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의 척후
일제하의 경성방직과 김성수.김연수
주익종 (지은이) 푸른역사 2008-02-19
정가 24,000원
책소개
서울신용평가정보(주)에 신용평가 담당 이사로 근무중인 주익종이 현대 한국 자본주의 기원을 탐사한 책. 1876년의 개항 및 1910년의 식민지화 이후 전북 고창의 한 전통 지주가가 근대 기업가로 변신해 성장시킨 근대적 대 방직기업의 성장사를 담았다.
1919년 출범한 경성방직(주)은 1943년 최고의 한국인 회사로 성장한, 대표적인 식민지기 한국인 기업이다. 전북 고창의 대지주였던 김성수 일가는 경성방직에서 제조공업을 펼쳤을 뿐 아니라,《동아일보》를 발간하는 등 언론사업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중앙학교와 보성전문 인수하여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이 교육사업은 당대 한국인이 펼친 근대화사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오늘까지도 (주)경방, (주)삼양사, 동아일보사, 중앙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지은이는 한국의 기업이 19세기 말 조선 사회가 세계자본주의로 개방한 이후 지난한 학습과정을 거쳐 단련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제1세대 근대적 기업이 불굴의 의지와 도전, 갖가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 단련되었다는 것, 그 기업 및 기업가는 예속자본이나 친일파라고 간단히 폄훼될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일제하에서의 기업적 훈련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세계적 대기업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접기
01 서장?왜 근대 기업사 인가?이 책의 서술에 대하여
02 거대한 새 물결?재분배경제에서 시장경제로?탈공업화에서 공업화로?한국인의 손으로
03 잉태?고창의 김씨가?근대화 프로젝트
04 불안한 출발?고고의 성?좌초 위기?수습?준비 완료
05 주변부에서 : 1920년대?데뷔?틈새를 파고들어?살아남다
06 중심부로 : 1930~1937?공업화 러시?실속없는 확장?화룡점정
07 절정 : 1938~1945?온실 안에서 : 통제와 보상?대륙으로?절정, 그리고 붕괴
08 종장?예속자본?제국의 후예를 넘어서?뛰어난 학습자 : 대군의 척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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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한국인 공업이 일본인 공업에 압도당한 것은 식민지화로 인해 해당 업종의 한국인 자본이 몰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 자본이 조선에 새로 생긴 업종에 아직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식민지화 이전 조선산업의 극심한 낙후성이 이 시기에까지 그 자취를 남겼던 것이다. 한국인 공업이 작은 비중이나마 차지한 것은 바로 식민지기에 지속저긍로 성장한 덕분이었다.-p51 중에서
김씨가의 사업은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부패한 왕조 아래서 퇴락하던 사회에 가해진 외부의 충격, 경제개방과 국제묵역의 확대, 망국과 그를 저지하려는 노력 등 정치경제적 격변상황에서 전통적 지주가 대공업기업가요, 언론사업가이자 교육사업가로, 곧 근대경제사회의 핵심 주역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것은 한국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뛰어난 적응력, 활동력이 발휘된 결과였다.-p354 중에서접기
저자 소개
지은이: 주익종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수출지향공업화>,<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 총 15종 (모두보기)
서울대에서 일제하 한국경제사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방문학자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현재 이승만학당 이사로서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 업무를 하고 있다.
학술지 『경제사학』등 에 게재한 다수의 학술논문 외에,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편찬(2008년)에 참여했으며, 『대군의 척후 -일제하의 경성방직과 김성수·김연수』(푸른역사, 2008)와 『고도성장 시대를 열다』(공저, 해남, 2017),『반일 종족주의』(공저, 미래사, 2019),『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공저, 미래사, 2020), 『수출지향공업화』(해남, 2023) 등의 저서가 있다.접기
주익종(지은이)의 말
한국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밝히는 작업 중 하나는 한국의 근대적 기업과 기업가가 어떻게 성장,발전했는지 밝히는 것이다. 한국이 국가 주도로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무대 위의 주연배우, 경기장의 선수는 역시 기업과 기업가였기 때문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경성방직’이 없었다면 ‘삼성전자’도 없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현대 한국 자본주의 기원을 찾는 책《대군의 척후》(주익종 저)가 출간되었다. 이번에 동시에 출간된《제국의 후예》의 번역자이도 한 저자의 이 책 역시 1876년의 개항 및 1910년의 식민지화 이후 전북 고창의 한 전통 지주가가 근대 기업가로 변신해 성장시킨 근대적 대 방직기업의 성장사를 담았다.
