 소홀히 하면 그 믿음은 거대한 허위로 전락한다. 인류 전체를 사랑한다면서 바로 옆에 있는 이웃을 외면하는 신앙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철학이나 예술, 종교 자체로부터 구원이 섬광처럼 오지는 않는다. 충만하고 정직한 하루하루가 쌓여 구원으로 가는 문이 조금씩 열릴 뿐이다. 예술, 신앙, 철학 등 그 무엇도 삶보다 앞설 순 없다. 정말로 비범한 것은 평범 속에 있다. 비범한 예술이나 철학보다 빛나는 게 진솔한 보통 사람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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