1919년 출범한 경성방직(주)은 1943년 최고의 한국인 회사로 성장한, 대표적인 식민지기 한국인 기업이다. 전북 고창의 대지주였던 김성수 일가는 경성방직에서 제조공업을 펼쳤을 뿐 아니라,《동아일보》를 발간하는 등 언론사업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중앙학교와 보성전문 인수하여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이 교육사업은 당대 한국인이 펼친 근대화사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오늘까지도 (주)경방, (주)삼양사, 동아일보사, 중앙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기업이 19세기 말 조선 사회가 세계자본주의로 개방한 이후 지난한 학습과정을 거쳐 단련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제1세대 근대적 기업이 불굴의 의지와 도전, 갖가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 단련되었다는 것, 그 기업 및 기업가는 예속자본이나 친일파라고 간단히 폄훼될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일제하에서의 기업적 훈련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세계적 대기업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오늘날 한국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식민지시대에는 경성방직이 있었다. 경성방직과 그 기업가 김성수?연수는 당대 최고의 한국인 기업이요, 기업가였다. 중소기업의 하나로 시작한 경성방직이 일본의 대기업과 견줄만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곧 한국 기업의 성장과 단련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그 연구를 통해 우리는 ‘한국 자본주의가 어떻게 단련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서문〉중에서
근대기업사 연구의 의의
그동안 한국의 경제성장의 비밀을 밝히려는 노력들의 대부분은 성장전략과 경제정책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 토양에 대한 연구 없이 현실만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 연구이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경제 성장의 사회적 토양에 대해 연구하였다. 한국의 고도성장 역시 사회적 토양, 즉 ‘사회적 능력social capability’이라 할 수 있는 인적자원, 가치지향, 정치사회적 통합력 등에 힘입은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적 능력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초 근대기업사를 연구한 이유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능력’은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결합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사학계의 식민지 수탈론은 일본을 침입자, 수탈자로 간주하여 그들에 의해 우리의 ‘사회적 능력’이 파괴되었으며 해방 후 다시 우리가 그 능력을 되살려냈다고 보고 있다. 반면 경제사학계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식민지 지배기에 한국인이 자신의 사회적 능력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후자의 입장에 있다.
저자는 개항 이후, 전통적 경제체제가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게 되는 과정, 이 체제가 한국 경제사회에 미친 영향, 한국인들의 적응, 근대적 경영과 기술을 배워 근대적 경제인으로 자신을 개조, 발전하는 과정에 주목하자고 한다. 여기서 중심적인 것은 일제하 한국인 기업가들의 성장 이다.
에커트 교수의 연구와 저작이 자극이 되어 그를 극복하려는 동기를 품었다 한다. 저자는 에커트 교수의 책이 본받을 게 많은 뛰어난 연구이기는 하나 시각상의 중대한 문제점과 실증상의 약점이 있다고 본다. 시각상의 문제점이란, 에커트 교수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상호작용을 살펴본다고 하면서도 결국 일본이 후견이 되어 지원하고 한국인은 그에 의존하는 모습, 곧 일본제국주의가 낳고 양육한 한국인 기업의 모습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는 일면적이다. 식민지 피지배민의 자본주의는 지배국 자본주의가 구축한 환경 속에서 그에게서 배우면서 발전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성방직은 ‘제국의 후예’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피지배민 자본가의 입장에 서면 질문이 달라진다. 선진자본주의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지원을 획득하고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하여 판로를 뚫을까가 문제가 되는바, 이 과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으로서 경성방직의 성장사를 새로 서술할 필요가 있다. 즉, 경성방직을 주체로 한 서술이 필요하다. 물론, 일제가 한국인 자본을 육성하려는 정책을 펼쳤는지, 일본인 기업이 정말로 한국인 기업을 지원한 것인지도 재검토해야 한다.
또 실증상의 약점도 여기서 나왔다. 에커트 교수는 경성방직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지원과 그에 대한 협력, 의존이 회사가 살아남고 성장한 이야기의 전부인양 썼다. 저자는 과연 그런지를 의심한다.
그렇다면, 경성방직의 출발이 되었던 식민지시기, 고창 김씨가와 경성방직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고 발전하였는가? 저자는 무엇을 근거로 식민지시기를 한국 기업의 성장과 단련의 과정이라 보는가?
경성방직, ‘근대기업’을 학습하다
저자는 회사의 생존과 성장의 요인을 제대로 구명하기 위해 본격 경영사의 접근법을 택한다. 회사 재무제표와 회계장부를 분석하여 경영성적을 밝히고 그를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방직의 성적과 비교하며, 다시 이를 시장 및 경제환경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이다. 회계자료를 분석할 때 에커트가 다분히 자신의 결론에 맞는 사실만 골라서 인용했던 것과 달리, 저자 주익종은 재무제표와 회계장부에 나타난 사업 조직방식과 사업 실적 전체를 분석하고, 그로부터 생존과 성장의 요인을 밝혔다.
저자는 우선, 경성방직의 설립은 앞선 일본 문명을 따라잡으려는(catch-up)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성수가 경성방직을 설립한 것은 기존 지주경영의 수익성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그가 품고 있던 근대화이념으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문명개화와 실력양성을 위한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유학하며 근대문명의 위력을 절실히 체험했다. 날로 발달하는 일본의 공업을 보고 조선의 장래도 결국은 공업화에서 구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은 그를 앞당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경험 속에서 그는 근대화론자가 되었으며, 그래서 중앙학교, 경성직뉴의 인수, 경성방직과 동아일보의 설립에 나선 것이다.
경성방직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기업경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초한 것이지만 엄청난 시련을 겪었고, 근대 기업으로서의 단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곧 설립 직후 삼품투기 실패로 인한 파산 위기를 말한다. 경험 없는 청년 경영진이 공장 건립용 자금으로 삼품(면포, 면사, 면화) 투기를 하다가 자본금의 절반을 날려 파산 위기를 자초했다(다른 수많은 한국인 상회사들도 그러했다).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서 김성수가 가문의 자금을 투입해서 회사를 재무적으로 안정시키고 지배구조를 개선했다. 에커트 교수는 김성수 집안조차도 경성방직에 자금을 투입하길 꺼렸다고 보았지만, 실은 김씨가의 거액의 자금 투입으로 회사가 재건되었다. 이것이 한국 근대기업의 진정한 출발점이었다. 그 전까지(대한제국기)의 회사란 정부에 납세를 하는 대신 징세권이나 영업독점권 등 특권을 얻는 것이었다.
경성방직은 1920년대에 판로가 확대됨에 따라 설비를 늘려갔지만, 필요자금은 증자로 조달하여 기본적으로 차입에 의존하지 않았다. 수익성이 좋지는 않았지만 적자를 내지는 않았고, 총독부에게서 받은 보조금은 주주배당으로 다 소진했다. 수익성은 조선방직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았고, 이는 면포시장이 침체상태에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래도 학습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서 열악한 시장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는 보조금이 없었더라면 필시 망했을 것이라는 에커트 교수의 결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보조금은 어디까지나 보조금이었을 뿐, 회사의 존폐를 결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또한 경성방직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한국인 부르주아지에 대한 지원 및 회유책으로 해석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저자는 일본 재벌계 자본이 세운 조선방직도 거액의 보조금을 받았으며, 오히려 이 보조금은 조선 내의 후발 공업화를 지원하는 의미이지, 한국인 부르주아지를 회유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또 1930년대에는 면포시장이 호황을 맞았지만 조선방직과 달리 면포만 직조하느라 수익성이 낮았고, 이에 숙원사업인 방적공장 건설에 나섰으며, 전시의 고수익도 공정가격이 면화재배농민에 불리하고 방직업자에 유리하게 책정된 데다 경성방직이 염색 등 가공면포 위주로 생산을 고급화했기 때문이었고, 1930년대 중엽부터 조선내 사업 확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대륙에 자본 수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 역시 전시기에 고수익을 올린 사실만을 강조하거나 만주국의 수입장벽 때문에 수출이 줄어서 대륙 진출을 한 것이라고 본 에커트의 분석과 다르다.
《제국의 후예》를 뛰어넘다
요컨대 저자는 경성방직 회계자료의 전면적인 분석을 통해 경성방직이 면방직업체로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을 밝혔다. 사업에 대한 의지와 든든한 자금력, 경영과 기술의 학습을 통한 생산성 향상, 민족주의적 호소 및 상인과의 이익 공유 등의 시장개척 전략, 적시의 방적설비 투자 등이 그것이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하고 그에게서 지원은 받은 덕분으로 단순화할 게 아니었다.
저자 역시 조선전통경제 변화의 기동력은 외부에서 왔다는 에커트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에커트가 일본제국주의와 한국인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면서도 양자간의 지원, 의존 관계만 부각시킨 것과 달리, 저자는 경성방직이 때로는 자력으로, 때로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 기업경영의 여러 과제들을 해결해 나간 과정을 부각시켰다. 한국인이 선진국에서 배우면서 자신을 근대인으로 바꾸어가는 모습을 보자는 것은 흔히 식민지 근대화론의 본산이라 일컬어지는 서울대 경제학과 -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입장이기도 하다.
김성수, 김연수 일가의 기업경영과 관련해서는 일제말의 협력이 흔히 논란거리가 된다. 저자는 김연수가 만주에 진출하여 여러 개의 농장과 남만방적을 설립하고 삼림벌채사업과 양조업을 벌인 것도 기업가 정신의 발로로 평가한다. 에커트 교수가 이를 일제의 국책에 적극 호응한 협력행위로 평가한 반면, 저자는 전시경제통제로 인해 기업활동의 여지가 없던 국내를 벗어나 사업을 확장한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분출된 것으로 본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제말기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던 시기, 김연수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기회로 삼아 사업을 확장하고 전시총동원에 협력한 일을 두고 그를 비난한다. (1938년 시국대책조사회 위원 선임, 학병 권유 활동 등). 한 단체에서는 김연수를 ‘친일파 99인’에 선정하고 경성방직을 ‘식산은행 왕국의 조선인 왕자’라며 비판한다. 에커트가 자신의 채에서 김씨 형제의 협력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민족보다 계급을 택했으며 한국사회에서 지도력을 상실했다고 평했다)이 그 좋은 증거로 쓰인다. 반면, 저자는 최근의 친일파 청산론이 보인 것 같은 마녀사냥식의 단죄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인 지도자로서 김씨 형제의 전쟁 협력 행위는 비판받아야 할 일이지만, 친일파나 반민족행위자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그들의 다른 모든 업적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친일 혹은 항일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 사이에 있었던 김성수, 김연수를 비롯한 대다수 한국인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그들을 포함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왜 협력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성찰을 제안한다
저자는 경성방직과 그 기업인들이 시장경제와 근대 공업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 학습능력을 보여주었고, 이 기업과 기업가들은 간단히 예속자본이나 친일파라고 폄훼될 존재가 아니며, 일제하에서의 기업적 훈련이 오늘날 한국의 세계적 대기업을 낳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오늘날의 삼성전자에 비견할 수 있는 경성방직에게서 일찍이 춘원 이광수가 언급한 것처럼 그 ‘뒤에 오는 대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본격적인 기업경영사로는 첫 저작이라 할 만다. 에커트의 선구적 업적에서 시사받은 바 크지만, 그 한계를 분석하여 새로운 기업상像을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다. 국내의 일천한 경영사 연구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경제사 연구자가 행한 이 작업은 중요한 연구업적으로 인정할 수 있으며, 아울러 식민지시대와 그 시대의 한국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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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 201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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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투기친일언론에 관한 찬양의 글이로군. 거기 끼고 싶어 안날이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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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ectio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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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책의 명성에 기생해서 끼워팔기 해보려 한 꼼수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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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zone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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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뉴라이트 낙성대연구소 소속이지만 행여나 설득력 있는 논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읽었다. 실망스럽게도 시종일관 친일반민족 족벌기업인 찬송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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